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2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19. 22:11

로마서 강해 27(5: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27()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에 의한 구원도 이루지를 못하고 죄와 사망의 현실도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서 하나님께 나아간 결과 어떠한 은혜를 얻게 되는가?(5:1-2)

 

본문의 말씀은 4장에서 설명한 내용을 전제로 하여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다음과 같이 4장의 내용을 음미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솔직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한 결과 놀라운 하나님의 상급을 얻게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사례를 성도들의 복음적인 믿음과 상급에 대하여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서 이방 땅에서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약속하신 축복이 실현이 되지 아니하는 답답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자손의 번성이라는 언약이 진작에 있었지만 10 세월을 이방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약속이 성취가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2)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거듭 확인해 주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가지 사실을 깨닫고 믿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의 성취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언약을 주신 분이 여호와이시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능력 자체를 믿어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지혜는 우리 인생 가운데 그리고 역사 가운데 어떻게 전개가 되어 나올까요?

3)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뜻은 사람이 상상도 없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언약이 성취가 되고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결과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두가지 하나님의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약속의 아들 이삭이 100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불임여성 사라에게서 태어납니다. 하나는 모리아 산에서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게 이삭의 운명이 여호와 이레의 은혜로 살아나게 것입니다.

(2)   둘째,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그의 믿음의 말미암아 얻고 있는 두가지 상급의 의미를 확장하여 성도들의 믿음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구체적으로 첫째, 성도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의 극복하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얻는 방법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브라함 가정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시듯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사함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성육신을 통하여 보내어 주십니다.

3)      셋째,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한평생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역시 부활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5:1a); 이미 앞머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여기서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5:1a)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아브라함의 선례에 따라서 성도들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고 있다는 말입니다;

1)      실제로 창세기 15장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은 여호와를 믿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는 도저히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번성이라고 하는 축복의 언약을 주셨지만 아직 10년이 지나도 그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늙은 몸과 불임인 아내 사라의 늙은 몸을 쳐다보게 되면 자식이 생길 확률이 제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능력으로는 자손의 번성이란 바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가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어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과는 거리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3)      그것은 마치 사람의 힘과 지혜로써 인위적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켜 의인이 되고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고 선민 유대인들이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을 전부 지킬 수가 없습니다(3:20). 그리고 아무리 자신이 의롭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양심은 그것이 아니라고 합니다(2:14-15). 더구나 구원의 확신은 영적으로 주어지지 아니하고 심적으로 불안합니다. 그것이 소위 율법의 주장하고 있는 유대교인들과 유대주의자들의 현실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솔직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유대교가 그리고 선민사회가 오로지 사람들 보기에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인정이 되면 의로운 자이며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판정을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1:32). 그러나 그것은 불행한 신앙생활이며 잘못된 종교사회입니다. 왜냐하면, 산헤드린 공회나 유대교 지도자들이 칭의와 구원의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사람들에게 그것을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일찍이 아브라함은 사람의 힘과 지혜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정직하게 도움을 요청한 인물입니다. 언약을 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으로 약속을 성취해주실 믿고 맡겨드린다고 하는 신앙자세를 보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솔직한 신앙고백과 맡김의 자세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신 것입니다.

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운 것이라고 칭찬하시면서 그의 가정에 약속의 아들 이삭도 주시고 여호와 이레로 목숨살림의 역사도 선물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지니게 되면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부활의 은혜를 얻게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16-18).

(2)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b); 사도 바울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창세기에서 선을 보이고 있는 믿음의 어째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생활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지를 여기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이유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이 사람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언약을 이루어 주실 믿었기 때문에 의인으로 여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받아야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둘째, 전통적인 유대교인들이나 교회에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위적인 노력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켜야 하며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여전히 율법의 강조하고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인지 아니면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습니다. 마디로, 유대주의자들은 기독교를 다시 유대교로 끌고 들어가는 위험한 신앙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이 선을 보이고 있는 믿음의 연장선상에서 모든 인류의 구원을 실현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b) 사도 바울이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눈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능력을 바라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있는 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세가지의 용어, ‘우리 ’, ‘예수’, ‘그리스도 이미 담기어 있습니다;

4)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호칭은 각각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독생자의 영광을 회복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의 위격이시며 만유의 되십니다. 둘째, ‘예수 갈릴리의 나사렛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나십니다. 외형적으로는 영락없이 사람의 아들인 인자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깨달아 전파하십니다. , 제자들과 함께 3 6개월간 함께 지내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5)      셋째, ‘그리스도 세상을 심판과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구속자 칭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끝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의 역할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이루시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해주실 것을 믿으며 영혼을 맡기십니다(23:46, 19:30). 믿음의 말미암아 부활의 역사가 땅에 찾아오게 됩니다.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구원하며 심판하시는 주님이 되십니다.

6)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하는 것은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어떠한 믿음생활을 하게 되면 그러한 영생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설명한 모든 것을 합하여 보면 해답이 주어집니다; 첫째, 아브라함처럼 언약대로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창조주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결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세상에 보내어 주시고 부활의 영광까지 주신 것을 알게 됩니다. 셋째, 이제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그리스도와 같은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성도의 삶을 이끌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며 마침내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은혜에 들어 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2);

(1)   사도 바울이 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선례를 설명하면서 성도들에게 믿음의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5장에서는 믿음의 의를 가진 성도들에게 부활과 영생의 구원을 얻을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와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아가서 그것을 얻기에 부끄럽지 아니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여기서는 사도 바울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현실적으로 무엇을 얻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그것은 첫째, 우리가 율법의 행함이 아니라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하는 의인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은혜에 들어 감을 얻었으며(5:2a). 그러므로 나같은 죄인이 의인이 것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자 애를 나의 공로가 아닙니다.

2)      율법을 모두 지킬 없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부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천할 있는 능력을 달라고 간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결과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능력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죄인이 용서를 받고 능력을 받아 의인의 삶을 살아갈 있는 성도의 자리에 서게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둘째, 이제 성도가 믿음의 길을 완주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을 얻으며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2b). 소망을 바라보면서 성도들은 거듭난 인생을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28:18-20).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인위적인 노력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절망적이고도 답답한 현실을 직시하고서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서 하나님의 언약이 현실화될 있도록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성도들에게 함께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정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시고 또한 죽음에서 이삭을 여호와 이레의 축복으로 살려 주십니다(21:1-7, 22:10-14). 마찬가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함과 칭의(稱義, 의롭다고 간주하고 그렇게 부르심)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부활과 영생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와 같이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상급에 대하여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예수님의 믿음과 성도들의 믿음의 동일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에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주어지고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우리 성도님들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믿음의 의로 극복하는 인생을 살아 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