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2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19. 09:53

로마서 강해 26(4:23-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26()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4:23-25);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율법의 믿음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방황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설명을 하기에 열심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빼놓지 아니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가지 사실에 대하여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과연 무엇인지 내용을 다시 간략하게 요약해보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사도 바울의 설명이 미흡한 대목이 무엇인지를 파악해보는 것입니다. 이유는 미흡한 부문에 대하여 앞으로 그의 설명이 로마서에 계속 기록이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한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언약과 아브라함이 맞이하고 있는 현실 사이에는 괴리(乖離, 서로 어긋나 거리가 생김) 존재하고 있습니다. 괴리를 메꿀 있는 방법이 아브라함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창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자식문제를 두고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자식이 하나도 없으며 아내가 불임입니다(11:30, 15:2).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는 늙은 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식을 얻으며 자손의 번성을 얻을 있다는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 10년간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입니다(12:1-5, 15:2).

2)      그래서 절망적인 현실과 찬란한 하나님 약속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고 거듭 확인해 주십니다(15:3-5). 도저히 믿을 없는 약속을 아브라함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15:6).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의 능력으로는 언약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고 있는 믿음의 핵심은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4)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답답한 현실에 연달아 기적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아브라함의 가계를 통하여 세상에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이 창세기에 기록이 되고 있는 이른바 아브라함과 자손들의 이야기입니다.

(2)   둘째,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언약을 현실적으로 믿을 있게끔 하나님의 능력을 조금 보여주십니다. 젊은 하갈과 합방을 하여 이스마엘이라고 하는 아들을 얻게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86 때의 일입니다(16:16). 그것은 기적입니다. 오늘날에도 86세에 아들을 얻은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토픽(topic) 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생산을 위하여서는 세상적으로 젊은 밭이 있어야 하는데 85세의 늙은 아브라함이 하갈이라고 하는 젊은 밭에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이해와 상상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다음 단계에서 터져 나오게 됩니다. 역시 알기 쉽게 자식문제를 가지고 창세기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3)   셋째,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아브라함의 자손의 번성입니다(12:2). 여기서 자손의 번성이란 아브라함의 후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고 많은 왕들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17:4-8). 그것은 하나의 아들 이스마엘 가지고서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아들들을 주셔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지만 99세의 아브라함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늙은 아내 89세의 사라의 몸을 고쳐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생산할 있도록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17:15-16).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바라보고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믿어보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인정이 역사 가운데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약속의 아들인 이삭 늙은 아브라함과 불임이며 늙은 아내인 사라에게서 탄생하고 있는 것입니다(21:1-7).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를 따르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점을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4:23-25). 다음과 같이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여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그리스도로 보내어 주십니다(3:16-17).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서 진심으로 회개를 하는 자들에게는 사함이라는 용서를 주시고 의롭다고 간주하는 칭의의 은혜까지 주십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칭의의 은혜 바로 사도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믿음의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2)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방법론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가지고 성도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지를 로마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이 초대교회 내에서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율법의 문제점과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3)      첫째, ‘율법의 문제점은 사람들의 힘과 지혜로써는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유대주의자들이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심각한 문제와 갈등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4)      둘째, 성도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가지고 구원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 성령님의 능력을 얻어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비로소 율법의 완성시킬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3:31).  

(4)   넷째,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에서 앞으로 계속 설명을 해야 하는 대목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일대기에서 모두 설명을 하지 아니하고 남겨둔 부문입니다. 간략하게 요약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아브라함은 살아 생전에 자신의 후손들이 여러 민족을 이루고 왕들이 탄생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향년 175세를 살았지만 그러한 미래를 맞이하기에는 턱없이 인생이 짧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난 다음에 언약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그와 같은 언약의 성취를 맞이하게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8:11-12, 16:22).

2)      둘째,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약속한 언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성취를 하십니다. 다만 문제는 언약의 상대방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믿고서 이행하고자 노력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의 잘못 이해하게 되면 마치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소극적인 믿음으로 비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5)   다섯째, 아브라함의 다음 행보를 보게 되면 성도의 삶이 무엇인가를 다음과 같이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그는 이방 땅에서 계속 성실하게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웃인 이방 족속들이 그를 하나님의 방백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23:6).

2)      둘째, 아브라함은 믿음의 가문을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물려주고자 합니다. 가정을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기 위해서는 사라와 같은 믿음의 여인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멀리 하란 땅까지 늙은 종을 보내어 믿음의 여인 리브가를 이삭의 배필로 데려오게 합니다(24:2-61).

3)      셋째, 후처 그두라와의 사이에 6아들이 태어납니다(25:14). 아브라함은 그들이 약관의 나이가 되자 성가를 시키고 재산을 주어 멀리 동쪽 이방 땅으로 보내고 있습니다(25:6). 멀리 이방 땅에서 자리를 잡고 마치 부친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아간 것처럼 6아들들도 하나님신앙을 현지 원주민들에게 전파하라는 뜻으로 보입니다(11:31, 12:1-5). 그렇게 살아간 증거의 하나로서 훗날 모세의 장인이 되고 있는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 이드로의 행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2:16-3:1, 18:1-24).

4)      요컨대, 그와 같이 자신이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만민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창조주의 복을 나누어 주려고 노력한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삶은 결코 믿음의 조상으로서 부끄럽지가 않습니다. 이제는 사도 바울의 지적과 같이 성도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깊이 생각하면서(12:1-5) 이방 땅에서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10:13-1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 봅니다;

첫째로,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예수 우리 주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니라”(4:23-24);

(1)   히브리경전에 밝은 랍비 사울이 바로 이방인 사도인 바울의 옛날 신분입니다. 그는 오늘날의 터어키인 옛날 소아시아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교육도시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 때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학을 했습니다(22:3). 당시 율법학자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베냐민 출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오래 바리새인들의 성경공부를 하고서 백성을 가르칠 있는 율법선생인 랍비가 사울입니다.

(2)   바리새인들은 랍비가 되기 위하여 10 이상 3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는 옛날부터 두루마리에 기록이 되어 있는 히브리경전인 타나크입니다. 하나는 말로써만 전해지고 있는 다른 경전인 미쉬나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바리새인 조상들이 100 이상 타나크와 미쉬나를 비교 연구하여 집대성하여 놓은 주석인 미드라쉬입니다. 모두를 젊은 시절 철저하게 공부한 사도 바울입니다.

(3)   그러므로 바울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유대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율법의 아니라 그리스도가 말씀하고 계시는 믿음의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가장 쉽게 설명해주기 위하여 그가 알고 있는 히브리경전인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이야기를 발췌하여 설명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옛날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믿음의 라는 반석 위에 올려 교회와 복음에 대한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반드시 깊이 묵상해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4:23-24a).

(4)   다음 대목, “ 예수 우리 주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니라”(4:24b) 하는 사도 바울의 글은 성도들에게 다음 두가지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살려 내시는 부활의 능력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성도들이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그와 마찬가지로 옛날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아들인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여호와 이레 은혜로 죽음을 면하고 있습니다(22:10-14).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었기에 부활의 역사가 그리고 여호와 이레의 제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항목을 달리하여 조금 설명을 해봅니다;

3)      아브라함은 영생의 하나님께서 100세의 나이에 자신에게 주신 아들, 그것도 평생 불임이었던 90세의 늙은 아내 사라를 치유하셔서 생산하게 기적의 아들 이삭을 다시 창조주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되살려 내실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아브라함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4:17).

4)      같은 설명이 히브리서 11 믿음의 (, chapter)’에서도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9). 어느덧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아브라함의 믿음의 대한 가설은 초대교회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물론 자신의 부활도 믿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간다면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생의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1)   일찍이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절망스러운 현실과 찬란한 하나님의 언약 사이의 괴리가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도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죄인의 삶이며 죄와 사망이 지배를 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구원을 누리자면 세상과 새로운 인생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기도문 암송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   그러한 처지의 성도들과 답답한 교회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대속의 제물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째서 아직 자신의 죄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지를 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1)      마치 유대교인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율법의 한번 이루어 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면서 율법생활을 표피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모습을 아직도 성도들이 실생활에서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다시 한번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저의 힘과 노력과 지혜로써는 도저히 죄와 사망의 현실을 벗어날 수가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성령님의 역사로 다시 한번 저의 마음 속에 충만하게 넘치고 비참한 현실에서 승리하게 해주십시오”.

2)      그렇게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놀라운 깨달음이 찾아오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으므로 뜻이 반드시 역사 가운데 성취가 된다는 사실을 믿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창조의 능력을 믿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부활시키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천한 하나님의 복음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며 동시에 복음을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능력으로 언제나 함께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4:25 의역). 그와 같이 영생의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성도의 삶을 의롭게 보시고 부활의 내일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성도들은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에 짓눌려서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8:1-6).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의 선교여행을 통하여 이방 족속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복을 전해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2:3). 언약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행이 되도록 아브라함은 충실하게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아간 믿음의 사람입니다.

구체적으로,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복이 자신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도달할 있도록 중보의 기도도 드리고(18:23-32) 목숨을 걸어 놓고서 전쟁에도 참여를 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창세기에서 수가 있습니다(14:14-16). 그와 같이 모험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자들이 바로 오늘날의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헌신하시는 의로운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