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2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18. 13:52

로마서 강해 24(4:13-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24()

 

언약의 세계와 율법의 세계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가?(4:13-16)

 

사도 바울이 히브리정경에서 도출하여 사용하고 있는 용어에 대하여 정확하게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저히 본문의 내용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개념과 용어로 설명을 해주고 있는지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작업에 도움이 있도록 먼저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 창세기에서 모세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 언약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사용하고 있는 율법이라고 하는 용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로마서에서 조작적인 정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새로 규정하고 있는 언약 율법 개념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언약 율법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통적인 특징은 거룩한 것입니다.

2)      그러나 용어는 다른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언약 주신 때와 대상 그리고 율법 주신 때와 대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언약 대하여 먼저 살펴봅니다;

1)      언약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노아나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입니다(6:18, 9:9, 12:1-5, 17:6). 그리고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아들을 아브라함에게 주십니다(17:19, 18: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고 있는 약속의 아들 이삭은 노년의 부부 아브라함과 사라가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얻을 수가 없는 아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창조주의 능력으로만 그들에게 주실 수가 있는 아들입니다.

2)      사실을 아브라함과 사라가 진심으로 믿을 때에 약속의 아들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의 능력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부부처럼 언약 상대방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의 능력을 믿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 부부의 믿음 함께 계승이 되어나가고 있습니다.

3)      또한 언약의 상속자 선택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삭의 언약을 상속하는 자는 쌍둥이 아들이지만 장남인 에서가 아니고 차남인 야곱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이삭은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장남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고자 합니다(27:1-4). 그러나 애처 리브가와 차남 야곱의 반란으로 이삭의 뜻이 어그러지고 맙니다(27:5-30). 대신에 아버지의 집을 떠나게 차남 야곱이 벧엘 들판에서 비박을 하다가 꿈속의 환상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이삭의 뒤를 잇는 언약의 상속자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28:10-22).

(3)   셋째,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장남인 에서를 버리고 차남인 야곱을 언약의 상속자 결정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는 에서와 야곱의 성격과 믿음의 차이에서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에서는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의 하나님신앙을 대물림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그는 장막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들로 뛰어다니면서 사냥하기를 좋아합니다(25:27a). 칼로써 성공을 하고 세상을 지배하기를 원하고 있는 자입니다(27:40).

2)      반면에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들은 하나님의 예언, “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 말씀이 반드시 성취가 것으로 믿고서 장막을 떠나지 아니하고 평생 기도한 사람입니다(25:27b).

3)      야곱은 세상에서 첫째가 아니고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아버지 이삭의 세상적인 족장권을 계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는 영적인 장자권만은 야곱 자신이 가지고 싶습니다(25:31-34).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내려오고 있는 하나님과의 언약 상속할 있는 믿음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의 소원이 놀랍게도 벧엘에서 비박을 하는 동안에 꿈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야곱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과 같기에 그에게 영적인 장자의 축복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28:12-16)

(4)   넷째, ‘율법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것입니다. ‘율법 주신 목적은 선민의 나라를 세상나라와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주권자로 섬기는 신정국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나라가 세상적인 법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사용하여 운영이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선민들이 진심으로 율법을 생활화하게 된다면 그들의 사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진심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자신처럼 사랑할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입니다(12:30-31).

(5)   다섯째,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역사 가운데 율법의 실천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일종의 종교법인 율법을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국가나 사회가 권력적인 작용으로 강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강제력으로는 율법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실천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강제가 되고 있는 규범인 율법은 이미 하나님 사랑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율법의 준행이 아닙니다. 그저 백성들이 이웃이 보는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시늉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자면 그것은 거짓 신앙입니다.

(6)   여섯째,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율법사회를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서 살아간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정처럼 만들 수가 있을까요? 방법은 옛날 아브라함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없는 언약의 성취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능력으로 하실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처럼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외식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다시 서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대속의 은혜도 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아브라함이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 되리라고 하신 언약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4:13);

(1)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언약과 율법이라는 용어의 의미에서 있듯이 기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첫째, 창세기에서는 믿음의 족장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구성이 되는 일종의 신정국가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사회의 법률체계로 율법을 주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시내 산에서 선민의 사회를 제사장나라로 운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의 형태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19:4-6).

2)      둘째, 이에 따라 창세기의 언약은 믿음의 조상들과 창조주 하나님 사이의 믿음과 신뢰가 이행의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출애굽기에서의 선민들의 신앙생활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선민사회와 신정국가가 율법의 준수를 강제하며 감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창조주의 능력을 믿고서 신앙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에서 이미 멀어져 버린 율법사회입니다. 백성들이 이웃의 눈을 의식하고 국가의 권력을 두려워하면서 형식적인 율법생활을 영위하기에 급급한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현실적인 차이 때문에 사도 바울의 , “아브라함이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 되리라고 하신 언약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4:13) 구절은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됩니다;  

1)      첫째, 후손에게 대대로 전해줄 있는 하나님신앙의 핵심은 하나님 앞에선 개인의 믿음이지 사회적으로 강제가 되고 있는 율법생활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영생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아브라함의 믿음생활을 본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성도의 삶입니다(21:33, 22:10-14, 11:17-19).

둘째로,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 상속자이면 믿음 헛것이 되고 약속 파기되었느니라”(4:14); 여기서 사도 바울이 율법에 속한 자들’(4:14a)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 영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율법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율법을 지키는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겉치레에 불과한 신앙생활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하나님 경외자가 없는 사회를 떠나시게 됩니다(1:21-24). 언약을 주신 당사자 하나님께서 사회를 떠나시므로 자연히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도 승계가 되지를 못합니다(4:14c). 결국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는 율법사회의 신앙생활이란 구원을 얻을 없는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4:14b).

셋째로,율법 진노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에는 범법 없느니라”(4:15); 사도 바울이 참으로 무서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만 율법생활을 하고 있는 선민들의 사회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 이제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범법자들만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4:15의역). 조금 풀이를 해봅니다;

(1)   선민들이 선민사회에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율법을 지키고 있는지 않는지 서로 감시를 하고 비판을 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므로 서로 이웃의 눈치를 살피고 종교권력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뜻은 이방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장나라가 되며 하나님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라고 하십니다(19:6).

(3)   그런데 선민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저 겉모습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지키고 있는 척하고 있으며 선민의 상징이라고 할례와 성전문화만을 자랑하고 있을 뿐입니다.

(4)   그와 같은 선민들의 율법사회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을 뿐입니다.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형태로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기에 사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범법자들의 소굴이 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넷째로,그러므로 상속자 되는 그것이 은혜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약속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6);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상속자 되는 그것이 은혜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4:16a);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속자는 누가 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의 언약을 서장자인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의 아들 이삭이 승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언약을 장남인 에서가 아니라 차남 야곱이 계승하게 됩니다. 그러한 상속자의 선택의 특징은 모두(冒頭, 글의 첫머리 또는 서언)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누가 믿음의 사람인지를 보고서 선택을 하십니다. 셋째, 철저한 가부장 족장사회에서 타고난 운명적인 순서를 바꾸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서 영적인 장자를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신다는 그것이 사실은 시공간을 뛰어넘고 있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입니다.

2)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아들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신앙이 없는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이 언약의 승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집안의 출신 사라의 몸에서 태어나는 이삭이 약속의 아들이 되고 아브라함 언약의 상속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인 경우에는 장남인 에서가 아니고 차남인 야곱입니다.

3)      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사냥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는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면서 세상의 지배자가 되려고 합니다. 반면에, 야곱은 장남으로 태어나지 못하였기에 비록 아버지 이삭의 뒤를 잇는 세상의 족장이 되지 못하더라도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을 잇는 영적인 장자만은 반드시 되고 싶어 합니다.

4)      야곱은 77 동안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장막에서 기도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태어날 주신 언약의 말씀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된다고 하는 약속 하나를 붙들고서 끊임없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야곱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타고난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영적인 장자이며 하나님 언약의 상대방이 있게 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가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32:28-29, 35:10-13).

(2)   이는 약속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4:16b); 만약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이 계승이 되고 후손들에게 상속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적인 의미나 생명력을 지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은 인간의 상식적인 안목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믿고 있는 인물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승계를 시켜 나왔기에 지금도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있는 것입니다.

(3)   율법에 속한 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6c); 그러므로 오늘날 아브라함의 언약을 승계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금방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인간의 힘과 지혜로 율법을 지키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유대교인들이 아닙니다. 둘째, 사람의 이성적인 탐구와 영적인 깨달음으로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 신적인 권위를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헬라의 철학자들이 아닙니다. 셋째, 전통적으로 실용성이 뛰어난 정치력과 군사력으로 대제국을 형성하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는 로마인들이 아닙니다.

2)      오로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과 구원의 약속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마디로, 사람의 능력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과 창조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사람의 힘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겠다고 하는 선민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상속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바울은 아브라함처럼 창조주를 믿고 언약의 성취를 바라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상속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 출신이거나 이방인 출신이거나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하는데 있어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아브라함이 창조주의 능력을 믿는 그의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얻은 것은 할례제도가 있기 전입니다.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전하기 훨씬 이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 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창조주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을 얻어 의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민 출신이거나 이방인 출신이거나 상관없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바울의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맛보는 대속의 은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맛보는 영적인 모두를 이미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힘차게 복음사역을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