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2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17. 03:58

로마서 강해 22(4: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22(주일)

 

하나님을 믿으매 의인으로 간주가 아브라함에게서 배울 있는 것들(4:1-5)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설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 가운데 드러나고 있는 주요한 명제와 논증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가 못하고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3:9).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피조물인 자신들의 사상과 종교와 철학적인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방인들은 하나같이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고 있으면서도 여호와를 창조주로 섬기지 아니하고 그저 선민들의 소원이나 성취시켜주는 한갓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유대인들도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2)   둘째, 선민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율법에 비추어보면 사람들의 죄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율법을 모두 지키려고 시도해보지만 그것이 인간의 힘과 지혜로써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온전히 지킬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정직하게 고백해야만 합니다.

2)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율법을 모두 지키지를 못하여 분명히 의롭지 못하고 구원을 얻을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것입니다.

3)      사회적으로 사람들 보기에 율법을 전부 지키고 있는 것으로 비치게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선민사회에서는 서로 의롭다고 인정을 해줍니다(1:32). 그리고 전통적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러한 겉모양 할례 행함, 안식일 준수, 십일조 생활, 절기제사 속죄제사에의 참여 등만 보고서 율법을 준행하고 있는 의로운 선민이라고 인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4)      그렇게 마디로, 눈감고 아웅 시늉을 하고 있으므로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가 못한 것입니다. 결코 외식적인 신앙생활로써는 하나님의 의를 얻지를 못하고 구원에 이르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20).

(3)   셋째,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고 의인으로 만들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있도록 하는 방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1)      율법 아래에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 온전한 신앙생활을 못하여 죄인이 되고 맙니다(3:19). 이제 어떻게 하면 선민을 구원할 수가 있을까요? 유대인들에게서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대안을 제시하십니다.

2)      대안은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3:22-23). 왜냐하면, 선민들은 그들이 가진 율법에 비추어보면 죄인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있도록 창조주가 마련해준 선험적인 양심의 소리를 들어보면 역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2:15).

3)      이에 따라 율법 위에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로 이미 히브리정경에서 예언한 그대로 성육신을 통하여 보내어 주십니다(1:2). 그리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4)      따라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제사를 의지하는 자들은 이제 선민이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고 여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3:24). , 영생의 구원에 참여할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5)      이제 죄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28:18-20, 24:44-49, 1:8). 그것이 모두가 함께 구원을 얻어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있는 방법입니다.

(4)   넷째, 하나님의 방법을 과연 믿을 수가 있을까요? 실제로 사람이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전제를 하면서 지금까지 복음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바울의 인식 그대로 사람들은 피조물이며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사람의 힘과 지혜로써는 영생을 얻을 수가 없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의인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셔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칭의의 은혜를 얻은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으로 살아갈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능력을 공급해 주셔야만 합니다. 방법이 성령님의 강림이며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현실화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복음의 내용으로 앞으로 사도 바울이 체계적으로 로마의 성도들에게 설명을 하게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본문에서 선민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사례를 가지고 무엇이 믿음인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4:1-5).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은 사람이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2:1-5, 15:3-7).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을 바라보고서 그것을 능히 이루어 주실만한 능력의 소유자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15:1, 17:1) 남은 인생을 하나님 경외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22:12). 그러한 아브라함을 사도 바울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16).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4:1-2);

(1)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 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데라를 떠나 애초의 선교의 목적지 가나안 땅으로(11:31) 남하를 하라. 그리하면 내가 4가지의 복을 것이다”(12:1-3). 4가지의 복이 구체적으로, 자손의 번성, 아브라함의 이름의 창대함, 강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는 곳마다 세상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등입니다(12:2-3). 말씀 따라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의 집을 떠나서 남하를 하게 됩니다(12:4-5).

(2)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버지 데라의 집을 떠남으로써 무엇을 얻게 것일까요? 먼저 아브라함이 남행을 함에 따라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아버지 데라는 엄청난 부자이며 족장입니다(11:26, 31). 그리고 아브라함은 장남입니다. 따라서 당시 145세로 고령인 부친 데라가 죽게 되면 많은 재산은 모두 아브라함의 차지가 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재산의 상속권을 포기하고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남하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12:1-5).

(3)   그렇다면, 아버지 데라의 막대한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포기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남하를 행위가 그의 의로움과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4:1-2). 왜냐하면, 그가 포기한 재산에 대해서는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부 보상을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잠시 애굽의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사건을 통하여 애굽의 황제인 바로로부터 재물을 얻도록 하십니다(12:16, 20). 그래서 아브라함은 부자가 되고(13:2) 그의 재산을 나누어 받은 장조카 역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13:6).

둘째로,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되었느니라”(4:3);

(1)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간단하게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금 따져보면 상식적으로 하나도 믿을 수가 없는 약속들이기 때문입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는 당시 (, 없음)자식인 아브라함 부부에게 자녀를 주실 것이며 자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75세이고 아내 사라가 65세입니다(12:4, 17:17). 노인부부인 그들이 어떻게 아들을 얻고 자손이 번성하게 된다는 것입니까?

2)      둘째,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생소한 이방 땅에 나그네로 들어가고 있는 그가 어떻게 그곳에서 기반을 얻고 세력을 떨치게 된다는 것일까요? 마치 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3)      셋째,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러한 하나님의 엄청난 보호하심이 실제로 임하게 될까요? 그와 같은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4)      넷째, 그가 가는 곳마다 이방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 넘치게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복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의 머리로써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를 않습니다.

(2)   도저히 믿지를 못하고 있는 아브라함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장막 바깥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 보라고 하십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5:5).  자리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15:1). 창조주의 전지전능하심과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아브라함이 믿은 것입니다(17:1). 사람이 없는 그것을 하실 있는 창조주이십니다. 자신의 생명도 구원도 모두 여호와의 소관입니다(30:20, 10:28).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렇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종인 자신은 창조주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지는 믿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3)   그렇게 아브라함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의인이 되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모세가 이미 창세기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히브리정경에 박식한 랍비 출신 사도 바울이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되었느니라”(4:3). 참고로 여기서 성경 히브리정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일하는 에게는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4-5);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일하는 에게는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4:4); 일을 시키면 삯을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남의 일을 해주고 있는 일꾼은 일이 끝나면 정해진 보수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해진 품삯을 제때 지급하지 아니하게 되면 일을 시킨 자는 보수를 지불해 달라고 하는 소송을 당하게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일꾼이 일을 마치지 못하였거나 잘못 행한 경우에는 그러한 임금청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패소를 하게 됩니다.

(2)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5); 그렇다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주인이나 일을 시킨 자가 일을 잘못 하였거나 충분한 시간 일을 하지 아니한 일꾼에게 하루치의 임금을 모두 지불해주었다고 하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성격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 중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1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뜻이니라. 것을 가지고 뜻대로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 되리라”(20:13-16).

2)      예수님의 품꾼의 비유’(20:1-16)에서 엿볼 있는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돌보고 살리시는 선한 뜻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일자리가 없어서 굶게 되는 자를 데려다가 조금만 일을 시키고 하루치의 임금을 전부 지불하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둘째, 그와 같이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면 칭의와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5). 생각해보면,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과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있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회개하는 죄인들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셨기 때문에 성도들이 의인으로 간주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셨기에 도우심을 얻어서 성도들이 지상명령을 실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들이 것이라고는 마치 아브라함처럼 창조주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은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구절을 재삼 음미하게 됩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방패, 너의 지극히 상급이니라”(15:1), “아브람이 99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마치 환상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성육신하셔서 믿는 자를 보호하시고 지극히 상급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주님으로 함께 하시며 사함이라고 하는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결과 성도들이 무사히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영생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확신과 은혜가 아무쪼록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