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2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16. 19:28

로마서 강해 21(3:26-3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21()

 

율법에 사람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를 의지하는 믿음이 더하여지면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가?(3:26-31)

 

로마서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한 그의 깨달음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다음과 같은 점을 이해하고서 본문의 구절을 음미해야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1)   첫째,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은 선민 유대인이나 지성적인 헬라인이나 실용성을 따지며 거대한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인이나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창조주의 존재를 알면서도 무시하고서 자신들의 힘과 지혜로 세상을 경영하고 진리를 깨우치며 영생의 구원을 얻기를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도움이 없이는 인간에 의한 이상적인 세계나 영원한 세계는 사상누각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애초에 창조주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2)   둘째,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역사에 개입을 하십니다. 개입의 진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아시고 계시며 치유의 방법을 유일하게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를 버리고 제멋대로 세상을 경영하며 인생을 살고 있는 죄인들을 심판하여 멸망을 시키시는 대신에 회개시키고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의 청지기로 올바르게 사용하고자 하십니다(3:12-17).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위격을 지니고 있는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시기로 결정하십니다(6:38-40, 14:16-20, 24:49, 1:8, 4:6, 고후13:13).

(3)   셋째,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히브리정경에 예언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열고 예언을 읽게 되면 그것은 창조주가 모든 피조물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의로운 종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을 시킨다는 사실을 수가 있습니다(52:13-53:12, 24:44-49).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가 오게 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9:1-7, 11:1-12, 65:17-20, 2:28-32).

(4)   넷째, 하나님의 복음이 그들의 정경에 들어 있지만 선민 유대인들을 여호와의 의로운 종인 메시아에 대하여 그렇게 해석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마디로, 메시아란 그들 선민만을 구원하고 옛날 다윗의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사자로만 이해를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복음과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이기적이고도 현실적인 축복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창조주가 아니라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민들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공의의 정신을 지니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믿고 실천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소원만을 들어주는 선민들의 호국신이며 위대한 우상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믿고서 율법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다섯째, 선민 유대인들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설명한 대로, 하나님을 창조주가 아니라 그들이 아첨을 하여 현세적인 이익을 얻을 있는 우상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율법생활이란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있는 외식적인 모습이며 그저 그럴듯하게 성전제사를 드리고 육체적인 할례를 선민의 표징이라고 자랑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지만 그들의 배척을 받고 맙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한 것입니다.

(6)   여섯째, 사도 바울은 선민 유대인이나 지성인 헬라인이나 세상의 지배자 로마인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세상구원과 만민구원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하나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써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바로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메시아로 세상에 보내셔서 먼저 히브리정경에 기록된 하나님말씀의 본뜻을 만민구원의 천국복음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다음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결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현하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십니다. 사실을 믿고 회개하는 성도들은 이제부터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훗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이 어떻게 본문에 반영이 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때 자기의 의로우심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으로니라”(3:26-27);

(1)   여기서 이때’(3:26a) 두가지 사실이 어울러진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노력해보니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때입니다. 그래서 양심적인 유대인들이 율법에 비추어 자신은 죄인이므로 하나님께 사함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때입니다. 하나는 죄인을 용서해주고 의인의 삶을 살아갈 있도록 마지막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시킨 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세상에서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2)   구체적으로, 두가지 역사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첫째, 무덤속에서 예수님이 부활을 하시게 됩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와 제자들에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능력의 성령님을 보내어 주십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주장과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천국복음과 대속의 삶이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기 때문에 의로운 여호와의 종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평가하자면 그것은 피조물인 사람들의 잘못과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책임을 지신 것입니다. 창조주가 세상만물과 만민을 잘못 만든 책임을 지고서 그들을 온전히 고치고 생명을 살리고자 스스로 희생하신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게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자기의 의로우심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3:26b)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는 것은 성도들에게 의로운 삶이 가능하도록 해주고자 하는 조치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3:26c) 말하고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문화하고 있는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의인이 되고자 무척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써는 도저히 완전히 지킬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선택할 있는 길은 두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는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써는 온전히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서 하나님께 정직하게 나아가서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지킴으로써 사회적으로 의로운 자라고 하는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3)      역사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의 선택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눈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권위와 선민사회의 전통을 믿은 것이 유대인들의 불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얻지를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전자와 같이 정직하게 자신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한 자들은 놀라운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칭의를 얻게 되고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할 있는 능력을 얻게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이 이어서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으로니라”(3:27)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세가지 경우를 모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힘과 지혜로써는 그렇게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선민들은 이상 자신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의인이라고 자랑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으로냐?”(3:27a). 그것은 위선이며 눈속임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선택은 사회적 종교적인 인정입니다. 자신들의 율법생활이 설혹 하나님 보시기에 외식이며 눈속임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 보기에 온전해 보이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절기 때마다 성전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일년에 하루 속죄일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민의 표시인 할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보기에 하자가 없으면 유대인 사회에서 자신들은 의로운 자로 인정이 됩니다.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선민은 구원의 대상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형식적이지만 자신들의 율법행위가 유대교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므로 너무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지 아니하면(23) 사함을 받을 수가 없다고 사도 바울이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행위로냐? 아니라”(3:27b).

3)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은혜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사함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으로니라”(3:27c). 죄인이 의인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능력으로써는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고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서 정직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둘째로,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우리가 인정하노라(3:28),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기하느냐? 그럴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 첫째, 사람의 힘과 지혜로써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둘째, 사람들 보기에만 율법을 지키는 의인일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서 셋째,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회개하는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시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어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유는 마디로, 사람이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성도가 진리로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1)   그렇게 창조주의 능력을 믿는 그것이 의로움을 얻고 구원을 얻을 있는 방법입니다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2)   그리고 믿음으로 성령님의 도움까지 받아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기하느냐? 그럴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

셋째로,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니느라. 할례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분이시니라”(3:29-30); 선민 유대인들의 역사를 통하여 한가지 사실이 진리로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자신들의 율법사회에서 그저 눈가림용으로 사람들이 보는 데서만 율법을 지키는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이 의인인 스스로 속이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성전제사를 통하여 매년 속죄의 은혜를 입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하나님 앞에 드러낼 있는 수단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에 입각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니느라”(3:29);

1)      하나님을 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죄인들이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우며 구원을 얻은 자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헬라인이나 로마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2)      이제 선민과 이방인을 구태여 구별할 실익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인데 그것을 구별하여 무엇을 하겠습니까? 따라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니느라”(3:29).

(2)   할례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분이시니라”(3:30);

1)      그러므로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얻으며 구원을 얻을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정경에서 이미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의로운 종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방법입니다. 사람이 없는 속죄를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하셨으므로 그것을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방법 앞에서는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만민을 그렇게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할례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분이시니라”(3:30).

2)      그리하면 예수님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임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의인으로 되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살려서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은혜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실현이 됩니다. 애초 하나님의 율법도 사명을 감당할 있도록 선민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유대인들의 잘못은 지독한 이기적인 선민사상에 빠져서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혀 전해주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선민들은 그저 메시아가 오시면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고 선민들의 영광을 온세상에 다시 떨치게 해주는 줄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민구원이나 영생구원은 이상 선민들의 소원이 아닙니다. 요컨대, 유대인들의 하나님신앙은 여전히 우상문화에 빠져서 이기적이며 현세주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한편, 최고의 지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헬라인들도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디로, 자력구원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과 육을 완전한 별개로 사고하는 극단적인 영지주의 이분법에 젖어서 육적인 세상에서는 제멋대로 욕심껏 살아도 어차피 육체를 벗고 영적인 구원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므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은 심판과 멸망의 대상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심판을 하나님께서는 참으십니다. 이유는 창조주로서의 책임을 다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을 잘못 만든 책임을 다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고쳐서 사용하시는 방법을 선택하십니다. 방법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과 성도들에게 내주 역사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의 책임을 다하여 스스로 희생하심으로써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결정 앞에 우리들은 승복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인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하나님나라가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아무쪼록 사랑의 빚을 갚아 가시는 성도님들의 의로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