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3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24. 08:02

로마서 강해 37(6:20-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6()

 

죄의 열매와 의의 열매에 대하여(6:20-23);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죄의 종으로 살게 되면 사망이라고 하는 열매를 얻게 되고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얻게 영생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사망이라고 하는 용어와 영생이라고 하는 용어를 대조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사망 의미가 단순한 육체적인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생 반대의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는 영벌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 사망 대한 개념의 정리를 먼저 하고자 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흔히 사람들이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잘못 생각하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용어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먼저 개념정리를 하지 아니한 소모성의 논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용어와 개념의 정리가 잘못 되어 있으면 서로가 마치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서 서로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성경에서 어떠한 용어를 어떠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서 본문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죄의 종으로 또는 의의 종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간 결과 서로 다른 열매를 얻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가지 열매를 사망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사망이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한 육체적인 죽음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다음에 부활하여 다시 맞이하게 되는 심판의 부활’(5:29)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교훈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벌써 그러한 개념을 머리 속에 넣고 있기에 본문에서 사망이라고 하는 열매를 영생이라고 하는 열매와 대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이 죽는다고 하여 모든 것이 끝나고 있지를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반드시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마지막 심판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마태복음 10장과 25, 그리고 요한복음 5장과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알기 쉽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심판의 부활’(5:29) 대해서는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소멸하는 ”(10:28)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점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0장에서는 정확하게,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20:15)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깊이 살펴보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참고한 성경의 기록들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마태복음 10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2)   요한복음 5장에 적혀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속에 있게 하셨고,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 나오리라”(5:24-29).

(3)   마태복음 25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버지께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25:34), “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25:41),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45-46).

(4)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 내가 크고 보좌와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자나 작은 자나 보좌 앞에 서있는데 책들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사망과 음부도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20:11-1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가 죄의 되었을 때에는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마지막 사망임이라”(6:20-21);

(1)   세상을 살다가 보면, 자신의 영혼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떠한 구속이라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그러한 사고방식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나 교회의 일꾼이라고 불리는 것도 구속의 하나라고 생각하고서 그것도 벗어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의 자유만을 추구하다가 보면 마침내 의에 대하여서도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단계에 이르게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사람이 죄의 종이 되어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말이 하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들에게 부과하고 있는 의무가 있는데 그것조차 사람에 대한 속박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을 영혼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청지기로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들이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지기의 책임마저 벗어버리는 것을 마치 완전한 영혼의 자유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것을 사도 바울이 냉소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의 되었을 때에는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6:20). 다음에 정말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6:21a).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받아 로마시의 성도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옛날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믿고서 자신의 죄인의 삶을 청산하지 아니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과는 상관없이 세상적으로 마음껏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는데 시절에 진실로 어떤 열매를 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결과 두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1)      첫째,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과 동안의 자신의 제멋대로의 인생살이를 비교해보니 심히 부끄럽기 그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일을 부끄러워하나니”(6:21b).

2)      둘째,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기득권을 누리며 세상적인 안일함과 약육강식의 살기다툼을 계속하게 되면 영혼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일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여 한없이 자유스러운지 몰라도 일의 결국은 뻔합니다; “이는 마지막 사망임이라”(6:21c).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 것조차 싫어하여 그냥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갔기에 완전한 사망을 맞이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참고로, 여기서의 사망이란 육신적인 죽음으로 하나님의 의무를 수행하지 아니한 책임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서론에서 설명한 그대로 죽은 자를 무덤에서 다시 깨워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결과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20:15).

둘째로,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맺었으니 마지막은 영생이라”(6:22); 하나님께서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신 사실을 깨닫고 회개를 하게 되면 성도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은혜 가운데 차례로 들어가게 된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죄로부터 해방을 얻게 됩니다(6:22a).

(2)   둘째, 하나님의 종이 되어 복음의 전파자로 살아가게 됩니다(6:22b).

(3)   셋째,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화를 이루는 것입니다(6:22c).

(4)   넷째,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6:22d).

셋째로,죄의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 그리스도 예수 우리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한번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죄의 사망이요”(6:23a);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제멋대로 세상적인 욕심을 쫓아서 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의 구속을 받지 아니하여 영혼이 당장은 자유스러운지 몰라도 인생의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운데 살아간 죄인들이 죄의 종으로 받게 되는 마땅한 품삯과 같은 것입니다. 마귀와 악한 영들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영혼을 인생과 함께 실컷 하수인으로 부려먹게 되면 둘은 하나님 보시기에 주범과 종범의 관계가 되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20:14-15).

(2)   둘째, “하나님의 은사 그리스도 예수 우리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b);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서 성도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남은 인생을 거듭난 자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운 종으로 만민구원을 위하여 살아가야만 한다는 의무는 힘이 드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제멋대로 살고 싶어하는 육신적인 욕구를 억제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시련을 극복하고서 하나님의 일에 매진한 자에 대해서는 상급이 하나님의 은사로서 주어지게 됩니다. 상급은 하나님의 의로운 종으로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얻으신 그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있는 놀라운 선물이 바로 주님께서 이미 하나님나라에서 누리시고 계시는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6:23b).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명부를 가지고 계십니다. 자신의 제자로서 남은 인생을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한 성도들에 대해서는 명부에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리하면 부활한 다음에 심판을 받을 때에 명부에 이름이 있으므로 성도는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반대로 명부에 이름이 없는 자는 부활하여 영생의 심판이 아니라 영벌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영벌의 심판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마귀와 악한 영들과 함께 처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못 속에서 이제는 다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음부에서 죽음의 잠을 수도 없습니다. 요컨대, 두번째의 사망이라고 불리고 있는 불못 심판이 가장 두려운 처벌입니다.

  마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부인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될 있도록 의의 열매를 맺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생살이 가운데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생명책에 확실하게 이름을 올리실 있도록 주님 보시기에 가치가 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