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5. 9. 18:45

 

 

소설 아룡전1(작성자; 손진길)

 

    1.    김재룡과 도학스님과의 기이한 인연

 

파주골에 묻혀서 살고 있는 김문종에게도 수도인 개경의 소식이 들려온다. 고려 제22대 국왕인 강종이 즉위한지 3년만에 승하하셨다는 것이다. 당시 서기로 따져서 1213년에 새로운 국왕이 즉위하였는데 그가 고려국의 제23대왕인 고종이다. 고종은 강종의 유일한 아들이다.

김문종은 동네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마을훈장이다. 그러므로 꽤 유식한 어른이다. 그는 본래 개경에 살다가 파주골에 들어와서 산지 벌써 17년이나 된다. 아들 하나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파주골로 낙향했는데 지금은 아들만 둘이다.

그들 부부는 낙향한지 4년이 지나자 1200년에 둘째아들인 재룡을 얻었다. 김문종은 아들 둘에게 철이 들자 학문을 가르쳤다. 그런데 장남인 김재명보다는 차남인 김재룡이 더 명석하다. 그것을 보고서 마을훈장인 김문종이 가끔 자신의 집을 방문하고 있는 벗 도학스님에게 하루는 일부러 부탁한다.

도학에게 부탁하는 김문종의 말이 이상하게도 은밀하다; “여보게, 도학. 자네 내 둘째아들 재룡이를 좀 맡아서 무예를 가르쳐주면 안되겠는가?”. 그 말을 듣자 도학이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말한다; “문종 자네의 학문과 무예는 상당한 경지인데 어째서 둘째아들을 나에게 부탁하고자 하는가? 자네가 가르치면 될 터인데?... “.

그 말을 들은 문종이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내가 나름대로 두 아들의 관상을 보았어. 첫째는 평범하지만 별로 굴곡이 없어. 그러니 내게서 학문과 무예를 배우고 가문을 지켜 나가면 되지. 그런데 둘째가 문제야. 재기가 넘치고 총명이 지나쳐그것 때문에 재난을 많이 당할 운세야. 그러니 도학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자네의 내공과 의술로 나중에 그 처방까지 해주기를 바라네… “.

두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은밀하기도 하지만 보통사람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런데 도학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종, 자네는 월성 출신 가운데 뛰어난 인재가 아닌가? 그래서 중방에서 동향인 상장군 이의민10년이나 보좌하지 않았는가? 그런 인물이 나 같은 벗에게 차남을 맡기고자 하다니의외일세… “.

그 말을 듣자 문종이 간곡하게 말한다; “도학, 자네는 아닌 척 내 앞에서 지금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나는 잘 알고 있네. 자네의 정체는 본래 개경에서 무도관을 운영하던 청객이 아닌가? 게다가 온성에 수도를 두고 있던 대웅국에서 장군을 지낸 인물이야… “.

그 말을 들은 도학이 깜짝 놀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종, 자네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았나?... 내가 그토록 조심하였는데이거 큰일이구만허허… “.  그러자 문종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은 사라진 나라이지만 자네에게는 무신의 경지에 도달한 무공이 아직 남아 있어. 자네는 한때 만주를 지배한 종진국의 국왕 서우진의 제자가 아닌가?... “.

그 말을 듣자 도학이 말한다; “내가 졌네. 자네의 학문과 경륜이 명재상 문극겸과 한때 개경에서 쌍벽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그만 내가 깜빡한 것이야. 그러니 나의 정체를 확실하게 숨겨주는 조건으로 내가 자네의 요구를 하나만 들어 주지… ”.

그 말을 들은 문종이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자네가 깨달은 궁극의 무공과 인체에 관한 신비로 부디 내 아들을 치유해주게. 자네의 제자로 삼아서 말이야나는 그것이면 되네혹시 내 아들에게 학문이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내가 집에서 은밀하게 가르치면 되는 것이지… “.

도학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나는 이곳 고려에서 이제는 자네를 빼고 나면 벗이 없어젊었을 때에는 무예의 극치를 깨닫게 되면 좋은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십을 넘기고 나니 그것이 아니야. 점점 외로워지고 있어그것은 아마도 그 옛날 개경에서 이의민의 문사로 오래 일한 자네도 마찬가지이겠지… “.

그 말을 듣자 김문종이 벗 도학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보게 도학, 자네나 나나 최충헌의 무신정권이 지배하고 있는 고려국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어. 그저 후학이나 잘 키워서 후사를 도모할 수밖에그러니 내 둘째아들 재룡이를 한번 제자로 잘 키워보게. 분명 보람이 있을 것이야… “.

당시 김재룡은 13살이다. 부친이 마을훈장이기에 집에서 학문을 배우고 있다. 형과 함께 배우는데 그 실력이 비슷하다. 하지만 그는 형이 자신보다 4살이나 많기에 그 앞에서 절대로 똑똑한 척을 하지 않는다.

그저 공부시간에 형과 동네 친구들이 질문하는 것을 잘 듣고 있다. 결코 사소한 질의를 하는 법이 없다. 모든 질문이 끝나고 있으면 그때 정말 중요한 것 가운데 놓쳐버리고 있는 점을 딱 하나만 집어서 질문하고 있다.

그러한 둘째아들의 습관을 처음에는 김문종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저 녀석은 처음부터 질문하지를 아니하고 있는가? 형과 친구들이 질문을 모두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야 정작 중요한 핵심을 꼭 집어서 질문한다. 그것참 신기한 녀석이구나!… “.

그런데 나중에야 김문종이 차남이 어째서 그렇게 처신하고 있는지를 우연히 알게 된다. 5살 때부터 9살인 형과 함께 학문을 배우도록 조치했는데 이상하게도 둘째가 자신이 가르쳐준 내용을 모두 암기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루는 꼬마가 혼자서 중얼중얼하는 것을 슬쩍 들었는데 그 내용이 실로 대단하다. 훈장인 자신이 가르쳐준 것만 기억하여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그 깨달은 이치를 가지고 혼자서 응용까지 속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시간에도 조용히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차남의 행동을 은근슬쩍 김문종이 곁눈질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마 재룡이 겉으로는 자신이 다 알고 있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래서 김문종이 생각한다; “총명과 재기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처신 또한 보통이 아니다. 이것이 좋은 일일까? 아니면 지금의 무신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재난을 당할 운세일까?... “.

그래서 김문종이 은밀하게 내자인 문가연과 상의한다. 일찍이 집안의 숙부인 문극겸에게서 학문을 배운 문가연이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서 깜짝 놀란다. 그래서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제가 한번 둘째의 행태를 지켜 보겠어요. 사람이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티가 날 거예요. 그것을 보면 나중을 알 수가 있지요… “.

남편 김문종보다 어떤 면에서 더 지혜롭고 뛰어난 자가 그의 아내인 문가연이다. 그녀가 남자였으면 개경에서 진작에 숙부처럼 재상을 지냈을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녀 역시 평소에는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여러 해 차남의 행동을 은밀하게 살핀 후에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남편 문종에게 가연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제 나름대로는 참으로 조심하고 신중한 재룡입니다. 하지만 어쩌다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것까지 숨겨야 안전할 터인데그것이 인력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

문종이 아내에게 묻는다; “만약, 재룡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남이 눈치를 채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항상 신변이 위험하게 되고 마는 것일까요?... “. 아내 가연이 대답한다; “지금 고려는 무신정권의 시대입니다. 더구나 최충헌이 보통사람이 아니지요.. “.

문가연이 잠시 숨을 쉬고서 천천히 말한다; “최충헌이 국정운영을 위하여 천하의 재사를 구하고 문신을 상당히 대우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무신정권의 손발이 되는 정도를 원하고 있는 것이예요. 그러한 시대에 재룡이처럼 자신들을 능가하는 위인이 나타나게 되면 십중팔구 죽여버리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니 단명하게 되지요… “.

그 말을 듣자 문종이 말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내가 스님 도학에게 재룡이를 맡겨볼까 합니다. 도학은 내가 아는 한, 고려에서 가장 무예가 뛰어난 인물이지요. 그는 내공과 인체의 신비에 대한 공부가 대단합니다… “.

그 말을 들은 문가연이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묻는다; “그러한 인물이 어떻게 세간에 알려지지 아니했을까요?... “. 고개를 끄떡이면서 문종이 대답한다; “도학은 고려를 섬긴 것이 아니라 북쪽에 있던 대웅국을 섬겼지요. 그런데 그 나라가 망하자 자신의 절기를 숨기고서 이곳 파주골에서 스님이 되어 숨어서 살아가고 있지요… “.

문가연이 말한다; “용하게도 당신이 그의 정체를 파악했군요. 그렇다면 저도 안심입니다. 그에게 재룡이를 맡기세요. 분명히 어떤 처방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의 절기를 물려받게 하면 재룡이가 자신을 지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

그렇게 문종과 가연 부부가 잠자리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하고 있는데 문밖에서는 1213년 가을밤에 풀벌레소리가 나직하게 들리고 있다. 그리고 창호지를 뚫고서 은은한 달빛이 신비롭게 흘러 들어오고 있다. 참으로 평화스럽고 고즈넉한 파주골의 가을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