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고냐(손진길 작성)

소설 여고냐32(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5. 7. 16:50


소설 여고냐32(작성자; 손진길)

 

주전 538년 봄에 고레스 황제는 페르시아제국의 창건을 선포한 후에 대신들과 제장들을 위하여 큰 연회를 베푼다. 그 자리에서 그는 논공행상을 실시한다. 고레스 황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일가 조카인 다리우스를 자신의 보좌 앞으로 부른다.

그리고 황제가 친히 말하기를 시작한다; “다리우스는 우리 페르시아제국의 황족으로서 제국의 건설에 큰 공을 세웠다. 따라서 짐은 그를 바벨론 지역을 다스리는 왕으로 봉한다. 그리고 짐의 공주를 그의 아내로 주어 제국의 부마로 삼는다”.

모든 대신들과 장군들이 다리우스에게 축하인사를 한다. 그 다음에 고레스 황제가 여고냐를 앞으로 부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고냐는 바벨론성과 데마성을 점령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따라서 짐은 여고냐에게 그발 강가 일대의 넓은 땅을 봉토로 주고 왕으로 대접한다. 이제부터 그를 여고냐왕이라고 부를 것이다”.

모든 논공행상이 끝난 다음에 고레스 황제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칙서를 내린다; “우리 페르시아제국은 바사인들이 세운 바사왕조가 그 시작이다 따라서 바사인들에게는 지배민족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기타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대접할 것이다. 그리고… “.

그 다음에 구체적인 내용이 선포된다; “일찍이 앗수르와 신바벨론에 의하여 제국 내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특히 제국의 건설에 공이 큰 유대인들에게 대해서는 고토로 돌아갈 수 있으며 원하는 경우 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건립할 수 있도록 우리 페르시아황실에서 도울 것이다”(1:1-4).

고레스 황제는 자신이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여 준 유대인들의 수호신 여호와의 은혜를 잘 알고 있다. 150년전 유다왕국의 선지자 이사야가 벌써 그렇게 예언한 것이다(44:28-45:7).

그 예언에 따라 바벨론제국과 바사왕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고레스 자신의 정복전쟁을 크게 도와주었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아니하고 위와 같은 칙령을 내려준 것이다. 그렇게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보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레스는 신의가 있는 황제이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따라서 다윗가문의 장손인 스룹바벨은 그의 상관인 다리우스왕에게 사직을 청한다.  바벨론의 왕으로 책봉을 받은 다리우스는 동생과 같은 스룹바벨을 떠나 보내는 것을 못내 서운해 한다.

그래서 다리우스가 말한다; “스룹바벨, 그대는 과인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장군이다. 천부장인 그대를 내가 그냥 예루살렘으로 보내기가 서운하구나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과인에게 요청하라”.

그 말을 듣자 스룹바벨이 말한다; “감사합니다, 전하. 당장 필요한 것은 없지만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제2성전을 짓게 되면 그때에는 필요한 일이 생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요아스 장군을 통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꼭 도와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다리우스왕이 대답한다; “그래, 요아스 장군이 내 곁에 있으니 언제라도 그를 통하여 요청하게. 과인이 힘이 닿는 한 그대를 도울 것이다. 그대 스룹바벨은 나의 전우이며 아우와 같지 않는가?... ”.

역시 의리가 강한 다리우스왕이다. 그는 16년 후에 페르시아제국의 제3대 황제가 된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제2성전 공사가 답보 상태이다. 왜냐하면, 유다의 주변에 있는 사마리아인들과 모압 및 암몬 사람들의 방해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전 520년에  스룹바벨이 수산성에 있는 요아스 장군을 통하여 다리우스 황제에게 요청한다; “폐하, 저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총독으로 임명해주십시오. 그리고 주변의 여러 종족들의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주변의 총독들에게 명령해주십시오”.

 그때 다리우스 황제는 쾌히 스룹바벨을 예루살렘 총독으로 발령을 내주고 이웃 총독들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지시한다. 그 덕분에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인 예수아는 주전 516년에 기어코 예루살렘 제2성전을 완공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규모는 솔로몬성전과 비교하면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페르시아 황실에서 그 정도의 지원밖에 해주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신바벨론제국과 메대의 세력을 물리치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지만 정작 예루살렘에 새로운 성전을 짓는 일에 있어서는 조그마한 규모를 원했다. 호국사찰의 규모는 그 정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구태여 그 옛날 솔로몬대왕처럼 이스라엘제국의 전 재산을 기울여서 화려하고도 웅장한 성전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만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한 창조주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신바벨론의 수호신 벨 므로닥처럼 여호와도 그들 페르시아제국의 호국신의 하나이면 족한 것이다.

그렇게 범신론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페르시아제국이므로 유일신 여호와만을 섬기는 유대인들과는 그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페르시아제국의 황실은 바사인들만이 지배족속이고 나머지 모든 족속은 평등하고 공평하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중근동에 있는 127개의 나라와 종족들이 페르시아제국의 치하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소정의 조공만 황제에게 바치면 나름대로의 자치와 자유를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페르시아제국에 의한 중동의 평화 곧 팍스 페르시아’(Pax Persia)는 유대인들이 종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편리했던 것이다.

한편 여고냐는 주전 538년에 다윗가문의 종손인 스룹바벨을 인도자로 하여 페르시아제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를 원하는 백성들을 유다의 땅으로 들여보낸다. 그 숫자는 3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1할이 넘지 않는다.

여고냐는 그것을 보고서 깊이 생각한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2성전을 짓고서 여호와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무리가 동족들 가운데 1할이 채 되지를 아니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여호와신앙을 지키도록 할 수가 있는가?... ”.

그 해답을 혼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바벨론성에서 여고냐가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을 모아서 회의를 개최한다. 참석한 인사의 면면이 다음과 같다; 재상을 지낸 다니엘, 선지자 에스겔, 하달 장군, 요아스 장군, 시므이 장군, 왕비 아비가일, 그리고 수산성에서 일부러 와서 참석한 서기관 출신 바룩, 요하난과 요나단 형제, 스라야 장군 등이다.  그들이 모여서 하나의 합의를 이루어 낸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고토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제2성전을 짓고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자보다 페르시아제국에 흩어져서 살고자 하는 이스라엘자손의 수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교포들의 여호와신앙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성전이 아니라 다른 예배 처소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이제부터 회당’(Synagogue)를 설치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합의사항이 뒤따르고 있다; “매주 안식일인 토요일에 함께 회당에 모여서 모세오경과 선지서 등 히브리경전을 낭독하고 율법선생과 선지자들의 강론을 듣는다. 그리고 함께 기도를 드린다. 회당은 이스라엘 장정 10명 이상이 하나를 지을 수가 있다. 특히 히브리경전의 연구에 열심이 있는 레위인들이 회당을 유지하고 강론을 하는 일을 맡도록 한다”.

그렇게 만장일치로 합의가 되자 그때부터 바벨론성과 수산성에 먼저 회당이 건설이 되고 운영된다. 그 다음에는 넓은 페르시아제국 전역으로 회당문화가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 결과 십년 이내에 무려 1만개 이상의 회당이 세워지게 된다. 그만큼 개방적인 페르시아제국에서 이스라엘자손들이 접근하기 편한 회당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자유스럽게 섬기며 자신들의 독특한 유일신 신앙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전 530년에 여고냐가 가정적으로 불행한 일을 맞이한다. 어떻게 같은 해에 여고냐를 사랑하던 인물들이 한꺼번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마는지 모른다. 먼저 그해 2월이 되자 여고냐의 사부이며 장인인 하달 장군이 115세를 일기로 별세한다.

그 제자이자 사위인 86세의 여고냐가 하달 장군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는지 모른다. 여고냐의 아내인 49세의 마아가가 친정아버지의 별세를 애통해 한다.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115세의 장수를 누리고 이 세상을 방에서 자다가 편히 떠난다고 하는 것은 호상 중의 호상이다.

그렇지만 집안의 어른을 홀로 떠나 보내는 유족들의 마음은 마찬가지로 애통한 법이다. 다시는 고인이 자신의 옆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4월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여고냐의 모친인 대비 느후스다109세를 일기로 향년을 맞이하고 만다. 그녀는 그 옛날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국왕인 여호야김의 아내인 왕비이다. 그리고 아들 여고냐가 국왕이었을 때에는 대비였다. 이제는 바벨론성으로 끌려와서 무려 67년간이나 타향살이를 하다가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렇지만 37년이나 옥살이를 한 사랑하는 아들 여고냐가 천우신조로 석방이 되어 함께 31년간이나 살면서 다윗가문을 재건하였기에 그녀는 그것이 타국생활에 있어서 큰 위안이었다. 이제는 사랑하는 남편 여호야김왕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왕비 아비가일이 시어머니인 대비 느후스다의 죽음을 보고서 크게 슬퍼한다.

그러다가 같은 해인 주전 5307월이 되자 왕비 아비가일89세의 일기로 스르르 자는 듯이 영원히 눈을 감고 만다. 3살이 적은 남편 여고냐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참으로 슬퍼한다. 그에게는 아직 후궁인 3여인이 있지만 그것으로 왕비 아비가일을 잃은 슬픔이 덜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옛날 어릴 적에 여고냐가 아히감 대감의 집을 출입하면서 그 집 별채에 있던 아비가일을 보고서 혼자서 짝사랑을 했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여고냐가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여고냐는 평생 아비가일을 사랑하면서 살았다. 이제 그녀가 89세를 향년으로 자신의 품을 떠나갔으니 86세인 노인 여고냐 자신은 어디에다 정을 붙이고 살아가야만 하는가?

갑자기 여고냐는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비록 초절정의 내공와 외공을 수련했으며 수많은 경전을 읽었지만 그것으로 마음속의 허무함이 전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고냐는 인간을 만드시고 그 인생을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사랑하는 스승과 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뒷일을 경건하게 기도로 부탁드리고 있다.

그렇게 세차례 초상을 치르고 있는데 주전 530년 한해가 슬며시 지나가고 있다. 이제 새해가 되면 여고냐의 나이가 87세가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말기람71, 브다야70, 세낫살30, 여가먀29, 호사마28, 느다뱌27세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6명의 아들과 3명의 아내가 여전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기에 늙은 여고냐가 힘을 낸다. 아직 다윗가문의 중흥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고냐는 페르시아제국에서 여호와신앙에 의지하여 남은 가족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속 백의의 국왕 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