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7. 02:48

로마서 강해 4(1: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4()

 

로마교회 성도들의 중요성과 사도 바울이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1:8-11)

 

본문은 사도 바울의 로마 방문의 계획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두가지 사실을 역점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이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을 만나보기를 원하고 있는데 이유가 어떤 신령한 은사 그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10-11).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둘째, 사도 바울이 매우 현란한 글솜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첫째, 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라는 두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9절에서는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 되시거니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증인으로서 그의 아들의 복음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손꼽고 있는 것입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셋째, 10절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뜻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차례대로 하나 하나씩 대강을 살펴봅니다;

(1)   요한복음 4장의 예수님의 말씀을 참조하면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4:23-24).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영적인 예배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공부하고 묵상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써 계시해주고 있는 그러한 복음적인 이해와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예배하시기를 바랍니다”(4:24의역).

(2)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어떤 신령한 은사라고 있습니다(1:11);

1)      그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있는 사도 바울의 경험이 의사 누가에 의하여 사도행전 19장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12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3 동안 담대히 하나님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2년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주의 말씀을 듣더라”(19:1-10).

2)      주후 53년경 사도 바울은 3 선교여행을 시작합니다. 소아시아 동쪽에서부터 선교를 시작하여 마침내 서쪽의 항구도시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출신 성경선생 아볼로가(18:24) 바다 건너 그리스의 고린도지역으로 떠나고 없습니다. 자연히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에베소의 성도들은 성령세례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도록 안수기도를 해줍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재하여 역사하시기를 시작하십니다. 성령님의 은사가 많지만 가장 신령한 은사는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제국의 수도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성령세례를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1:11).

3)      그렇다면, 여기서 사도 바울이 언제 로마서편지를 작성하여 로마교회로 보내고 있는지를 짐작할 있게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처음 3 동안에는 에베소의 회당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강론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당 안에서 유대교인들의 반발이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회당을 벗어나 두란노서원으로 자리를 옮겨서 무려 2년간이나 말씀사역을 하게 됩니다. 에베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모두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 예수님의 복음에 관하여 공부를 하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훗날 제국의 수도 로마의 성도들이 자신을 초대해주면 그곳에서도 에베소에서처럼 예수님의 복음을 상세하게 전해주고 싶어합니다(1:10-11).

(3)   사도 바울을 본문 8-9절에서 그의 탁월한 용어사용을 통하여 두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율법에서 두어 사람의 증언으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듯이(17:6) 사도 바울도 예수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삼위일체 가운데 분의 위격으로 증인을 삼고 있습니다(5:36-37). 한번 살펴보도록 합니다;

1)      사도 바울이 31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내가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아”(1:8a). 랍비 사울을 사도 바울로 부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으로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9:3-5).  둘째, “ 하나님 감사함은”(1:8b).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1:9).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2)      그런데 성령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1:9). 점은 의사 누가의 기록과 사도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게 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4:16).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묵상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3)      사도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분이 함께 증거를 하시게 되면 그것은 가장 확실한 증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설명 가운데 그러한 대목을 많이 보게 됩니다. 당장 본문에서 있는 표현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세상에 전파됨이로다”(1:8).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믿음이 좋다는 소문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증거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하는 바울의 설명입니다. 둘째,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의 증인 되시거니와 항상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9). 사도 바울은 자신이 로마의 성도님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누가 증언해줄 수가 있을까요? 바울은 증인으로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분을 손꼽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신앙 양심을 살피시는 31 하나님 안에서 사도 바울의 말은 진실인 것입니다.

(4)   10절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뜻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첫째,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결정이 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합의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아직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뜻이 하나로 합치가 되지 못하고 있기에 그러한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1:13-15).

2)      둘째,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게 드러날 때까지 성도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면서도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3)      셋째,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도행전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환상을 보았을 우리가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6:6-10).

4)      넷째,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령한 사도 바울 일행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선교지역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하여 잘못된 지역으로 가고 있는 그들을 먼저 성령님께서 막아 서십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영이 말씀 안에서 허락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뜻에 순종하여 마케도니아로 건너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유럽 선교라고 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16:11-15).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합의하신 뜻은 새로운 세상의 창조와 관련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세상에 전파됨이로다”(1:8);

(1)   사도 바울이 옛날 랍비 사울이었다면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가 일찍이 시리아의 다메섹으로 성도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적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대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을 유대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것입니다(9:1-2). 그러므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는 외국인 로마시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2)   그렇지만 이제는 랍비 사울이 아니라 이방인 사도인 바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유는 세상 만민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주고 성도들의 믿음을 반석위에 올려주는 것이 사도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1:1-6, 11). 사도 바울은 그러한 신령한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사람입니다(1:1);

1)      그의 간증에 따르면, 일찍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가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가지시고 랍비 사울에게 현신하신 것입니다(22:2-11). 그러한 영적인 체험을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의 주인님이시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2)      신관(神觀, the view of God) 달라지게 그는 이상 유대교 안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이방인 사도의 직분을 받아 세계선교에 나선 것입니다(1:1). 이에 따라 사도 바울은 그의 말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1:8a). 요컨대, 사도 바울도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인 세상의 교회와 성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가운데 특별한 소문 하나가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자생적으로 교회가 발생하고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8b). 그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차제에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1:8).

둘째로,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의 증인 되시거니와 항상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얻기를 구하노라”(1:9-10);

(1)   사도 바울이 멀리 떨어져 있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로마의 성도들이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바울이 사람을 보내어 사실을 그들에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지를 로마교회에 전해주게 되는 사람이 서신 가운데 사도 바울이 너희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사람보다 증거력을 가지는 증언자에 대하여 그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증언자가 바로 31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사실을 증언해주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의 증인 되시거니와 항상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9).

(2)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아직 응답이 주어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1:10).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가 이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요?

1)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과 가까운 주변의 형편만 살피면서 뜻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의 내용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영이시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당사자는 물론 주변의 사람들과 또한 멀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처지와 형편을 전부 살피십니다. 결과 가장 합당한 때를 정하여 기도의 응답으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기도의 응답으로 정확하게 나타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얻기를 구하노라”(1:10)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급한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든지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원만하게 로마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3)      실제로 사도 바울 자신은 세계선교가 급하다고 생각하여 도시만을 골라서 징검다리로 삼아 그렇게 대도시위주로 세계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교회를 세우게 되면 목회는 자신이 양육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목회를 맡기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4)      하나님의 뜻은 비록 둘러서 가더라도 오지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훗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가 되어 로마로 압송이 되면서 그러한 오지와 섬으로 보내어져서 선교를 하게 되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27-28). 그것이 사람의 뜻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1:11);

(1)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로마로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에 관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시켜주고 또한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본문에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1:11).

(2)   사도 바울이 전해주는 하나님의 복음이 어째서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주는데 기여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유는 랍비 사울이었던 그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그에게 재림하시는 광경을 보고서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과 무덤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복음을 성취하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자 헌신하신 하나님 아들의 자기 희생입니다. 결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생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3)   이제는 세상사람들이 은혜를 깨닫고 믿게 하고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시대입니다. 일에 복음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고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한 부름은 로마교회의 성도님들에게도 있게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힘있는 체험적인 간증과 그것을 입증하고 있는 폭넓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논리적이고도 체계적인 가르침이 바로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옛날 랍비였기 때문에 히브리정경과 히브리사상에 관하여 정통합니다. 그러한 그가 메시아에 관한 선지자들의 예언에서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역사를 증거하고 가르쳐주는 내용이므로 그것은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차이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4)   일을 위하여 로마를 방문하고 싶어하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사도 바울이 4 세계선교에 나서고 싶다는 것입니다(15:23-24). 대상지역은 로마의 서쪽에 있는 유럽지역입니다. 바울은 지중해 서쪽의 끝에 있는 다시스까지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참고로, 일부 학자들은 사도 바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로마에서 가택연금생활을(28:30) 잠시 벗어나게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과 함께 서유럽 선교를 하고 후에 로마로 돌아와서 처형을 당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진위여부는 확실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전설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생을 묵상하는 한편 신령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면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떠한 새로운 길을 여시고 어떠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가고 계시는지를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신앙생활과 선교여행은 동경심과 모험으로 가득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후 47년부터 세계선교에 나서서 거의 20년간 아시아와 유럽에서 선교를 인물입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처음 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교회 성도들은 신기하게도 다른 루트로 예수님의 복음을 접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1:8). 하지만 아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세례를 받아 영적인 삶을 풍성하게 누리는 데에는 이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장차 그곳으로 보내어져서 제국의 수도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이 견고해지고 성령님의 역사가 왕성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계속 전진하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비록 세월이 흘러가고 개인적으로 나이를 먹고 있지만 아직도 소년과 같은 동경심 그리고 청년과 같은 푸른 꿈이 빛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모두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남은 인생 가운데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