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6. 12:33

로마서 강해 3(1:6-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3()

 

사도 바울이 이방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문안인사를 하다(1:6-7).

 

겉으로 보면, 로마서 1 1절에서부터 7절까지의 내용은 사도 바울이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인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문안인사가 아닙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종이며 이방인 사도인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말문을 열고 있는 문안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묘하게도 하나님의 복음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하여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선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해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인데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증거는 예수님께서 히브리정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그대로 메시아로 태어나셨으며 평생 복음사역에 헌신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공생애의 끝이 그러합니다. 만민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십니다. 결과 무덤속에서 부활하시게 되고 놀라운 권세를 능력으로 얻게 되십니다(28:18, 1:4).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으로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복음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선포하신 것입니다(1:4).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뜻의 풀이를 적고 있는 것이 사실 5절과 본문인 6-7절의 내용입니다. 우선 다음 몇가지 사항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부활하셨으니 앞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듯이 그렇게 주님으로 경배하라는 것입니다(28:17, 5:21-23). 그것은 산술적인 하나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배하고 있는 유대교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6:4-5). 그런데 옛날 랍비 사울이었던 사도 바울의 글에서 거침없이 위와 같은 간증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연유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특이한 영적인 체험을 통하여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시며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지니고 계신다고 하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9:1-9, 22:6-15). 그러한 사도 바울의 체험과 깨달음이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28:18-20, 1:8). 그리고 영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랍비 사울이었던 자신에게도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이방인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9:15, 22:14-15, 21). 그러므로 바울은 은혜와 사도의 직분에 순종하여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1:5). 그리고 복음을 정확하게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세상에 파송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을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1:6-7).

(3)   셋째,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1:1). 말은 그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자신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사도 바울만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1:5). 부르심의 은혜가 이미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미치고 있습니다(1: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로마의 성도님들도 이제는 주인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을 해야만 합니다(1:7a).

(4)   넷째,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인사를 하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1:7b) 축도(祝禱, 축복의 기도인 benediction) 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은혜와 평강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들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이 되지 못하면 파이프는 막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모두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성결의 성령님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신비를 미리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1:4, 4:6, 고후13:13). 위의 두가지가 사실은 기독교를 유대교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1:6);

(1)   여기서 그들 중에서”(1:6b) 바로 절에 있는 모든 이방인 중에서”(1:5b) 받아 주고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도”(1:6a) 그와 달리 바로 다음 절에 있는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1:7a) 의미하고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1:6c)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해당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운데에는 두가지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바울의 글에서 있게 됩니다; 하나는 바울처럼 사도로 부르심을”(1:1) 받은 경우입니다. 하나는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1:7a) 경우입니다.

(3)   그러므로 바울의 글에 따르게 되면, 사도는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복음을 전해주고 있는 사도들에게도 순종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논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철저하게 순종을 하십니다. 따라서 비록 성부와 성자로 위격이 나누어지고 있지만 말씀과 복음은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주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결과 성도들이 안심을 하고서 사도들로부터 주님의 복음을 배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 평강 있기를 원하노라”(1:7);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1:7a); 사도 바울은 그냥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라고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성격의 성도인지를 먼저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제국의 수도에 살고 있는 로마의 시민들이므로 그들은 제국에서 특권층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1)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싶은 내용은 사실 다음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세상에 전파됨이로다”(1:8). 제국의 수도에 살고 있는 로마의 시민이며 특권층인 그들이 성도가 되고 있는 것도 귀한 일이기는 하지만 더욱 귀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세상에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아직 로마시를 방문한 적이 없는 이방인 사도인 바울의 귀에까지 소문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로마시를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함께 모여서 교회를 세우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가 것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복음을 믿게 것일까요?

3)      여러가지 추측과 풀이가 있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그들에게 특별히 역사하여 그들을 성도로 불렀기 때문입니다”(1:7a의역). 그렇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에 대하여 로마의 성도들은 장차 어떻게 보답을 해야만 할까요? 사랑의 빚을 갚는 방법에 대하여 나중에 사도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올바른 복음 위에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고 사도 바울과 함께 세계선교에 헌신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11-17).

(2)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 평강 있기를 원하노라”(1:7b); 핵심 단어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그리고 은혜 평강입니다. 의미를 살펴봅니다;

1)      첫째,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고 사도 바울이 표기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종인 사도와 성도들이 전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있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대하여 훗날 4복음서에서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1-14).

2)      여기서 자기 땅에 오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가능해지는 성도들의 신분의 변화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8:14-17).

3)      둘째, ‘은혜라고 하는 단어는 특히 고대와 중세의 봉건사회에서 중요합니다. 이유는 봉건사회에서는 주군인 왕이 가신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땅의 백성들을 다스릴 있는 권세를 주고 있는데 그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기업과 분깃을 주시는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봉건사회의 제후들은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평소에 주군의 직할토지를 나누어서 경작을 해주고 또한 비상시에는 가병을 이끌고 출전을 합니다.  그와 같은 깊숙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은혜라는 용어를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의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앞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4)      구체적으로 은혜는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그리스도로 보내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사함을 받을 있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시고 주님으로 삼아 주셨기에 이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부활과 영생을 얻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풍성하게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5)      셋째, ‘평강’(平康, 평안함과 강령함)이라고 하는 것은 평안’(平安, 안락함)이라고 하는 용어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이 안락하고 편한 것을 일반적으로 평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비해서 마음의 풍랑이 극복이 되고 고요해져서 드디어 몸까지 안녕을 누리게 되는 것을 평강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음서에서는 평강이라고 하는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성도들에게 평강의 빌어줄 때에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24:36, 20:19-26).

6)      그리고 그와 같은 메시아의 사명을 미리 찬양하고 있는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에게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1:77-79). 그러므로 본문의 뜻은 사도 바울이 로마의 교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과 영생의 복을 얻고 그것을 전파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갈 있기를 축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국의 수도에 살고 있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문안인사를 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은 복음의 핵심을 절묘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예를 들면 문안인사에 이르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성도의 삶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그렇게 삶의 모든 영역과 자신의 죽음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로 사용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을 깨닫게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답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러 성도님들도 사도 바울처럼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셔야만 합니다”(고전11:1의역).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모두 사도 바울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는 일에 전념을 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문안하는 것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그리고 공부하는 것도 교제하는 것도 모두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쓰임을 받을 있어야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풍성한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