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5. 18:15

로마서 강해 1(1: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1(주일)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확실하게 전하기 위하여 랍비 사울을 부르시다(1:1-2).

 

본문은 근본적으로,유대교와 기독교는 어떻게 다른가?라고 하는 질문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의 핵심이 완전히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사실을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의 기초로서 설명해주고자 편지를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이방인들과 극소수의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만큼 유대교와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의 첫머리에서부터 유대교와 기독교의 극명한 차이를 은연중에 엿볼 있도록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바울은 사도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1-2).

전통적인 유대교를 믿고 있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마디로, ‘나사렛 이단 말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교는 선민구원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현세적인 구원 선민제국의 영광을 가지고 오는 메시아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는 다음과 같이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나사렛 예수는, 첫째,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만민구원을 주장하고 있으며 둘째, 현세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생구원을 말하고 있으며 셋째, 선민의 영광을 구현하기 위하여 다윗의 이스라엘제국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영생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이에 따라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유대교의 이단으로 정죄하여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서 십자가에 처형하고 맙니다. 그런데 예수가 무덤속에서 부활했다고 그의 제자들이 주장하면서 나사렛 예수를 신격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나사렛파를 없애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편, 이방인인 헬라인들이나 로마인들은 그러한 차이를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모두 같은 유대인들의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로마황제 글라우디오는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낼 때에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한꺼번에 쫓아내기도 합니다(18:2).

그런데 사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신관(神觀) 있어서부터 도저히 하나가 없는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어디까지나 오직 하나인 여호와 하나님 사상을 지니고 있는데 비해서 기독교는 삼위일체론’(the theory of three in one)이라고 하는 매우 특이한 여호와 하나님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인의 입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들도 없으며 하나님의 영이 본체와 분리가 되거나 별도로 하나의 위격’(位格, 여호와의 또다른 신격) 지니고 있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유대교인들은 모세의 가르침 그대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산술적으로 하나인 여호와 하나님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기독교인들은 첫째,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인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 모두가 경배와 찬양의 대상입니다. 셋째,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얻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산술적인 하나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이 하나로 역사하시는 신비를 지니고 계시는 유일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요컨대, 삼위일체의 신비가 바로 인간들이 수가 없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10:30, 14:16-20, 4:6, 고후13:13).

이상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수 그리스도의 바울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바울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1:1a);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인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표현, ‘여호와의 아닙니다(42:19, 53:11). 그렇다면 바울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자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있는 12사도와 같은 부름을 입게 되었는지 사실부터 따져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1)      바울은 본래 이름이 사울이며 그는 유대교를 철저하게 알고 믿기 위하여 오랜 세월 예루살렘에서 유명한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히브리경전과 히브리사상을 공부한 사람입니다(22:3). 그가 배우고 공부한 내용은 크게 보아 세가지입니다; 첫째, 글로 전해지고 있는 히브리정경인 타나크, 둘째, 말로 전승되고 있는 하나의 정경인 미쉬나, 셋째, 둘을 100 이상 비교연구하여 만든 바리새인들의 주석 등입니다. 마침내 사울은 서른 정도가 되자 유대인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있는 선생인 랍비가 됩니다. 그러므로 랍비 사울은 철저한 바리새인이며 유대교리의 신봉자입니다.

2)      그러한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체포허가서를 받아 다메섹으로 가다가 길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9:1-2). 갑자기 태양보다 밝은 빛이 집중적으로 자신을 비추고 있습니다(9:3). 빛을 똑바로 바라보자 그만 육신의 눈이 어두워져 버립니다(9:8). 랍비 사울은 빛이 바로 창조주 여호와의 본체의 나타나심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21:23, 22:5). 그런데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현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상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

3)      사울의 생각으로는 율법선생인 랍비가 되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현신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듣고 선지자가 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6:1-13, 1:1-5). 그래서 눈이 보이지 아니하지만 여호와의 영광과 형상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현신을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말씀만 똑바로 듣고 계시를 받게 되면 이제 자신도 귀한 유대교의 선지자가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를 품고 있기에 이상한 말씀을 듣고 있지만 진짜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감히 하나님의 현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9:5a). 바로 놀라운 답변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9:5b).

4)      말씀을 듣는 순간 랍비 사울은 그가 오랜 세월 율법학자 가말리엘로부터 공부하고 배워서 확고하게 믿고 있던 믿음의 체계와 사상이 모두 붕괴가 되고 마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전에 나사렛 이단으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정죄를 받고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로마총독으로부터 십자가 처형이 확정되어 골고다언덕에서 죽었던 예수가 느닷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현신으로 환상 가운데 랍비 사울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렛 예수가 부활하였으며 승천하였다고 전하고 있는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복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허망한 메시지도 진리라는 것입니다. “ 사실을 어떻게 하면 진리가 아니라고 반박을 수가 있을까요?그것이 랍비 사울이 다시 눈을 떠서 수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인 히브리정경을 새로이 공부하고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철저하게 연구하게 이유입니다.

5)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랍비 사울은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여호와의 또다른 위격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울은 여호와의 신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도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분이시니, 만유의 아버지시라. (성부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성자 하나님은) 만유를 통일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5-6). 요컨대, 랍비 사울은 자신이 환상 가운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현신으로 만나게 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게 계기를 얻게 것입니다.

6)      그래서 다윗대왕이 일찍이 신앙고백한 시편의 구절, “여호와께서 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수들로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 의미까지 알게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하여 자신의 사명이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는 것임도 거듭 깨닫게 됩니다(9:15-16, 22:17-21). 그것이 유대교를 믿는 랍비 사울이 변화하여 그리스도의 바울이 되고 특히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연유이며 그의 체험담입니다.

(2)   하나님의 복음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b);

1)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b). 이유는 예수님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말씀의 본뜻이 바로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천국복음이란 출발이 여호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위탁하신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두가 있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65:17-25).

2)      구체적으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은 결코 선민이나 이방인 가운데 한쪽을 살리고 다른 한쪽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선민과 이방인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한을 청산하고 만민이 서로의 생명을 돌보고 살릴 있는 그러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십니다(5:44-48, 12:17-21).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위탁하신 복음의 내용입니다.

3)      그러한 하나님의 복음을 사도 바울이 세상에 전하고 싶어합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이 아니고 유대교의 이단인 나사렛 예수의 천국복음 사상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영적으로 깨닫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사도 바울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 유대인들만 살리고자 하시는 그러한 불공정한 편파적인 창조주가 결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세상에 구속자 그리스도로 보내어 만민의 죄를 용서하는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처형하신 분이십니다(26:42, 54-56). 그러므로 사함의 효과는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이 누구나 자신의 죄를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고서 회개하는 자에게 미치게 됩니다. 그것이 공의의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진리를 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성도들에게도 확실하게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적고 있는 것입니다(1:1).

둘째로,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2);

(1)   사도 바울은 본래 신분이 뛰어난 젊은 랍비 사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정경인 타나크와 부록인 미쉬나 그리고 100 이상 바리새인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놓은 주석에 두루 정통한 바리새인이며 율법선생입니다. 그러한 그가 히브리정경과 히브리사상에서 메시아에 관하여 어떻게 예언을 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연구를 것입니다. 결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메시아에게 위임이 되어서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도구로 사용이 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분명한 견해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습니다; “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2).

(2)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하나님말씀을 복음으로 계시하는 자로 보내신다는 예언이 히브리경전에 선지자들의 이야기로 이미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도 바울의 견해는 공관복음의 하나인 의사 누가의 글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3일에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4-48).

(3)   만약 의사 누가가 저술한 복음서가 세상에 미리 나와 있다고 한다면 사도 바울이 구태여 위와 같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어렵게 복음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지 아니해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로마서의 기록의 연대가 누가복음보다 약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의사 누가의 복음서를 참조하십시오라고 말할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사실 의사 누가는 세계선교를 계속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서 함께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4:14, 딤후4:11, 1:24). 그러므로 그의 글의 상당부분은 사도 바울의 설명을 참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 동역의 아름다움은 물론 복음에 대한 확신을 서로 나누게 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낄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3 6개월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사시면서 땅에서 복음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간 남자 제자는 12명에 불과합니다. 가운데 배신자 가룟 유다가 빠지고 대신 맛디아가 들어가고 있으며 그들 12명이 초대교회에서 사도로 불리고 있습니다(1:26).

그런데 정작 헬라와 로마세계의 이방인들에게 폭넓게 복음을 전한 자는 바나바와 바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의사 누가는 그들을 이름하여 이방인 사도 또는 후속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4:3, 9:15, 13:2-3, 22:21).

본문에서 있듯이 사도 바울이 주후 50년대 후반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일을 하기에 여러 사도 가운데 가장 적합한 사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전직이 랍비이므로 히브리정경과 히브리의 전승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주석 등에 두루 정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은 근원까지 따지고 있는 깊은 내용입니다(1:3-4, 1:11-12). 그것이 사물의 이치를 깊이 따지기를 좋아하는 헬라인들 그리고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고자 하는 로마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복음의 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1:1).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서 선교여행을 함께한 경험이 있는 의사 누가는 바울로부터 복음의 근원과 체계에 대하여 많은 내용을 배운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로마서보다 나중에 세상에 나온 누가복음이 사도 바울이 설명을 생략하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 보완적인 이해를 있도록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기본적인 인식을 가지시고 이제부터 로마서의 내용을 함께 공부하시겠습니다. 아무쪼록 차제에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로 복음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바른 이해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