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6. 03:54

로마서 강해 2(1:3-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2()

 

하나님의 복음에 담겨 있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과 대속의 제사와 부활의 능력과 사도의 파송에 대하여(1:3-5)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히브리정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가 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요약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1:3). 둘째, 영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가 되셨다는 것입니다(1:4). 셋째,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의 직분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 성도들은 믿고 순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5).

마디로, 제국의 수도에 살고 있는 로마의 귀족과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 성도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위임을 받고 있는 바울과 같은 사도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1:1, 5). 그렇게 순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찍이 히브리정경에서 선지자들이 메시아의 탄생과 사역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기록하였는데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2). 구체적으로, 예언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셨고 무덤에서 부활하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는 것입니다(1:3-4).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권위는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셨고 부활하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에서부터 비롯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유는 다음 두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조상이 혈통적으로 다윗대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바울의 주장과 그의 사도적인 권위가 허위라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1)   첫째, 히브리정경에 실려 있는 선지자들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 가운데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하는 명시구절이 없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에 대하여 가장 많은 예언을 하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나며 뿌리에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12)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직접적인 혈통관계는 아니지만 이새의 줄기로 인정이 되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 경외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고 있는 자가 나사렛 예수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의 왕손인 목수 요셉의 의붓아들이며(1:18-25, 1:34-38,2:1-7)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2:46-52, 3:16-17, 4:11, 8:29) 평생을 하나님 경외자이며 메시아의 길로 걸어가기 때문입니다(22:42-43).

(2)   둘째,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죽은 자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부활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육신이 죽더라도 예수님의 속사람에는 죽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가 되어 있습니다(8:9-10). 거기에 하나님의 부활의 영이 역사를 하여 죽은 예수님을 살리고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도록 새로운 창조를 것입니다(2:32, 8:11). 참고로, 그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영생의 부활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선물한 것은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되살려낸 예수님의 능력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는 되살아났지만 다시 향년이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11:44).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을 확보하는 부활의 몸을 가지시고 되살아나신 것입니다. 그것은 순수한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베다니에서 승천을 하십니다(24:50-51). 그리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하여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계십니다(4:14-16, 8:1)

(3)   셋째, 어째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덤에 들어가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러한 새로운 영생의 창조를 베푸신 것일까요? 이유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의 제물로 온전히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불법심문을 하고 이단으로 몰아서 정죄를 하고 있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모조리 몰살시킬 수도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26:52-56).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고난의 잔을 마십니다.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으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26:42).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깨닫고서 회개하는 자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영생구원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성도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방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전하고 싶은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4)   넷째, 사도 바울은 이상과 같은 깊은 이야기를 전부 그의 로마서에 기록을 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복잡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훗날 그의 간증을 오해하는 성도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배제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첫머리에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용어 대신에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적고 있습니다(1:1).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능력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복음과 능력의 근원을 미리 밝혀 두고 있는 사도바울입니다. 그렇게 복음의 시작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분명이 전제함으로써 모든 구원의 계획과 능력이 전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혹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셨다고 그가 글을 적더라도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부활과 창조의 영이 먼저 역사를 하셨다는 사실을 감안하고서 읽어 달라고 하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1:3);

(1)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메시아로 오시는데 과연 어느 집안에서 아기로 태어나시게 되시는가? 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유대인들의 오래된 관심입니다. 특히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선민들은 자신들이 힘이 약하여 오랜 세월 강대국 패권국의 속국으로 살아오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메시아가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어 주시면 그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모조리 물리치시고 옛날 다윗대왕의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해주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시온의 영광이 다시 빛나게 것이며 선민의 제국을 통하여 여호와의 위용이 천하에 떨치게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는 다윗대왕의 후계자이므로 다윗의 혈통에서 탄생하는 것이 정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하지만 이미 서두에서 살펴본 그대로 메시아의 탄생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구태여 다윗대왕과 관련을 지어보자면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정도라고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11:1). 그것은 다윗의 직계라는 뜻이 아니라 양자일 가능성이 있음을 비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18-25). 다만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새로운 공의의 나라를 세우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9:6-7). 뜻은 선민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새로운 나라로 변화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선민만의 구원과 영광을 도모하는 이스라엘 제국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을 누리게 해주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메시아가 복음사역을 하게 된다는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선민들도 자신들의 집단이기주의와 세속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메시아의 뜻에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둘째로,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1)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선지자가 죽은 무덤에서 부활한 경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지자가 죽은 자를 살린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첫째, 선지자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되살리고 있습니다(왕상17:17-24). 둘째, 선지자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고 있습니다(왕하 4:32-37). 셋째,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 베다니의 나사로 차례나 죽은 자를 되살려 내십니다(7:12-17, 8:49-56, 11:44). 특히, 베다니의 나사로의 경우에는 무덤에 들어가서 4일이나 되어 시체의 냄새가 풍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되살려 내신 것입니다(11:39-44). 넷째,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죽은 청년 유두고를 즉시 살려 내기도 합니다(20:9-12).

(2)   선지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간혹 죽은 자를 살려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으로 역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능력의 통로 자체가 죽어버린다면 다른 사람을 살려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죽은 선지자를 살려낼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죽은 선지자에게 전이시켜줄 있는 매개자가 필요합니다. 비근한 예로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기에게 대언하여 마른 뼈들에게 들어가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37:9-10). 그러자 마른 뼈들이 살아 나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외칠 있는 선지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죽고 자리에 다른 선지자가 없는 경우에는 말씀을 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3)   선지자가 죽은 자를 되살려낸 여러 경우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되살아난 경우에는 육신의 소멸과 동시에 향년을 맞이하여 다시 죽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속에서 되살아나오는 예수님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몸을 가지고 40 후에 승천을 하십니다. 그리고 훗날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이라고 약속까지 하고 있습니다(5:24-29, 1:9-11). 어째서 그렇게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이 가능해지는 것일까요?

1)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하게 죽은 자가 무덤에서 육신적으로 되살아나오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창조주가 전혀 다른 영생의 몸을 창조하여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예수님께 선물한 것을 말합니다(24:3-12, 50-51).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부활의 열매입니다(고전15:20).

2)      그러한 부활의 몸이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나타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사도 바울은 흥분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 받으신 부활의 몸을 자신도 얻고서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고전15:20-25).

3)      그러한 사도 바울의 마음이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0-14).

4)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의 삶과 죽음,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공생애를 살아가고 끝내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희생적인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영생의 부활의 몸을 무덤에서 상급으로 입으시게 것입니다. 그와 같은 비결을 깨닫게 사도 바울은 그의 남은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5)      그의 사명이 끝나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도 예수님에게 주신 영생의 부활의 몸을 주실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비롯하여 모든 이방인 성도들에게 자신과 같은 깨달음을 가지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의 전파자로서 살아가 주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서에 담겨 있는 사도 바울의 메시지입니다.

(4)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하는 본문은 해석에 있어서 조심을 해야만 합니다;

1)      첫째, 예수님의 능력은 스스로 부활하는 능력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활의 기준에 적합하기 때문에 얻게 영생 구원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부활의 몸을 얻으신 것입니다.

2)      둘째, 기준이란 평생을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대속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동일한 기준을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3)      셋째, 그와 같이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는 제자에게는 동일한 상급이 주어지게 됩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자들인 ,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나라에 있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셋째로,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1:5);

(1)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평생을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로 살아가십니다.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십니다(3:13-15). 결과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해주려고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에 들어가게 됩니다(3:16-21, 5:24-29).  

(2)   공로로 예수님께서는 무덤속에서 부활하여 사도와 제자들을 다시 교육하시고 전도훈련을 시키십니다(24:44-49, 1:3-5). 그리고 사도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여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1:8). 나아가서 사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현지에서 양육하여 다시 파송을 하는 지상명령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28:18-20).

(3)   모든 일들이 이제는 또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14:16-20, 1:8). 따라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이 있도록 자신에게 그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킬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는 뜻을 그의 서신에 담고 있습니다(1:9-15).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제자로 살아가는 것처럼 그들도 사도들이 전해주는 복음에 순종하는 제자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1:5, 고전11:1).

결론적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사도 바울의 말씀을 되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은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을 있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우리들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있는 인생의 구원자이신 주인님 주님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특별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죽음에서 부활할 있는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하게 그렇게 수가 없다고 본문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부활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살리심을 받으셨기에 그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지니고 계시는 부활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영생의 부활의 몸을 창조주로부터 선물 받을 있는 예수님의 고난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와 대속의 죽으심을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능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는 성육신이라고 하는 수모를 당하지 아니하셔도 되십니다. 그리고 여러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믿음의 본을 보이는 공생애를 사시지 아니하셔도 무방하십니다. 나아가서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억울한 모함과 정죄를 받고 로마총독에 의하여 십자가처형을 당하지 아니하셔도 되십니다(2:5-8반대해석).

그러나 그러한 억울함과 수모와 죽음의 고통을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땅에 건설하기 위하여 감수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선택과 희생이 유일하게 아버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있는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죽음에서 부활을 얻으시고 만민의 구주가 되시고 있습니다(2:9-11).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도 예수님의 순종의 능력을 얻고자 이방인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1:5a). 그리고 부디 로마의 성도 여러분께서도 능력을 얻는 말씀에 순종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삶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1:5b). 그러므로 아무쪼록 능력을 얻으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