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OBS교재(손진길 작성)

로마서 제20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2. 5. 07:35

로마서 제20(9:25-33) <OBS4-20>(손진길 작성)

 

[Q1] 성경기록상 인간 앞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모세 때임. 그때 모세 역시 죄인인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얼굴만은 직접 보지 못하였음(33:18-23). 그래도 하나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눈으로 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반포하시는 말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는 그 한 마디는(33:19) 똑똑히 귀로 듣고서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는 것임. 그 말씀의 해석을 통하여(9:14-18) 바울은 ①토기장이이신 하나님(9:19-23), ②만민구원의 하나님(9:24-26), ③남은 자만 얻는 구원(9:27-33)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말씀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은 무엇인가?

·         다음 5가지의 기본적인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음; 그 첫째는,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므로 모든 인류의 창조주이시다. 둘째, 은혜와 긍휼을 받을 자의 선택권은 당연히 창조주의 주권에 속한다. 셋째, 하나님의 주권 앞에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다.

·         넷째, 인간은 다만 하나님께서 ①진노의 그릇에 대해서는 인내로써 관용하시며(9:22), ②긍휼의 그릇을 먼저 구원하여(9:23, 8:29), ③진노의 그릇을 구하는데 의의 병기로(6:13, 11:31) 사용하실 것이라는(45:11-13) ④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9:24) 온전히 믿을 뿐(9:30-33)이라는 것임. 다섯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한평생 의의 병기로 헌신하는 자가(12:1-3) 많지 아니할 것이기에 은혜와 긍휼을 모두 베풀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며(3:25, 8:22-25, 벧후3:8-9) 그 때까지 남은 자의 은혜를 소망하는 것임(11:3-5, 2:7, 28, 7:4, 14:7, 12-13, 21:7).

 

[Q2] 베드로처럼(벧전2:9-10) 바울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 구약말씀을(2:23) 원용하여 이방인 구원까지 포함하는 구속사역의 확장을 선언하고 있는데(9:25-26) 그 대목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         호세아의 3자녀 이름이 그 배경을 시사하고 있음; ①맏아들 “이스르엘”은 우상숭배로 예후왕조가 망하고 결국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도 망할 것임을(1:4) 상징하고 있음. ②딸 “로루하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진노를 내리고, 유다 족속에게는 긍휼을 베풀 것임을(1:6-7) 천명한 이름임. ③차남 “로암미”라는 이름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을(1:9) 말하고 있음.

·         진노와 긍휼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족속, 그래도 율법을 지키려는 유다 족속에게 각각 주어진 것임. 그렇지만 그 결과는 선민 유대인들이 진리보다는 표리(表裏, 바깥과 속)가 다른 율법의 의만을 내세우자 모두가 진노의 자식이 되어버린 것임(2:13, 16, 10:3). 따라서 이미 선민과 이방인을 굳이 구별할 실익이 없는 시대인 호세아 선지자 이후 구약시대에 선포된 복음은 당연히 새로운 이스라엘의 회복, 곧 만민구원의 복음일 수밖에 없는데 “호2:23” 말씀이 어쨌든 그 역사적 원형이 되고 있음.

 

[Q3] 바울이 말하는 “남은 자”(9:27)는 그 수가 얼마인가?

·         엘리야 시대는 7,000명이었으나(11:4, 왕상19:18)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는 14 4천명임(7:4). 그 숫자는 적어도 20배 이상 증가한 수라는 상징성을 띄고 있음.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남은 자의 개념 역시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많은 수”라고 볼 수 있는 것임.

 

[Q4]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행했던 “의”가 옳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         구태여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할 필요가 없었을 것임. 계속 선지자만 때때로 보내어 약간의 잘못된 관념만 바로잡아 주어도 충분했을 것임. 그러나 손질 정도로 고쳐질 유대교가 아니기에 새 술이 새 부대에 담겨진 것(2:22).

 

[Q5] 화전(火田)을 일구는 것과 자갈밭을 일구는 것은 어느 쪽이 쉬운가?

·         화전은 우상이란 나무만 태우면 쉽게 밭갈이가 되지만(35:2-7) 자갈밭은 매우 어려움. 그 어려움을 예수님은 마음밭 비유를 통하여 이미 돌짝밭으로 말씀하심(4:16).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선민에게 있어서는 율법을 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것임(9: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