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OBS교재(손진길 작성)

로마서 제19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2. 4. 14:12

로마서 제19(9:18-24) <OBS4-19>(손진길 작성)

 

[Q1] “롬9:18” 말씀(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과 “롬9:15” 말씀(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느니라)의 차이는 무엇인가?

·         9:15’ 말씀의 의미는, ①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긴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그 시점은 현재인데 (NRSV, "I will have mercy on whom I have mercy" 참조요), ②현재의 선택이 장차 베푸실 자비와 동정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 그러므로 그것은 ①판단의 주체와 ②판단의 시점 그리고 ③베푸는 실시의 시기 등을 엄격하게 말하고 있음.

·         첫째로, 판단의 주체와 관련하여 내가 하나님의 동정과 자비를 바라면서 부르짖더라도 그것을 수용하고 아니하고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것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체적인 판단의 기준, 곧 정확하시고 공정하신 하나님 스스로의 잣대를 가지시고 대상을 결정하신다는(9:16) 사실을 먼저 알 수 있음. 둘째로, 전체적인 판단은 그 시점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 실시는 나중에 시행된다는 것임. 일단 전체 Policy에 대하여 의사결정이 먼저 이루어지면 세부적인 실시시기와 범위 등은 시간을 두고서 정확하게 결정되어나가는 것임. 구체적으로, 자비와 동정을 베푸실 시점과 관련하여 그 결정은 대상자의 형편과 주변의 이해당사자들 모두의 사정을 두루 살피신 이후에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 정확하게 베풀어지도록 하는 것임.

·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8:28)는 대원칙만을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하나님의 선택과(6:37) 시행일자의 결정에 대해서는 성부 하나님의 전권임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임(13:32, 1:7, 20:8-16). 그것에 비해서 9:18’ 말씀의 의미는, ①선택된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이유만큼이나 ②선택된 자의 마음을 강퍅하게 내버려두시는데도 확실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져 있는 것임. 그 뜻이 바로 9:17’. 그러므로 그 대목은, 너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만민이 뼛속깊이 새기도록 하기 위하여 너의 마음을 강퍅한 상태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라고 그 의미를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임(11:11).

 

[Q2] ‘9:18’ 말씀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어리석음은 어떤 것인가?

·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와 긍휼에 너무 익숙한 자는 응석받이가 되며 가까스로 얻은 구원의 가치마저 소홀히 여기기 쉬움. 그 때문에 만민들, 특히 집 나간 탕자에 해당하는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께 (아버지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맏아들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투정을 부리기 쉽다는 것임(20:11-14, 15:28-30).

·         구체적으로, ①믿음생활에 있어서 미성숙한 응석받이처럼 투정을 일삼으며, ②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생기면 믿음의 성숙에 힘써 그것을 극복해나가려는 의지보다 하나님 원망이 앞서고(15:24, 16:3), ③무엇보다도 출애굽을 위하여 300년이 넘는 기간 노예생활이 있었으며 애굽에 10재앙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으며, ④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믿음의 조상들의 오랜 믿음의 생활, 곧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와 부르짖음이 있었으며(8:21-23, 11:13-16), ⑤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율법의 조건을 만족시키고자 자신의 독생자를 자발적으로 제물로 바치는 두려움의 역사가(벧전2:22-25)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가기 쉽다는 것임. 요컨대, 두려우신 공의의 하나님보다 사랑의 하나님만 기억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싶다는 편리한 사고방식이 로마시대나 지금이나 문젯거리가 되고 있는 것임.

 

[Q3]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권을 설명하고 있는 토기장이 비유’(9:19-24, 29:16, 45:8-13)의 주요 내용 3가지는 무엇인가?

·         첫째로, 창조주 하나님이 (귀히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을 구별하여 토기장이가 만들듯이) 우리네 인생을, 당장 구원을 받을 자와 저주를 받을 자로 구분하여, 선택하고 사용하실지라도 그것에 피조물이 항의할 수는 없음(9:21). 둘째로, 저주의 대상처럼 보이고 당장 진노가 맹렬하여 심판이 임박한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인내와 관용이 있어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가 예비되고 있다는 내용임(9:22, 13:6-9). 셋째로, 유대인 이방인 가리지 아니하시고 당장 준비된 구원의 자리로 불러 선택하시고 사용하시는 그 은혜에 대하여 형평성이나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하나님께 항의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임(9:23-24,  12:26-30).

 

[Q4]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권을 잘못 이해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         운명론적이고 체념적인 인생을 살기 쉬움.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어차피 창조주의 시나리오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살이이므로 팔자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나 선하고 의롭게 살려는 정신은 쇠퇴하기 쉬움.

 

[Q5]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칼빈의 예정론은 오히려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윤리적 동인(動因)이 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구원이 예정된 자는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며(6:37) 재림과 심판의 때까지(13:32) 깨어있어야만 하는 것임(13:33-37). 깨어 있는다고 하는 것은 첫째로, 경건생활과 절약생활에 힘쓰며 둘째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웃을 도와주는 신앙생활임(10:33-36). 더구나 마지막으로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인생살이이기에(13:9) 매사 적극적이며 그때까지 예정은 미정인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