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여호와가 독생자와 자신의 영을 보내어 선민을 거듭나게 하여 예루살렘에서 온세상구원을 시작하시다”(사49:1-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9. 13. 01:25

제목; “여호와가 독생자와 자신의 영을 보내어 선민을 거듭나게 하여 예루살렘에서 온세상구원을 시작하시다”(49:1-26)

설교일; 주후 2027 1 1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9 13일 토요일 작성)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하여 그 진정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예언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예언이 선민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사야의 설명이 달리 보이는 이유는 시내 산 언약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오랜 세월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여 현세적인 선민만의 구원과 영광으로 이해하여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이사야가 다시 설명하고 있는 시내 산 언약의 본래의 뜻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의 정체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49:1). 그러므로 천하만물과 만민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온세상에 전하고자 하십니다(12:1-3). 그것이 말씀의 선포이며 도달주의 원칙입니다. 그 일을 맡기기 위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먼저 배우도록 조치하셨습니다(49:3). 그것이 선민의 발생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배운 여호와의 말씀을 이방세계에 전달하면서 무엇이 창조주의 뜻이고 어째서 피조물의 형상을 우상으로 만들어 하나님으로 섬기면 안되는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49:2).

(2)  둘째, 역사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불러 주신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헛되이 무익하게 여호와를 마치 우상처럼 잘못 섬기고 있습니다(49:4a). 기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들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인 선민들은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판단과 보응을 존중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종에 불과한 자신들 선민들의 세상적인 판단을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49:4b).

1)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은 한마디로, 이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며(3:16) 여호와의 말씀을 열방과 모든 족속에게 영생구원의 복음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49:6b). 그런데 선민들은 그 말씀을 독점하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축복과 속죄의 제사의 은혜를 자신들만 영원히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49:6a). 주변의 이방인들은 영원히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다가 창조주 하나님의 보응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선민들의 종이 되기를 희구하고 있는 것입니다(5:43).

2)   실제로 그러한 시대가 역사적으로 한번 선민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제국입니다. 중동에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을 제외한 지역을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다윗대왕이 점령하여 대제국을 형성한 것입니다(삼하8:1-14). 애굽의 바로 조차 자신의 딸을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바치면서 화친을 요청하고 있을 정도입니다(왕상3:1, 11:1). 그때 주변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제국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왕상5:20-21). 그러한 시대가 여호와의 섭리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선민들이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던 애굽제국에 큰 벌을 내리고 선민에게 출애굽 해방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3)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선민을 구원하는 시온의 영광으로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12:12-13, 29-42, 14:28). 그러므로 외세에 시달리게 되는 시대에 선민들이 줄기차게 다윗의 후계자 메시아가 나타나서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1:6). 그것이 이름하여 선민 유대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입니다. 주후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같은 이기적이며 현세주의적인 유대인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20:25). 그에 따라 그의 능력이 탁월하여 여호와의 능력임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3:2) 유대교지도자들의 배척을 받게 됩니다. 그 결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대속의 죽음(52:13-52:12) 곧 십자가처형입니다(11:45-53, 26:63-66, 27:22-26).

(3)  셋째, 훗날 선민 유대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그 주인 되신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 및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전혀 반대라는 사실이 현실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여호와의 의로운 종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대사건입니다(9:22, 24:1-49). 그때부터 선민 유대인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이방인까지 성령의 세례와 충만을 받아 여호와의 말씀의 종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24:44-49, 2:32-42). 그들을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영광을 심령속에 간직한 새로운 이스라엘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49:3, 5). 그들이 온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 옛날 선민 이스라엘이 간과했던 비천한 자, 가난한 자, 여호와의 말씀을 모르고 살다가 죽어가는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복음으로 거듭난 인생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49:7).

(4)  넷째, 대선지서 이사야 제39장 말미의 기록을 참조하면, 이사야는 훗날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조국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당하고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습니다(39:3-7). 그 당시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마지막 선민의 나라의 멸망이라는 심각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달하지만(39:5-7) 국왕의 반응이 너무나 냉담하며 무책임합니다(39:8). 히스기야 왕이 얼마나 이기적인 욕심과 현세적인 영광만 추구하고 있는지 그의 답변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39:8).

1)   요컨대, 한평생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죽은 다음의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안이한 신앙태도입니다. 그렇다면 조국이 망하고 나면 그 다음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요? 이사야의 선지서는 선민의 왕 히스기야의 이기적 현세적 신앙태도에서 별로 나아지지 아니하는 것이 그후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자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바벨론의 역사가 발생하고 예루살렘 제2성전을 짓고 유대교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지만 선민 유대인들은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고 결국에는 마지막 인류의 희망으로 그들의 사회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이는 잘못을 자행하고 말 것입니다(53:3-8).

2)   그 때문에 선민 유대인들의 예루살렘은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맙니다. 그 대신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사실을 증거하는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 및 성도의 심령 속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14:16-20, 1:8)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49:8-13, 18-19). 인류역사의 종말에 다다르게 되면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 이사야가 마지막으로 기록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이며 하나님나라의 중심인 새 예루살렘의 출현입니다(65:17-18, 49:22-26).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섬들(열방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모든 족속들)아 귀를 기울이라! (창조주, 1:1-2) 여호와께서 (창세전, 1:4a) 태에서부터(그리스도 안에서, 1:4b. 영적인 생명의 성육신은 그 이치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음, 2:7, 1:14)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1:13, 34-35),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말씀의 의미를 이치와 인과관계로 파헤치는 학자의 메스와 같은 날카로운 해석의 지혜를 말함. 학자의 혀와 동일한 것으로 보임, 50:4)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광야에서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는 것과 같음, 13:21-22, 12:3)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여호와의 좋은 군사로 사용하실 것임, 딤후2:3),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의로운, 53:11) 이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영광(하나님의 영, 8:2) (심령 속, 14:16-20)에 나타낼 (새로운) 이스라엘(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이라 하셨느니라(이상은 예레미야처럼 새 언약의 시대를 내다보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임, 31:31-34). 4. 그러나 (선지자인) (이사야)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전하고자 노력하였지만 그 결과는 여호와신앙을 저버린 동족들로 말미암아)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17:1, 사람의 눈만 의식하는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심판을 받게 됨. 그러므로 속히 창조주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는 신앙생활로 되돌아와서 영생의 구원을 얻어야만 할 것임. 그것이 포기할 수 없는 선지자 이사야의 기도제목임) 5. 이제(65:17-18, 새로운 창조를 앞두신 또는 새 언약의 시대를 준비하시는, 31:3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선지자와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의 선택은 사도 바울의 풀이처럼 창세전에 벌써 이루어진 것임, 1:3-10, 6:39), 야곱(의 혈통인 선민)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선민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며), (새로운)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이방인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도로 돌아온다는 것임)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얻게, 8:18)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나의 주인, 8:37-39)이 되셨도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의로운)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를 말함, 1:1)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선민을 돌이키고, 11:26-27),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그리스도의 사도와 제자 그리고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숨은 제자들)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1:8). 7. 이스라엘의 구속자(대속자 그리스도를 선민의 땅에 보내주시는, 11:1-5)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이 세상의 비천한 자를 주님의 사랑과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임.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임, 25:40, 14:29, 22:21-27). 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모세나 이사야가 여호와의 영광을 대면하고 있음, 33:18-23, 6:1-10)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모세의 경우는 천국을 보여주는 변화산에 이미 등장하고 있음, 9:28-31, 11:26). (여호와)가 장차 (모세나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 또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예레미야의 표현을 빌리면 새 언약을 의미함, 31:31-34)으로 삼으며 (메시아 또는 성도의, 7:14, 22)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9. 내가 잡혀 있는 자(세상에서 종 노릇하고 있는 자를 말함)에게 이르기를 나오라(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으라) 하며 흑암(죄와 사망의 권세, 2:3, 6:12, 8:2)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해방을 맞이하라는 것임, 9:2, 58:6).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16:12, 9:1-6,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를 여호와께서 먹이시는 것임),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1:29, 23:2), 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생명수가 있는 여호와의 영생구원의 말씀, 21:33, 4:14)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복음의 대로를 만드실 것임, 19:22-25. 훗날 로마의 군용도로가 이방인사도 바울의 복음의 대로가 되고 있음, 15:19), 12. 어떤 사람은 먼 곳(멀리 이방지역)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동구를 말함) 서쪽(서구를 말함)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가까운 동방 메소포타미아 또는 먼 동방 중국까지를 말함땅에서 오리라(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며 성도가 발생하게 됨을 말함, 66:20-21, 24:14, 28:18-20).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땅끝까지 구원을 베푸시며 성도들을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며 새 예루살렘에서 영생을 누리게 할 것임, 65:17-18, 66:20-21, 14:1-3, 16-20, 28:18-20, 21:1-2, 22-27)“(49:1-13);

(1)  본문 1-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참다운 여호와의 종과 새로운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과 만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끝까지 의로운 종이 갖추어야 하는 법도에 대하여 여호와의 예언을 전하면서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어떻게 양성하여 열방과 만민에게 파송하고 계시는가?(49:1-3a) 만민구원사역에 임하고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에게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49:3b). 종은 자신에 대한 평가와 보상을 모두 주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가르침(49:4) 등입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a)섬들 내게 들으라. 백성들 귀를 기울이라. (b)여호와께서 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c)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이름을 기억하셨으며”(49:1); 다음과 같이 3단락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1)      하나, 1. 섬들 내게 들으라. 백성들 귀를 기울이라”(49:1a); 여기서 섬들 지리적으로 가나안 서편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있는 많은 나라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동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나라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가지를 합쳐보면, ‘열방과 만민이라는 개념을 얻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열방과 만민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2)      , 여호와께서 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49:1b); 먼저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에서부터 자신을 부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2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기가 모태에서 태어날 때에 감고 나오는 탯줄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의미하고 있는 육신적인 탯줄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어미의 뱃속이라는 복중 용어가 별도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미의 뱃속에 육신적으로 잉태가 되기 전에 이미 영적으로 생성되고 있는 생명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3)      그것은 누가 어떻게 창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는, 창조주가 영적인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지상에 있는 태중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생명의 산실에서 생명들이 태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목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에서부터 나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나에게 사명을 맡기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훗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예정론(1:4-6) 원형을 미리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4)      ,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이름을 기억하셨으며”(49:1c); 드디어 생명이 어머니의 태중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기와 연합하여 하나의 인격체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자 이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피조세계에서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는 것입니다(6:39).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불쌍한 생명들에게 메시아의 해방과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고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있도록 만들어주라는 것입니다(8:1-18).

(3)  둘째, 2절입니다; “2. (a) 날카로운 같이 만드시고, (b)나를 그의 그늘 숨기시며, (c)나를 갈고 닦은 화살 만드사, 그의 화살 감추시고”(49:2); 단락으로 나누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 날카로운 같이 만드시고”(49:2a);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창조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1:1-3, 4:4). 말씀을 피조세계에서 대언할 있도록 선지자의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하시고(6:7) 날카로운 칼같이 만들고 있습니다(49:2a). 선지자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은 마치 양면에 칼과 같아서 선지자 자신과 세상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들며 잘잘못을 쪼개어내는 수술칼이 것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서 저자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2-13).

2)      , 나를 그의 그늘 숨기시며”(49:2b);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선지자는 그들의 사회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각종 위협과 위험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세상의 거센 폭염과 비난으로부터 숨겨 주시는 것입니다(49:2b). 은혜를 얻을 있기를 다윗 왕은 그의 시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8.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17:8-9).

3)      , 나를 갈고 닦은 화살 만드사, 그의 화살 감추시고”(49:2c);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말씀의 뜻대로 신실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여호와의 종은(49:3) 마치 적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 날카로운 화살촉과 같습니다(49:2c). 화살에 맞게 되면 악한 세력의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지게 됩니다(8:2). 그리고 사람들의 무디어진 신앙 양심이 되살아나게 됩니다(27:54, 2:36-38). 특히 메시아가 오셔서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그것은 가장 날카로운 화살이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라고 하는 화살을 갈고 닦아서 그의 화살 통에 감추시고 세상으로 날려보낼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  셋째, 3절입니다;3. (a)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이요, (b) 영광 나타낼 (새로운)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49:3); 이사야가 여호와의 종과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1)      하나,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이요”(49:3a); 겉으로 보면,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종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52 말미와 53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특별한 여호와의 메시아와 관계된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2)      , 영광 나타낼 (새로운)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49:3b); 메시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온세상에 드러낼 성도들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모시고 만민구원을 위한 복음사역에 나서시는 메시아가 효시가 것입니다. 훗날 점에 대한 사도 요한의 상세한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18. 본래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3)      하나님의 영광은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는 말씀과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는 성령님의 권세를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게 내재하여 있음을 사도 요한이 증언하고 있는 기록입니다. 훗날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에게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영광이 내주하게 것입니다. 왜냐하면,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4:16-17, 26-27, 1:8).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말하자면, 성령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또다른 여호와의 이라고 하겠습니다.

(5)  넷째, 4절입니다;4. (a)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b)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49:4); 참다운 종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특히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서 만민구원사역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신실한 종의 자세를 가지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49:4a);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선지자, 메시아, 성도들인 새로운 이스라엘은 모두 신실한 종들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처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자녀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들입니다(53). 한마디로, 자신의 생명을 걸어놓고 평생동안 만민구원사역을 실천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에서 얼마나 위대하며 인물들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들이 끝까지 종의 자세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영광을 취하거나 교만하게 되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사람인 자신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열심히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결과가 헛되고 무익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주장합니다(49:4a). 말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셨기에 열매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먼저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주인이신 하나님과 주님께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그러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예수님의 예화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일을 것뿐이라 할지니라”(17:9-10).

3)    ,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49:4b); 끝까지 종의 자세를 견지했는지 아니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땅에서의 사명을 마친 다음에 반드시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종은 모두 때가 되면 주인과 결산해야만 한다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25:14-20).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신실한 종의 자세로 감당한 자에게는 그에 따른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25:21). 반대로, 스스로 영광을 취하고 마치 주인처럼 행세한 종은 처벌을 받게 것입니다(49:4b).

(6)  본문 5-9절에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활동과 당대의 실망스러운 결과, 그러나 이사야가 결코 실망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와 성도는 디까지나 주인이 맡긴 사명만 감당하면 되는 종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계획과 그림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구상하시며 그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계획을 끝까지 실현하시며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은 모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사실을 믿고서 하나님의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만 충실하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당장 눈에 뜨이는 위대한 업적과 성과를 이루고자 스스로 집착하는 것은 종의 신분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이 자신의 힘으로 주인이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룩할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과대망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그의 믿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49:4b).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사야가 본문 5-7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사야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동족들에게 외쳐도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사야는 미래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신 예언을 반드시 다음과 같이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49:5). 메시아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끝까지 구원을 베풀 것입니다(49:6). 세상에서 멸시를 받는 , 미움을 받는 , 종살이를 하고 있는 자를 모두 구원할 것입니다(49:7).

(7)  첫째, 5절입니다; “5. (a)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에서부터 (이사야) 그의 으로 지으신 이시요, (b)야곱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시니, 이스라엘 그에게로 모이는 도다. (c)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되셨도다”(49:5); 이사야를 선지자로 삼아 동족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외치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다음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1)      하나,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에서부터 (이사야) 그의 으로 지으신 이시요”(49:5a);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사야 자신의 생명을 만드시고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실 때부터 벌써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시고자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신 것입니다(6:8).

2)      , 야곱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시니, 이스라엘 그에게로 모이는 도다”(49:5b);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워서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게 했습니다.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상 배신하지 말고 이제는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위탁하신 말씀이므로 예언은 반드시 역사 가운데 성취될 것입니다(49:5b). 비록 이사야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아니할 지라도 일이 훗날에 틀림없이 실현될 것임을 그가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지자 이사야의 여호와신앙입니다.

3)      ,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되셨도다”(49:5c); 선지자 또는 여호와의 종은 성취의 위대함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대에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였지만 믿음의 뿌리와 그루터기로 말미암아 주인의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믿음의 뿌리는 자신의 생명과 사명이 모두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하심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그루터기는 비록 세상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말씀과 예언을 정확하게 선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결과 신실한 종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광을 얻으며 일이 창조주의 능력으로 온전히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49:5c).

(8)  둘째, 6절입니다; “6. (a)그가 이르시되, (메시아)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돌아오게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b)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60:1) 나의 구원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49:6);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메시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6. 그가 이르시되, (메시아)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돌아오게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49:6a); 선지자 이사야가 아무리 외쳐도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는 유대인들이 끄떡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하나님 경외의 신앙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여호와의 종으로 세상에 보내시게 되면 일이 성취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일을 실현하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2)      ,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60:1) 나의 구원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49:6b); 장차 메시아와 뒤를 잇게 되는 여호와의 종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만민구원을 위하여 이방 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사야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위에 임하였음이니라”(60:1). 행로를 따라 복음이 전파되고 땅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계획임을 이사야가 여기서 선포하고 있습니다(49:6b).

(9)  셋째, 7절입니다;7. (a)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 당하는 (16:20-21), 백성에게 미움 받는 , 관원들에게 종이 에게 이같이 이르시되(61:1), (b)왕들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49:7); 선지자와 메시아를 세상에 파송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 당하는 (16:20-21), 백성에게 미움 받는 , 관원들에게 종이 에게 이같이 이르시되(61:1)”(49:7a); 세상 끝까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전파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단하고 중요한 일은 복음이 담고 있는 내용 자체입니다; 내용은 세상에서 억눌리고, 소외당하고, 멸시당하고 있는 자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인간대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    예표를 구약에서 이미 수가 있습니다; 애굽의 노예를 살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하고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2:23-25, 12:29-42, 19:5-6). 다시 바벨론의 포로로 살게 되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44:28-45:5, 1:1-4).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거지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의 품에서 높임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16:20-21). 예수님은 그러한 미천한 자와 작은 소자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고 강조하시고 있습니다(25:40).

3)    , 왕들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49:7b);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세상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은 메시아를 영접하는 것으로 심판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1:12-18, 3:16-18, 17:3). 그리스도의 말씀은 세상의 임금과 고관들이 이제까지 해오던 이기적인 세상경영의 방법과 제도를 하나님의 공의의 뜻에 맞게 완전히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 드린 그대로, 사회에서 버림받고 있는 , 멸시당하고 있는 , 종의 신분으로 전락한 자를 모두 인간대접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것이라는 이사야의 기록입니다. 과연 어떤 것을 보게 될까요?

4)    그들 미천한 자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놀라운 세상을 보게 것입니다(16:20-21, 25:4). 하나님께서 직접 왕으로 그리고 고관으로 삼으시는 자들이 이제는 그와 같은 세상을 만드는데 종으로 쓰임을 받게 것입니다(49:7b). 세상의 부족한 재화로는 모두 인간대접을 해주는 사회를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14:13-21)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일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0)    본문 8-10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장차 메시아를 통하여 열방과 만민에게 어떠한 은혜와 구원을 베푸실 것인지를 예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삐뚤어진 선민사상이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 다윗왕조 유대왕국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자 번이나 상상도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성을 장기간 포위공격하고 있던 앗수르제국의 군사들이 하룻밤 사이에 천사들에 의하여 떼죽음을 당한 것입니다(왕하19:35, 37:36). 앗수르로 퇴각한 적들은 다시는 예루살렘을 넘보지 못하고 있습니다(38:6).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히스기야의 병이 하나님의 은혜로 낫게 되고 아울러15년이나 수명연장의 특혜까지 얻게 것입니다(왕하20:5-6, 38:5).

1)      결과 선민 유대인들은 히스기야 왕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에 기도만 하면 원수도 물러가고 죽을 병도 낫게 되어 무병장수하며 강대국의 백성으로 계속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히스기야 왕이 그렇게 생각하여 그만 오만한 왕이 되고 맙니다. 그는 곳에서 바벨론 사절들이 왔을 세상적인 자기자랑을 하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국가의 기밀에 속하는 무기창고와 보물창고까지 버젓이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유대왕국의 강성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39:1-2). 결과 훗날 신바벨론에 의하여 유대왕국이 망할 것이며 왕족들이 바벨론에서 환관이 되는 치욕을 당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해주지만(39:5-7) 히스기야 왕이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2)      그는 살아 생전에 영화를 누리며 하나님의 장수의 복을 누리는(39:8) 그것이 구원이며 여호와신앙인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뜻 보면 좋은 하나님신앙으로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현세적인 우상 문화이며 기복신앙의 모습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운데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고 있는 공의의 정신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만민구원이나 영생의 구원은 전혀 바랄 수가 없게 되고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들의 여호와신앙이 잘못되어 있다고 계속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언제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은혜와 영생구원의 시대가 오게 되는 것일까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이사야에게 있어서 시대의 도래는 중요합니다. 그때가 바로 선민사상과 현세적인 구원사상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소경과 귀머거리 신세가 되어 있는 자신의 동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6:11-13). 드디어 본문에서 이사야는 구원과 은혜의 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이제부터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 깊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묵상을 통하여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11)    첫째, 8절입니다; “8. (a)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b)구원의 내가 너를 도왔도다. (c)내가 장차 너를 (아브라함처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d)(성도들의) 나라 일으켜 그들에게 황무하였던 (이방인들의 버려진) 땅을 (말씀의)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49:8); 이사야가 은혜와 구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만민구원의 방법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49:8a); 은혜는 아무 때나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만민과 만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시기가 대상 별로 정해져 있습니다; 참고로,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3-36).

2)      여기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그때가 바로 은혜를 베풀고자 결정하신 때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49:8a).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사정이 제일 딱하고 급한 것으로 알고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공간적으로 이해당사자 모두의 경우를 한꺼번에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당사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줄 구체적인 때가 정해져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그때에 응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며 기다리는 인내가 믿음생활 가운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주인의 응답을 기다리며 근신할 아는 종의 자세가 믿음의 성숙인 것입니다.

3)      , 구원의 내가 너를 도왔도다”(49:8b);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 가운데 가장 것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버려야만 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49:8b). 일찍이 야곱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먼저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 세겜의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의복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합니다(35:2b). 이방신상과 우상을 전부 파묻어버립니다(35:2a, 4a). 호화 사치품을 제하고(35:4b)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벧엘로 찾아갑니다(35:1, 6). 가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보호해 주십니다(35:5, 12:3).

4)      , 내가 장차 너를 (아브라함처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49:8c);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번져 나갑니다. 일찍이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그와 세운 언약이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의 아들을 통하여 승계되도록 만드십니다.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과 약속의 아들들을 강력하게 평생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를 구원자로 보내시고 강력하게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메시아로 하여금 만민구원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고 무덤에서 부활하게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는 주님과 맺은 하나님 아버지의 언약이(3:16-17)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49:8c). 그것이 만민에게 주어지고 있는 죄사함과 영생구원의 은혜입니다.

5)      , “(성도들의) 나라 일으켜 그들에게 황무하였던 (이방인들의 버려진) 땅을 (말씀의)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49:8d); 장차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평생 만민구원을 위하여 헌신하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은혜가 임하게 될까요? 이사야는 메시아가 영원한 성도들의 나라를 일으켜 그것을 나누어 주어 각자 말씀으로 경영할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라고 대목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49:8d). 참고로, 그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확약이 다음과 같습니다;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자로서 먼저 자가 많으니라”(19:27-30).

(12)      둘째, 9절입니다; “9. (a)(메시아) 잡혀 있는 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b)그들이 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49:9); 메시아가 오시면 옛날 이스라엘 자손이 경험한 출애굽과 광야생활의 삶이 만민에게 확장될 것입니다;

1)      하나, 9. 내가 잡혀 있는 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에게 나타나라 하리라”(49:9a); 여기서 잡혀 있는 세상적인 억제와 지배하에 있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애굽에서 억울하게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과 같습니다. 그리고 흑암에 있는 영적으로 악한 영들의 지배하에 들어 있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8:2b). 참고로 창세기를 보면, 야곱의 집안사람들이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애굽 총리 요셉의 초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됩니다(46:1-7). 그들은 나일 삼각주 동편 끝에 있는 고센 땅에서 자손 대대로 목축하며 살게 됩니다(47:5-6).

2)      그러나 출애굽기를 보면, 세월이 지나자 애굽제국의 왕조가 바뀌어 히브리인을 적대시합니다(1:8-11). 그때부터 100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센 땅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야곱일행은 자발적으로 이민을 갔지만 결국에는 애굽인에게 잡혀서 억울하게 종살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출애굽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있도록 조치하십니다(19:5-6). 따라서 메시아가 오시면 그와 같은 출애굽의 역사가 전세계적으로 확장되어 발생할 것입니다(49:9a).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세상권력에 억눌려 종살이하는 자를 해방시켜주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 갇혀서 흑암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자들을 또한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일이 메시아를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추진될 것입니다(49:9a).

3)      , 그들이 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49:9b); 출애굽한 200 이상의(12:37)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에서 먹이고 마시게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이 몰고 나온 가축들도 굶어 죽지 아니하도록 광야에서 풀밭을 제공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15:25-27). 은혜가 이제 만민구원의 현장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49:9b). 그러므로 메시아의 뒤를 따라 복음사역에 나서는 성도들은 담대하게 광야와 같은 세상에 나아갈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13)      셋째, 10절입니다; “10. (a)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b)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49:10); 만민구원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마무리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49:10a); 선지자 이사야는 개인적으로 출애굽 당시와 같은 광야생활의 은혜를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 위하여 나서라는 것입니다; 선민들만 먹고 살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고 이방세계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신 하나님의 두터운 보호하심이 그대로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러므로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식량부족과 각종 천재이변을 경험하고 있는 인류들은 이사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자 노력한다면 분명히 창조주의 놀라운 역사가 재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옛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비롯한 광야시대의 보호하심과 만나와 메추라기 하늘 양식의 제공이 다시 한번 있게 것입니다.  

3)      ,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49:10b);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을 베푸십니다(33:19). 지금까지 이사야는 구원의 은혜를 전세계적으로 베푸실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긍휼을 어떻게 베푸실 것인지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있는 자가 누구인지 훗날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남을 불쌍하게 여겨서 용서를 해주며 구원을 베풀어주고자 애쓰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을 있는 자격자입니다;

4)      그와 같은 사람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이며(5:44)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좋은 이웃이라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십니다(10:25-37). 여호와께서 긍휼히 여기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대단히 특별한 것입니다. 샘물 근원 창조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성도는 생명수를 마실 수가 있습니다(4:14, 6:54, 21:6-7). 그리고 그곳 샘물로 자라나고 있는 생명나무에서 영생의 열매를 따서 먹을 수가 있습니다(22:1-5). 결국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되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도록 생수를 얻으며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21:27).

(14)      본문 11-1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마침내 만민과 만물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시대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짧은 3구절에 불과하지만 이사야 19 후반부(16-25, 애굽을 치시고는 고치시는 여호와! 은혜로 애굽과 앗수르 그리고 이스라엘이 다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기지가 된다는 예언임) 놀라운 예언을 재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구절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5)      첫째, 11절입니다;11. (a)(여호와) 나의 모든 삼고, (b)나의 (골짜기의) 대로 돋우리니”(49:11); 산을 깎아 흙과 돌로 골짜기를 메우게 되면 큰길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원의 대로를 만드신다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1. (여호와) 나의 모든 ”(49:11a); 이사야가 살고 있는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그곳은 평균고도 해발 790미터의 산지입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유대왕국의 수도입니다. 대부분의 고대왕국들이 예루살렘과 같은 산지에 도읍을 두고 있습니다. 이유는 방어하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에는 중앙 동편의 모리아산에 솔로몬의 성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성전 남쪽에 왕궁과 시온산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철옹성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면에는 가파른 골짜기가 있으며 동과 그리고 남쪽 삼면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유일한 군사적 접근은 북쪽에서 가능한데 그것도 가파른 길을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좌우의 산성에서 수비를 튼튼히 하면 적의 침입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게 되면 서로 적대적인 국가들 사이에 변화가 발생합니다. 그들 사이에 길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 교통하게 되고 메시아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상을 진작에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사야의 선지서 19 하반부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23.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리라”(19:23).

3)      , 나의 (골짜기의) 대로 돋우리니”(49:11b); 메시아의 제자들이 만민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산과 사이를 왕래하게 됩니다. 결과 길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길을 더욱 넓혀주기 위하여 대로를 만드십니다. 그것이 복음의 대로입니다. 그리고 넓은 길을 만드는 방법이 바로 산을 깎아 흙과 돌로써 골짜기를 메우는 것입니다. 사실을 진작에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40:3-5).

(16)      둘째, 12절입니다;12. (a)어떤 사람은 에서, (b)어떤 사람은 북쪽 서쪽에서, (c)어떤 사람은 시님 에서 오리라”(49:12); 이사야는 남조 유대왕국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살고 있는 땅에서부터 동서남북을 다음과 같이 바라보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2. 어떤 사람은 에서”(49:12a); 이사야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에 살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는 구약시대의 선지자이므로 아무리 만민구원의 시대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선민사상의 영향을 완전히 제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흔적이 대목에서 여실히 남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열방과 민족들이 회개하고서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멀리 동방과 서방의 끝에서도 길을 걸어서 회개한 이방인들이 시온 예루살렘 성으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49:12a).

2)      과연 그럴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만민구원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고 나면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땅으로 임하게 것입니다(21:2). 성은 너무나 광대하여(21:6, 길이가 12 스다디온 2,304km이므로 이스라엘 길이의 20 이상의 크기임) 이방 족속이 널리 살고 있는 땅에서 쉽게 입성할 수가 있습니다(21:27). 결코 길을 걸어서 기존의 시온산 예루살렘성까지 필요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3)      , 어떤 사람은 북쪽 서쪽에서”(49:12b); 선민들을 침략하고 정복한 나라들은 모두 북쪽과 서쪽에서 왔습니다. 예를 들면, 동방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들의 군대가 지중해 연안의 길을 이용하여 북에서 남으로 쳐들어 것입니다. 그리고 서방의 강대국 헬라와 로마의 군대도 서쪽 바닷길로 그리고 북쪽 육로로 쳐들어 오게 됩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이 그들에게 퍼져 나가게 되면 그들이 자국 현지에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할 것입니다.

4)      , 어떤 사람은 시님 에서 오리라”(49:12c); 시님 땅에 대해서는 크게 보아 가지의 학설이 있습니다. 중국 설과 애굽 남부 설입니다; 중국 설은 시님’(sinim) 땅이 중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 번역본에서 그렇게 적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합니다. 이사야가 이미 곳에서’(49:12a)라고 언급하고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곳은 당연히 중국, 한국, 일본 극동 3개국입니다. 애굽 남부 설은 가지로 갈라집니다; ①시에네 설과 ②엘레판틴 설입니다. ‘시에네’(syene) 옛날 수도 테베’(오늘날의 룩소르) 남쪽의 지명입니다.

5)      그리고 엘레판틴 섬은 남쪽 아스완’(Aswan) 남쪽 나일 한복판에 있는 조그만 (2kmX500m)입니다. 그곳에 선민의 나라가 망하자 유대인들이 많이 피난 와서 살았습니다. 룩소르 아래쪽이 되었든 아스완 아래쪽이 되었든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님 애굽의 남쪽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국이 아니고 애굽으로 있는 이유는 이사야 19 때문입니다; “24.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19:24). 훗날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기지가 중국이 아니고 애굽입니다.

(17)      셋째, 13절입니다; “13. (a)하늘이여, 노래하라. 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b)여호와께서 그의 백성(19:25) 위로하셨은즉, (c)그의 고난 당한 (5:10-11) 긍휼히 여기실 (5:12)임이라”(49:13); 장차 우주 모든 피조물이 목소리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해야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13. 하늘이여, 노래하라. 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49:13a);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만민구원을 비롯한 만물구원입니다. 사실을 이사야가 여기서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이여, 땅이여 천지와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기뻐하며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산들이여 산들에 살고 있는 열방과 많은 민족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2)      ,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19:25) 위로하셨은즉”(49:13b);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자손들입니다(3:7, 10). 그러나 이사야 19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리며 탄압했던 대표적인 세상제국 애굽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시며 이르시되, 백성 애굽이여,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5).

3)      , 그의 고난 당한 (5:10-11) 긍휼히 여기실 (5:12)임이라”(49:13c); 대목에 대해서는 조금 상세하게 성경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서 영생의 구원을 받을 있는 자에 대해서는 자격을 마태복음 5장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5:44-45).

4)      남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과 함께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서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 쓰게 되면 세상에서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박해 받게 것임을 여기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만민구원을 위하여 고난 당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크게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이라고 전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만민구원을 위하여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며 구원을 베풀고자 하는 자는 세상에서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유는 세상이 그리스도를 미워한 것처럼 그의 제자들 성도들을 역시 미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의 증언이 그러합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8-19).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특별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상급이 크다는 것입니다; “10. (하나님의 공의인 만민구원)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0-12).

둘째로,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선민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완전히 여호와의 버림을 받은 것일까?),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신실하신 헤세드 하나님 여호와는 결코 자신의 언약을 잊지 아니하셨다고 이사야가 전하고 있음. 그 말씀 그대로 훗날 선지자 예레미야가 새 언약을 말하면서 선민 이스라엘이 언약을 저버렸지만 여호와는 결코 저버리지 아니하시고 이제는 결코 저버릴 수 없도록 메시아와 성령님을 보내어 확인도장을 찍어 주신다고 설명함, 31:31-34). 16. 내가 (선민 출신이거나 이방인 출신이거나 상관없이)내 손바닥에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로 그 이름을) 새겼고, 너의 성벽이(성도를 보호하는 보혜사 성령이, 14:16-18) 항상 내 앞에 있나니(성도에게 내주하여 함께 역사하는 31체 하나님의 영적인 동행의 은혜를 말함, 14:19-20, 고전6:19-20), 17. (선민의) 자녀(후손)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 성령의 권능을 얻어, 1:8) 빨리 걸으며(이 세상을 이기며, 8:37),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이 세상 대적자들이 모두 패배하여 물러갈 것임, 8:38-39, 12:31-32).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회개한 자)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다, 4:35b-3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여호와가 그리스도의 제자를 성도로 삼고 그들을 보내어 만민구원 영생구원을 반드시 성취할 것임, 28:18-20. 그 열매가 천국에서 풍성할 것임, 22:28-30, 8:18)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선민사상에 물든 예루살렘은 버림을 받지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이루는 새 예루살렘은 번창할 것임, 66:20-21, 21:24-27),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새 예루살렘을 범접할 자가 없음, 21:27a)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카인과 아벨을 잃어버린 아담의 가정에 여호와가 대안으로 셋을 주심, 4:25-26)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셋의 자손인 의인의 가계가 번성한 것임, 5:3-32), 21. 그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이기주의와 현세주의에 물든 선민들은 실패하였지만 공의와 영생구원을 실천한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임). 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11:10-12)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만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새 시대를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음, 66:20), 23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성도를 보호하는 왕들이 구원을 얻을 것임, 21:24. . 반면에 세상적인 권력을 탐하는 왕들은 쫓겨나게 될 것임, 12:31-32),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신실한 여호와의 종들이 이 세상의 권세를 이기고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면류관을 얻는 것임, 22:28-30).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8:37-39) 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약육강식의 이 세상에서는 힘있는 자가 모든 재화와 권력을 지배하고 있음) 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그러나 창조주 여호와가 친히 이 세상을 통치하시게 되면 약육강식의 세상이 사라지고 세상임금이 쫓겨나며 성도가 구원을 얻으며 여호와의 의로운 종이 면류관을 얻을 것임). 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과 그 추종자들이 분열하고 패망을 당하며, 110:5-7, 19:14-21),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110:1-4, 5:43-48, 5:24-29)“(49:14-26);

(1)  본문 14-1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쪼개어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4절입니다;14. (a)오직 시온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b)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49:14); 예루살렘을 의미하고 있는 시온 산성 본래 가나안 원주민 여부스 족속의 것입니다(삼하5:6). 산성을 주전 1,003년경 열두 지파를 통일하고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다윗이 빼앗아 왕도로 삼게 됩니다(삼하5:7). 그리고 주전 960년경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시온에 예루살렘성전을 세웁니다(왕상6:1, 38). 그때부터 시온은 다윗왕조의 정통성과 하나님을 섬기는 선민들을 가리키는 상징어가 되고 있습니다. 용어를 사용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4. 오직 시온 이르기를, 여호와(the Lord, KJV)께서 나를 버리시며”(49:14a); 여기서 the Lord’ 표현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십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인 시온의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왜냐하면,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마치 우상처럼 섬긴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100 정도의 시간이 지나게 되면 시온의 정통성을 자랑하고 있는 선민의 나라가 멸망당하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그때가 되어도 선민들은 자신들의 죄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할 것임을 여기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표현이 “(우리 선민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셨다 것입니다(49:14a).

2)      , (my Lord, KJV)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49:14b); 그런데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해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창조주의 심판이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선민의 나라는 이미 완전히 망했으며 백성들은 유민이 되어 이방인의 땅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마침내 오랜 원망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야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을 호소하게 됩니다;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잊지 마시고 구원해주십시오”(49:14b의역). 그렇게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친숙하게 다가갈 때의 표현이 여기서 ’(my Lord)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3)      이방 땅에서 나라 잃은 백성으로 고생하면서 선민들이 무엇을 깨닫고 있을까요? “그것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구원을 독점하고자 했던 선민들의 잘못을 서서히 깨닫게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백성들입니다. 그들 이방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창조주로 섬기며 살아가야만 했는데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선민들입니다. 자신들만 구원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선민들의 죄가 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해주기를 원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 이방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며 멸망의 대상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깊이 성찰해본다면, 자신들의 기득권과 현세적인 이익을 영원히 누리고자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겼던 죄가 엄청난 불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3)  둘째, 15절입니다; “15. (a)여인 어찌 먹는 자식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아들 긍휼 여기지 않겠느냐? (b)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49:15); 창조주 하나님을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어머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1)      하나, 15. 여인 어찌 먹는 자식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아들 긍휼 여기지 않겠느냐?”(49:15a); 자식을 얻기 위하여 뱃속에서 동안 키우고 있는 자는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우신 심판의 하나님 여호와(the Lord) 아버지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친숙한 구원의 하나님(my Lord) 어머니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야는 훗날 이방 땅에서 고생 끝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소원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시 구원하고자 시도하시는 하나님을 여기서 어머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표현이 절절합니다; “자신의 뱃속에서 잉태하여 세상에 태어나게 아들, 자신의 젖을 먹고 자란 자식을 어찌 어미가 한시라도 잊을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어미에게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아들을 어찌 불쌍하게 여기지 아니하겠느냐?”(49:15a의역) 것입니다.

2)      ,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49:15b); 그렇다면 선민의 자손들이 이방 땅에서 고생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의 구원은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마침내 그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훗날 있게 것이라고 여기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아직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잊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 속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49:15b).

(4)  셋째, 16절입니다; “16. (a)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b)너의 성벽이 항상 앞에 있나니”(49:16);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을 어느 정도로 사랑하며 어떻게 그들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이사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6.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49:16a); 손바닥에 글씨를 쓴다고 하는 것은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메모지가 없을 급히 손바닥에 글씨를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임시적인 기록입니다. 하나는, 자주 들여다보기 위하여 손바닥에 글씨를 적습니다. 특히 본문에서와 같이 손바닥에 새겼다’(49:16a) 하는 경우에는 지워지지 아니하게 새겨서 영구히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손바닥 안에 무엇을 새기고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들의 이름입니다. 여기서는 선민들의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방대합니다. 생명과 목숨을 가진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이 가운데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2)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욥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10.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그의 손에 있느니라”(12:10). 구원을 얻는 자들은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예수님과 사도 요한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10:20), “27.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천국에) 들어가리라”(21:27b). 그렇다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과 하나님의 손바닥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가지를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다는 아무래도 손바닥이 간편합니다. 따라서 쉽게 손바닥을 펼쳐보고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3)      하나는, 훨씬 많은 관심과 친밀성을 보이고 있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책에 기록도 해주지만 수시로 보기 위하여 손바닥에 새겨 둡니다. 그것은 마음에 새겨둔다는 것과 같은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6:6:6). 결국, 생명책에만 기록되어 있어도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손바닥에 적혀 있으면 확실한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손바닥에서 그것을 빼앗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3:2-3),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을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없느니라”(10:28-29).

4)      , 너의 성벽이 항상 앞에 있나니”(49:16b); 하나님은 선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굉장히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무너질 예루살렘 성곽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1. 가까이 오사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은 뻔하였거니와 지금 눈에 숨겨졌도다”(19:41-42). 그러므로 결국에는 선민들을 구원하여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이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높은 성곽에 천성 12대문을 만들고 위에 12지파의 이름을 새겨두고 계십니다(21:12). 따라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의 구원을 생각하면서 성벽을 항상 바라보고 계신다고 여기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49:16b).  

(5)  넷째, 17절입니다; “17. (a)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b)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49:17);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7.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49:17a);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마음이 급하십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표현이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49:17a)라고 빠른 걸음걸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      ,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49:17b); 완벽한 선민들의 구원을 위하여 적들에 대한 조치를 확실하게 하십니다. 선민들의 나라를 헐며 터전을 황폐하게 하던 자들을 모두 멸망시켜 버리시는 것입니다. 마치 홍해에서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를 모두 수몰시켜 버린 것처럼(14:26-28) 영원히 다시는 만날 없는 곳으로 보내어 버리십니다.

(6)  본문 18-2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선민우월주의와 만민구원사상의 차이와 결말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모두(冒頭, 글의 앞머리)에서 이미 설명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서 구절을 검토하면서 깊은 뜻을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7)  첫째, 18절입니다. “18. (a) 눈을 들어 사방 보라. 그들이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b) 여호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c)네가 반드시 모든 무리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것이라”(49:18); 선민우월주의에 매달리게 되면 전도의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민구원사상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 땅에 전파하게 되면 열매가 풍성합니다. 함께 구원 받기를 소원하며 땅끝까지 복음 들고 가는 성도들의 앞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이 다음과 같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1)      하나, 18. 눈을 들어 사방 보라. 그들이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49:18a);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민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이방 땅에 전하게 되면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동서남북 모든 이웃나라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백성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하여 말씀을 배우고자 전도자와 선교자 주위에 몰려들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이사야가 미리 내다보고서 예언을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2)      , 여호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49:18b); 전도의 열매와 선교의 열매가 풍성할 것임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장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이름과 영생을 걸고서 맹세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의 능력으로 반드시 그렇게 시행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종말로 향하여 정신 없이 가고 있는 인류의 역사이지만 이면에는 만민구원과 만물구원을 성취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안배가 숨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3)      , 네가 반드시 모든 무리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것이라”(49:18c); 만민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부활을 맞이하게 될까요? 이사야는 네가 반드시 모든 무리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것이라”(49:18c)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예루살렘성에서 모든 성도들을 자신의 신부로 맞이하고자 하십니다(21:2, 9-14). 그리스도가 신랑으로서 천국잔치에 참석하시는 것입니다. 참고로, 세례 요한은 잔치자리에 신랑의 들러리로 참석만 있어도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자신의 제자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3:29).

(8)  둘째, 19절입니다; “19. (a)이는 황폐하고 적막 곳들과 파멸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것이며, (b)너를 삼켰던 자들 멀리 떠날 이니라”(49:19); 선민사상만 고수하고 자신들만 현세적인 복을 누리며 구원을 받겠다고 고집한 결과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황폐화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 만민이 모두 구원받기를 소원하며 하나님 말씀을 땅끝까지 전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기적처럼 발생하게 것입니다;

1)      하나, 19. 이는 황폐하고 적막 곳들과 파멸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것이며”(49:19a); 선민들은 크게 보아 가지의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으로 천하만민에게 복이 돌아가도록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자신들 선민만이 얻기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여 있는 세상사람들을 모두 구원하여 영생의 복을 주고자 하셨는데 선민들은 뜻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들만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것도 지극히 현세적인 복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민구원, 영생구원이 아니라 선민들만의 현세적인 구원의 모습에 불과합니다.

2)      결국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선민들은 이방신이나 우상처럼 섬긴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엄청난 잘못입니다. 결과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이방 땅에서 유민으로 떠돌게 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왕국은 완전히 버려진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면 새로운 역사가 발생합니다(11:24). 이방인들이 그들 주위에 몰려듭니다. 그리고 버려진 예루살렘과 유다의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살게 됩니다. 이유는 온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났던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대해서 현장을 방문하여 생생하게 많이 배우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규모에 비해서 인구밀도가 조밀하며 순례자와 방문자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되고 있습니다.

3)      , 너를 삼켰던 자들 멀리 떠날 이니라”(49:19b); 선민들의 땅을 삼켰던 제국들이 역사적으로 앗수르, 신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사라센 등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자취가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대신에 현대 이스라엘이 자리에 다시 건설되어 있습니다. 기이한 역사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나온 예언이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말씀인 것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9)  셋째, 20절입니다;20. (a)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셋과 같은) 자녀 후일에 귀에 말하기를, (b)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49:20); 그와 같은 역사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섭리에 대하여 이사야는 창세기의 말씀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셋과 같은) 자녀 후일에 귀에 말하기를”(49:20a); 아담부부는 며칠 사이에 아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장남 카인이 동생 아벨을 들판에서 암살해버리고 일이 악하여 하나님께서 카인을 멀리 동방 땅으로 유배보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4:8-16). 절망에 빠진 아담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대안으로 다른 이라는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4:25). 아들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2)      ,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49:20b); 모세는 창세기 1장을 기록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6-27). 그런데 창세기 5장에서는 아담과 셋의 계보 설명하면서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양만 닮아 있지만 아담과 셋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1-3).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후손들의 계보를 별도로 등재하고 있습니다(4:26, 5:3-32).

3)      동일한 관점에서 노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상사람들은 모두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짐승과 같이 약육강식의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오로지 셋의 후손인 노아 만은 의인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6:1-9). 그리고 노아 홍수 후에 의인 노아의 후손만으로 현대인류가 번성하게 됩니다(9:1, 19, 10:1-32). 이사야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훗날 다시 발생할 것임을 여기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49:20b). 이사야 예언의 끝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그리고 새로운 예루살렘성을 창조하시는 이야기로 마감되고 있습니다(65:17-25). 지경이 얼마나 넓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생 가운데 올바로 실천하는 성도들은 열매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넉넉하게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10)    넷째,21. (a)그때에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b)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느고, (c)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마치 7천명의 의인처럼)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49:21); 전도와 선교 그리고 양육의 열매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1)      하나, 21. 그때에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49:21a); 복음서를 보게 되면, 성도들이 전도와 선교에 나서게 되면 영적으로 추수가 이루어집니다(4:34-38). 그것은 구약시대의 선지자인 이사야의 입장에서는 선민들이 전통적인 선민우월주의와 하나님독점사상을 버리고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만민구원사상으로 전해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행할 수만 있다면 열매가 참으로 풍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발걸음에 창조주의 임재와 능력 행하심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하여 외칠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맺게 것일까? 나는 별로 일이 없는데 열매가 참으로 풍성하구나!”(49:21a 의역).

2)      ,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느고”(49:21b); 선민사상을 고집하였기에 유대인들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되어 이방세계를 떠도는 나그네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참하고 보잘 것이 없는 인생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회개하고서 여호와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되자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그들 이방인들이 풍성하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49:21b).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에 그리스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상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3)      ,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마치 7천명의 의인처럼)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49:21c); 선지자 엘리야의 행적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입니다; 엘리야는 능력이 대단한 선지자입니다. 한번 기도하자 3 6개월간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가뭄이 들었습니다(왕상17:1, 5:17). 한번 기도하자 비가 쏟아집니다(왕상18:41-45, 5:18). 그리고 백성들에게 부르짖자 그들이 용기백배하여 바알 선지자 450명을 도륙하고 맙니다(왕상18:19, 40). 하지만 바알 우상을 섬기는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복수를 맹세하고 엘리야를 잡아죽이려고 군대를 풀자 그는 절망에 빠집니다(왕상19:1-3). 조국 이스라엘 왕국에 자신이 피신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조 유대왕국으로 도망을 칩니다. 브엘세바에서 기진맥진하여 죽기를 기다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하나님의 호렙으로 인도하십니다(왕상19:3-8).

4)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엘리야가 신세 한탄을 먼저하고 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는 하나님신앙이 사라지고 이제 혼자 남아 있는데 어찌하실 것입니까? 저마저 죽고 나면 깨끗하게 모든 일이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왕상19:14의역). 그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엘리야는 정신이 번쩍 들고 있습니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7,000명을 남기리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거대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신만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모든 북쪽의 동포들은 우상숭배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와 같은 의인 7,000명을 돌보고 계십니다. 가운데 사람을 엘리야가 만나서 제자로 삼게 됩니다. 이름이 바로 엘리사입니다(왕상19:19-21). 그러므로 성도들은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상숭배가 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는 나라에도 7,000명의 의인을 숨겨놓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를 믿고서 전진할 따름입니다.

(11)    본문 22-2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와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살펴봅니다;

(12)    첫째, 22절입니다;22. (a) 여호와(the Sovereign Lord, NIV)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나라 향하여 나의 들고, (b)민족들 향하여 나의 기치 세울 것이라. (c)그들이 아들들 품에 안고 딸들 어깨에 메고 것이며”(49:22); 이사야는 비슷한 내용을 이미 11장에서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서로 비교하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2. 여호와(the Sovereign Lord, NIV)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나라 향하여 나의 들고(I will beckon to the Gentiles, NIV)”(49:22a);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의 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의 나라까지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먼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권에 따라 특별히 이방나라들에게 손짓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뜻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과연 모든 이방나라에 대하여 어떤 뜻을 선포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2)      , 민족들 향하여 나의 기치 세울 것이라(I will lift up my banner to the peoples, NIV)”(49:22b); 그것은 이미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11장에서 예언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10.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11:10),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11:12).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바로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깃발을 세우시게 되면 주권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나라와 모든 민족들이 하나의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과연 행동이 무엇일까요?

3)      , 그들이 아들들 품에 안고 딸들 어깨에 메고 것이며”(49:22c); 이사야는 그의 선지서 11장에 이어 본문에서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가지로 해석이 되어집니다; 번째의 내용은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오랜 세월 이방인들의 나라에서 살아오고 있는데 이제는 세월이 끝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게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을 지배하고 있던 모든 이방인들이 선민의 후예들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되돌려 드리는 행동이 있게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번째의 내용은 선민의 후예들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을 따르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4)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본문의 서두에 특별히 22. 여호와(the Sovereign Lord, NIV)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나라 향하여 나의 들고(I will beckon to the Gentiles, NIV)”(49:22a)라고 기록하여 주권자 하나님의 명령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민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포함하여 만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도 선민만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는 선민만의 구원이나 그들 만의 현세적인 복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선포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그때부터 메시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많은 성도들이 세상으로 흩어져서 복음사역을 시작할 것입니다(28:18-20, 1:8). 세월이 지난 후에 그들을 천국으로 모으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됩니다. 그러면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땅끝까지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던 모든 성도들이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로 나아오게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의 후예라고 부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그들이 입성하게 되는 최종적인 장소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성산 예루살렘으로”(66:20),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으로’(21:2, 26)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여 최종적으로 모이게 되는 장소가 천성(天成) 예루살렘임을 이사야와 요한이 함께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1:16). 요컨대, 그와 같이 본문은 벌써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과 계시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13)    둘째, 23절입니다;23. (a)왕들 양부 되며, 왕비들 유모 것이며, (b)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발의 티끌 핥을 것이니, 여호와 줄을 알리라. (c)나를 바라는 수치 당하지 아니하리라”(49:23); 대목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22 다음 구절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나라에 있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고 있는 하나님의 상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기록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본문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1)      하나, “23. 왕들 양부 되며, 왕비들 유모 것이며”(49:23a); 훗날 사도 바울에 의하여 선민과 이방인 모두에게 있어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고 있는 아브라함은(4:16)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들의 가나안과, 애굽 블레셋의 땅으로 들어간 선지자입니다(12:1-5, 10, 20:7). 옛날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20:11). 그들은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의 신앙과 여호와 경외자인 아브라함의 신앙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더구나 고대의 족장사회에서는 종교와 문화가 다르면 서로 부정이 탄다고 하여(12:7-8, 43:32, 46:34) 탄압과 핍박이 심하던 시절입니다.

2)      과연 아브라함이 모든 위험을 감수할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강력한 안전장치와 보호의 약속을 언약으로 주시고 있습니다(12:3). 그리고 충분한 상급이 뒤따를 것임을 약속해주고 계십니다(12:2). 이제 그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와 성도들에게 엄청난 보호하심과 상급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사실을 여기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양자는 정식아들과 마찬가지로 상속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분이 높은 아기는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믿음의 열조들이 이방 땅에서 재산을 일구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애굽의 황제인 바로와 블레셋의 왕중왕인 아비멜렉에게서 많은 재산을 얻게 됩니다(12:16, 20:14, 16). 이삭은 블레셋의 곡창지대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어 부자가 됩니다(26:12). 야곱은 하란 라반의 집에서 양을 치고 부자가 됩니다(30:43). 모세의 경우에는 애굽의 황궁에서 자라나며 친모 요게벳을 유모로 맞아 젖을 먹고 양육이 되고 있습니다(2:9-10, 6:20).

3)      그와 같은 믿음의 열조들의 기사를 검토해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만민구원에 나서는 성도들은 이방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명지인 이방 땅에서 분깃과 상급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분깃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급은 선교한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게 되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목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확약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19:28b-29);

4)      ,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발의 티끌 핥을 것이니, 여호와 줄을 알리라”(49:23b); 메시아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헌신하는 성도가 어느 정도로 존귀함을 얻게 될까요? 그에 대하여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메시아는 창조의 역사에 여호와와 함께하신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습니다(1:1-4, 14). 땅에서 메시아로서의 사역이 끝나자 승천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 어린양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2:32-36).

5)      사도 요한은 세상만물과 만민이 앞에서 찬양을 올려드린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7:9-12). 세상의 임금이나 권력자들도 앞에서는 한갓 티끌과 같습니다(49:23b). 그와 같은 창조주의 영광이 빛나고 있는 자리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승천하여 함께 서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예수님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간구를 들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허락하시게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8:16-17).

6)      애굽의 총리가 요셉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49:23b) 라는 이사야 예언의 뜻을 짐작할 있습니다. 요셉은 17 아비 야곱의 집에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가운데 부모님과 형제들을 상징하고 있는 해와 그리고 11별들이 그에게 절하고 있습니다(37:9-10).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7 연속 흉년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웃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해줄 있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만민구원의 복음사역에 나서게 되면 마치 요셉의 때와 같은 역사가 있게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에 와서 그에게 절하고 있습니다(42:6). 아버지 야곱과 모든 식솔들이 요셉 덕택에 애굽에 이민와서 먹고 있게 됩니다(45:11, 47:12). 그래서 요셉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7. 하나님이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45:7-8).

7)      , 나를 바라는 수치 당하지 아니하리라”(49:23c);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증언은 그의 선지서 53장에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내용은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비참한 죽음을 당하시고 세상에서 고난과 수모를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는 선민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기만 하면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는 예언일까요? 역시 위에서 제시한 사도 바울의 글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얻자면 그리스도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8:17). 길은 세상에서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입니다. 엄청난 성취의 길이 아니라 핍박과 수모를 당하는 길입니다.

8)      그러나 고난과 수모는 장차 얻게 되는 영광과 비교하면 말할 없을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8:18). 사람이 육신을 입고서 인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고난과 수모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100 안팎의 고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때문에 천국에서 하나님 아들의 분깃을 상속하게 되고 세상을 다스리는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영생의 영광과 천국의 상속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기에 세상에서의 성도의 고난은 결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일종의 영광의 상처 같은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로 오시는 예수님의 성흔’(聖痕, 스티그마) 같은 것이므로 그것이 수치스러운 것이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정작 수치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은 히스기야 시대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선민우월주의에 젖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독점하고 있으며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의 땅에 전해주지 않습니다. 동시에 현세적인 하나님의 복만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들의 집단 이기적인 탐욕이야 말로 가장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4)    본문의 말미 24-26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를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이시고 야곱의 전능자이시라고 부르고 있으며 악한 영과 세상제국의 지배를 모두 폐하고 모든 성도들에게 완전한 영생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구절풀이를 해보겠습니다;

(15)    첫째, 24절입니다; “24. (a)용사(warriors) 빼앗은 (plunder)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b)승리자(the fierce, or the righteous)에게 사로잡힌 (captives) 어떻게 건져낼 있으랴?”(49:24); 무엇보다도, ‘용사 승리자 개념의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 24. 용사(warriors) 빼앗은 (plunder)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49:24a); 창세기 6장을 참조하면, 용사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강한 자들입니다(6:4).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우월한 힘으로 약탈하는 자들입니다(6:2). 그러한 용사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짐승의 사회와 같습니다. 육체적인 삶만이 지배하며 영적인 삶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간의 사회를 떠나 버리십니다(6:3).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 도래하게 됩니다(6:5-7). 그렇지만 이사야는 본문에서 그와 같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하나의 철칙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심판하시고 구원하실 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2)      , 승리자(the fierce, or the righteous)에게 사로잡힌 (captives) 어떻게 건져낼 있으랴?”(49:24b); 세상의 용사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운 자가 인간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점에 대하여 사도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있는 두려워하라”(10:28). 유한한 사람의 목숨을 죽일 있는 세상의 지배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영원한 형벌에 처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심판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기준이 공의’(公義,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것이 ‘righteousness’) 원칙입니다.

3)      그래서 어떤 성경의 사본에서는 여기서의 두려운 승리자’(the fierce) 아예 공의를 행하시는 ’(the righteous)이라고 달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심판을 받아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 지옥 불구덩이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건져 내실 있을까요? 사실 영벌을 결정하시는 심판주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을 건지고자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지옥으로 들어가야 하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으로 인도하실 수가 있을까요? 방법은 그냥 힘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구속’(救贖, redeem) 개념으로 이해할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 의인으로 간주되고 지옥 행이 천국 행으로 바꾸어질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16)    둘째, 25절입니다; “25. (a)여호와께서 이같이 말하노라. (b)용사(warriors) 포로(captives)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the fierce) 빼앗은 (plunder) 건져낼 것이니, (c)이는 내가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contend), (d) 자녀 내가 (폭넓은 의미로서) 구원(save) 것임이라”(49:25); 용사와 승리자를 용사와 두려운 자라고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붙잡고 있는 것을 서로 바꾸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의미가 무엇일까요?;

1)      하나, 2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하노라”(49:25a); 세상의 지배자로부터 사람을 구출해내는 구원이든지 아니면 지옥의 권력자로부터 죄인을 구속해내는 일이든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실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사야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구속의 주체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여호와의 예언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2)      , 용사(warriors) 포로(captives)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the fierce) 빼앗은 (plunder) 건져낼 것이니”(49:25b); 구절에서는 용사가 약탈한 것을 다시 되찾는 일과 두려운 승리자가 지배하고 있는 포로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언급한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대상물이 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세상의 힘있는 지배자 용사가 사람을 포로로 잡고 있습니다.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되찾아오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두려운 영적인 존재가 약탈해간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되찾아 오겠다고 하는 선언입니다.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3)      창세기 14장을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다국적 군대와 염해 지역 5 도시국가의 연합군 사이의 전쟁에 관한 기사가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남부 헤브론의 호족으로 살고 있던 히브리인 아브라함이 전쟁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는 소돔 성에 살고 있던 장조카 롯의 가족이 전쟁포로가 되어 북송되고 있는 현장을 급습합니다(14:12-14). 그래서 무사히 롯의 가족도 구출하고 약탈당한 재물도 되찾아 오게 됩니다(14:16). 그것이 쉽게 창세기에서 엿볼 있는 구원의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두려운 영적인 존재가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것은 재물을 약탈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49:25b). 의미는 본래 사람의 주인에게서 빼앗아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본래의 주인이 되찾아오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과 생명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죄와 사망의 고통을 겪고 있는 피조물인 사람을 구해 내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4)      다만 죄인인 인간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항변할 것입니다; “영벌의 심판에 들어갈 자를 어째서 창조주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아니하고 되찾아 가는 것인가?”.  항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하시고 있습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풀이해보자면,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합작으로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①먼저 그리스도가 친히 죄인의 죄와 사망을 짊어지십니다. ②그러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죄인이 의인이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 임하게 됩니다. ③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성도들 개인에게 적용하여 심판을 면제해주기 때문입니다.

5)      , 이는 내가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contend)”(49:25c); 세상에서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복음사역의 길에 방해를 하고 있는 대적자들을 하나님께서 처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 자녀 내가 (폭넓은 의미로서) 구원(save) 것임이라”(49:25d); 만민구원의 복음사역에 나서는 성도들 뿐만 아니라 후손까지 구원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러합니다. 여기서의 구원은 세상에서의 강력한 보호 뿐만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구속의 역사까지 포괄하고 있는 광의(廣義, 넓은 의미) 개념입니다. 폭넓고도 영원한 은혜가 성도의 가정과 후손들에게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히 평생을 바쳐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사역에 매진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17)    셋째, 26절입니다; “26. (a)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oppressors)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b)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c)모든 육체가 여호와는 구원자(saviour), 구속자(redeemer), 야곱의 전능자(the mighty) 알리라”(49:26);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앞에서 의사결정을 하여 시행하게 되면 어떠한 역사가 도래하게 될까요? 대목에서 이사야가 시원하게 답변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oppressors)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49:26a); 다윗의 시를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15. 그가 웅덩이를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7:15-16). 하나님의 보응의 역사가 임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지배하며 약자를 억압하고자 하는 자는 보응을 받게 됩니다. 결국은 자신들이 약자가 되고 억압을 받게 되는 미래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22:21-24);

2)      ,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49:26b);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기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피의 양을 하나님께서 측정하시고 계십니다(15:16);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선을 넘게 되면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9:4-5). 훗날 똑같은 역사가 선민들에게도 임하게 것임을 악한 므낫세 시대에 여호와께서 결정하십니다(왕하21:11-13). 자기 피에 취하게 되고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자업자득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입니다. 오늘날에도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3)      , 모든 육체가 여호와는 구원자(saviour), 구속자(redeemer), 야곱의 전능자(the mighty) 알리라”(49:26c); 용어정리를 다시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 좁은 의미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대가를 치르고 해방시켜주는 것이 구속입니다. 가지 은혜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세상에 임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바라보고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결심하게 되면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도와 주십니다; ①먼저 거듭난 자의 삶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것은 새로운 운명의 창조와 같습니다. ②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영적인 삶을 살아가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것입니다. ③마침내 예물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미래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 이사야 선지자의 66장의 결론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66:20-21).  

결론적으로, 본문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불러 사용하기 위하여 사전준비와 예정에 철저하십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생명의 창조 때부터 자신의 종을 구별하고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인도하셨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을 그렇게 정성스럽게 양성하여 열방과 만민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49:1-3a).

(2)   둘째, 만민구원사역에 임하고 있는 메시아와 제자들인 성도들 새로운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사람 속에 그리고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존재에 대하여 이사야가 미리 말해주고 있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그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종과 사람들) 나타낼 (새로운)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49:3b); (49:3b).

(3)   셋째, 종은 아무리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랑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이사야의 언급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평가와 보상을 모두 주인에게 맡겨야만 하기 때문입니다(49:4). 그러므로 의로운 종은 주인이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행하면 됩니다. 일이 많은 업적을 내는 일인지 아니면 역사 가운데 고난을 당하고 마는 일인지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별로 달가워하지 아니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겠습니다(15:18-20).

(4)   넷째, 미진한 일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하에서 반드시 역사적으로 성취될 것임을 이사야가 믿고 있습니다.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만민구원의 시대를 여실 것이며 그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땅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세상에서 비천한 자들이 사람대접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가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의 기록이 바로 본문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5)   다섯째,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성도들이 옛날 선민과 같은 이기적인 선민우월주의 형태의 삶이 아니라 만민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있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름을 손바닥에도 적어두고 기억하고 계십니다(49:16a). 그리고 그들이 들어갈 예루살렘성도 예비하고 계십니다(65:18). 그것은 집을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부모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아무쪼록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서 만민구원에 적극 나서며 함께 천성으로 들어갈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