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지 아니하는 선민의 나라를 버리고 새 언약에 따라 신위적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창조하시는 여호와”(사48:1-2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9. 9. 10:45

제목;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지 아니하는 선민의 나라를 버리고 새 언약에 따라 신위적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창조하시는 여호와”(48:1-22)

설교일; 주후 2027 1 1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99일 화요일 작성)

모세가 기록한 히브리경전 오경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세대교체를 이루고 출애굽 40년 초에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자 현지에서 발생하게 되는 사건 하나를 새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38년전에 처음으로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물이 풍부하여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곳에 오래 머물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많던 샘물이 전부 사라지고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례는 출애굽기 제17장을 참조하면 별로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둘입니다;

(1)  하나는, 아라비아 서북부에 있는 미디안 땅에서 40년간 처가살이를 하면서 장인의 양을 치고 있던 80세의 노인 모세가 서쪽변경 르비딤을 지나다가 그곳 호렙 산에서 가시나무 불꽃 가운데 여호와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목축하면서 변경지역 르비딤에 다다르고 있는 이유는 그곳에 물이 있고 목초가 있어 양을 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호렙 산에서 모세는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에서 세상제국 애굽의 노예처럼 살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하여 그곳 르비딤 호렙 산 아래로 이끌고 나오는 사명을 여호와로부터 부여 받게 됩니다(3:12). 그런데 모세가 그 사명을 완수하여 이듬해 출애굽 원년에 르비딤에 도착하고 보니 일년도 지나지 아니하고 있는데 큰 변화가 발생하여 있습니다. 그 많던 샘물이 사라지고 목초지가 광야로 바뀌어 있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백성들이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빨리 자신들과 가축들이 먹을 물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비책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호렙 산에 올라가서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폭포수와 같이 엄청난 지하수가 터져 나와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들이 능히 마실 수 있으며 목초가 다시 무성하게 자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일이 마치 기적처럼 르비딤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2)  또 하나는, 그와 같은 여호와의 기적은 40년 세월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0만명이 넘는 그들이 시나이 반도에서 광야생활을 계속하면서 세대교체를 이루고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여호와는 모세를 통하여 폭포 같은 지하수를 터져 나오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역시 그와 같은 여호와의 은혜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데스 바네아 현지에서 특이한 사건이 하나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40년간 인내하고 있던 모세가 이제는 더이상 참지 아니하고 백성들에게 크게 진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그 이유는 여호와에게 불순종하고 지도자를 원망하던 20세 이상의 기성세대가 극소수의 인물 곧 모세와 아론과 훌, 제사장인 엘르아살과 이다말, 군부지도자인 여호수아와 갈렙 등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행태는 그 이전과 조금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격노한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20:11a). 그는 백성들의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고서 다시는 반석에서 물을 내는 기적을 연출하고 싶지 않다는 선언입니다(20:10).

(2)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여호와의 놀라운 역사와(20:11b) 모세와 아론에 대한 꾸지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20:12-13).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조용하게 말로 반석에게 명령하라고 했는데 그가 제멋대로 백성들에게 화를 내면서 지팡이로 내리치는 불순종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20:12a). 그러므로 여호와의 참으심과 용서하심의 모습을 끝까지 정직하게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아니한 모세와 대제사장 아론은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백성과 함께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0:12b).

그와 같은 모세오경의 내용을 참조하여 본문 이사야 제48장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유일하게 선택된 민족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하여 경전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자랑하면서 선민 이스라엘이 그들을 특별히 선택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은 여호와의 목적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 목적은 벌써 출애굽기 제19장 제4-6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을 전해주고 회개하는 자들을 위하여 여호와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며 중보기도해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고 있는 동족들에게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도다”(48:1c), “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이라”(48:4) 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을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어 부디 우상문화를 청산하며 이기적인 현세주의를 버리고 진실한 여호와신앙인으로 돌아오도록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고 패역하는 자를 심판하며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선민들에게 알려주었으며 그 사실을 기록하여 히브리경전으로 그들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칭 의인사상에 빠져서 도무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48:8b)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셋째,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는 선민들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심판을 행하고 계십니다; ①먼저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라고 섬긴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 변경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왕국에 참여한 북쪽 10지파의 자손들은 불행하게도 앗수르제국의 식민정책으로 이방인과 함께 살면서 혼혈이 되고 이방신을 여호와와 더불어 섬기는 우상문화에 젖어 들어 선민의 정통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맙니다. ②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선민 유대인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여전히 이방인을 위한 제사와 중보의 기도를 일체 드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히브리경전으로 보유하고 있으면서 도무지 그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달하고 가르쳐주고자 하는 노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멀지 아니하여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그 백성들 역시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로 살아갈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진작에 예언하고 있습니다(39:4-7). 그 사실이 본문에서는 너를 풀무불에서 택하였노라”(48:10b)는 대목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4)  넷째, 선지자 이사야는 그 옛날 출애굽 사건이 다시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출()바벨론 사건으로 발생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48:14). 그와 같은 여호와의 구원의 역사가 다시 발생하는 이유를 이사야가, “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48:9), “11. 내가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8:11)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 내용은 그 옛날 출애굽 40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호와가 모세와 아론에게 준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5)  다섯째, 바벨론에서 고토 예루살렘과 유대의 땅으로 돌아온 선민들이 제2성전을 건설하고 여호와신앙을 일부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다시 타락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을 독점하고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그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영을 보내어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회개하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48:16).

2)   그들은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이 선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만민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것임을 증거할 것입니다(48:17-19).

3)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유일한 창조주이고 역사의 섭리자이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악인을 처벌함으로써 출애굽과 출바벨론의 기적을 베푸시고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언제나 주신다는 사실을 신앙 고백하며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할 것입니다(48:20-2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야곱의 집(야곱의 여호와신앙을 승계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여 이를(선지자인 나 이사야가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라는, 32:26-28)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혈통적으로는, 1:12-13) 유다의 허리에서(다윗왕조가 유다 지파임, 38:26-30, 4:18-22) 나왔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성전예배와 제사, 할례제도와 안식일 등을 지킴)하면서도 진실이 없고(그 마음은 여호와에게서 멀고, 29:13) 공의가 없도다!(하나님사랑이 모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으로 나타나지 아니함, 5:43-48, 12:30-31) 2. 그들은 거룩한 성(예루살렘성전을 가진 시온 성)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그의 이름이 (이 세상을 이기는, 8:37-39)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 3. 내가 예로부터 (이 세상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창조가 된, 1:1-2) 처음 일들을 알게 하였고 내 입에서(4:4, 8:3) 그것들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나갔으며, 내가 그것들을 듣게 하였고 내가 홀연히 행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여호와는 예언한 그대로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증거함). 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고집이 완강함)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 앞에 굽힐 줄 모르고 목이 쇠심줄같이 질김)이요, 네 이마는 (뻔뻔하기가) 이라(대제사장이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금패를 붙이고 있는 것과 반대임, 28:36). 5.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일이 이 세상에서 실현되기 전에 미리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예언한 것은 그 이유가 있다는 것임).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고집이 세고 뻔뻔한 너희들이 나 여호와가 한 일을 우상이 한 것이라고 거짓말하지 못하도록 내가 사전에 알려주고 꼭 그대로 역사를 섭리하고 있다는 것임). 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지금까지 여호와가 예언을 먼저 주고 이 세상의 역사를 그대로  성취한 현실을 보게 되니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온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을 것임)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일의 창조에 대하여 이제부터 말해주겠다는 것임), 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방금 천국에서 결정된 최신사항을 알려주는 것임)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전혀 새로운 창조이므로 이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작품이지 그 어떠한 우상이나 피조물의 설계가 아닌 것임). 8.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여호와를 배신하고 다른 피조물이나 우상을 창조주이며 역사의 섭리자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라고 행세하고 있는 인간들의 교만을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임. 그에 따라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천동지의 전혀 새로운 창조를 행하겠다는 말씀임). 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모세는 마지막 순간에 백성들에게 진노하였지만 그때에도 여호와는 참고 인내하신 것임. 그것이 여호와의 견인이며 구원의 은혜임, 20:13)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완전히 용해하여 그 형체가 없어지도록 소멸시킨 것이 아님),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풀무 불에 넣어서 도자기처럼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단단하게 단련되어 나오도록 만든 것임). 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만민구원과 영생의 구원은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말미암는 것이지 결코 피조물이나 다른 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천국에 들어가는 영생과 영원한 구원의 은혜는 오직 여호와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임, 4:12)“(48:1-11);

(1)  먼저 1절과 5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자칭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없는 진실과 공의를 그들의 조상인 야곱과 유다의 행적에서 어떻게 엿볼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절과 5 구절을 쪼개어 의미를 파악해보면 어떠한 진리성을 발견할 수가 있을까요? 넓은 밭에 숨겨져 있는 보화를 캐러 가는 심정으로(13:44) 본문의 구절을 분석하고 검토하면서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a)야곱의 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b)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c)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기념하면서도, 진실 없고 공의 없도다!”(48:1); 야곱의 일대기를 알아야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1)      하나,1. 야곱의 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48:1a); 얍복 시냇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극적으로 형제간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역사해주시자 야곱이 변심합니다. 애초에 서원한대로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것이 아닙니다(28:17-22). 반대로 화려한 도시 세겜을 찾아가서 형식적인 신앙생활만 영위하고 있습니다(33:18-20). 그에 따라 수치스럽고도 참혹한 세겜 사건 발생하게 됩니다(34:1-4, 25-29). 가나안 원주민들의 공동의 적이 야곱의 집안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34:30). 그때 하나님께서 살길을 열어 주십니다. 애초의 약속대로 벧엘 찾아가서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앞으로는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 살아가라는 것입니다(48:1a, 35:1, 10).

2)      그때 야곱의 집안 사람들 회개합니다(1aa). 그들은 자신들이 새기거나 보관하고 있던 모든 이방신상을 호화 장신구들과 함께 상수리나무 아래에 파묻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35:4-5). 진심으로 거룩한 백성 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 진실한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의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 있었던 비결입니다(48:1ab). 그런데 진심이 어디로 실종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이제는 거룩한 진실이 없다고 질책하고 있습니다(48:1c).

3)      ,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48:1b); 야곱의 4남인 유다는 특이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겜과 도단 사이에서 목축하고 있는 형제들을(37:14-17) 떠나 아버지 야곱이 살고 있는 가나안 남쪽으로 홀로 이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38:1). 당시 가나안에서 여호와신앙을 가진 선지자이며 족장이 야곱입니다. 따라서 유다는 부친 가까이 살면서 여호와신앙을 배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유다의 신앙자세가 훗날 며느리 다말을 재판함에 있어서 생명을 살리는 판결로 나타나게 됩니다. 당시 유다는 가장인 자신의 위신이 크게 손상될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비록 가나안 원주민 출신 이방인 여인이지만 생명을 구하고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4)      공의로운 유다의 판결이 다음과 같다고 모세가 창세기에서 특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이방여인인 다말이) (선민인 유다)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38:26). 결과 하나님의 상급이 유다의 집안에 주어지게 됩니다. 다말이 낳은 아들이 쌍둥이이며 베레스와 세라입니다(38:27-30). 여기서 베레스가 다윗의 조상입니다(1:3). 그리고 세라의 3아들은 역사적으로 솔로몬에 비견되는 지혜자들로 보입니다(대상2:6, 왕상4:31). 그러므로 유다의 허리에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나왔다면 그들 선민들은 유다가 모범을 보이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따가운 지적이라고 하겠습니다(48:1b).

5)      ,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기념하면서도, 진실 없고 공의 없도다”(48:1c); 다음과 같이 풀이될 있는 대목입니다; 신정국가인 유대왕국에서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이 가장 거룩하며 높습니다. 이름으로 맹세하게 되면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어놓고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선민들이 곧잘 맹세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심으로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이 없는 것입니다(48:1c). 창조주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따라서 창조주의 백성 답게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일찍이 유다가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48:1c).

(3)   둘째, 5절입니다; “5. (a)그러므로 내가 일을 예로(창세기)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b)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유다의 허리 이야기를)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신이 행한 바요, (c)(야곱의 )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48:5);

1)      하나, “5. (a)그러므로 내가 일을 예로(창세기)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48:5a);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자면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가 가장 연대가 앞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로부터라는 표현은 창세기를 의미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5a).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미 1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야곱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동행을 바란다면 이방신상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일대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재판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의와 진실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쉽게 있도록 벌써 창세기에서부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2)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유다의 허리 이야기를)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신이 행한 바요”(48:5b);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벌써 해준 이야기를 70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은 동일하시고 영원하시지만 백성들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서 각각 다른 이름과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계승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로잡아주지 아니하신다면 사람들의 신앙은 각각일 것입니다. 하나 있는 것은 신앙생활이란 기준이 반드시 하나님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변하게 되면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시공간을 초월하고 계시는 하나님만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결정과 생각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뛰어넘어 동일한 공의와 진리에 대하여 다시 말씀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리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창세기의 기록부터 선지서의 기록까지 어떻게 일치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만 것입니다. 흔히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많은 저자들이 정경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은 내적인 통일성과 진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훗날 이방인들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발생할 것입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모든 역사섭리의 대원칙이기 때문입니다.

4)      , (야곱의 )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48:5c);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서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사상과 이데올르기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념이라고 부르면서 목숨까지 걸고 있습니다. 때로는 통계적인 분석의 결과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열조들의 이야기를 되새겨 묵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미 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역사섭리의 진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금도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면서 잘못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우상인 알고 이제는 버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살이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4)   본문 2-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출애굽기에서 엿볼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거룩한 백성 제사장나라가 되어야 선민들이 대제사장의 이마에 붙이고 있는 거룩한 패와 같은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지 못하며 목이 애굽의 바로처럼 완고해지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첫째, 2절입니다; “2. (a)그들은 거룩한 (예루살렘)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b)이스라엘의 하나님 의지한다 하며, (c)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48:2); 선민들이 온세상에 자랑하고 있는 , 유대인들의 포장용 신앙고백 3가지를 여기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 그들은 거룩한 (예루살렘)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48:2a);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절기 때마다 성전을 방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의 종교력으로 7 10일에는 매년 모든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16:29-34). 그러므로 가장 거룩한 백성이 그들 유대인 선민들이라는 자랑입니다.

2)      , 이스라엘의 하나님 의지한다 하며”(48:2b); 선민의 나라를 세우신 분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는 백성입니다(6:4-9). 세상의 열방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또는 유물론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선민들은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며 보호하심이 각별합니다.

3)      ,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48:2c);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온세상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계속 어기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는 말씀으로만 그치시는 것이 아니라 진노와 재앙으로 징계하고 벌할 있는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필요하다면 천군천사까지 동원하시는 만군의 여호와’(Almighty God)이심을 선민들이 노래하고 있습니다(48:2c, 26:52-53).

(6)   둘째, 3절입니다; “3. (a)(여호와) 예로부터 처음 일들(창세기의 내용) 알게 하였고, (b) 에서 (모세에게 율법) 그것들이 나갔으며, 내가 그것들을 (선지자들을 보내어) 듣게 하였고, (c)내가 홀연히(혼자서 전격적으로) 행하여 (이미 언약한)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48:3); 선민들의 신앙생활이 내실(內實, 내적인 열매) 얻자면 무엇을 알아야만 하는지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하나, 3. (여호와) 예로부터 처음 일들(창세기의 내용) 알게 하였고”(48:3a);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의 질서를 마련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역사를 섭리하시고 사람들에게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실이 창세기에서부터 기록되고 있습니다. 인생과 역사의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동일한 공의의 원칙을 가지고 말씀의 진리로 오늘도 일하시고 계십니다(46:9-10, 48:3a). 사실을 깨닫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의 첫걸음입니다.

2)      , 에서 (모세에게 율법) 그것들이 나갔으며, 내가 그것들을 (선지자들을 보내어) 듣게 하였고”(48:3b); 사람을 살리고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8:3, 4:4). 말씀을 생활화하고 공동체의 규약으로 삼도록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선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자꾸만 이방신을 섬기고 우상문화에 젖어 들고 있습니다. 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 주시고 있습니다(48:3b, 21:36, 7:52).  그러므로 구약인 히브리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서 실천하는 자들이 사실은 올바른 신앙인이라고 하겠습니다(24:44-48). 반면에 혈통적인 의인의 족보만을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외형적인 신앙인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1:12-13).

3)      , 내가 홀연히(혼자서 전격적으로) 행하여 (이미 언약한)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48:3c); 하나님을 진실로 두려워해야만 하는 이유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홀연히’(소리소문도 없이 갑자기 홀로) 말씀을 실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우물쭈물 지체하면 역사적인 심판과 종말심판을 급속하게 맞이하게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지적이 그러합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같고, 년이 하루 같다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벧후3:8-9). 살다가 보면, 너나없이 인생 년의 세월이 꿈과 같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갑자기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면 메시아의 말씀 그대로 3일만에 부활의 날을 맞이하게 것입니다(5:25-29, 17:24). 다음에는 영생이냐? 아니면 영벌이냐? 그것을 결정하는 심판대 앞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것입니다(25:46, 5:29). 자신의 종말이 바로 세상의 종말이므로 누구나 짧은 인생살이 가운데 더이상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7)   셋째, 4절입니다; “4. (a)내가 알거니와, (선민) 완고하며, (b) 쇠의 힘줄이요, (c) 이마 이라”(48:4); 선민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없는 이유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4. 내가 알거니와, (선민) 완고하며”(48:4a); 완고하다는 것은 고집이 세다는 뜻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고집이 것도 문제가 있지만 특별히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 자기 고집이 세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문제가 심각합니다; 창조주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세상의 경영에 참여해야만 하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종의 신분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뜻이 아니라 종이 자신의 뜻대로 휘두르려고 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현실문제를 해결하는데 낫다고 하는 자신감 때문입니다.

2)      그러한 생각은 이기적이거나 집단 이기적인 것이므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없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수도 없이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민들이 요지부동입니다. 자신들의 의로움이 이미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넘어서고 있으며 옳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입니다(10:3). 한마디로, 종이 주인의 생각을 물리치고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는 ,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 그것이 불신앙의 핵심입니다.

3)      , 쇠의 힘줄이요”(48:4b);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지키도록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려주십니다(20:1-17). 선민들이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반드시 준행하겠다고 피의 맹세를 합니다(24:3-8);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시내 산에 올라가고 십여 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백성들이 술렁이고 있습니다(32:1). 대제사장 아론에게 모세를 대신하여 자신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신의 형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론은 오랜 애굽의 생활에서 배운 그대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주면서 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32:4).

4)      여기서 무엇이 목이 뻣뻣한 인지(32:9), 또는 목이 힘줄과 같은 ’(48:4b)인지를 금방 알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이나 율법을 대할 때에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 그대로 생활에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들이 경험한 그것을 가지고 쉽게 판단해버리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많은 신들과 분명히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그토록 모세를 통해서 여러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도 뜻을 깊이 헤아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5)      열두 지파의 장로들이 회의하여 자신들의 세상경험에 비추어 가장 좋은 방법을 다수결로 선택하여 시행하고자 합니다(32:1).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실천할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 것일까요? 그러하지 못한 것이기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질책이 추상과 같습니다; “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7:6b-7). 근본적으로 사람의 경험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신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길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6)      구체적으로, 백성들의 상대적인 숫자 양적인 다수결이 질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밝히 드러내고 있는 방편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그러하듯이 하나님신앙도 우민화(愚民化)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자신들의 인간적인 합의로 인생과 역사가 구원을 얻을 있다고 주장한다면 참으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를 한갓 상대적인 진리에 불과한 사람들의 지혜로 폄하하고 있는 신성모독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인 자신이 지혜롭고 옳다고 뻐기고 있는 모습(3:5-6) 목이 뻣뻣한 백성 모습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48:4b).

7)      , 이마 이라”(48:4c); 대제사장인 아론이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와 성소에 출입할 때에는 이마에 하나의 금패를 붙여야만 합니다. ‘여호와께 성결(Holy to the Lord)이라고 하는 패입니다(28:36). 패가 이마에 부착되어 있어야만 백성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가 받아들여집니다(28:38). 그러므로 여기서 패를 붙이지 아니하고 함부로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들이 바로 이마가 놋과 같이 강퍅한 잘못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뻔뻔스럽게도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먼저 인정하지 아니하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7:30, 18:11-12). 한마디로, 그러한 자가 어떻게 남의 잘못을 중보하고 대신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8)   본문 6-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지금까지 예언대로 성취된 일은 무엇이며 앞으로 예언대로 실현될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는 무엇인가?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동족들에게 애타게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선민의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앗수르에 의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10:11, 28:3, 왕하17:6), 앗수르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 위기(8:7, 왕하18:17), 앗수르를 물리치시는 여호와의 기이한 역사(37:33-35, 왕하19:35), 히스기야 왕의 수명 연장(38:5, 왕하20:5-7) 등이 그러합니다.

2)      예언하신 그대로 장래에도 역사 가운데 실현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신바벨론에 의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3:8, 39:6-7), 바사의 고레스 황제에 의한 갈대아 인들의 신바벨론제국의 멸망(13:19, 14:22, 21:2, 45:1-4), 포로 선민들의 해방과 예루살렘성전의 재건(44:28) 등입니다.

3)      은밀하게 예언해주고 있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앞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만민구원의 역사가 전개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천되는 새로운 시대가 창조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11:1-12, 48:1, 6-7). 과연 그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서 어떻게 암시해주고 있는지 지금부터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9)   첫째, 6절입니다; “6. (a)네가 들었으니 (성취가 ) 모든 보라. (b)너희가 선전(간증하고 전파)하지 아니하겠느냐? (c)이제부터 내가 ,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 은밀하고 신비함)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48:6);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이미 예언대로 성취된 일들을 살펴보고 이방세계에 증거해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예언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6. 네가 들었으니 (성취가 ) 모든 보라”(48:6a); 이미 위에서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선민의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되었으니 그것을 음미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진작부터 예언하고 있습니다; “3. 에브라임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28:3).   예언 그대로 사마리아에 왕도를 두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역사 가운데 멸망하고 있습니다; “6. 호세아 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17:6).

2)      이사야는 앗수르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 위기에 대하여 벌써부터 예언하고 있습니다; “7. 그러므로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하수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8:7-8). 예언의 말씀대로 앗수르 황제 산헤립의 군대가 유대왕국을 침략하여 전국을 휩쓸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됩니다(왕하18:13, 17).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서 똑같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1.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2.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세탁자의 큰길에 서매”(36:1-2).

3)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시는 여호와의 기이한 역사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으며 내용이 그의 선지서와 역사서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4. 그가(앗수르 왕이) 오던 길로 돌아가고 (예루살렘) 이르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여, 다윗을 위하여,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37:34-35, 왕하19:33-34). 예언대로 성취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시 역사서와 그의 선지서에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5. 밤에 여호와의 사자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 5천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왕하19:35-36, 37:36-37).

4)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역사 가운데 성취됩니다. 증거를 이사야는 위와 같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족인 선민들은 하나님의 예언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능력에 대하여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실을 세상에 전해야만 합니다.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 기록하고 있는 예언들 가운데에는 아직 역사적으로 실현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언들도 장차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사실을 선민들이 믿기를 이사야가 바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예언들입니다; 주전 586년경 신바벨론에 의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3:8, 39:6-7), 주전 539년경 바사의 고레스 황제에 의한 갈대아 인들의 신바벨론제국의 멸망(13:19, 14:22, 21:2, 45:1-4), 주전 538년경 포로 선민들의 해방과 주전 516년경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44:28) 등입니다;

5)      , 너희가 선전(간증하고 전파)하지 아니하겠느냐?”(48:6b); 선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이 성취된 사실을 온세상에 증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선민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구원에 대하여 기뻐하며 은혜를 세상에 나누어야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선민 유대인들이 역사 가운데 그렇게 행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선민들만 누리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영원히 여호와의 말씀과 세상구원의 은혜를 모르고 마냥 이방신과 우상만 섬기고 살다가 여호와로부터 멸망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6)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존의 선민 유대인 대신에 온세상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불러서 만민구원의 종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66:20-21). 그러한 새로운 역사를 메시아가 땅에 오셔서 시작하십니다. 그동안 선민구원사상으로 하나님말씀에 대하여 인위적인 제한을 가하고 있던 시대가 사라지고 바야흐로 만민구원의 하나님말씀의 본래의 뜻이 온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변혁이며 소위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새언약의 시대입니다(31:31).

7)      , 이제부터 내가 ,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 은밀하고 신비함)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48:6c); 만민구원과 세상구원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메시아가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것이 극비사항(top secret)임을 이사야가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것이 이며 선민들이 알지 못하던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귀신이 목적과 정체에 대하여 떠벌릴 때에 그것을 제지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강경합니다;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1:23-26).

(10)      둘째, 7절입니다; “7. (a) 일들은 지금 창조된 이요, 것이 아니라. (b)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c)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48:7); 새로운 예언의 특징과 사전에 예언을 말해주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7. 일들은 지금 창조된 이요, 것이 아니라”(48:7a);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는 목적과 정체에 대하여 이사야 만큼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선지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과 만민구원의 시대를 여시는 것은 은밀한 하나님의 계획이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창조라고 여기서 표현하고 있습니다(48:7a). 그렇지만 모세오경을 보면, 모세가 이미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모든 백성들에게 부어주어 모두 선지자가 있도록 해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b).

2)      그리고 특별한 선지자로 메시아가 오심을 벌써 암시하고 있습니다; “15.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 지니라”(18:15),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의의 교사인 메시아), 늦은 (성령님)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11:14). 훗날 요엘 선지자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늦은 예전과 같을 것이라”(2:23), “28. 후에 (여호와)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것이며”(2:28);

3)      그리고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가 어디에 오실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5:2). 그렇다면 선민들의 땅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일부 선지자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지금 창조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는 말일까요?

4)      ,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48:7b); 오늘 이전까지 선민들이 듣지 못하고 있는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설혹 메시아가 훗날 그들 선민의 사회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목적과 사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선민들은 그저 메시아가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며 그들 선민우월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시온의 영광을 온세상에 떨치기 위하여 그들의 사회에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메시아의 사명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섭리의 방향에 대하여 눈뜬 소경과 같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6:9-10).

5)      메시아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8:11-12, 9:10-13). 모두가 구원의 대상이며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3:3-8).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무덤에서 3일만에 창조주의 능력으로 부활해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6:4).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남은 인생을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게 때에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의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가 됩니다(1:12-13, 8:1-18). 그것이 완전한 구원의 모습입니다.

6)      그와 같은 만민구원의 의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을 짐작도 못하고 있는 선민들은 설혹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이방인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이방 땅으로 가서 외친 경우가 요나 선지자를 제외하면 없습니다(12:39). 그러므로 일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의 목적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가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48:7b)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7)      ,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48:7c);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사전에 예언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주시는 이유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반드시 성취되고 있음을 알게 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세상이 사람들의 뜻과 계획과 의지로 경영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의 음모와 꾀에 의하여 움직여져 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아닙니다. 훗날 하나님의 예언에 비추어보면, 하나님의 뜻과 의지만이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고치시고 올바른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어 나가도록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으로 사람의 인생과 역사를 동시에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현할 있도록 역사가 진행되고 성도들 자신의 인생과 온세상이 방향으로 움직여져 나간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11)      본문 8-1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의 공의를 깨닫고 만민구원의 일꾼으로 나설 있는 성도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어떤 자를 어떻게 준비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이사야는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48:8).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 패역한 백성들을 당장에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고 견디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48:9). 나아가서 그들을 연단하여 정금같이 사용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48:10-11). 그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지 이제부터 구절을 분해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2)      첫째, 8절입니다;8. (a)네가 과연 (풍문을) 듣지도 못하였고, (지식을) 알지도 못하였으며, (영적인)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b)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48:8);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면서 모세를 중심으로 하여 신정국가(神政國家) 세운 것은 주전 15세기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활동시기는 주후 1세기입니다. 중간이 되는 주전 8세기 선민사회 유대왕국에서 이사야가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하나님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생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현상은 메시아가 오실 때에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 8. 네가 과연 (풍문을) 듣지도 못하였고, (지식을) 알지도 못하였으며, (영적인)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48:8a); 창세기 2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 Living soul) 존재로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2:7). 대목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받고 흙에서부터 육체를 받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과 육이 함께 동거하고 있기에 생령이라고 하는 독특한 혼적(魂的, belong to soul)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성을 활용하여 학습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구절을 검토해보면 다음 사실을 있게 됩니다;

2)      사람들이 육적인 귀를 통하여 하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진의’(眞意, 진정한 ) 대하여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풍문이나 소식이 없습니다. 그럴까요? 사람들이 히브리경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을 배울 수는 있지만 중요한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는 영적인 직관력과 통찰력을 통하여 일종의 깨달음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경지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민들도 그러합니다. 그럴까요? 한마디로, 영적인 귀머거리이며 눈뜬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3)      ,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48:8b); 그와 같이 여호와말씀의 본래의 뜻을 사람들이 습득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기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 논에 먼저 물을 끌어다 대는 )으로 해석하여 선민들의 기득권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 조상 때부터 대를 이어가면서 진행되고 있기에 여기서 이사야는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48:8b)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둘째, 9절입니다; “9. (a)(여호와의) 이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것이며, (b) 영광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48:9);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선민의 사회가 멸망당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유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여호와의) 이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것이며”(48:9a); 여호와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람들과 언약을 체결하는 때입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9장에서 현대 인류의 조상이 되고 있는 노아와 하나님께서 소위 무지개 언약 체결하십니다(9:8-17). 그리고 12장에서는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방인 선교를 위한 언약 체결하십니다(12:1-4, 4:16). 그때 언약을 제시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 계약상 칼자루를 쥐고 있는 )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노아는 ’(, 언약의 법적 상대방임)로서 이름이 불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이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것이며”(48:9a)라고 말씀하시는 뜻은 옛날 노아 또는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언약을 아직도 기억하시고 있다는 뜻입니다(2:23-25). 그러한 언약에 이미 으로 서명하셨기에 언약의 실천에 신실하기 위하여 너희들을 당장 징계하고 멸망시키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시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2)      , 영광(榮光, glory, δóξα)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48:9b);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있습니다(19:7-8, 20:1-24:8). 그리고 모세를 먼저 공부시켜 백성들에게 율법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24:12);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불러간 열흘 이상이 지난 시점입니다. 지도자 모세가 보이지 아니하자 불안해진 백성들이 장로들을 내세워서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모세 대신에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32:1). 결과 금송아지우상이 여호와의 상징으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여호와께서 대노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을 전멸시키고 모세의 가족만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32:10, 19:40).

3)      모세가 손이 발이 되도록 백성을 위하여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그때 모세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 광야에서 백성들을 말살시키시면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비웃을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이라고 애써 출애굽을 시키고 드디어 광야에서 모두 죽여버리고 있으니 그러한 신을 누가 믿을 것입니까?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도 하나 제대로 변화시킬 없는 신은 창조주의 영광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32:11-13의역). 여호와는 모세의 중보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의 창조주로서의 영광을 생각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시키지 아니하십니다(32:14). 이사야는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생각하여 선민들을 멸절시키지 아니하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14:12). 더구나 이사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도 분명히 그러하다는 것입니다(10:1-4).

(14)      셋째, 10절입니다; “10. (a)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b)(, silver)처럼 (모두 용해하여 새로 만드는 주물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에서 (깨끗하게 다듬고 정련하는 메질법으로) 택하였노라”(48:10);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연단하여 쓸만한 청지기로 만드실 것입니다. 연단의 방법이 고난의 메질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48:10a); 이스라엘 자손들을 멸망시키는 대신에 그들을 연단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고 조상 때부터 패륜과 반역의 삶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을 어떻게 고쳐서 사용하면 될까요? 이사야는 방법이 바로 연단’(鍊鍛, 훈련과 단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8:10a).

2)      , “‘(, silver)처럼 (주물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에서 (메질법으로) 택하였노라”(48:10b); 금이나 , 또는 등으로 그릇이나 돈을 만드는 경우에는 크게 보아 2가지의 방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물법이고 하나는 메질법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뜻을 배신하고 있는 선민들을 연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물법 아니라 메질법 선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8:10b). 만약 주물법 사용하여 그릇이나 은화를 제조한다고 하면 비교적 쉽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틀에 은을 녹여서 붓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메질을 하여 완전한 모양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량생산을 위하여 획일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몰인격적이며 기계적인 생산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물법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개인의 성향과 재질의 차이를 훈련과 단련에 반영하고자 합니다. 방법이 바로 메질법입니다.

3)      금덩어리와 같은 소재를 모두 일단 편편하게 펴는 것입니다. 높은 것은 낮아지고 낮은 것은 높입니다. 그리고 너비도 가지런히 하여 원판을 만듭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만들지 먼저 생각하면서 대장장이가 원판을 두드리게 됩니다. 개개의 재질을 생각하면서 계속 메질하게 됩니다. 원판들을 서로 붙여서 하나의 필요한 유기적인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주님의 지체로서의 성도가 탄생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참고로, 사도 바울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4. 우리가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4-5).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연단의 과정도 서로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고난과 훈련을 통하여 거룩한 성도로 다듬어져 나갑니다. 결과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각자 맡은 기능을 넉넉하게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15)      넷째, 11절입니다; “11. (a)나는 나를( 이름을) 위하여, 나를( 영광을)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b)어찌 이름 욕되게 하리요, 영광(榮光, glory, δóξα)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8:11);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고쳐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피조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대방이 되고 있는 성도들도 언약의 내용의 성취에 신실해야만 합니다;

1)      하나, 나는 나를( 이름을) 위하여, 나를( 영광을)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48:11a);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고 하나님께서 사용할 있는 일꾼으로 만들어 나가는 모든 일이 사람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여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선언하신 하나님께서(1:26-27) 모든 책임을 지시고 죄인이 속죄할 있는 방도를 마련하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b) 세상에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게 것입니다(1:12-18, 3:13-17, 17:3).

2)      , 어찌 이름 욕되게 하리요, 영광(榮光, glory, δóξα)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8:11b);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처음 약속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따라서 죄와 사망에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서 살아갈 있도록 역사하십니다(1:12-13, 3:16-17, 8:1-11). 일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7:24-25).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훗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게 됩니다(고전15:24). 주님과 성도들이 세상 건설의 모든 영광을 오로지 생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12.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아, 내가 (회개의 대상으로)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만물의 시작도 마지막도 전부 창조주 여호와께서 결정하신다는 것임. 그 말씀에는 구체적으로 ①창조주이며 모든 생명의 주인, ②인생과 역사의 섭리자, ③심판과 구원을 아울러 행하는 자, ④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여 영생의 구원을 완성하는 능력자라는 의미가 두루 들어 있음, 15:1, 17:1, 12:12, 19:4-6, 65:17-18, 11:36, 1:8). 13.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여호와가 홀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들어 배치하셨다는 것임),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피조된 세상만물이 모두 창조주인 나의 말에 순종하여 내 뜻대로 움직인다는 것임) 14. (세상제국 바벨론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신바벨론제국을 멸망하기 위하여 내가 동원한 아리안족의 군대는 나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아직 신바벨론에서는 아는 자가 없다는 것임) 15.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역사의 섭리자인 나 여호와가 시행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실현이 된다는 것임) 16.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선민들에게는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가 미리 말해준다는 것임).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출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나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벌써 알려주었다는 것임, 6:13, 39:5-7, 44:28).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여호와의 말씀의 주관자인 독생자와 하나님의 진리의 영을 함께 보내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거듭 확인하여 주고 계심, 15:1, 1:34-38, 11:27, 11:1-12, 31:31-34) 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거룩한 성도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방편을 마련하여 주신다는 것임, 52:13-53:12) 18.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여호와의 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였다고 하면 분명히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였을 것이며 영생에 이르는 마음의 확신과 평안을 얻었을 것임, 11:1-12, 65:17-18, 66:20-21, 5:43-48, 12:30-31), 19.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혈통적인 선민구원사상을 벗어나서 진실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갔더라면 그로 말미암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믿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났을 것임, 19:4-6, 1:12-18, 6:38-40). 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알게 하여 들려 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장차 출바벨론의 은혜를 얻게 되면 그때부터는 부디 선민들이 만민구원의 여호와의 역사를 온세상에 전하도록 하라는 것임) 21.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이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 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이 솟아나게 하셨느니라!(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 옛날 광야에서 의식주를 해결하여 주신 여호와의 은혜가 다시 풍성하게 성도들에게 임하게 될 것임, 13:21-22, 15:25, 27, 16:12) 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동시에 성도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아말렉과 같은 모든 악한 세력을 여호와 닛시로 분쇄하여 주실 것임, 17:11-16)“(48:12-22);

(1)  본문 12-15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의 놀라운 선언, 내가 선민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수로 여기고 있는 이방인과 이방나라를 구원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게 만드실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갈대아왕조 신바벨론제국의 백성들까지 구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8:14, 19:22-25). 더구나 천지와 만물 그리고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불러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맡긴 동일한 사명을 완수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  첫째, 12절입니다; “12. (a)야곱, 내가 부른 이스라엘, 내게 들으라. (b)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48:12); 하나님께서 야곱과 이스라엘을 모두 불러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      하나, 12. 야곱, 내가 부른 이스라엘, 내게 들으라”(48:12a); 여기서 야곱 개인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개인 야곱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하셨고(35:9-15)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도 선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19:5-6).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생 가운데 개인적으로도 말씀하시고 역사 가운데 전체 민족을 상대로 하여서도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능력의 말씀으로 개인의 인생도 인도하시고 민족의 역사도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2)      ,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48:12b); 언제까지 개인의 인생과 민족의 역사를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이사야가 한마디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은 그때부터 인생과 역사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인도하시고 동행하신다 것입니다.

(3)  둘째, 13절입니다;13. (a)과연 손이 기초를 정하였고 오른손이 하늘 폈나니, (b)내가 그들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48:13); 야곱과 이스라엘만을 부르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분이 바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1)      하나, 13. 과연 손이 기초를 정하였고 오른손이 하늘 폈나니”(48:13a); 개인의 인생과 민족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 선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 주신 여호와이시기에 자신들만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나 다른 민족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4:5, 9-11, 9:11, 10:3).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대목에서 이사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만물들이 살아갈 있도록 땅의 기초를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48:13a).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능력으로 하늘을 펼치시고 하늘과 사이에서 만민과 만물들이 살아갈 있도록 창조의 질서를 만드신 것입니다(1:31, 5:45).

2)      , 내가 그들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48:13b); 그렇게 만민과 만물을 모두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만민과 만물의 이름을 모두 불러 세울 있습니다(48:13b). 이제 자신들만 선민이며 구원의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들은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만민과 만물을 차별 없이 선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44:28, 45:1-8).

(4)  셋째, 14절입니다; “14. (a)너희는 모여 들으라. (b) 여호와가 사랑하는 나의 기뻐하는 바벨론 행하리니, 그의 (동행하며) 갈대아 에게 임할 것이라. (c)그들 중에 누가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48:14);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누구와 함께 일을 행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1)      하나, 14. 너희는 모여 들으라”(48:14a); 선민이 이방인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때에는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나아와야만 합니다. 그렇게 함께 나아와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48:14a). 따라서 선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이방인들에게 전해 주어야만 합니다. 자신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2)      , 여호와가 사랑하는 나의 기뻐하는 바벨론 행하리니, 그의 (동행하며) 갈대아 에게 임할 것이라”(48:14b);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누구일까요? 자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자입니다(48:14b, 12:1-2). 뜻은 원수와 원수의 나라를 용서하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뜻을 전해주는 것입니다(5:44). 특히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은 그들 원수의 나라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임재하시고 동행하십니다(28:18-20). 그리고 특히 구원사역에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1:8).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사명자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의 땅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의 (동행하며) 갈대아 에게 임할 것이라(48:14bb).

3)      , 그들 중에 누가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48:14c);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시대가 바야흐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원수를 위하여 기도해주고 복음을 전해주는 자들이 아닙니다. 일부만이 자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그들 중에 누가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48:14c) 묻고 있습니다. 복음의 사역자로 나서는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스라엘 불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5)  넷째, 15절입니다;15. (a) 내가 말하였고, 내가 그를 부르며, (b)그를 인도하였나니, 길이 형통하리라”(48:15);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공평하십니다. 똑같이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1)      하나, 15. 내가 말하였고, 내가 그를 부르며”(48:15a);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전해들은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그들을 하나님은 모두 하나님의 일을 있는 일꾼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자원하고 나서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나서는 , 진정한 제사장나라이며 거룩한 백성인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하나의 특전을 베풀고자 하십니다.

2)      , 그를 인도하였나니, 길이 형통하리라”(48:15b); 특혜가 바로 인도하심입니다(48:15b, 8:29, 16:13-15).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기 위하여 원수를 용서하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사용하겠다고 자원했기 때문에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약속과 은혜가 인생길에 함께하게 됩니다; “강력한 보호하심이 있게 되며 그를 통하여 가는 곳마다 구원의 복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12:1-3). 아울러 인생길을 인도하며 영과 육의 강건함과 형통함으로 일을 행할 있도록 배려하십니다. 사실을 깨닫고 있는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성도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2. 사랑하는 자여,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2-4).

(6)  본문 16-19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진작에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것인지를 예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6절과 18절이 그러합니다; “16. 너희는 (메시아)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창조와 계시가)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여호와께서 (독생자 메시아) (여호와) 보내셨느니라”(48:16), “18.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평강 강과 같았겠고, 공의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48:18).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진작에 생명의 말씀으로 제대로 알아듣고서 그대로 실천했더라면 벌써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거룩한 백성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렸을 것이며, 제사장나라는 공의의 실천으로 이방인들의 영혼까지 살릴 있었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하지 못했기에 이제는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고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강림하여 임재하십니다. 목적은 성도들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그리고 신위적인 능력으로 만민을 구원하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48:16, 18).

(7)  첫째, 16절입니다; “16. (a)너희는 (메시아)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b)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창조와 계시가)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c)이제는 여호와께서 (독생자 메시아) (여호와) 보내셨느니라”(48:16); 분절하여 살펴봅니다;

1)      하나, “16. 너희는 (메시아)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48:16a); 이제는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의 말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 되면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리스도) 말을 듣고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2)      ,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창조와 계시가)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48:16b); 메시아가 이미 창조 때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모든 계시를 알고 계셨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땅에 오시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하신 독생자이십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것이 없느니라. 4.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1-4).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계시의 말씀을 관장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자는 메시아로 오시는 독생자가 하늘에 있을 때에 땅으로 보내어준 자들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27.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3)      ,이제는 여호와께서 (메시아) (여호와) 보내셨느니라”(48:16c). 만민구원과 만물구원의 시대를 창조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실까요? 대목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가장 명쾌하게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자 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만민구원에 나서는 성도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엄청난 도움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48:14)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48:16c, 16:6-7). 훗날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6-20).

(8)  둘째, 17절입니다; “17. (a)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b)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 여호와라”(48:17); 다음과 같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하나, 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48:17a); 가지 용어의 뜻을 되짚어서 생각해보면 다음의 의미를 수가 있습니다; 먼저 구속자라고 하는 용어는 뜻이 종으로 팔려가 살고 있는 자를 돈을 주고서 다시 사서 해방시켜주는 자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속의 대상자는 현재 해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는 죄와 사망의 세상에 사로잡혀서 여전히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8:2, 2:2). 험악한 세상은 무한경쟁의 사회이며 약육강식의 사회입니다(6:1-5). 그러므로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해치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차지해야만 합니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재화가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남지 아니하면 죽음으로 가게 되는 자는 바로 자신이 것입니다.

2)      다음으로 거룩하신 그러한 세상을 뛰어넘어 있는 자이며 세상을 거룩한 모습으로 바꿀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만약 그러한 경지의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면 한번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속에서 이전구투(泥田狗鬪, 진흙탕 속의 개싸움) 전투만을 벌이다가 결국은 비슷한 세상을 만들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세상에서 거룩하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분의 자녀와 같은 권세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12-13). 따라서 거룩하신 로부터 능력을 받지 못하게 되면 영원히 이전구투의 삶을 영위하다가 죄와 사망이 지배하고 있는 땅에서 죽고 것입니다.

3)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 여호와라”(48:17b); ‘양약고구이이어병’(良藥苦口而利於病,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몸에는 유익하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가 싫습니다. 현실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치자고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듣기에 크게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심성이 탐욕적이며 남을 해치더라도 자기만 살고 성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주의라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도 싫고 더더구나 실천하기가 싫은 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어떻게 처방을 마련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4)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주십니다(21:34-36, 7:52). 선지자는 먼저 백성들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하고 난민이 되고 것이라고 예언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채찍을 휘두르십니다(48:10-11). 그것은 백성을 고쳐서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옛날 경험했던 광야생활이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마땅히 행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백성들이 체득하게 것입니다(48:17b).

(9)  셋째, 18절입니다;18. (a)네가 나의 명령 주의하였더라면, (b) 평강 같았겠고(22:2-3), 공의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11:9)”(48:18); 하나님의 말씀을 자식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알아듣는 자는 다음과 같은 복을 얻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1)      하나, 18. 네가 나의 명령 주의하였더라면”(48:18a); 여호와의 말씀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1:3). 그렇게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쥐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명령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명령으로 알아듣고 정직하게 시행하는 자는 영생의 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25:34-46, 17:3). 반대로, 코웃음을 치고 비웃고 마는 자는 영육 간의 소멸을 맞이할 따름입니다(10:28).

2)      , 평강 같았겠고(22:2-3), 공의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11:9)”(48:18b);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생명을 살리는 명령으로 제대로 알아듣고서 공의의 정신으로 시행을 하는 자는 세상에서 2가지의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같은 평화의 은혜입니다; 성도는 마음 속에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영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육체적인 장애와 질병도 치료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3)      이유는 영적으로 이미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강물이 흘러나와서 성도와 사역의 현장에서 치유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2:2-3). 하나는, 생명살림의 넓은 역사가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되는 은혜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무엇으로도 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생각하는 방법과 사는 방법이 달라지게 되자 놀라운 변화가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철옹성과 같던 약육강식의 사회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생명살림의 넓은 역사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말씀의 능력으로 땅을 마치 바닷물처럼 뒤덮어가고 있습니다(11:9);

(10)    넷째, 19절입니다;19. (a) 자손 모래 같았겠고(1:13), (b) 몸의 소생 모래 같아서(22:17), (c)그의 이름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d) (자손의 구원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48:19); 영적인 자손과 혈통적인 자손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사람의 이름과 자손의 이름을 또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9. 자손 모래 같았겠고(1:13)”(48:19a);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실천하게 되면 많은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12:3). 그래서 이사야가 영적인 자손이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기록과 같이 훗날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가 많이 발생할 것입니다(2:40-41). 그것은 사도 요한이 지적한 것처럼 훗날 혈통적이거나 민족적인 테두리를 뛰어넘어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많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1:12-13).

2)      , 몸의 소생 모래 같아서(22:17)”(48:19b);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때에 그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 부르시고 8명의 아들을 주셨습니다(16:15, 17:5, 21:3, 25:1-6).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면 후손이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입니다(48:19b).

3)      , 그의 이름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48:19c); 다니엘은 많은 사람을 여호와께로 인도하여 의의 길로 살아가게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12:3). 여기서 이사야는 이름이 하나님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뜻은 이름이 생명책에 확실하게 기록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32:32-33, 10:20, 21:27).

4)      , “(자손의 구원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48:19d);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본 이후 남은 평생을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9:3-22, 22:21). 그러한 사도 바울이 한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골육과 친척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11:13-14). 소원을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사도 바울을 도와 선교에 함께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의 친척들이기 때문입니다(16:7, 11, 21). 그러므로 여기서“(자손의 구원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48:19d) 이사야의 예언은 사도 바울의 증언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11)    본문 말미 20-22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세상제국 신바벨론이 어이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 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에서 살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동족인 선민들은 온세상에 증거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민만의 구속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이제는 세상 만민을 구속하는 메시아의 사역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나라 건설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은 결코 평강을 얻지 못하고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 들어가게 것이라는 예언입니다(48:22, 12:31-32).

(12)    첫째, 20절입니다; “20. (a)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b)갈대아 (선민을 종으로 삼는 신바벨론의 지배족속) 피하고, (c)즐거운 소리(복음) 이를 알게 하여 들려주며, (d)땅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야곱 구속하셨다 하라”(48:20); 세상제국 바벨론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깊은 뜻을 수가 있습니다;

1)      하나, 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48:20a); 먼저 역사적인 측면을 살펴보고 다음에 영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고 있는 시기는 주전 8세기를 전후한 때입니다. 그런데 주전 6세기에 들어서면 정확하게는 주전 586년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왕하25:1-7). 백성들은 북송을 당하여 바벨론의 여러 지역에서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옛날 남서쪽 애굽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번에는 동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동일한 삶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임하게 것입니다. 그들을 구속하여 ()바벨론시키는 것입니다. 작업이 구체적으로 바사의 고레스를 강성하게 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44:28-45:8). 그런데 이사야는 신바벨론 정체에 대하여 사탄 루시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14:4-20). 그러므로 세상제국 신바벨론은 땅의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고서 사탄을 섬기고 있는 제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바벨론을 정확하게 음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17:1, 5). 그러므로 여기서 이사야가 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48:20a)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3)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악의 화신인 세상의 제국 바벨론에게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사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메시아의 오심,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가 모두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대해서는 이사야가 이미 바사의 고레스를 강성하게 하여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45:1-5, 1:1-4). 그리고 이제는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그동안 사탄이 지배하고 있던 죄와 사망의 권세 그리고 하수인 바벨론이 장악하고 있던 세상적인 권력이 모두 깨어지고 성도들이 구원과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발생하게 것입니다(48:20a, 12:31-32, 8:1-2, 18:10).

4)      , 갈대아 (선민을 종으로 삼는 신바벨론의 지배족속) 피하고”(48:20b); ‘갈대아 들은 본래 시리아에 살고 있는 아람족속의 갈래입니다. 그들은 유프라테스강을 타고 남하하여 바벨지역을 차지하고 갈대아왕조 만듭니다. 후에 갈대아왕조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하고서 신바벨론제국 건설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바벨론의 지배를 벗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온세상에 전파할 때에 갈대아 피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48:20b). 의미가 무엇일까요?

5)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훗날 메시아에 의한 만민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할 때에 반드시 명심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3.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3-44). 여기서 예수님이 원수또는 박해하는 라고 표현하고 있는 자는 바벨론과 같은 사탄의 제국이 아닙니다. 그들은 악한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불쌍한 사람들 갈대아 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칼로 정복하는 것이 만민구원의 사역이 아닙니다(26:52). 그들 역시 애굽인처럼 모두 장차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19:22-25).

6)      당장은 복음을 전하는 자를 박해하고 있는 갈대아 인들과 같은 그들을 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심시키고 복음을 받아 들일 있도록 문을 여실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0:14-15).

7)      ,즐거운 소리(복음) 이를 알게 하여 들려주며”(48:20c); 바벨론의 치하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섭리를 통하여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것이 구속의 역사입니다. 즐거운 소식을 선민들만 만끽하지 말고 이제는 만민구원의 소식으로 온세상에 전해주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만민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라고 하는 주님의 지상명령’(28:18-20, 24:44-49) 같은 취지의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8)      , 땅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야곱 구속하셨다 하라”(48:20d); 출애굽에 이어 출바벨론의 역사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하십니다. 다음에는 사탄의 세력을 쫓아내고 만민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가 전세계적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여기에서 땅끝까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48:20d).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구속사역은 장차 세상에 임하게 되는 만민구원 역사의 예표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3)    둘째, 21절입니다; “21. (a)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이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시되, (b)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흘러 나게 하시며, 바위 쪼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48:21); 하나님의 신위적(神威的, 신의 위력에 해당하는) 구원이라는 창조의 능력은 이미 역사적으로 출애굽과 광야생활에서 다음과 같이 선을 보인 바가 있습니다;

1)      하나, 21.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이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시되”(48:21a); 사람의 육신은 69% 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뜨거운 사막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13:21-22). 그러나 마실 물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고통입니다. 갈증으로 기진맥진하게 되고 몸의 피가 돌지 못하게 지경입니다(15:24, 17:3).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사막에서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15:25, 17:6, 8:15, 48:21a).  

2)      ,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 쪼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48:21b); 이사야는 사막에서 백성들에게 물을 만들어 주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2가지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21ba). 하나는 바위를 쪼개어 물이 솟아나게 만들고 있는 신기한 현상입니다(21bb). 어느 표현이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고 있을까요? 언뜻 생각하게 되면, 분명히 신기한 두번째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심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이고 있는 속에 이미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능력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3)      따지고 보면, 바위 아래에 숨어 있는 지하수를 찾아서 물이 바위에서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나 바위를 쪼개어 사이로 크게 물이 분수처럼 치솟아 오르게 만드는 것이나 모두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심히 자연스럽게 구원의 물줄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섭리이며 새로운 창조의 역사입니다(48:16, 18). 그러므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14)    셋째, 22절입니다; “22. (a)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b)악인(하나님의 생명살림의 역사를 끝까지 방해하는 )에게는 평강(영원한 생명의 안식에 들어갈 있다는 안도감) 없다 하셨느니라”(48:22);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바벨론에서 나오고 어째서 갈대아 인들을 피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을까요? 이유는 바벨론과 갈대아 인을 분리하여 처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종말심판이 다음과 같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 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48:22a);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는 것은 창조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말씀이 입에서 세상으로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4:4). 그러므로 말씀은 반드시 피조세계에서 창조주의 뜻을 관철하게 됩니다. 헛되이 되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55:10-11). 그렇다면, 반드시 세상에서 관철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요?;

2)      , 악인(하나님의 생명살림의 역사를 끝까지 방해하는 )에게는 평강(영원한 생명의 안식에 들어갈 있다는 안도감) 없다 하셨느니라”(48:22b); 그것은 죄인으로부터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죄인들입니다(3:9-18). 그러나 메시아를 영접하고 차후로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메시아를 끝까지 배척하고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며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는 자에게는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죄를 묻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범인 사탄과 끝까지 행동을 같이 하므로 동일범죄의 종범으로 처벌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3)      죄에 대한 처벌은 참으로 무겁습니다; “30.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0-32).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함을 받을 없다고 하는 것은 영벌의 처벌을 받을 것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역사를 끝까지 방해하는 자는 평강이라고 하는 영원한 안식의 복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속에 들어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20:15).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의 용어사용과 개념의 연결이 실로 절묘합니다. 예를 들면, ‘야곱의 유다의 허리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창세기의 내용을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대기 가운데서 가장 알기 쉽게 하나님의 공의의 원칙과 거룩함을 회복하는 방법을 발견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엄청난 배려이며 은혜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동일하신 하나님의 원칙이 역사 가운데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모습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처음부터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열심히 묵상하고 깨달음을 실천하고자 결심한다면 누구나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의 능력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선지자 이사야에게 임하고 있는 말씀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