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새 언약과 새 예루살렘성을 너에게 줄 것이다”(사54:1-55: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9. 23. 00:45

제목;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새 언약과 새 예루살렘성을 너에게 줄 것이다”(54:1-55:13)

설교일; 주후 20272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9 23일 화요일 작성)

본문 이사야 제54장의 전반부는 이미 기록한 이사야 제50장 제1절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이사야는 제50장 제1절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자식과 같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을 버린 것이 아니며 신정국가 이스라엘과 갈라서지 아니했다는 사실을 여호와께서 조강지처와 이혼하기 위하여 이혼증서를 발부하여 집에서 내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2)  둘째, 그 사실을 이사야가 이제 제54장 전반부인 제1-10절에서는 영원한 영적인 관계로 격상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체계적으로 풀이하여 보면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세상적인 언약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명 시내 산 언약으로 알려지고 있는 그 언약의 주내용은 세상제국 애굽에서 노예와 같은 학대를 당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하여 출애굽하게 만든 여호와의 목적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19:4-6).

2)   그것은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54:5). 신정국가의 백성인 모든 선민들은 온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방세계에 전달하고 회개하는 자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려주는 제사장의 직무를 누구나 수행해야 합니다(42:10). 그와 같은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때에 선민 이스라엘의 나라는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3:2-10).

3)   선민 이스라엘이 도무지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주변의 이방인을 미워하고 있습니다(5:43). 선민들은 하나같이 그 옛날 다윗대왕이 건설한 이스라엘제국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민의 제국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메시아를 다윗의 후계자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구하면서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고 있는 선민의 나라를 창조주 하나님이 더 이상 존속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그 결과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장차 남조 유대왕국마저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지하고 있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미래입니다.   

4)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제54장 전반부에서 장차 메시아가 유대인사회에 오시면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시는 선민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가 되어 그때는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공간적인 제약을 벗어나서 세상 모든 나라와 만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여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나아올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 세상에서 소원성취하고 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복락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5)   그와 같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메시아에 의하여 선포되고 그 다음에는 성도들이 세상 끝까지 나아가서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시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54:7-10). 참고로, 그것을 이사야의 뒤를 잇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선지서에서 새 언약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31:31-34).

선지자 이사야는 제54장 후반부에서 하나님나라의 도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새 예루살렘성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3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첫째, 새 예루살렘성은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는 것입니다(54:11-12). 참고로, 그 사실을 성경의 마지막 정경인 요한계시록 제21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21:10-24);

(2)  둘째,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한 자들 그리고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이 세상을 경영한 자들이 이 세상의 정죄를 이기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큰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54:14, 16-17). 먼 훗날 사도 요한의 계시록의 기록도 그러합니다(21:22-27).

(3)  셋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성도들을 이 세상에서 보호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크게 나타나서 적들을 쳐부수고 마신다는 것입니다(54:15). 그 사실을 훗날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그들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12:31-32, 8:37-39).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는 제55장에서 구원주 메시아의 오심과 여호와의 영이 성령으로 성도들에게 능력으로 내주 역사하게 되는 새로운 역사의 특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첫째,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과 맺은 여호와의 시내 산 언약은 선민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폐기되고 말았지만 장차 여호와 하나님이 메시아와 하나님의 영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새로이 맺게 되는 언약은 그 속성이 시간적으로 영원하다는 것입니다(55:3). 그 이유는 전능하신 여호와의 영을 성도들의 심령속에 내주 역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14:16-20) 이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들의 앞길을 함부로 막아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55:8-13).

(2)  둘째, 새로운 언약은 공간적으로 온 세상 만물과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창조주 여호와의 긍휼을 반영하고 있습니다(55:4-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영접하고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값없이 나아와서 회개하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 거듭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55:1-2). 그들은 영생구원의 기쁨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동안 영적으로 흡족하게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55:12-1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사래와 같은, 11:30) 너는 노래할지어다!(90세의 노파 사라는 여호와의 예언 그대로 회춘되고 불임이 치유되어 남편 아브라함과 합방하여 노년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출생하여 진정 기쁨으로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음, 21:1-7) 산고를 겪지 못한(여호와의 말씀을 만민구원을 위하여 이방지역에 전파한 적이 없는 선민 이스라엘인) 너는(12:39) (여호와께서 메시아와 하나님의 영을 보내어 주심을, 53:10-12, 11:1-12)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세상적으로)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영적으로는)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4:16)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선민 유대인만의 영광을 추구하는 좁은 생각에서 속히 벗어나 만민구원을 위한 여호와의 제사장나라로 굳건히 서라는 것임, 19:4-6)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그것이 여호와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이웃사랑의 실천인 것임, 5:43-48, 6:9, 10:36-37)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여호와신앙을 저버림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부끄러운 역사는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버리고 제 살길을 찾아 떠난 것과 같음, 24:36-39)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24:37-39)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이 세상을 이기게 될 것임, 12:31-32)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주님이 아니 계실 때 사도들이 세상권세에 지는 수치와 스승을 배신하는 치욕을 당한 것임, 14:50, 68-72),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창조주 하나님)네 남편(너의 주인이 되어 함께 영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임)이시라. 그의 이름은(성부 하나님은, 19:4-6, 9) 만군의 여호와(3:14)이시며, 구속자는(그리스도이신 성자 하나님은, 11:1-12)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메시아, 11:1)시라. 그는(메시아에게 함께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은, 11:2, 1:14, 14:16) 온 땅의 하나님이라(24:3)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1:8)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50:1, 이혼증서를 주지 아니하고 다시 돌이키실 것임)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선민의 회복, 11:30-33).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불쌍히 여겨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삼으신 것임, 3:16) 너를 모을 것이요(3:13-17),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25:29)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세상의 원수인 애굽과 앗수르를 선민 이스라엘과 함께 돌이킬 것임, 19:21-25)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11:29-36). 9.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소위 무지개언약을 말하고 있음, 9:8-17),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그리스도 안에서 보혜사 성령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사람의 심령 속 악한 세력을 내쫓아야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맞이하는 것임, 8:1-2, 6:5, 8:21), 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영원한 구원의 언약임을 말씀하심, 55:3-5, 5:1)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33:19, 그 옛날 여호와는 모세에게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으로 벌써 나타나신 것임)“(54:1-10);

(1)  1-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자의 후손(3:15), 특히 사라와 리브가의 후손 마리아로부터 메시아가 나타나고 그로부터 만민구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유에 대하여 예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사라와 리브가의 경우를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습니다(54:1, 17:15-21, 25:21-26). 그리고 완전한 여자의 후손인 메시아로 말미암아 유대교가 개혁되고 세상에 개방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54:2, 3:15, 1:26-38). 끝으로, 이사야는 자신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임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서 세상에 퍼져 나가는 성도들에 의하여 열방과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54:3). 이제부터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a)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b)이는 홀로된 여인의 자식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1); 사라와 리브가 그리고 마리아의 예를 들어서 다시 살펴봅니다;

1)      하나,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産苦, 출산의 고통)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54:1a);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모든 불임여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자신을 잉태하고 출산할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불임여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선민들과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열매를 맺을 있는 방법을 메시아로부터 배워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2)      , 이는 홀로된 여인의 자식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1b);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사례가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의 내용에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불임여성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89세인 사라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삭이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사라의 며느리 리브가에게서도 동일한 역사가 발생합니다.

3)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는 결혼한지 20 동안 자식생산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삭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서 기도하자 쌍둥이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 아들 야곱이 훗날 하나님의 족장 이스라엘이 되고 12아들을 낳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입니다. 후손 가운데 다윗왕조가 나타나고 메시아의 어머니 마리아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홀로된 여인 과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생산한 여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라와 리브가의 경우입니다. 그녀들은 모두 남편이 있지만 불임여성입니다. 그러다가 태를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식을 생산하게 됩니다.

4)      하나는, 완벽하게 남편이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유일하게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님이 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메시아를 낳게 하신 것입니다(1:35). 메시아로 말미암아 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가 활짝 열립니다. 결과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타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한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사야가 의미심장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홀로된 여인의 자식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1b). 장차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거듭난 성도들의 수가 많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3)  둘째, 2절입니다; “2. (a) 장막 넓히며, 처소의 휘장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b)너의 길게 하며 너희 말뚝 견고히 할지어다”(54:2); 여호와신앙을 어떠한 방법으로 세상에 넓힐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 장막 넓히며, 처소의 휘장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54:2a); 선민들의 유대교는 성전의 장막터가 유대인들의 생활터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민들이 여호와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가 여호와의 진노를 받아 멸망 당하게 되는 족속들에 불과하다고 선민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방인심판을 전제로 구축하고 있는 무서운 선민만의 구원사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좁은 유대인들의 터전 안에 들어와야만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속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선민사상에 의한 유일한 이방인구원의 방법입니다.

2)      그런데 위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사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터를 세상 끝까지 넓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하고 있는 성막의 덮개 휘장을 모든 하늘을 가릴 있을 정도로 활짝 펴는 것입니다.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으로 뜻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선민사상을 상징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집니다. 그것을 그리스도가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통하여 새로이 건설합니다(2:19). 새로운 성전은 보이는 성전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건설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21-24).

3)      , 너의 길게 하며 너희 말뚝 견고히 할지어다”(54:2b); 성막을 지을 때에 지붕의 윗덮개를 양쪽으로 당겨서 줄을 말뚝에 고정합니다. 그리하여야 성막을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가 너의 길게 하며 너희 말뚝 견고히 할지어다”(54:2b)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상끝까지 확장할 있도록 너희들이 줄을 잡고서 세상끝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교지에 말뚝을 박고 성전의 지붕을 덮고 있는 줄을 고정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의 선교지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며 교회를 건설하라는 지상명령을 의미하고 있습니다(28:18-20).

(4)   셋째, 3절입니다; “3. (a)이는 좌우 퍼지며, 자손 열방 얻으며, (b)황폐한 성읍들 사람 되게 것임이라”(54:3); 여호와신앙을 세상에 전하는 성도들의 미래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3절입니다; 3. 이는 좌우 퍼지며, 자손 열방 얻으며”(54:3a);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백성 디아스포라’(scattered seeds) 관한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사회로 들어가서 살다가 보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자손 때에 가서 나라가 복음화되는 것을 있다는 것입니다(54:3a).

2)      , 황폐한 성읍들 사람 되게 것임이라”(54:3b); 이방인들이 여호와신앙을 가지게 되면 땅에 놀라운 변화가 발생합니다. 광야와 같이 황폐하고 메마른 땅에 생기가 돌고 사람이 살만한 땅으로 변하게 됩니다; 실제로 역사 가운데 그와 같은 변화를 보게 됩니다. 19세기의 덴마크와 20세기의 이스라엘이 그러합니다; 덴마크는 바닷바람이 심한 곳입니다. 그곳을 농토와 목축지로 개발하자고 민족의 지도자 그룬트비목사(1783-1872) 앞장을 섭니다. 루터파 목사인 그는 1840년대부터 덴마크여 깨어라!” 각성 운동을 전개한 사람입니다.

3)      덴마크 사람들은 그룬트비 목사와 함께 해변에 나무를 심어 해풍을 막습니다. 결과 덴마크는 풍요로운 농촌으로 살아납니다. 20세기의 현대 이스라엘은 농업개발에 있어서 하나의 기적을 이룹니다. 광야를 개발하여 농업지역을 조성한 것입니다. 주역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공동체인 기브츠입니다. 유대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230개의 기브츠 운동이 그러한 기적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제자와 성도들이 앞장서고 있는 복음사역의 현장에서는 얼마나 열매와 변화가 나타날까요? 장차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5)   4-8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태초에 죄를 범한 아담부부가 가운데 영생하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내어 보내신 하나님께서(3:22-24) 그들의 신원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신다고 예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긍휼과 영원한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구속자 여호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54:8). 그렇다면, 구속자 여호와의 일을 땅에 오셔서 직접 수행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의 의로운 메시아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53:4-11). 이제부터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6)   첫째, 4절입니다;4. (a)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 보지 아니하리라. (b)네가 젊었을 때의 수치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54:4); 이사야는 장차 두렵고 놀라운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 보지 아니하리라”(54:4a); 사람들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사야가 설명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창세기를 참조하게 되면 2가지 이유를 발견할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때문에 에덴동산 바깥으로 추방당했기 때문입니다. 실락원(失樂園, lost paradise)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고 세상적으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세상적으로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되는 거룩한 인생을 살아갈 있도록 만들어주고자 하십니다.

2)      , 네가 젊었을 때의 수치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54:4b); 용어의 의미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 젊었을 때의 수치 철이 없을 때에 범한 잘못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철이 들고 믿음이 성숙해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죄인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부 때의 치욕 남편의 말을 따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한 잘못입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주인이 여호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모든 일을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편리하게 처리해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과부의 치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와 같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주인이며 강력한 남편이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7)   둘째, 5절입니다; “5. (a)이는 너를 지으신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시라. (b)그는 땅의 하나님이라(24:3)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54:5). 이사야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어 땅에 구원을 베푸시는 이유가 다음과 같은 2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5. 이는 너를 지으신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시라”(54:5a); 하나님께서 범죄한 죄인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실까요? 첫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잘못 만든 책임을 창조주가 스스로 지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제조자 책임의 원칙 같은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범죄한 인간의 보호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시는 보호자를 말하고 있을까요? 이사야는 남편과 같은 책임을 지시는 보호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참고로, 고대사회에서 결혼한 여자에 대하여 모든 책임은 가장이며 족장인 남편이 전부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책임을 지시고 또한 남편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지시고 범한 자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방법이 죄짐을 대신 지는 구속함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여기서 구속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족인 선민들에게 여호와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뜻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답게 선민들이 부디 여호와의 제사장과 선지자의 노릇을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3)      , 그는 땅의 하나님이라(24:3)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54:5b); ‘땅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특별한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경우는 아브라함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며느리를 구하기 위하여 동생 나홀이 살고 있는 하란 땅으로 늙은 종을 파견하고자 합니다. 그때 하늘의 하나님 그리고 땅의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24:3). 의미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축복의 언약을 자신에게 주셨으니 언약이 반드시 땅에서 성취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땅에 오셔서 실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은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만민구원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땅에 오시는 하나님이 누구일까요? 분이 여호와의 독생자인 메시아입니다(1:14-18).

(8)   셋째, 6절입니다;6. (a)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b)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6); 하나님께서는 마음 속에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1)      하나,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54:6a); 젊은 아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 남편이 귀한 모르고 함부로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결과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와 같은 이사야의 이야기는 훗날 그리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탕자의 비유 같습니다(15:11-24). 탕자가 객지에서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그때서야 회개합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종으로라도 살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이사야가 여기서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뜻은 마음에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의 구속함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2)      ,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6b);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본문의 말씀은 그의 자의적(恣意的, 임의적인 제멋대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전하라고 위탁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말씀 그대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부르심을 받지 못하게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이라고 하여 모두가 구원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8:11-12). 마음에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근심하고 구속자로 오신 메시아를 진심으로 영접해야 합니다(1:12-13). 그것이 회개의 방법입니다.

(9)   넷째, 7절입니다;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긍휼 너를 모을 것이요”(54:7);

먼저 창세기의 말씀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3:21-24). 다음 2가지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고 죄성(罪性) 가지게 아담부부가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임의로 따먹게 되면 여호와의 진노 가운데 영생하게 되는 지옥과 같은 삶을 영위하게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과 아담부부는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비극을 예방하기 위하여 부득이 그들을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보내고 생명나무를 임의로 따먹지 못하도록 조치하십니다. 하나는, 아담부부를 세상으로 내보내실 때에 하나님이 손수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 주십니다. 양을 잡아 가죽으로 가리움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속죄의 제사의 의미와 통하고 있습니다.

2)      훗날 완전한 대속의 어린양이 세상에 오게 됩니다(1:29). 메시아입니다. 가리움을 받고서 구원을 받아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덴동산에서의 삶을 누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요컨대, 실락원과 같은 세상에서의 추방생활은 잠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메시아 구원의 방책을 세워두고 계십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함께 있도록 벌써 길을 모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범한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시라고 이사야가 본문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54:7).

(10)      다섯째, 8절입니다; “8. (a)내가 넘치는 진노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 너를 긍휼 여기리라. (b)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8);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자비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8. 내가 넘치는 진노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 너를 긍휼 여기리라”(54:8a);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 그리고 자비와 긍휼은 크기가 어떻게 다를까요? 이사야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는 잠시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영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한 인간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세월은 앞으로 천국에서 누릴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적고도 작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그대로입니다; “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없도다”(8:18).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빨리 창조주에게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영생의 구원을 누릴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      ,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8b); 구속자를 세상에 메시아로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700 전에 벌써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장구한 구원의 섭리를 깨닫고 누구든지 빨리 회개하고 창조주에게로 나아오기를 이사야를 통하여 재삼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1)      본문 9-10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무지개언약과 같은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의 영원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1 10일이 지나 다음해 노아 601 2 27일에 역사가 시작됩니다(7:11, 8:13-16). 그해 주전 2,457년에 소위 여호와의 무지개언약 나타나게 됩니다;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9:11-13).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면적인 죽음과 멸망을 의미하고 있는 홍수심판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8:21). 그리고 자신의 진노를 억지로라도 거두기 위하여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두겠다고 약속하십니다(9:13). 비가 갑자기 내리게 되면 반드시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발생하도록 조치하십니다. 그러면 무지개를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진노를 거두시는 것입니다(9:14-17).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12)      첫째, 9절입니다;9. (a)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 것같이, (b)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54:9); 노아의 홍수심판과 무지개언약을 모두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노와 책망을 대신 메시아가 받으신다는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1)      하나, 9.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 것같이”(54:9a); 역사적인 선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홍수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성격은 전면심판입니다. 바다와 강에 살고 있는 생물과 식물을 제외하고 모든 육지의 동식물이 노아의 홍수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지진과 엄청난 지하수의 분출로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형성되고 맙니다. 그것은 홍수이전 살기 좋은 평평한 땅과 온난한 기후가 종말을 맞이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은 전반적이고도 총체적인 죽임과 멸망을 뜻하는 홍수심판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무지개언약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깊은 의미는 하나님께서 심판 대신에 이제는 구원의 길을 마련하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2)      ,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54:9b); 세상구원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이상 노하거나 책망하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피조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을 감당한다는 것입니까?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무지개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있을까요?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1:29b).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3:13-17). 한마디로, 무지개가 아니고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어린양 메시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노와 책망을 거두어들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누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3)      둘째, 10절입니다;10. (a)산들 떠나며 언덕들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b)너를 긍휼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10); 화평의 언약의 영원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원동력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영원한 화평의 자리 구원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요?;

1)      하나, 10. 산들 떠나며 언덕들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 흔들리지 아니하리라”(54:10a);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이를 때까지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65:1-2). 세상 끝까지 메시아의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고 모두가 회개하고서 구원으로 나아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11:11-12, 24:14).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이 옮겨지는 현상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노아의 홍수를 연상하게 해주는 크나큰 재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서 자연적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바뀌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신위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아니면 자연발생적으로 그와 같은 변화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아니하는 진리가 하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피조물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선택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입니다.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인 여호와의 독생자를 대속의 구원자 메시아를 성육신을 통하여 세상에 파견한다는 것입니다(7:14, 9:6-7, 53:4-10).

3)      , 너를 긍휼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54:10b);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하고 있는 누구를 불쌍하게 보실까요? 다음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일까요? 하나는, 목이 곧은 백성들 있습니다(33:5). 그들은 스스로 너무나 의롭고 부유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결코 긍휼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7:30, 10:3).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선민들은 자신이 옳다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습니다(32:9).

4)      구체적으로, ①자신들이 옳다고 율법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②그리고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치고 속죄의 제사를 빠짐없이 드리고 있습니다. ③또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를 할례로 지니고 있습니다. ④더구나, 그들의 도성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각해도 선민들은 의롭습니다(18:11-12). 구원의 대상임이 분명하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서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도 실로 당당합니다. 물론 선지자 이사야의 지적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5)      자신들의 의로움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빳빳한 고개를 겸허하게 숙이지 아니하는 이상 긍휼하게 여기심을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스스로 너무나 부유하여 결코 동정을 받거나 불쌍히 여김을 받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고개조차 들지를 못하는 죄인의 심정을 가진 자들입니다(18:13). 자신의 힘으로 율법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만 결코 그것이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을 바라보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습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시는 대상이 바로 그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입니다(9:13, 18:14). 결코 스스로 의인이 아닙니다(9:12).

둘째로,11. (이 세상에서)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창조주 여호와의 영원한 보호하심)를 받지 못한 자여 (영적인 눈을 떠서 미래를)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24:10, 시내산에 강림하신 여호와의 발치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음) (영원한 처소인 새 예루살렘의, 14:1-3) (성벽의) 기초를 쌓으며(21:18), 12.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21:20,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의 성곽이 벽옥이며 성곽의 기초석 하나가 홍보석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선지자 이사야의 표현은 그와 반대임)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사도 요한은 성문이 모두 진주로 되어 있다고 표현하고 있음, 21:21)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성이 맑은 유리와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고 묘사하고 있음, 21:18), 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여호와의 말씀을 배우면서 영적으로 교제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여 안식의 평안을 누리는 때인 것임, 2:3), 14.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는 창조주 하나님이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두텁게 보호하여 주심, 12:3, 8:37-39). 15. 보라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너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너로 말미암아 패망하리라(성도를 보호하기 위하여 박해자는 모두 여호와의 징계를 받고 마는 것임, 20:7). 16.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전쟁도구를 만드는 자와 전쟁을 일삼는 자 모두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임), 17.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성도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자들의 무력행사가 헛수고가 될 것임).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8:1-2, 그에 대한 사도 바울의 글이 다음과 같음;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나 700년후 사도 바울의 글이나 차이가 없음. 왜냐하면, 그것이 영원한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임, 24:44-45, 11:36)“(54:11-17);

(1)  본문 11-1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메시아와 제자인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대하여 예언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종인 메시아와 제자인 성도들에게 장차 하나님께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1절입니다; “11. (a) 곤고하며 광풍 요동하여 안위 받지 못한 자여, (b)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사이에 더하며, (c)청옥(靑玉, sapphires, KJV)으로 기초 쌓으며”(54:11); 성도들의 장래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광야생활을 다시 하게 하여 믿음을 성숙하게 것이며 하나님의 보좌와 말씀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게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      하나, 11. 곤고하며 광풍 요동하여 안위 받지 못한 자여”(54:11a); 성도들의 세상살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광야생활과 흡사합니다. 재화가 부족하여 살림살이가 곤고합니다. 마치 광야에 바람이 심하듯이 성도들에게 강한 세파가 밀어 닥칩니다. 안전한 삶과 진정한 위로를 얻기가 참으로 힘든 인생살이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광야생활과 같은 훈련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화와 믿음의 반석이 구축되고 있습니다.

2)      ,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사이에 더하며”(54:11b); 바닷가에 파도가 계속 밀어닥칩니다. 파도에 깎이고 마모되어서 날카로운 돌이 둥글게 다듬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풍파에 시달린 성도의 신앙이 다듬어져서 성숙의 경지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한 성숙한 믿음으로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란한 빛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 청옥(靑玉, sapphires, KJV)으로 기초 쌓으며”(54:11c); 세상적인 고난을 당하고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성화 거룩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뜻을 깨닫고 실천해 나가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상징하고 있는 용어가 여기서 청옥 기초입니다; ‘청옥 하나님의 보좌와 발등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표현이 벌써 그러합니다;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아래에는 청옥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24:10). 히브리 역사에 있어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만난 자는 선지자가 됩니다.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위탁하십니다. 그리하면 선지자는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말씀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4)      그러한 의미에서 장차 성도들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초’(基礎, foundation) 무엇을 신앙의 기반으로 삼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의 기초는 2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바라보며 궁극적으로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하나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바로 신앙의 기초입니다. 다른 기초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그리스도 예수님이 재강조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것이라 하였느니라”(4:4b, 8:3);

 참고로, 광야생활 신위적인 능력으로 일용할 만나를 주신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부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신앙훈련의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3)  둘째, 12절입니다; “12. (a)홍보석(紅寶石, rubies, NIV)으로 성벽 지으며, 석류석(石榴石, sparkling jewels, NIV)으로 성문 만들고, (b) 지경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54:12); 천국의 상급과 거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2. 홍보석(紅寶石, rubies, NIV)으로 성벽 지으며, 석류석(石榴石, sparkling jewels, NIV)으로 성문 만들고”(54:12a); 이사야는 여기서 예루살렘성의 성벽의 재료가 홍보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요한은 벽옥이라고 말합니다(21:18). 그리고 이사야는 성의 문이 석류석으로 되어 있다고 여기서 증거합니다. 반면에 사도 요한은 진주라고 말합니다(21:21). 어느 예언과 환상이 정확한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장차 그곳에 가보게 되면 자연히 판가름이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대목은 여기서 그것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성도들이 장차 천국에서 자신들의 성벽과 성문을 가지게 되고 그곳에서 영원한 거처를 가질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확실한 상급이라는 사실을 훗날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2.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며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30. 너희로 나라에 있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30).

3)      , 지경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54:12b); 보석으로 꾸민다고 하는 것은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간 생애를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며 영원히 기억하시고 아름답게 보존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성도가 그리스도처럼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실천했는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만큼 상급을 받으며 천국에서 기업과 지경이 확보가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셋째, 13절입니다; “13. (a) 모든 자녀 여호와의 교훈 받을 것이니, (b) 자녀에게는 평안 있을 것이며”(54:13);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자녀에 대한 축복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13. 모든 자녀 여호와의 교훈 받을 것이니”(54:13a); 성도의 자녀는 여호와신앙 안에서 양육받게 것입니다. 자녀가 아니고 이사야는 모든 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실천하게 되면 그의 모든 자녀의 신앙생활과 장래는 전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믿고서 전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2)      , 자녀에게는 평안 있을 것이며”(54:13b); 성도의 자녀들에게 장차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호하심이 각별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거대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하나님께서 평안으로 지켜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5)  넷째, 14절입니다; “14. (a)너는 공의 것이며, (b)학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c)공포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54:14);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구현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여호와의 강력하신 보호하심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4. 너는 공의 것이며”(54:14a);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가 그리스도이며 제자들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골고루 차별하지 아니하고 사랑하시며 생명을 모두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3:4, 5:44-48). 뜻을 구현하기 위하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나서며 세상에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성도의 인생은 열매를 얻게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는 공의 것이며”(54:14a)라고 약속해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 학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54:14b); 세상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힘과 권력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적인 힘을 믿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권력과 힘은 눈에 보이는 것이므로 그것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에는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학대를 견디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사야는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그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자신 있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학대행위를 멀리 물리치실 것이며 그것이 결코 두려움이 되지 못하도록 역사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3)      , 공포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54:14c); 성도는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고 있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성도의 육신의 약함을 알고서 넘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가운데 가장 무기가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악한 영들의 그와 같은 책략을 하나님께서 모두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죽음의 공포가 결코 성도를 넘어뜨릴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막아 주십니다. 그것은 마치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자손을 보호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어린양의 피가 있는 대문 안으로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집을 차폐하시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다시 발동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2:23, 54:14c). 어린양의 피가 바로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메시아의 대속의 보혈입니다.

(6)  본문 15-1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기업과 공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이사야 예언에서 엿볼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여호와의 종을 대적하여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여호와의 종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다(54:15). 여호와의 종을 치려고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은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군비를 쓸모가 없도록 만들어 버리시기 때문이다(54:16-17a).여호와의 종을 대적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자들은 도리어 정죄를 당하게 것이다(54:17b). 이유는 여호와의 종이 공의로 심판하는 권한을 가지며(5:22) 대적자들을 전리품으로 얻어(22:17, 24:60, 9:5-6, 45:1-3) 기업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54:17c).

(7)  첫째, 15절입니다; “15. (a)보라 그들이 분쟁 일으킬지라도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b)누구든지 너와 분쟁 일으키는 자는 말미암아 패망하리라”(54:15); 여호와의 종이 하나님의 일을 때에 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때에는 분쟁이 어디에서 오고 있는가? 확인하라고 합니다;

1)      하나, 15. 보라 그들이 분쟁 일으킬지라도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54:15a); 먼저 2가지 경우를 상정해봅니다; 하나는, 분쟁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으면 그것은 여호와의 종이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사익(私益, 개인적인 이익)이나 편견(偏見,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 쫓아서 하나님의 일을 편파적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여호와께서 종의 입장을 옹호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분쟁의 수습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종이 하나님의 공의를 정확하게 행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본문에서는 그러한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나 성도가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모두가 회개하고 영생의 구원을 받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힘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여호와의 종을 대적하고자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2)      , 누구든지 너와 분쟁 일으키는 자는 말미암아 패망하리라”(54:15b);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자를 여호와의 종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공의의 정신은 모든 피조물을 골고루 돌보고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애쓰는 것입니다(6:9). 자신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의를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종입니다(53:2-12, 12:1-2). 그와 같은 신실한 종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력을 다스릴 있는 권세를 부여하십니다. 마치 메시아가 자신의 제자들을 훈련시켜 갈릴리의 여러 촌락과(10:1-15) 사마리아의 여러 고을에 파송할 때에 그러한 권세를 부여하신 것과 같습니다(10:1-12). 결과 멋모르고 여호와의 종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시비걸고 분쟁을 일으킨 자들은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악한 영들이 쫓겨나게 되고 추종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10:17-19).

(8)  둘째, 16절입니다; “16. (a)보라 숯불 불어서 자기가 쓸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 내가 창조하였고, (b)파괴하며 진멸하는 내가 창조하였은즉”(54:16); 군수산업(軍需産業, 군대에서 사용하는 물자를 생산하는 제조업) 사람에 의하여 경영됩니다. 군대도 사람에 의하여 조직됩니다. 그러므로 경영자와 조직자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6. 보라 숯불 불어서 자기가 쓸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 내가 창조하였고”(54:16a); 옛날 대장간의 풍경을 이사야가 정겹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화덕에 불을 붙입니다. 불을 만들기 위하여 공기를 강하게 불어넣습니다. 대장장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화덕의 뜨거운 숯불에 연장을 만드는 쇳덩어리를 올려놓습니다. 다음에는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서 망치질합니다. 용도에 맞는 연장의 모습을 가질 때까지 쇳덩어리를 달구고 망치질을 하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마침내 원하는 모양이 완성되면 찬물에 넣어 식히게 됩니다.

2)      그런데 여기서 대장장이가 만들고 있는 것은 농사일에 사용하는 연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쟁용 물자입니다. 국가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대장장이들에게 창이나 , 또는 화살촉을 만들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기서 대장장이에게 명령하는 국가의 권력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가 크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대장장이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대장장이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영혼이 사라진 육신만이 위에 남게 것입니다.

3)      , 파괴하며 진멸하는 내가 창조하였은즉”(54:16b); 대장장이에게 군수물자를 생산하라고 명령한 자가 여기서 파괴하며 진멸하는 해당됩니다. 그리고 군대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자도 포함됩니다. 그들 군대의 수뇌부들의 운명을 누가 손에 쥐고 계실까요? 세상적인 왕일까요?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영혼과 육신의 소멸을 모두 주장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10:28). 사실을 여호와의 종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다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 “부디 전쟁의 위험을 제거해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해주십시오!

(9)  셋째, 17절입니다;17. (a)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 쓸모가 없을 이라. (b)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c)이는 여호와의 종들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d)여호와의 말씀이니라”(54:17); 여호와의 종을 치려는 전쟁을 억제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종들에게 공의로 심판하는 권세를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7.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 쓸모가 없을 이라”(54:17a); 세계 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양분되어 군비경쟁에 돌입했습니다. 결과 진영이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의 위력이 1960년대 말에 벌써 인류를 여러 멸망시켜버릴 있는 규모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쪽이든지 최고권력자가 오판하여 단추를 잘못 누르게 되면 온세상은 상호보복 핵전쟁으로 말미암아 멸망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류는 그러한 위기 속에서 오늘도 겨우 숨을 쉬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주후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비극을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17. (너는 여호와의 종이 되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라. 그리하면)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 쓸모가 없을 이라”(54:17a). 요컨대, 모든 인류를 살리고 있는 것은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의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아브라함의 시대나(18:32) 이사야의 시대나(54:16-17) 현대나 전혀 변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2)      ,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54:17b);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성도들은 대적하는 자들이 제기하는 송사에 휘말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진정으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그리스도처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경우에는(5:22) 아예 송사에 대한 심판의 권한까지 여호와의 종인 성도에게 위임해 주십니다. 사실을 본문에서 예언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54:17b). 훗날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십니다; “18.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반석 위에 교회를 새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6:18-19).

3)      , 이는 여호와의 종들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54:17c);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서 움직이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나라에서 여호와의 종들이 상급도 받고 기업도 얻게 됩니다; 기업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해낸 그곳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한 장소가 바로 기업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얻은 전리품과 같습니다(14:16-20). 그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얻게 약속의 땅과 같습니다(9:4-5). 그것은 사람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 말미암아 얻은 기업입니다(9:6). 하나님께서는 땅을 기업으로 주기 위하여 여호와말씀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신실하게 실천하는 성도들을 강력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모든 분쟁에서도 구해주시고 대적자들을 심판할 있는 권세까지 주십니다. 마침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수고한 성도들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22:28-30).

4)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4:17d); 약속의 말씀 뒤에는 하나님께서 언약이 변함없으며 틀림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서명 날인하십니다. 서명날인이 바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4:17d) 하는 구절입니다. 그와 같은 보증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반드시 영생을 얻으며 또한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그리스도의 생명수의) 물로 나아오라(4:14).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대속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으므로)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는 대속의) 포도주와 (신령한 여호와의 말씀을 천국복음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세속적으로)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영생의 천국의 복음을)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영생의 떡인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6:32-35)을 먹을 것이며(복음의 말씀으로 먹고 소화하여 실천할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보혜사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내주 역사하심)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다시는 변개함이 없는 영적인)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110:1-7, 대속자 그리스도의 승리, 창조주 하나님의 세상심판, 그리고 주님의 재림의)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리스도) 만민에게 (부활과 영생의, 24:44-45)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28:18-20, 지상명령을 실천하도록 제자들을 온세상에 파송하는 주님으로 삼은 것임),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온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고 회개하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영생의 여호와에게로 달려올 것임, 66:20-21, 2:32-42, 3:10-16) 이는 (여호와)가 너를 (거룩한 성도로)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에 찾으라. (너의 인생 가운데)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악행을 저지르는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잘못된 생각을 범행으로 옮기지 말고) 여호와께로 (회개한 탕자처럼, 15:16-20)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것을 보시고 불쌍하게, 26:40-41, 22:45-46) 여기시리라(7:17-24).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처럼, 15:20-24)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창조주의) 생각이 (피조물인)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역사섭리의)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피조물에 불과한 아브라함의 고백과 같이 사람은 창조주 여호와 앞에 먼지와 같이 미천한 존재임, 18:27)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식물이 자라나는 환경을 조성하신 것임, 1:20-31) ,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4:4, 8:3)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3:4, 모든 생명을 돌보고 다함께 살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12:1-2,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과 부활의 역사를 통하여 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하는 새 언약의 시대가 전개되는 것임, 24:44-53, 1:8)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14:16-20, 31체 하나님이 영적으로 동행하는 놀라운 거듭한 삶이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며),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천하만물도 하나님의 자녀가 탄생하는 것을 기뻐할 것임, 8:19-23),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이 세상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다시 창조되는 것임, 65:17-18).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되고 마침내 하나님나라가 건설되는데 이사야의 예언은 그 길을 달려가는 성도들에게 힘이 되는 영원한 여호와의 격려의 말씀이라는 것임, 66:20-21)“(55:1-13);

(1)  본문 이사야 55 1-5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포도주와 젖과 양식을 얻는 방법, 그리고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자들이 먼저 물로 나아오듯이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55: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으면 원하는 포도주와 젖과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가 있습니다(55:2). 옛날 다윗처럼 여호와말씀에 순종하고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면 자신의 영혼이 살아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이끌 있는 인도자가 되며 여호와말씀의 증거자가 있습니다(55:3-4). 여기서 이사야는 다윗이 사울 왕을 암살함으로써 왕국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것을 얻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삼상24:6-7, 26:9-12). 요컨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뜻을 깨달아 다윗처럼 올바르게 실천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많은 나라와 민족을 성도에게 보내어 양육시킬 것이며(6:37-40) 복음사역을 통하여 성도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예언입니다(52:13, 55:5).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구절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a)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 나아오라. 없는 오라. (b)너희는 와서 사먹되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 사라”(55: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말씀을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대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 나아오라. 없는 오라”(55:1a);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분류합니다. 가운데 식물은 99% 물로 되어 있습니다. 동물은 거의 70% 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면 모든 생물은 죽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생물들에게 공짜로 물을 마실 있도록 섭리하시고 배려해 주셨습니다. 단지 목이 마른 생물들은 물이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돈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물을 마시고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2)      , 너희는 와서 사먹되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 사라”(55:1b); 세상에는 크게 보아 가지 종류의 마실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천연적인 마실 물입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나 강물 그리고 지하수와 빗물 등이 그러합니다. 물을 마시고 생물들이 갈증을 달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노력하여 얻을 있는 것입니다; 목축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야만 얻을 있는 마실 것들이 그것입니다. 그것을 이사야가 여기서 크게 가지로 분류하여포도주와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사야가 순서를 꺼꾸로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젖과 포도주이기 때문입니다. 젖은 완전 식품이며 생존의 수단입니다. 어린 아기나 포유류 동물의 새끼가 모두 어미의 젖을 먹고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젖과 같은 완전식품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하여 돈을 주고 사먹고 있습니다. 가축을 키워서 젖을 팔고 있는 자들이 소위 목축업자입니다.

3)      그런데 젖과 달리 포도농사를 지어서 열매로 얻게 되는 포도주는 완전식품도 아니고 생존의 수단도 아닙니다. 그것은 문화생활을 위하여 마시는 것입니다. 적당히 취하여 생활의 여유를 누리고자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잔치자리에 없어서는 아니 되는 필수품입니다. 따라서 품질에 차이가 많으며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돈을 주고 없는 것이 포도주와 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햇빛과 물과 공기를 주시지 아니하면 식물이 자라날 수가 없어 포도주를 생산할 수가 없으며 동물도 먹이를 구할 수가 없어 젖을 생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햇빛과 물과 공기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의 삶을 위하여 공짜로 제공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사야가너희는 와서 사먹되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 사라”(55:1b) 여기서 이상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둘째, 2절입니다;2. (a)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위하여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위하여 수고하느냐? (b)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 얻으리라”(55:2);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1)      하나,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위하여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위하여 수고하느냐?”(55:2a); 먼저 물질세계에 국한하여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는 경우와 양식과는 상관없이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신념이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물질세상에서의 삶을 위해서는 양식을 구하는 시간 외에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나 기타 고상한 무엇을 위해서는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2)      ,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 얻으리라”(55:2b); 이유를 한마디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먼저 여호와께 와서 영적인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듣고 창조주의 뜻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유한한 인생을 살기 위하여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있게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00 안팎의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창조주를 만나고 자신을 땅에 종으로 보내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과 영혼이 부활의 몸을 입고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가서 영생을 얻고 하나님 자녀로 앞에 서게 됩니다. 목적과 사명이 분명해지면 그때부터 참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즐겁고 기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있게 것입니다.

(4)  셋째, 3절입니다; “3. (a)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 맺으리니, (b)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55:3); 유한한 인생을 땅에서 살게 되는 여호와의 종들에게 주시는 창조주의 영원한 언약이 무엇일까요? 다윗의 행적에서 그것이 어떠한 내용인지를 살펴보라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 맺으리니”(55:3a);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반드시 나아가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서 영생을 주십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마음대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은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이 인생 가운데 행동하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2)      ,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55:3b); 이사야의 시대는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기 700 전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들이 이해하기 쉽게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여 상급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다윗대왕의 사례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인 사울의 미움을 받아 10 이상 도망자로 지낸 젊은 장군이 다윗입니다. 다윗의 피난처에 대한 첩보를 접하게 되면 사울 왕은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를 잡아 죽이려고 나섭니다. 정적(政敵, 정치적인 대적자) 확실하게 없애 버리려는 것입니다. 왕인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인기가 있는 다윗을 도저히 살려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삼상18:6-9).

3)      가운데 번이나 도망자 다윗 앞에 좋은 기회가 포착됩니다. 그를 쫓다가 곤히 잠자고 있는 사울 왕을 암살할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부관들은 다윗에게 무조건 사울 왕을 암살해버리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반대합니다. 이유는 사울을 죽이고 왕국을 얻는 것보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해치지 아니하는 것이 여호와의 종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다”(삼상24:6-7, 26:9-12)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왕국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한 다윗입니다. 번이나 하나님이 그를 테스트하지만 다윗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결과 하나님은 사울 왕의 작은 이스라엘왕국이 아니라 다윗에게는 광대한 이스라엘제국을 선사하십니다(삼하8:1-14).

4)      규모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15:18). 그리고 시편 150 가운데 영적인 깨달음의 73편을 저술하여 수록하는 영광을 다윗에게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삼상16:7, 13:22) 다윗 대왕의 족보에 의붓아들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이 올라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럽게도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서 제일 첫머리에 아브라함과 더불어 다윗의 이름이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등재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1:1). 그렇게 다윗의 이름과 생애를 통해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어떠한 상급과 영광을 얻게 되는지를 성도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5)  넷째, 4절입니다;4. (a)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b)만민의 인도자 명령자 삼았나니”(55:4); 증거자가 되고 있는 인도자 명령자가 되고 있는 다음과 같이 다른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55:4a); 앞절에서 이사야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다윗대왕이 생애로서 하나의 증거자가 되고 있습니다. 다윗대왕의 생애를 묵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떻게 이행하시는가를 구체적으로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2)      , 만민의 인도자 명령자 삼았나니”(55:4b); 그런데 만민을 구속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본받아 살도록 명령하는 자는 다윗대왕이 아닙니다.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6)  다섯째, 5절입니다;5. (a)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 네가 부를 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b)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55:5);

대목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이 설명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 네가 부를 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55:5a);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와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장차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의 종들이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열방과 이방인들을 그들에게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생명을 살리고 주님의 제자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28:18-20, 6:37-40). 그리하면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땅끝까지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

2)      ,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55:5b); 사람은 세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가는 존재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21세기의 첨단과학과 첨단의학을 자랑하고 있지만 수명이 120세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6:3). 그렇게 짧은 인생을 살다가 영과 육이 분리되어 육체는 흙으로, 영혼은 창조주에게로 돌아갈 따름입니다(3:20-21).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에 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을 세상에 보내어 사람으로 태어나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도록 섭리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명부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 성도는 장차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획득할 것입니다(1:12-13, 8:14-19).

(7)   본문 6-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장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55:6-7).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매우 쉬운 내용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저 한번 읽어 보기만 해도 뜻을 전부 것만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쉬운 글로 보이는 문장 가운데 사실은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장 가운데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약간의 개념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러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전달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신앙생활에 엄청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8)   첫째, 6절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찾으라. 가까이 계실 그를 부르라”(55:6); 여기서 여호와를 만날 만한 가까이 계실 개념이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

1)      하나, 여호와를 만날 만한 사람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육신을 벗고 나면 너나없이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일만 남게 됩니다(5:29). 따라서 육신을 입고 있는 인생의 기간 동안에 여호와를 만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여호와를 만나고 말씀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모세가 그러한 사람이며(34:10) 선지자 이사야나 에스겔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6:1-10, 2:1-9).

2)      그러하지 못할 경우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해주고 있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의미를 깨닫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말씀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하나님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주기 위하여 메시아가 유대인들의 땅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전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리 동족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3)      메시아가 전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의 폐쇄적인 선민구원사상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개방된 만민구원사상을 하나님말씀의 뜻이라고 전할 것입니다. 메시아의 복음은 선민들의 정의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신앙은 현세구복적인 우상문화가 아니라 영생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세상임금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4)      ,가까이 계실 주님이나 주님의 제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입니다(3:20).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여호와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접만 하면 됩니다. 만약에 마음의 문을 두드리다가 그냥 지나가고 계신다면 다시 방문하여 달라고 빨리 불러야만 합니다. 완전히 지나가 버리시게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주님을 만날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짧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가 주시는 영생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9)   둘째, 7 앞부분입니다;7. 악인 그의 길을, 불의한 그의 생각을 버리고”(55:7a); 여기에서는 악인 불의한 개념이 다르다고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악인 가지 가운데 왼쪽 길로 가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 에는 창조주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 정신을 실천한 사람들이 자리잡게 됩니다(25:34-40). 그들이 영생’(永生, eternal life) 얻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타인이나 집단을 해친 악한 자는 왼쪽으로 분류되고 맙니다. 왼쪽은 영벌’(永罰, 영원한 형벌, eternal punishment) 처해지는 길입니다(25:41-46).

2)      불의한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하십니다(1:26-27).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가지고 모든 생명을 돌보고 관리하라고 사람을 청지기로 삼으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 사익’(私益, 개인적인 이익)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는 불의한 종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b).

(10)      셋째, 7 중간부분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55:7b); 문장에서는 다음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하나, 여기서 여호와는 개인적인 만남을 전제하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를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셔서 헤브론 마므레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방문하십니다(18:1-2). 그리고 식사하시면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나누십니다(18:8-15). 그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직접 만나십니다. 이사야는 특히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게 되면 만민을 하나님께로 불러 모으시는 구원의 깃발이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11:10).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와 제자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돌이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2)      ,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있는 사람의 조건에 대하여 이미 앞부분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하고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금 설명을 해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셔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면 그때부터 많은 백성들이 회개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것입니다(11:11-12). 그렇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55:7b, 65:2, 66:20-21).

3)      요컨대, 누구나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있는 자는 선민구원사상을 고수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죄인이나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그동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간 잘못을 회개하고서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출신성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긍휼함을 얻을 있는 것입니다.

(11)      넷째, 7 끝부분입니다;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55:7c); 문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우리 하나님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의 하나님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하여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교회공동체에 참여하여 함께 하나님의 일을 나가야만 합니다. 이유는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도들이 교회의 지체로써 전도와 선교에 서로 협동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역시 성도들이 공동체에서 함께 드릴 때에 성령님께서 크게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도들은 인생 가운데 동역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있어야만 합니다.

2)      신앙생활이란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앙생활 역시 공동체에서 받아 들일만 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의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여호와말씀의 이해나 설명은 전통적이고도 오랜 신앙공동체의 것과 서로 대조해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쉽게는 신학적인 측면에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모가 것은 다듬어져 나가고 미흡한 것은 보완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말씀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서로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사야는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55:7c)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움직이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응답을 들을 알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역사하실까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주실까요? 결론은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28:18-20, 12:1-2). 그리고 역사 가운데 누가 옳다고 하나님께서 이름을 세워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1:17, 21:26-27).

4)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산헤드린 대공회의 뛰어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의 말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400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사상과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5:35-42).

5)      한마디로,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의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하시면서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성도가 성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내어쫓는 행위는 옳지가 못합니다. 여호와께 맡겨드리면 하나님께서 아시고 강하게 징계하실 것입니다(12:14-21). 요컨대, 지체가 머리이신 주님을 대신하여 지나치게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너그러운 용서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2)      본문 8-1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각과 의사결정의 특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사람의 생각 의사결정과 하나님의 생각 의사결정이 현저하게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5:8). 그리고 어떻게 다른가? 하는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55:9-11).

(13)      첫째, 8절입니다; “8. (a)이는 (여호와의) 생각 너희(사람들) 생각과 다르며, (b)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5:8);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창조의 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8. 이는 (여호와의) 생각 너희(사람들) 생각과 다르며”(55:8a); 생각의 차이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보고 있느냐?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입장에서 보고 있느냐? 아니면 창조주의 입장에서 보고 있느냐? 따라서 당연히 생각은 근본적인 차이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5:8b); 누구나 생각을 정리하여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그리하면 길이 정해집니다; 하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피조물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조물의 위치와 역할에 비추어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일까요? 사실 창조 당시부터 목표가 이미 설정이 되어 있으며 그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3)      따라서 피조물들이 길로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진단하시고 처방하십니다. 그렇지만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길로 자발적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자신들의 길을 가고자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과의 격차 때문에 많은 긴장과 갈등 그리고 역사적인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한마디로, 성경의 기록들입니다.

(14)      둘째, 9절입니다; “9. (a)이는 하늘 보다 높음 같이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b) 생각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55:9);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서 낮은 땅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그것은 마치 모세가 높은 느보 산봉우리에서 멀리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34:1-4). 결과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을까요?

1)      하나, 9. 이는 하늘 보다 높음 같이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55:9a); 땅에 붙어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의사결정은 결정적으로 있는 땅의 한계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우주 바깥 높은 하늘에서 천하의 피조물을 모두 눈에 내려다보십니다. 모두 보시고 전부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의사결정을 하십니다. 세계관의 차이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 하나님과 사람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한시적인 유용성만을 지니고 있는 육신 속에 갇혀서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도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방향으로만 진행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시공간을 모두 초월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시공간을 모두 뛰어넘어서 의사결정을 하시며 길을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3)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하시면서 현재의 피조물을 대하고 계십니다. 반면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겨우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의 미래까지 전부 알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4)      , 생각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55:9b);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지표면에서 기고 있는 사람들을 전부 감찰하고 계시며 모두를 보시고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계십니다. 피조물 모두를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5)      하지만 인간은 그것이 아닙니다. 피조된 물질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재화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식구를 돌보며 생존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다음 자신의 성취나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높은 이상은 소수의 권력자들과 많은 재능을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뛰어난 극소수 인물들의 고민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15)      셋째, 10절입니다; “10. (a) 이는 비와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b) 적셔서 소출 나게 하며, (c)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 주며, (d) 먹는 에게는 양식 줌과 같이”(55:10); 참으로 근사한 비유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0. 이는 비와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55:10a);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만약에 땅으로 내리지 아니하고 우주공간으로 흩어져버린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땅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모두 죽이고 마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2)      , 적셔서 소출 나게 하며”(55:10b);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비와 눈이 땅으로 내려서 식물을 자라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표면의 딱딱한 속에 빗물이 스며들면 부드러운 표토(表土, 지표면의 , top soil) 형성이 됩니다. 그곳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빨아올리게 됩니다. 결과 곡식이 생산이 되고 각종 식물의 소출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3)      ,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 주며”(55:10c); 이사야가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발전된 농사법 하나를 여기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종을 내고 그것을 밭에 옮겨 심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묘판에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관리합니다. 그러면 싹이 나고 모종이 생산됩니다. 그것을 밭에 옮겨 심는 것입니다.

4)      그것은 밭에 씨를 바로 뿌리는 파종법보다는 훨씬 많은 소출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렇게 모종을 가져다 심든지 아니면 밭에 씨를 바로 뿌리든지 간에 다음에는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파종시기에 비가 많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그것이 늦은 봄과 초여름에 이른 기다리고 있는 농부들의 마음입니다. 참고로 요엘 선지자는 이른 의의 교사 오시는 메시아를 상징하고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2:23).

5)      , 먹는 에게는 양식 줌과 같이”(55:10d); 농부들은 자신들이 일년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식구들이 먹을 양식을 생산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적기에 비를 주셨기 때문에 지면의 흙이 부드러워져서 싹을 띄우고 식물이 자라날 있도록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땅의 소출이 있게 하고 양식을 사람들이 먹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16)      넷째, 11절입니다; “11. (a) 에서 나가는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이루며, (b)내가 보낸 형통함이니라”(55:11); 놀랍게도 부지불식간에 이사야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누구인지 정체성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1)      하나, 11. 에서 나가는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이루며”(55:11a); 창조주 하나님이 적당한 때에 비를 땅에 내리셔서 식물이 자라나도록 함으로써 생물들이 먹고 살아갈 있는 양식을 제공해 주십니다. 그와 같은 이치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사람들에게 주시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영적인 양식을 얻도록 주십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바로 생명의 양식입니다(4:4).

2)      그리고 말씀이 육신을 입고서 세상에 태어나시면 메시아가 됩니다. ‘말씀의 성육신그것이 바로 메시아의 정체성임을 사도 요한이 4복음서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1:14). 장차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대언할 것이며 말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살아갈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의 언급이라고 하겠습니다.

3)      , 내가 보낸 형통함이니라”(55:11b); 메시아의 말씀사역이 바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사명을 모두 완수할 있도록 형통함을 주실 것입니다.

(17)      본문의 말미인 11-13절에서 선지자 이사아갸 여호와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지금도 창조의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며 뜻을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시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가장 기본적으로 깨달아야 할까요? 그것은 선지자들의 기록과 그리스도의 생애가 하나같이 지금도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볼 있도록 마치 손가락처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24:44-49). 그러므로 손가락과 같은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면 부활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 가운데에서도 창조의 능력을 맛볼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재미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8)      첫째, 11절입니다; 11. (a)(여호와의) 에서 나가는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이루며, (b)내가 보낸 형통함이니라”(55:11);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11. (여호와의) 에서 나가는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이루며”(55:11a);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 appear)해지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실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하나님말씀의 성육신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메시아가(1:14) 세상에 오시는 이유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땅에서 성취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6:38-39).

2)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메시아나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이며 수단입니다. 그것이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들은 땅에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종들이 주인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성취하고자 애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창조의 질서와 법도를 어기고 있는 패역이며 영적인 타락입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현세적인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바로 우상문화입니다.

3)      , 내가 보낸 형통함이니라”(55:11b); 메시아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모두 완수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힘껏 도와 주십니다. 그것이 형통함의 비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여호와의 종이 주인께서 맡기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욕심을 내어 별도로 추구하고자 하는 일에 형통함을 바라며 간구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에 하나님의 형통함이 있을까요? 혹시 세상적인 눈으로 보자면 성공과 형통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부끄럽고 허망할 뿐입니다.

(19)      둘째, 12절입니다; “12. (a)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 인도함 받을 것이요, (b)산들 언덕들 너희 앞에서 노래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것이며”(55:12); 여호와의 말씀을 온세상에 전하고 있는 성도들의 앞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 인도함 받을 것이요”(55:12a); 예를 들어, 해외시찰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 단장으로 가는 경우와 일반단원으로 가는 경우에 차이가 있습니다; 단장은 처음부터 팀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일반단원은 해외시찰이 즐겁고 평안합니다. 그래서 기쁘게 시찰을 마칠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주님께 머리가 되는 단장의 자리를 맡겨 드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신앙생활이 처음부터 즐겁고 기쁘며 마음속 평안까지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 단장의 자리를 맡겨 드리고 있습니다(8:16, 28-29).

2)      그리고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인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기에(6:38) 발걸음이 가볍고 끝까지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무덤에 들어갈지라도 주인이신 영생의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켜 구원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6:21, 17:22-23, 19:28, 20:18-19).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의 증거가 다음과 같습니다;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없도다”(8:16-18).

3)      , 산들 언덕들 너희 앞에서 노래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것이며”(55:12b);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문장입니다; 하나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외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대속의 죽으심을 당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십니다(2:32-33, 1:17).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세상에 전파하게 됩니다. 결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가 세상에 도래하게 됩니다. 장차 임하는 그러한 인류의 구원의 기쁨을 이사야가 여기서 산들 언덕들 너희 앞에서 노래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것이며”(55:12b)라고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은 인류의 구원에 머물지 아니하고 세상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뜻하고 있다고 해석됩니다. 복음의 축소판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3:16’ 말씀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이 사실을 거듭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8:19-22). 산과 언덕 그리고 나무들로 표현되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 내에 펼쳐져 있는 모든 현상과 만물들의 파노라마)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있다는 표현이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20)      셋째, 13절입니다; “13. (a)잣나무 가시나무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 찔레 대신하여 것이라. (b)이것이 여호와의 기념 되며, 영영한 표징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55:13); 성도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이 창조하시는 놀라운 기적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3. 잣나무 가시나무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 찔레 대신하여 것이라”(55:13a);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세상에서 성취하게 되면 종말로 어떠한 세상이 전개될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였으며 응답을 얻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가장 종말론적인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17. 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으로 창조하며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65:17-19).

2)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고 있는 예루살렘성에서는 옛날 백성들의 울음과 부르짖음이 이제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와 찔레가 백성들의 통곡이며 절규입니다. 잣나무와 화석류(myrtle, 도금양나무, 금빛 복숭아 열매, 에스더의 옛이름 하닷사 이에 해당함, 2:7)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시는 즐거움과 기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3)      ,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 되며, 영영한 표징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55:13b); 그와 같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종말로 하늘과 땅의 창조 그리고 예루살렘성의 창조만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는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영원한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러한 창조의 능력이 지금도 끊어지지 아니하고 역사하게 됩니다.

4)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메시아의 시대에 특히 풍성합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각종 병자와 장애자들이 치유와 회복을 얻게 됩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무덤 속에서 죽은 나사로가 되살아 나옵니다. 소경과 귀머거리가 새로운 눈과 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의 말씀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더구나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무덤 속에서 3일만에 부활합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31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능력이 체험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9:1, 10:16-20, 14:16-20, 1:8);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역사를 의식합니다. 특히 뛰어난 인물일수록 후세의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위대한 인생을 있는 방법에 대하여 본문에서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은 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으면 자손이 많아지며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것이 메시아의 세상구원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좋지마는 위대한 꿈을 꾸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의 형편이 마치 불임의 여인과 같고 자신의 환경이 황폐하지만 그리스도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게 되면 나중이 형통할 것입니다.

자손들에 의하여 하나님나라가 확장되고 세상에 생명력이 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꿈을 꾸시고 거듭난 삶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