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선민만을 위한 예루살렘성전의 제사를 마감하고 만민을 구속하고자 여호와의 의로운 종이 선택하고 있는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사52:1-53:12)
설교일; 주후 2027년 1월 3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9월 20일 토요일 작성)

본문 제52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3가지 중요한 예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첫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예언입니다(사52:1b).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 새 언약의 시대가 되면 영적으로 깨어나기 때문입니다(사52:1a). 현세적이고도 이기적인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버리고 선민들이 훗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시내 산 언약의 목적인 선민의 사명 곧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마침내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출19:4-6). 요컨대, 선민 유대인들이 유대교라는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의 아름다운 예복을 입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사66:20-21, 마22:11-14).
2) 또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곧 성도들을 천국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사65:17-18, 계21:1-2). 마음에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는 일체 그곳으로 입장할 수가 없습니다(사52:1c, 계21:27).
(2) 둘째,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거할 수 있는 새 예루살렘성에 성도들이 입장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목의 줄을 스스로 풀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기 때문입니다(2b). 어두움의 세상지배자 악한 영들이 거룩한 백성들을 미혹하여 죄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끌고 갈 수 있는 이유는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여호와께 범죄한 아담부부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종의 법도를 저버리고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창조주 여호와의 지위와 지혜를 얻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사탄에게 종속되어 죄와 사망의 운명을 짊어진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창3:1-5-6). 그러한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준 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입니다(요3:13-17). 창조주 여호와의 독생자가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여 여호와 앞에 설 수 없는 인간의 잘못을 속죄하고 말았습니다(사52:9). 그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악한 영의 정죄에서 벗어나고 스스로 죄와 사망의 사슬을 풀 수 있게 된 것입니다(롬8:1-2).
(3) 셋째, 창조주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여 영원한 대속의 제물로 삼는다고 하는 사실은 전무후무한 대 사건입니다(사52:13-14, 창3:15, 요1:29, 3:16).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권력자도 세상나라의 지혜자도 능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행위입니다(사52:15). 그와 같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여 인류의 유전적인 모든 죄와 사망의 묶임을 풀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새 예루살렘성을 허락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찬양할 따름입니다(사52:7-10).
이어서 선지자 이사야는 제53장에서 여호와의 의로운 종 메시아가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기 위하여 선민사회에서 받게 되는 핍박과 고난에 대하여 먼저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사53:2-9). 비록 그 고통은 쓰지만 그 열매는 아름답고 단 것입니다(사53:10-12).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지게 된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와 무덤 속 부활의 역사를 믿게 되는 성도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의 용사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눅24:49, 행1:8).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한 다음에는 천국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사65:18-25, 눅22:28-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선민의 수도인) 시온이여 (영적으로)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기운이 진하여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산모에게 산파가 주고 있는 격려의 말과 같음. 이제 옥동자가 태어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임). (창조주와 구원주의 보좌가 함께 마련되는, 계21:22, 22:1)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여(사65:17-18), 네 (영원한 천성에 어울리는, 히11:16)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마음속, 신10:16)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계21:27a) 2. 너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에 대한, 눅9:5)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새)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요12:31-32, 롬8:1-2,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그동안 사람을 정죄하고 죄와 사망의 법으로 지배하던 악한 영들이 쫓겨나고 말았으므로 성도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이제)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믿고 회개함으로 성도들이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임, 창3:15, 요1:29, 3:13-17) 4.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애굽과 앗수르가 이제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기지가 된다는 것임, 사19:22-25) 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그와 같은 여호와의 온세상구원의 복음을 듣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탄압하며 우상을 섬기는 애굽과 앗수르가 회개하라는 것임) 6. 그러므로 내 백성(그리스도의 천국복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애굽과 앗수르가 모두 이제는 여호와의 백성이 되고 기업이 된다는 것임, 사19:25)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날(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와 영생의 부활과 승천의 소식이 복음으로 그들에게 전파가 되는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가나안)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가나안에 전파하는 자가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것임, 창12:3-5)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새 예루살렘을 상징하고 있음, 사65:17-18)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성도들이 재림하는 주님을 만나고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되는 것임, 살전4:16-17, 계4:10-11)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비록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멸망당하고 말지만 새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님이 오셔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내시면 만민이 회개하고 영생구원을 주신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것임, 렘31:31-34, 사65:18-19, 66:20-22)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전능하신 창조주, 창17:1) 여호와께서 (만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영생의) 구원을 (살전4:16-17, 사65:18-19, 주님의 재림과 새 예루살렘성의 나타남으로 이제 영적으로) 보았도다!“(사52:1-10);

(1) 본문 제1-6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우상문화에 찌든 예루살렘 성을 새로운 거룩한 성으로 만들자면 어찌하여야 하는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1절 후반부와 제3-6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구원해주시는 이유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첫째, 제1절입니다; “1. (a)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b)네 힘을 낼지어다. (c)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d)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사52:1); 이사야는 먼저 타락한 시온 성의 백성들이 다시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어떠한 행동의 변화를 보여야만 하는지 선민들에게 3가지 내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주실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사52:1a); 먼저 영적인 대각성이 필요합니다. 무늬만 선민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성도들의 영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진심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보고 정확한 뜻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2) 둘, “네 힘을 낼지어다”(사52:1b);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의 육신이 얼마나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연약한 존재인지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26:41).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애를 쓰게 되면 그 부족한 힘을 성령님께서 보태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셋,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사52:1c); 타락한 선민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성은 보기가 싫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이 먼저 그 옛날 그들의 조상 야곱처럼 거룩한 성도의 삶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창35:1-5). 그것이 예루살렘성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신부처럼 보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사52:1c, 62:4, 계21:2).
4) 넷,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사52:1d); 선민들이 위의 3가지를 개혁하여 성도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십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으로 구별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마음속 할례가 없는 자 곧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신30:6), 그리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부정한 자는 그곳으로 출입조차 할 수 없도록 조치하십니다. 그러한 모습을 새 예루살렘성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6-27).
(3) 둘째, 제2절입니다; “2. (a)너는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 (b)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c)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사52:2); 선민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취해야 하는 조치가 3가지 있습니다;
1) 하나, “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사52:2a); 모세는 40세에 애굽을 탈출한 후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들판을 떠돌면서 양치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호렙 산에서 불꽃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때 세속의 때가 잔뜩 묻어 있는 모세를 보시고 하나님이 지시하십니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발에서 신을 벗는 행위가 바로 세상의 티끌을 털어버리고 구원의 일을 전적으로 전능하신 여호와께 맡기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눅9:5-6).
2) 둘,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사52:2b); 신발을 벗고 모세가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몸을 굽힙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킨 다음에 또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출24:12). 그곳 하나님 앞에서 40일 동안 여호와의 말씀을 공부합니다(출24:18). 그 내용이 거룩한 백성으로 하여금 제사장나라를 경영하게 하는 율법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매주 안식일에 율법공부하고 그 뜻을 묵상하게 됩니다(출17:28-30). 그와 같은 일을 다시 시행하라고 이사야가 여기서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사52:2b)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사52:2c);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본래 종이 없습니다. 모두가 애굽제국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재산을 일구게 되자 히브리인 종이나 이방인 종이 발생하고 있습니다(출21:2, 레25:44-46).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그 몸을 종으로 팔게 되기 때문입니다(출22:3b). 세상적인 방법론에 사로잡히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노예해방의 뜻을 깊이 살피지 아니하고 종들을 많이 부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지시하십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말씀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면 노예부터 해방을 시키라는 것입니다(사58:6). 그리하면 세상에 발목이 잡혀 있는 선민들의 줄도 풀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사52:2c).
(4) 셋째, 제3절입니다; “3. (a)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b)돈 없이 속량되리라”(사52:3);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여 선민들을 구원해 내실 수 있는 첫 번째 이유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1) 하나,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사52:3a); 노예는 돈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예는 몸값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중동사회에서 장정노예는 그 몸값이 은 30세겔입니다. 여자노예는 20세겔입니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타락하여 세상에서 이방신들을 섬기며 우상문화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돈을 받고 판 적이 없는데 그들이 스스로 값없이 세상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사52:3a).
2) 둘,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52:3b);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선언하십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지 아니하고 한꺼번에 세상의 노예에서 해방시킬 것입니다(사52:3b). 그 방법은 물론 세상의 악한 권력과 악한 영들이 행사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모조리 깨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요12:31-32, 롬8:1-2). 그와 같은 영적인 출애굽의 해방이 다시 있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5) 넷째, 제4절입니다; “4. (a)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b)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사52:4); 선민들을 구원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이유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4.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사52:4a);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제국에서 바로에게 돈을 주고 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본래 주전 19세기에 야곱의 집안이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애굽 총리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으로 이주한 것입니다(창45:5-11, 46:6). 그러므로 애초에 자유민으로 애굽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히브리인을 탄압하는 왕조가 발생하여 그만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출1:8-11). 그러므로 그것은 잘못된 세상권력의 횡포입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언약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한 것입니다.
2) 둘,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사52:4b);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제국의 황제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정복에 나섭니다(왕하18:13). 순식간에 지방의 주요 성읍들이 정벌당하고 왕과 귀족들이 왕도 예루살렘에 갇히게 되고 맙니다(왕하18:17). 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죽거나 잡혀가게 됩니다. 그것은 돈을 주고 노예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앗수르 황제가 공연히 침략하여 선민들을 압박하고 포로로 잡아간”(사52:4b) 사례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의 병사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몰살시켜 버린 것입니다(왕하19:35).
(6) 다섯째, 제5절입니다; “5. (a)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b)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사52:5); 선민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노예로 제멋대로 부려먹으면서 선민들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세상의 지배자들의 잘못에 대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1) 하나, “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사52:5a); 예루살렘성전에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지도 아니하고 이방인들이 함부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모세처럼 하나님께 두 팔을 들고 부르짖게 되면 승리는 하나님 백성의 것입니다(출17:11).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선민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그 옛날 모세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선민들이 성전으로 찾아와서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2) 그 결과 이방 강대국의 침략으로 선민들의 나라가 패전하고 그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찌 하실까요? 2가지의 선택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는, 만시지탄이지만 선민들이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어 달리면 출애굽의 역사가 다시 발생할 것입니다(출2:23-25). 또 하나는, 이방인들이 함부로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게 되면 재앙이 그곳에 임하고 반사적인 이익을 얻어서 선민들의 자손들이 자유민이 될 것입니다(사37:11-20, 35-36, 52:5).
3) 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사52:5b);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쟁포로에서 벗어나고 이방인들의 지배하에서 노예와 같이 비참한 삶을 살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모두 그들이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반사적인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제국이 너무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사52:5b) 징벌을 받은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랑할 것이 도무지 없습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입니다. 참고로 그 옛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차지하게 된 유래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신9:4-6).
(7) 여섯째, 제6절입니다; “6. (a)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b)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 인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사52:6);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징치(懲治, 징벌로 다스림)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내시는 것입니다;

1) 하나,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사52:6a);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세상의 그 어떤 막강한 세력이나 영적인 실체보다도 더 두렵고 떨리는 분이 바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악한 영들은 사람들의 목숨과 육신만을 지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 앞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면서 육신을 해치고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롬8:2). 그러나 창조주 앞에 서게 되면 그 정도가 아닙니다. 목숨보다 더 귀한 영원한 생명이 문제가 됩니다.
2) 100년 안팎 한시적으로 사용하고 벗어버리는 육신이 아니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부활의 몸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몸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요17:3). 그러므로 그 이름을 찬양합니다(사52:6a). 참고로, 사도 바울은 영생의 부활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쫓아가고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빌3:10-12). 그러한 내용을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한마디로 정리하고 계십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3) 둘,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 인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사52:6b); 타락한 선민들이 어떻게 살아가야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부끄럽지 아니한 구원을 얻게 될까요? 지금까지 선지자 이사야가 동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점에 대하여 상세하게 진술했습니다. 이제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영적인 눈을 크게 뜨고서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세상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러나 먼 훗날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하고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이사야는 그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4) 그때에는 지금 이사야가 기록하고 있는 이 글을 후손들이 찾아서 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선민들에게 미리 그 일에 대하여 알려주십니다. 그 이유는 그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성취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깨닫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사48:5-7). 그렇게 두 팔을 벌리고 인내로써 기다리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사48:9, 16, 52:6b, 65:1-2, 롬10:20-21).
(8) 본문 제7-10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 복된 좋은 소식에 대하여 예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4가지입니다; ①세상의 좋은 소식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진술(사52:7). ②시온으로 다시 돌아오시는 여호와를 이사야가 파수꾼이 되어 가장 먼저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사52:8). ③예루살렘을 구속하시고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함(사52:9). ④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땅끝까지 열방과 만민에게 미치게 될 것임을 선포함(사52:10);
(9) 첫째, 제7절입니다; “7. (a)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b)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c)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d)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 세상의 좋은 소식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1) 하나,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사52:7a); 평화를 공포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가장 좋은 예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페르시아 원정군을 맞아 동북방 마라톤 지역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수적으로는 엄청난 열세였지만 협곡의 매복작전이 주효하여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 좋은 소식을 한 병사가 무려 42km를 달려 수도인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전하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것이 마라톤 경기라는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와 같이 평화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 동양과 서양 그리고 옛날과 오늘날)을 막론하고 세상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세상에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2) 둘,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사52:7b); 창조주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메시아를 통하여 가장 좋은 복된 소식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입니다. 그 내용은 이 세상에서 유한한 인생을 살도록 되어 있는 사람의 운명을 창조주가 바꾸어 준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고(요3:16, 계21:27),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요8:35), 천국에서 창조주와 함께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역사 가운데 가능해지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그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게 된다는 사실을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3) 셋,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사52:7c); 선민들의 나라는 처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창조주 여호와를 주권자로 모시고 시작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정국가이며 나라의 법률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입니다; 그러나 왕정국가가 되면서 그 모습이 달라지게 됩니다.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선민의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왕들이 월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도 하나님보다는 왕을 더 받들고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도입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4) 왕과 백성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현세적인 이익과 소원성취를 위하여 가장 편리하고 쾌락적인 신을 모시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게 됩니다. 그것이 선민국가의 타락입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고 선민들이 이방 땅을 헤매게 됩니다. 그런데 멀리서 참으로 복된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주권자 하나님께서 다시 백성들을 직접 통치하시기 위하여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그 소식을 예언으로 미리 동족들에게 전하고 있는 이사야가 여기서 감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사52:7c).
5) 넷,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d);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선민들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달려오는 선지자의 발소리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의 구원의 역사가 선민의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구원의 대상은 선민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만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방 땅으로 그 기쁜 구원의 소식을 전해주기 위하여 떠나고 있습니다. 그 선교의 발걸음이 실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10) 둘째, 제8절입니다; “8. (a)네 파수꾼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b)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사52:8); 시온으로 다시 돌아오시는 여호와를 가장 먼저 맞이하고 싶은 이사야 자신의 심정을 파수꾼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1) 하나, “8. 네 파수꾼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사52:8a); 파수꾼은 모두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불침번을 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영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번을 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영의 바깥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의 변화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들 파수꾼들이 복된 소식을 먼저 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걸음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 즐거워 일제히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사52:8a).
2) 둘,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사52:8b); 여기서 이사야는 타락한 도성 예루살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셨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 버리시자 시온이 적들에게 함락되는 역사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여호와께서 다시 일어나십니다. 남은 자들을 구원하여 시온으로 다시 들어오십니다. 그 광경을 가장 먼저 보고 있는 자들이 파수꾼입니다. 여기서는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가 시대를 뛰어넘는 파수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래의 그 만민구원의 메시아의 소식을 700년이나 먼저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1) 셋째, 제9절입니다; “9. (a)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b)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사52:9); 예루살렘을 구속하시고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사52:9a); 여호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 버리자 그곳은 이방인들에 의하여 멸망되고 맙니다. 백성들은 전쟁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끌려가버립니다. 영적으로 타락하자 예루살렘이 황폐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자 그곳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당장은 메시아를 선민들이 배척함으로써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하여 멸망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훗날에는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 돌아옴으로써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먼 훗날의 일을 이사야가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사52:9b);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버리시고 그의 백성들을 떠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백성들이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여호와신앙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율법을 잘 지키고 절기를 따라 제사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드러나 있는 주인의 뜻을 따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 뜻을 따르게 되면 손해가 발생하고 세상적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을 전부 이방인처럼 처리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할 실익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3)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떠나 버리십니다. 그러자 완전한 위로가 사라져버리고 백성들은 모두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들어가버리고 맙니다. 훗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뜻이 메시아를 통하여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죄와 사망의 종 노릇하고 있는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 삯을 지불하시는 구속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때문입니다(롬8:1-2).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자는 죄와 사망의 철칙에서 해방되는 참된 위로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사52:9b, 롬8:1-2).
(12) 넷째, 제10절입니다; “10. (a)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b)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52:10);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땅끝까지 열방과 만민에게 미치게 될 것임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사52:10a); 사도 요한의 증언 그대로 메시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b)입니다. 그러므로 메사아가 자신의 희생으로 드리는 속죄의 제사는 선민에게만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과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속죄를 위한 제사입니다. 그 뜻을 사도 요한이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2) 그와 같은 메시아의 역할을 이미 알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은혜를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사52:10a). 비록 예루살렘에서 발생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이지만 그 효력은 열방과 만민에게 적용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룩한 산 제물이기 때문입니다(롬12:1).
3) 둘, “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52:10b);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만민을 구원하고 온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원의 은혜가 땅끝까지 미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종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새로이 건설하시는 것을 이사야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사65:17-25).
4)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52:10b)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효력이 땅끝까지 미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끝까지 그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성도들이 행하라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지시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마28:18-20, 행1:8).
둘째로,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여호와의 심판을 받은 성읍인, 창19:17)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에 미련을 두지 말고, 창19:26) 그(소돔과 같은 멸망의 도성)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제사장 또는 레위인, 민4:15, 수4:9)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거룩하신 여호와를 만나 살 길을 얻기 위한 절차임, 창35:1-5, 출3:5, 19:10-11)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출12:35-36,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인에게서 은금패물과 의복 등을 받아서 여유 있게 출애굽하고 있음) 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부활하신 메시아가 승천하여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보좌를 가지게 되시는 것임, 시110:1, 행2:35-36)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그리스도가 3년 6개월 복음전파를 위한 공생애를 가난하게 살아가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박해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심, 눅19:28-44. 유대교지도자들의 견제와 박해가 심하였으므로 그 모습이 초췌한 것임),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요3:13-17, 12:31-32, 여호와의 독생자의 성육신, 복음전파를 위한 공생애, 대속의 십자가 희생 및 무덤 속 부활, 그리고 세상임금의 내쫓김 등의 여호와의 역사는 상상도 하지 못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인 것임)“(사52:11-15);

(1) 본문 제11-12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소식이 땅끝까지 전파되고 있으므로 이제 이방인들은 어찌해야만 하는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①부정한 장소를 떠나고 다시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야만 합니다;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사52:11a). ②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말씀을 온 세상에 앞장서서 전해야만 합니다. 마치 레위인과 제사장이 성물을 메고 백성 앞에서 행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사52:11b). ③장차 이루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바라보고 이미 역사 가운데서 보여주신 그 섭리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52:11c). ④사람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주인의 허락과 하나님의 앞서 행하심이 늘 필요합니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사52:12a). ⑤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 답게 당당하게 그리고 여유 있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배려해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사52:12b);

그 좋은 선례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자손들이 애굽인에게서 많은 재물을 얻어 당당하게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출12:35-36).
(2) 본문 제13-15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세상을 3번 놀라게 하는 여호와의 종 메시아, 그 천국복음의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엡3:18-19); ①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존귀하게 되심, 그 높이를 보고 온 세상이 놀라게 될 것이라는 언급입니다(사52:13). ②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그 모습이 사람들 보기에 심히 비참할 정도의 낮고도 낮은 것이며 음부에까지 내려가는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사52:14). ③그러나 여호와의 종 메시아가 부르짖고 있는 그 교훈과 실천하고 있는 그 말씀은 모든 나라가 놀라고 세상임금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폭넓고 놀라운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백성을 구원하며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신다는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창조가 창세기에서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이 임하면 세상나라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토해내어야만 합니다(계20:13). 그리고 세상임금들은 그 통치권을 하나님께 내놓아야만 합니다(요12:31-32).
(3) 첫째, 제13절입니다; “13. (a)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b)(천사들에 의하여) 받들어 높이 들려서, (c)(하나님에 의하여)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사52:13);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되자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승천시켜 하나님 보좌의 오른 쪽에 앉게 합니다(시110:1-6, 행2:32-36).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분의 회복이며 창조주로서의 높이를 말하고 있습니다(요1:1-4). 그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1) 하나, “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사52:13a); 보통 ‘형통’의 의미에 대하여, 계획한 것이 막힘이 없이 잘 성취되어 세상적인 성공을 가져오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여호와 종의 형통’은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주인이 맡긴 사명을 하나님 보시기에 잘 완수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일 수도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승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감당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상급을 주십니다.
2) 둘, “(천사들에 의하여) 받들어 높이 들려서”(사52:13b); 하나님께서 사명감당을 잘한 메시아에게 주시는 첫째 상급이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승천시키는 것입니다. 그 일에는 천사들이 동원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 봅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을 천사가 전해주고 있습니다;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주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마28:5-7).
3) 승천에 대한 소식도 천사가 전해주고 있습니다;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 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9-11).
4) 셋, “(하나님에 의하여)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사52:13c);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시는 두 번째의 상급은 어린양의 보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한 어린양은 그 공로로 피조물의 찬양을 하나님과 함께 받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5:11-13).
(4) 둘째, 제14절입니다; “14. (a)전에는 그의 모습이 (복음사역 중) 타인보다 상하였고, (b)그의 모습이 (대속의 자리에서는)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c)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형통이 아닌 줄 알고) 놀랐거니와”(사52:14); 메시아가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서 이 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다음과 같이 비천한 자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천국에서 높은 보좌를 얻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섬기는 종의 삶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겸손과 인간이해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엡3:18-19, 빌2:5-11);
1) 하나, “14. 전에는 그의 모습이 (복음사역 중) 타인보다 상하였고”(사52:14a);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리 호수 서편내륙의 가난한 산골 나사렛 출신입니다(마2:22-23, 13:54-58). 젊은 시절 그의 직업은 목수입니다. 가난한 동네의 목수이므로 먹고 살기가 힘이 듭니다. 30세에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전파하는 삶 이른바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시작하지만(눅3:23) 떠돌이의 삶이 곤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요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특히 선민만의 구원을 교리화하고 있는 전통적인 유대교와 그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많은 견제와 박해를 받게 됩니다(요6:66, 11:48-54). 따라서 메시아의 몰골이 가난과 핍박에 찌들은 모습입니다.
2) 둘, “그의 모습이 (대속의 자리에서는)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사52:14b); 메시아의 고난의 절정은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속죄의 제물은 사람이 아니고 가축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속죄의 제물이 되어 가축처럼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동족으로부터 여호와의 종인 메시아가 버림을 받게 됩니다. 로마총독에게 넘겨져서 십자가 처형이 됩니다. 많은 채찍을 맞고 가시관을 머리에 쓰고 그 옷이 찢겨집니다(사53:5, 요19:1-2, 23). 손과 발에 못이 박힙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고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이사야가 제53장에서 더욱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사53:7).
3) 셋,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형통이 아닌 줄 알고) 놀랐거니와”(사52:14c);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난한 삶과 공생애의 모습 그리고 동족들에게 버림받고서 처형당하시는 모습만을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대 실패자의 생애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은 메시아가 실패한 줄로 여기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제국을 건설하는 승리자의 형통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형통한 자가 아니고 고생만 하다가 실패로 막을 내린 메시아의 삶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평가를 달리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형통한 삶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4) 메시아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한 것입니다. 선민구원만을 주장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미움과 박해를 그 한 몸으로 견디어 내신 것입니다. 마침내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의 처형이라는 고통과 치욕까지 감내하십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에게 만민구원의 은혜가 주어지고 영생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메시아에게 승리자의 칭호를 주시고 하늘보좌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을 주십니다. 그것을 보고서 세상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14c).
(5) 셋째, 제15절입니다; “15. (a)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b)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c)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d)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사52:15); 그리스도가 만민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전하고 있는 그 내용이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만민구원과 모든 피조물의 구원은 메시아의 복음의 넓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태초에 천지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선언은 메시아 복음의 길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사52:15a); 사람들은 정치적인 공동체에서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존재입니다. 그 정치적인 공동체 가운데 가장 발달되어 있는 것이 국가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국가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안전을 느끼며 자아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나라라고 하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의 총화입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그러한 세속적인 나라를 구원의 범주로 보지 않습니다.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열방과 만민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세속적인 힘이 미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나라들이 메시아의 광대한 말씀과 그 구원의 스케일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둘,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사52:15b);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요12:31-32).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시는 수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임금들이 쫓겨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메시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펼쳐지게 될 것이니 자연히 왕들은 그들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사52:15b). 창조주께서 그 주권으로 행하시는 역사섭리에 대하여 피조물에 불과한 세상의 왕들이 감히 어떻게 입을 놀리며 함부로 저항할 수가 있겠습니까?
3) 셋,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사52:15c); 태초부터 하나님의 뜻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입니다. 그러나 그 뜻은 하나님의 말씀해석에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의도적으로 가리움을 받고 말았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 제사장나라를 건설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상정하고 있는 구원의 모델은 언제나 출애굽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으므로 구원의 대상입니다. 반면에 선민을 탄압하고 있던 애굽제국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군대는 홍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몰살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의 구원을 위하여(사19:18-25) 자신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해야 된다는 제사장나라로서의 책무를(출19:5-6) 도무지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4)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변방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를 이방도시 니느웨의 구원을 위하여 강압적으로 말씀의 사자로 선택하여 현지로 보내고 있습니다(욘1:2, 3:2). 하지만 별로 신통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니느웨 왕과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 선지자 요나가 견디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욘4:1-5). 요나의 지론은 재래적인 선민사상 그대로입니다. 이방도시 니느웨의 멸망을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욘4:2). 그러므로 선민사회에 메시아가 오시게 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말씀의 본래의 뜻을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사52:15c)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선민구원사상만을 추종했던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의 입장에서는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이 생소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5) 넷,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사52:15d); 이사야는 ‘보고 듣고 깨닫게 될 것’이라고 순서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무엇인지 백성들에게 눈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언급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는 죄사함의 은혜가 선포되고, 귀신이 쫓겨나며, 죽은 자가 무덤에서 되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광경을 백성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특히 수행사도인 3제자는 변화산상의 모습으로 천국까지 보게 됩니다(막9:1-8). 제자들과 백성들이 천국복음을 듣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바리새파 공회원인 니모데모와 같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방문하여 거듭나는 방법과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설명을 직접 듣게 됩니다(요3:1-12).
6)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들어가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40일간 천국복음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행1:3). 그 결과 제자들은 히브리정경의 선지자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눅24:44-48). 그리고 그 깨달음대로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눅24:49, 행1:8, 2:1-4). 그와 같은 훗날의 일을 이사야가 여기서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사52:15d)고 함축적으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1. 우리가 전한 것(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 곧 대속의 그리스도와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오심 또는 그러한 새 언약의 시대의 도래를 말함, 렘31:31-34, 욜2:28-29)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메시아와 속죄 및 부활의 역사를 증거하는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 행1:8)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2:14절에 대한 반복설명임) 3. 그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민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이기적인 선민구원사상 및 현세적인 축복사상과 상반되므로)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외면과 배척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고생을 많이 하였으며) 질고(고통)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무시)를 당하였고, 우리도(세례 요한과 같이 우리 선지자들도, 마11:3, 11)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그러한 속죄의 제물로 나타날 줄을 전혀 몰랐다는 것임, 요1:29)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 요1:29, 3:13-15),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여호와의 버림을 받아 저주의 나무에 매어 달렸다고 여긴 것임, 마27:4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그러나 실상은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는 여호와 이레 곧 영원한 속죄양이라는 것임, 창22:12-14, 요3:13-17, 히10:10)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막14:50, 제자들이 스승 예수를 버리고 도망함. 막14:68-72, 베드로가 스승 예수를 부인함),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저주의 나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기에 아버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으며 끝까지 순종하였기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것임, 마27:46, 50-54, 28:6-20).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굳게 입을 다물고 모든 수모를 감당하였으며 끝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임, 마26:52-56, 62-68)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그 실상은 반역의 괴수가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가 준비한 만민구원을 위한 속죄양인 것임, 요1:29, 3:13-17. 그 사실을 그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이 크다는 선지자 이사야의 지적임, 사6:9-13)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실제로 예수님의 시신은 부자이며 아리마대 유대인 마을의 촌장인 요셉이 마련한 바위굴 묘실에 안장됨, 요19:38-42)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여호와 앞에 백성들이 범한 허물과 잘못을 영원히 대속하는 제물이 바로 인자 그리스도인 것임, 요1:29)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전파에 나서는 자를 말함, 곧 복음의 디아스포라임, 요21:17-18, 행1:8, 2:1-4)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심, 요19:30)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창조주 여호와의 오른쪽에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좌를 주시는 것임, 시110:1, 행2:32-36, 계7:9-17, 22:1.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도 훗날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임, 눅22:28-30, 롬8:18),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마16:21-24)“(사53:1-12);

(1) 본문 제1-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의로운 종 메시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과의 차이를 예언의 말씀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이사야가 어떻게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내용에 대해서는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1절입니다; “1. (a)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b)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사53:1); 선지자 이사야가 절규하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의 뜻을 말씀과 예언으로 동족들에게 전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차 메시아가 선민사회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그러할 것만 같습니다(사53:1a).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누가 옳은 것일까요?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으로 선지자들의 부르짖음과 메시아의 복음사역이 옳다는 사실을 반드시 증명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선지자의 팔을 들어 올려 주시는 것입니다(사53:1b, 출17:12). 그러므로 의롭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판단에 달려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3) 둘째, 제2절입니다; “2. (a)그는 주(하나님)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筍, 새싹)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b)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중요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 그는 주(하나님)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筍, 새싹)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사53:2a);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람들에게 두 가지 형태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삶입니다. 또 하나는 영적인 삶입니다. 육신적인 삶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며 소원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형통함과 현세적인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풍성하게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육신적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뿐만 아니라 선민들도 그와 같은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 영적인 삶은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강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네피림과 같은 용사로 태어나서 남을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창6:4-5).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힘으로 전부 차지하고자 하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창6:2-3). 영적인 삶은 하나님 앞에서 연한 새싹과 같이 순종할 줄 아는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말합니다(사53:2a). 그리고 영적인 삶은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고 뿌리를 깊게 박아 자손대대로 복락을 누리기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마른 땅과 같아서 영원한 생명을 잉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의 뿌리를 여호와의 말씀에 두고자 합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영적인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면서 장차 천국의 백성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세상에 뿌리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아가는 인생을 영적인 삶이라고 이사야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사53:2a).
3) 둘,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b); 육신적인 삶은 3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합니다. 따라서 고운 모양을 지니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외모관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릅니다. ②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따라서 그 풍채가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스펙’(Spec, 이력서 내용)도 무지하게 좋아야 합니다. ③잘 생긴 사람과 크게 성공한 사람 앞에 세상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흠모할 만한 사람은 세상의 ‘우상’(idol)이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호와의 종인 선지자나 메시아에게는 그와 같은 요소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사53:2b).
(4) 셋째, 제3절입니다; “3. (a)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b)간고(艱苦, 생활상의 어려움과 고통)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 육체적인 괴로움과 고통)를 아는 자라. (c)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d)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서 겪게 되는 멸시, 배척, 간고, 질고, 외면, 천대 등 6가지의 고통을 이사야가 적나라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사53:3a); 선민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멸시하고 배척하게 됩니다; 선민들은 메시아가 그들 사회에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후계자로 오시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제국을 재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이웃 이방인들이 모두 선민 이스라엘을 섬기는 종이 될 것입니다. 자연히 선민의 영광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에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는 이유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방법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민사회에 오신 메시아는 정반대로 설교하고 행동합니다.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함께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선민들이 나서라는 것입니다(출19:4-6, 마5:44-48). 그와 같이 나약한 메시지를 유대인들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닙니다. 그 가르침에 대하여 멸시하며 메시아 예수를 배척하고 맙니다(사53:3a).
2) 둘, “간고(艱苦, 생활상의 어려움과 고통)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 육체적인 괴로움과 고통)를 아는 자라”(사53:3b); 장차 메시아가 겪게 되는 생활고와 복음사역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는 변방 갈릴리 호수의 서쪽 산지 가난한 벽촌 나사렛 출신입니다. 직업이 목수입니다. 가난한 산골마을의 목수이기에 생계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나이 30세에 12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떠돌면서 공생애를 지냅니다. 여호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전하는 복음사역을 3년 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여행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재정적으로 쪼들릴 뿐만 아니라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박해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의 복음사역의 현장에는 수많은 병자들과 장애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메시아가 고쳐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병이 들고 고통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여기서 이사야가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3b).
3) 셋,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사53:3c); 선민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서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정죄하고 맙니다. 그리고 로마총독에게 이송하여 십자가처형을 의뢰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유대백성들도 메시아를 외면하고 맙니다(마27:20-25). 그것은 메시아가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선민구원과 현세적인 복을 챙기기에 바빴기 때문에 결코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만민구원이나 천국에서의 영생을 추구하는 삶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자신들이 받아 들일 수 없는 신앙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고 있는 메시아 예수를 배척하고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비극입니다. 그 점을 이사야가 여기서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3c).
4) 넷,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d); 선민들만 메시아를 배척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들도 그러합니다. 똑같이 세상적인 형통과 성공을 추구하며 현세적인 구원의 복을 얻기를 희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우상문화적 소원을 충족시켜주는 구원자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라고 메시아가 가르치고 있으니(막3:4) 그 말씀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막12:30-31).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현실타당성이 없으며 이상주의자의 헛소리라고 취급하고 맙니다. 그 대목을 이사야가 여기서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3d).
(5) 본문 제4-6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유일한 영생구원의 길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창조주 하나님이 의로운 종 메시아에게 담당하게 하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사53:4-6). 본문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가정이 필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수술의(手術醫, surgeon)가 되시고, 그리스도는 장기(臟器, organ) 제공자가 되시고 사람들은 이식(移植, transplant)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제멋대로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그만 타락하고 부패하여 치명적인 장기의 손상을 입고 있는 환자와 같습니다. 시급하게 장기이식수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류가 전부 타락하고 부패하여 버렸으므로 어디에서 깨끗하고 신선한 장기를 기증받을 수 있는 곳이 이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로운 육신을 만들고 계십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모태에서 메시아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메시아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결코 타락하거나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장기로 환자인 사람들을 수술하고자 하십니다. 그 수술대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사람들을 살리고자 기증하고서 떠난 장소가 훗날 골고다 언덕이라고 하겠습니다(눅23:34, 42-43).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수술대가 되고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그 수술대 위에서 믿는 자의 부패한 장기가 신선한 그리스도의 것으로 교체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으로 믿는 자들에게 주신 그 몸과 피로써(요6:51-59) 거듭난 인생들이 그 자리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요3:3-8, 12-15). 그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각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6) 첫째, 제4절입니다; “4. (a)그는 실로 우리의 (육신적)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정신적) 슬픔을 당하였거늘, (b)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사53:4); 세상적인 인과응보의 법칙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충족되고 동시에 만민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면 메시아의 일생이 어떻게 진행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1) 하나, “4. 그는 실로 우리의 (육신적)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정신적) 슬픔을 당하였거늘”(사53:4a);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육체적인 질병의 고통과 사랑하는 자를 떠나 보내야 하는 정신적인 슬픔을 함께 맛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메시아가 보통 인간과 똑같은 고통과 슬픔을 맛볼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사53:4a). 그러므로 훗날의 사람들은 메시아도 사람의 정체성과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의 고통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경험하시도록 되어 있다고 단정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피조물의 고통과 슬픔을 맛보지 아니해야 하는 창조주이지만 인간을 이해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그 고통과 슬픔을 맛보고 있다는 것입니다”(사53:4a).
2) 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사53:4b); 고대사람들은 ‘인과응보’(因果應報,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의 법칙을 철저하게 믿고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하나님의 상을 받아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고, 반면에 악한 일을 행한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욥기를 보면, 욥의 세 친구가 환난에 처해있는 욥에게 잘 생각해보라고 권면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사회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 선을 권장하고 악을 응징하는 것)과 하나님의 ‘인과응보의 법칙’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허물과 잘못이 욥에게 반드시 있기 때문에 눈이 밝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난과 고통을 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생각해보고 빨리 회개를 하고서 살길을 찾으라고 하는 권면입니다(욥4:7-9, 5:17, 8:4-8, 11:13-18, 22:4-5).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가 메시아의 최후와 관련하여 그와 동일한 유대인들의 시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생각과 교훈이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유대교의 교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의 잘못을 징계하기 위하여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받게 하고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용하고 계시는 것이다”(사53:4b 의역). 그 실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점을 사람들이 미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7) 둘째, 제5절입니다; “5. (a)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b)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c)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이사야는 메시아가 자신의 죄악 때문에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사람들의 허물과 죄악을 치유하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과 더불어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당하게 되는 징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53:5a); 훗날 메시아는 십자가에서 그 시신이 땅으로 내려질 때에 로마병정에 의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게 됩니다. 그때 피와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요19:34). 그같이 일회성인 찔림에 의하여 가벼운 사람들의 허물은 사함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죄악은 무겁습니다. 그래서 사함의 방법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속의 죄사함의 길을 찾기 위하여 메시아가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정죄 되고 로마총독에 의하여 심문 받게 됩니다. 결국에는 십자가 극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 모든 육신적 정식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메시아의 몸이 지치고 크게 상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오랜 고통과 상함이 바로 사람들의 죄악을 담당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사53:5b); 메시아가 자신을 세상죄를 지고 가는 희생 제물인 어린양으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습니다(요1:29). 그 결과 어린양이 징계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양에게 죄짐을 맡긴 백성들이 사함을 얻으며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롬5:1);

셋,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c); 메시아가 십자가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로마총독부에서 채찍을 맞게 됩니다. 등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피가 흘려 내립니다(마27:26). 그 피가 땅에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나음을 입습니다. 그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8) 셋째, 제6절입니다; “6. (a)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b)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아버지를 버리고 재산을 받아서 도시로 떠나버린 탕자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가 필요할까요?
1) 하나,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a); 창세기 제17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사람이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의사 결정하여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가 말씀하신 그대로 실천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완전히 성취되도록 해주겠다는 것입니다”(창17:1의역). 그런데 세상사람들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혜롭고 의롭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꾀와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양을 치고 있는데 양들이 목자인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여 제멋대로 초지를 찾아 멀리 떠나버리는 것과 같습니다(사53:6a).
2) 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b); 탕자가 아버지를 찾아올 때에는 한가지 절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절차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뉘우쳐야만 한다는 것입니다(눅15:18). 그 뉘우침의 결과가 이러합니다; “이제는 아들의 자격을 상실하였으므로 아버지 집의 종이 되어 살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분회복의 문제는 아버지의 처분에 따르겠다고 하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눅15:19의역).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자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죄악을 메시아에게 대신 담당하게 하는 은혜가 영적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53:5b). 그 대속의 사명을 지고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중환자와 같은 사람들을 살리고자 스스로 마치 장기기증자처럼 수술대에 올라가십니다. 그곳이 바로 대속의 제물을 바치는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가 대속의 제물로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는 그 장소에 우리는 반드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심장과 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9) 본문 제7-9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선택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언약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선택은 다음 4가지입니다; ①회개하는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고자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려고 합니다(요1:29, 3:13-18). ②자신의 육신과 목숨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생과 부활의 몸을 얻고자 합니다(마10:28, 행2:31-33, 빌3:10-12). ③자신의 제자를 양육하여 세상에 파송함으로써 메시아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합니다(마28:18-20, 요17:18-21, 행1:8). ④메시아의 나라가 땅끝까지 확장되면 종말로 아버지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고전15:24). 그와 같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선택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언약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과의 언약의 내용을 신실하게 이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선택이 바로 하나님과의 약속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메시아가 하나님 아버지와 맺은 언약의 내용을 파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하면 반드시 부활과 영생을 줄 것이다(사52:13-15, 53:10, 행2:23-24). ②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메시아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줄 것이다(눅24:49, 요20:22, 행1:8). ③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간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줄 것이다(마16:24, 요1:12-13).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고자 하십니다. 자신의 목숨과 육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고자 하십니다. 그 길만이 회개하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의 약속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그 무엇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사53:7, 마26:62-68). 그 모습을 선지자 이사야가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기 700년 전에 벌써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의 각 구절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0) 첫째, 제7절입니다; “7. (a)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 하였음이여, (b)마치 도수장(屠獸場, 짐승을 잡는 도축장임)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사도 요한의 증언 그대로 메시아는 세상의 창조에 참여하였으며(요1:1-4)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습니다(요1:1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사람들을 징벌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마26:5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 어린양이 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모습이 다음과 같다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 하였음이여”(사53:7a); 메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선민들에게 풀이해주지만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성전을 헐고 메시아가 사흘만에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예언한 대목과 같은 것입니다(요2:19). 그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대속의 죽음에서 3일만에 부활시키게 되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백성들이 마음속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구원의 시대가 열린다는 복음을 전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요3:13-15, 4:21-24). 그러나 제자들조차 그 말의 진정한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요2:19-22). 그러므로 예수님이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종교재판을 당할 때에 유대인들이 액면 그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마26:61). 여호와말씀의 뜻과 메시아의 사명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선민들 앞에서 일일이 해명하는 것이 참으로 곤욕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말로써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영이 임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 시대가 올 때까지 예수님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마26:63). 여기서 이사야는 700년 후의 그 상황을 미리 내다보고서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 “마치 도수장(屠獸場, 짐승을 잡는 도축장임)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b);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은 빨리 어린양의 사명을 감당하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태초에 세상창조의 역사에 동참한 바 있는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지만(요1:3, 14)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육신을 입고서 살고 있는 인자(人子, son of man)의 삶이 참으로 곤욕스럽고 괴롭습니다. 이제는 고통스러운 3년 6개월의 공생애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대교의 최고재판소인 산헤드린 대(大)공회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로마총독에 의하여 형이 확정되어 십자가처형이 집행되면 메시아의 역할은 모두 끝나게 됩니다. 육신적인 고통이 극심하겠지만 그것이 세상죄를 지고 가는 유일한 대속의 제사의 방법이므로 홀로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 속 고통을 지니고서 메시아가 속죄양처럼 잠잠히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사53:7b). 그와 같은 미래를 이사야가 미리 내다보고서 마치 눈으로 본 듯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둘째, 제8절입니다; “8. (a)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b)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c)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53:8);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심문을 당할 것이라고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음부의 세계로 내려가시는 것이 백성들의 허물을 청산하는 방법이 된다는 사실까지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사53:8a);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이 실제로 잡히시고 종교재판을 당하시고 처형장으로 끌려가시는 장면을 이사야가 여기서 예언하고 있습니다(눅24:44-45); 먼저 메시아가 사람들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십니다(마26:57).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체포되는 곤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마26:52-56). 그 다음에는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심문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하기로 하고(마26:66) 로마총독에게 끌고 갑니다(마27:1-2). 사형의 집행을 허락 받기 위한 절차입니다. 700년 후에 이루어지는 메시아 처형의 절차에 대하여 이사야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사53:8a). 실제로 훗날 그러한 절차로 역사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사48:5-7, 눅24:44-45).
2) 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사53:8b); 메시아의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가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모든 일이 끝나게 되었다고 쉽게 생각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영원히 끊어졌다는 인생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람들의 인식은 사람의 유한한 목숨과 육신적인 삶 만을 살아 있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짧은 견해일 따름입니다. 영과 육으로 창조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을 재음미해보게 되면(창2:7) 그것은 절반의 진리일 뿐입니다. 육신과 분리된 그리스도의 영이 음부의 세계에 들어가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까요? 연약한 육신에 갇혀 있던 독생자의 영광이 음부의 세계에서 그 진면목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음부의 권세가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감히 창조주의 영광을 흑암의 권세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요1:5, 계20:14, 21:3-4, 22-27). 그 결과 죽음의 세력이 박살나고 있습니다(창3:15, 행2:24, 롬8:2). 죽음의 권세가 깨어지고 그리스도는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게 됩니다(마27:50-56). 동시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산제사를 믿는 죄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요5:24, 11:25-26).
3) 셋,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53:8c);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메시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6:4-7).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창조주 하나님 앞에 죄인들입니다(롬3:9-18). 자신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도저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의 참혹한 죄와 허물을 짊어지고 어린양처럼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요1:29). 그 때문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지고 부활과 영생이 주어지는 구원이 오게 됩니다(롬8:1-2).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을 여기서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2) 셋째, 제9절입니다; “9. (a)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b)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53:9); 훗날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이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27. 또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5:27). 그 말씀을 히브리서 저자는 메시아야 말로 우리 인간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대제사장이시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히4:15).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 이 구절의 풀이가 다음과 같이 쉽습니다;
1) 하나,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사53:9a); 흔히 감옥에 가보면 억울한 죄수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기서 메시아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메시아는 평생 힘으로 사람을 억누르고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엄청난 고난과 불이익이 발생할지라도 검은 것을 희다고 거짓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골고다 공동묘지가 있는 그 언덕에서 억울한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형을 받고 맙니다. 극형을 당하고 그 시신이 그 근방의 무덤에 안치됩니다. 무죄한 메시아가 악인들과 죄인들이 들어가 있는 무덤에 똑같이 들어간 것은 그들에게 훗날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5),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2) 둘,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53:9b);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마19:23);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데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마19:25) 그와 같은 제자들의 의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명쾌하게 답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b).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부자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부자이며 공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친구 니고데모와 함께 로마총독에게 청원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합니다(마27:57-58, 요19:38-39).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려고 파 놓은 부자의 묘실에 안장합니다(마27:59-60). 그러므로 메시아가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부자들이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이 대목에서 벌써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3) 본문의 말미 제10-12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가 무엇으로 구원의 씨를 뿌리며 어떻게 그것을 자라게 하고 또 그 열매를 수확하게 되는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장차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공생애를 마치신 후 속건제(贖愆祭, 여호와의 성물이나 계명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한 경우 드리는 속죄의 제사임, 레5:15-17)의 제물로 자신의 영혼을 바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민구원의 씨를 이 세상에 뿌리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사53:10).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메시아께서는 그냥 쉬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뜻을 모두 성취하기 위하여 회개하는 많은 사람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며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세워 나갈 것입니다(사53:11). 그러므로 메시아가 여호와의 종으로 대속의 삶을 살아간 그 뒤를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의로운 종이 되어 따라가게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역시 존귀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사53:12, 눅22:28-30, 롬8:18). 이제 각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4) 첫째, 제10절입니다; “10. (a)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b)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출32:32), 그가 씨를 보게 되며, (c)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53:10); 메시아가 그 마음이 상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고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창조주 하나님께 죄를 범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자발적으로 그 영혼까지 제물로 바치게 되면 놀라운 일이 발생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사53:10a);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는 그 일생이 어떠할까요? 이사야는 한마디로, 메시아의 삶이 철저하게 대속의 삶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아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그 자신의 마음이 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육신적인 질병과 장애를 고쳐주기 위하여 자신의 육신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 둘,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贖愆祭物, 여호와의 성물이나 계명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한 경우 드리는 속죄의 제사에 바쳐지는 제물임, 레5:15-17)로 드리기에 이르면(출32:32), 그가 씨를 보게 되며”(사53:10b); 단지 메시아의 마음이 상하고 그 몸이 고난 당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전부 속죄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는 완전한 속죄를 위하여서는 메시아가 그 영혼을 속건제의 제물로 내놓아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가 거론하고 있는 속건제는 굉장히 엄격한 제사규정입니다. 왜냐하면, 고의가 아니라 과실로 인한 잘못에 대하여서도 속죄의 제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중한 것이 아니라 경한 잘못에 대하여 엄중하게 속죄의 제사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단 하나를 어긴 경우 또는 하나님의 성물 가운데 하나를 잘못 만지게 된 경우에도 모두 적용되는 것입니다.
3) 그렇게 사소하게 보이는 잘못에 대해서 속죄함에 있어서도 메시아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영생을 얻어야만 하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사람들을 살려내겠다고 하는 메시아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메시아의 신령과 진정입니다(요4:23-24). 참고로, 그 비슷한 경우를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 그와 같은 중보기도를 드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단 이스라엘 자손들을 용서해 주십니다(출32:34a). 그러나 훗날 메시아가 그 죄에 대한 보응제물이 된다는 의미를 내비치고 있습니다(출32:34b). 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영혼과 몸을 바쳐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고 그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죄인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사53:10b).
4) 셋,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53:10c); 메시아가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신의 영혼을 걸었기에 그 상급이 큽니다; 영생의 구원이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주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먼저 부활 승천하여 천국에서 그 구원사업을 주관하게 됩니다. 세상 끝까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마24:13-14).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메시아의 나라를 건설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로 올려드릴 것입니다(사11:5-9, 고전15:24). 참고로 하나님나라의 모습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15) 둘째, 제11절입니다; “11. (a)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b)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메시아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실천한 경험)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c)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53:11); 이사야는 메시아의 영혼의 수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지식이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사53:11a);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유한한 사람의 목숨과 육신적인 삶을 뛰어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여기서 ‘메시아의 영혼의 수고’(사53:11a)를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수고한 메시아의 복음사역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지금도 영적으로 계속 수행하고 계시는 그 대제사장의 임무와(히4:14-16) 구원자의 사역을(요5:27-29, 17:23, 행16:7, 롬8:1-2) 모두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의 제자와 성도들이 지상명령을 수행하고 있으며 메시아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현장을 내려다 보시고서 메시아가 지금도 영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수고를 만족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사53:11a).
2) 둘,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메시아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실천한 경험)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사53:11b); 메시아를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평생 동안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일생입니다. 비록 선민사상과 현세축복사상에 물들어 있는 유대교인들의 정죄를 받아 십자가처형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한 의로운 종이기에 부활과 영생의 상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그 경험과 상급이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처럼 행하면 구원과 영생이 부활과 함께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메시아는 의로운 종을 양산해내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사53:11b).
3) 셋,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53:11c); 메시아는 말로만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어린양이 되고 있습니다(사53:7, 요1:29). 그리고 그 영원한 제사는 메시아 이외에 그 누구도 그리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가 없는 성격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인간들을 용서하고 영생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고 용서를 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밝히고 계십니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범죄한 인간의 몸과 피로는 속죄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정하고 있는 제사 곧 가축을 제물로 사용하고 있는 제사장들의 제사는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번에 드리는 영원한 구원의 제사는 메시아가 제물이 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7:26-27).
(16) 셋째, 제12절입니다; “12. (a)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b)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c)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53:12); 이사야는 메시아가 특히 자기 영혼을 바치면서까지 많은 사람의 죄를 속죄하고 그들의 구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사53:12a);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공의를 끝까지 실천하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메시아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천하 권세를 주실 것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마28:18). 그리스도는 그 천하 권세를 가지고 제자들의 지상명령수행을 지원할 것입니다(마28:19-20).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메시아와 같은 일생을 살아가게 되면 똑같은 존귀함과 기업을 하나님나라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생명의 면류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2) 둘,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사53:12b); 이 세상에서 구원자 메시아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자면 무엇까지 내놓아야 하며 어디까지 깊이 내려가야만 할까요? 이사야가 한마디로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①자신의 영혼까지 내놓아야 합니다. 회개한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까지 내놓고서 대신 용서를 빌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가장 귀중한 영혼의 제사가 없이는 회개한 죄인에게 영원한 구원을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②범죄자가 못박히는 그 자리까지 동행하며 무덤에까지 함께 내려가야만 합니다. 무덤에 내려가지 아니한 자가 무덤 속에 있는 자를 구원하여 부활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가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베다니의 나사로를 되살려낸 사건은(요11:38-44) 하나의 신호탄입니다. 즉, 메시아가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무덤 속 부활로 말미암아 장차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 부활과 영생을 얻게 해주겠다고(요11:25-26) 하는 약속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3) 셋,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53:12c); 사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자신을 온전한 속죄의 제물로 드린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저자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7:26).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메시아가 하신 사역을 대신할 수 있는 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창18:23-32). 그리고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죄 범한 동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출32:11-14, 32);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칭 선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타락하고 맙니다. 그 결과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사39:5-8). 그와 같은 미래를 이사야가 이미 내다보고서 그의 예언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악한 세상나라 곧 신바벨론제국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반사적인 해방의 이익을 주십니다(사44;28, 45:1-6, 52:5).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을 세상의 이방인들과 구태여 구별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의 땅에 메시아가 오시고 선민구원이 아니라 만민구원의 복음이 그곳에서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본문 이사야의 예언은 선민의 울타리를 진작에 뛰어넘고 있습니다. 타락한 선민 역시 회개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도 회개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일단 이방인 사회에 전파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고 하는 변명이 전혀 통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민의 후예들이거나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거나 상관없이 이제는 누구나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옳게 바꾸어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하여 이사야가 본문에서 열거하고 있습니다(사52:1-2). 그 내용들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사야의 글을 읽는 동안에 여전히 두 팔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사52:5-6) 발견하게 되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