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출애굽의 이적과 홍해심판의 교훈을 잊어버린 선민들에게 임하는 위기와 멸망 그리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 땅에 오시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영”(사31:1-32: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8. 2. 08:05

제목; “출애굽의 이적과 홍해심판의 교훈을 잊어버린 선민들에게 임하는 위기와 멸망 그리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 땅에 오시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영”(31:1-32:20)

설교일; 주후 2026 101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82일 토요일 작성)

창세기 제1장에서 모세는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만드셨는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6-28).

요컨대,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이 세상의 땅과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창조주의 뜻을 받들어 이 세상의 땅과 생물을 올바로 다스리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십니다;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1:31).

그런데 6일동안에 이루어진 창조의 결과가 여호와의 뜻대로 온전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7일에 하나님의 청지기인 사람을 여호와께서 교육시키고 훈련시킬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창세기 제2장에서 여호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에덴동산에서 생활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아담의 출생과정이 다음과 같이 창세기 제2장에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한마디로,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니 그가 여호와의 뜻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확하게 여호와의 생기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훗날의 선지자 에스겔이 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에스겔)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여호와의)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31:1-3, 32:6-7, 9-14).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대속의 그리스도를 보내어)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성령을 보내어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대속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하나님의) 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31:33, 2:28-29, 14:16-20)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11:16, 26, 32:15-20),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11:1-12, 65:17-18, 21: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7:8-14).

본문 이사야 제31장 및 제32장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선지자 에스겔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1)  첫째,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멸망 당한 선민 곧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는 것입니다(37:11). 에스겔이 여호와의 명령을 대언하자 그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근육과 힘줄이 생기고 살로 채워져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창조주의 생기가 그 몸에 들어가지 아니하여 여전히 여호와의 군대로 쓰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37:8).

(2)  둘째, 선지자 에스겔이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도록 한 결과 그들이 여호와의 군대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변화는 대속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새 역사를 통하여 장차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동일한 역사가 발생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여호와의 군사로 헌신하고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셋째, 그와 같이 에스겔 제37장의 의미를 풀이하고 보면 오늘의 본문 이사야 제31장과 제32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1)   하나, 창조주 하나님은 모세를 선지자로 삼고 애굽으로 보내어 세상제국 애굽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키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19:4-6). 그 일을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애굽인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특히 마지막 10번째 재앙에 있어서는 창조주 여호와가 직접 애굽에 들어가서 그들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죽게 하고 애굽인들이 믿고 있는 우상과 신들을 처벌하십니다(12:12).  

2)   , 그 뿐만이 아닙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시 사로잡아 노예로 삼고자 하는 바로의 군대를 신위적인 능력으로 홍해에 수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4:23-31). 그리고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재물을 약탈하고자 야간에 기습하는 광야의 무법자 아말렉 족속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장정들을 동원하여 참패를 안겨주고 맙니다(17:8-16). 그 덕분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 아래에서 여호와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19:4-6).

3)   ,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정책결정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세상제국 애굽의 군사력을 다시 의지하고자 합니다(31:1).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피조물을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므로 선민의 나라에 망조가 들고 있습니다(31:2-3);

4)   , 그렇지만 주전 701년에 애굽의 지원병이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패퇴하여 물러가고 나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비로소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 겸손하게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 결과 창조주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 밤사이에 적군 18 5천명을 도륙하고 맙니다(37:36). 신위적인 능력으로 되살아난 다윗왕조 유대왕국입니다(31:4-5, 8-9).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국난의 위기를 당하면 최후의 순간에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국왕이 구원을 호소하면 언제나 적군이 물러가게 되는 이적이 발생하게 되는 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평상시에는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제멋대로 탐욕과 이기심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32:9-10). 그 결과 주전 586년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마침내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32:11-14, 왕하25:1-12).

5)   다섯,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신바벨론제국이 고레스의 페르시아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일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고토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건설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종교개혁의 물결이 사라지고 유대교인들이 그 옛날의 잘못을 재현하고 있습니다(2:8-17). 그러한 시대에 그 땅에 대속의 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십자가 죽음과 무덤 속 부활사건이 발생합니다(32:1-3, 16-20).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고 내주 역사하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됩니다(32:4, 15). 그로 말미암아 선민들에 의하여 선민만의 구원과 다윗제국의 재건을 부르짖던 유대교인들의 땅에서 이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기독교인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32:16-20, 28:18-20, 1:8, 2: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원병을 요청하고자 대국 애굽제국으로 급히 가는 유대왕국의 사신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창조주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을 잊어버리고 세상적인 대국의 군사력만 의지하고자 하니 그것이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의 멸망의 징조라는 것임, 12:12, 14:28, 17:10-13),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여호와신앙을 버린 선민의 나라와 백성)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애굽의 원병)들을 치시리니(왕하19:9, 실제로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의 구원병이 앗수르 황제 산헤립의 군대에 의하여 참패한 것임),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군대는 물론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신인 우상들도 모조리 창조주 여호와의 전능하신 역사섭리로 말미암아 파멸을 맞이하고 마는 것임, 12:12, 17:1).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강력한 침략군을 상대하고자 우방의 원군을 불러보아야 그것은 마치 맹수를 상대하고자 목자를 불러모은 것과 같아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임).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피조세계의 막강한 적을 물리치는 방법은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의지하는 것임).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히스기야 왕 때는 예루살렘을 구원할 것이며, 새 언약의 시대가 되면 성도들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 새 예루살렘성으로 인도할 것임).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유월절 밤을 의미함, 12:27)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그러나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한다는 것임).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이방인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처럼 회개하고서, 12:39-41)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3:4-10). 7.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그 옛날 야곱의 가족처럼 회개의 표시로 우상을 버리고, 35:4), 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여호와의 징벌의 도구로 동원된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13:4-5)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11:10-12).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저버린 예루살렘의 멸망이 선례가 되어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의 역사가 동일한 죄악을 범하고 있는 이방나라에 차례로 내리게 되는 것임, 25:29)“(31:1-9);

(1)  먼저, 이사야는 본문 1-3절의 예언을 통하여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어째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며 또한 애굽에게도 임하게 되는지 이유에 관하여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예언은 그의 시대에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후의 시대에도 그러합니다. 특히 2,700년이 지난 주후 21세기 오늘날에도 그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적용되고 있는 예언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제부터 구절을 살펴보면서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있을진저! 그들은 의지하며, 병거 많음과, 마병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 구하지 아니하나니”(31:1); 어떻게 하면 세상의 환난에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훗날 메시아로 세상에 오시게 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자신의 인생을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이 환난을 이기고 구원을 얻는 방법입니다(6:10, 10:28, 26:42, 24:49, 6:38-9, 1:8). 그런데 구약시대에 있어서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다고 대내외적으로 크게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이 그러한 신앙의 모범을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31:1).

1)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 앗수르의 대군이 쳐들어오자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종주국으로 섬기고 있는 애굽제국에 도움을 청하고자 사신을 보내기에 분주할 따름입니다(31:1a). 그들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전쟁의 환난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지 않습니다. 말로는 옛날 신앙의 거인 다윗 왕처럼 시편의 말씀을 줄줄이 외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3: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신앙고백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믿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이 있어 보이는 애굽의 황제 바로에게 부디 앗수르의 군대를 격파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선민 유대인들이 그저 전통적인 종교의식이나 행사를 치르고 있는 것이지 그들의 구원과 영생을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에게 의탁하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뜻입니다.

2)      어째서 그와 같은 엉터리 신앙인들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를 본문에서 이사야가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선민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가지입니다; 피조물인 ’(horse)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31:1b). 사람이 만든 전투용 마차인 병거’(chariot) 의지하고 있습니다(31:1c). 훈련이 잘된 기마병이나 병사’(horseman or soldier) 의지하고 있습니다(31:1d). 3가지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애굽제국을 평소에 종주국으로 섬기고 있으며 적의 내침을 받게 되면 즉시 애굽에 원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국가 유대왕국의 국방외교정책입니다. 한마디로, 피조물(被造物, God’s creature) 인조물(人造物, artificial creature or man-made things) 전차그리고 훈련 받은 병사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전부 피조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의 주인이신 창조주를 의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31:1e). 그것이 선민들의 참으로 잘못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3)      이제 왕국에 전란이 발생하게 되는 위기상황에서 그들의 믿음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부끄러운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본문 예언에 따르게 되면, 오늘날에도 창조주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피조물이나 인조물 그리고 훈련된 사람의 능력에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의 반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의 능력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것이 어떻게 참된 하나님신앙의 모습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은 예리하기 그지 없습니다.

(3)  둘째, 2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들의 치시며 행악을 돕는 들을 치시리니”(31:2);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엉뚱하게 애굽제국으로 뛰어가서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1:1). 그런데 그는 다음 예언 가운데 2가지 이상한 구절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지혜롭게 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31:2a). 하나는, 하나님 말씀에 변함이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31:2b).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대목들일까요?

1)      선민들의 불신앙의 모습을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배신감을 다스리지 못하시고 단번에 모조리 전멸시켜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사야는 철석같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진심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의의 정신에 따라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보응으로 반드시 심판을 행하시지만 가운데 벌써 구원의 처방을 마련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대속의 구원주 메시아를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53:4-12, 19:25-27, 32:34, 11:29, 11:25-26).

2)      그와 같은 이사야의 신앙이 19장에서 다음과 같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리라”(19:22). 차제에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의 기록의 일단을 적어봅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6. 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것임이라. 7.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3)      다음으로 이사야는 일어나사 악행하는 들의 치시며, 행악을 돕는 들을 치시리니”(31:2c&d)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뜻은 가지입니다; 하나는, 악행하는 당사자만 처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사자와 그의 집을 전부 치신다는 것입니다(31:2c). 그러므로 왕이 악행을 행하게 되면 왕국이 위험합니다. 그리고 가장(家長, the head of family) 악행을 행하게 되면 식구들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정과 왕국의 행복을 지키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 악행을 행하여서는 아니됩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4)      하나는, 악행 가운데 특별히 조직적인 특수범죄의 대하여 강력하게 처벌하십니다. 행악하는 당사자 뿐만 아니라 악행을 돕고 있는 자들까지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행동대장 뿐만 아니라 음모자와 범죄의 교사자가 모두 처벌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원군을 구하려고 달려가고 있는 불신앙의 나라 유대왕국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애굽의 바로도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애굽의 바로인 구스의 디르하가 왕이 앗수르 원정군의 후미를 공격하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왕하19:8-9). 결과 예루살렘성에 갇혀 있는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은 절망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에 따라 성전으로 나아가서 하나님께 눈물로써 매어 달리게 됩니다(왕하19:14-19).

(4)  셋째, 3절입니다; “3. 애굽은 사람이요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엎드러져서 함께 멸망하리라”(31:3);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하는 이유가 가지입니다; 하나는, 육신의 죽음 뿐만 아니라 영혼의 소멸까지 관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0:28). 하나는, 말씀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동일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2:2b). 그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본문 위의 구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1)      선민들이 애굽을 평소에 종주국(宗主國)으로 섬기고 있는 이유는 엄청난 국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 때에 국력은 군사력의 강함으로 나타납니다. 수많은 말과 병거를 보유하고 있는 애굽제국은 강력한 기마대(騎馬隊) 가지고 있습니다. 앗수르 대군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시점에서 히스기야 왕은 애굽 기마대의 후방공격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애굽의 공동통치자의 하나인 구스 디르하가가 직접 친정(親征) 나섭니다. 하지만 전투에서 패하고 맙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사야가 정확하게 예언으로 답해주고 있습니다. 답변의 조각들을 나열해서 의미해석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하나,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지 아니하고 애굽의 원군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능력이 아니라 피조물인 기마대에 모든 기대를 걸었으니 어떻게 구원을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31:3b) , 차제에 철저하게 선민들의 불신앙을 바로잡기 위하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애굽제국이 한갓 피조물에 지나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것입니다.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 외에는 세상에서 구세주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것입니다(31:3a). , 그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와 스스로 힘이 있는 강대국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두 멸망을 당하고 것입니다(31:3c).

(5)  본문 4-5절에서는 앗수르와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과 자신들의 종주국 애굽제국을 서로 싸우도록 만들어 사이에서 자국의 생존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가나안과 주변의 약소국들에게 주고 있는 하나님의 경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31:4-5).

1)      이사야의 시대 중동지역에는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습니다. 동쪽의 호랑이는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 앗수르입니다. 그리고 서쪽의 호랑이는 바로가 다스리고 있는 애굽입니다. 신흥 강대국 앗수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을 움켜쥐자 그들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중동전체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진(西進)하고 있습니다.

2)      먼저 애굽제국으로 쳐들어가는 길을 개척하고자 가나안의 약소국들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눈앞에서 주전 722년에 형제국가인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당하고 있습니다(왕하17:5-6). 다음이 자신의 조국인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순서입니다. 과연 이은 앗수르 원정군의 공격으로부터 그의 조국이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의 관심이 그것이며 그의 선지서의 당면한 예언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6)  넷째, 4절입니다; “4. (a)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사자 젊은 사자 자기의 먹이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b)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 불러왔다 할지라도 (c)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d) 이와 같이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e) 시온 산과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31:4); 애굽제국은 나라이고 유대왕국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제국은 사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쥐게 앗수르제국은 젊은 사자와 같습니다. 여기서 나라를 호랑이가 아니고 사자라고 표현한 것은 이사야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호랑이가 아니라 사자가 백수의 왕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한편,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게 되자 유대왕국은 애굽제국에 구원군을 보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하나님말씀을 받아 동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 사자나 젊은 사자나 상관이 없이 강대국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서로 약소국을 자신의 먹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기 위하여 싸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강대국이 승리하든지 간에 약소국은 또다시 나라의 속국이 되고 것입니다”(31:4a 의역);

2)      그와 같은 이사야의 지적에 대하여 선민들이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나안의 여러 나라들이 애굽제국을 종주국으로 섬겨왔는데 앗수르를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좋지 않겠는가? 만약 애굽이 군사원조를 빌미 삼아 원조받은 나라를 완전히 합병하고자 획책한다면 그것을 가나안의 여러 나라들이 눈뜨고 그냥 보고 있지는 아니할 것이다. 소위 국제여론이라고 하는 것이 엄연히 있는데 오랜 강대국 애굽제국이 그렇게 파렴치한 일을 자행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본다”(31:4b 의역).

3)      이사야는 그와 같은 판단은 별로 힘이 없는 국제여론을 의지하고 있는 매우 유약한 상황인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강대국이 승리를 얻든지 간에 약소국은 승전한 강대국의 먹이가 되고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처절한 논리만이 지배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왕과 신하들이 선택하고 있는 정책결정은 나약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승전한 강대국) 그들(먹이감에 불과한 약소국들)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국제기구들)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31:4c).

4)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후환이 없는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아서 다음과 같이 동족들에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d) 이와 같이 만군의 여호와 강림하여 (e) 시온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31:4d&e). 만약 왕과 신하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서 빨리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 오기만 한다면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있게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7)  다섯째, 5절입니다; “5. 새가 날개 치며 새끼를 보호함 같이,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 보호할 것이라. 그것이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31:5);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마치 옛날 출애굽의 역사와 같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유월절 사건과(12:21-27) 시내 언약을(19:4-6)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4-6).

2)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새가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자손들을 영원히 보호해 주신다는 언급입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애굽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며 구원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신앙을 분명히 때에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의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3)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3가지 용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 보호할 것이라. 그것이 호위하며, 건지,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31:5b)에서 있듯이 ①호위하고, ②건지고, ③뛰어넘어 구원하는 것입니다. 의미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3가지 동사 가운데 역사적으로 생각해보면, “뛰어넘어 구원하는 유월절(逾越節, pass-over) 의미가 가장 먼저입니다; “13. 내가 애굽 땅을 때에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12:13).

4)      , 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사이에 바닷길을 건너게 하여 구원을 얻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14:21-28). 그것은 마치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를 강에서 건져주는 것과 같습니다(2:10). 가장 이해하기 쉬운 구원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 호위하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때부터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호위해줍니다(13:21-22). 길을 안내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합니다(3:12, 17:1-6, 19:1-3).

(8)   본문 6-9절에서는 현실적인 구원과 영원한 구원의 차이를 시사해주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31:6-9).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메시아를 통하여 획기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구원에서부터 영생의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는 상황적인 구원보다 근본적인 사람의 심성과 가치관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쉽게 말하자면 육적인 구원보다 영적인 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고침의 은혜보다 죄사함의 은혜를 중시하고 있습니다(9:5). 만나의 은혜보다 영생의 떡을 먹는 은혜를 사모하라고 말합니다(6:48-51). 영적인 구원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영이 개인에게 임재하실 것이므로 성도의 인생과 환경이 모두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24:49, 16:33, 17:23, 20:22-23, 1:8, 8:37-39).

2)      또한 메시아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는 영생에까지 이르게 되는 완전한 구원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8:11-12, 2:39, 3:9, 10:10-13). 일을 위하여 메시아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사람들이 매어 있는 죄와 사망의 사슬을 끊어버릴 것입니다(8:1-2). 그때부터 사람들은 악한 영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각자 용서와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3)      그렇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평생을 살아간 결과,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는 감격을 맛보게 것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심도 깊은 구원의 이야기를 이사야가 본문에서 시사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이제부터 과연 그러한지 구절을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깊은 내용을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9)   여섯째, 6-7절입니다;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에게로 돌아오라. 7.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우상, 우상을, 그날에는 사람이 던져버릴 것이며”(31:6-7);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직계조상인 야곱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관하여 그들의 조상인 야곱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야곱은 얍복 시냇가에서 숙적 에서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32:3-12). 야곱은 20년전 고향을 떠나올 때에 쌍둥이 에서에게 돌아갈 차기 족장에 대한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챈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에서는 아버지가 별세하고 나면 야곱을 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27:41). 20년의 세월이 지났으므로 아버지 이삭이 별세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400명의 무사를 데리고 자신을 만나고자 에서가 달려오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잡아죽이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래서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처자식을 모두 살리기 위하여 처절하게 필사적으로 매어 달립니다. 모세는 모습을 하나님의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32:24). 결과 야곱은 하나님의 응답을 얻게 됩니다. 새로운 운명 이스라엘’,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족장으로 살아갈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입니다(32:28-29). 다음날 아침 극적으로 에서와 야곱의 형제간 화해가 발생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의 서원을 이행하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위대한 이스라엘이 있을 것입니다.

3)      그러나 죽음에서 놓여난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시골 벧엘로 가지 아니하고 번화한 도시 세겜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흉내만 내면서 실제로는 세상의 부와 쾌락을 누리고자 작심한 것입니다. 결과 소위 세겜 사건 발생합니다. 그는 가나안 원주민과의 마찰로 자신의 가문이 멸망할 위기에 처했음을 깨닫게 됩니다(34:30). 그때 가서야 하나님께 다시 살려달라고 매어 달립니다.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을 얻은 야곱이 가솔을 이끌고 벧엘로 찾아갑니다(35:1). 서원의 이행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벧엘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28:16-22, 35:7, 14-15);

4)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야곱은 자신과 가족을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합니다. 방법이 바로 그들에게 있는 모든 이방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에 묻어버리는 것입니다(35:2-4).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일행을 보호하시고 벧엘에서 직접 만나서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35:5-7, 11-13). 온전히 남은 인생을 세상을 이기는 위대한 하나님의 족장 이스라엘로 살아갈 있도록 섭리해주시는 것입니다(47:7-10, 29-31, 48:22, 49:28-33).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역사의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십니다.

(10)      일곱째, 8절입니다;8. (a)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b)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c) 그는 앞에서 도망 것이요, (d)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것이라”(31:8); 글은 시간대를 달리하여 2가지의 경우를 상정하고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처음은 당면한 앗수르와의 전쟁에서의 구원입니다. 다음에는 영적인 전쟁에서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여기서 칼에 엎드러질 ”(31:8a)이라고 하는 표현은 전쟁에서 패한다는 뜻입니다. 비근한 예가 다음과 같습니다;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함께 멸망하리라”(31:3). 그러므로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계속 공격하면서 항복을 재촉하고 있는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군대가 사람의 칼이 아니라 천사의 칼에 의하여 전멸당하게 것입니다(왕하19:35). 모습이 칼에 엎드러지는 입니다.

2)      그런데 유사한 표현이지만 다른 시간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칼에 삼켜지는 ”(31:8b)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칼이라고 하더라도 칼은 베어 쓰러지게 하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을 삼키는 역할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표현은 다른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다행스럽게도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글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4. 참으로 장막에 있는 우리가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되게 하려 이라”(고후5:4).

3)      하나님의 칼은 말씀의 검이며 성령님의 검입니다(6:17, 4:12). 그것으로 악한 세력을 공격하게 되면 사탄은 도망치게 것입니다(4:10-11, 31:8C). 그리고 하수인들은 감옥에 들어가게 것입니다(31:8d, 25:46, 19:20). 그곳이 바로 지하의 감옥인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죽음과 영벌에 삼킨 바가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에 삼킨 바가 있는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한 변화를 입을 있는 계기가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내거시는 깃발인 메시아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32:26, 11:10, 31:9).

(11)      여덟째, 9절입니다; “9. 그의 반석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시온 있고 여호와의 풀무 예루살렘 있느니라”(31:9);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는 반석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반석입니다. 다른 하나는 창조주의 반석입니다. 2가지 반석 가운데 어느 것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사야의 예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얼마 지나지 아니하면,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사람들이 맛보게 것입니다(37:36). 그때부터 세상의 권력이나 강한 군사력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여호와의 말씀을 반석으로 삼고서 살아가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하지 아니하겠기에 이사야의 예언이 계속 불을 토하고 있습니다.

2)      일단 구원함을 얻고 나자 히스기야 왕과 백성들이 제멋대로입니다. 성전에 나아가서 왕과 신하들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기만 하면 또다시 기적적으로 구원해주실 터인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강심장입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이사야의 예언은 그것이 아닙니다. 온갖 이방신과 우상을 황금만능사상과 함께 철저하게 버려야만 합니다(31:7). 그리고 각자가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며 왕과 신하들은 왕국을 제사장나라 답게 운영해야만 합니다(31:6).

3)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반석은 세상적인 것들입니다(31:9a). 멀리 바벨론에서 사자들에게 자신들의 부귀와 군비를 자랑하기에 열심입니다(왕하20:12-20). 그것을 보고서 자란 왕자 므낫세가 훗날 왕이 되자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되고 맙니다(왕하21:2-13). 결과 100여년 후에 신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해버리고 맙니다(왕하25:1-7). 한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과 나라의 반석으로 삼고서 살아가는 그와 같은 실천이 없다면 성전에서 간구한다고 하더라도 구원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      나라가 망한 다음에도 유다 백성들은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특히 메시아가 땅에 오시게 때가 그러합니다. 선민우월주의와 선민만을 구원하는 메시아사상에 빠져서 만민구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파하고 있는 메시아를 처단하고 맙니다(11:48-50).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에 비추어보면, 창조주 하나님과 말씀의 뜻을 반석으로 삼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권력과 바리새인들의 아전인수격인 율법해석을 자신들의 신앙의 반석으로 삼은 결과입니다. 따라서 메시아가 무덤에서 부활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자 그들 유대교인들의 반석은 두려움에 떨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31:9a).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은 부활하신 메시아의 소식에 놀라게 것입니다(31:9b, 28:11-15, ).

(12)      이사야가 “(c)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d) 여호와의 시온 있고, (e) 여호와의 풀무 예루살렘 있느니라”(31:9c&d&e) 예언의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참으로 절묘하며 상징성이 뛰어난 예언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은 풀이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1)      하나,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역사섭리가 시간 공간을 뛰어넘어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메시아를 배척했던 유다 백성들처럼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게 되면 그들의 반석이 무너지고 메시아의 깃발에 질겁하게 것입니다(31:9c). ,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사야는 장차 2가지 현상이 발생하게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2)      ①시온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처단하도록 로마총독에게 정치적으로 밀어붙인 유대교지도자들과 백성들입니다(27:22-26). 결과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그들의 도성에 떨어집니다. 구체적으로, 주후 32년경 그리스도가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하고 나서 40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시온 성이 로마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24:1-2).

3)      예루살렘의 옛날 이름이 시온입니다. 시온은 유대인들의 성지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기독교가 세상에 전파되자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성도들 모두의 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을 이사야가 하나님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31:9e) 예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풀무의 기능은 불기운을 가마에 불어넣는 바람의 역할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바람을 세상에 불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 섭리입니다(3:8, 2:2).

4)      예루살렘에 강림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사도와 제자들을 통해서 세상에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1:8, 2:6, 11). 그와 같은 온전한 구원의 시대를 이사야가 희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만민구원의 시대가 예루살렘에서 메시아에 의하여 시작되고 또한 성령님의 바람과 같은 역사로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갈 것임을 감격스럽게 내다보고 있습니다(1:8, 2:1-4).

둘째로, “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메시아가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으로 만민을 구원하여 다스릴 것임, 11:4-5),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자기들의 나라와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할 것임, 14:29), 2.   사람(메시아)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실 것이며, 8:26)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생수를 주시며, 4:10),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모든 질병과 장애를 고쳐줄 것이니, 4:23),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듣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을 깨닫는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임, 3:2), 4. 조급한 자의 (세상살이에 바빴던 성도의) 마음이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적인)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깨달은 자의 말은 분명하며 역사하는 힘이 클 것임, 고전14:19). 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6.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거짓선지자의 말을 전파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창조주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패역하다는 것임),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하나님이 창조한 이웃을 나와 같은 자로 여기고 대접하는 이웃사랑이 없다는 것임, 19:18, 25:41-46), 7.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거짓의 아비를 섬기는 자는 그 계획이 악하며 약한 자를 짓밟는 포악을 행한다는 것임, 8:44, 6:5, 11-13), 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그와 달리 성도는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을 내 몸같이 섬기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하고자 한다는 것임, 5:44-48, 25:40)“(32:1-8);

(1)  먼저 본문 1-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임하는 7가지의 은혜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32:1-4). 이사야의 궁극적인 관심은 동족들인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 동족들에게 줄기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내용은 부디 우상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31:1-5). 오로지 완전한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고자 하는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은혜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31:6-9).

1)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동족들의 귀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 말의 귀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동쪽 바람에 불과함)이며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읽기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 듣지 못함) 따름입니다. 어째서 이사야가 노력한 결과가 그러한 것일까요? 한때는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18 5 명의 앗수르 병사를 모조리 죽여버리고 성을 구원해내는 기적까지 보인 바가 있습니다(왕하19:34-35). 그런데 선민들이 그후에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한때의 기적의 연출이나 그것을 경험한 것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과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요? 해답의 일단을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행적에서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가십니다(4:1).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마귀가 제시하고 있는 방법 세상적인 떡과 권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4:2-4, 8-11, 6:15).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구원을 얻을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제시하고 있는 다른 방법,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안전하게 뛰어내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온전한 구원을 성취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4:5-7). 옛날 출애굽의 역사에서 있듯이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이나 홍해가 갈라지는 표적으로도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7-12, 14). 이유는 기이한 표적이나 능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과 만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라볼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18:20-33, 3:17-19, 왕상19:11-12, 4:10-11, 12:39-41, 16:4, 3:16-17).

3)      공의의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세상을 살리시기 위해서 천하 권세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28:18-20, 10:20, 1:20-23).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아 실천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전심으로 경배할 때에 구원과 영생의 은혜가 하늘로부터 풍성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나라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방법입니다. 메시아가 세상에 오셔서 위와 같은 깨달음을 복음으로 세상에 전할 때까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의 눈이 감겨져 있으며 귀가 막혀 있습니다(3:9-18). 일찍이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위탁하시면서 주신 말씀과 동일합니다(6:9-12).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 이사야의 예언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메시아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7가지의 은혜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제부터 본문을 구절씩 검토하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보라, 장차 공의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 정의 다스릴 것이며”(32:1); 이사야는 메시아가 훗날 세상에 오시게 되면 3가지의 은혜가 먼저 임하게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메시아가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임금이 쫓겨나게 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2:31). 세상사람들은 전쟁을 치르고 백성들에게 먹을 복을 나누어 있는 왕을 선호하고 있습니다(삼상8:20, 6:14-15). 그렇지만 전쟁은 전쟁을 낳고 세상적인 먹거리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탐욕이 식량의 분배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권력이 있는 자는 많이 가지게 되고, 반면에 권력이 없는 자는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강자의 지배권에 굴종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세상적인 모순을 해결할 있는 자가 바로 새로운 메시아입니다(9:7, 11:6-9).

2)      , 나라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들만의 구원과 축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집단 이기적인 탐욕입니다. 다른 나라와 백성들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원하고 있습니다(5:43). 그렇지만 메시아는 다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뜻이 바로 창조주의 눈으로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의 대상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을 똑같이 사랑하고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11:4-5, 5:44-48). 일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26:39, 3:13-17, 6:38-40, 12:32).

3)      , 성도들이 하나님의 방백으로 임명을 받아 각각 자신의 지역에서 정의를 실천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사도 베드로가 훗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백성들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하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일을 행하는 성도들에게 왕과 같은 제사장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영적인 권위를 누린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훗날 다른 성도들에게도 그와 같은 권세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점에 대해서 이사야가 700 전에 이미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 위의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4)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문제점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각자 위임 받은 곳에서 정의롭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정의는 집단 이기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성도가 사역하고 있는 지역과 서로 마찰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어떻게 조정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공의로 각자의 정의를 조정해주는 기능이 필요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존재가 바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시라고 일찍이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16:6-8);

(3)  둘째, 2절입니다; “2. 사람은 광풍 피하는 , 폭우 가리는 같을 것이며, 마른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같으리니”(32:2); 이사야는 메시아가 백성들이 죽음을 피할 있는 피난성 되실 것이며 이른 같은 역할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피난성 대해서는 가지를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월절의 의미입니다(12:13, 23, 29-30). 하나는, 율법에 따라 약속의 땅에 설치하는 도피성입니다(21:13, 35:6-15).

1)      어린양의 피가 문인방과 좌우 문기둥에 없으면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12:29-30). 반대로,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안의 사람은 모두 죽임을 면하고 있습니다(12:13, 23). 대상이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바로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입니다(1:2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멸망의 광풍과 폭우로 몰아칠 때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믿는 자는 구원함을 얻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2)      고의가 아니라 사고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친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함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바로 도피성제도입니다(21:13, 35:11-15).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고의가 아니라 과실로 처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이 정범이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리어 그만 사탄의 말을 따르고 있는 종범들입니다(3:1-8). 어떻게 하면 죄의 고리를 끊어낼 있을까요?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무덤에서 사탄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쳐부수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은혜가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8:1-2).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구원함을 얻을 있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성도들에게 죽음을 면할 있는 도피성 되시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3)      이른 대해서는 이사야가 마른 땅에 냇물이 흐르게 되는 ”(32:2)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른 땅에 비가 내리게 되면 공기가 통하고 햇빛이 들어가며 물기를 머금고 있는 부슬부슬한 top soil’ 변합니다. 표토(表土, top soil) 싹을 발아하게 합니다. 생명이 그곳에서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모세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11:14). 적당한 때에 내리는 이른 개념이 히브리어로 의의 교사 새겨지기도 한다고 합니다(2:23). 그에 따라 이른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사야의 예언은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가 바로 생명의 ’(1:4) 되고 있다는 사도 요한의 증거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4)  셋째, 3절입니다;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32:3); 메시아와 제자들의 복음사역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되고 드디어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1)      역사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나면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게 됩니다(24:49, 2:1-4). 그때부터 12사도들이 유대인들에게 정확하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복음으로 깨달아 전하게 됩니다(1:8, 2:11-36). 많은 유대인들이 회개하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6:10-13, 2:37-42) . 그것은 계시의 임하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메시아의 시대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나며, 뿌리에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 지혜와 총명의 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1-2), “9. 거룩한 모든 곳에서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9).

(5)  넷째, 4절입니다; “4. 조급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이라”(32:4); 세상적인 구원만을 생각하는 자는 마음이 조급하기 그지 없습니다. 당장 불치병, 기업의 부도, 죽음의 그림자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으니 구출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1)      하지만 구출해준다고 하더라도 남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면 영생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영생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구원에 조급해 하며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의 방식을 벗어나야만 합니다. 한마디로, 느긋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는 공부와 묵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깨달은 말씀을 세상에 전해야만 합니다(고전14:19). 그와 같은 작업은 사람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2)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4:10-12, 14:16-17, 26, 16:13-14). 그에 따라 제자들의 열매 맺는 사도생활을 위해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14:19-20),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17-21).

(6)  본문 5-8절에서 이사야는 악한 자와 존귀한 자의 차이, 그리고 악한 자를 따르게 되는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의 특징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32:5-8). 달리 말하자면 이사야가 시아의 복음사역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믿음의 눈이 떠져서 영적인 분별력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32:5-8). 그래서 이사야는 미리 악한 자와 존귀한 자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32:7-8). 더구나 악한 자를 따르게 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우둔함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32:5-6). 그와 같이 이사야가 상세하게 예언도 하고 보충적으로 설명까지 해주는 이유는 부디 동족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를 따르지 말고 선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메시아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사야의 마음은 옛날 모세의 마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30:19-20).

(7)  다섯째, 5절입니다;5. 어리석은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다시 존귀한 말하지 아니하리니”(32:5);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을 참조하면, 여호와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특별히 하나님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창조하고 있습니다(1:26-27). 하나님 형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자유의지입니다. 결과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행위를 하며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3:6, 16-19).

1)      그에 따라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간곡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 땅에서의 생명과 천국에서의 영생까지 말하고 있는 장수함을 얻기 위하여 부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분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하세요”(30:19-20). 그런데 문제는 구체적인 경우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어느 것이 악한 영의 뜻인지 구별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악한 자를 따르게 되는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에 대하여 본문에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      가장 근본적인 구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존귀한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택을 잘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둔한 자가 종교적인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일컬어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32:5 의역).

(8)  여섯째, 6절입니다;6. (a) 이는 어리석은 (b) 어리석은 것을 하며, (c) 마음 불의 품어, (d) 간사를 하며, (e) 패역한 여호와를 거스르며, (f) 주린 속을 비게 하며, (g) 목마른 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32:6); 어리석은 자는 존귀하신 하나님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악한 영을 선택하고 있는 자입니다(32:6a). 그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이유와 특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과 악한 사이의 차이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들은 별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2:6b). 마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검은 고양이든 고양이든 상관없이 쥐만 잡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생각) 같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있는 영적인 존재라면 하나님이거나 사탄이거나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한평생 살다가 가면 그만인데 죽은 다음의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쉽게 말하고 있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2)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없이 의롭지 못한 방법을 선택합니다(32:6c).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훔치는 간교한 방법을 선택합니다(32:6d). 개의 얼굴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이 살아있습니다. 창조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양심의 소리를 과감하게 억눌러버립니다. 양심이 주인인 자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지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패역’(悖逆, 패륜과 반역)입니다(32:6e).

3)      특히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14:29). 그래서 선지자와 메시아가 여러 하나님말씀의 뜻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146:9, 7:6, 22:7, 25:34-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는 세상적인 현실과 제약성을 내세워 변명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이며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절대적으로 재화가 부족한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나라 임금도 구제할 없는 가난한 자를 모두 돌볼 수가 있겠느냐는 논리입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바로 주린 자의 속을 비게 만드는 어리석음”(32:6f)입니다.

4)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준다는 것은 육신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을 만나서 하신 말씀을 묵상해보면 마실 것을 주는 가운데에는 생수나 생명수의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4:14). 그와 같은 의미에 비추어볼 , 어리석은 자는 생명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고(32:6g) 구원의 방법까지 독점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선민과 같은 자라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9)  일곱째, 7절입니다; “7. (a) 악한 (b) 그릇 악하여, (c) 악한 계획 세워, (d) 거짓말 가련한 하며, (e) 가난한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러함이거니와”(32:7); 어리석은 자와 우둔한 자가 따르고 있는 악한 자는(32:7a) 어떠한 자일까요? 이사야는 한마디로, 악한 자는 그릇이 본래 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2:7b). 그것은 태생적인 악함을 의미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 생명살림의 역사를 싫어하는 자입니다.

1)      그렇게 근본이 악한 자가 바로 선하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사탄입니다(14:12-15, 12:26). 보이는 하늘 공중에 갇혀 있는 사탄이 세상 땅에 오게 되면 천하를 꾀고 있는 마귀가 됩니다(8:44). 그리고 영이 지배하고 있는 동물이 뱀이며 짐승이며 용입니다(12:9, 13:8). 나아가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적그리스도이며 거짓 선지자들입니다(요이1:7, 20:10).

2)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시고 돌보십니다. 반면에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은 세상에서 자신의 권력의 기반을 다지고자 합니다. 방법이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묶고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지배하는 것입니다(8:1-2). 따라서 사람을 구원하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두려움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계획이 바로 악한 것입니다(32:7c).

3)      악한 영들은 세상을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악한 자들이 지배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마귀가 자신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천하 권세를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4:8-9). 이에 따라 가련한 자들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꾀를 쫓고 있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서로 짜고서 거짓말을 하고 거짓증인을 내세우게 되면 재판에서 지게 되고 끝내는 죽음의 길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32:7d).

4)      이사야가 가난한 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사회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에 살아 있는가? 아닌가? 측정할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barometer)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선택하지 아니하는 어리석은 자들과 하나님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 크게 불이익을 당합니다. 특히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가난한 자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32:7e).

(10)    여덟째, 8절입니다; “8. (a) 존귀한 (b) 존귀한 계획하나니, (c)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32:8); 어떤 사람이 존귀한 자일까요?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자가 존귀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2:8a). 가지 사항에 대하여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존귀한 자는 무엇보다도 존귀한 일을 계획하는 자입니다(32:8b).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계획이라고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설명을 참조하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실천할 있는 계획을 말하고 있습니다(12:1-2). 여기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모든 피조물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에서도 반드시 희생에 대한 보답을 크게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고난 다음에 없는 영광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보상의 법칙이라고 하겠습니다(8:17-18).

2)      둘째, 누가 존귀한 일인지 아닌지 판정하고 있을까요? 선지자 이사야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행하고 있는 일이 존귀한 일이라고 아무리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달리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존귀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존귀한 일이라고 실천하고 있는 일이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일인지 아닌지 판정을 구하라고 말합니다(32:8c). 여호와의 판정을 구하자면 먼저 하나님말씀의 취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말씀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실천하고 있는 일이 말씀의 뜻과 부합되는 것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신앙을 올바르게 파수하는 방법론입니다. 그와 같은 결론을 이사야의 설명이 담고 있습니다.

셋째로, “9.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예루살렘성전에서 속죄의 제사가 계속되는 한 선민의 나라는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백성들아, 47:8, 23:17), 일어나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나 선지자 이사야의)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거짓선지자의 말만 듣고) 염려 없는 (예루살렘의, 3:16)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0.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년 남짓 지나면(이듬해 주전 701년에 앗수르제국의 대군이 침입하여 예루살렘성을 포위 공격함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크게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전쟁이 발생하여 추수를 하지 못하고 굶주리게 될 것임). 11.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입은 옷 그대로 황급하게 피난하기에 바쁠 것임). 12.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버리고 떠나게 되는 그 비옥한 전답을 생각하면 그동안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너무나 안일하게 가나안 땅의 풍요만을 누리며 살아온 지난날을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임). 13.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선민의 기업이 파괴되고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임, 6:10-15), 14.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예루살렘과 지방의 성읍들이 외적의 침입으로 초토화되고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가며, 왕하25:1-11), 오벨(수도인 다윗성과 성전 사이의 고지대) (지방의 들판에 있는 파수꾼 또는 양치기의)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왕하25:12), 15. 마침내 위에서부터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11:25),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포로생활과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다시 기업으로 얻게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바산의 숲 우림 지역에서 흘러오는 풍성한 물과 그곳에서 불어오는 좋은 바람이 가나안의 농경지를 풍요롭게 만들듯이 약속의 땅에서 선민들이 여호와의 보살핌을 얻게 된다는 것임). 16. 그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광야생활을 통하여 선민사회에서 정의가 구현되고)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가나안 땅에 거주하면서 선민들이 주변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의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임, 5:44-48),  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도들이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온세상에 전파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영생의 기쁨과 천국입성의 소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임, 66:20-21). 18.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보호를 받고 훗날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는 구원을 누릴 것이지만, 14:1-3, 16-20), 19.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선민의 나라는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고 그 성읍은 파괴되고 말 것임, 31:1-2). 20.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그러므로 온세상에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자녀의 모범을 보이는 성도들에게 영생의 복락이 함께한다는 것임, 28:18020, 22:28-30)“(32:9-20);

(1)  먼저 본문 9-15절에서 이사야는 세상에서 안일함과 평안만을 마냥 추구하는 자가 당하게 되는 고초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마땅히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염려하고 안일한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본문의 구절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묵상을 통하여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혀보고자 합니다;

(2)  첫째, 9절입니다; “9. (a) 너희 안일한(so complacent, 크게 만족하는) 여인들, 일어나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b) 너희 염려 없는(feel secure,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딸들, (c)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32:9);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특권층과 부유층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에 크게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굉장히 안전한 성읍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왕과 귀족들에게 주고 있는 예언에 국한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세상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그렇게 안일하게 그리고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일상을 누리고 있는지를 잠시 살펴봅니다;

1)      예루살렘 성은 해발 평균 790미터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튼튼한 성읍입니다. 북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깊은 골짜기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산이 없는 북쪽절벽으로 적들이 기어올라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동쪽 기드론 골짜기의 높은 성채’(오벨, ophel) 진입로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어서 예루살렘성을 공격하는 적들은 화살 받이가 되기에 알맞기 때문입니다.

2)      참으로 신기하게도 다윗대왕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시온산성을 뺏아 다윗 왕조의 수도로 결정한 이후부터 이사야의 시대까지 300 동안 적으로부터 예루살렘성이 공격을 당하여 완전히 함락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왕조의 왕과 유대왕국의 신하와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여호와께서 지켜 주시는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안전하다고 여기고서 아예 염려를 붙들어 매어 놓고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32:9b).

3)      특히 종교적으로 유대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지키고 예루살렘성전에서 매년 ()속죄일에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선민의 우월한 지위를 계속 누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특혜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출애굽 당시처럼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은 이방인에게 주어지고 이스라엘 자손은 해방과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지난 일년간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한다는 여호와의 신탁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선민만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있는 의인입니다. 표시가 그들의 할례입니다.

(3)   둘째, 10절입니다; “10. (a)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 (b) 일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c) 포도 수확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32:10); 마치 염려 없는 여자들’(32:10a)처럼 어리석게도 선민들이 예루살렘을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것도 이사야의 생애 가운데, 적의 포위공격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성이 엄청난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1)      그때가 역사적으로 주전 701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재차 유대왕국을 침범했을 때입니다(왕하18:17).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가 일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32:10b)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본문의 예언은 이사야가 주전 702년경에 동족들에게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앗수르 산헤립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유대왕국을 재침하게 되면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될까요? 이사야는 유대왕국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상상할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게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포도 수확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32:10c).

2)      여기서 포도 수확이 없다는 것은 자연재해나 새들에 의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열매를 거두는 추수가 가을에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뒤따르고 있어 전란에 의한 피해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산헤립의 군대는 예루살렘성만 제외하고 유대왕국의 모든 지방을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전쟁으로 죽고 포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농사를 지을 일꾼이 없을 정도로 전국이 황폐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4)   셋째, 11절입니다; “11. (a) 너희 안일한 여자들, 떨지어다. (b) 너희 염려 없는 자들, 당황할지어다. (c)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d)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32:11); 삽시간에 앗수르의 대군이 전국을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예루살렘성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난공불락의 성이며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던 유대왕국의 지도자들은 너무나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32:11b). 특히 자신들의 기득권에 안주하여 만족하게 살고 있던 귀족들이 덜덜 떨고 있습니다(32:11a). 지방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적병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여 생목숨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적의 기마대가 순식간에 전국을 휩쓸고 있어 어느 곳으로 피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마치 주후 16세기말 일본의 침략을 당한 조선의 형편과 비슷합니다.

1)      그와 같은 상황을 예언하면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부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다음과 같이 매어 달리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c)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d)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32:11c&d); 여기서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32:11c) 2가지의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하나는, 전란으로 수치를 당하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는,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하나님께 바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창조주가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앞에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가릴 수가 있겠습니까?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나아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2)      그런데 이사야는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반드시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32:11d)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백성들이 잘못되고 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모두 왕과 지도자들의 책임입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준엄한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순간에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고 있습니다(왕하19:1). 결과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인 구원을 얻게 됩니다(왕하19:35).

(5)   넷째, 12절입니다; “12. (a) 그들은 좋은 으로 인하여, (b) 열매 많은 포도나무 인하여, (c) 가슴을 치게 것이니라”(32:12); 마지막 순간에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매어 달린다고 하더라도 전란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할 것입니다. 유대왕국의 문전옥답(門前沃畓, 성읍 앞에 있는 가장 기름진 농지) 모두 황폐화되고 맙니다(32:12a). 그리고 좋은 포도나무의 열매가 모두 약탈되고 맙니다(32:12b). 전쟁은 끝났지만 다음해 농사를 지어 추수가 있을 때까지 길이 막막합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면서 자신들의 안일함과 자만했음을 후회하고 있습니다(32:12c). 이제야 말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살아가야만 때입니다.

(6)   다섯째, 13절입니다; “13. 백성의 가시(thorns) 찔레(briers)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나리니”(32:13); 가시나무의 특징은 위로 뻗는 나무의 가지에 가시가 돋아 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찔레는 가시를 가진 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옆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목장의 초지에 가시나무가 나게 되면 즉시 제거를 해버리면 됩니다. 그렇지만 찔레가 나서 일단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그것을 제거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찔레의 무리를 뚫고서 사람이나 짐승이 들어가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고 있다는 것은 그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가시나 찔레가 자라날 때에 적기에 그것을 제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선민들이 자랑하고 있던 성지 예루살렘입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앗수르 대군의 포위 공격으로 성밖출입을 못했습니다. 바깥의 포도원과 목장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성읍은 적군에게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피난간 백성 때문에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가시와 찔레가 무성한 성읍과 들판이 되고 것입니다.

(7)   여섯째, 14절입니다;14. 대저 궁전 폐한 되며, 인구 많던 성읍 적막하며, 오벨(citadel, 성채, 포탑, 아성) 망대(watchtower) 영원 굴혈 되며 들나귀 즐기는 곳과 양떼의 초장 되려니와”(32:14); 이사야는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공격에 대해서만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는 본문에서 예루살렘 궁전이 황폐화되고 만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참상은 언제 도래하게 될까요? 하나는, 신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주전 586년에 유대왕국이 망할 때입니다. 그때는 예루살렘성이 성전과 함께 불타버려서 황폐화가 되고 맙니다. 하나는, 주후 70 로마의 대군이 유다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켜버린 경우입니다. 경우 모두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궁전이 황폐하게 됩니다.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땅에서 살지 못하게 됩니다. 도시를 지키는 성채도 무너지고 시골에서 양을 치는 망대도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왕국의 주요 성읍들이 모두 이방 족속들의 유목지가 되거나 야생동물들이 거하는 장소가 되고 것입니다.

(8)   일곱째, 15절입니다;15. (a) 마침내 에서부터 (the Spirit)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b) 광야(the desert) 아름다운 (a fertile field) 되며, (c) 아름다운 밭을 (a forest)으로 여기게 되리라”(32:15); 황폐화된 곳을 누가 언제 어떻게 회복시키게 될까요?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을 부어 주시어 회복의 역사가 땅에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2:15a). 예언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땅이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사람들에게 부어 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말은 만을 회복해보아야 역사 가운데 비슷한 잘못과 전쟁의 참상이 반복될 따름이라고 하는 전제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      ,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문제해결의 방법이 획기적으로 달라져야만 합니다. 전쟁의 방식이 아니고 메시아의 방식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메시아의 방식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요? 일이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서 사람을 영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새로운 창조라고 하겠습니다. 환언하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3:3-7).

3)      , 그리스도와 12사도 그리고 성도들에 의하여 복음의 시대가 전개됩니다. 그러면 사막과 같은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사람들의 황폐한 마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옥토가 것입니다(32:15b).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임하고 확장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아름다운 밭을 (a forest)으로 여기게 되리라”(32:15c)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말의 뜻은 다시는 세상의 아름다운 밭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9)   이사야는 15-20절에서 하나님의 공의(천국에서 선포되는 만민과 만물의 생명을 살리는 righteousness) 사람들의 정의(인간의 법정에서 집단이기적으로 선포되는 justice) 차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구절풀이를 해봅니다; 첫째, 15절입니다;15. 마침내 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 아름다운 되며, 아름다운 으로 여기게 되리라”(32:15); 하나님의 영이 성도에게 임하게 되면 영적인 ()각성이 있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영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일까요?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대오각성의 내용을 마디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육신은 여전히 삭막하고 메마른 광야에 있지만 하늘이 열리게 되니 아름다운 천국이 마음속에 임하고 있다. 세상의 기름진 밭이 부럽지 아니하게 되니 그것을 그저 숲과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것이 성령님이 임재하여 역사하고 있는 성도의 구원받은 영생의 마음가짐이다”(32:15 의역).

(10)      둘째, 16절입니다; “16. (a) 그때에 정의 광야 거하며, (b) 공의 아름다운 거하리니”(32:16);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자신의 목숨을 먼저 살리고 가족을 돌보며 민족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삶이 여전히 우세합니다. 그러한 인생살이를 이사야가 정의를 존중하는 삶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2:16a). 반면에 메시아와 하나님 아버지가 이루고자 하시는 공의의 나라는 천국의 아름다운 밭을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32:16b). 먼저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영적으로 천국을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17:21). 그것은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서 세상에서 자신의 것을 희생하면서 모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셋째, 17절입니다; “17. 공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 안전이라”(32:17); 성도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16:24) 어떠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가 대답을 예언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경쟁과 투쟁의 사회를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실천하기 때문에 열매가 임하는 것입니다. 결과 부활하여 천국의 시민으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물론 남은 인생 가운데에서도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누릴 있을 것입니다”(32:17 의역);

(12)      넷째, 18-19절입니다; “18. 백성 화평한 안전한 거처 조용히 쉬는 있으려니와, 19.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32:18-19); 이사야가 가지의 경우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의 삶과 세상의 숲을 아름다운 밭으로 착각하고서 그것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삶을 상호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얻은 아름다운 밭을 숲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한 자에게는 훗날 아름다운 천국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살이 가운데에서도 성령님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그의 집과 거처가 화평하고 안전하며 더구나 영적으로 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32:19). 반대로, 세상에서 얻은 것을 아름다운 밭으로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숲으로 변화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은 우박과 같은 자연재해로 열매가 상하고 적의 침략과 약탈로 말미암아 성취한 것이 일시에 파괴가 되기 십상인 것입니다(32:20).

(13)      다섯째, 20절입니다; “20. (a) 모든 물가 뿌리고, (b) 소와 나귀 그리로 모는 너희는 있느니라”(32:20); 이사야가 본문의 결론을 맺고 있는 대목입니다. 내용풀이를 항목을 달리하여 본문의 강해에 대한 전체의 결론으로 대신 제시하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있는 방법을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성도들에게 남은 인생 물가에 하나님말씀의 씨를 복음으로 뿌리는 삶으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흐르는 강물에 말씀의 떡을 던지는 인생과 같습니다(11:1a). 흐르는 강물 그리고 범람하는 물가이므로 열매를 당사자가 얻을지 아니 얻을지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면서 명령에 따라 던지는 것입니다. 손익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그대로 실천할 뿐입니다(28:18-20).

(2)   둘째, 결과는 솔로몬의 설교내용 그대로 여러 후에 당사자에게 기적과 같이 돌아오게 것입니다(11:1b). 하나님께 맡기고 성도가 사심 없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있는 일을 다한 다음에 하늘의 결과를 기다리는 ) 것이므로 복이 여호와께서 원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당사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12:1-5, 10:12-13).

(3)   셋째, 성도는 말씀의 씨만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시간과 재물도 주님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그것이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행위입니다(32:20b). 손익계산이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대로 온전한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8:2). 만약 성도가 땅에서 전부 보상을 받겠다고 고집하면 보답은 그저 몇배로 많을 뿐입니다(18:30a).

(4)   넷째, 하지만 보상을 천국에 저축해 놓기를 원한다면 보답은 엄청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에서 100데나리온을 탕감해주는 것과 천국에서 10,000달란트를 탕감 받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야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8:23-34). 의미는 천국에서 탕감 받을 있는 것이 세상의 것보다  60만배이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값어치가 그러하지 않겠습니까?(18:30b). 기타 상급 또한 세상과는 달리 녹이 나거나 절도 당하지 아니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보상입니다(6:19-20).

  요컨대, 가히 자신의 것을 기울여서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만한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사야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는 분들에게 그러한 실천적인 삶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