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유다의 오만한 통치자와 거짓선지자를 치시고 그 백성을 돌이키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지혜”(사28:9-2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7. 26. 17:37

제목; “유다의 오만한 통치자와 거짓선지자를 치시고 그 백성을 돌이키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지혜”(28:9-29)

설교일; 주후 2026 9 2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726일 토요일 작성)

최근 주후 2025 7 19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 및 내리, 병정마을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해 1~2시간 간격으로 일어난 15번의 산사태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새삼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경남 산청지역에서는 지난 3월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는데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4개월만에 홍수 및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또다시 중대한 재난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금번의 산사태로 지형까지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19일부터 3일간 산청에 내린 집중호우는 한해 동안 내려야 할 빗물의 절반 이상이 폭우로 쏟아진 것이며 2백년에 한번 있을 수 있는 수해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해의 현장을 촬영한 영상물을 보고서 오늘의 이사야 본문을 읽으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한시간에 30cm씩 폭우가 내리자 산이 깎이어 나가고 주택이 떠내려가며 도로가 유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가축이 살고 있는 축사도 떠내려갑니다. 그리고 밭의 농작물이 물에 잠기어 절단이 나고 있습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도 여러 명 행방불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엄청난 일이 발생하고 있는 현장을 영상으로 보면서 주전 586년에 역사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과 주후 70년에 붕괴하게 되는 제2성전시대 유대인사회의 몰락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7:21-27).

과연 마지막 남은 선민들이 어찌하여 다윗왕조의 멸망을 경험하고 나중에는 로마군대에 의하여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고 마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본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를 성전에서만 섬기고 그 바깥에서는 제멋대로 세상 탐욕에 젖어서 살아가는 자들이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역사 가운데 등장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우상숭배와 현세적인 이기주의를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지도자들과 거짓선지자들의 저항이 대단합니다. 그 점을 선지자 이사야가 제9-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하나, 히브리경전을 공부한 율법학자들이 국왕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선지자들은 자격이 미달이라는 것입니다(9). 그 이유는 그 설명이 논리적이지 못하고 현실감각이 부족하며 비약적이기 때문입니다(10-11). 게다가 선민 유대인들이 듣고 싶은 선민의 영광이나 현실적인 국가안보의 대안을 제시하는 상쾌한 말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12).

2)   , 그와 같은 율법학자들과 유대교지도자들의 지적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히브리경전의 말씀을 여기저기서 발췌하여 이기적으로 선민만의 구원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율법학자들과 유대교지도자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13a).

3)   ②그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의 본래취지를 벗어나서 아전인수격으로 율법생활을 계속 영위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적의 포로가 되거나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고 만다는 것입니다(13b). ③종교생활을 하면서 현세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있는 유대교지도자들과 선민의 나라의 지도자들이므로 그들에게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전달하고 있는 말씀이 생소하며 그들의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아니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11). 그것은 일찍이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에 들었던 여호와의 말씀과 동일합니다(6:9-10).

(2)  둘째, 훗날 유대인사회에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그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선민 유대인들은 비록 다윗의 왕조가 재건되지 못하고 완전히 망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고 있으며 훗날 그들 사회에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줄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15).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유대왕국이 멸망을 당한 것보다는 주전 701년에 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앗수르군대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고 산헤립 황제가 니느웨로 도망을 친 그 통쾌한 역사를 더욱 신뢰하며 반추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2)   , 그러나 그들의 사회에 오신 그리스도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시는 선민사회내의 정의구현도 실천하지 아니하고 이방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도 아니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16-17).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이기적인 유대교리 안에 숨는 선민들은 여호와의 진노로 역사심판을 다시 당하고 말 것입니다(18-19);

3)   , 그리스도의 복음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다시 들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민들은 주변의 이방인들을 원수로 여기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사랑해야 합니다(5:43-48, 6:9).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선민들의 행동은 창조주가 나와 함께 창조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10:27-28, 33-37). 그와 같이 실천하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덧붙이고 있습니다(21-22).

(3)  셋째, 마지막으로 선지자 이사야는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비상한 만민구원의 지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23-29). 그 내용은 일찍이 자신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선택되었을 때에 여호와로부터 들은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구원사상에 젖어서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선민을 제사장나라 거룩한 선지자로 삼아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19:4-6, 12:39).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을 말하고 있음),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말함).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바벨론에서 1할 정도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고토로 돌아와서 제2성전시대를 살아가지만 여전히 온전히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 못할 것임),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주후 70년에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선민 유대인사회가 멸망하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날 것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남겨진 히브리경전과 그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언약의 시대가 전개되는 것임, 31:33, 2:28-29)하시더라”(6:10-1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9. 그들(유대교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이 이르기를(선지자)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유대교지도자이며 율법학자인 자신들보다 선지자는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뒤떨어지는 자들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임)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어린아이에게나 가르치라는 조롱임)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히브리경전에 정통하지도 못하면서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그 뜻을 과장하여 함부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실로 웃긴다는 것임) 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2:4) 그가(선지자 또는 여호와가, 11:25, 29)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2:3, 16:30),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주어 영적인 안식을 얻도록 하라고 했으나, 12:1-3, 19:4-6, 5:44-48, 12:39)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여호와의 말씀을 독점하고 선민들만 구원을 얻겠다고 하므로),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여호와 말씀의 완전한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단지 발췌하고 왜곡하여 이기적인 유대교리로 삼아 종교생활을 하다가 선민 유대인들이 멸망의 역사를 당하고 있다는 지적임)“(28:9-13);

(1)  첫째, 9절입니다;9. (유대교지도자)들이 이르기를, (메시아) 누구에게 지식 가르치며 누구에게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떨어져 품을 떠난 들에게 하려는가?”(28:9); 한마디로,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만만합니다. 그들의 유대교리가 완전하며 기반이 탄탄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론적으로 본다면 분명히 그러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신들의 민족이 가장 훌륭한 민족이며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백성들이 드문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한다면 대상은 당연히 선민인 자신들의 가족과 가문 그리고 동족들이 최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1)      그런데 사실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웃나라와 민족들이 하나같이 악하다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고 이웃나라와 백성들에 대해서는 저주와 멸망을 베푸시는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구원사상 그리고 여호와의 이방인 저주라는 이분법에서(5:43) 벗어나고 있는 하나님말씀의 해석은 모두가 이단사상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2)      그들에게 유다 백성들이 대부분 동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민인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누구나 선민우월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히브리경전해석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시대에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에 메시아가 오실 것임을 이사야가 영적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선생들인 랍비들이 다음과 같이 메시아의 복음전파에 대하여 가소롭게 생각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주장하고 있는 만민구원사상을 누가 듣고 따르고자 것인가? 그것은 유치한 어린아이들에게나 먹힐 꿈같은 이상주의자의 주장이 아닌가? 현실을 알고 있는 어른들이라고 하면 그와 같은 망상적 주장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아니할 것이다”(28:9 의역);

(2)  둘째, 10절입니다;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 도다”(28:10); 이단사상으로 몰아 부칠 있는 방법론이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예언되고 있습니다. 전체 하나님말씀의 취지를 벗어나서 그저 여기 저기서 자신의 주장에 어울리는 구절만을 발췌해와서 그것으로 편벽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이 메시아의 사상에 대하여 그와 같이 비판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1)      훗날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대교지도자들은 그들이 주장했던 논리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게 됩니다(28:13). 메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편집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의 방법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주의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아래에 갖다가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논리가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어디까지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자체 그리고 취지가 최우선이고 주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 그리고 논리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주인의 자리를 양보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지혜는 기도와 묵상 가운데 하나님말씀의 취지를 깨닫고 그것을 뒷받침하는데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잘못 주객이 전도가 된다면 그것이 바리새인들의 인위적인 말씀해석의 방법 또는 그들의 주석 사용법과 같은 것이 되고 것입니다.

(3)  셋째, 11절입니다; “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28:11); 현실론적으로는 율법을 열심히 공부하며 연구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말씀해석이 타당합니다.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선민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자면 절대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각별해야만 합니다. 세상살이를 해본 어른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민구원을 위하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메시아의 말씀은(5:44-48) 선민 유대인 사회에서 버림을 받게 되고 것입니다.

1)      그렇다면 훗날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의 사역이 완전실패로 끝나고 말까요? 그러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대목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28:11). 참으로 이상한 구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하나님께서 메시아의 사역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언급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선지자 이사야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렇지만 훗날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의 현장을 보게 되면 금방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120명의 성도들의 영혼과 몸을 사로잡게 됩니다(2:1-4).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증거하게 됩니다(2:4, 11). 자신의 의지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옛날 모세의 입술을 주장하셔서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에게 말씀을 전하시던 때와 같습니다(4:12, 15). 한마디로, 술이 취해서 더듬고 있는 입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에 취해서 사역하고 있는 입술이라고 하겠습니다(2:15-21).

(4)  넷째, 12절입니다;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28:12);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창조행위가 끝나자 2장에서 7일을 안식일로 삼고 있습니다. 하루는 피조세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점검하시는 날로 이해가 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피드백’(feedback) 위하여 관리인 청지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대화하시고 잘못된 것을 고치시는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1)      안식일에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보고하고 고쳐 주시기를 하나님께 맡기게 되면 어떠한 역사가 발생하게 될까요? 신실하신 창조주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에게 안식을 주시고 새로운 창조를 주실 것입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성도들은 생기를 되찾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게 것입니다(28:12a).

2)      이사야는 그와 같은 안식의 복을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온세상에 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친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안식의 복을 누리며 고침을 받아서 상쾌하게 살아갈 있는 믿음을 전하라고 합니다(28:12b). 그것이 만민구원 사상이며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안타깝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 명령을 선민들이 듣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28:12c)

(5)  다섯째, 13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28:13);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조금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 히브리정경 내에서 유사한 대목을 찾아서 비교연구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말씀의 본문 대신에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히브리경전을 뒤져서 여기저기서 인용하여 편향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경전의 시작이 모세의 오경이며 첫번째가 창세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라고 하는 고백이 여호와신앙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해야만 합니다.

2)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과 구원과 영생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며 구원의 대상이라고 전제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단추가 잘못 끼어져 있기에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자신들의 선민사상을 고수하고 바리새인들이 주석을 달아서 체계화해 놓은 유대교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유대교지도자들이 만민구원사상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를 죽여버리는 잘못을 범하게 것임을 이사야가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훗날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28:13b).

둘째로, “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유대왕국의 지도자와 유대교지도자),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음부의 세계)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예루살렘성전의 지성소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좌정하여 계시고 그 존전에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매년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으므로 이 세상은 멸망해도 의인으로 선포된 선민 유대인만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임),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그러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그것은 거짓선지자의 주장이며 이기적인 유대교지도자들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임. 그러므로 온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함).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여호와신앙의 기초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라는 것임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는 환난 가운데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임). 17. 나는 (선민사회내의, 14:29) 정의(justice)를 측량줄로 삼고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righteousness)저울추로 삼으니(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너희 유대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임),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거짓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재앙을 만난다는 것임), 18.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8:44)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2:2, 6:12)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19:20-21). 19.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살아있는 동안 죄와 사망의 권세에 시달린다는 것임, 8:1-2반대해석임). 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악한 영에게 시달리는 인생은 정신적으로 옹색하며 영적으로 불안하고 세상적으로 허무하기 그지 없다는 것임). 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삼하5:18-20,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다윗이 블레셋을 크게 무찌른 것임)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10:8-11,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침입하는 아모리 족속을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크게 무찌른 것임)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적을 완전히 소탕하신 놀라운 여호와의 계책이 다시 등장하여 악한 영들과 거짓선지자들을 분쇄하고 말 것임). 22.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여호와를 대적하는 오만한 자는 종말을 맞이하고 마는 것임, 19:20).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이 세상을 완전히 멸하고 그 대신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며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나라로 강림하게 하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가 있을 것임, 65:17-18)“(28:14-22);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유대왕국의 지도자와 유대교지도자),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음부의 세계)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예루살렘성전의 지성소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좌정하여 계시고 그 존전에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매년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으므로 이 세상은 멸망해도 의인으로 선포된 선민 유대인만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임),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그러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그것은 거짓선지자의 주장이며 이기적인 유대교지도자들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임. 그러므로 온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함).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여호와신앙의 기초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라는 것임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는 환난 가운데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임). 17. 나는 (선민사회내의, 14:29) 정의(justice) 측량줄로 삼고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righteousness)저울추로 삼으니(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는 너희 유대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임),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거짓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재앙을 만난다는 것임), 18.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8:44)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2:2, 6:12)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19:20-21)“(28:14-18);

1)    이사야의 설명이 절묘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인간들의 말과 현세적인 믿음의 특징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떠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비유적으로 짧은 본문 가운데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지금부터 구절을 살펴보면서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본문의 내용은 개역개정판’(new Korean revised version, 1998) 아니라 옛날 개정판’(Korean revised version, 1989) 사용했습니다. 이유는 정확한 개념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첫째, 14절입니다; “14. 이러므로 예루살렘 있는 백성을 치리(治理, 말씀의 이치에 비추어서 다스리는 )하는 너희 경만(輕慢, 경솔하고 교만함)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28:14); 장차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망하고 나면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유대교의 교권을 행사하게 되는 민간인 종교지도자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훗날 랍비를 중심으로 하는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을 위시한 사두개인들이 그들입니다. 이사야는 그들 유대교지도자들의 종교적인 특징에 대하여 한마디로 경만하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앞세워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성전에서 제의(祭儀, 제사의식) 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지도자들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서 도대체 어떠한 종교와 신앙생활을 내세우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유대교가 사람의 말과 현세적인 믿음을 강조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3)    둘째, 15절입니다;15.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 언약하였고 음부 맹약(盟約, 맹세한 약속, 굳은 약속)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 삼았고 허위(虛僞, 거짓된 행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 도다”(28:15);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들의 경험과 지식이 만들어내는 교훈들, 그리고 영적인 삶이 아니라 육신적인 삶을 중시하고 있는 현세적인 믿음을 강조하게 되면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될까요? 이사야는 비유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4)    하나, 15.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 언약하였고 음부 맹약(盟約, 맹세한 약속, 굳은 약속)하였은즉”(28:15a);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말은 효력이 사망으로 끝나고 당사자의 영혼은 음부로 내려가고 맙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은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것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보이는 세상을 설명하고 경영하기에 바쁩니다. ,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 삼았고 허위(虛僞, 거짓된 행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 도다”(28:15b);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사람의 믿음은 보이는 현재의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복을 누리고 재앙을 피할 있을 것인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세주의 믿음입니다. 소원을 이루어 있는 신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신을 찾아서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참으로 거짓말을 잘하고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평안을 있는 우상의 이름은 마귀입니다(8:44).

5)    셋째, 16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急切, 갑작스러운 죽음)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마귀와 악한 영들의 세력은 언제 끝장이 날까요? 그들의 거짓말은 메시아가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진리 앞에 여지없이 탄로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가두어 두던 그들의 권력은 메시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깨어져버리고 맙니다(3:15, 8:1-2).

6)    메시아의 복음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말과 현세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있던 유대교가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유대교를 사수하고자 주후 32년경 메시아를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때문에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새로운 희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고서 복음신앙 다음과 같은 새로운 부활과 영생의 신앙을 가지게 되는 자들이 나타나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7)    하나,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28:16a);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믿음의 기초를 그리스도에게 두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풀이하고 설명해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상 사람의 경험과 상식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急切, 갑작스러운 죽음)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b); 현세적인 복과 형통함만 추구하고 있는 신앙에서 영생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장수(長壽, longevity) 개념이 달라집니다. 세상에서 단지 시간적으로 오래 사는 것이 장수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장수의 개념입니다.

8)    보충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공생애를 살아가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았던 에녹이 휴거하고 있습니다(5:21-24).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하는 방법이 휴거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장수를 누리게 것입니다. 그것이 현세적인 신앙 육체적인 삶과 확연하게 구별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영적인 삶의 개념인 것입니다.

9)    넷째, 17절입니다; “17.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28:17);

종교라고 하는 것이 과연 세상에서 모두가 환난을 당하고 있는데 자신만 그것을 피할 있고 안전한 피난처에 숨을 수가 있다고 하는 교리로 형성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와 같은 현세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종교는 거짓이라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정신으로 세상을 만드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복을 모든 피조물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십니다. 모든 생명을 살리고 똑같이 돌보고자 하십니다(3:4). 그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십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재앙이 발생하면 모두에게 똑같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28:17 의역). 사족을 더하자면, 남의 죄를 용서하고 죄사함을 위해서 한평생 제사장으로 살아간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영위하고자 애쓴 성도에게는 현세적인 복을 뛰어넘는 영원한 복이 주어지게 됩니다(18:29-30).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가 보여주고 있는 부활과 영생의 상급이 그러한 자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11:26, 22:28-30).

10)  다섯째, 18절입니다;18.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28:18);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며 사람의 생각을 절대시하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한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다음과 같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18.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28:18a);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죄가 청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를 죽음에서 깨워서 심판을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5:29).

11)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28:18b); 음부로 내려가게 되는 영혼이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16:24). 음부의 세력과 맺은 언약이 세상에서 진정한 형통과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생과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섭리하시며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28:18c); 세상에서 자신은 재앙을 피하고 복을 누릴 있다고 하는 기복신앙이 거짓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거짓선지자의 말을 신뢰한 대가가 혹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귀신이 잠시 물러갔다가 후에 일곱 귀신과 더불어 다시 찾아들 것이기 때문입니다(12:43-45).

(2)  19.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살아있는 동안 죄와 사망의 권세에 시달린다는 것임, 8:1-2반대해석임). 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악한 영에게 시달리는 인생은 정신적으로 옹색하며 영적으로 불안하고 세상적으로 허무하기 그지 없다는 것임). 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삼하5:18-20,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다윗이 블레셋을 크게 무찌른 것임)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10:8-11,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침입하는 아모리 족속을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크게 무찌른 것임)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적을 완전히 소탕하신 놀라운 여호와의 계책이 다시 등장하여 악한 영들과 거짓선지자들을 분쇄하고 말 것임). 22.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여호와를 대적하는 오만한 자는 종말을 맞이하고 마는 것임, 19:20).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이 세상을 완전히 멸하고 그 대신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며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나라로 강림하게 하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가 있을 것임, 65:17-18)“(28:19-22);

1)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에 진노하시며 무엇을 심판하시는가? 설명하고 있습니다(28:18-22). 사실 이사야는 28장에 들어와서 훗날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교의 교권을 장악하게 되는 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여 메시아로부터 엄청난 질책을 받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28:16-18). 그리고 특히 본문의 예언을 시작하고 있는 19절에서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관념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또한 본문 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타락한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22절에서 이사야는 그와 같은 잘못을 훗날 유다의 백성들은 부디 범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당부 그대로 장래의 일을 정확히 알고 사전에 대비를 하라는 것이 예언을 주고 있는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구절씩 본문의 깊은 내용을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를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19 말씀이 18 말씀과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참고삼아 18 말씀을 약간 시각을 달리하여 다시 한번 자세하게 풀이해봅니다;

3)    첫째,  18 말씀입니다; “18. 너희가 사망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28:18); 유대교를 믿고 있는 선민들이 도대체 사망 스올’(음부의 세계를 말함) 맺고 있는 계약이 무엇일까요?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장로인 야고보의 다음과 같은 깨달음의 기록을 참고해야만 합니다; “15. 욕심 잉태한즉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 낳느니라”(1:15).

4)    흔히 낙타 무릎이라고 불리고 있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는 무릎에 군살이 박혀서 낙타 무릎처럼 때까지 기도생활에 전념하게 인물입니다. 결과 히브리정경을 관통하고 있는 깨달음 하나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이 위의 기록에서 엿볼 있듯이 죄와 사망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의 욕심이라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모든 자의 어머니가 되고 있는 하와가 욕심에 이끌리어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것과 같습니다(3:6, 15, 19, 22, 3:9-10, 8:2).  

5)    장로 야고보가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것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본래 메시아로 땅에 오신 예수님의 바로 아래 동생입니다(13:55, 1:1). 그런데 형과는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릅니다. 야고보는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적장자입니다. 예수는 아버지 요셉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혈통적으로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 아닙니다. 따라서 만약 다윗의 자손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다고 하면 메시아는 요셉의 의붓아들이며 자신의 반쪽 형인 예수가 아니라 당연히 혈통적인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야고보 자신이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한 야고보이기에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면서 공생애를 살고 있는 형을 살아 생전에 전혀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7:5).

6)    그런데 엄청난 충격이 야고보에게 다가옵니다. 무덤 속에서 예수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것입니다(고전15:7). 히브리정경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스스로 무덤에서 되살아난 선지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부활하여 승천까지 하고 있습니다(24:50-53). 그래서 야고보는 자신의 혈통적인 사고방식을 버렸습니다. 사도 요한이 훗날 적고 있는 그대로 혈통과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능력을 드디어 믿게 것입니다(1:12-13).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고 분의 말씀과 삶의 모범을 따라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 그것이 영생의 구원을 얻는 방법임을 확신하게 것입니다(3:13-17). 그래서 야고보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남은 평생을 기도생활에 힘쓰고 깨달은 복음의 말씀으로 초대교회를 이끌어간 것입니다(15:13-22);

7)    그와 같은 장로 야고보의 귀중한 깨달음이기에 말씀에 비추어서 본문 18 말씀을 다음과 같이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하나,18. 너희가 사망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28:18a);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욕심껏 인생을 살게 되면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들의 권익을 침해하고 약자를 짓밟게 됩니다. 그것이 죄악이라는 사실을 양심은 스스로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민 유대인들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더구나 죄악이 커지게 되면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 두고서 하나의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청산할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인생 가운데 얼마나 욕심껏 살았든지 간에 모든 것을 당사자인 자신의 죽음으로 끝내도록 해주는 그러한 신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는 마치 영지주의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8)    세상에서의 쾌락과 탐욕의 인생은 육신이 죽고 나면 그것으로 전부 면제가 되고 만다는 지극히 편리한 종교적인 관념이 거기에서 파생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원시적인 영지주의의 갈래인 니골라 그러합니다(2:6, 6:5). 그런데 여기서는 불행하게도 영생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하는 선민 유대인들이 그와 같은 현세주의적인 관념을 지니고서 이중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사야의 지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심으로 잘못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심판주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5:22, 27-29).

9)    , 스올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28:18b); 스올은 음부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자와 어떠한 계약을 맺기를 원하고 있을까요? 누구나 죽은 다음에도 벌을 받지 아니하고 좋은 생활을 있도록 살아 생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의 방법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올을 지배하고 있는 ()에게 보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제물과 여러 가지 재물을 받고서 무당들이 사후(死後, after death) 복까지 빌어주고 있습니다. 일종의 공덕을 쌓는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흔히 말하고 있는 황제 복역 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와 같은 우상숭배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10)  ,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28:18c);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우상숭배와 종교적인 관념에 빠져 있는 자들을 어떻게 징치하실까요? 그들의 종교적인 본산지를 부수어 버리시고 당사자들을 쓸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대로 발본색원’(拔本塞源)입니다. 일이 훗날 예루살렘에서 크게 발생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28:18d); 선민들이 내세우고 있는 편리한 종교적인 관념이 어떻게 종말을 고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이 믿고 있는 사망과 음부의 권력자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철저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11)  훗날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따르게 되면 상세한 처벌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1. 내가 크고 보좌와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자나 작은 자나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사망과 음부도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주매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못에 던져지더라”(20:11-15). 요컨대, 사망과 음부의 실력자에게 보인 것이 아무 소용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를 깨워서 다시 심판하고 음부 자체를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앞에서 말씀대로 신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것입니다.

12)  둘째, 19절입니다; “19. 그것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28:19);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욕심대로 살며 현세적인 기복신앙에 입각하여 우상을 섬기고 적당하게 죽음 음부의 권세와 타협하여 사는 종교생활을 결코 좌시하지 않습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끊임없이 전하게 하십니다(11:27, 7:52-53). 그때마다 선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아예 선지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7:52-53). 사실 히브리정경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게 되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내용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지도자들은 정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서 멀리하게 하고 자신들의 유대교 교리와 주의주장을 주석의 도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그리스도가 땅에 오시게 됩니다.

13)  므낫세 시대에는 신앙 양심에 벗어나는 극단적인 행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던 히스기야 시대가 지나고 나면 그의 아들 므낫세 왕의 악한 통치가 오래 계속됩니다(왕하20:21, 21:1-6). 그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율법서를 모두 없애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야 때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는 역사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왕하22:8-11). 요시야 때와 비슷한 역사가 훗날 주후 16세기에 유럽에서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성경을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소위 종교개혁운동 것입니다.

14)  셋째, 20절입니다; “20. 침상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28:20);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죽음과 사망의 권세와 짝하여 어두운 구석에서 욕심껏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사야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대목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까지 다시 깨워서 심판대에 세우시는 하나님의 종말심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음부가 죽은 자를 다시 토해낼 수밖에 없습니다(27:52-53, 20:13). 메시아가 땅에 오셔서 음부의 권세를 깨부수고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는 어두움이라고 하는 것이 마치 짧은 침상이나 좁은 이불과 같아서 자신의 잘못을 완전범죄로 숨겨주거나 온전히 가려주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예언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4:10-11, 28:20).

15)  넷째, 21절입니다; “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28:21); 일찍이 우상을 섬기고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과 블레셋 족속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셨습니다. 결과 여호수아가 이끌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전쟁 가운데 유명한 기브온 골짜기 전투 있습니다(28:21b, 10:8-11). 그리고 전체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다윗이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치게 됩니다(삼하5:19-25).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이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장소가 브라심 입니다(28:21a). 그와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28:21cd).

16)  역사적인 측면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옛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서 요단 강을 건너 아이 성과 여리고를 정복합니다. 그러자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두려워 떨게 됩니다. 가운데 라마와 예루살렘 사이에 살고 있던 기브온 사람들이 책략을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화친하고 공존하게 됩니다(9:3-16, 10:1-4). 그것을 보고서 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5지역의 아모리 족속의 왕들이 기브온으로 쳐들어 옵니다(10:5).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군대를 이끌고 와서 그들과 전쟁을 벌입니다(10:7). 전쟁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크게 도와 주십니다(10:8). 우박으로 적들을 죽이고 또한 기적을 베풀어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게 하여 대승을 거두게 것입니다(10:11-13). 그것이 기브온 골짜기의 전투입니다(28:21b).

17)  다윗은 처음에 자신의 지파인 유다 지파의 왕이었습니다(삼하2:4). 나중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이 됩니다(삼하5:3). 그리고 여부스 족속에게서 시온 산성을 빼앗고 예루살렘 도성을 건설하여 천도하게 됩니다(삼하5:5, 7, 9). 그러자 세력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전체 가나안 땅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삼하5:10-12). 그에 불안을 느낀 거인 족속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 타고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옵니다(삼하5:17-18). 참고로, ‘르바임 골짜기 지중해 해안 길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있는 천혜의 골짜기 통로입니다. 골짜기에 블레셋의 군대가 가득하므로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합니다(삼하5:18-19). 그래서 차례의 대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승리가 브라심 전투입니다(삼하5:20, 28:21a). 두번째는 게바에서부터 적의 후진을 몰아 부쳐서 해변 길과 만나고 있는 게셀까지 쫓아낸 것입니다(삼하5:25). 길은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에 이르게 되는 고속도로에 해당되고 있습니다;

18)  다섯째, 22절입니다; “22.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28:22); 적을 소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이 철저하십니다. 일찍이 여호수아를 통하여 우상을 섬기고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모두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도와서 힘만 믿고서 함부로 쳐들어오고 있는 블레셋 족속을 바다 가까이까지 쫓아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는 역사가 다시 임할 것이라고 이미 21절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19)  다시 훗날의 역사 가운데 발생하게 되는 하나님의 징계는 어느 정도의 강도일까요? 이사야는 마치 옛날 노아의 홍수 때처럼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시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6:5-8, 28:22).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저버리고 있는 선민들만 처벌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세주의 기복신앙에 물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오만한 유대인들은 물론 메시아의 복음을 외면하고 있는 모든 족속들을 하나같이 철저하게 사로잡아서 강력하게 처벌하실 것입니다(28:22a&b, 25:29).

20)  만약 그들이 욕심껏 제멋대로 인생을 살다가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잘못을 청산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죽음의 잠을 깨워서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메시아를 통하여 선언하고 있습니다(5:27-29). 그리고 평생동안 음부의 세력 악한 영들과 결탁하여 죽은 다음에도 저승에서 영화를 누리겠다고 획책했다고 한다면 음부마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20:14). 훗날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담기게 되는 종말의 예언이 이미 본문 28 22절과 이사야 65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저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28:22c), “17. 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

셋째로,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반드시 명심하라는 강조 용법임).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이제는 복음의 씨를 뿌리고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할 때인 것임, 13:23-24,  4:35-36)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새 언약에 따른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주시듯이, 2:23, 28-29) 가르치셨음이며(그리스도의 모범을 통하여 영적인 추수를 하는 방법을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임, 4:34-38),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알곡을 모아 천국으로 들이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으로 함께하실 것임, 고전15:23-26),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11:33-36)“(28:23-29);

(1)  본문은 선지자 이사야가 농부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배우는 천국농사의 방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28:23-29). 그러므로 가장 오래된 고대사회의 농사법이 본문에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단순하게 주전 8세기 유다 왕국의 농사방법을 소개하기 위하여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27:3, 15:1) 어떻게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고(13:23) 말씀의 씨를 뿌리고(13:24, 31, 37) 추수를 하시는 지에(13:30, 40, 4:35-37)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의 구절을 차례대로 검토하면서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23-24절입니다;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말을 들으라. 24. 파종하려고 가는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28:23-24); 밭을 만들기 위하여 땅을 개간할 때에 먼저 흙에서 돌을 골라냅니다. 다음에 쟁기로 땅을 갈아서 흙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흙을 골고루 펴면서 밭을 편편하고 고르게 합니다. 그와 같이 편편하고 부드러운 토양의 밭을 만드는 이유는 거기에 씨를 뿌리기 위한 것입니다.

1)      이사야는 복음의 씨를 뿌리기 전에 그와 같이 밭을 고르게 옥토로 만드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40:3-5).

2)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 승천한 엘리야가(왕하2:11) 선지자로 다시 와서 다음과 같이 복음시대를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4:5-6).

3)      따라서 한가지 사실을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 그리고 성도들이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은 자신과 사람들의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메시아의 복음의 씨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자라게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일입니다(13:23-24). 구체적으로, 회개와 용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결단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제 이사야는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를 땅에 뿌릴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것입니다.

4)      성도들은 자기 개인의 회개와 성화 그리고 자신만의 거룩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오직 그것만 위하여 부름을 받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복음의 씨를 파종하는 일꾼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28:24).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이사야는 본문에서 이제는 농부이신 여호와께로부터 거룩한 농사를 짓는 법을 자세히 배워서(28:23) 자신과 다른 사람의 마음인 옥토에 파종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3)  둘째, 25절입니다;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black cumin) 뿌리며 대회향(cumin, 근채, 23:23) 뿌리며, 소맥() 줄줄이 심으며 대맥(보리)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오토밀)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28:25); 이사야는 유대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농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편편하게 흙을 놓은 밭에 씨앗을 뿌리고 종자를 심습니다(28:25a). 대체적으로 유대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농사는 주곡(主穀)생산과 기타 작목생산으로 대별되고 있습니다.

(4)  먼저 주곡은 밀과 보리입니다. 그것을 가장 좋은 밭에 줄을 맞추어서 제일 많이 심습니다(28:25c).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만약의 흉작을 대비하여 자생력이 강한 귀리를 심습니다(28:25d). 다음에 주위의 채전(菜田) 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의 씨앗을 뿌립니다. 이사야는 그가 마치 농촌출신이나 것처럼 중근동에서 향신료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가지 쿠민종류 대회향 소회향까지 빠짐없이 씨앗을 뿌리라고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28:25b);

(5)  셋째, 26절입니다;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28:26); 이사야가 앞절에서 그렇게 자상하게 설명한 이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농사짓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어 굶어 죽지 아니하도록 섭리하신 것처럼(2:10-15) 이제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농사에 대해서도 가장 적합한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일까요? 선생의 정체에 대하여 얼핏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입니다. 이유는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8:26).  구절은 히브리어의 해석상 의의 교사인 메시아 의미하고 있는 구절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2:23b) 맥을 통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6)  넷째, 27절입니다;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28:27); 중동지역에서 소회향과 대회향은 후추보다 먼저 사용된 오래된 향신료입니다. 그것은 마치 한국의 깨처럼 씨를 볶아서 그대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갈아서 가루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수확할 때에 작은 씨앗이 상하지 아니하도록 막대기로 털도록 되어 있습니다. 점은 주곡인 소맥과 대맥을 수확할 때에 탈곡을 위하여 도리깨나 수레바퀴를 이용하는 것과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7)  다섯째, 28절입니다;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28:28); 그렇다면 주식인 소맥과 대맥의 씨앗을 탈곡할 때에는 상처를 입혀도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일단 밀단이나 보릿단을 조심스럽게 탈곡하여 알곡을 털어냅니다. 그것을 방앗간에서 껍질을 벗기는 것입니다. 만약 탈곡과정과 정미과정에서 알곡이 부수어져 버린다면 먹을 것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농부가 주식농사를 짓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수확하고 알곡을 모으며 알맞게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부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알곡인 성도들에게 상처를 입히자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알곡을 추려내기 위하여 도리깨질을 하고 수레바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본질이 상처를 입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아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는 풀무불로 단련하여 정금 같은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12:11, 벧전1:7).

(9)  여섯째, 29절입니다;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28:29); 천국 하나님나라의 일꾼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농사법에 대하여 이사야가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훗날 메시아가 땅에 오시면 천국복음의 씨앗을 제자들과 더불어 여러 회개한 백성들의 마음 속에 뿌리고 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사의 방법이 실로 기묘하고 지혜스러워서 찬양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입니다(28:29).

(10)    구체적으로, 마음의 상태를 보아가면서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뿌리고 심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수확하는 방법도 일꾼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백성들이 처한 환경과 지닌 재능을 참조하여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성숙의 과정을 밟게 하시고 전도와 사역에 나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지혜와 경영의 노하우를 믿고서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힘쓰면 것으로 믿고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요컨대, 여러 백성과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 마치 여러 작목을 적합한 방법으로 농사짓고 열매를 모으듯이 그렇게 다양하게 합목적적으로 경영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선지자 이사야는 찬양을 올려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히스기야 때에 주로 활동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가 100여년 후에 있게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과 700 후에 있게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와 같이 유대교지도자들이 메시아를 배척하게 되는지 이유까지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와 같이 훗날의 이야기를 미리 말해주고 있는 이유는 부디 그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고 미리 미리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지도자들이 이사야의 본문말씀의 의미를 그대로 음미하고 묵상을 했더라면 메시아를 죽이는 잘못을 범하지 아니할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100여년 후에 있을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아니합니다. 남은 백성들이 고토로 돌아와서 다시 신앙 생활하게 되는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지도하고 있는 그들의 신앙과 종교 생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사람들의 말과 경험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 당장 자신들에게 환난을 피하고 복을 있는 우상을 믿고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그러한 우상인 줄로 알고서 유대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있을까요?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외칠 뿐만 아니라 훗날을 위하여 글로 적어서 선지서로 남기고자 합니다. 자신의 말은 사라지지만 그의 글은 살아남아서 후세의 믿음생활을 바르게 인도할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믿음이 현세적인 구복을 앞세우고 있는 유대교적인 것인지 아니면 주님과 동행하면서 부활과 영생을 소원하고 있는 기독교적인 것인지를 한번 점검할 있게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이사야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하도록 세움 받은 선지자입니다(6:1-12). 하지만 그가 전하고 있는 예언은 길이와 폭과 깊이와 높이가 세상과 모든 역사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18.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28:18) 예언과 22.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28:22) 예언을 적고 있어 분명히 그러합니다.

따라서 이사야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그리고 종말심판이 임하는 그때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섬기면서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자들은 동일한 처벌을 받게 것입니다. 처벌의 내용은 죽은 다음에 다시 살려서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메시아의 복음과 삶의 모습을 따라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하늘과 땅에서 영생을 누릴 있는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사야가 예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관점에서 선지서 이사야의 내용을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하나님께서 개인과 나라와 민족의 상태와 특징을 보아가면서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농사를 짓듯이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의 용사를 만들어 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이나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농사방법이 옳다고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농사의 지혜와 방법이 탁월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여쭈어 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복음의 씨를 뿌려야 될지, 어떠한 방법으로 연단해야만 할지 모든 노하우가 사실은 그리스도로 땅에 오신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이미 들어있다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고자 하는 성도의 삶은 어디까지나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제자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