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뱀 리워야단과 용을 죽이고 우상을 섬기는 에브라임왕조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할 것이다”(사27:1-28: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7. 25. 17:39

제목; 뱀 리워야단과 용을 죽이고 우상을 섬기는 에브라임왕조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할 것이다”(사27:1-28:8)

설교일; 주후 2026 9 13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725일 금요일 작성)

선지지 이사야는 제27장을 시작하면서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강한 칼로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과 바다의 용을 처단하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둘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제27장 본문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그들의 정제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1)  첫째, 꼬불꼬불한 뱀은 출애굽기 제7장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로의 황궁에서 아론이 모세의 말을 듣고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이 살아 있는 뱀이 됩니다(7:10).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시행하고 있는 이적입니다(7:8-9). 그러자 세상제국 애굽의 황제인 바로 아멘호텝2세가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 그에 따라 애굽의 요술사들도 요술을 사용하여 지팡이가 뱀이 되도록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7:11-12a).

1)   겉으로 보면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론의 지팡이가 요술사들의 지팡이를 전부 삼켜버립니다(7:12b). 그것은 환상에 불과한 요술사들의 뱀들이 실제로 여호와의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에 의하여 무생물인 지팡이가 변화한 완전한 생물체인 뱀을 대항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애굽의 요술사들이 만든 가짜 인조 뱀’(man-made snake)들이 허망하게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인조 뱀의 특징을 두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날랜 뱀입니다. 그것은 눈속임이 엄청 빠르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꼬불꼬불한 뱀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제3장에 등장하고 있는 마귀의 화신인 뱀이 아담부부에게 사용하고 있는 거짓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마귀의 화신인 뱀은 한마디로, 진리(3:5, 22a)()진리(2:17, 3:4)를 적당하게 섞어서 하나의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어 어리석은 하와의 탐욕을 충동하고 있습니다(3:6, 8:44). 쉽게 설명하자면, 창조주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을 한 스푼 넣고 마귀 자신이 만든 거짓말을 또 한 스푼 섞어서 아담 부부에게 그들이 듣고 싶은 달콤한 말을 뱀이 속삭여주자 그만 피조물인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탐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종의 법도를 어기며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어 버리는 죄악을 범하고 마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우상인 뱀 리워야단은 거짓말로 인간의 욕심을 충동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들의 욕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영적인 타락의 삶을 인간에게 선택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30:19). 당연히 우상을 섬기는 자는 여호와의 진노를 사게 되고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30:17-18, 20).

(2)  둘째, 바다의 용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20:1-3, 7). 여기서 용은 사탄입니다.

1)   그 사탄 루시퍼의 탄생에 대해서는 히브리전승을 사용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 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16.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 17.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14:12-17).

2)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에서 바다에 있는 용’(27:1)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보이는 하늘인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2:2, 6:12) 어째서 이사야는 바다에 있는 용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의미는 현존하는 바다와 사탄인 용의 운명을 결부하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바다는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열국으로서 여러 나라와 민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1:11, 23:11). 또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면 바다가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21:1b). 그와 같이 영원한 처벌을 받고 마는 존재가 바로 사탄인 용인 것입니다(20:3, 10);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 제27장에서 포도원지기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포도원인 다윗왕조 유대왕국(27:2-3)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8장에 들어서면 먼저 멸망을 당하는 북조 이스라엘왕국(28:1-4)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우상문화인 찔레와 마귀의 거짓말을 따르는 가시가 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아니하실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27:7-8). 그 이유는 그들 가운데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 하나님과 화친하여 그 종으로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상문화를 척결하고 새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27:9, 31:31-34, 22:20). 그들에 의하여 온 세상에 여호와의 복음이 선포되고 선민과 이방인들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이 수없이 많아지는 것입니다(27:6, 12-13).

(2)  둘째,  창조주 여호와를 아는 지각이 없이 한평생 이 세상을 무주공산으로 알고서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추구하며 끝까지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27:10-11). 선민 가운데 그러한 왕국을 경영한 자들이 에브라임 출신인 여로보암1세를 왕으로 세운 이스라엘10지파입니다(28:1). 그들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금송아지 우상 둘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두고서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선전하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도록 만들었습니다. 208년간 비록 왕가가 바뀌어도 그 우상숭배정책만은 견고하게 유지했습니다. 그 결과 주전 722년 선지자 이사야의 생전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28:2-4). 그 백성들은 앗수르 변방으로 끌려가서 그만 제국의 혼혈정책과 범신론적인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 못하고 선민의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28:7-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1. 그날(종말심판의 날)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피조세계에서 아무도 이길 수가 없는 무력, 8:37-39)날랜(눈속임이 엄청 빠른) (마귀의 화신임, 3:1)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진리와 비진리를 적절하게 섞어서 거짓말로 사람을 유혹하는 마귀의 화신임, 3:4-5) 리워야단(거대한 괴수를 말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탄을 용으로 표현하고 있음, 20:2, 7-10). 2. 그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선민 이스라엘을 말함, 5:7)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3.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15:1),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4.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뱀과 같은) 찔레 (사탄과 같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악한 영들을, 6:12)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19:19-20, 20:7-10). 5.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대속의 십자가를 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우상문화를 척결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는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것임, 3:13-17, 10:43. 그 화친의 증거가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인 것임, 10:44-48, 3:25-26). 6. 후일에는 야곱(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임) 뿌리(여호와신앙을 말함, 3:38, 21:33)가 박히며 이스라엘(북조 이스라엘왕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임)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11:1, 10). 그들(새로운 이스라엘인 성도들)(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여 얻은, 66:20-21, 28:18-20) 결실지면을 채우리로다(11:9, 1:17-23)“(27:1-6);

(1)   본문을 포함하여 27 전체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훗날 성부와 성자가 행하시는 종말심판의 내용을 알기 쉽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세오경과 선지서가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저자는 다를지 몰라도 같은 성령님이 역사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1)      점을 훗날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27.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창조주 하나님의 진리에 관하여 있는 지혜는 계시로서 전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를 전달받을 있는 선지자는 빠짐없이 성자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선택하는 자에 국한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11:29).

2)      요컨대, 그렇게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관리가 되고 컨트롤이 되고 있기에 동일한 취지의 메시지가 진리로서 전달되며 또한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좀더 설명을 드리자면, 구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땅에서 성취하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스스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44.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4).

3)      마치 그와 같은 사실을 미리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본문과 27장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훗날 성부와 성자가 행하시는 종말심판의 내용을 알기 쉽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내용은 먼저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사탄의 권세를 깨부수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사탄의 하수인과 추종자들을 모두 처벌하시고 회개하는 자들은 강력하게 보호하여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는 본문의 구절을 따라가면서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 또한 의미에 대하여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날랜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죽이시리라”(27:1);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한 리워야단과 바다의 용을 죽이시는 때가 바로 마지막 종말입니다(20:1-3). 창조주께서 현존 하늘과 땅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의 권세를 그렇게 쳐부수고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며 예루살렘 성을 땅에 임하게 것입니다(20:7-10, 21:1-8). 그에 따라 용의 독무대가 되고 있던 현존하는 바다는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21:1b).

1)      여기서 리워야단(Leviathan) 태초의 혼돈의 힘을 가진 악마의 화신으로 있으며 사탄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모습은 대체로 딱딱한 비늘을 가진 거대한 뱀이나 악어인데 코에서 연기가 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있으므로 용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41:1, 14-34). 종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인데 이사야는 하늘을 날고 있는 리워야단을 날랜 으로, 그리고 땅을 지배하고 있는 리워야단을 꼬불꼬불한 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27:1b);

2)      또한 이사야는 바다에 있는 라합(30:7, 51:9-10)이나 리워야단(41:1) 대신에 여기서는 언급하고 있습니다(27:1c). , , 공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의 존재를 이사야가 본문에서는 그렇게 리워야단과 용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리워야단을 처벌하고 용을 죽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27:1). 여기서 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27:1a)라고 묘사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기는 창세기 3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사탄의 화신인 뱀의 머리를 쳐부수는 여자의 후손이며(3:15)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라고 하겠습니다(11:1-9).

(3)   둘째, 2-3절입니다; “2. 그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3. 여호와는 포도원지기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27:2-3); 아름다운 포도원은 선민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나라와 백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5:7). 그러나 세상의 종말과 메시아의 나라를 염두에 두고서 말할 때에는 그것은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생 가운데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세상의 모든 나라와 백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메시아가 선민만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다음 문장의 차이를 구별하시기를 바랍니다;

1)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5:7);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애굽에 보내어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하여 애굽 바깥으로 끌어내고 시내 앞에서 그들을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19:3-6).

2)      뜻은 선민 이스라엘 12지파 내에서는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제사장나라의 역할을 함으로써 만민의 생명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19:6). 그러나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며 포학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3)      결과 그들 선민사회에서 고아와 과부 약자들이 길이 막막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민들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했습니다. 결과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혀서 부르짖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      1.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15:1-2); 선민으로 하여금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게 됩니다.

5)      구체적으로, 선민사회 내에서는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게 하고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 복음을 전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에 의하여 포도원의 경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앞세워서 종말심판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과 악한 세력들이 모두 퇴치되고 있습니다. 그와 발맞추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들은 이제 완벽한 보호를 받으며 모두가 좋은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것입니다;

   

(4)   셋째, 4-5절입니다; “4.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5. 그리하지 아니하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27:4-5);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사탄의 권세가 깨어지고 있습니다(3:15). 그리스도의 복음사역과 부활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조종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성도들이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8:1-2).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전자 하나님과 화목하게 자는(27:5, 5:1)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주님의 사랑을 받게 것입니다(1:12-13). 후자는 모아서 불살라지는 대상이 되고 것입니다(27:4, 13:30).

(5)   넷째, 6절입니다; “6.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 박히며 이스라엘의 돋고 꽃이 것이라. 그들이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27:6); 이사야는 야곱이란 이름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대조함으로써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      야곱이라고 하면 그것은 혈통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그리고 쌍둥이 에서와 장자의 권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싸웠던 야곱의 세상적인 방법을 돌아보게 하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상적인 꾀와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에서와 싸웠지만 도저히 그를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창세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과 전능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자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2)      먼저 야곱이 얍복 시냇가와 벧엘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32:28, 35:10-11). 의미는 이삭의 차자(次子, 둘째 아들) 야곱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장자(長子, 첫째 아들) 삼는다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야곱이 12지파의 조상인 믿음의 족장 이스라엘 되는 것입니다(48:22). 의미를 확대해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새로운 운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의 거듭남 중생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7.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은 그들을 정복한 신바벨론제국의 멸망과 다르다는 것임. 그 이유는 창조주 여호와를 끝까지 대적한 바벨론 세력은 완전한 파멸을 맛보게 되지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훗날 회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세상의 심판 가운데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임, 벧후3:12-14). 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8:1, 14:21-22) 그들을 옮기셨느니라(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를 내쫓으신 여호와의 구원의 계획과 같은 것임, 3:15, 20-24). 9. (이스라엘 자손인 선민들)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3:13-17),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모든 우상문화를 척결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임, 4:12). 10. 대저 (세상적인 번영만 추구하는) 견고한 성읍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 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그 땅이 황무지가 되고 야생 짐승의 터전이 되고 말 것임). 11.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그들의 문명과 역사가 사라지게 되는 이유는 창조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역사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안목인 지각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임, 56:11-12). 12. 너희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선민들이 포로로 끌려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말함)에서부터 애굽 시내(선민들이 피난한 애굽 삼각주를 말함)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그리스도의 성도로 모아들일 것임, 19:22-25). 13. 그날에 큰 나팔(복음의 외침을 말함, 28:18-20, 1:8)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이방인 앗수르 사람을 말함, 19:23-25)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유대인 피난민들과 함께 애굽인들이, 12:38, 43:8-44:1)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66:20-21)“(27:7-13);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7.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은 그들을 정복한 신바벨론제국의 멸망과 다르다는 것임. 그 이유는 창조주 여호와를 끝까지 대적한 바벨론 세력은 완전한 파멸을 맛보게 되지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훗날 회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세상의 심판 가운데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임, 벧후3:12-14). 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8:1, 14:21-22) 그들을 옮기셨느니라(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를 내쫓으신 여호와의 구원의 계획과 같은 것임, 3:15, 20-24). 9. (이스라엘 자손인 선민들)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3:13-17),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모든 우상문화를 척결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임, 4:12)“(27:7-9);

1)    비록 짧은 3구절에 불과한 본문이지만 의미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속에 선지자 이사야가 만민구원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섭리와 선민, 이방인 차별 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있는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러한 문장인지 지금부터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깊은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7절입니다; “7. 주께서 백성을 치셨던들 백성을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27:7); 이사야는 미구(未久, 오래지 아니하여, in the near future) 동족 유다의 백성들에게 닥칠 전쟁의 참혹함 뿐만 아니라 훗날에 찾아오는 전쟁의 비참함을 미리 내다보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여러 차례의 전쟁의 참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구절에서는 달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족인 선민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아니했기 때문에 받는 처벌이 그들을 치는데 동원되고 있는 이방인들의 제국들이 훗날에 당하게 되는 참상과 비교할 없을 정도로 경미한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말은 선민과 이방인을 다룸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처벌의 강도를 달리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와 같은 차별성이 선지서에 기록되고 있는 것일까요? 해답을 얻기 위하여 창세기 1장부터 4 사이에 실려 있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창세기 1 26절부터 31 사이에는 많은 인류의 조상을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6 창조 마지막 날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경영하도록 하나님께서 위임을 하시고 심히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모양만 닮아 있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행위를 전혀 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래서 개인적으로 함께 사시면서 2장에서 청지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장소가 에덴 동산이고 대상자가 엄선된 인물 아담입니다. 하나님 형상을 여전히 보전하고 있는 아담에게(5:3) 아내 하와를 만들어주어 함께 일부일처제의 가정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선해 주십니다(2:20-25).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호와신앙을 가진 인류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

6)    그들이 잘못을 범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소위 실락원’(失樂園, lost paradise)에서 살게 되자 가정에 비극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살해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가정 최초의 형제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4:5-8). 카인에게 죄를 묻고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동방 땅으로 유배를 보냅니다(4:9-12). 그러자 카인이 남은 인생 동안 땅의 불신자들로부터 살해를 당하지 아니하도록 보호를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4:13-14).

7)    간구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조치해주신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카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4:15b). 한마디로, 카인에게 손을 대는 자는 7배의 응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고 하는 강력한 보호하심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다시 임하고 있음을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27:7).

8)    그렇다면, 어째서 그와 같은 보호하심을 살인자 카인이 유배를 가면서도 얻을 있는 것일까요? 유일한 이유는 그의 부모님이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으며 카인 역시 제사를 드린 경험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불신자 이방인과 구별되고 있는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출애굽기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백성들 사이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기로 결정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입니다”(2:23-25, 3:9-10);

9)    둘째, 8절입니다; “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27:8); 이방인들에 비하여 선민들을 경미하게 징계하신다고 하더라도(27:8a) 처벌의 내용이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선민의 왕국을 멸망시키고 백성들을 이방인들의 땅으로 쫓아내는 징벌입니다(27:10). 그런데 이사야는 특이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주의 백성들) 옮기신 이다”(27:8b)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풍, 폭풍, 옮기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0)  동풍’(the east wind) 동에서 서로 부는 바람입니다. 그러므로 동풍에 실려서 옮겨진다고 하면 동에서 서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 땅에서 서쪽 어디로 백성들이 옮겨진다는 것일까요? 유대왕국이 망할 때에는 백성들이 신바벨론제국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것은 동방 땅으로 것이므로 대목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훗날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유대인들이 가나안에서 쫓겨나는 경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막내사도로 불리고 있는 요한이 자신의 이모인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북서쪽 소아시아 에베소로 피신을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많은 유대인들이 남서쪽 애굽으로 피난했을 것입니다.

11)  폭풍 강력한 바람입니다. 그것은 전쟁의 바람’(the wind of war) 말하고 있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장군이며 황제의 아들인 디두스가 이끄는 정예병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옵니다. 유대인 110만명이 살해를 당했다고 전쟁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참혹한 반란의 진압입니다. 그러한 폭풍이 거주민들을 고향산천에서 내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옮기시는 경우가 2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출애굽 당시에는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안전하게 하나님의 산으로 옮겨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9:4).

12)   하나는, 선민들의 왕국이나 사회가 여호와신앙을 버렸을 경우에는 전쟁의 폭풍으로 그들을 가혹하게 옮겨 버리십니다(27:8c). 전자는 세상나라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신 경우입니다. 이른 거룩한 사명을 부여하기 위하여 불러내심’(calling out)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후자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선민들을 이상 보호할 필요가 없어서 이방세계로 쫓아내는 경우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느 경우를 소원해야만 할까요? 당연히 전자 calling out’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끝까지 자신의 영혼과 인생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뜻대로 자신의 고집과 아집을 앞세워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까요? 결코 그러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전쟁의 폭풍으로 여기서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3)  셋째, 9절입니다; “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27:9); 이사야는 훗날 메시아가 오심으로 세상에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것은 실락원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2:19-20, 11:6-9).

14)  같은 맥락에서 메시아로 오신 나사렛 예수의 행적과 교훈을 적고 있는 복음서에서는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은 모두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3:14-18). 그렇다면 메시아에 의하여 그리고 성도들에 의하여 어떠한 변화가 세상에 오고 있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본문에서 메시아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이 반드시 먼저 실천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가 하신 일을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 제단의 모든 돌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과 태양 상을 영원히 제거하는 것입니다.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15)  제단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입니다. 하나는, 이방 신을 섬기는 제단입니다. 이방 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제단을 훼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에 있어서도 부수어 버려야만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섬기고 있는 제단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6)  창조주 하나님을 단지 이스라엘의 조상신으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때에 전국을 휩쓴 앗수르 산헤립의 군대가 그러합니다. 적장 랍사게의 최후통첩문에서 여호와를 유다 땅의 수호신이나 토착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왕하19:11-13). 그리고 출애굽 당시 애굽의 황제인 바로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5:2);

17)  때로는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33:20, 32:4, 왕상12:28). 자신들의 번영과 영광만을 기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웃나라들을 처벌해달라고 하나님께 저주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어야 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은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42:10, 3:2, 4:1-5, 5:43-48). 한마디로, 선민과 이방인의 차이가 사라진 것입니다.

18)  , 하나님의 율법의 취지를 어기고 있는 제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출애굽시켰습니다. 애굽의 노예상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0장에서 애굽에서 만든 웅장한 제단의 형식을 버리라고 강조하십니다. 다듬은 돌로 제단을 만들지 말고 제사장이 올라가는 층계도 높이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20:24-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화려하고 제단은 웅장합니다. 제사장의 권위와 지위는 자꾸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제단과 종교는 하나님께서 부수어 버리시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19)  돌로 만든 주상이 아니라 제단 옆에 따로 세우고 있는 나무로 만든 신상들이 있습니다. 그것들도 없애 버려야만 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여신을 새겨 놓은 목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세라 목상입니다. 그리고 태양의 위용을 나타내고 있는 우상이 커다란 기둥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므로 부수어 버려야만 합니다. 그와 같이 모든 우상과 이방신을 없애 버리고 여호와를 창조주 답게 대접하고 뜻을 따라 올바른 제사를 드릴 때에 신앙이 회복되고 구원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20)  아주 실제적인 예를 창세기에서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에 묻고”(35:3-4),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35:9). 이방 밧단아람에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왔다는 표시는 이방 신과 우상을 파묻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단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2)   10. 대저 (세상적인 번영만 추구하는) 견고한 성읍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 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그 땅이 황무지가 되고 야생 짐승의 터전이 되고 말 것임). 11.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그들의 문명과 역사가 사라지게 되는 이유는 창조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역사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안목인 지각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임, 56:11-12). 12. 너희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선민들이 포로로 끌려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말함)에서부터 애굽 시내(선민들이 피난한 애굽 삼각주를 말함)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그리스도의 성도로 모아들일 것임, 19:22-25). 13. 그날에 큰 나팔(복음의 외침을 말함, 28:18-20, 1:8)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이방인 앗수르 사람을 말함, 19:23-25)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유대인 피난민들과 함께 애굽인들이, 12:38, 43:8-44:1)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66:20-21)“(27:10-13);

1)    누가 멸망을 당하며 누가 구원을 얻을 있을까요? 본문에서 이사야는 명쾌하게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지각이 없는 백성들은 멸망을 당하며 지각이 있는 백성들은 구원을 얻을 있다 것입니다”(27:11b-12). 그리고 지각이 없어서 멸망을 당하게 되면 그들이 살고 있던 도시와 주택이 어떻게 황무하게 되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생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언해주고 있습니다(27:10-11a). 반대로, 지각이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 구체적인 역사에 대해서도 예언해주고 있습니다(27:12-13). 도대체 지각’(知覺) 무엇이기에 그것이 심판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점을 살펴보고 다음에 구절을 따라가면서 깊은 내용을 묵상을 통하여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지각’(知覺, understanding, NIV, KJV)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한자의 뜻을 보면 지각이란 지성적인 각성 이성적인 깨달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이해력을 뜻하고 있는 understanding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전적인 입장에서 보아 무엇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도대체 무엇에 대한 이해이며 깨달음이기에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지 받을지 그것으로 판가름이 나게 된다고 선지자 이사야가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음과 같은 성경이야기를 가지고 깊은 의미를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창세기 5장을 보면 아담의 계보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3)    비록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지만 그들의 후손인 인류가 여호와신앙을 제대로 지니고 살아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분명히 모습은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 있는 사람인데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형상 창조주의 성품과는 한참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5:1-2). 그래서 수많은 인류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보전하고 있는(5:3) 특별한 가문이 아담의 계보 5장에서 등재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때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았던 아담이 자신의 형상을 아들 셋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습니다(4:25, 5:3). 그것은 여호와신앙을 물려주었다는 의미입니다.

4)    셋은 신앙을 아들 에노스에게 물려주고 있습니다(4:26a). 결과 에노스의 가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간구하는 예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4:26b).  가문의 후손들 가운데 믿음의 장자들의 이름이 창세기 5장과 11장에 등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으로 나아가는 의인들의 명단이라고 하겠습니다. 메시아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7:21).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모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드러나 있는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12:30-31).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5)    구약에서 율법의 기본정신은 법도를 지키는 입니다(15:25). 하나님을 창조의 주인으로 섬기고 자신은 분의 종이라고 하는 확실한 정체성의 확립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제대로 대접하고 섬기는 으로 바꾸어서 말하고 있습니다(7:12, 25:40). 뜻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접하고 창조주가 만드신 피조물에 대해서 자신과 같은 값어치를 인정하고 자신처럼 사람대접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다른 피조물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3:16, 8:21). 세상 자연환경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개념입니다(integrity). 모두가 하나님이 사랑하여 창조한 고귀한 창조물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됩니다. 그와 같은 깨달음으로 사유하고 행동할 지각이 있다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6)    둘째, 10절입니다; “10. 대저 견고한 성읍 적막하고, 거처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나뭇가지 먹어 없이하리라”(27:10); 이사야는 개인의 거처인 주택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성읍”(城邑, town or city)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성읍이 아니라 요새와 같은 견고한 성읍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번영을 누리며 강대국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는 난공불락의 성읍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조주를 모르며 창조주의 뜻대로 만민과 만물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있는 성읍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각이 없는 백성들이 살고 있는 성읍을 멸망시켜 버리십니다. 결과 적막강산이 되고 맙니다(27:10a).

7)    개인이 거처하고 있는 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없도록 황폐화되고 광야와 같이 변하고 맙니다(27:10b). 결과 미처 피난하지 못한 송아지들이 살아남아서 그곳에 거처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27:10c).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아니하므로 먹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송아지가 마치 돼지처럼 나뭇가지를 꺾어서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27:10d). 참으로 비참한 풍경을 이사야가 마치 붓으로 그린 듯이 예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8)    셋째, 11절입니다; “11.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27:11); 견고한 성읍을 지키기 위하여 남자들이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패전의 결과 남자들이 몰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성읍에는 일부 여인들만 살아남아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밤을 견디지 못하여 불을 피우고 있습니다. 연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옥의 나무를 떼어내어 불을 피워서 지내고 있습니다(27:11a). 이사야는 모진 고생과 참상의 원인을 한마디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창조주를 인식하는 지성이 없습니다. 하나님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창조주 사랑, 인간사랑이 없는 동네입니다”(27:11b 의역).

9)    그와 같은 깨달음과 실천이 전혀 없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금수와 같은 인생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지으신 조성하신 라는 유사개념을 겹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27:11c). 일견(一見, 한번 언뜻 보는 )하기로는 강조용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또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으신 생명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조성하신 인생을 만들어 나가시는 분입니다. 전자는 과거형으로 있지만 후자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10)  그러므로 창조주의 개념에는 2가지 개념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의미의 풀이가 가능해집니다; “생명을 주신 이가 그에게 생명준 것을 후회하여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상 은혜 베풀기를 원하지 아니하게 되고 맙니다. 이제 남아 있는 수순은 멸망 뿐입니다”(27:11c 의역)

11)  넷째, 12절입니다; “12.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27:12); 남은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세상에 깃발로 세우시게 되면 기치를 보고서 선민과 이방인들이 많이 몰려올 것이라고 벌써 예언하고 있습니다(11:10). 본문에서 이사야는 좀더 구체적인 예언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12)  어디에서 몰려올까요? 이사야는 구체적인 지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일하는 하수 강이 만나서 강물이 풍부하게 삼각주를 적시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나일 강물이 갈라져서 많은 시냇물이 삼각주를 흐르고 있는 애굽 지역입니다(27:12a). 유다의 선지자인 이사야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유대인들이 끌려가서 살게 되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거나 그들이 피난 가서 살게 되는 애굽 지역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메시아 깃발을 보고 하나님께로 몰려오는 자들은 모두 창조주에 대한 지각이 있으며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이 있는 자들입니다.

13)  그러한 성도들은 선민 유대인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의 복음이 전파되는 지역에서는 어느 곳이든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발생합니다. 그들이 모두 창조주를 섬기며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불러모으시는 방법에 대하여 이사야는 하나하나 모으시리라”(27:12b)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족과 국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집단적인 구원의 방식이 아닙니다. 매우 개인적인 구원의 방법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선민사상을 넘어서는 만민구원사상의 특징이 바로 개인별로 구원’(individual salvation)한다는 것입니다.

14)  다섯째, 13절입니다; “13. 그날에 나팔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27:13); 구원이 선민들 가운데 이방 땅에 흩어져 있는 자들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나팔소리가 세상에 크게 울려 퍼지게 됩니다(27:13a);

그러면 앗수르가 상징하고 있는 동방 땅에서도, 또한 애굽이 상징하고 있는 서방 땅에서도,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게 됩니다. 가운데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 세상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돌아옵니다. 그렇게 있는 이유는 멸망하는 자들이 돌아온다”(27:13b) 표현이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1. 에브라임(북조 이스라엘왕국을 상징하고 있음, 11:13. 초대왕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 여로보암1세이기 때문임, 왕상12:20) 술 취한(여호와의 영에 취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독주에 만취한) 자들의 (여호와 앞에, 17:1) 교만한 (여로보암1세의 금송아지 우상정책을 계승하는) 면류관(왕들)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비록 세상적으로 번영을 누리며 높은 산지에 철옹성을 지니고 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교만한 왕국은),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망조가 들고 말 것임, 24:4). 2.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여호와가 부리시는 천사장 또는 세상의 제국을 의미하고 있음, 37:36, 45:1-3)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무서운 기세로 몰려와서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그 왕국을 멸망시킬 것임), 3.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이사야는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먼저 멸망 당할 것이라고 예언함). 4.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초승달 지역 사마리아와 이스르엘 평야의 풍성함을 보고 그것을 탐내어 강대국이 이스라엘왕국을 집어삼키고 마는 것임). 5. 그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백성들은 역사적인 심판 가운데에서 구원을 얻을 것임). 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재판관들이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판결하고 장수들이 여호와신앙에 의지하여 적에게 맞선다고 하면 여호와 닛시의 은혜가 임할 것임, 17:8-16, 18:19-23).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여호와신앙을 떠난 자는 하나님말씀의 뜻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그리고 현세 구복적으로 잘못 적용함으로 말미암아 망조가 들고 마는 것임),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우상을 섬긴 더러운  것 밖에 없어서 여호와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임)“(28:1-8);

(1)  28장에 들어오면 이사야는 먼저 8절을 할애하여 에브라임 왕조로 시작된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명이 멸망과 회복 그리고 멸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단지 에브라임 왕조의 잘못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조의 전철을 밟았던 잇사갈 왕조 그리고 나라의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에 대한 총체적인 경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본문 1-8절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에브라임 취한 들의 교만한 면류관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영화로운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이여, 쇠잔해가는 같으니 있을진저”(28:1); 솔로몬대왕이 다스리고 있던 이스라엘제국을 하나님께서 개로 쪼개어 주전 930년경 북쪽의 지파를 에브라임 지파출신인 여로보암1세에게 주고 있습니다(왕상11:30-33, 12:20). 그러므로 솔로몬 대왕의 뒤를 이은 다윗 왕조의 르호보암 왕은 겨우 유다와 베나민 지파만으로 남조 유대왕국을 유지하게 됩니다;

1)      다윗왕조가 북쪽의 땅을 상실하게 되는 이유는 솔로몬대왕이 통치 전반기에는 여호와를 섬겼으나 후반기에는 이방신과 우상을 열심히 섬겼기 때문입니다(왕상11:33).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도우심보다는 강한 군사력에 의존하여 이스라엘제국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고자 획책했기 때문입니다. 전국에 걸쳐서 군비를 강화하고 요새를 건설했습니다(왕상9:15-19). 막대한 비용과 엄청난 부역은 몽땅 유다 지파와 약체인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지파에게 부과했습니다.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그의 아들 대에 가서 나라가 동강이 나고 것입니다(왕상12:4, 14-17).

2)      그와 같은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자가 에브라임 왕조의 여로보암1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바라보고 백성들 두려운 줄을 알고서 정치를 잘해 나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일보다는 자신의 왕국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지켜내는 것에 훨씬 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로보암1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유입니다(왕상12:25-30). 여로보암1세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백성들에게 섬기기를 강요했습니다.

3)      이유는 백성들이 절기를 쫓아 남쪽 유다 왕국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왕상12:28). 당연히 레위인들이 반발했습니다. 에브라임 왕조는 그들을 탄압했습니다. 레위인들이 대거 탈북하여 남조 유다로 가버리자 여로보암1세는 다른 지파의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기를 서슴지 아니했습니다(왕상12:31). 그것이 에브라임 왕조가 아들 대에 망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잇사갈 왕조를 세운 바아사 왕도 여로보암1세의 정책을 계승하고 말았습니다(왕상15:27-28, 34). 정치적인 목적이 여호와신앙의 회복을 가로막은 결과입니다;

4)      에브라임 왕조가 출발한 세겜 지역은 고도이며 가나안의 중심입니다(12:6, 33:18-20, 왕상12:25). 산물이 풍부하고 기름진 곳입니다. 지역의 성들은 에브라임 왕조와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술에 취하듯이 권력에 취한 에브라임 왕조의 여로보암1세가 하나님신앙을 버리고 교만하게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왕조와 왕국의 번영과 영광만을 추구하던 성들입니다”(28:1a). 그러므로 나라가 아무리 기름지고 성읍이 아무리 높고 견고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쇠퇴하며 멸망으로 접어들고 것입니다(28:1b).

(3)  둘째, 2절입니다; “2.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28:2); 역사적으로는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왕하17:4-6).

1)      하지만 이사야는 달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하고 힘이 있는 자신의 군대를 보내어서 질풍노도와 같이 에브라임 왕조의 뒤를 잇고 있는 잇사갈 왕조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끝장을 내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28:2의역). 세상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의 의미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이는 현상 이면에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2)      좋은 예가 이사야의 예언서에 실려 있습니다. 주전 701년경 남조 유대왕국을 거의 차지하고 왕도인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산헤립의 군대가 하나님의 천사에 의하여 하룻밤에 몰살을 당하게 사건입니다(37:33-36). 꺼져가는 심지의 불을 되살리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허락이 있을 때에 비로소 왕국이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셋째, 3절입니다; “3. 에브라임의 취한 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이라”(28:3); 에브라임 왕조의 창건자 여로보암1세가 술에 취하듯이 권력욕에 취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조의 이스라엘제국의 절반 이상을 떼어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유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솔로몬대왕이 통치 후반기에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 섬기기를 즐겨 했기 때문에 제국이 쪼개어진 것입니다.

1)      그렇다면, 여로보암1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여호와로 알고 섬기라고 것입니다(32:1-10, 왕상12:28-29). 때문에 에브라임 왕가가 바아사 장군에 의하여 끝장이 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아사의 잇사갈 왕가도 여로보암1세의 금송아지 숭배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2)      따라서 왕조가 망할 뿐만 아니라 교만한 제사장나라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도 정복자의 식민정책과 혼혈정책에 의하여 선민의 족보가 완전히 지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17:6, 24). 그와 같은 천벌에 대하여 이사야는 3. 에브라임의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28:3) 노래하고 있습니다.

(5)  넷째, 4절입니다; “4.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28:4); 산과 골짜기가 있는 지형이라면 물이 산마루가 아니라 골짜기에 흐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농사는 관개가 가능한 골짜기 평지에서 이루어집니다. 골짜기가 넓으면 넓을수록 기름진 땅이 많아지고 농산물이 풍부하여 꼭대기에 높은 성이 건설됩니다. 그것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왕국의 영화입니다(28:4a).

1)      그런데 그렇게 기름진 나라의 땅을 여러 족속이 서로 차지하고자 합니다. 박토(薄土, 척박한 ) 광야에 살고 있는 이웃민족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하고 있는 민족은 무엇보다 국방을 튼튼히 해야만 합니다. 물론 가장 좋은 국방정책은 여호와신앙을 되살리고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돌보실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 국론이 통일되고 백성들의 애국심이 고양되어 자연히 군대의 사기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2)      그렇지만 에브라임 왕조의 북조 이스라엘왕국은 그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정치적인 국민통합을 이루고자 금송아지 우상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있습니다. 결과 이웃 강대국이 얼른 침입하여 좋은 땅을 빼앗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꽃이 떨어지고 무화과가 익자 제일 먼저 이웃이 약탈해가는 것과 같습니다(28:4b).

(6)  다섯째, 5절입니다; “5. 그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에게 영화로운 면류관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 되실 것이라”(28:5); 지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북조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 훗날 발생할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에브라임 왕조나 잇사갈 왕조의 나라가 아닙니다.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가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7)  여섯째, 6절입니다; 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28:6); 메시아의 나라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땅에서 남은 인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렇게 헌신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2가지의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하나는, 성령님을 보내 주시어 내주 역사하게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넘치게 됩니다. 지혜로 옛날 솔로몬대왕처럼 세상을 치리하게 것입니다(28:6a). 하나는,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결과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28:6b, 8:1-2).

(8)  일곱째, 7절입니다;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 말미암아 걸음 치며 독주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 잘못 풀며 재판 때에 실수하나니”(28:7); 그렇게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메시아를 영접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장래에도 그러하지 못하는 자가 훨씬 많을 것임을 이사야가 내다보고 있습니다.

1)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포도주에 취하듯이 권력욕심에 취하고 있습니다. 독주를 마시듯이 경제적인 이익을 많이 삼키고 있습니다. 결과 인생길이 똑바로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지고 하나님 섬기기에 실족하고 있습니다(28:7a). 일반백성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지도자들도 그러합니다(28:7b). 똑같이 권력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내고 있습니다. 결과 하나님 말씀을 잘못 풀이하고 왜곡하여 적용을 시키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제대로 살피지 아니하고 그저 멋대로 환상을 가지고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28:7c). 따라서 생명을 살리는 공의로운 말씀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28:7d). 집단 이기적인 종교활동을 옹호하는 재판이 있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당장 예언이 가리키고 있는 특정한 예는 700 후에 있게 메시아에 대한 재판이라고 하겠습니다(11:47-53, 19:15-16).

(9)  여덟째, 8절입니다;8. 모든 상에는 토한 ,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28:8); 세상에는 영원한 나라가 없습니다. 모두 망하며 세상임금들이 쫓겨나게 됩니다(12:31). 이유는 마치 에브라임 왕조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하나님을 찾아가는 백성들을 막기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여호와로 부르며 섬기라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집단적인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교만한 자들의 행태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성토하고 있습니다; “8. 모든 상에는 토한 ,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28:8);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훗날 예루살렘성 12대문의 이름이 되고 있습니다(21: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포괄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환언하면, 모든 나라와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며 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모든 의미를 이미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세상적인 방법을 버리고 믿음의 뿌리를 다시 튼튼히 세우게 되면 이방인들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새로운 이스라엘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들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에 의하여 온세상에 구원의 은혜가 충만해질 것입니다”(27:6 의역).

요컨대, 유대인들의 땅에서 메시아가 나타나며 그가 만민을 구원하는 하나님신앙의 뿌리를 다시 내릴 것이며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어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가 세상에 나타난다는 예언입니다.

그와 같은 복음사역이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힘있게 일어나게 되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인간사회를 지배하던 사탄과 악한 영들은 모두 처벌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한 미래를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리워야단과 용을 징벌하고 죽이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결실이 세상에 충만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확장입니다. 이사야의 그와 같은 예언의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지상명령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상명령의 수행이 저와 여러분들이 남은 인생 가운데 힘써야만 하는 사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신앙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성찰할 있는 지식과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메시아가 유대 땅에 오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을 많이 비판하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렇지만 가운데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초대교회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 의하여 초대교회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믿다가 실족했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구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사야가 역시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상문화를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만민구원의 아버지로 그리고 창조주답게 제대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신앙을 가지게 되면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이사야 예언의 깊은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이사야는 지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원이냐 멸망이냐를 구분하게 되는 기준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각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주를 인식하는 것과 말씀의 뜻을 깨닫고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사람들의 지성과 감각을 이끌어갈 때에 인생은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의 가치가 있는 인생이 것입니다.

훗날 그와 같은 모범을 메시아가 세상에 와서 보여주게 됩니다. 따라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은 지각이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스승님 처럼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그러한 제자가 지각이 있는 사람이며 구원을 받을 만한 인생을 살고 있는 성도라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타락한 세상에서 깨끗한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한 것이므로 하늘에서 내려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임금을 대신할 있는 영원한 왕께서 메시아로 하늘에서부터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대목을 이사야는 벌써 7장에서 동정녀 탄생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7:14).

그리고 메시아가 왕권을 가지고 영원히 세상을 통치할 것임을 9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9:6-7). 나아가서 메시아가 하나님 경외사상을 새로이 하며 공의의 정신으로 세상을 다스릴 것임을 11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11:3-5).

그러므로 성도들은 일찍 망하게 되는 에브라임 왕조의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왕과 백성들의 본을 받아서는 아니 됩니다. 자신의 왕권을 보전하고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그들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찾아가는 백성들의 순례행렬을 막고자 간교하게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고서 섬기라고 강요한 세상임금과 그들의 나라입니다.

요컨대,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오늘날에도 똑같이 면류관이 땅에 떨어지고 자신의 왕국과 함께 멸망을 당하고 것이라고 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자신과 교회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