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페니키아의 상인들처럼 세계의 부를 지배하던 자들의 종말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사23:1-18)
설교일; 주후 2026년 8월 23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7월 19일 토요일 작성)

주전 8세기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사야에게 있어서 페니키아의 두 성읍 두로와 시돈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두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주전 10세기 중엽에 그 성전을 지을 때에 두로 왕 히람이 어떻게 솔로몬대왕을 도와서 그 성전을 완공하게 하였는지 전승을 통하여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왕상5:8-18).
(2) 또 하나는, 부친 다윗의 이스라엘제국을 상속한 솔로몬대왕이 페니키아의 무역선을 적극 활용하여 지중해와 인도양의 연안국들과 장사함으로 말미암아 큰 수익을 올린 사실도 선조들로부터 들어서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왕상10:22).
특히 히브리경전에 밝은 유대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경전에서 재삼 발견하고 있으므로 해상왕국 페니키아의 중요성을 평소에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페니키아를 중동의 강대국들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건축술이 뛰어나며 해상무역을 통하여 큰 부를 얻고 있는 페니키아왕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중동 패권국의 대외정책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에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한 신흥 강대국 앗수르제국은 서진을 할 때에 우선적으로 페니키아왕국부터 장악하고자 침략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사야가 파악하고 있는 앗수르와 페니키아와의 국제관계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유대왕국 아하스 왕의 요청으로 대군을 이끌고 서진한 앗수르의 황제 불(Pul)은 주전 734년경 페니키아의 주요 성읍부터 침공합니다. 그러자 국제정세에 밝은 페니키아인들은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앗수르제국의 군사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곧바로 저자세 외교에 나섭니다. 앗수르 황제에게 많은 조공을 바치면서 화해를 청한 것입니다. 앗수르 황제 불은 당장 다메섹의 아람왕국과 사마리아의 이스라엘왕국을 정벌하여야 하므로 그 정도로 페니키아침공을 멈추고 맙니다.
(2) 둘째,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사르곤2세가 북조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나자 사정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는 남쪽의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정벌하는 것보다는 두로와 시돈의 페니키아를 치는 것이 더욱 수월하겠다고 판단합니다. 그에 따라 페니키아를 아예 정복하고 자신의 총독을 보내어 다스리게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영적인 안목으로 두로와 시돈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그 이후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읽을 때에 그 의미가 더욱 생생할 것입니다;
(1) 첫째, 앗수르제국의 시대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전 612년에 메대와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티크리스 강 상류에 있는 앗수르의 수도가 멸망을 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페니키아 사람들이 독립전쟁을 시작합니다. 주전 609년에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요새지 갈그미스를 얻고자 북진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 느고가 페니키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왕하23:29). 그 결과 페니키아왕국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이 생산한 나일삼각주의 곡식을 두로의 상선에 싣고서 적극적인 지중해무역을 행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제국의 제2대 황제가 된 느부갓네살은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물리치면서 서진을 계속합니다(왕하24:1). 애굽군이 패전하여 본국으로 쫓겨가자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는 가나안 주변의 왕국들을 모조리 정복하고자 합니다. 그는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지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왕하25:1-12). 그 옛날 앗수르제국이 성공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성취하게 되자 그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듬해에 군대를 나누어 모압왕국을 치는 동시에 페니키아의 무역기지 두로를 공격합니다.
(3) 셋째, 모압은 4년후에 정복하지만 두로의 저항은 거세기 그지 없습니다. 지중해의 해상무역을 신바벨론제국에 넘기지 않겠다고 하는 두로의 권력자들의 각오가 대단합니다. 더구나 두로는 육지에서 800미터나 떨어진 바위섬 위에 건설되어 있는 무역항입니다. 그 바다를 건너가서 정복하는 것이 지난합니다. 그래서 무려 13년간 전투를 벌인 후에 비로소 두로를 손에 넣게 됩니다.
(4) 넷째, 신바벨론제국 역시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전 539년에 아리안족인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의 기습으로 수도 바벨론이 함락되고 말기 때문입니다(단5:30-31). 북부 아라비아에 주둔하고 있던 나보니더스 황제가 강력하게 저항하지만 무위로 끝나고 결국에는 메대의 다리오 왕과 그 사위인 바사의 고레스 왕 사이에 권력다툼이 발생합니다. 젊은 고레스가 승자가 되어 페르시아제국을 창건합니다. 그들은 출신성분으로 볼 때, 동서양 유목민들이 카스피해 부근에서 혼혈이 되어 발생한 아리안 족속이기에 그 세계관이 넓고 포용적이며 개방적입니다. 그러므로 해상왕국 페니키아에 대하여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해상무역을 계속하도록 조치합니다. 그 시절에 두로의 무역항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5) 다섯째, 그러나 주전 332년경 그리스의 대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 동진하여 페르시아제국의 시대를 끝내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중해의 반도출신인 헬라인들은 무역에 밝습니다. 페니키아의 해상무역에 의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지중해무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주전 332년에 두로 섬을 공략하여 정벌함으로써 페니키아왕국을 아예 끝장내고 있습니다(사23:1-9). 결국 그리스인들의 무역이 활성화되고 그들의 상선이 지중해를 주름잡게 됩니다. 그렇지만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연안에 개척해 놓은 여러 식민지들이 해상무역에 참여하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라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유럽의 서단에 있는 항구도시 다시스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6) 여섯째, 유럽의 문명권을 하나로 통일한 로마제국의 시대가 밝아오자 로마인들이 해상무역을 완전히 석권하고 맙니다. 페니키아왕국이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고 그 뒤를 이어 번성하던 그들의 식민지의 해상무역도 쇠퇴하고 맙니다. 로마의 위세에 눌려서 애굽도 그들의 식민지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선지자 이사야가 여전히 두로와 시돈이 해상무역으로 일군 엄청난 부를 가지고 세상을 지배한 그 사례를 원용하여 자신의 예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 훗날 국제무역을 통하여 큰 이익을 향유하는 자들이 발생하고 그들이 그 부를 이용하여 이 세상을 지배하고자 획책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주후 20세기와 21세기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의 두로와 시돈에 대한 예언은 여전히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페니키아왕국의 무역항이 있는 섬) 두로에 관한 (멸망을 미리 알리는) 경고라. (페니키아왕국이 개척한 지중해 끝 스페인의 항구인) 다시스의 (무역선박인)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모국 페니키아왕국의 패망을 애곡하라는 것임).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페니키아왕국의 부를 창출하던 두로 섬이 파괴가 되어)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무역선을 바다에 출항할 수가 없다는 것임), 이 소식이 (페니키아에 인접하고 있는 가장 큰 섬인) 깃딤(창10:4, 유럽인종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야벳의 후손들이 살던 섬이며 훗날 구브로 섬으로 불리고 있음, 행4:36, 13:4. 오늘날의 키프러스 섬을 말함) 땅에서부터 (페니키아왕국의 멸망소식이 그들이 개척한 식민지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 2.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페니키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어업기지임. 왕상16:31, 우상 바알을 섬기며 어렵게 어로작업을 영위하던 시돈의 주민들은 지중해무역을 염두에 두고서 남하하여 천혜의 요새지인 두로 섬을 항구로 개척하고 무역업에 종사한 것임)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지중해의 여러) 해변 주민들아 (이제는 페니키아가 망했으므로) 잠잠하라. 3. 시홀(애굽)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페니키아의 무역선이) 큰 물(대양인 지중해의 연안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지중해 연안에 형성)되었도다. 4. (두로 항을 개척한)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두로 섬)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두로 섬과 같은 좋은 무역항을 따로 개척하거나 개발하지도 못하고 그만 해상왕국 페니키아왕국의 운명이 다하고 말았다는 것임) . 5.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애굽은 곡물수출을 대행하던 페니키아왕국이 사라져서 큰 손실을 입게 된 것임). 6. 너희(페니키아의 유민들인 무역상들을 말함)는 다시스(지중해 끝 스페인의 항구로서 페니키아의 식민지였음, 욘1:3)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주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7. 이것(다시스)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흥청망청하던 천혜의 무역항 두로를 말함)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식민지 항구이며 페니키아인들이 일부 살고 있던) 성읍(다시스)이냐? 8.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해상무역을 통하여 얻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주변국의 정치를 주무르고 있던 페니키아의 실력자들을 말함)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해상왕국 페니키아의 무역항)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패망의) 일을 정하였느냐? 9.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페니키아가 개척한 먼 항구)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모국 페니키아처럼 번성하라).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자유무역항으로 독립하라는 것임. 그것은 페니키아의 멸망을 반영하고 있는 구절임). 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그의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열방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단4:34-37, 5:25-31),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령을 내려 그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게 하시고(주전 580년대에 다윗왕조 유대왕국과 그 주변의 왕국들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것임), 12. 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주전 585년부터 13년간 저항하던 두로 섬이 멸망을 당할 것이며)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깃딤 섬으로 피난할지라도 그곳 역시 신바벨론에 의하여 정복될 것임을 말함)”(사23:1-12);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페니키아왕국의 무역항이 있는 섬) 두로에 관한 (멸망을 미리 알리는) 경고라. (페니키아왕국이 개척한 지중해 끝 스페인의 항구인) 다시스의 (무역선박인)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모국 페니키아왕국의 패망을 애곡하라는 것임).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페니키아왕국의 부를 창출하던 두로 섬이 파괴가 되어)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무역선을 바다에 출항할 수가 없다는 것임), 이 소식이 (페니키아에 인접하고 있는 가장 큰 섬인) 깃딤(창10:4, 유럽인종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야벳의 후손들이 살던 섬이며 훗날 구브로 섬으로 불리고 있음, 행4:36, 13:4. 오늘날의 키프러스 섬을 말함) 땅에서부터 (페니키아왕국의 멸망소식이 그들이 개척한 식민지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 2.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페니키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어업기지임. 왕상16:31, 우상 바알을 섬기며 어렵게 어로작업을 영위하던 시돈의 주민들은 지중해무역을 염두에 두고서 남하하여 두로 섬을 항구로 개척하고 무역업에 종사한 것임)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지중해의 여러) 해변 주민들아 (이제는 페니키아가 망했으므로) 잠잠하라. 3. 시홀(애굽)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페니키아의 무역선이) 큰 물(대양인 지중해의 연안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지중해 연안에 형성)되었도다. 4. (두로 항을 개척한)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두로 섬)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두로 섬과 같은 좋은 무역항을 따로 개척하거나 개발하지도 못하고 그만 해상왕국 페니키아왕국의 운명이 다하고 말았다는 것임) . 5.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애굽은 곡물수출을 대행하던 페니키아왕국이 사라져서 큰 손실을 입게 된 것임). 6. 너희(페니키아의 유민들인 무역상들을 말함)는 다시스(지중해 끝 스페인의 항구로서 페니키아의 식민지였음, 욘1:3)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주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사23:1-6);

1)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지중해 해상무역을 지배하고 있는 페니키아의 영광과 두로와 시돈의 멸망에 대하여 강력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사23:1-6). 창세기를 참조하면, 구 인류는 노아 시대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신 전면심판 곧 홍수심판으로 말미암아 편편한 땅과 함께 그 흔적이 사라지고 맙니다. 홍수심판이 끝나고 노아의 3아들이 현대인류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 각각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나누어 살게 되고 훗날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의 조상이 됩니다(창10:1-25). 그 가운데 여호와신앙을 대물림하고 있는 집안이 장자 셈의 가정입니다(창9:26).
2) 모세오경에서부터 시작된 히브리사상은 셈의 집안의 정통성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창10:21-25, 11:10-12:5, 출2:23-25, 19:1-6). 그들이 소위 선민들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제22장 ‘환상의 골짜기 예언’에서 선민들의 왕국이 완전히 망하고 나면 새로운 백성들의 사회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새로운 사회의 리더를 ‘힐기야의 아들 하나님의 종 엘리아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사22:20-21). 그들이 누구이기에 세상임금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창조주 하나님께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요?
3) 선민사회 뿐만 아니라 이방인사회에서도 그들이 장차 활약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사22:22-25).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짧은 안목에서 바라보자면 그 상징은 성군 요시야 왕 때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여 종교개혁의 발판을 제공한 대제사장 힐기야(왕하22:4-8) 그리고 제사장나라가 망한 후에도 유다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두고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 예레미야를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렘1:1-3). 또 하나는, 긴 안목으로 볼 때에는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이 땅에 이루어지는 복음의 시대를 이미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렇다면 이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해양국가와 대륙의 국가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의 미래에 대하여 이사야는 제23장에서부터 총체적으로 예언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에서 이사야는 지중해 무역의 주역인 페니키아인들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연안국가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을 따라가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5) 첫째, 제1절입니다; “1.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사23:1); 이사야가 두로의 멸망에 관하여 경고형식의 강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사23:1a). 두로는 해변 길로 이스라엘 바로 위에 있는 도시이며 지중해무역의 중심지입니다. 두로는 본래 그 위에 있는 시돈의 사람들이 개척한 무역항입니다. 시돈 사람들은 두로에 해상왕국을 세움으로써 페니키아의 영광을 지중해에 떨친 족속입니다. 시돈은 창세기에 따르면 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의 장자입니다(창10:6, 15). 따라서 흑인종이며 여호와신앙을 일찍 버린 민족입니다(삿10:6, 왕상16:31). 그들은 줄기차게 우상 바알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6) 아버지 집 가나안을 떠나서 북쪽 해변으로 올라온 시돈은 처음에 어업을 영위했습니다. 하지만 어로작업이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따라서 큰돈을 벌기 위하여 남쪽에 무역항을 개발했습니다. 해변에서 800미터 떨어진 바위 섬 두로에 철통같이 성을 쌓고 큰 배가 출입할 수 있도록 항만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지중해무역에 나섰습니다. 셈족이 살고 있는 선진국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물건을 백인종 야벳 족이 살고 있는 미개한 지중해 연안국에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함족이 살고 있는 애굽의 나일 강에서 생산된 곡물을 큰 배로 실어서 지중해 여러 나라에 팔았습니다. 엄청난 수익이 발생했습니다. 그리하여 두로와 시돈 곧 고대 페니키아의 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7) 그 정도에 만족했으면 좋았습니다. 하지만 두로의 상인들과 시돈의 뱃사람들에게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적인 방법이 크게 유혹했습니다. 아름다운 공예품과 예술품을 만들어서 비싼 값에 수출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여신 아스다롯을 새긴 공예품이 인기였습니다. 특히 농사의 신이며 주신인 바알과 미의 여신 아스다롯이 함께 조각되어 지중해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습니다. 예술품과 더불어 우상문화가 널리 전파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알 신과 여신과의 잦은 정사로 풍년과 다산이 찾아온다는 미신이 전파되자 성의 문란과 향락 사치문화가 지중해 연안국에 만연되기를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우상문화와 퇴폐문화의 전파의 주범이 바로 돈을 벌기 위하여 성(性)을 종교화하고 상품화했던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입니다;

8) 그들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철퇴를 내리실까요? 창세기 제2장과 제4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범적인 청지기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부일처제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자손에게 여호와신앙을 대대로 파수하도록 조치하고 계십니다(창2:20-25, 4:25-26). 그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의 멸망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훗날 갑작스러운 페니키아의 멸망소식에 가까운 섬 깃딤(창10:4, 예수님 당시에는 구브로, 오늘 날의 키프러스)에서부터 지중해 서쪽 끝 스페인의 항구도시 다시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놀라며 같은 운명을 당하게 될 것임을 알고서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강력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사23:1b).
9) 둘째, 제2절입니다; “2.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주민들아 잠잠하라”(사23:2); 노아의 셋째 아들인 야벳이 유럽 백인종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창10:2-5). 그리고 야벳의 4남인 야완(오늘날의 ‘에게’)이 지중해 연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페니키아 인들에 의하여 지중해무역이 활성화되자 그 덕분에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두로와 시돈의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무역에 나서서 큰 이익을 얻으면서 연안국에도 소득이 분배되고 있는 것입니다(사23:2a). 페니키아왕국이 완전히 망한 다음에는 에게의 그리스인들이, 그 다음에는 카르타고(오늘날의 ‘튀니지’) 인들이, 또 그 다음에는 이태리의 로마인들이 지중해무역의 주역이 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지중해연안의 백인들은 무역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처럼 우상을 섬기면서 향락문화에 빠지게 되면 그들도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사23:2b).
10) 셋째, 제3절입니다; “3.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사23:3); 애굽제국은 나일강유역 삼각주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애굽과 시나이 반도 사이에 시홀의 시내가 있는데(수13:3) 애굽은 강을 따라 그곳으로 일단 농산물을 운반합니다. 그리하면 가나안과 아라비아의 여러 족속들이 그 양식을 사갑니다. 그리고 두로의 선박이 와서 그 농산물을 사서 지중해 연안국에 팔고 있습니다(사23:3). 그러므로 애굽의 입장에서는 두로의 선단이 큰 규모의 농산물 수출의 창구라고 하겠습니다.
11) 넷째, 제4절입니다; “4.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사23:4); 어업을 영위했던 시돈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지중해무역의 이익에 눈을 떠서 남하하여 개발한 항구가 두로입니다. 당시에는 해적들이 약탈식 해상생활을 영위했던 시대입니다. 따라서 두로 항에 적재해 놓은 수출물량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 보다 안전합니다. 그것도 섬을 요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접안하기 어렵고 방어하기가 쉬운 바위섬이 좋습니다. 그와 같은 적지로서의 천혜적인 조건을 두로 항이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바다의 요새’는 바위섬에 개발한 두로 항을 가리키고 있는 말입니다(사23:4);

12) 그런데 왜 두로가 자식이 없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한탄에 대하여 시돈이 어째서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하는 것일까요? 간단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로 항은 단지 철옹성인 무역항에 불과합니다. 발치를 육지에 뻗고서 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선박을 정박하고 물량을 선적하며 상인들을 머물게 하는 기능만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돈은 다릅니다. 시돈 사람들이 인력을 관리하고 두로의 선박을 실무적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 될만한 물건을 탐색하여 사전에 매점매석(買占賣惜)합니다.
13) 더구나 우상이라고 하더라도 예술품으로 만들어 팔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시돈 사람들은 수출 공예품과 예술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로를 무역항으로 거느리고 있는 시돈 사람들이 지중해 연안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운 페니키아왕국이 지속적으로 식민지를 경영하여 큰 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로의 항구와 선박을 이용하여 실제로 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은 고향이 시돈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두로를 끼고서 이익을 빼먹은 시돈이 더 부끄러운 결말을 당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4) 다섯째, 제5절입니다; “5.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사23:5): 애굽제국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수륙양쪽에서 족쇄를 채워야만 합니다. 그에 따라 역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이 애굽의 수출창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페니키아왕국을 먼저 멸망시키게 됩니다. 먼저, 앗수르제국의 에살핫돈 황제가 나일강 유역의 하 이집트를 정복할 때에 페니키아를 크게 무찌르게 됩니다. 그후 신바벨론제국이 등장하여 유대왕국과 모압 그리고 페니키아를 멸망시킵니다. 그 다음 페르시아제국은 애굽제국과 페니키아왕국을 모두 점령하여 속주로 삼고 맙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페니키아의 운명은 유대왕국 및 애굽제국의 운명과 닮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15) 여섯째, 제6절입니다; “6.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주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사23:6); 해상왕국 페니키아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식민지와 무역 상대국이었던 지중해연안의 나라들은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중해의 서쪽 끝 스페인에 개척해 놓은 항구도시 다시스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그곳으로 피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망국의 설움이 그들과 함께하게 됩니다.
(2) “7. 이것(다시스)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흥청망청하던 천혜의 무역항 두로를 말함)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식민지 항구이며 페니키아인들이 일부 살고 있던) 성읍(다시스)이냐? 8.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해상무역을 통하여 얻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주변국의 정치를 주무르고 있던 페니키아의 실력자들을 말함)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해상왕국 페니키아의 무역항)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패망의) 일을 정하였느냐? 9.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페니키아가 개척한 먼 항구)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모국 페니키아처럼 번성하라).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자유무역항으로 독립하라는 것임. 그것은 페니키아의 멸망을 반영하고 있는 구절임). 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그의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열방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단4:34-37, 5:25-31),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령을 내려 그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게 하시고(주전 580년대에 다윗왕조 유대왕국과 그 주변의 왕국들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것임), 12. 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주전 585년부터 13년간 저항하던 두로 섬이 멸망을 당할 것이며)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깃딤 섬으로 피난할지라도 그곳 역시 신바벨론에 의하여 정복될 것임을 말함)“(사23:7-12);

본문은 희락의 성을 건설하며 지중해의 지배자임을 자랑하던 두로와 시돈이 어째서 하나님의 섭리로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가?(사23:7-12)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바로 구절풀이에 들어갑니다;
1) 첫째, 제7절입니다. “7. 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사23:7); 지중해연안에서 오랜 세월 고기잡이를 하던 시돈 사람들이 소득이 낮은 어업을 접고 상업으로 큰 소득을 얻고자 남쪽의 두로 바위 섬에 무역항을 건설함으로써 페니키아(헬라어로 ‘베니게’, 행11:19) 왕국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시돈 사람들은 대대로 지중해 연안어업에 종사했기에 해안선(海岸線)의 물길을 잘 알았고 배를 만드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물건을 어디에서 구입하여 지중해 연안의 어느 도시에 팔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지도 훤히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지중해에 들끓고 있는 해적선을 격파하면서 안전하게 해상무역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력으로 무역선(貿易船)을 보호할 수 있는 군대를 거느리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의 리더는 시돈 사람들입니다;

2) 하지만 부하들은 여러 나라에서 모집한 용병들입니다. 그러므로 하극상에 의한 선상반란이 더러 발생했습니다. 이를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으로서 일벌백계의 참혹한 형벌을 고안했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돛대 높이 반란의 수괴를 매어 달고서 굶겨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처형방법은 훗날 페니키아왕국이 망한 후에도 십자가처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 처형의 방식은 한때 페니키아가 튀니지에 식민지로 개척했던 카르타고의 전성시대를 거쳐서 로마제국에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워낙 처참한 사형 방법이므로 로마시민에 대해서는 그 적용을 배제했습니다. 다만 제한적으로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수괴나 노예반란을 도모한 괴수만을 십자가에서 처형했을 뿐입니다. 그 가운데 훗날 그리스도 예수가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요19:12-16). 따라서 페니키아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훗날 그리 보기 좋은 모습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3) 어쨌든 페니키아 사람들이 ‘무사단’(武士團)을 이끌게 되자 그 무력으로 지중해연안에 여러 식민지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멀리 지중해의 서쪽 끝에 ‘다시스’라고 하는 항구도시까지 건설했습니다. 애굽제국의 서쪽 끝에는 ‘카르타고’하고 하는 식민지까지 거느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페니키아왕국은 식민지의 항구도시에 두로 항에 있는 유흥 향락문화와 우상문화를 그대로 이식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역선을 타고서 고향을 멀리 떠나온 선원들의 객고를 풀어줄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것이 나중에는 현지인들까지 합세하여 모두가 환락을 즐기게 되는 장소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4) 그것이 소위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희락의 성’(환락의 도시, city of joy, KJV, 음주문화의 도시, city of revelry, NIV)의 향락성 퇴폐 문화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에 우상문화와 쾌락주의 퇴폐문화를 널리 보급시킨 주범 페니키아왕국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돈만 벌 수 있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지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그들 상단의 나라를 없애 버리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것이 어느 때에 시행되는지 이사야가 ‘환상의 골짜기’에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경고의 말씀을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사23:1).
5) 둘째, 제8절입니다; “8.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사23:8); 상인들과 무역상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차지하는 일이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왕국의 건설은 돈이 아니라 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설혹 상인들이 왕국건설을 위하여 뒷돈을 대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나라의 상권을 떼어주는 것으로 마감이 됩니다. 그들 상인들에게 국가권력까지 배분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6) 역사적으로, 고대사회에서는 상인계급의 신분상승을 막기 위해서 왕과 귀족들이 엄격한 계급사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동양의 통치철학인 유교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위로부터 관료가 될 수 있는 양반계급인 선비, 농사를 짓는 농민, 물건을 만들어 관에 납품하는 장인, 물건을 유통하는 상인 등의 엄격한 계급이 존재하고 있음)이라는 관념을 철저하게 백성들에게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봉건국가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사무라이에 의한 ‘무신정권’(武臣政權)을 유지하면서 상인(일본에서는 ‘죠닝’, 町人)들을 천대했습니다.
7) 일본의 독특한 통치제도인 ‘상낀교오따이세이’(參勤交代制,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 大名,가 자신의 영지와 수도인 에도에 번갈아 가면서 살게 되는 제도) 때문에 상인들이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그러나 돈으로 신분상승이 불가능해지자 처음에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게이샤’ 문화에 빠져들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취급품목과 제조기술에 있어서 최고의 칭호 ‘명인’(名人)이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됩니다. 그 결과 자본주의의 기틀이 일본의 봉건사회에서 일찍 형성되고 명인의 기술이 대물림을 하게 됩니다.
8) 그런데 페니키아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도 용병을 거느리고 지중해 연안의 작은 나라들을 정벌합니다. 그리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자국민으로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합니다(사23:8a). 그 결과 두로의 무역상들과 선주들 그리고 시돈의 상인들은 전체 페니키아왕국의 고관과 귀족들이 되고 있습니다(사23:8b). 그렇게 돈으로 세워진 페니키아왕국의 영화가 지중해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중해무역의 이익을 노리고 있는 강대국들이 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로가 눈에 훤히 보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시기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앞당겨지게 된다고 하겠습니다(사23:8c);

9) 셋째, 제9절입니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23:9); 돈을 자신의 능력보다 많이 벌게 된 자는 교만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특히 사람의 이기적인 탐욕을 인정하고 그 욕구를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으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 결과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번 자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신보다 똑똑하지만 세상적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한 자에 대해서는 자본가들이 멸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 한둘이 아님)합니다. 그러한 풍토를 소위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 pariah capitalism)라고 합니다;

10) 오늘날 급속하게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 가운데 그와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행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건전한 자본주의 윤리와 의식 그리고 기독교문화가 함께 발전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 옛날 페니키아가 주도하고 있는 지중해연안의 문화권에서도 그러합니다. 황금만능주의와 세속주의가 고대사회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보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십니다(사23:9a).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그와 같은 거룩하지 못하고 천박한 문화를 일제히 청소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사23:9b).
11) 넷째, 제10절입니다; “10.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사23:10); 나일강은 주기적으로 삼각주에 범람합니다. 그러면 상류와 중류의 흙이 양분과 함께 하류에 다시 퇴적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삼각주의 평야는 다시 비옥하게 됩니다. 비록 나일강의 범람으로 그 해의 농사는 큰 손해를 보지만 그 다음 해부터는 엄청난 풍년이 찾아오게 됩니다. 동일한 현상이 스페인에 있는 페니키아의 식민도시 다시스에 임하게 됩니다.
12) 페니키아왕국 곧 본국의 패망의 소식이 먼 곳 다시스에 있는 식민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이 처음에는 통곡합니다(사23:10a).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밀려오는 본국의 피난민들과 더불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어차피 무역으로 황금의 나라를 이룩한 그들입니다. 다시스에서부터 새로운 독자적인 해상왕국을 출범시키고자 합니다(사23:10b). 그와 같은 맥락에서 먼 훗날 해상왕국 스페인제국 시대의 도래를 미리 엿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스 만이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카르타고 역시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카르타고는 로마인들에 의하여 패망하여 버리고 맙니다.
13) 다섯째, 제11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그의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령을 내려 그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게 하시고”(사23:11); 그러나 페니키아의 잘못된 해상문화를 그대로 상속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역시 똑같은 역사섭리를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고 퇴폐 향락문화를 보급하는 해상왕국과 그들의 무역업은 오래 영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시돈의 우상문화에 물든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일찍이 주전 722년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시돈의 영향을 그대로 물려받은 두로의 페니키아왕국도 멸망하도록 하십니다(사23:11b). 나아가서 그들의 식민지 가운데 똑같은 꿈을 꾸고 실천하는 왕국들은 모두 패망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사23:11a). 그 예언이 역사적으로, 훗날 한니발 장군의 카르타고 대군이 어이없게도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패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4) 여섯째, 제12절입니다; “12. 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사23:12); 페니키아의 중심인 두로 항은 철저하게 적에게 섬멸되고 맙니다. 두로 사람들의 고향인 시돈의 사람들은 2가지의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하나는, 제국의 군대의 침입을 막다가 죽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멀리 배를 타고서 피난 가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많은 시돈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일단 깃딤(후에는 구브로로 불림) 섬으로 건너갑니다. 그곳까지 추적해오는 적을 피하여 아예 지중해 끝으로 가서 다시스에서 다시 새출발을 하고 있습니다(사23:12a). 그와 같은 미래를 조망하면서 이사야가 한마디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페니키아 왕국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한다면 용서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황금만능주의와 퇴폐 향락문화를 모두 청산하고 부디 창조주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민족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사23:12b 의역).
둘째로, “13. (구 바벨론 사람들이 살던 메소포타미아 지역) 갈대아 사람의 땅(창11:30)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티크리스 강 상류에서 발흥하여 앗수르제국을 건설한) 앗수르 사람이 그 곳을 들짐승이 사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하게 하였느니라. 14.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제국의 흥망성쇠와 같이)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모국인 찬란한 해상왕국 페니키아도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임). 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옛적에 사라져 버린 해상왕국 페니키아의 부와 그 영광이 되살아나서 세계의 패권국들을 다시 주무르는 시대가 열릴 것임을 시사하고 있음). 16.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세상권력을 장악한 바벨론이 이제는 세상의 부를 석권하고 있는 페니키아와 더불어, 계17:4-5)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17.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역사의 종말에 페니키아인들의 교만과 세상영광이 되살아나서 열방과 만민을 유혹할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경고하고 있는 것임), 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세계무역을 지배하여 얻은 그들의 부가 자신들의 것이며 그것으로 세상을 경영하는 줄 착각하고 있지만),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사실은 이 세상을 복음으로 새롭게 하려는 주님의 일꾼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임, 마28:18-20, 눅10:7-12, 엡1:19-23)”(사23:13-18);

(1) 첫째, 본문 제13-14절에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가운데 대륙국가의 역사와 해양국가의 역사를 어떻게 연계시키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먼저 살펴봅니다;
1) 고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역사 가운데 히브리인들의 관심은 중근동과 지중해입니다. 중근동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그리고 그 사이에 시리아, 가나안, 아라비아 등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중해의 연안에는 페니키아와 깃딤 섬 그리고 다시스에 이르는 여러 해양 족속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제23장에서 두로와 시돈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지중해무역에 나서서 해양대국 페니키아왕국의 영광을 떨치고 있지만 그것이 우상문화와 퇴폐 향락산업을 수출한 결과라는 것입니다(사23:7,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와 갈대아 등 대륙의 강대국들을 불러서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경고입니다(사23:13-14). 여기서 애굽이 제외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나일 삼각주의 농산물을 수출하는데 있어서 두로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어 무척 우호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사23:3).
2) 이제 본문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몇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①하나, 갈대아, 앗수르, 또 갈대아로 교체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들이 왜 페니키아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일까요?(사23:13-14) ②둘, 흔히 갈대아 왕조인 신바벨론제국이 앗수르제국을 패망시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사야는 어째서 앗수르가 갈대아 사람의 땅을 초토화시켜버렸다고 말하고 있을까요?(사23:13) ③셋,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니므롯의 세력기반이 ‘시날 땅’(창10:10)인데 그곳을 데라와 아브라함 시대에는 왜 ‘갈대아인의 우르’(창11:31)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비록 2구절에 불과한 짧은 본문이지만 차례로 상세하게 음미하면서 그 깊은 내용을 항목을 바꾸어서 자세하게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둘째, 제13절입니다; “13.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그곳을 들짐승이 사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하게 하였느니라”(사23:13); 갈대아 사람과 앗수르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언제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알아야만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역사적인 측면을 따져보면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고대문명을 가장 먼저 꽃피운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역사적으로 지배한 강대국을 구약인 히브리정경의 내용에 따라서 순서대로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니므롯의 제국(창10:8-12), ②갈대아인들의 나라(창11:31), ③앗수르제국(사23:13), ④갈대아왕조의 신바벨론 제국(사47:1), ⑤바사 왕조의 페르시아제국(사44:28-45:6) 등입니다.
2) 창세기 제10장을 보면 바벨문명은 ‘시날 땅’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창10:10). 그곳에서부터 인류최초의 대 영웅 니므롯이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10:8-12). 그런데 고고학자들의 연구를 참조하면 시날 땅은 그 중심이 ‘우르’(UR,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최초의 문명을 꽃피운 자들은 ‘수메르 인’들입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하여 학자들 사이에 통일된 결론이 없습니다. 과연 그들이 누구일까요?
3) 노아 홍수 전후의 사정을 감안해서 나름대로 분석해본다면 ①하나, 홍수 후에 그곳에 셈족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 후에 함족을 이끌고 니므롯이 그곳을 정복하여 제국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창11:2-4). ②둘, 노아의 홍수 전에 그곳 동방 땅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의 정체는 ‘놋’ 땅의 사람과 ‘카인의 후예들’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창4:14, 16-19).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게 된 카인의 후손들이 그 놋 땅에서 성을 쌓고 분업화된 문명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창4:17, 20-22).
4) 후에 셈족의 한 갈래인 아르박삿의 후손 가운데 데라와 아브라함 그리고 롯이라는 삼대의 가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르’가 자신들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시날 땅 우르의 지명 앞에 다른 민족의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즉 ‘갈대아인의 우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창11:31). 도대체 갈대아인들이 누구이기에 데라와 아브라함의 시대 곧 주전 21-22세기에 우르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항목을 바꾸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셋째, 갈대아인들은 시리아 사람들 가운데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남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벨을 중심으로 한 비옥한 우르 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전 24세기에 그 땅의 지배세력인 니므롯의 제국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창11:4-9). 통치권력의 빈틈을 노려서 갈대아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여 아예 초생달 지역 ‘우르’의 지배세력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시날 땅 전체를 ‘갈대아인의 우르’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소유권과 지배권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창11:31).
1) 하지만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바벨로니아와 앗수르가 차례로 제국을 이루면서 갈대아인의 우르 지역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본문에서는 주전 7-9세기의 앗수르의 팽창을 다루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티크리스 강 상류에 자리잡고 있던 앗수르가 주전 9세기에 남하를 시도하여 비옥한 갈대아인의 우르를 차지합니다. 그러자 카스피 해의 유목민들이 빈 땅 티크리스 강 상류를 차지하기 위하여 침입합니다. 두 민족 사이에 혈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3) 주전 8세기 전반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는 팽창의 기회를 누립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가 동쪽 땅을 많이 차지합니다. 유다의 웃시야 왕은 남쪽 땅을 많이 차지합니다.
4) 그러나 앗수르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확립하자 상황은 달라집니다. 주전 8세기 후반기에 앗수르제국이 다메섹의 아람왕국과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합니다(왕하16:9, 17:6). 남조 유대왕국마저 집어삼키려고 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물러갑니다(왕하19:35-37).
5) 하지만 주전 7세기에 다시 서토(西土)정벌에 나섭니다. 성공적입니다. 페니키아와 이집트를 정복하게 됩니다. 그때의 슬픔을 선지자 이사야가 미리 내다보고서 본문 제14절의 조사(弔辭)를 행하고 있습니다;

(4) 넷째, 앗수르제국은 갈대아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던 비옥한 우르 지역을 차지하고서 2가지 정책을 실시합니다; 하나는, 갈대아 사람을 변방으로 쫓아내는 것입니다(사23:13a). 또 하나는, 그들의 궁전은 물론 주거지를 황폐화시키고 감시하는 망대를 운영하는 것입니다(사23:13b). 하지만 앗수르 제국은 동으로 엘람, 서로는 애굽까지 모두 차지했던 빛나는 아슈르바니팔 황제(주전668-626)의 통치후반에 갑자기 내분을 겪으면서 급격하게 쇠퇴하게 됩니다.
1) 그 틈에 고토(故土)에서 쫓겨난 갈대아인들이 다시 독립하여 이른 바 ‘갈대아 왕조’을 이루고 메대와 더불어 앗수르를 공격합니다. 어이없게도 앗수르는 수도 니느웨를 주전 612년에 적들에게 빼앗기고 패망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주전 609년경 ‘갈대아 왕조’에서 신바벨론제국이 탄생하여 전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주전 539년 바사왕국의 고레스 왕에게 패하기 전까지 70년 동안은 분명히 그러합니다(렘25:11-12).
(5) 다섯째, 제14절입니다; “14.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사23:14); 이사야는 단지 앗수르제국의 침입으로 페니키아왕국이 패망하고 있는 것만 애도(哀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양부국(海洋富國)을 이루고 있는 페니키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패권국이 성립될 때마다 점령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동의 강대국들이 왜 끊임없이 번갈아 가면서 페니키아왕국을 점령하고자 시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애굽제국은 페니키아의 상단(商團)을 활용하여 지중해 연안의 여러 족속들에게 농산물을 팔아서 큰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사23:3). 그러므로 페니키아왕국을 먼저 정복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애굽제국을 고립시키는 길입니다.
2) 중동 땅에는 역사적으로 2마리의 호랑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입니다. 또 하나는, 애굽제국입니다. 그들 둘 사이에 가나안의 여러 나라와 페니키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들 약소국들은 애굽제국과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의 입장에서는 페니키아와 가나안의 왕국들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애굽의 손발을 끊어내는 대 전략이 되는 것입니다.
3) 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왕국을 정복하여 속국(屬國)으로 경영하게 되면 막대한 지중해무역의 이익을 중동의 패권국이 얻게 됩니다. 그 해상세력이 멀리 스페인의 다시스 항구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14.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의 견고한 성(바위 섬 두로의 요새지)이 파괴되었느니라”(사23:14).
(6) 여섯째, 제15-18절의 내용은 기억의 세대가 사라지는 기간 70년, 또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내는 70년의 세월을 반복하면서 인간의 역사는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지중해의 해상왕국(海上王國) 페니키아의 영광이 시작된 곳이 두로(Tyre)입니다. 그리고 두로가 패망함으로써 그 영광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두로에서 지중해 연안국가로 지속적으로 수출된 우상문화와 퇴폐 향락산업은 두로의 페니키아왕국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로가 사라지더라도 인간의 심성 가운데 여전히 우상을 선호하고 향락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가 계속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욕망을 근본적으로 끊어낼 수가 있을까요?
2) 그 해답을 차제에 제시라도 하려는 것처럼 이사야의 예언이 본문 가운데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대목은 마치 요한계시록의 끝부분을 미리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세상종말의 역사섭리와 관련되고 있기에 사람의 두뇌로 그 묵시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이사야가 이미 예언하고 있으므로 그 내용을 항목을 바꾸어서 구절을 따라가면서 한번 묵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7) 일곱째, 제15절입니다; “15. 그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年限, period)같이 70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70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같이 될 것이라”(사23:15); 두로는 비록 해상왕국 페니키아의 중심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근동의 두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면서 생존하고 있는 하나의 약소국(弱小國)입니다. 기본적으로 ‘줄타기외교’를 통하여 양 진영 사이에서 소위 ‘균형자’(均衡者, balancer) 역할을 잘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름대로 자율성을 가지며 번영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균형이 깨어지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생사의 기로에 처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조선말기의 한반도의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1)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강대국들이 애굽제국을 압박하는 경우에는 늘 그러한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고 있던 시기 곧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평정한 앗수르제국이 서진(西進, 서쪽으로 나아감)을 하면서 애굽제국을 압박하고 있던 시대가 그러합니다. 당시 두로의 페니키아왕국은 해상왕국으로 크게 번영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풍부한 농산물을 사서 지중해 연안에 수출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따라서 애굽과의 관계가 엄청 돈독하던 시대입니다. 그러한 두로의 한쪽으로 치우친 경제적 외교관계가 앗수르의 침입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페니키아왕국의 생존을 원하실까요? 아니면 패망을 원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해답을 이사야가 예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패망하여 70년 동안 완벽하게 잊혀버린 왕국이 되었다가 다시 좋은 시절을 맞이하여 옛날의 성세를 회복하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사23:15 의역). 이사야의 예언은 다음과 같은 2가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두로의 페니키아왕국에 대하여 분노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지중해무역으로 큰 부를 얻게 되자 그것으로 흥청망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향락과 사치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상문화 및 음란과 퇴폐문화를 온 세상에 만연시키고 있는 주범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시키고 말 것입니다.
3) 또 하나는, 세월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70년의 세월이 지나면 한사람의 기억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기억까지 모조리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편에서 모세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시90:9-13);

4)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①하나, 주님의 뜻에 맞지 아니하는 인생을 살거나 국가를 운영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게 되고 잊혀져 버리는 역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②둘, 70년에 불과한 짧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교훈도 70년 세월이 지나면 또 까맣게 잊고 마는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있는 옛날의 잘못을 반복하고 맙니다. ③셋, 이제는 그와 같은 슬픈 역사를 반복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허락해달라고 하는 모세의 간절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5) ④넷, 본문의 이 대목은 어느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 통치기간이 70년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복자는 망한 나라의 역사를 빨리 지워버리려고 한다는 사실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묘지를 빌려주는 경우에도 30년 임대에 한 차례 갱신을 허용하여 최대 60년으로 임대를 끝내도록 하고 있는 현행제도가 합리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토록 한 시대를 기억하는 세대의 연한이 7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한 평생을 살다가 사라지는 인간의 종말이 얼마나 허무하며 슬픈 것인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8) 여덟째, 제16절입니다; “16.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淫女, the great prostitute, NIV, 계17:1)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계18:22) 너를 다시 기억나게 하라 하였느니라”(사23:16); 우상을 좋아하고 음탕한 문화를 지녔던 페니키아왕국과 같은 나라를 멸망시켜버린다고 하여 그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억의 세대가 모두 사라지자 70년 후에 다시 그 왕국을 재건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두로의 음탕한 문화를 상징하고 있는 그 음녀가 다시 힘을 발휘하여 무역상대국들에게 음란문화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9) 아홉째, 제17절입니다; “17. 70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deal with, NIV, visit, KJV)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사23:17); 이 대목은 어째서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사탄을 다시 세상에 내놓아 마지막 심판을 대비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지혜를 엿보게 해주고 있습니다. 악한 영만 가두어 버리고 처벌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완전하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 힘있는 사람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하는 사람의 악한 심성을 모두 도려내는 대 수술이 필요합니다.
1) 요한의 계시록은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탄을 잠시 이 세상에 풀어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계20:7). 그 목적은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하고 음란한 심성을 모두 불러모아 조직화하여 하나님께 대항하는 마지막 전쟁을 벌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지상에 나온 모든 어두운 것들을 한꺼번에 섬멸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죄악과 허물을 악한 영과 함께 모두 도려내어 없애 버리는 대 수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그 마지막 전쟁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진두지휘하실 것입니다(계19:11-21). 그때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원하는 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죄사함의 용서와 함께 성령님의 임재로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참회하지 아니하고 저항하는 자는 사탄 및 악한 음녀와 함께 영원한 심판의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계17:1, 19:19-20, 20:7-10).
(10) 열째, 제18절입니다; “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사23:18); 이사야가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는 음녀의 모습을 가지고 두로의 앞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따르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음란한 나라 바벨론의 모습입니다(계17:5). 그렇다면 두로의 페니키아왕국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바벨론처럼 하나님의 종말심판을 받게 된다는 결론입니다;

1) 어떻게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그 뜻을 받드는 인생이며 국가의 경영일까요? 선지자 이사야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그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해상무역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여호와 앞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을 살리고 먹이고 입히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사23:18 의역). 그렇다면 여기서 몇 가지 질문사항이 발생합니다; ①하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늘 곳간을 열지 아니하시고 두로가 바치는 그 재물을 사용하여 성도를 살리고 사람들을 돌보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②둘, 누가 그 재분배의 일을 담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③셋, 다 바치고 나면 두로의 상인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라는 말일까요?
2) 항목별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여호와를 창조주로 대접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피조물로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마7:12, 막12:30-31). 이웃을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을 기꺼워하십니다. 그 피조물을 만드신 창조주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그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사람의 인생과 재물이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뜻이 훗날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4.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4) 둘,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그 뜻을 따라 사용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위와 같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재분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재분배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 사람의 재물과 시간이 모두 사용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왜 하나님의 관심과 개입과 능력이 함께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시고 하나님께서는 베푸는 자의 삶을 돌보십니다. 재능을 더하여 주시고 먹고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5) 그것이 소위 ‘플러스 섬’(Plus Sum)이라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더 많은 것을 맡기셔서 풍성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마25:21). 물론 그냥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다음에 영광을 주시고 먼저 바치고 헌신하는 과정을 보시고 필요한 것을 부어 주십니다(롬8:17-18, 11:33-36). 이웃을 살리고 말씀으로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을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하여 행하고 있는데 주인이 어떻게 청지기의 일을 모른 체 하겠습니까? 그것은 확실하게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사장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고 나면 모든 이방나라들이 그 뒤를 잇게 될 것입니다. 똑같이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신앙을 버렸기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씩 역사적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렘25:29).
이사야는 ‘환상의 골짜기’에서 세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유대왕국이 망하고 나면 새로운 영적인 지도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메시아가 오셔서 복음으로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는 성도들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의 제자들이 새로운 영적인 지도자들, 곧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선지자들이 되어서(벧전2:9) 메시아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페니키아는 특별한 왕국입니다. 무사계급이 왕국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상인계급이 지배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시돈 사람들이 무역항으로 개척한 두로에서 지중해무역을 통하여 페니키아왕국이 출범합니다.
그들은 원료생산지역과 시장을 찾아서 지중해연안을 탐사합니다. 그 결과 지중해 연안에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들 모두가 페니키아왕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페니키아왕국의 지배자가 된 두로의 선주와 시돈의 상인들은 식민지에 왕을 봉하고 그곳의 귀족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무역선을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호위 무사단까지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페니키아의 영광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에 우상문화와 퇴폐 향락문화를 전파한 페니키아를 멸망시키려고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중해무역의 큰 이권을 노리고 있던 제국이 페니키아를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천박한 자본주의를 고대사회에 꽃피웠던 두로와 시돈의 왕국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뜻을 새겨보자면,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청지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마냥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나라와 사람들에게 다시 전해주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라고 하겠습니다.
지중해의 해양대국 페니키아왕국이 앗수르제국의 침입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페니키아가 지니고 있는 막대한 부와 지중해무역의 이권이 강대국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륙국가의 패권을 움켜쥔 앗수르제국의 입장에서는 서쪽과 지중해 연안의 강대국인 애굽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 손발이 되고 있는 두로와 시돈을 정복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나라가 해상무역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마냥 호화사치를 하면서 환락을 누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대국의 좋은 먹이감이 되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페니키아를 집어삼킨 강대국들의 운명도 비극으로 끝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①앗수르제국은 자신들이 멸망시킨 갈대아 인들의 세력에 의하여 나중에 망하게 됩니다. ②그후 갈대아 왕조의 신바벨론제국이 천하 권세를 얻고서 페니키아까지 좌지우지하지만 결국에는 페르시아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맙니다. ③애굽과 인도까지 점령함으로써 큰 제국을 만든 페르시아 역시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무너지게 됩니다.
어쨌든 대륙의 패권국의 흥망에 따라서 지중해연안의 국가들이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륙의 패권국 가운데에서도 영원한 제국이 없습니다. 오로지 영원한 제국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나라’뿐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사야는 그 구원과 영생의 새로운 나라를 바라보면서 세상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한 예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나라의 종말에 대하여 이사야는 거듭 애도를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두로가 지중해무역으로 돈을 벌어 페니키아왕국의 영광을 떨치고 있다고 하지만 그 나라는 멀지 않아 중동의 강대국에 의하여 패망의 슬픔을 맛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페니키아는 배 만드는 기술, 항해술, 건축술, 계산의 방법, 다양한 물감의 개발, 기타 문물의 유통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다른 측면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한 마디로, 페니키아의 영광은 음탕한 문화를 온 세상에 보급시킨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패망할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두로가 패망하여 70년 동안 완전히 세상에서 그 영광이 잊혀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회복의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페니키아에서 참회와 반성의 역사를 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음녀 페니키아의 음탕한 문화는 다시 재발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부디 재물을 자신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 바쳐서 많은 생명을 살리고 풍성한 성도의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사23:18의역).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따르면, 그것이 자신의 재물로 호의 호식하면서 음탕한 삶을 살아가는 음녀의 문화를 청산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하면 결국 음녀에 대한 종말심판을 함께 당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새삼 경청하게 되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