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애굽제국의 미래, 전능하신 여호와의 손이 애굽의 제국 그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애굽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불러내실 것이다”(사19:1-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7. 14. 04:39

제목;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애굽제국의 미래, 전능하신 여호와의 손이 애굽의 제국 그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애굽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불러내실 것이다”(19:1-25)

설교일; 주후 20268 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7 14일 월요일 작성)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 제1절에서 1. 애굽에 관한 경고라”(19:1a)고 말하면서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고라고 하는 것은 다가오는 미래에 피해를 입지 아니하도록 하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에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가 생전에 조국을 떠나서 그 서남쪽에 있는 거대한 애굽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십중팔구 인종이 다른 함족이 살고 있는 애굽제국을 가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모세가 기록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남기고 있는 히브리경전인 모세오경을 잘 알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는 애굽제국의 역사에 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창세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류문명의 시작점은 아담의 탄생입니다(2:7). 주전 4,114년에 탄생한 아담이 에덴동산에 살면서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청지기 교육을 착실하게 받게 됩니다(2:8-9, 1:26-27). 참고로 그 년도의 계산방법은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열왕기상 제6장 제1절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 에덴동산에서는 인류의 고대문명을 발생하게 되는 4개의 강이 발원하고 있습니다(2:10-14).

(2)  둘째,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 이스라엘 족속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조상은 두개의 문명권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동쪽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입니다. 그것이 고대문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찬란한 것이며 보통 주전 3천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서쪽에 있는 애굽의 나일강 문명인데 주전 25백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인들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은 본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 갈대아인이 우르에서 조상대대로 살다가 부친인 족장 데라를 따라 서쪽 변방으로 여호와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선지자로 나선 인물입니다(11:31). 그런데 부친 데라가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하란에 머물면서 더 이상 전진하려고 하지 아니하기에 그를 대신하여 아브라함 부부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남진하게 됩니다(12:1-5). 그때가 창세기에서 알 수 있는 연대를 가지고 계산해보면 주전 2,091년입니다.

(3)  셋째, 현대인류의 고대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가장 먼저이며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대하여 창세기 제10장과 제11장에서는 인류최초의 정복자이며 영웅인 함족속 니므롯이 세운 바벨제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0:8-12, 11:1-4). 그러나 니므롯의 제국은 지배족속이 함족이며 피지배족속은 메소포타미아의 원주민인 셈족입니다. 그들은 모두 홍수 후에 번성한 노아의 후손들이기에 언어가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적은 수의 이주민 함족이 다수의 셈족을 통치하고 있으며 시날 평지에 하늘에까지 닿고자 하는 바벨탑을 세우고 강력하게 제국의 권위를 높이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위세와 영광을 제국의 힘으로 떨치고자 하는 그러한 지배자들의 교만한 생각을 여호와께서 싫어하십니다. 그 결과 바벨탑이 무너지고 셈족이 함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때가 주전 2,457년입니다.

(4)  넷째, 셈족 출신이 함족의 땅에 이주하여 살게 되면 현지에서는 그들을 히브리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문화가 다르고 말이 다르므로 원주민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됩니다. 그러한 일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대를 이어서 살아가고 있는 가나안 땅은 물론 때로는 애굽 땅에서 그들을 그렇게 부르면서 함께 식사하는 것도 부정을 탄다고 여기고 있습니다(14;13, 39:14, 43:32). 그와 같은 차별을 감수하면서 주전 1,876년에 가나안 땅의 대족장 이스라엘이 11명의 아들과 식솔들을 데리고 애굽제국으로 들어갑니다.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연이어 가나안 땅에 흉년이 찾아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먹거리가 없습니다. 유일한 살 길은 양식이 저장되어 있는 애굽으로 들어가거나 그곳에서 양식을 사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11번째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으며 부모형제를 애굽으로 초청한 것입니다. 흉년을 피하여 이민을 오면 자신이 봉양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히브리인 노예 출신에 불과한 비천한 신분의 요셉을 일약 전국총리로 발탁한 강력한 애굽제국의 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중왕국시대 제12왕조의 바로인 세누스레트2세입니다.

(5)  다섯째, 430년이 지나자 주전 1,446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노예에서 해방하여 애굽의 바깥으로 이끌어내십니다(12:40-41). 그들을 여호와가 모세를 불러서 출애굽의 사명자로 세운 아라비아 반도의 서북면 미디안 땅 서쪽변경 르비딤에 있는 호렙 산 아래로 데리고 와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그 내용이 출애굽기 제3장과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이 이루어진 당시의 바로가 아멘호텝2세인데 그는 분열된 애굽의 여러 왕조를 재통일한 신왕국시대 제18왕조의 황제입니다. 

(6)  여섯째, 이제는 주전 8세기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애굽제국의 미래에 대한 경고의 말씀과 관련되고 있는 애굽제국의 장래의 역사를 간추려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하나, 주전 701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계속 공격하고 있던 앗수르 군대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말미암아 하룻밤에 천사에 의하여 18 5천명이 살해되고 맙니다(37:35-36, 왕하19:34-35). 급보를 들은 산헤립 황제는 수도 니느웨로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패전한 군주를 환영하는 신하들이 없습니다. 마침내 황자들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러자 전방에 나가 있던 용맹한 황자 에살핫돈이 회군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앗수르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됩니다. 에살핫돈은 앗수르제국에 있어서 가장 이름을 남긴 정복왕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주전 670년을 전후하여 두차례 서벌을 단행하여 애굽의 중요도시를 거의 점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제국이 오래가지 못하고 주전 609년에 메대와 바벨론의 합공으로 붕괴되고 맙니다.

2)   , 주전 609년에 앗수르제국이 붕괴가 되자 그 틈을 노려서 애굽의 바로 느고는 북진하여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요새지 갈그미스를 차지하고 시리아 지역을 정복하고자 합니다. 당시 다윗왕조의 왕이 성군 요시야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토를 함부로 지나가고 있는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를 저지하고자 나섭니다. 그러나 애굽의 저격수들의 표적이 되어 그만 중상을 입고 수도 예루살렘으로 후송되는 도중에 운명하고 맙니다. 바로 느고는 갈그미스를 손쉽게 점령하자 시리아에 애굽의 군사를 주둔하고 의기양양하게 회군하면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침략합니다. 성군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 왕은 내우외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손위의 왕자 엘리아김이 바로 느고와 손을 잡고 반란을 도모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이 없이 여호아하스 왕이 패전하고 애굽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바로 느고는 엘리아김 왕자를 여호야김이라고 개명하고 유대왕국의 신왕으로 세웁니다. 그때부터 다윗왕조는 애굽 또는 신바벨론의 눈치를 보면서 괴뢰정권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3)   ,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제국 제2대 황제로 즉위한 느부갓네살 황제는 천하의 영웅입니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왕국 다윗왕조를 역사 가운데 사라지게 합니다. 그리고 5년 동안 가나안 일대의 모든 왕국을 정복합니다. 나아가서 주전 570년경에는 애굽을 침공하여 하이집트와 상이집트를 정복합니다(29:17, 19-20). 그러나 신바벨론제국의 애굽 점령은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주전 539년에 어이없게도 아리안족의 연합공격으로 신바벨론제국이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25:12, 5:30-31).

4)   , 애굽은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이었던 앗수르제국에 이어 신바벨론제국의 원정군에게 계속 짓밟히게 되자 통일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분열왕국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그만 애굽인들의 왕조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저 페르시아황제를 섬기는 신하국들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330년경에는 동진하는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보낸 프톨레미 장군의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정복을 당하고 맙니다. 애굽의 천하를 통일한 프톨레미 장군은 알렉산더 대왕이 급사하고 말았으므로 차제에 애굽에 자신의 왕조를 창건합니다. 그때부터 애굽인들에 의한 애굽의 왕조는 완전히 사라지고 헬라의 프톨레미 왕조가 애굽을 대대로 통치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전통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헬라제국을 이은 로마제국에 의하여 프톨레미 왕조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7)  끝으로, 그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를 선지자 이사야가 본문에서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예언하고 있습니다(19:1-15). 그 다음에 그는 그리스도의 깃발이 애굽의 땅에 휘날리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또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후 1세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애굽 땅에 전파가 되면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곱틱교회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들은 히브리경전을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의 메시지에 비추어 다시 검토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도들이 되어 여호와신앙을 주변국에 전파할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애굽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침범한 앗수르 인들의 땅에서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새 언약 복음의 시대가 밝아오는 모습을 본문 제16-25절에서 확인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애굽에 관한 경고라(여호와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애굽제국에 망조가 들고 마침내 멸망하며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이사야의 강력한 예언임, 17:1).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역사의 섭리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각보다 빠르게 애굽의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것임, 19:18),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12:12b). 2.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내분이 크게 발생하여 애굽제국이 분열되고 만다는 것임), 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애굽인들이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무속신앙에 푹 빠져서 살았기에 제국에 망조가 들고 만다는 것임). 4.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이 애굽의 여러 왕조를 치고 속국으로 삼을 것이라는 예언임).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회개하지 아니하면 앞으로 계속 그러한 역사가 진행된다는 것임). 5.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전쟁에서 패할 뿐만 아니라 천재지변이 발생한다는 것임), 6.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강물이 피물로 변하는 그 옛날의 재앙이 반복될 것임, 7:20-21),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가뭄으로 흉년이 닥친다는 것임, 41:27, 30), 7.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 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비옥한 나일강 삼각주에 가뭄과 흉년이 계속된다는 예언임), 8.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물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어획량이 줄어서 어촌도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임), 9.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삼나무와 대마의 작황이 형편없어서 옷감을 생산하지도 못할 것임, 9:31), 10. 그의 기둥이 부서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애굽제국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 실업사태가 속출한다는 것임). 11. 소안(Zoan, 라암셋의 북쪽에 있는 하이집트의 고대도시이며 힉소스인들이 그곳을 수도로 정하고 아바리스라고 불렀음.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상당히 친밀한 성읍임, 78:12. 참고로 가나안 남부의 큰 성읍 헤브론보다 7년 후에 세워진 고대도시임, 13:22)방백은 어리석었고(동부국경을 방어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소안의 사령관들이 어리석어서 적군의 침입을 허용하여 그만 소안 성읍이 불타고 있는 것임, 30:14),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바로를 보좌하는 대신들이 능히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지 못하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애굽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경륜 있는 신하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임) 12.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그 옛날 요셉과 같은 인물이 있다면 애굽에 대한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미리 알려주겠지만 전혀 그러하지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임, 41:25-41). 13. 소안(애굽제국의 동부전선사령부가 있는 곳) 방백(사령관과 지방의 귀족)들은 어리석었고(메소포타미아에서 쳐들어오는 외적의 침략을 능히 막지 못하고(하이집트의 수도인 멤피스)방백(대신과 중앙귀족)들은 (무속신앙에)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애굽제국의 바로인 구스의 왕과 그의 측근들이 무능하여 외세의 침략을 허용하고 말았다는 것임). 14. 여호와께서 (애굽의 통치집단) 가운데 (창조주 여호와를 외면하고 우상을 의지하는)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9:15a, 장로와 존귀한 자) 꼬리(9:15b, 거짓선지자)종려나무 가지(왕족과 귀족)갈대(평민인 백성)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모두가 패망하기는 일반일 것임)“(19:1-1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애굽에 관한 경고라(여호와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애굽제국에 망조가 들고 마침내 멸망하며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이사야의 강력한 예언임, 17:1).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역사의 섭리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각보다 빠르게 애굽의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것임, 19:18),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12:12b). 2.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내분이 크게 발생하여 애굽제국이 분열되고 만다는 것임), 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애굽인들이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무속신앙에 푹 빠져서 살았기에 제국에 망조가 들고 만다는 것임). 4.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이 애굽의 여러 왕조를 치고 속국으로 삼을 것이라는 예언임).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회개하지 아니하면 앞으로 계속 그러한 역사가 진행된다는 것임)“(19:1-4);

1)    이사야는 그의 선지서 19장에서 애굽제국이 망하게 되는 과정과 이유에 대하여 먼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애굽의 땅을 새롭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전진기지로 삼을 것이라고 하는 예언을 더불어 행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제국을 치시는 이유와 첫번째 징계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 마디로, 징계의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끝까지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징계의 방법은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내부의 분열과 외세의 침입입니다”. 이제부터 상세한 내용에 대하여 구절을 살펴보면서 깊고도 넓게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앞에서 떨겠고 애굽 인의 마음이 속에서 녹으리로다”(19:1); 먼저 1 앞부분을 살펴봅니다. 이사야가 애굽제국에 대하여 일반적인 예언이 아니라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19:1a).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직접 임하시는 것이 다음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기 때문입니다(19:1b); 하나,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면 금방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어 여호와를 섬길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5:1).

3)    , 그러나 바로는 여호와를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의 수호신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에 명령을 수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5:2).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하게 되자 애굽 땅에 9번의 재앙이 계속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바로를 향하여 드디어 마지막 번째 재앙이 발생합니다. 재앙은 밤사이에 애굽 인들의 모든 장자와 그들 소유의 모든 가축의 처음 새끼 수컷인 초태생을 전부 죽여버리는 것입니다(11:5, 13:12). 일을 시행하기 위하여 죽음의 천사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을 데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애굽 땅에 강림하시고 있습니다(11:4, 12:23). 그날 밤에 모세가 예언한 그대로 애굽 인들의 가정에서 대성통곡이 발생하게 됩니다(12:30).

4)    , 그런데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 강림의 이유입니다. 죽음의 천사들만 내려 보내도 충분하실 터인데 직접 강림하신 것일까요? 이유는 한마디로, 그날 죽임을 면제받을 있는 백성들을 신중하게 구별해내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엄중하게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발라져 있는 집을 골라내고 특별한 조치를 실행하고 있습니다(12:23). 조치는 그날 집안으로 죽음의 천사가 들어갈 없도록 하나님께서 능한 손으로 일종의 차폐장치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임하신다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발생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 이사야가 본문의 예언을 실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5)    둘째, 1절의 뒷부분을 살펴봅니다; 애굽의 우상들이 (강림하신 여호와) 앞에서 떨겠고 애굽 인의 마음이 속에서 녹으리로다”(19:1c) 하는 대목은 하나님께서 애굽제국을 치시는지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 애굽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애굽제국의 지배자들은 세속적인 국리민복(國利民福) 추구하기 위하여 우상문화와 기복신앙에 철저하게 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이 창조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돌보라고 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고 한다면 군사력으로 제국을 이루고 또한 폭력을 제도화하여 속국을 다스리고 있는 애굽제국이 무너지고 것입니다.  

6)    , 기본적으로 비록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강자가 폭력적인 힘으로써 약자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지배의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무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더라도 다른 민족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신(主神, 아몬라)으로부터 바로가 권세를 받아 정당하게 그들을 통치하고 있다고 하는 종교적인 관념이 제국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회적 신앙과 통념이 먼저 무너지게 것입니다.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애굽제국에 강림하셔서 그들의 신이 되고 있는 우상들을 물리쳐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2:12). 빌기만 하면 현세적인 복과 소원성취를 해준다고 믿었던 우상들이 모두 심판을 받아 붕괴되고 있으니 백성들의 마음은 너무나 아찔하여 혼비백산(魂飛魄散) 따름입니다.  

7)    셋째, 2절입니다; “2. 내가 애굽 인을 격동하여 애굽 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것이며”(19:2); 우상을 섬긴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일찍이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문에서 문까지 왕래하며 사람이 형제를,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날에 백성 중에 삼천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32:25-28).

8)    똑같은 징계의 방법이 애굽제국에 다시 임할 것입니다. 서로 내분을 일으켜서 전쟁하게 되며 때문에 제국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와 같은 자중지란(自中之亂)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속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비교해보면, 옛날과 조금 다릅니다; “ 옛날 출애굽 당시에는 하나님 편에 서고 있는 레위 인들이 우상의 편에 서있는 다른 11지파를 상대로 전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제국에 임하게 내분은 다릅니다. 그것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백성들과 민족들 사이에 자중지란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자신들의 탐욕을 정당화시켜주는 우상을 믿고서 세력다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공영(共榮) 아니라 공멸(共滅)입니다.

9)    참고로, 그와 같이 내분을 조장하여 제국을 무너뜨리겠다고 하는 방법론은 훗날 다니엘의 묵시에서도 다음과 같이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40.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같이 나라가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41. 왕께서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셨은즉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나라가 같은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 발가락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즉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43.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2:40-43).

10)     넷째, 3절입니다; 3. 애굽 인의 정신이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들에게 물으리로다”(19:3); 이사야가 애굽 인의 정신이 속에서 쇠약해질 것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국이 힘을 발휘하자면 가지 요소가 성립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 신분보다 능력이 우대받아야 합니다. , 국론(國論) 통일되어 있어야 합니다. , 제국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11)     조금 풀이를 해봅니다; 고대사회 애굽제국에서 능력보다는 신분이 우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능력이 우선시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애굽제국과 같은 제국이 성립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애굽제국을 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내분(內紛) 조장하여 자중지란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점에 대해서는 이사야가 2절에서 이미 예언한 바와 같습니다;

12)     이제는 번째 요소인 제국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무너뜨리는 작업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이사야는 애굽인의 정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신사조(精神思潮) 무너지게 되면 나라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면, 20세기말에 와서 일본이 있느냐?아니면 일본이 없느냐?라는 논란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1997 소위 IMF사태 겪으면서 해외에 나가 있는 일본의 기업과 투자가 과연 일본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13)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선진국이며 백성들이 대단한 애국심을 자랑하고 있던 나라입니다. 이름하여 니혼진노 야마토 다마시(日本人의 大和魂)” 그들의 자랑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산업의 해외이전과 자본의 유출로 국가재정이 계속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부자인데 나라가 가난합니다. 따라서 일본인의 정신이 살아 있느냐? 아니면 죽어 있느냐? 물어야만 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단 일본의 경우에 국한되고 있는 사례가 아닙니다.

14)      옛날 애굽제국도 그러했고 오늘날 일본의 뒤를 따르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도 그러합니다. 과연 한국사람들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한민족의 통일을 여전히 소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시급하게 민족의 정신사조를 재점검해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사조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징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지 냉철하게 생각해보아야 것입니다. 애굽 제국의 백성들의 애국심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종교적 정신적 국론통일을 서둘러야만 합니다.

8)     그런데 문제는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일이 성사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사조를 바로 세우는 것은 철저하게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재발견하는 일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애굽제국의 지도자들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들”(19:3b)에게 대안을 묻고 있습니다. 결과는 제국의 멸망을 앞당기게 따름입니다.

9)     다섯째, 4절입니다; “4. 내가 애굽 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9:4); 잔인하고 포악한 왕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기를 좋아합니다. 다윗왕조 유대왕국에 있어서도 그러한 왕이 한사람 있습니다. 바로 히스기야 왕의 아들인 므낫세 왕입니다.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옛날 가나안 원주민 아모리 족속보다 악하고 많은 피를 흘렸으므로(15:16, 왕하21:16) 마침내 제사장나라가 망하게 되는 역사가 도래하고 맙니다.

15)  마찬가지로 애굽제국이 분열되고 애굽 인들이 대내외적으로 포악하고 잔인한 왕들의 통치를 받다가 끝까지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완전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것입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는 다음과 같은 유대왕국의 역사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1. 유다 므낫세가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창15:16),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귀가 울리리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왕하21:11-13), “16.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외에도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끝에서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왕하21:16).

(2)  5.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전쟁에서 패할 뿐만 아니라 천재지변이 발생한다는 것임), 6.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강물이 피물로 변하는 그 옛날의 재앙이 반복될 것임, 7:20-21),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가뭄으로 흉년이 닥친다는 것임, 41:27, 30), 7.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 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비옥한 나일강 삼각주에 가뭄과 흉년이 계속된다는 예언임), 8.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물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어획량이 줄어서 어촌도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임), 9.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삼나무와 대마의 작황이 형편없어서 옷감을 생산하지도 못할 것임, 9:31), 10. 그의 기둥이 부서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애굽제국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 실업사태가 속출한다는 것임)“(19:5-10);

1)    이사야는 32개의 왕조를 이루며 수천 년간 계속된 애굽제국’(Egyptian empire) 이방나라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14장에서 신바벨론제국에 대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의 하수인으로 간주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19장에서 애굽제국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이방인들의 제국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2)    실제로 애굽제국이야말로 제국이 분열된 시기 중간기’(中間期, interim period) 차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 통일왕조들이 번갈아 가면서 넓은 영토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했던 가장 오래된 제국입니다. 애굽제국은 오랜 세월 비옥한 나일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 애굽, 수단, 이디오피아를 주축으로 하여 동아프리카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의 주변국들,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등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3)    그와 같은 거대한 제국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면서 현세적인 국리민복(國利民福)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애굽제국과 같은 세상의 제국이 망할 수밖에 없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크게 보아 3가지의 방법으로 중징계하실 것이라고 19 전반부에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4)    하나, 내부공작을 통하여 정치적 통합과 정신전력을 약화시켜버릴 것입니다(19:1-4). 제국 내에 내부분열을 일으키고 제국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날 바벨탑을 붕괴시킨 것과 같습니다(11:1-9). , 재앙을 내려서 경제력을 약화시켜버리는 것입니다(19:5-10). 풍요의 상징인 나일 강이 마르도록 것이며 지중해와 홍해 등이 부의 통로로서 사라지는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19:5-10).

5)    , 왕과 신하들의 머리를 어둡게 하여 정책의 실패를 거듭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19:11-15). 정치지도자와 행정관료들이 어리석은 정책결정을 하도록 지혜를 어둡게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19:11-15). 본문은 가운데 번째 징계 경제력의 약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제 다음과 같이 구절씩 검토하면서 깊은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6)    첫째, 5절입니다; “5. 바닷물 없어지겠고 잦아서 마르겠고”(19:5); 구절과 65장에 있는 일부 이사야의 예언은 사도 요한의 계시록으로 이어지고 있는 세상의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1. 내가 하늘과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21:1). 선지자 이사야는 세상의 종말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다고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65:17-19). 그러므로 이사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창조의 신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는 재창조의 신입니다.

7)    그런데 본문의 대목은 정도의 예언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이 오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계속 오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나라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섭리가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운데 본문의 내용은 그와 같은 역사적인 개입과 자연재해의 발생이 상징적으로 먼저 애굽제국에 나타날 것임을 밝혀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한국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애국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동해 백두산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8)    애국가는 한반도를 동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동해바다의 물이 모두 마를 때까지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의 흙이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 하늘에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디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하는 간절한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애국가 가사대로만 신앙생활을 영위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세상나라인 애굽제국에는 그와 같이 창조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 없습니다.

9)    사실 바닷물이 없어지고 강이 자꾸만 말라가게 되면 물고기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죽고 맙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하늘과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생물들을 어떻게 다시 살리시는 것일까요?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와 강을 이루게 됩니다(22:1-2). 강물을 마시면서 강언덕에서 생명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10)   나무의 잎과 열매를 취함으로 만국이 치유함을 받으며 믿는 자들이 영생을 누리게 되는 천국의 모습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와 같은 종말심판이 있기 전에 자꾸만 바닷물과 강물에 재앙이 밀어닥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재앙이 하나님의 역사심판의 일환임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는 당시와는 조금 다른 구체적인 설명이 다음 절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목을 바꾸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1)  둘째, 6절입니다; “6. 강들에서는 악취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 부들 시들겠으며”(19:6); 나일 강에서 악취가 풍기는 재앙이(19:6a) 발생한 사례가 이미 출애굽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이른 애굽제국에 임한 번째 재앙입니다;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물이 피로 변하고, 21.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 애굽 요술사들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7:20-22).

12)  당시의 재앙의 특징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애굽의 나일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실 있는 강물이 농도가 짙은 용액인 핏물로 변하게 되자 삼투압 현상이 거꾸로 발생하게 됩니다. , 물고기가 강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강의 핏물이 물고기의 물기를 밖으로 뽑아 내어버린 것입니다. 결과 물고기가 말라서 떼죽음을 당하고 썩어감으로 말미암아 악취가 진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부패해가는 강물을 사람들이 도저히 마실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엎친 덮친 격으로 애굽의 요술사들도 요술로 그같은 현상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말은 2가지의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13)  하나는, 고대의 요술사들은 오늘날의 과학자와 비슷합니다. 그들이 옛날 선사시대로부터 전해오는 비상한 능력으로 강물을 농도가 짙은 핏물로 바꾸는 기적을 연출한 것입니다. 하나는, 애굽제국이 고대사회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과학이 발달하여 부분적으로 일부 공업이 발전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강물이 공장의 폐수로 말미암아 오염되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모양으로 해석하든지 간에 나일 강물이 오염되고 있다는 것은 재앙입니다.

14)  특히 나일 강물을 이용하여 농업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있는 애굽제국의 입장에서는 식량자급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죽고 식수와 공업용수가 부족해지는 외에도 재앙은 나일 강변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 갈대 부들’(갈대와 비슷하지만 키가 작고 부들부들한 강가의 식물) 시들어져 말라버리는 비극을 연출하고 있습니다(19:6b). 먹을 식물이 시들어버리니 가축과 짐승들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입니다. 한마디로 특징은 연쇄적인 먹이사슬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5)  셋째, 7절입니다; 7. 나일 가까운 나일 언덕의 초장 나일 가까운 곡식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19:7); 나일 강물에서 악취가 나고 강물이 줄어들어버리자 재앙은 즉시 강변의 곡식 밭과 초장에 미치고 있습니다. 물이 있어야 농사를 짓습니다. 강물을 사용하여 농사를 지을 없게 되자 태반의 농사가 폐농이 되고 있습니다. 벼가 자라지를 못하고 말라서 종내에는 바람에 날려가 버리게 됩니다(19:7b). 푸른 초장이 사라지고 마른 풀만이 바람에 풀풀 날리고 있을 따름입니다(19:7a).

16)  넷째, 8절입니다;8.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19:8); 나일 강에서 악취가 풍기며 크게 가뭄이 들어 강물이 바닥을 보이게 되자 물고기 떼가 모두 죽어버리게 됩니다. 때문에 강가의 어부들은 생계가 막막해지고 있습니다. 기아에 시달리며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7)  다섯째, 9절입니다; “9.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19:9); 고대 애굽사회에서 옷감은 주로 식물인 삼나무와 대마에서 추출했습니다. 나일 강변은 물이 풍부하여 농사도 되고 밭에서 삼나무와 대마가 자라는 고장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31.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꽃이 피었으므로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9:31-32). 나일 강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 밀과 보리 그리고 쌀보리 주곡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삼나무와 대마를 재배하여 옷감의 재료를 얻고 있습니다.

18)  그런데 나일 강물에 재앙이 발생하자 옷감생산의 재료인 삼과 대마마저 재배가 불가능해지고 맙니다. 애굽 사람들은 베틀 앞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양질의 세마포와 삼베생산이 거덜나고 마는 것입니다. 옛날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에는 나일 강변에 7 연속 풍년이 들어 인근국가의 백성들까지 먹여 살렸던 자랑스러운 애굽제국입니다(41:53-57, 50:20).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로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곡’(主穀) 뿐만 아니라 옷감마저 외국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수치스러운 형편에 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19:9).

19)  여섯째, 10절입니다; “10. 그의 기둥이 부숴지고 품꾼들이 마음에 근심하리라”(19:10); 고대사회는 마디로 농업 사회입니다. 농업생산력이 나라의 국력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산업근대화 직전까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가 나라경제의 근간임)이라는 말까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제국인 애굽에 벌을 내려서 나일 강물을 부패하게 하고 말라버리게 하자 제국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모양을 이사야는 애굽제국의 산업기반이 무너지고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일꾼마저 굶어 죽을 것만 같아서 걱정이 태산이다”(19:10 의역)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11. 소안(Zoan, 라암셋의 북쪽에 있는 하이집트의 고대도시이며 힉소스인들이 그곳을 수도로 정하고 아바리스라고 불렀음.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상당히 친밀한 성읍임, 78:12. 참고로 가나안 남부의 큰 성읍 헤브론보다 7년 후에 세워진 고대도시임, 13:22)방백은 어리석었고(동부국경을 방어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소안의 사령관들이 어리석어서 적군의 침입을 허용하여 그만 소안 성읍이 불타고 있는 것임, 30:14),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바로를 보좌하는 대신들이 능히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지 못하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애굽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경륜 있는 신하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임) 12.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그 옛날 요셉과 같은 인물이 있다면 애굽에 대한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미리 알려주겠지만 전혀 그러하지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임, 41:25-41). 13. 소안(애굽제국의 동부전선사령부가 있는 곳) 방백(사령관과 지방의 귀족)들은 어리석었고(메소포타미아에서 쳐들어오는 외적의 침략을 능히 막지 못하고(하이집트의 수도인 멤피스)방백(대신과 중앙귀족)들은 (무속신앙에)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애굽제국의 바로인 구스의 왕과 그의 측근들이 무능하여 외세의 침략을 허용하고 말았다는 것임). 14. 여호와께서 (애굽의 통치집단) 가운데 (창조주 여호와를 외면하고 우상을 의지하는)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 애굽에서 머리(9:15a, 장로와 존귀한 자) 꼬리(9:15b, 거짓선지자)종려나무 가지(왕족과 귀족)갈대(평민인 백성)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모두가 패망하기는 일반일 것임)“(19:11-15);

1)    애굽제국을 편의상 남북으로 갈라본다면, 대체로 남쪽이 ()이집트이고 북쪽이 ()이집트 해당합니다; 애굽제국의 젖줄인 나일 강이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려 북단 지중해로 들어가고 있으므로 자연히 나일강 상류와 중류가 상이집트이고 하류와 삼각주 지역이 하이집트입니다. 그리고 중심도시로 보면, 하이집트의 수도가 멤피스이고 상이집트의 수도가 테베입니다. 고대문명이 나일 하류 삼각주 지역에서 먼저 꽃이 피었으므로 애굽 문명의 시작이 북쪽이고 하이집트에 자리잡고 있는 멤피스 ’(, old) 이집트 제국의 수도입니다.

2)    그런데 하이집트의 원주민인 애굽 인들이 상이집트에 속하는 구스 인과 누비아 인들에게 밀려서 제국의 지배권을 잃어버리는 역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기가 묘하게도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활약하던 중왕국시대의 12왕조, 그리고 이사야의 시대인 25왕조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수도가 테베이며 이름이 입니다(30:14-16). 참고로, 하이집트의 옛날 수도인 멤피스는 이름이 입니다(19:13).

3)    그런데 상이집트 테베에서 발흥한 왕조가 애굽의 천하를 통일하게 되면 그때에는 국력의 근간인 농업을 돌보기 위하여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가 고대도시인 멤피스를 왕도로 정하고 그곳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놉의 방백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13). 그리고 애굽의 총리인 요셉이 자신의 형제와 부친인 야곱을 애굽에 정착시킨 지역이 당시 수도인 테베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 국경지역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멤피스의 동북면인 고센땅인데(46:34, 47:4, 11-12) 동쪽 국경이 가까워서 출애굽하기에 가장 용이한 곳입니다.

4)    그때에도 애굽제국의 전국총리인 요셉은 농업을 돌보고 곡식을 저장하기 위하여 주로 하이집트의 땅에서 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멤피스에서 고센 땅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성읍 라암셋까지는 아주 거리가 아닌 것입니다(45:10-11, 46:28-29). 그런데 고센 땅이 훗날 안보상 매우 중요시됩니다. 왜냐하면, 힉소스 인들이 길로 쳐들어와서 80년간 애굽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을 앞둔 시기에 애굽제국을 통치했던 민족은 애굽 인들입니다.

5)    하지만 그들은 하이집트에서 밀려나 상이집트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동쪽에서 쳐들어온 힉소스 인들에게 비옥한 고향인 하이집트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주전 1,570년경 애굽의 영웅 아흐모세가 힉소스 인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천하를 통일하여 3년후에 통일왕조인 18왕조를 창건했지만 여전히 수도는 상이집트의 왕도인 테베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힉소스 인을 비롯한 동방 족속들의 침입을 초기에 방어하기 위하여 고센 땅을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많은 군대를 주둔하고 병참기지를 만들며 고대도시 라암셋 크게 확장했습니다. 이름 라암셋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히브리인들의 주거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47:11, 1:11).

6)    본문에서 소안’(Zoan)이라는 지명이 여러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의 타니스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그곳은 이사야 당시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상이집트의 구스 디르하가가(왕하19:9) 북부의 행정 군사도시로 중시했던 곳입니다. 그는 도시의 문신(文臣) 무신(武臣)들이 지혜를 모아서 동쪽으로부터 오는 적의 침입과 위협을 조기에 격퇴하여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성공적이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살고 있는 그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그들 문신과 무신들의 머리를 한없이 어둡고 어리석게 만들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19:11, 13). 사실을 적고 있는 본문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7)    첫째, 11절입니다;  11. 소안 방백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왕들의 후예라 있으랴?”(19:11); 나일 하류에 이집트 제국이 성립되었을 때에 그들의 수도는 지방 멤피스입니다. 도시는 나일 하류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는 강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지정학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8)    이유는 바벨탑의 붕괴로 동방 메소포타미아에서 흩어져서 서쪽 애굽으로 들어오는 이주민들 넓은 의미의 히브리인’(11:9, 31, 14:13)들의 문명을 받아들여서 고대 애굽 인들이 제국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메소포타미아의 선진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이자면 나일 하류 삼각주의 동북면에 수도를 두고 있는 것이 가장 유리합니다. 반면에 현대 이집트는 선진문물이 이제는 동방이 아니라 지중해 건너 북방과 서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도 카이로와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유럽선진국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에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9)    그런데 훗날 동방에서 선진무기체계를 앞세우고 침략해온 힉소스 인들에게 제국을 빼앗긴 적이 있는 상이집트 사람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다행히 영웅 아흐모세가 그들을 몰아내고 18왕조를 창건했지만 그들의 국시’(國是) 동방민족의 향방을 주시하며 사전에 침략의도를 분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상이집트의 수도는 비록 남쪽의 테베이지만 전략적 국경도시는 나일 하류 동북면 소안(Zoan) 두고 있습니다. 위치는 멤피스와 라암셋의 북쪽인 타니스라고 하겠습니다.

10)  애굽제국의 바로인 구스 왕은 문신과 무신 가운데 똑똑하고 지략이 뛰어난 신하를 우선적으로 그곳에 발령 내고 있습니다. 제국의 안보를 위하여 그들이 전략을 수립하고 외침에 대하여 철저하게 방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일 중류의 수도인 테베와 하이집트에 있는 왕도 멤피스에서 바로와 귀족들이 다리를 벋고서 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러하지 못합니다. 지혜가 뛰어난 신하들을 우선적으로 소알에 발령을 냈는데 그들이 짜고 있는 전략은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그와 같은 결과에 이르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가 실로 궁금합니다.

11)  둘째, 12절입니다; “12.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것이요, 네게 말할 것이니라”(19:12); 이유는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애굽제국을 혼내겠다고 하는 정책이 발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혼내기 위해서는 동방의 적들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애굽제국 내에서 동북면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소안의 행정책임자와 군사책임자들의 머리를 아둔하게 만들어 버리신 것입니다(6:9-10). 결과 이사야의 영적인 눈앞에 애굽제국을 침입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패권국의 군대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장차 애굽을 점령하고자 달려오고 있는 제국이 앗수르(에살핫돈과 아슈르바니팔),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페르시아(캄비세스) 등입니다.

12)  셋째, 13절입니다;13.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가게 하였도다”(19:13); 이사야가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던 당시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었던 구스 왕가의 25왕조가 끝장나고 있습니다.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의 뒤를 이은 에살핫돈이 군사도시 소안은 물론 땅의 고도 멤피스를 점령하고(왕하19:37) 그후 아슈르바니팔이 애굽제국의 수도인 땅의 테베마저 정복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앗수르제국이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하기 때문에 애굽이 다시 독립을 얻어 26왕조가 시작되지만 그것은 수치스러운 역사입니다.

13)  넷째, 14절입니다;14. 여호와께서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19:14); 어지러운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 애굽제국의 수도는 나일 상류에 있는 테베입니다. 구스의 왕이 바로가 되어서 천하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앙의 귀족들과 명문대가들은 안전한 후방인 테베에서 소리를 치고서 살고들 있습니다.

14)   반면에, 똑똑하고 지혜가 뛰어난 유능한 신하들이 멀리 북쪽 국경도시 소안으로 발령을 받아 가서 외지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가 동북면 국방과 안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여 자신들을 배치하고 있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바로의 신하들인 중앙귀족들의 태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함께 지내기 어려운 똑똑한 인재를 황제의 시야에서 사라지도록 만드는 방법으로 멀리 소안이나 멤피스로 발령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좌천이며 유배에 준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불평불만이 싹트고 있으며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국이 비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15)  다섯째, 15절입니다; “15.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일이 없으리라”(19:15); 아무리 인재가 많고 똑똑한 신하가 많으면 무엇을 합니까?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지켜보아 주며 상급을 정확하게 베풀어줄 있는 통치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정치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최고통치자의 정신이 올바르게 날이 서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하들이 신이 나서 좋은 머리로 국방을 튼튼히 하고 나라를 융성하게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애굽의 황제인 바로에게는 그와 같은 마음의 자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교만과 거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16)  그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라고 하는 현인신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주 여호와 앞에 옷깃을 여미는 경외심이 없으며 또한 생명을 사랑하고 긍휼을 베푸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결과 바로의 절대권력이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있습니다. 그를 섬기고 있는 귀족이나 백성들도 바로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애굽제국의 신민(臣民)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도도한지 모릅니다. 그들은 살아있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은 것과 같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생들이며 제국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이 이사야의 앞에 선명하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16.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부녀자와 같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마냥 떨고 있을 것임).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애굽인들이 두려움에 휩싸인다는 것임), 17.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여호와의 심판이 애굽에 그대로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들이 두려워 떨게 되는 것임, 25:29).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애굽 뿐만 아니라 열방들이 자신들에게도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동일하게 임한다는 사실을 듣고서 전부) 떨리라. 18. 그 날에(종말의 시작을 말함. 구체적으로, 구원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와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선포하고 대속의 십자가를 예루살렘에서 지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날에, 24:44-48)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자)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그 중 하나를 (배교하는)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애굽인들의 마음중심에 여호와신앙이 자리잡게 될 것이며),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태양신을 섬기는 방식을 원용한) 기둥(오벨리스크, 또는 소박한 야곱의 돌기둥, 28:22)이 있을 것이요(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음, 4:3, 6, 8-9). 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그러나 다수의 애굽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따르고자 회심하게 된다는 것임),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2:23),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2:24-25, 9:15-16, 11:10).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9:16, 65:1-2, 주전 2세기에 애굽에서 히브리경전이 헬라어로 번역되고 주후 1세기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먼저 그곳에 전파될 것임),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66:20-21),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19:8-10, 28:18-20).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9:15-16)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3:4-10)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그 옛날에는 로마제국의 군용도로 겸 사도 바울의 선교의 신작로,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대로가 있어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창조주 여호와를) 경배하리라!(로마의 교황청과 더불어 애굽의 교황청과 시리아의 교황청이 주후 324년 이전에는 세계선교의 중심지였음)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는 큰) 복이 되리니(12:2-3),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4:22-23, 13:2),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그 수도가 니느웨임, 3:10, 4:11), 나의 (19:4-6, 만민구원을 위하여 처음으로 선택한 여호와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고후13:13)“(19:16-25);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6.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부녀자와 같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마냥 떨고 있을 것임).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애굽인들이 두려움에 휩싸인다는 것임), 17.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여호와의 심판이 애굽에 그대로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들이 두려워 떨게 되는 것임, 25:29).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애굽 뿐만 아니라 열방들이 자신들에게도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동일하게 임한다는 사실을 듣고서 전부) 떨리라. 18. 그 날에(종말의 시작을 말함. 구체적으로, 구원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와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선포하고 대속의 십자가를 예루살렘에서 지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날에, 24:44-48)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자)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그 중 하나를 (배교하는)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애굽인들의 마음중심에 여호와신앙이 자리잡게 될 것이며),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태양신을 섬기는 방식을 원용한) 기둥(오벨리스크, 또는 소박한 야곱의 돌기둥, 28:22)이 있을 것이요(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음, 4:3, 6, 8-9). 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그러나 다수의 애굽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따르고자 회심하게 된다는 것임),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2:23),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2:24-25, 9:15-16, 11:10).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9:16, 65:1-2, 주전 2세기에 애굽에서 히브리경전이 헬라어로 번역되고 주후 1세기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먼저 그곳에 전파될 것임),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66:20-21),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19:8-10, 28:18-20).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9:15-16)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3:4-10)“(19:16-22);

1)    선민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유대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방나라의 대표격인 애굽제국은 멸망의 대상입니다. 옛날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처럼 부려먹었으니 애굽제국의 앞날이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징계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분노로 결국 망하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본문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애굽제국이 회개하고 훗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2)    그동안 전개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 그것은 사람의 능력과 심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도 어려운데 어떻게 전혀 새로운 모습의 세상을 만들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은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여호와로부터 시작되고 진행되며 결과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하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1:36). 그렇다면 일을 실시하고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비책’(秘策, know-how) 과연 무엇일까요?

3)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이미 11장에서 선을 보인 있는 개의 하나님의 깃발’(11:10, 12) 관련된 일일 것입니다. 이사야의 선지서는 다가오는 메시아의 시대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관하여 많은 예언을 싣고 있습니다. 우선 본문에서는 애굽제국과 같은 이방의 세계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지 점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의 구절을 살펴보면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자 합니다;

4)    첫째, 16절입니다; “16. 그날에 애굽이 부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이며”(19:16);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그날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애굽의 행동과 전혀 반대가 되는 일이 다음과 같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대하는 기존의 애굽제국의 태도는 출애굽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지만 바로와 신하들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5)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사항인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이 바로에 의하여 받아들여질 때까지 불가피하게 10가지의 재앙이 애굽 땅에 임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존 애굽 제국의 태도는 완강하고 완악한 바로와 신하들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7:22, 9:34). 그런데 이사야는 전혀 다른 상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와 신하들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에 연약한 부녀자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녀자 상징되고 있는 애굽제국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실 엄청 두려워서 떨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와 같은 변화가 도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6)    둘째, 17절입니다; 17.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19:17); 애굽제국이 부녀자처럼 하나님의 징계 앞에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은 선민 유대왕국 때문입니다.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은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제일 섬기고 있다고 소문이 나라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앗수르의 침략으로 절단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신바벨론의 침략으로 아예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이 일이 이방세계의 멸망의 신호탄이 되고 있습니다; “29. 보라, 내가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예루살렘)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29).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식부터 잘못을 범했다고 강력하게 처벌하신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방인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사정없이 징계하실 것입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회초리를 드신 창조주 앞에 이제는 모두 죽었다고 복창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8)    셋째, 18절입니다; “18. 그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19:18); 모세에 의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이후 고센 땅에는 동방 족속의 침입을 저지하는 도시가 3 재정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소안(19:11), 라암셋(1:11), 놉인 멤피스(19:13) 등입니다. 그런데 미구(未久, 오래지 아니하여) 앗수르의 침입이 있게 되면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은 예루살렘 성만 제외하고 전국이 적의 말발굽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9)    그러므로 많은 유다의 피난민들이 애굽의 동북면 국경지역인 고센 땅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일종의 난민촌이 그곳에 형성됩니다. 다음 신바벨론에 의하여 유대왕국이 완전히 망하게 되면 많은 난민들이 애굽의 고센 땅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결과 이사야는 하나의 성읍이 추가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멸망의 또는 태양을 섬기는 멸망의 성으로서 일명 태양의 성읍’(Heliopolis)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다섯 개의 성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훗날 성읍 하나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일강 삼각주 인접 북서쪽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입니다;

10)   도시는 훗날 헬라시대에 기존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는 구약말씀이 70인의 유대인 히브리정경 학자들에 의하여 세계의 학문적 공용어인 헬라어로 번역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도서관을 지니고서 헬라철학과 히브리사상의 연구중심지가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중에는 복음연구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다섯 성읍이 모두 장망성’(將亡城), 장차 망하게 되는 운명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의미를 은근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사람이 만든 도시 역시 장차 멸망의 대상에 불과합니다.

11)   사실을 진작에 창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mortal body)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6). 의미를 풀이해보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철저하게 깨닫는 자가 비로소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21:33). 연약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디 구원과 영생을 달라고 간절하게 매달리게 됩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옛날 셋의 가계 에노스의 집안에서 있었듯이 이제는 장망성 바라보는 히브리 사람과 애굽 사람들에게 있게 것입니다.

12)  넷째, 19절입니다;19. 그날에 애굽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있겠고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 있을 것이요”(19:19); 멸망의 대상인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구원의 대상이 수가 있을까요? 율법에 의하면 번제단을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께 죄사함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1:4).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속죄의 제사가 애굽제국의 수도에서 장차 있게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수도 뿐만이 아닙니다. 제국의 전역에서 기둥을 만들고 위에 옛날 야곱처럼 서원의 제단을 마련할 것입니다;

13)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성의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8:18-22). 풀이해보자면, ‘루스 같은 멸망의 도시가 영생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구원의 장소 벧엘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은혜가 이방나라 애굽제국에 있게 것이라고 힘있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14)  다섯째, 20절입니다; “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 되리니 이는 그들이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19:20); 매일같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 속죄와 화목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선민들의 유대왕국조차 멸망당하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미는 야곱의 제사나 율법에 의한 성전제사를 드려보아야 헛것이며 결국은 멸망에 이르고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15)   점을 알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가 이상하게도 훗날 애굽의 땅에 있게 되는 제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애굽의 제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유다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수가 있습니다. , 유대교인들의 전통과는 다른 형식의 새로운 제사의 방법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방나라인 애굽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제단이나 율법에 의한 제사의 방법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 영생의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다짜고짜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살려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16)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애굽 땅에 보내어 주십니다. 훗날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이사야가 그와 같이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이상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당시 애굽 땅을 밟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이사야는 애굽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활동은 가나안 일대에 국한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죽음과 부활의 역사는 주님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입니다(24:44-48). 그것을 계기로 하여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생의 하나님께서 만민구원의 시대를 여시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감히 이의를 제기할 있는 피조물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8:37-39).

17)  여섯째, 21절입니다;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19:2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며 복음입니다(17:3). 하나님께서 장차 전개하시는 구원의 방도는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과 방법이 장차 애굽 인들에게도 전파될 것입니다.

18)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애굽과 만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애굽 사람들이 알게 되면 새로운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장차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구원의 은혜를 갚아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훗날의 역사를 보면, 그것이 애굽 곱틱 교회의 탄생이며 애굽인 성도들의 복음 전파입니다. 참고로 일설에 따르면,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가 훗날 곱틱 교회의 수장으로서 일에 크게 공헌했다고 합니다;

19)  일곱째, 22절입니다;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19:22); 출애굽 당시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노예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는 선민을 구원하시고 애굽과 같은 이방인을 심판하신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5:43).

20)  그러나 본문의 대목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마디로, “고치시기 위하여 치신다는 것입니다”(19:22). 사실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누구나 징계 가운데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듭난 인생으로 고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것입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의인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있다는 그것이 참으로 크나큰 은혜입니다.

(2)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그 옛날에는 로마제국의 군용도로 겸 사도 바울의 선교의 신작로,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대로가 있어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창조주 여호와를) 경배하리라!(로마의 교황청과 더불어 애굽의 교황청과 시리아의 교황청이 주후 324년 이전에는 세계선교의 중심지였음) 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는 큰) 복이 되리니(12:2-3),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4:22-23, 13:2),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그 수도가 니느웨임, 3:10, 4:11), 나의 (19:4-6, 만민구원을 위하여 처음으로 선택한 여호와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고후13:13)“(19:23-25);

1)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의 군대는 주전 701년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전국을 거의 유린하였으며 왕도인 예루살렘성을 오래 포위하여 공격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그들을 패퇴하고 물러갔지만 주전 640년을 전후하여 에살핫돈 황제는 애굽을 침입하여 하이집트와 상이집트의 주요도시를 거의 정복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제국은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애굽인들의 원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과거의 원한을 모두 잊어버리고 3나라의 후손들이 여호와신앙으로 하나가 되고 또한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기지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구절 풀이를 통하여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첫째, 23절입니다;23.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19:23); 역사를 보면, 애굽제국은 앗수르제국의 침략을 받아 25왕조가 무너지는 비극을 맛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신바벨론이 득세하여 앗수르제국을 와해시켜 주기 때문에 애굽이 독립을 얻고 26왕조를 시작하게 됩니다. 어쨌든 제국 사이의 전쟁은 동방의 앗수르제국이 서방으로 진출하여 애굽을 침입하는 양상입니다.

3)    그런데 이사야는 대목에서 전쟁의 침입로가 아니라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는 하나의 대로’(大路, 큰길) 예언하고 있습니다. 길은 앗수르가 서방에 있는 애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애굽이 동방에 있는 앗수르로 가는 길입니다. 길은 무력으로 정복하는 길이 아니라 복음으로 평화를 구축하는 길입니다. 애굽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역사를 맞이하여 동방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훗날의 기독교역사에 비추어보면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해볼 있습니다;

4)    하나,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의 철학과 학문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아볼로 선교도 일환으로 수가 있습니다(18:24-26). , 결과를 시리아와 동방세계에 전하게 됩니다. 성과가 멀리 중국에서는 경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 어쨌든 서방에서 동방으로 기독교가 전파된다는 방향성은 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실제로 동방선교가 서방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5)    둘째, 24절입니다; “24.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19:24); 선지서를 저술하고 있는 이사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의 세계는 이스라엘과 애굽 그리고 앗수르라는 3개의 나라가 전부일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주전 8세기의 사람 이사야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넓은 세계관입니다. 이사야는 그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는 주요 3개국을 대목에서 전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세계는 전부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6)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가 세계에 다가오고 있음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눈으로 시대를 미리 바라보면서 대목을 뚜렷이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라고 하는 순서가 다음과 같이 또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스라엘에서 탄생하고 애굽에서 자라나서 동방으로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앞으로 애굽의 곱틱교회에 대한 연구가 더욱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7)    셋째, 25절입니다;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시며 이르시되, 백성 애굽이여, 손으로 지은 앗수르,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5); 대목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저히 형용할 없는 표현의 기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 애굽에 대하여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앗수르에 대하여 내가 지은 나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에 대하여 특별히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명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8)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입니다(3:7, 5:1).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바로의 백성들입니다(8:29).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독하게도 듣지 아니하는 완악한 자입니다(8:15). 그의 백성들인 애굽인들도 그러합니다(9:34). 그런데 이사야는 그와 같은 바로의 시대가 이미 지나가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멀지 아니하여 세상임금들이 쫓겨나고(12:31-32)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호세아의 글과 사도 바울의 글이 그러합니다;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백성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것이라”(1:10b), “내가 백성 아닌 자를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9:25b).

9)    창세기를 보면, 앗수르는 노아의 장자인 셈의 차남입니다(10:22). 셈은 아버지 노아로부터 여호와신앙을 대물림하고 있는 훌륭한 장자입니다. 셈에 대한 부친 노아의 축복이 다음과 같습니다; “26.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9:26a). 물론 앗수르의 자손들이 때로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의 역사를 보면 회개의 영이 그곳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파견하였을 때에 그들이 회개함으로 멸망을 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4-10). 이사야는 그와 같은 회개의 역사가 다시 앗수르에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복이 있을지어다”(19:25).

10)  복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스라엘이 가장 복이 있는 나라와 민족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업을 또다시 상속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찍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 강을 건너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나안 땅을 상속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11:23). 그리고 장차 그들 12지파가 다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기업을 얻을 것입니다. 대목을 계시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21:10-12).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애굽제국에 강림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우상을 섬기고 있던 애굽 사람들의 장자는 전부 죽임을 당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명령을 따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전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밤에 애굽에 강림하셔서 그렇게 일일이 행하신 결과입니다. 따라서 그때부터 애굽제국의 백성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섬겼더라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애굽제국의 백성들이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있으므로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게 되면 제국이 무너지고 폭군의 지배를 받다가 멸망당하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 가운데 내분이 발생하고 정신사조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섭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경제는 발전하고 있는데 지역적으로 내분이 발생하고 애국애족(愛國愛族)하는 정신사조가 크게 무너지고 있는 나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한민족의 입장에서도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그와 같은 입장에서 냉철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참여하는 민족이 되도록 애써야만 것입니다. 그것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과 성도들의 시급한 책무라고 하겠습니다.

고대사회인 애굽제국 뿐만이 아닙니다. 이사야가 그와 같이 예언하고 있던 주전 8세기뿐만 아니라 2,700년이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주후 21세기에도 그러합니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세계의 정복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재해가 발생하고 농업생산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에 따라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인류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풍요로운 나일 강변의 나라 애굽제국에 찾아 들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만 합니다. 당시의 애굽 제국은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적인 꾀와 무력으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왕조들입니다. 요컨대, 한번도 여호와를 창조주답게 대접한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당시에 애굽제국을 멸망시키지 아니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뜻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바로와 신하들은 완악합니다. 그대로 역사가 진행된다면 그들은 주전 5세기에 드디어 페르시아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애굽제국에 강력하게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제국이 정치적으로 분열하고 경제적 기반이 송두리째 절단이 나기 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풍요의 상징인 나일 강에 악취가 나고 강물이 가뭄에 말라간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징계가 크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경고는 오늘날 세상적인 방법으로 일관되게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 모든 위정자들에게 주고 있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우외환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겸허하게 자기성찰을 해야만 합니다. 가운데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을 발견해야 것입니다.

결과 무엇을 개혁하고 창조주의 뜻을 실천해야만 하는지 합의를 이루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정책결정해 나갈 때에 비로소 나라가 살고 민족이 다시 사는 새로운 역사가 전개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위로부터 임하기를 시간 간절히 기도하고 싶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