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사야가 조국 유대왕국의 미래를 내다보고서 동일하게 신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 당하는 모압왕국을 위하여 진심으로 애도하다”(사15:1-16:14)
설교일; 주후 2026년 7월 1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7월 10일 목요일 작성)

본문 제15장과 16장은 제14장과 제17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구성과 분량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하나 들고 있습니다. 그 연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사야 제14장은 32절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이슈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 신바벨론제국의 멸망과 유대인 포로들이 해방을 얻어 고토로 귀환한다는 예언이 제1-5절과 제21-23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선민의 나라와 여러 주변국을 모조리 정복하여 자신의 제국을 완성하겠다고 대규모 원정에 나서는 교만한 패권형의 국가들을 앞으로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사탄의 무리로 규정하고 그들을 전부 없애 버리겠다고 제6-20절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선지자 이사야의 미래에 대한 예언과 관련하여 실제로 이루어지는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간략하게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바벨론제국이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정복하고 그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노예처럼 부립니다. 그런데 47년이 지나자 주전 539년에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졸지에 주변 아리안 국가들의 협공으로 무너집니다(단5:30-31).
2) 메소포타미아의 천하를 재통일하게 된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제국의 시대를 출범하면서 그 모든 위업이 선지서 이사야 제44-45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고서 여호와께 보은하고자 포로가 되어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고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황가에서 재정지원을 하여 제2성전을 짓도록 지원하겠다는 칙령을 내려주고 있습니다(스1:1-4).
3) 그 결과 이듬해부터 유대인 유민 가운데 10분의 1정도가 다윗왕가의 후계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가문의 후계자 예수아의 인도로 고토에 돌아와서 귀환한 동포들과 함께 감격스럽게도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을 건축합니다(사6:13). 그렇게 솔로몬성전이 붕괴가 된 이후 70년만에 성전을 재건하고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선민 유대인사회가 재건되었음을 대내외적으로 공포합니다(렘25:11, 주전 605년에 바벨론포로가 시작되고 70년이 지나 주전 535년에 포로가 고토로 귀환하게 됨을 말하기도 함).
(3) 둘, 제14장에서 이사야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주전 722년에 멸망시킨 바가 있는 앗수르제국의 멸망을 제24-27절에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전 8세기에 남조 다윗왕조 유대왕국에서 선지자로 활동했던 이사야이기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멸망은 그의 생전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주전 609년에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앗수르제국의 미래지사는 그에게 있어서 순전히 여호와의 말씀에 따른 예언입니다.
1) 그런데 역사적인 순서에 있어서는 앗수르제국의 멸망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신바벨론제국의 멸망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그 순서를 바꾸어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량이 매우 적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선지자 활동을 한 이사야에게 있어서 조국은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고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은 그저 동포국가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의 선지자인 이사야가 보기에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참여한 그 옛날 이스라엘 10지파는 처음부터 끝까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섬겼으며 창조주 여호와를 우상의 하나로 취급한 용서할 수 없는 배교자들입니다.
(4) 셋, 갑자기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소멸시키리라는 예언이 제14장의 말미인 제28-32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선지자 이사야가 제국이 아닌 주변국가의 하나인 블레셋의 미래에 대하여 가장 먼저 예언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아오는 동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 선민을 괴롭힌 나라가 블레셋이기 때문입니다.
1) 그런데 기이하게도 주전 701년에 다윗왕조의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무도한 앗수르 침략군의 여호와모독사건을 아뢰고 처벌을 간구하자 그 소원이 받아들여져서 하룻밤에 죽음의 천사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을 포위공격하고 있던 앗수르 원정군 18만 5천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그들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 결과 어부지리로 앗수르 군대에게 점령당해 있던 블레셋이 되살아 납니다;

2) 그렇지만 블레셋의 왕들과 백성들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다가 주전 604년경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의 공격으로 지상에서 완전히 블레셋 5도시국가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 뒤를 이어 역시 여호와신앙에서 이탈한 다윗왕조 유대왕국마저 주전 586년에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살아남은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기록되고 있는 제15장과 16장에 있어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무려 2장을 전부 사용하여 모압왕국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그들의 멸망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애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훗날 발생하게 되는 모압왕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또한 그 사건을 가슴 아파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두가지 이유를 먼저 살펴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1) 첫째, 그 옛날 모세가 출애굽 해방을 맞이한 동족 이스라엘 12지파를 인솔하여 여호와께서 주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자 했을 때에 조상 아브라함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땅을 침범하지 말라고 하는 특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모세가 인도하는 이스라엘 12지파는 미디안, 에돔, 모압, 암몬 등의 왕국을 침범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땅을 우회하여 요단강 동편에서 아모리 족속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대상 가운데 모압왕국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이스라엘족속과 모압족속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인연으로 얽히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면 유대지역의 유민들이 물이 풍성한 동편의 왕국 모압으로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의 여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1) 그 가운데 시집의 여호와신앙을 끝까지 따르고자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고 들어온 모압 여인 룻의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그녀가 기업을 무르는 시부의 친척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았는데 그 후손이 바로 다윗대왕인 것입니다(룻4:13-22, 마1:5-6). 그래서 그런지 모세의 말년에 이스라엘 청년들이 싯딤에서 모압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인근 브올 산으로 올라가서 우상 바알을 섬기는 제사에 참여하고 2부순서로 여사제들과 혼음을 즐긴 영적이고도 성적인 타락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에 여호와의 처벌이 참으로 이상합니다(민25:1-3).
2) 그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모압왕국에 책임을 묻지 아니하고 발람의 미인계를 받아들여 그 사단을 일으킨 미디안 왕들을 처벌하고 있는 것입니다(민31:2-8). 생각해보면, 미디안의 추장이며 왕들의 하나인 수르의 죄나 모압의 왕인 발락의 죄나 모두 무겁습니다(민23:27-30, 24:25, 31:8, 25:15). 그런데 어째서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가 낳은 아들 미디안의 후손들에게만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으로 군대를 보내어 보복하고 아브라함의 장조카 롯의 아들인 모압의 후손들에게는 전혀 책임을 묻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요?
3) 그 알 수 없는 애증의 관계가 오늘의 본문 제15-16장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두가지로 짐작이 됩니다; 하나는, 다윗왕조의 조상 가운데 여호와신앙을 선택한 이민자 모압여인 룻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민족이 살고 있는 변방 가나안 땅에 선지자로 들어왔을 때에 장조카 롯이 조부 데라의 막대한 재산상속을 포기하고 백부 아브라함의 신앙노선에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아브라함과 한때 동행하였던 롯의 가문이기에 그 자손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손이 항상 활짝 펼쳐져 있다고 하겠습니다(사65:1-2);

참고로, 이사야 제17장에서는 다윗왕조의 아하스 왕 때에 유대왕국을 침략한 두 왕국 북조 이스라엘왕국과 다메섹의 아람왕국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 한꺼번에 수록되고 있습니다.
아하스 왕이 북쪽 두나라의 군대가 연합하여 침범하자 크게 당황하여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 앗수르제국의 황제인 불(Pul)에게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 결과 주전 732년에 다메섹이 앗수르군대에게 점령당하고 10년후에는 사마리아마저 앗수르군대에게 함락되고 맙니다.
그러한 소식을 선지자 이사야가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에 살면서 생전에 듣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들 두나라의 멸망의 예언을 제17장에 다시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진작 여호와로부터 받은 예언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살아생전에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하나의 교훈이며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고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동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오래 기도한 에스라와 예루살렘 성벽을 완벽하게 재건하기를 기도한 느헤미야의 기도가 생전에 역사적으로 응답 받은 사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순식간에) 모압 알(Ar는 아르논 강 가까운 남쪽에 있는 모압왕국의 수도임. 주전 15세기 모압왕국을 침입한 아모리 족속의 추장 시혼은 아르논 강 이북지역을 점령하여 그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제1도시 헤스본과 제2도시 엘르알레 가운데 전자를 왕도로 삼고 있음, 민21:25-26. 그에 따라 모압 왕 발락은 아르논 강 남부의 요새지 기르에서 북상하여 북벌을 염두에 두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아르논 강 가까이 있는 아르를 왕도로 삼고 있는 것임.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모리 남왕국인 시혼왕국을 모세가 이스라엘군대를 이끌고 점령하여 그 땅을 르우벤 지파에게 주고만 것임. 그것을 보고서 자력으로는 이스라엘군대를 물리칠 엄두가 나지 않는 모압 왕 발락이 아람의 선지자 발람의 주술적인 힘을 빌려서 여호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만들고자 그토록 애를 쓰고 있는 것임)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모압왕국의 왕도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전쟁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음), 하룻밤에 모압 기르(Kir는 수도 아르에서 남서쪽 50리길에 있는 바위로 된 요새임)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모압왕국의 제2도시인 기르마저 함락되고 말 것임). 2. 그들(패전한 모압왕국의 유민들)은 (바알과 그모스의 산당이 있는 성읍) 바잇과 디본(모압 왕 메사의 고향이며 전쟁의 신 그모스의 신상이 있음)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그 옛날 메사 왕 때처럼 패전한 모압의 백성들은 전쟁의 신 그모스에게 번제를 드리고 역전의 기회를 달라고 울며 매달리고 있음, 왕하3:27),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모압 왕 메사가 수복한 이북지역의 북쪽 국경 인근지역의 성읍들임) 위하여 통곡하는도다(북쪽에서 쳐들어온 갈대아군대에게 가장 먼저 빼앗긴 성읍들이므로 그곳에서 모압 백성의 애통이 시작되고 있음).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 3.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조국 모압이 망한 것을 통곡하고 있는 모습임), 4. (모압의 가장 북쪽의 성읍인)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들의 소리는 야하스(그 옛날 아모리 왕 시혼의 군대와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가 전투를 벌인 곳이며 동쪽 국경 중간지점임, 민21:23)까지 들리니(헤스본과 엘르알레 그리고 야하스 등은 아모리 남부 왕 시혼을 치고 모세가 르우벤 지파에게 준 성읍들임. 그러나 주전 840년경 모압 왕 메사가 그곳을 수복하여 차지하고 있었음, 왕하3:4-5, 10, 27), 그러므로 모압의 군사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그들의 혼이 속에서 떠는도다!(모압의 군사가 갈대아군대에게 크게 패하여 패잔병이 되고 만 것임) 5.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여호와의 심정으로 선지자 이사야가 모압왕국의 멸망을 애도하고 있는 것임) 그(모압의) 피난민들은 (모압의 남쪽 국경도시인)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모압의 남동쪽 국경지대에 있는 산지)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6. (모압의 북쪽 국경 오아시스가 있는)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7.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모압의 유민들이 피난 보따리를 가지고 남쪽 에돔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세렛 시내를 건너는 것임, 신2:13-14), 8.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모압 최남단의 성읍)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모압 동쪽 끝의 성읍) 브엘엘림에 미치며, 9. 디몬(디본을 달리 디몬이라고 부르기도 함, 아르논 강 북쪽 중앙지점인 그곳에서 남진하는 갈대아군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압이 총력전을 펼침)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그 결과 전투에서 패하여 모압 병사들의 피가 가득했음)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갈대아군대는 모압의 패잔병은 물론 인근 모압의 백성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포로로 끌고 간 것임)“(사15:1-9);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가 모압을 침략하여 도시들을 점령하고 왕국을 멸망시키는 광경과 피난민이 발생하고 패전한 병사와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을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의 예언으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상세하게 살펴봅니다;
(1) “1.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순식간에) 모압 알(Ar는 아르논 강 가까운 남쪽에 있는 모압왕국의 수도임. 주전 15세기 모압왕국을 침입한 아모리 족속의 추장 시혼은 아르논 강 이북지역을 점령하여 그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제1도시 헤스본과 제2도시 엘르알레 가운데 전자를 왕도로 삼고 있음, 민21:25-26. 그에 따라 모압 왕 발락은 아르논 강 남부의 요새지 기르에서 북상하여 북벌을 염두에 두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아르논 강 가까이 있는 아르를 왕도로 삼고 있는 것임.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모리 남왕국인 시혼왕국을 모세가 이스라엘군대를 이끌고 점령하여 그 땅을 르우벤 지파에게 주고만 것임. 그것을 보고서 자력으로는 이스라엘군대를 물리칠 엄두가 나지 않는 모압 왕 발락이 아람의 선지자 발람의 주술적인 힘을 빌려서 여호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만들고자 그토록 애를 쓰고 있는 것임)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모압왕국의 왕도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전쟁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음), 하룻밤에 모압 기르(Kir는 수도 아르에서 남서쪽 50리길에 있는 바위로 된 요새임)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모압왕국의 제2도시인 기르마저 함락되고 말 것임). 2. 그들(패전한 모압왕국의 유민들)은 (바알과 그모스의 산당이 있는 성읍) 바잇과 디본(모압 왕 메사의 고향이며 전쟁의 신 그모스의 신상이 있음)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그 옛날 메사 왕 때처럼 패전한 모압의 백성들은 전쟁의 신 그모스에게 번제를 드리고 역전의 기회를 달라고 울며 매달리고 있음, 왕하3:27),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모압 왕 메사가 수복한 이북지역의 북쪽 국경 인근지역의 성읍들임) 위하여 통곡하는도다(북쪽에서 쳐들어온 갈대아군대에게 가장 먼저 빼앗긴 성읍들이므로 그곳에서 모압 백성의 애통이 시작되고 있음).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 3.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조국 모압이 망한 것을 통곡하고 있는 모습임), 4. (모압의 가장 북쪽의 성읍인)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들의 소리는 야하스(그 옛날 아모리 왕 시혼의 군대와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가 전투를 벌인 곳이며 동쪽 국경 중간지점임, 민21:23)까지 들리니(헤스본과 엘르알레 그리고 야하스 등은 아모리 남부 왕 시혼을 치고 모세가 르우벤 지파에게 준 성읍들임. 그러나 주전 840년경 모압 왕 메사가 그곳을 수복하여 차지하고 있었음, 왕하3:4-5, 10, 27), 그러므로 모압의 군사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그들의 혼이 속에서 떠는도다!(모압의 군사가 갈대아군대에게 크게 패하여 패잔병이 되고 만 것임)“(사15:1-4);

모압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특이합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 제15장 전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하나, 모압이 망하고 있는 장면이 상세하며 끔찍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사야는 경고를 먼저 보내고 있습니다(사15:1). ②둘, 미리 경고하는 이유는 그 참상을 사전에 알아채고서 부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마음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사15:3). ③셋, 이사야가 모압의 지명을 많이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지명을 중심으로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넷, 우상을 많이 섬기고 있기 때문에 모압이 비참하게 멸망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빨리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애정을 가지고 다시 한번 권면하고 있습니다(사15:5). ⑤다섯, 이사야는 비참하게 멸망을 맞이하게 될 모압 사람들에게 마지막 소망의 끈을 놓치지 말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 훗날 그 땅에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사15:9). 그와 관련하여 여기서는 먼저 역사적인 맥락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이스라엘과 모압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그들은 친척이며 미움보다는 애정이 더 깊은 관계입니다. 그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창세기 제11-12장을 참조하면,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장조카가 ‘롯’(Lot)입니다. 그런데 롯의 아들이 ‘모압’(Moab) 족속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19장의 기록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망하자 롯이 두 딸과 함께 산속의 굴에서 살게 됩니다. 그때 장녀가 아비의 아들을 얻어 동쪽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그 아들이 모압의 조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창19:37);

2) 룻기를 참조하면, 훗날 다윗대왕의 증조모가 모압 여인 ‘룻’(Ruth)입니다(룻1:4).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들어옵니다. 나오미의 친척 보아스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합니다. 이방여인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착한 여인이기에(룻1:16-17, 2:11-12) 보아스의 눈에 들어 그와 결혼하게 되고 그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벳이 기업을 얻게 됩니다. 오벳의 아들이 이새이며 이새의 막내 아들이 바로 다윗대왕입니다(룻4:17, 삼상16:11-13).
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기 전에 모압의 땅을 우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친척관계인 그들의 땅을 침범하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신2:5, 9, 19). 그 사실을 훗날 사사인 입다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15. 그(암몬의 왕)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삿11:15), “18.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삿11:18).
4) 모세는 모압의 느보 산에 올라가 서쪽 가나안 지경을 내려다 봅니다(신34:1-3). 그리고 그 산에서 소천합니다(신34:5-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서 모세가 승천한 모압의 느보 산은 잊지 못할 장소입니다(신34:6-12, 눅9:29-30, 유1:9). 그 만큼 모압 땅에 대해서는 애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사사 시대 모압의 에글론 왕이 한 때 18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지배한 적이 있습니다(삿3:12-14).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사사 에훗을 일으켜서 모압을 물리치고 있습니다(삿3:20-30). 그러한 모압의 지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사사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삿3:12).
5) 모압의 멸망은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과 깊이 연계되고 있습니다.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유대왕국을 멸망시킨 다음에 바로 모압을 점령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모압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세자 주전 582년에 모압을 멸망시키면서 아예 인종청소의 수준으로 철저하게 응징하고 맙니다. 그때의 참사를 이사야가 미리 내다보면서 안타깝게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6) 둘째, 그렇다면 선지자 이사야와 모압과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이사야는 모압의 멸망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심정이 본문에서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모스의 아들인 이사야를(사1:1, 2:1) 다윗의 왕족이거나 모세의 집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 대왕의 증조 할머니가 모압 출신 여인 룻이며 모세가 모압 땅 느보 산에서 소천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사야가 모압에 대해서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기록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7) 셋째, 여호와 하나님과 모압과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롯 가운데 누가 끝까지 여호와의 뜻을 따라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두 사람을 출애굽시키면서 모두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창13:1-2, 6). 그러자 롯이 그만 욕심에 이끌려서 백부 아브라함을 버리고 소돔 성으로 떠나버리고 맙니다(창13:10-13). 자식 없이 가나안 땅에 홀로 남겨진 아브라함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집니다(창13:14-18). 그가 믿음의 조상으로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8) 그러나 롯은 백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데라의 큰 재산을 뒤로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쫓아 가나안으로 떠나온 믿음의 사람입니다(창12:4-5). 여호와는 그 점을 인정하시고 그의 가족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현장에서 천사 둘을 보내어 구해 내십니다(창19:16-22). 그리고 롯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을 가급적 이스라엘과 충돌시키지 않으려고 배려하고 계십니다(신2:9, 19).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모압을 징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우상을 섬긴 모압이기에 그 말로가 비참하기 그지 없습니다(사15:9a). 하지만 복음의 시대가 되면 그들에게도 큰 구원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사15:9b).
9) 넷째, 그러면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를 간략하게 하고자 합니다; 하나, “1.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사15:1);

사해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모압의 정치적 중심지가 알(Ar)과 기르(Kir)입니다. 특히 아르는 수도로서 중요하며 기르는 남서쪽의 요새로서 수도권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차 그곳이 허무하게 멸망 당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 그대로 주전 582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 참상이 너무나 끔찍할 것이므로 이사야는 그 황폐함을 면하기 위하여 사전에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명심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마치 이방도시 니느웨가 회개함으로써 임박한 멸망을 면할 수 있었던 것처럼(욘3:4-10) 모압도 그렇게 되기를 이사야가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10) 둘, “2.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또는 위에서) 통곡하는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사15:2); 바잇과 디본은 모압의 종교적인 중심지입니다. 바알 산당과 그모스 산당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국의 멸망을 면하기 위하여 종교인들이 그곳에 모여 바알과 그모스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으나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높은 산봉우리 느보와 요새지 메드바에서 더욱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가 패전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마지막 방법으로 통곡하면서 머리카락을 밀고 수염을 깎고 있는 것입니다.
11) 셋, “3.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사15:3); 나라가 망할 때에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거리에서 굵은 베로 몸을 동이게 됩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지붕에 올라가거나 넓은 거리에서 함께 모여들어 애곡하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은 훗날 페르시아 제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 지도자 모르드개와 백성들의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에4:1-3). 그런데 그 애곡함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구원을 부르짖는 것이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아니고 왕국의 멸망만 애통해 하면서 애곡하고 있으니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을 얻기에는 미흡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2) 넷, “4.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들의 소리는 각각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군사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그들의 혼이 속에서 떠는도다”(사15:4);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가 사해 동쪽의 에돔을 치기 위하여 어떻게 공격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사해 북단의 요단 강을 건너 그 아래쪽 모압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압의 북쪽 국경도시 헤스본과 엘르알레가 먼저 침략을 받고 있습니다. 패전의 소식이 모압의 중부도시 야하스에까지 들리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서 모압의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5.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여호와의 심정으로 선지자 이사야가 모압왕국의 멸망을 애도하고 있는 것임) 그(모압의) 피난민들은 (모압의 남쪽 국경도시인)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모압의 남동쪽 국경지대에 있는 산지)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6. (모압의 북쪽 국경 오아시스가 있는)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7.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모압의 유민들이 피난 보따리를 가지고 남쪽 에돔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세렛 시내를 건너는 것임, 신2:13-14), 8.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모압 최남단의 성읍)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모압 동쪽 끝의 성읍) 브엘엘림에 미치며, 9. 디몬(디본을 달리 디몬이라고 부르기도 함, 아르논 강 북쪽 중앙지점인 그곳에서 남진하는 갈대아군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압이 총력전을 펼침)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그 결과 전투에서 패하여 모압 병사들의 피가 가득했음)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갈대아군대는 모압의 패잔병은 물론 인근 모압의 백성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포로로 끌고 간 것임)“(사15:5-9);

1) 첫째, 제5절입니다; “5.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피난민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사15:5); 전쟁통에 피난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일찍 피난길에 오른 백성들은 남쪽 국경도시 소알, 에글랏, 슬리시야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난이 늦은 백성들은 적군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대책이 없이 급한 김에 동남쪽의 산지로 올라가기 위하여 루힛 비탈길로 피신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가는 큰 길 호로나임에서 많은 피난민들이 적군을 만나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제6절입니다; “6.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사15:6); 모압 땅은 이스라엘 땅에 비하여 비옥합니다. 물이 많고 비가 자주 오므로 풀이 잘 자라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목축업이 발달하고 농업생산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참화를 입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도 겹치고 있습니다. 니므림 저수지의 물까지 마르고 가뭄이 크게 들고 있습니다. 목초지가 말라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재(人災)에 천재(天災)까지 겹치고 있으니 빨리 창조주 여호와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인 바알 신과 그모스 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살 길이 열릴 것이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3) 셋째, 제7절입니다; “7.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사15:7); 모압 땅이 전쟁과 재해로 황폐해지자 백성들이 유민이 되어 세렛 시내를 건너 남쪽의 이웃나라 에돔과 미디안으로 피난하고 있습니다. 넷째, 제8절입니다; “8.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사15:8); 나라가 망한 슬픔이 미처 피난가지 못한 백성들에게 절망의 부르짖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미 피난한 백성들의 부르짖음은 ‘에글라임과 브엘엘림’이라는 지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압의 백성들은 서쪽이 사해로 막혀 있으며 적군이 북쪽에서 쳐 내려오고 있으므로 결국 나라 남쪽이나 동쪽으로 피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남쪽 국경도시 에글라임과 동쪽 국경도시 브엘엘림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다섯째, 제9절입니다; “9.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에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사15:9); 수도인 ‘알’ 북서쪽 30리 쯤에 있는 요새지가 디몬입니다. 그곳에서 적군을 맞아 수 많은 모압의 용사들이 전사하게 됩니다. 그 결과 디몬의 물에는 피가 가득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창조주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재앙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렇지만 훗날 하나님의 사자가 복음을 들고서 그들에게 찾아가는 날이 임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1. 너희는 이 땅(가나안의) 통치자(다윗왕조의 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음)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그 옛날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왕에게 바친 것과 같이, 왕하3:4), 셀라(에돔의 수도 페드라를 말함, 왕하14:7)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가축을 거느리고 요단 강을 지날 수가 없기에 모압의 양치기들이 염해를 빙돌아 광야를 통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시온에 계시는 왕에게 예물로 양을 드린다는 것임). 2. (그 옛날 다윗왕조의 조상이 되고 있는 룻과 같이, 룻1:16-19)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모압왕국을 이북지역과 이남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르논 강임)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나라 잃은 유민이 되고 있다는 것임). 3.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타향에서 나그네가 되어버린 모압의 유민들을 잘 보살펴주라고 말씀하심. 그것이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아가페 사랑 곧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방도인 것임), 4.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모압처럼 강대국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유민이 되어버린 나그네들을 잘 돌보아주는 것이 선민의 책무임을 밝히고 있는 대목임, 출19:4-6, 마5:44-48).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약소국을 침범하여 속국으로 삼고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오던 패권제국이 반드시 멸망을 당하도록 되어 있음, 사14:3-7), 5.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다윗의 위를 계승하게 되는 메시아의 나라가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를 실천하며 세상제국을 심판할 것임, 사11:1-5). 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비옥한 오아시스를 가진 모압왕국의 왕과 백성들이 자신들의 부를 대외적으로 자랑하면서 마치 제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했음. 그 결과 중동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맞이하고 만 것임) 7.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건포도를 수출하고 있는 모압의 포도 주산지가 길하레셋인데 그곳은 아르논 강과 세렛 시내 사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옛날 모압왕국의 고도였음)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8.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아르논 강 이북지역에서 포도산지가 헤스본과 십마인데 그 지역도 패전으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임).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헤스본의 북쪽에 있는 성읍이며 그곳을 지나면 암몬의 땅임)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모압의 좋은 포도종자가 페니키아를 통하여 지중해 연안지역으로 수출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대목임),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그러한 은혜를 잊어버리고 여러 나라가 모압의 멸망을 애도하지도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 9. 그러므로 내가 (북쪽 국경지대 포도농사의 주산지인)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아르논 강 이북지역의 중심도시인)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부국 모압을 있게 한 비옥한 땅들이 황폐하게 변하고 마는 것임). 10.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교만한 부국 모압을 패망하게 한 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라는 것임). 11.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아르논 강 이남의 중심도시)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12. 모압이 그(전쟁의 신 그모스를 섬기거나 농사의 신 바알을 섬기는)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우상을 섬기는)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모압과 함께 그들의 우상을 벌할 것이기 때문임, 출12:12) 13. 이는 여호와께서 오래 전부터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거니와(여호와께서 옛적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모압에 경고하신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임), 14.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3년내에 모압이 멸망을 당할 것임).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것없이 되리라 하시도다!(보잘 것이 없는 노약자들만이 모압 땅에 남겨져서 농사를 짓고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임, 왕하25:12, 24, 사10:19, 역설적인 표현은 사13:12절임)“(사16:1-1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장조카 롯은 일찍이 백부를 따라 가나안에 함께 들어온 여호와 신앙인이었으나 그의 아들 모압의 자손들은 그러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부를 자랑하며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전혀 실천하지 아니하다가 그만 신바벨론제국 갈대아 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들 유민들에게 부디 시온에 나타나시는 그리스도의 깃발아래로 나아가서 새로운 살길을 도모하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간곡한 당부의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너희는 이 땅(가나안의) 통치자(다윗왕조의 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음)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그 옛날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왕에게 바친 것과 같이, 왕하3:4), 셀라(에돔의 수도 페드라를 말함, 왕하14:7)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가축을 거느리고 요단 강을 지날 수가 없기에 모압의 양치기들이 염해를 빙돌아 광야를 통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시온에 계시는 왕에게 예물로 양을 드린다는 것임). 2. (그 옛날 다윗왕조의 조상이 되고 있는 룻과 같이, 룻1:16-19)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모압왕국을 이북지역과 이남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르논 강임)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나라 잃은 유민이 되고 있다는 것임). 3.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타향에서 나그네가 되어버린 모압의 유민들을 잘 보살펴주라고 말씀하심. 그것이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아가페 사랑 곧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방도인 것임), 4.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모압처럼 강대국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유민이 되어버린 나그네들을 잘 돌보아주는 것이 선민의 책무임을 밝히고 있는 대목임, 출19:4-6, 마5:44-48).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약소국을 침범하여 속국으로 삼고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오던 패권제국이 반드시 멸망을 당하도록 되어 있음, 사14:3-7), 5.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다윗의 위를 계승하게 되는 메시아의 나라가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를 실천하며 세상제국을 심판할 것임, 사11:1-5)“(사16:1-5);

1) 본문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환난을 당하고 있는 모압과 같은 세상에 임하는 메시아의 나라와 성도들의 역할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사16:1-5). 그리고 본문은 구조적으로 앞 절에 이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앞 절 곧 제15장 제9절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압이 끝까지 우상을 섬긴 죄악은 참혹한 전쟁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사15:9a). 또 하나는, 그러나 그 땅에서 하나님께 도피한 자와 여호와신앙을 버리지 아니하고 남은 자들에게는 장차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게 될 것입니다(사15:9b). 본문에서 그 앞 절의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한 구절씩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16장 제1절입니다; “1.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사16:1); 셀라는 모압 남부에 있는 지명으로 보입니다(사42:11, 왕하14:7). 그 말의 뜻은 바위로 된 절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돔에 가까운 곳이며(왕하14 :7) 그곳에 산 꼭대기가 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어(사42:11) 혹자는 페트라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압 사람들에게 어린 양들을 시온 산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사16:1). 그러므로 셀라는 모압의 남부에 있는 이름 난 목축의 중심지라고 그 뜻을 새겨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왜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을 드리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이 땅의 통치자가 이방인으로부터 예루살렘성전에서 어린 양으로 드리는 희생제사를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떠나서 오랜 세월 우상을 섬기고 있는 모압의 백성들이 이제는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이 땅의 통치자가 누구일까요? 앞 절 제15장 제9절 말씀과 관련하여 묵상해보면 그 통치자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마28:18-20).
4) 둘째, 제2절입니다; “2.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사16:2); 아르논 시내는 모압에 있는 작은 강으로서 동쪽에서부터 사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르논 나루에는 물이 있으므로 물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특별히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새의 새끼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모의 집을 떠나서 불쌍하게 헤매고 있는 백성이 모압이라는 지적입니다. 그 부모는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탕자와 같이 우상의 문화 속에서 헤매고 있는 불쌍한 모압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침내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사65:1-2, 출33:19, 눅15:20).
5) 셋째, 제3절입니다; “3.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사16:3); 여호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이 땅의 통치자로 보내셔서 모압과 같은 이방인들에게 죄사함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처신해야만 할까요? 그 점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①하나, “3. 너는 방도를 베풀며”(사16:3a);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파해 주어야만 합니다.
6) ②둘, “공의로 판결하며”(사16:3b); 집단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정의를 가지고 판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마음으로 피조물들의 생명을 모두 살리고 돌볼 수 있는 공의의 정신으로 판단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모두가 죄인이므로 차별하지 아니하고 성도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롬3:9). ③셋, “대낮에 밤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사16:3c); 성도들과 교회는 하나님을 찾아오는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쫓기고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회복하며 거듭난 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7) 넷째, 제4절입니다; “4.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사16:4); 이제는 이방인 모압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올지라도 그 복음을 현지화하는 것은 모압과 같은 이방인 자신들입니다(사66:20-21).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모압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구원의 피난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복음이 모압 땅에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 땅에서 압제와 착취가 사라질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7:12, 25:40-46).
8) 다섯째, 제5절입니다; “5.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사16:5);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머리로 굳건히 설 것입니다(마28:18, 엡1:21-23). 그리스도는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세상적인 정의가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으로 보완되고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나라이며 종말로 하나님 아버지께 바쳐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고전15:24).
(2) “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비옥한 오아시스를 가진 모압왕국의 왕과 백성들이 자신들의 부를 대외적으로 자랑하면서 마치 제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했음. 그 결과 중동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맞이하고 만 것임) 7.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건포도를 수출하고 있는 모압의 포도 주산지가 길하레셋인데 그곳은 아르논 강과 세렛 시내 사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옛날 모압왕국의 고도였음)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8.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아르논 강 이북지역에서 포도산지가 헤스본과 십마인데 그 지역도 패전으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임).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헤스본의 북쪽에 있는 성읍이며 그곳을 지나면 암몬의 땅임)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모압의 좋은 포도종자가 페니키아를 통하여 지중해 연안지역으로 수출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대목임),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그러한 은혜를 잊어버리고 여러 나라가 모압의 멸망을 애도하지도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 9. 그러므로 내가 (북쪽 국경지대 포도농사의 주산지인)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아르논 강 이북지역의 중심도시인)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부국 모압을 있게 한 비옥한 땅들이 황폐하게 변하고 마는 것임). 10.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교만한 부국 모압을 패망하게 한 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라는 것임). 11.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아르논 강 이남의 중심도시)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12. 모압이 그(전쟁의 신 그모스를 섬기거나 농사의 신 바알을 섬기는)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우상을 섬기는)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모압과 함께 그들의 우상을 벌할 것이기 때문임, 출12:12) 13. 이는 여호와께서 오래 전부터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거니와(여호와께서 옛적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모압에 경고하신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임), 14.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3년내에 모압이 멸망을 당할 것임).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것없이 되리라 하시도다!(보잘 것이 없는 노약자들만이 모압 땅에 남겨져서 농사를 짓고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임, 왕하25:12, 24, 사10:19, 역설적인 표현은 사13:12절임)“(사16:6-14);
1) 본문의 내용은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만한 모압의 최후와 창조주 하나님의 눈물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사16:6-14). 그리고 본문은 구체적으로 3가지의 내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①하나,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 이유를 거론하고 있습니다(사16:6, 12). ②둘, 그 때문에 모압 땅에 임하게 될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③셋, 미구에 모압이 당할 참혹한 심판을 바라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고 계심을 이사야가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사16:9, 11). 이제부터 하나하나씩 검토하면서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6-7절입니다; “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7.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사16:6-7);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압의 잘못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교만, 거만, 분노, 자랑 등 4가지 용어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 하나, ‘교만’은 남의 말을 들을 때에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나 뜻보다 자신이 세상살이에 있어서 더 똑똑하고 처세를 더 잘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4) 예를 들면, 창세기 제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판단과 생각을 앞세워서 대담하게 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같습니다(창3:5-6).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창세기 제19장을 참조하면, 모압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장조카인 롯입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천사의 구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의인입니다(창19:16-22). 하지만 그의 자손들인 모압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 둘, ‘거만’은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사랑이 지나치게 되면 거만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항상 옳다고 과신하게 되면 상대방을 평가절하하게 됩니다. 여기서 모압 사람들이 거만해질 수 있는 이유는 물이 많고 풀이 잘 자라며 포도농사가 잘 되어서 생활이 윤택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사는 데 지장이 없어지니 못살고 있는 이웃 백성들이 눈 아래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6) 셋, ‘분노’는 자신의 교만하고 거만한 태도가 통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똑똑하고 잘살고 있는데 주위의 이웃 백성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형편없는 이웃이 감히 그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되어 자존심이 상하고 화를 내게 됩니다. 한마디로 무시를 당했다고 판단하여 상대방에게 분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노는 자신이 옳거나 그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야만 하며 자신을 섬겨 주어야만 하는데 그러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분노하며 전쟁도 불사하게 됩니다. 모압의 태도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7) 넷, ‘자랑’은 세상적인 영광과 성공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시며 찾고자 하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 자랑에 걸맞게 여호와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는 겸손과 온유와 생명살림의 역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없이 세상적으로만 잘 나간다고 자랑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보호해줄 가치가 없습니다. 종내에는 세상적인 힘을 더 많이 가진 제국을 만나서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8) 둘째, 위와 같은 모압의 잘못 때문에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밀어닥칠 것입니다(사16:7-14). 이사야는 장차 바깥에서 오는 전쟁이라는 외환(外患) 이전에 당장 국내적으로 어려움과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모압의 농업중심지이면서 수도 ‘알’의 남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성읍이 길하레셋 일명 ‘기르’(Khr)입니다(사15:1). 모압의 고도인 그곳은 수도 알의 남서쪽 20km에 있는 요새지 기르(Kir)와는 다른 지역입니다. 그곳 길하레셋은 물이 풍부하여 농사가 잘 됩니다. 그래서 사사 시대에 가나안에서 가뭄을 만난 나오미의 남편이 그곳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룻1:1-2). 뿐만 아니라 그곳은 포도농사도 잘됩니다. 일조량이 많아서 포도가 달고 건조하게 되면 양질의 건포도가 생산됩니다. 무게가 줄어 있으므로 수출품으로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9) 그런데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밀 농사가 안되고 포도생산이 안됩니다. 더구나 일조량이 엄청 줄어들어서 건포도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랑스러운 길하레셋의 건포도 떡이 생산 안되고 있습니다(사16:7b). 살 길이 막막해지고 있습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재해를 당했지만 모압 백성들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심판인 줄을 모르고 그저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며 통곡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사16:7ac).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있는 교만하고 거만한 모압 백성들의 말로가 눈에 선하게 보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10) 셋째, 제8-9절입니다; “8.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지중해)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9.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사16:8-9); 내우에 이어서 외환이 찾아들 것입니다. 이사야는 모압의 농업중심지 길하레셋에만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11)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재해가 더 심합니다. 헤스본의 밀 농사와 십마의 포도농사가 모두 망조가 들게 됩니다(사16:8a). 모압의 중부에는 아르논 강이 있어서 농사가 잘됩니다. 하지만 모압을 벗어나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광야가 나타납니다. 농사가 잘 안 되는 북쪽 국가에 농산물수출을 하던 모압입니다. 그 무역의 전진기지가 야셀로 보입니다(사16:8b).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모압의 품질 좋은 포도품종은 페니키아의 무역선을 타고서 지중해 연안국가에 보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연재해의 발생으로 모압의 농업이 무너지자 수출기지 야셀에도 통곡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사16:9a).
12) 이사야는 북쪽의 농업지역 헤스본과 엘르알레의 지명을 또 거론하고 있습니다(사16:9b). 그곳은 선지자 이사야가 ‘사15:4’ 절에서 적의 침공을 받게 되는 북쪽의 도시라고 이미 거론한 바가 있습니다. 모압의 비옥한 땅을 탐내어 이웃나라가 침입하는 것입니다. 특히 모압에 재앙이 들어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힘센 제국의 군대가 북쪽 국경으로 내침하게 될 것입니다(사16:8c, 9c). 이사야가 마치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기이하면서도 아찔한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13) 넷째, 제10-11절입니다; “10.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들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11.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사16:10-11); 기름진 밭에 흉년이 찾아오고 포도원에 생산이 크게 감소하는 것은 자연재해일 수가 있습니다(사16:10a). 그러나 포도를 밟아서 포도주를 생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장정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많이 전사하였기 때문입니다(사16:10b).
14) 그러므로 이사야는 전쟁의 발생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거만한 모압을 심판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이사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사16:10c). 그렇지만 그렇게 모압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다고 이사야는 전하고 있습니다(사16:11a). 특히 수도인 ‘알’은 물론 남부의 중심지 길하레셋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전사할 것을 생각하니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뒤따르고 있습니다(사16:11b).
15) 다섯째, 제12-13절입니다; “12. 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 13. 이는 여호와께서 오래 전부터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거니와”(사16:12-13);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군인들만 전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인들도 신에게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모압의 종교지도자들이 정성을 다하여 바알 신전과 그모라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사16:12b). 그리고 일반백성들은 산당에 올라가서 우상들에게 한마음 한 뜻으로 구원을 기원하고 있습니다(사16:12a). 그러나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사16:12c).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우상들이 어찌할 수가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사16:13, 40:18-19, 44:17-20, 출12:12);

16) 여섯째, 제14절입니다; “14.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3년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 것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사16:14); 이사야가 블레셋과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을 위탁 받은 시점은 주전 715년 경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아하스 왕이 죽던 해 곧 히스기야 왕이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던 해라고 그때를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사14:28). 그렇다면 위의 구절에서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시기 곧 ‘삼 년 내에’(사16:14a)라고 하는 해는 주전 712년경이 됩니다. 그 시기의 특수성과 더불어 본문의 말씀을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17) 앗수르 제국의 군대가 주전 732년에 다메섹을 점령하고 아람왕국을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주전 715년에서 3년간은 사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앗수르의 군대가 틈틈이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을 침략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는 왕국들이 블레셋, 유다, 그리고 모압 등입니다. 그 가운데 다메섹과 사마리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모압이 가장 괴로움을 많이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바로 이사야 예언의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18) 그런데 모압 왕국이 완전히 멸망을 당하는 것은 앗수르제국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훗날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유대왕국과 함께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앗수르 제국의 괴롭힘을 주전 715-712년경에 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라의 존망이 완전히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잦은 전투로 인하여 장정들이 많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 것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사16:14c, 왕하24:14-17).
19) 그 뿐만이 아닙니다. 주변국 아람과 이스라엘에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던 모압에게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국 앗수르가 오늘 날의 유럽공동체처럼 제국 내에서의 무역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출길이 막힌 모압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제국에 반항하고 있는 모압을 비방하는 제국의 선전이 날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국가적인 어려움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사16:14b).
결론적으로, 모압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의 묘사는 끔찍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보자면, 모압은 친척입니다. 아브라함의 장조카 롯의 아들이 모압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한 모세에게 모압을 침략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더구나 모압 여인 룻이 다윗 대왕의 증조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도 모압의 느보 산에서 눈을 감고 소천했습니다.
사사시대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18년간 통치한 것도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근절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모압의 앞날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속 우상을 섬기게 되면 엄청난 전쟁의 참화와 자연재해를 입게 될 것이니 빨리 회개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기회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방인이 되어버린 모압과 같은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구원의 기회이며 유일한 소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전란과 재앙은 언제 끝나게 될까요? 이사야는 모압의 경우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통치자로 오시는 그때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압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자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나아가서 세상사람들이 누구나 더이상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지 아니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공의로운 세상이 되면 자연히 압제와 착취가 사라질 것이라고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과 교회가 그 일에 앞장을 서야만 할 것입니다. 당장은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그들을 맞아들이고 보호하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당장 교회의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날의 요르단 남부지방이 그 옛날 모압의 땅입니다. 그곳은 물이 많고 비가 많이 와서 풀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목축이 성행했으며 밀농사도 풍작입니다. 그리고 산간지역에서는 포도농사가 잘되어 건포도 떡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고 있던 나라입니다(사16:7).
하지만 모압은 이웃나라를 깔보고 스스로 교만하고 거만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많이 섬기면서 세상자랑이 많은 백성들입니다. 그 때문에 그 나라에 내우외환이 크게 발생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당장 3년 내에 다메섹과 사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앗수르제국 군대의 잦은 침략으로 많은 희생이 있게 될 것이라고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국의 경제봉쇄로 모압은 농산물 수출길이 막히게 되어 국력이 쇠하게 될 것이라고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오늘날 국제정세에 비추어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아니한 고대사회의 국제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에 비추어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말며 사람들 앞에 거만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영화를 너무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남을 탓하면서 매사 분노할 일도 아닙니다.
오로지 겸손하고 정직하게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 말씀을 묵상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살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민족이 소원하고 있는 통일의 길도 그 안에 해답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 앞에 성도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