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사야가 미래 예언으로 바벨론에 대한 경고를 발하다”(사13:1-22)
설교일; 주후 2026년 7월 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7월 4일 금요일 작성)
예로부터 일년은 12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13번째의 달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번외의 달이며 일년 12달의 종말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본문인 이사야 제13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실제로 그것이 13번째의 달과 비슷합니다.
그 내용이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지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중동 땅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을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여호와께서 마침내 심판하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바벨론을 없애 버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참조하면 인류의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계16-18장).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내용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제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자신을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대사회에서 부친의 이름자를 먼저 붙이고 있는 경우는 두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①하나는, 부친의 가문이 사회적으로 저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친의 이름을 먼저 말하면 자신의 신분을 쉽게 밝힐 수가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자신의 이름으로 행세하기에는 사회적으로 아직 이르다는 생각 때문에 부친의 이름자를 먼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본문의 예언은 선지자 이사야의 활동초기의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사1:1, 2:1).
(2) 둘째, 제2절에서 ‘민둥산’과 ‘존귀한 자의 문’이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민둥산은 나무가 울창하고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있던 산이 그만 초토화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들이 서로 다투고 분쟁하다가 마침내 전쟁을 일으켜서 서로 공멸의 지경에 처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인류문명의 종말의 시기에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의 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본문에서는 ‘존귀한 자의 문’이라고 하겠습니다(사65:17-18, 계21:1-2).
(3) 셋째, 제3절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자들’이라는 용어를 이사야가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천성을 의미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제21장 말미의 내용을 참조하면 그 의미가 생생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2-27).
(4) 넷째, 제4절에서 “열국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민족군대’가 신바벨론황제의 명령으로 구성이 되어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망하고자 함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사실을 이스라엘의 역사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3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이사야를 위시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3. 이 일이 유다(왕국)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왕 시대)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왕하21:9-15),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왕하21:16b)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왕하24:1-4).
(5) 다섯째, 제6절과 9절에서 ‘여호와의 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역사심판의 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사13:6, 9). 본문에서는 두가지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멸망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의 진노의 병기로 사용한(사13:5) 신바벨론제국 자체를 심판하고 역사적으로 멸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사야의 뒤를 잇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예루살렘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이 세상의 종말 때까지 적용이 되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5:29).
(6) 여섯째, 제10절에서 이사야는 “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사13:1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을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29-31). 한마디로, 인류역사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는 정확한 예언인 것입니다.
(7) 일곱째, 제12절에서는 세상의 역사의 종말과 더불어 발생하게 되는 인류의 엄청난 희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수가 그렇게 많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2.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사13:1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 남기고 있는 소위 구원받는 선민의 수가 다음과 같습니다;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계7:4).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 제12장의 기록을 참조하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의 수는 장정만 세어도 60만명정도이므로 전체 수는 200만명이 넘습니다. 그러므로 14만 4천명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 그대로 전체의 10분의 1도 못되는 수가 이른바 ‘남은 자’인 것입니다(사6:13).
(8) 여덟째, 제17절과 18절에서 ‘메대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메대 사람은 동서양 유라시아의 유목민들이 중간지점인 카스피해에서 만나 서로 통혼을 하고 혼혈을 이루어 만들어진 일명 ‘아리안족속’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카스피해에서 남진하여 비옥한 메소포타미아지역을 점령하고자 시도했으니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메소포타미아지역을 선점하고 있는 제국의 힘이 역사적으로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메대인들은 훗날 같은 아리안족속으로서 이란북부 엘람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바사인들과 연합하여 신바벨론제국의 수도를 기습적으로 공격합니다(단5:28-31). 당시 제국의 황제인 나보니더스는 정예병을 이끌고 아라비아 북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반란을 진압하고자 10년세월을 수도를 떠나 변방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황제 대신에 수도인 바벨론 성을 지키고 있는 왕이 다니엘 선지자의 글에 따르면 벨사살인데 그가 정무를 제대로 돌보지 아니하고 국방을 소홀히 하여 그만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게 패하고 마는 것입니다(단5:1, 30-31);
(9) 아홉째, 제19절에는 ‘갈대아 사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갈대아 사람은 본래 아람 족속의 한 갈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남하합니다. 그들 이주민들의 수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 시날 평야에서 자꾸만 많아집니다(창10:10). 그에 따라 시날 땅을 차지하게 되고 그 지명을 아예 ‘갈대아인이 우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창11:31). 갈대아 인들이 훗날 왕조를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갈대아 왕조이며 고대 바벨론입니다. 그 가운데 강력한 황제가 등장하는데 그 이름이 나보폴라살입니다. 그가 중동지역의 패권국을 형성하게 되어 신바벨론제국을 창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뒤를 느부갓네살 황제가 잇고 있는데 그는 더욱 뛰어난 영웅 왕입니다. 그가 갈대아 군대를 강력하게 조련하고 서진하여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을 모조리 정벌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주전 597년경 유대왕국을 칠 때에는 이미 정복한 왕국의 군대를 상당수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에 대한 기록이 이미 살펴본 그대로 열왕기하 제24장 제2절이라고 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이사야를 위시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왕하24: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부친의 이름을 먼저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젊은 시절 이사야의 예언으로 보임, 사6:9-13)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2. 너희는 민둥산(전란으로 황폐화가 된 산야를 말함) 위에 (구원주 그리스도의) 기치(사11:10)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존귀한 자의 문(구원의 문 곧 새 예루살렘의 성문을 의미함, 계21:24-27)에 들어가게 하라. 3. 내(여호와)가 거룩하게 구별한 자(성도)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여호와의 군사, 출12:41, 17:9-11)들을 불러 나의 노여움을 전하게 하였느니라. 4. 산에서 무리의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5. 무리가 먼 나라(땅끝)에서, 하늘 끝에서(천군천사들, 창32:1-2, 마26:53)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의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6. 너희는(선민 다윗왕조의 왕과 백성들은)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창17:1, 엘 샤다이)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7. 그러므로 모든 손의 힘이 풀리고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출19:16, 33:20, 벧후3:12). 8.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해산이 임박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이 불꽃 같으리로다(영생과 영벌의 기로에 선 것임, 요5:24-29, 마25:40-46)”(사13:1-8); 선지자 이사야는 종말의 전쟁에 대하여 여호와의 편에 서고 있는 군대와 악한 세력 바벨론의 편에 서고 있는 군대를 비교하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유의하여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부친의 이름을 먼저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젊은 시절 이사야의 예언으로 보임, 사6:9-13)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2. 너희는 민둥산(전란으로 황폐화가 된 산야를 말함) 위에 (구원주 그리스도의) 기치(사11:10)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존귀한 자의 문(구원의 문 곧 새 예루살렘의 성문을 의미함, 계21:24-27)에 들어가게 하라. 3. 내(여호와)가 거룩하게 구별한 자(성도)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여호와의 군사, 출12:41, 17:9-11)들을 불러 나의 노여움을 전하게 하였느니라. 4. 산에서 무리의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5. 무리가 먼 나라(땅끝)에서, 하늘 끝에서(천군천사들, 창32:1-2, 마26:53)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의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사13:1-5);
1) 이사야는 본문의 예언을 하면서 무척 신이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군대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의 임금들이 쫓겨날 것입니다(요12:31). 당장 역사적으로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황제가 신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의 의미는 훗날 종말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왕으로 다시 오셔서 군대를 이끄시고 세상나라를 전부 정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계19:11-21). 사탄의 세력과 적그리스도 그리고 거짓선지자들이 체포되어 심판에 처해질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구원과 부활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놀라운 종말전쟁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선지자 이사야가 여기서 당장은 신바벨론제국의 멸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이 나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2. 너희는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3.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자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를 불러 나의 노여움을 전하게 하였느니라. 4.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5.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끝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의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사13:1-5). 중요한 대목만 간추려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3) 첫째, “2. 너희는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고”(사13:2a);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는 이유는 사면팔방에서 누구나 쉽게 그 깃발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대장의 깃발은 각 군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누구나 그 깃발의 모양과 색깔을 보고서 무슨 작전을 수행해야만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치에 대해서는 2가지로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①하나, 그것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만민을 구원하는 깃발로 세우신 것입니다(사11:10). ②둘,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열방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끌어 모으는 깃발로 삼으시고 있는 것입니다(사11:12).
4) 둘째,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사13:2b); 역사적으로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고레스 황제의 페르시아 군대는 여호와를 섬기는 하나님의 군대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잠시 펴기 위하여 한동안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존귀하신 자 곧 하나님의 성전의 문에 들어가는 군대는 다릅니다. 그들은 성도들이며 종말전쟁을 위하여 동원되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5) 셋, “3.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자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를 불러”(사13:3); 본문의 이사야의 예언이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는 페르시아 군대의 위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은 지상 마지막 제사장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제국은 묵시록과 계시록에 있어서 의미상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있는 세상나라와 권세의 총집합으로 간주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나라를 심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군대로 불러 모으시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적으로는 영적인 전쟁이, 종말론적으로는 마지막 전쟁이 수행되는 것입니다.
6) 넷,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사13:4b);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면 종말이 오게 됩니다(마24:14). 그러므로 열국 민족이 모두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성스러운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사13:4c); 다윗대왕이나 모세를 시켜서 군대를 점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직접 검열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모든 세력이 집결되어 있기에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시고 그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계19:11-16).
7) 여섯, “5.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끝에서 왔음이여”(사13:5a); 이 땅에서의 성도들만 동원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천사들도(마26:53) 그 마지막 전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곱,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사13:5b); 바벨론을 사탄과 함께 멸망시키는 것이 지상 마지막 전쟁 곧 여호와의 종말 전쟁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기 위하여 세상 온 땅을 멸하는 전쟁이 있게 될 것입니다(벧후3:12, 계20:7-10, 21:1).
(2) “6. 너희는(선민 다윗왕조의 왕과 백성들은)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창17:1, 엘 샤다이)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7. 그러므로 모든 손의 힘이 풀리고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출19:16, 33:20, 벧후3:12). 8.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해산이 임박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이 불꽃 같으리로다(영생과 영벌의 기로에 선 것임, 요5:24-29, 마25:40-46)”(사13:6-8);
1) 본문에서 이사야의 예언 ‘여호와의 날’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면서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복이 마침내 끝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직접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자가 이 세상을 오신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때가 가까워지면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지에 관하여 이사야가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사13:6); ‘여호와의 날’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과 만민 앞에 그 영광을 친히 드러내시는 날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종말을 고하며 모든 피조물들의 운명은 다음과 같이 결정되고 맙니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그날은 한마디로, 옛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창조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옛 것에 사로잡혀 구태의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사13:6의 의미).
3) 둘째, “7. 그러므로 모든 손의 힘이 풀리고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사13:7); 세상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은 인생 가운데 누구나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태어난 모든 존재에게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임종을 맞이하는 그때가 되면 모든 활동을 중지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손의 힘이 사라지게 됩니다(사13:7a). 또한 살고자 하는 욕구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일시에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을 이사야는 촛물과 같이 녹아버린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사13:7b).
4) 셋째, “8.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해산이 임박한 여자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이 불꽃 같으리로다”(사13:8); 여호와의 날은 생각하지 못한 때에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놀라게 됩니다. 그날을 맞이할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줄 알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모두들 정신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짓말처럼 종말이 닥친 것입니다. 그에 따라 마음이 괴롭고 슬픕니다(사13:8a).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아무 것도 소유할 수가 없으며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영원히 헤어지는 그 고통의 시간에(사13:8b) 모두들 붉어진 얼굴로 서로 쳐다보고 있을 뿐입니다(사13:8c).
둘째로, “9.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여호와의 역사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그 땅과 거주민을 완전히 멸하는데 오직 의인들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임), 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종말의 징조를 말하고 있음, 마24:29). 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죄악을 완전히 청산한다는 것임, 계20:13-15), 12.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는 백성의 수가 크게 증가하게 됨, 마24:40-42) 13.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이른바 경천동지, 驚天動地를 말함)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현존하는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것임, 사65:17-18, 계21:1-2), 14.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이 땅의)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창25:8, 35:29, 49:33, 전3:20-21) 각기 (영생의) 본향으로(히11:16) 도망할 것이나, 15.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병을) 만나는 자마다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마다 칼에 엎드러지겠고(전란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는 것임), 16.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들의 목전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어린아이까지 희생이 되고), 그들의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재물을 약탈 당하고), 그들의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여인들이 적병의 노리개감이 되고 만다는 것임. 한마디로 목불인견의 세상이며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임). 17.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약탈민족으로 사는 것보다는 아예 비옥한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하고자 하는 아리안 족속임) 내가 충동하여 그들을(메소포타미아지역의 패권국인 앗수르제국에 이어 신바벨론제국을) 치게 하리니, 18. 메대 사람이 활로 (전쟁을 치러 나아온)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태중의 아기)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죄 없는) 아이를 애석하게 보지 아니하리라. 19. 열국의 영광이요 (신바벨론제국의 지배 족속)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피정복민들 말함)가 된 바벨론(제국 전체를 의미함)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단5:30-31), 20. 그 곳에 거주할 자가 없겠고 거처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사람이 살 수 없도록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마는 것임), (유일하게 신바벨론제국에 병합되지 아니한)아라비아 사람도 거기에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바벨론 땅을 차지하지 아니한다는 것임) 목자들도 그 곳에 그들의 양 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목초 대신에 엉겅퀴와 찔레가 자라고 있어 가축을 칠 수가 없을 지경임),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22.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완전한 폐허가 됨을 의미함).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이 세상이 종말이 가까우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게 되리라)”(사13:9-22); 선지자 이사야가 이 세상에 임하는 종말과 신바벨론제국의 종말을 동시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9.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여호와의 역사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그 땅과 거주민을 완전히 멸하는데 오직 의인들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임), 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종말의 징조를 말하고 있음, 마24:29). 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죄악을 완전히 청산한다는 것임, 계20:13-15), 12.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는 백성의 수가 크게 증가하게 됨, 마24:40-42) 13.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이른바 경천동지, 驚天動地를 말함)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현존하는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것임, 사65:17-18, 계21:1-2), 14.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이 땅의)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창25:8, 35:29, 49:33, 전3:20-21) 각기 (영생의) 본향으로(히11:16) 도망할 것이나, 15.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병을) 만나는 자마다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마다 칼에 엎드러지겠고(전란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는 것임), 16.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들의 목전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어린아이까지 희생이 되고), 그들의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재물을 약탈 당하고), 그들의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여인들이 적병의 노리개감이 되고 만다는 것임. 한마디로 목불인견의 세상이며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임)”(사13:9-16);
1) 첫째, “9.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사13:9); 창조주 앞에서도 자신들이 옳다고 우기고 있는 피조물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처벌하실까요? 죄인들을 멸하실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인 땅까지 초토화시켜버리고 말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그 옛날 노아의 홍수심판이 다시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창6:13).
2) 둘째, “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사13:10);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을 만드신 이유는 모든 생명체들이 빛을 받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창1:14-19). 그런데 죄인들을 영원히 멸하는 종말심판이 임하게 되면 더 이상 그 천체의 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 결과 천체의 빛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3) 셋째, “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사13:11); 하나님 앞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보다 자신의 생각과 뜻이 더 옳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이며 오만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신의 방법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세상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강포를 행하며 거만한 자들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게 되면 죄인과 악인을 모두 강력하게 심판하고 처벌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12.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사13:12); 희소하고 희귀한 것은 값이 많이 나갑니다. 그 희소성과 희귀성 때문에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러한 것입니다. 죄인과 악인이 득세하고 있는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의인을 발견하기가 힘이 듭니다. 예를 들면,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을 당할 때에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창18:32, 19:12-25). 그러한 현상은 종말의 때가 되어갈수록 더욱 심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5) 다섯째, “13.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사13:13); 하나님께서 창조한 천지는 하나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법칙은 자기 지위를 지키며 주어진 자기 자리와 궤도를 떠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욥38:33).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수행하고 있을 때에 피조세계가 그 모양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며 자기 처소를 떠난 피조물들이 온 우주에 가득합니다(유1: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과 땅을 아예 없애 버리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있습니다(사65:17, 벧후3:13, 계21:1).
6) 여섯째, “13.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사13:13);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의 반지름은 약 6,400km입니다. 따라서 지구표면에서부터 6천4백 킬로미터 정도 깊이 들어가게 되면 지구의 중심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는 사람이 살고 있는 표면인 흙의 층을 제외하면 모두 용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암에서는 모든 물질과 생명체가 녹아버립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덮여 있는 표면의 층’(surface of soil)이야말로 지구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키우며 돌보고 있는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7) 그렇게 중요한 표면 흙의 깊이가 어느 정도될까요? 평균 10km정도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구는 흙으로 된 표면의 층 10km를 제외하면 나머지 6,390km 곧 99.8%가 전부 용암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단지 0.2%미만인 표토층이 용암의 분출을 억누르며 인류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 지구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99.8%인 불기운이 지구의 표층을 뚫고서 분출된다고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그 대답을 이사야의 본문 예언이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8) ①하나, 창조주를 떠나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인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분노하십니다. 드디어 그 노를 참지 못하시게 되면 인류에게 종말이 임하게 됩니다(사13:13a). ②둘, 먼저 하나님께서 하늘을 진동하게 만듭니다(사13:13b). 그리하면 땅이 흔들리게 됩니다(사13:13c). 그 이유는 욥기의 설명 그대로 하늘의 궤도와 지구의 움직임이 서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욥38:33). ③셋, 지구가 흔들리게 되자 그 표층에 살고 있는 인류가 불안을 느끼고 도망치기에 급급합니다. 어디로 피난할까요? 본능적으로 본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사13:13d).
9) 일곱째, “14.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각기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각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15. 만나는 자마다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마다 칼에 엎드려지겠고”(사13:14-15);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본향은 두가지입니다. 먼저는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을 말하고 있습니다. 훗날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약상의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천국에 있는 본향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했다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10)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가 살고 있던 시대의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천국으로 돌아가서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신앙을 떠나서 살고 있습니다. 그저 한평생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행세하면서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왕하20:16-19).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종교적인 행위와 율법의 준수가 모두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장수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보험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땅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변고가 발생하자 본능적으로 믿음의 조상들이 살고 있던 땅으로 피난을 가며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11) 이사야는 그 점에 대하여 그러한 피난의 코스는 마치 쫓기고 있는 노루나 목자가 없는 양들이 본능적으로 각기 본향을 찾아서 도망가는 이치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사13:14). 그러나 그 결과가 비참하기 그지 없습니다. 고향과 본향 그 어디를 찾아가도 이 땅에서는 안전한 피난처가 없습니다. 지구의 표토면이 완전히 붕괴되고 있는데 어디에서 삶의 안전을 도모할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자신들은 의로운 백성들인데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잘못을 범하여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서로 잡아 죽이고 있습니다. 요컨대, 세상의 본향을 찾아가도 서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의 지옥만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입니다(사13:15).
12) 여덟째, “16.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그들의 목전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 그들의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들의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사13:16);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2장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출범시킴으로써 여호와 앞에 의미 있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창2:20-25). 그런데 이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①하나,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과 전쟁으로 말미암아 희생양으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사13:16a). ②둘, 서로 남의 것을 약탈하고 착취하여 욕심껏 이 땅에서 영화를 누리고자 합니다(사13:16b). ③셋, 힘이 약한 자의 아내는 강한 자에 의하여 정조를 빼앗기게 됩니다(사13:16c). 그것이 말세입니다. ④넷, 곧이어 여호와의 날이 임하며 종말심판이 실시가 된다고(사13:6)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2) “17.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약탈민족으로 사는 것보다는 아예 비옥한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하고자 하는 아리안 족속임) 내가 충동하여 그들을(메소포타미아지역의 패권국인 앗수르제국에 이어 신바벨론제국을) 치게 하리니, 18. 메대 사람이 활로 (전쟁을 치러 나아온)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태중의 아기)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죄 없는) 아이를 애석하게 보지 아니하리라. 19. 열국의 영광이요 (신바벨론제국의 지배 족속)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피정복민들 말함)가 된 바벨론(제국 전체를 의미함)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단5:30-31), 20. 그 곳에 거주할 자가 없겠고 거처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사람이 살 수 없도록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마는 것임), (유일하게 신바벨론제국에 병합되지 아니한)아라비아 사람도 거기에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바벨론 땅을 차지하지 아니한다는 것임) 목자들도 그 곳에 그들의 양 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목초 대신에 엉겅퀴와 찔레가 자라고 있어 가축을 칠 수가 없을 지경임),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22.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완전한 폐허가 됨을 의미함).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이 세상이 종말이 가까우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게 되리라)”(사13:17-22);
1) 본문은 오래지 아니하여 닥치게 되는 신바벨론제국의 멸망의 모습을 선지자 이사야가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는 글입니다(사13:17-22).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신바벨론제국이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처참하게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상징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메대 사람을 충동하여 신바벨론을 치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사13:17). 그리고 그 메대 사람이 어떠한 성향의 백성들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사13:18). 나아가서 신바벨론제국의 정체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습니다(사13:19). 끝으로, 아라비아 유목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게 되는 신바벨론 땅의 황폐함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3:20-22). 이제부터 관련구절을 하나씩 함께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7.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충동하여 그들(신바벨론제국)을 치게 하리니”(사13:17); ‘메대’라고 하는 나라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으며 본문의 뜻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하나, ‘메대’는 북방에서 온 유목민들이 만든 나라입니다. 그들 민족의 발생지역은 카스피 해입니다. 오늘 날의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카스피 해는 그 옛날 동서양 유목민들이 만나고 있는 중심지입니다. 그곳에서 여러 유목민족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혼혈이 되고 있습니다. ②둘, 그 가운데 우월한 신체조건을 가지게 된 하나의 민족이 형성되면 그들이 살기 좋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남하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프라테스 강과 티크리스 강이 합쳐지고 있는 삼각주 지역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중근동지역의 패권국이 대대로 다스리고 있는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일찍부터 정착식 농업이 발전하고 고대문명이 찬란하게 꽃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그 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제국은 북방의 유목민들이 함부로 어찌할 수가 없는 강대국들입니다.
3) ③셋, 따라서 카스피 해에서 발흥하여 남하하고 있는 거인족들이 티크리스 강 상류 동쪽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들의 나라가 이름하여 ‘메대’입니다. 훗날 그들의 한 갈래가 더욱 남하하여 메소포타미아의 동쪽 엘람 지역을 차지합니다. 그곳에서 바사 왕국이 시작됩니다. 오늘날의 이란 지역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동남쪽으로 더욱 남하하여 인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들을 인종학적으로 서양의 학자들이 ‘유럽계 아리안 족’(European Aria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한다면 서양의 게르만 족과 동양의 몽골 족의 혼혈민족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4) 둘째, 티크리스 강 상류 동쪽에 살고 있는 메대 사람들의 꿈은 비옥한 삼각주 지역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역의 패권국 앗수르제국이 쇠약해지자 시리아에서 남하하여 살고 있는 갈대아 인들이 함께 공격하자고 제안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연합공격이 의외로 성공을 거두어 주전 612년에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를 함락하게 됩니다. 몇 년 뒤에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요새 갈그미스에서 항전하고 있는 앗수르의 잔존세력을 완전히 토벌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메소포타미아는 메대 인들과 갈대아 인들이 다스리게 됩니다.
5) 그런데 하나의 산 중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함께 군림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2나라 사이에 패권전쟁이 발생합니다. 그 전쟁에서 헤게모니를 얻게 된 갈대아 인들이 신바벨론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메대 인들은 다시 티크리스 강 상류 동편으로 물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장차 신바벨론제국이 쇠약해지는 시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제국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메대’의 입장에서는 금과 은을 얻고자 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제국을 무너뜨림으로써 과거의 원한을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이사야가 절묘하게 예언하고 있는 것이 ‘사13:17’ 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대목은 그러한 ‘메대의 원한’을 이용하여 바벨론을 붕괴시키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습니다.
6) 셋째, 드디어 주전 539년에 기회가 다시 찾아오고 있습니다. 먼저 바사 왕국의 젊은 왕 고레스가 메대의 늙은 왕 다리오의 사위가 되면서 두 나라가 혼인동맹을 맺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하여 신바벨론의 나보니더스 황제가 오랜 세월 아라비아에 주둔하고 있는 틈을 노려서 두 나라의 동맹군이 벨사살 왕이 다스리고 있는 제국의 수도 바벨론을 기습적으로 공격합니다(단5:30-31). 신바벨론 제국의 중심부를 장악하자 고레스는 서남부로 이동하여 나보니더스 황제와 마지막 전쟁을 치릅니다. 그 사이에 메대의 다리오 왕이 황제가 되어 권력을 독차지하고자 시도합니다(단6장).
7) 하지만 고레스가 바벨론의 군대를 격파하고 재빨리 개선하게 됨으로써 다리오 왕의 꿈은 좌절되고 맙니다. 다리오 왕 대신에 메대의 귀족들이 고레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페르시아제국의 시대를 바사의 귀족들과 함께 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에1:3, 14, 19);
그와 같은 훗날의 역사를 이사야가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으며(사44:28-45:6) 또한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로 성취되었다는 점을 다니엘의 기록이 말해주고 있습니다(단5장).
8) 넷째, “18.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애석하게 보지 아니하리라”(사13:18); 신바벨론제국에 대한 메대 사람들의 원한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갈대아 인들을 아예 인종적으로 말살시켜버리려고 합니다. 바벨론의 군인들인 청년을 활로 죽이는 것은 전쟁의 수행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임산부를 모두 죽이고 어린아이들까지 말살시키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인종청소’를 행하는 것입니다. 왜 그와 같은 끔찍한 예언을 이사야가 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바벨론이라고 하는 세상제국이 사탄의 지상세력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종말전쟁을 통하여 악한 세력을 완전히 도말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상세는 이사야 제14장과 요한계시록 제18장의 기록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9) 다섯째, “19.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이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사13:19); 시리아 인의 한 갈래가 갈대아 사람입니다.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남하를 했습니다. 그 세력이 강해져서 메소포타미아 중심권역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소위 ‘갈대아 왕조’가 시작되며 동시에 과거 ‘시날 땅’의 이름이(창10:10) 아예 ‘갈대아인의 우르’로 바뀌게 됩니다(창11:31). 그 갈대아 왕조가 정복전쟁에 성공하여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고 ‘신바벨론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중심인물이 ‘느부갓네살 황제’이며 그가 지상 마지막 제사장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멸망시킵니다(왕하24:1, 10, 단1:1-2, 2:1). 그러므로 바벨론 제국은 사탄의 제국으로 여겨지게 됩니다(사14:4, 11). 그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시켜 버리시는 것입니다(사13:19, 계18:2, 10).
10) 여섯째, “20. 그곳에 거주할 자가 없겠고 거처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에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곳에 그들의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사13:20); 신바벨론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나보니더스는 아라비아 유목민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10년이상 그 땅에 주둔하게 됩니다. 아예 별궁을 아라비아에 지어놓고 그곳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유목민들의 꿈이 그러하듯이 척박한 목축지역을 벗어나서 기름진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얼마나 미워하셨는지 그 땅을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 아라비아 사람들도 그곳에 들어가서 살 수가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고 만 것입니다. 요컨대, 얼마나 끔찍한 멸망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국 바벨론에게 임하게 될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11) 일곱째,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22.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사13:21-22); 이사야의 예언은 단지 바벨론의 멸망의 끔찍함만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원칙 하나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국의 논리를 따라서 세상을 지배하며 제멋대로 살고 있는 개인과 집단들이 모두 바벨론의 멸망의 선례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사야의 예언은 다음과 같이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12) ①하나, 바벨론처럼 이 세상 영화에 탐닉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특히 제사장나라를 파괴하는 자들은 그들의 거처가 완전히 박살나고 말 것입니다.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며 폐허가 된 그곳에는 짐승들만 뛰놀게 됩니다. ②둘, 제사장나라를 멸망시키는 신바벨론제국의 말로가 실로 비참합니다. 화려한 궁전이 불타버릴 것이며 도읍지가 폐허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고려의 옛 도읍지 송악(오늘날의 개성)의 버려지고 황폐화된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야은 길재의 회고가임).
결론적으로, 이사야의 본문의 예언은 겉으로 보면 제사장나라 다윗의 왕조를 멸망시킨 신바벨론제국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와 상징성을 추적해보면 그것은 종말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일종의 묵시록이며 계시록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시공간을 뛰어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에서 오늘 날 자유스러운 사람이나 국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겸손하게 옷깃을 여미고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자신이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살아가다가 바벨론의 군대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메시아의 군대에 들어갈지를 결정해야만 한다고 하겠습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인민군으로 끌려갈 것인지 아니면 한국군에 입대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주후 1950년대 초에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변명할 수가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21세기인 오늘날에는 그 변명이 불가능합니다. 깊이 생각하여 스스로 선택하도록 이미 하나님께서 충분한 시간을 주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시는 그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사야는 본문에서 그날이 가까워지면 참으로 두려움이 임하게 된다고 여러가지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기치 아니하게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놀라움이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날에는 천지가 모두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사13:13). 그러한 와중에서도 이사야는 구원을 받는 자가 희귀하지만 존재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3:12). 그의 예언은 선지서 말미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사65:17). 그리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그러한 이사야의 예언을 더욱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벧후3:13, 계21:1).
이사야의 예언은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두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과 함께 멸망이 되는 자들이 있으며 반대로 구원을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자신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천국에 입성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는 ‘여호와의 날’이 멸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종말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가 모두 깨어져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되짚어서 생각해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올바른 질서를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과 세상에 속한 욕심 때문에 모두 무너뜨려버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류역사의 끝을 종말심판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이 땅에서는 피난할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영생으로 들어가는 천성만이 새로운 본향이 되고 있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고 있으므로 모두가 멸망의 대상입니다. 오로지 하늘에서 강림하는 그 본향만이 안전한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서 영생을 누리기를 그토록 소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히11:16). 그러한 맥락에서 정리해보자면, 믿음의 조상들과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훗날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시게 된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제7장, 제9장, 제11장에 이어 본문에서 종말 예언을 통하여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바벨론 패망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은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제사장나라를 멸망시키고 있는 바벨론이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세상적인 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응징을 받도록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땅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황폐화될 것이며 후세대는 완전히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을 탄압하며 힘으로써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집단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종말심판을 당하기 전에 역사적인 심판이 먼저 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메대와 같은 가까운 세력을 동원하여 미구에 철저하게 응징해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신 자나 집단을 함부로 해치지 아니하도록(삼상24:6-7, 26:9-12) 새삼 옷깃을 여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피로 성도를 세우며 오늘날도 교회의 머리가 되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자신에게 보내어 주시는 자의 생명을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로 온전히 살리기 위하여(요6:38-40) 최선을 다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또록 그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