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앗수르로 끌려간 이스라엘10지파 그리고 나중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의 운명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기이한 이사야의 예언들”(사14:1-32)
설교일; 주후 2026년 7월 1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7월 8일 화요일 작성)
주전 8세기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여호와의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의 선지서를 기록하면서 본인의 정체에 대하여 다음 3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1) 첫째, 자신은 다윗왕조의 제10대왕 웃시야 시절부터 제13대왕 히스기야 시대까지 유대왕국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사1:1a).
(2) 둘째, 자신은 예루살렘의 유력가문의 후손이며 부친의 이름이 아모스라는 것입니다(사1:1b).
(3) 셋째, 이사야 자신이 여호와를 만나 선지자로 선택을 받은 때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 곧 주전 739년경이므로(사6:1-9) 그의 예언활동은 주로 그 뒤를 잇고 있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의 시대입니다(사7-39장).
그런데 이사야를 선지자로 삼으시면서 그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1) 하나, 이사야가 전달하게 되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을 유대왕국의 왕과 백성들이 귀담아 듣지 아니할 것이며 설혹 듣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믿지 아니할 것이라는 언급입니다(사6:9-10).
(2) 둘, 여호와의 말씀을 외면하였기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이 망하고 유민들이 적국에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사6:11-12).
(3) 셋, 훗날 해방이 되어 고토로 돌아오지만 그 수가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할 것이며 그들조차 여호와신앙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사6:13a).
(4) 넷, 이사야의 관심은 언제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사6:11a). 그에 대한 여호와의 대답을 선지자 이사야가 평생 명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와서 다시 신앙생활하고 있는 백성들 역시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지 못하여 외세에 시달리겠지만 훗날 그들이 파수하고 있는 히브리경전이 그루터기가 되어 거기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며 전파하는 거룩한 씨가 나타날 것이다”(사6:13b의역)라는 의미심장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에 따라 선지자 이사야는 비록 히스기야 왕이 이기적인 현세주의에 빠져서 예루살렘과 유대왕국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구원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아감으로써 훗날 신바벨론제국의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절망하지 않습니다(사39:2-8).
그 이유는 오로지 여호와께서 먼 훗날 그들의 땅에 보내어 주시는 대속의 그리스도와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역사하시게 되는 보혜사 성령님의 존재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이사야의 뒤를 잇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의 선지서에서 정확하게 ‘새 언약’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렘31:33).
그에 따라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님의 강림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부디 회개하고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올바로 섬기는 신앙을 회복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이 그의 선지서 제40-66장에 가득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체와 사역의 내용에 대해서는 제7장, 9장, 11장 등에서 진작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때에 본문 제14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1) 첫째, 이사야가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던 시대 곧 주전 8세기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영적으로 내다보고 있는 미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이사야가 예언으로 듣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제1절에서 이사야는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사14:1)라고 신기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야곱과 이스라엘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1) 훗날의 실제적인 역사를 참조하면, 유대왕국의 백성들은 신바벨론제국이 멸망하자 페르시아제국의 창건자인 고레스황제의 칙령에 의하여 해방이 됩니다. 그 중의 1할 정도가 예루살렘과 고토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자 노력합니다.
2) 그런데 그보다 먼저 앗수르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유민인 이스라엘 10지파의 운명은 그와 다릅니다. 그들은 앗수르의 변경으로 끌려가서 현지인과 혼혈이 되고 여호와를 우상의 하나로 섬기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그에 따라 훗날 그들 중의 일부가 사마리아와 그 옛날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지만 선민의 정통성을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3) 그렇지만 “여호와께서---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사14:1a)라고 하는 말씀의 뜻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민의 자격을 상실한 이스라엘 10지파가 다시 새로운 의미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제7장을 참조하면 그 의미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의 제자들 곧 성도들의 출현을 의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있는 복음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취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모르고 나그네로 살아가던 이방인들이 야곱 족속이 파수하고 있는 히브리경전의 뜻을 그리스도가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주자 그 깃발 아래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이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사14:1b)라는 구절에 깊숙이 담기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5) 셋째, 선지자 이사야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망하게 만든 신바벨론제국의 미래에 대하여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사14:4-11, 21-27). 그 이유는 선민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 끝장내려고 하는 세상제국이 훗날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을 멸절시키려고 하는 사탄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사14:12-20). 그러므로 역사적인 신바벨론제국이 요한계시록 제16-18장에서는 적그리스도 세력인 바벨론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6) 넷째,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멸망하게 만든 앗수르제국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말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간략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4:24-27). 그러한 앗수르제국의 미래보다 정작 이사야는 유대왕국의 남서쪽 해안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블레셋의 미래에 대하여 더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인족인 블레셋의 도시국가들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선민들을 오래 괴롭히듯이 미래에도 그러한 존재가 될 것임을 그가 예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사14:28-3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서 야곱(히브리경전을 파수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이방인과 혼혈이 되고 여호와신앙을 우상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린 이스라엘10지파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새언약으로 새로이 선택이 된 성도들, 사66:20-22, 눅22:28-30, 계7:4-10) 그들의 땅(고토인 약속의 땅 가나안을 말함)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유대인들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방인들을 말함)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히브리경전을 접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님의 제자들이 될 것이며, 사66:20, 롬3:2, 4:23-25, 9:4-9, 창9:26-27), 2. (주님의 제자가 된 여러) 민족들이 그들(주님을 영접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자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믿음의 열조들이 들어가고자 한 진짜 본향인 천성, 히11:16)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으로 불리는 새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갈 것이며, 계21:12, 24-27),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12사도들처럼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고 천성에 들어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면류관을 쓰고서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릴 것임, 눅22:28-30).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험이 끝나고 안식의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4. 너는 (이 세상에서 패권을 자랑하던)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5. 여호와께서 (죄악 범한 나라와 민족들을 역사적으로 징벌하기 위하여 한때 사용하던, 사10:5-6) 악인의 몽둥이(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한때의 도구에 불과함을 말함, 사10:15)와 통치자의 규(제국들의 위세를 말함, 사10:7-8, 13-14)를 꺾으셨도다(이 세상임금이 쫓겨남을 말함, 요12:31-32, 마28:18). 6.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이 세상사람들은 패권국과 제국의 횡포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임, 사10:7-11, 13-14), 7.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오로지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패권국과 제국들을 멸하셨다는 것임, 사10:15-19). 8. (이스라엘의) 향나무(사41:19)와 레바논(페니키아)의 백향목(왕상5:5-11)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를(그 나무를 사용한 성전과 궁궐을) 베어 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영생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임금이 모두 쫓겨났음을 말하고 있음, 마28:18, 요12:31-32) 9. 아래의 스올(음부의 세계)이 너(바벨론의 왕)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이 세상의 지배자가 모두 여호와의 심판을 받고 영벌에 처해짐을 예언하고 있음, 눅16:19-24, 30-31). 11.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이 세상에서의 너의 영화가 당사자가 죽고 나니 음부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임)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이 세상의 영웅을 칭송하는 연주와 백성들의 노래소리도 음부의 세계에서는 다시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임).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다만 음부의 세계에서는 시신을 파먹는 구더기가 득실거릴 뿐이며),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결국 흙으로 돌아가자 그 양분이 지렁이를 키우고 있을 뿐이라는 것임)”(사14:1-11); 포로 된 자들이 해방을 얻게 되고 패권국 바벨론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둘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여호와께서 야곱(히브리경전을 파수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이방인과 혼혈이 되고 여호와신앙을 우상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린 이스라엘10지파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새언약으로 새로이 선택이 된 성도들, 사66:20-22, 눅22:28-30, 계7:4-10) 그들의 땅(고토인 약속의 땅 가나안을 말함)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유대인들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방인들을 말함)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히브리경전을 접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님의 제자들이 될 것이며, 사66:20, 롬3:2, 4:23-25, 9:4-9, 창9:26-27), 2. (주님의 제자가 된 여러) 민족들이 그들(주님을 영접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자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믿음의 열조들이 들어가고자 한 진짜 본향인 천성, 히11:16)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으로 불리는 새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갈 것이며, 계21:12, 24-27),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12사도들처럼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고 천성에 들어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면류관을 쓰고서 새로운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릴 것임, 눅22:28-30).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험이 끝나고 안식의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4. 너는 (이 세상에서 패권을 자랑하던)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사14:1-4); 우선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부터 간략하게 해봅니다;
1) 첫째, 제1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사14:1);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이후 선민으로 행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며 선민의 우월성만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제사장나라가 망하고 거룩한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지고 맙니다. 그렇지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훗날 이스라엘을 다시 선민으로 선택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2)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방 족속들이 구원을 얻자면 야곱 족속과 다시 연합하고 이스라엘에게 예속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우월사상을 다시 부르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훗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 유대주의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반드시 이스라엘 민족과 연합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연합의 방법이 할례를 받으며 율법을 준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인위적인 차별을 폐지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서의 복음이 완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두 말하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복음의 은혜는 이사야의 예언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를 대신하여 훗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다고 하는 설명을 가지고 본문의 괄호속을 채워본 것입니다(눅24:44-45, 22:28-30, 마5:43-48, 28:18-20, 요5:24-29).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둘째, 제2절입니다;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 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이방인들)을 얻어 노비로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사14:2); 이방인을 선민과 구분하고 차별하던 유대교인들의 결점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선민들의 종이 되는 시대가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선민을 괴롭히던 나라와 백성들은 모두 선민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미래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을 복음으로 구원하고 선민 이방인이라는 차별을 철폐하고자 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5) 셋째, 제3-4절입니다; “3. 여호와께서 너(이스라엘)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사14:3-4);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신바벨론제국이 장차 당하게 되는 하나님의 보복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바벨론은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요컨대, 제사장나라를 괴롭히는 나라의 말로를 심히 통쾌하게 여기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6) 하나, 이사야가 구약시대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 구약시대의 선지자로서 주전 8세기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에서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7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선포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7) 창조주 하나님께서 미래지사를 일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게 알려주시지만 그것은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한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듣고 보게 되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에 비하면 엄청 그 정보가 부족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선지자가 하나님을 예방하게 되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예언과 계시의 말씀을 전달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전하게 되는 당사자가 아직도 구약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서 선지서의 기록을 음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8) 둘, 이사야가 선민 출신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선민인 동족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의 입장에서 선민들이 알아 듣기 쉽도록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구원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일이 없습니다(마12:39). 그리고 이방인들의 처지와 형편에 대해서 동정적이거나 긍휼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이사야가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며 모든 족속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미래가 전개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민의 회복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2) “5. 여호와께서 (죄악 범한 나라와 민족들을 역사적으로 징벌하기 위하여 한때 사용하던, 사10:5-6) 악인의 몽둥이(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한때의 도구에 불과함을 말함, 사10:15)와 통치자의 규(제국들의 위세를 말함, 사10:7-8, 13-14)를 꺾으셨도다(이 세상임금이 쫓겨남을 말함, 요12:31-32, 마28:18). 6.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이 세상사람들은 패권국과 제국의 횡포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임, 사10:7-11, 13-14), 7.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도다(오로지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패권국과 제국들을 멸하셨다는 것임, 사10:15-19). 8. (이스라엘의) 향나무(사41:19)와 레바논(페니키아)의 백향목(왕상5:5-11)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를(그 나무를 사용한 성전과 궁궐을) 베어 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영생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임금이 모두 쫓겨났음을 말하고 있음, 마28:18, 요12:31-32) 9. 아래의 스올(음부의 세계)이 너(바벨론의 왕)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이 세상의 지배자가 모두 여호와의 심판을 받고 영벌에 처해짐을 예언하고 있음, 눅16:19-24, 30-31). 11.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이 세상에서의 너의 영화가 당사자가 죽고 나니 음부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임)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이 세상의 영웅을 칭송하는 연주와 백성들의 노래소리도 음부의 세계에서는 다시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임).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다만 음부의 세계에서는 시신을 파먹는 구더기가 득실거릴 뿐이며),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결국 흙으로 돌아가자 그 양분이 지렁이를 키우고 있을 뿐이라는 것임)”(사14:5-11);
1) 첫째, 제5절 말씀에 대한 풀이입니다; 성경에서 바벨론 왕은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패권국의 황제입니다. 그들은 최초의 대 영웅 니므롯의(창10:8-12) 뒤를 잇고 있는 세상의 지배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벨탑을 만들어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려고 합니다(창11:1-4). 하늘에 닿고 있는 바벨탑의 위용을 올려다보면서 모든 피지배 족속들이 제국의 힘 앞에 진심으로 굴종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적인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은 오로지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창5:22-24, 6:9, 12:1-4, 출20:1-17, 신6:4-5, 눅1:38, 22:42). 그런데 제국의 황제는 반대로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제국의 황제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고 보이는 제국의 살아있는 권력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단3:4-7).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 행위입니다(신30:19-20, 마10:28). 따라서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그들의 제국이 무너져버릴 것입니다(사14:4-5).
2) 둘째, 제6절입니다; “6.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사14:6); 바벨론은 세상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패권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이 형성되기가 힘이 듭니다. 패권을 행사하는 제국은 항상 잠재적인 미래의 도전국에 대하여 파괴공작을 일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솔로몬 대왕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 여로보암을 견제하여 은밀하게 사전에 암살해버리려고 시도한 것과 같습니다(왕상11:40a). 그러므로 세상적인 힘으로는 바벨론과 같은 패권국을 무너뜨릴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인류의 역사 가운데 수 많은 제국들이 발생하고 또한 사라져 갔습니다. 무너질 수 없는 제국이 망하게 된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여전히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제7절입니다; “7.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 도다”(사14:7); 일반적으로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면 평화가 회복이 되었다고 좋아들 합니다. 그렇지만 평화라고 하는 것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가면적인 평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와 다른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본문을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그 차이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전쟁을 중지하고 휴전하게 되면 일시적인 평화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치열한 전투상황을 일단 벗어나고 있는 것이기에 휴전이 주고 있는 달콤함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1950년에 발생한 한국전쟁을 타의에 의하여 3년후에 휴전하고 현재까지 70년 이상을 마치 전쟁이 끝난 것으로 여기고서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 한민족의 형편과 같습니다.
4) 그렇지만 그것은 위험한 평화입니다. 언제든지 선전포고 없이 전투를 일방적으로 개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공권력으로 공포정치를 행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슬이 시퍼런 권력에 모두들 겁을 집어 먹게 되면 온 세상이 조용해지고 평온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평화의 회복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표면적 평온에 불과합니다. 그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흐르고 있는 불만과 불안이 얇은 표토층을 만나게 되면 사정없이 지상으로 분출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를 얻자면 창조주 앞에 나아가야만 합니다(창17:1).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능력을 인정하고서 그 뜻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주십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가 자리잡게 되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7. 이제는 온 땅이 조용하고 평온하니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하는 도다”(사14:7). 그 예언의 말씀을 뒤집어서 묵상해보면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소리 높여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곳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5) 넷째, 느부갓네살 황제의 신바벨론 제국이 천하무적입니다. 그 옛날 인류최초의 대 영웅 니므롯의 역사를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니므롯이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셈족의 중심지 시날 평야(후에는 ‘갈대아인의 우르’로 불리게 됨)를 뺏은 것처럼(창10:10, 22, 11:28) 느부갓네살 역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제사장나라 유대왕국을 멸망시킬 것입니다(사14:8). 그의 갈대아군대는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입니다. 수많은 왕들이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스올로 떨어지고 있습니다(사14:9). 신바벨론 제국의 황제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나라가 없습니다. 기고만장하게 된 신바벨론 제국의 황제가 이 세상에서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보다 자신의 보좌가 더 높고 자신의 군대가 더 강하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사14:13-14). 그 옛날 니므롯의 바벨제국을 붕괴시킨 것처럼(창11:8) 또다시 하나님께서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켜 버리실 것입니다(사14:5). 그 결과 다음과 같은 3가지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6) 하나, 제8절입니다; “8.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도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이르기를, 네(신바벨론 제국)가 넘어져 있은즉 올라와서 우리(하나님의 백성)를 베어버릴 자 없다 하는도다”(사14:8); 이스라엘의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건축된 솔로몬의 하나님성전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선지자 에스겔이 예언하고 있는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겔41-44장). 그리고 사도 요한이 바라보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계21:2, 10-27). 그 안에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계22:1-5). 그것은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7) 둘, 제9-10절입니다; “9.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사14:9-10); 신바벨론제국이 수많은 왕국을 정벌하자 그들의 왕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연전연승을 하고 있는 제국의 황제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는 불사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제 역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제국은 무너지고 개인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음부의 세계 스올에 먼저 가 있는 세상임금들이 바벨론의 황제가 스올에 오는 것을 보고서 조롱할 것입니다.
8) 셋, 제11절입니다; “11.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사14:11); 신바벨론제국의 멸망과 황제의 죽음을 보고서 사람들이 깨닫고 있습니다. 천하의 대영웅도 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신이 땅속에서 썩게 되면 구더기와 지렁이가 그 살을 파먹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의 황제 역시 창조주 앞에 똑같이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할 것입니다.
둘째로,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히브리전승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던 천사장 루시엘을 말함)이여 어찌 그리 하늘(창1:1-2)에서 떨어졌으며(여호와 하나님에게 반역하다가 천외천인 천국에서 이 세상의 보이는 하늘 곧 궁창에 내쫓긴 것을 말함, 창1:6-8, 엡2:2, 6:12) 너 열국을 엎은 자(바벨론의 왕, 계18:10)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9-11절).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마귀의 꾀임을 받은 충동적인 하와의 탐심과 같은 것임, 창3:5-6)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창3:22)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16.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이 세상의 패권을 행사하던 신바벨론제국의 왕과 같은 자임을 말하고 있음), 17.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앗수르 황제나 바벨론 황제와 같은)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18. (패권을 행사하거나 제국을 건설하지 아니한) 열방의 모든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19. 오직 너(패권자 곧 이 세상의 지배자 또는 그들을 조종하던 마귀와 악한 영들)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제국의 영광도 지배자의 혈통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는 것임). 21. 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패권국과 제국이 멸망하면 그 문명이 역사 가운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결국에는 이 세상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소멸되고 마는 것임, 사65:17-18). 22.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그러나 현존세상에서도 영원한 제국은 없으며 그것이 여호와의 역사심판이라는 것임, 렘25:11-14, 29).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영원한 진리임을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증거한다는 것임). 23. 내(창조주 여호와)가 또 그것(패권국 바벨론)이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 웅덩이가 되게 하고(사13:19-22) 또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사14:9-11).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2b) 하시니라”(사14:12-23); 선지자 이사야가 히브리전승에 의거하여 천사장 루시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다가 이 세상으로 쫓겨난 사실을 말하면서 사탄 루시퍼의 조종을 받은 악한 제국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다가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모두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역시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히브리전승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던 천사장 루시엘을 말함)이여 어찌 그리 하늘(창1:1-2)에서 떨어졌으며(여호와 하나님에게 반역하다가 천외천인 천국에서 이 세상의 보이는 하늘 곧 궁창에 내쫓긴 것을 말함, 창1:6-8, 엡2:2, 6:12) 너 열국을 엎은 자(바벨론의 왕, 계18:10)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9-11절).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마귀의 꾀임을 받은 충동적인 하와의 탐심과 같은 것임, 창3:5-6)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창3:22)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16.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이 세상의 패권을 행사하던 신바벨론제국의 왕과 같은 자임을 말하고 있음), 17.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던(앗수르 황제나 바벨론 황제와 같은)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사14:12-17); 이사야는 바벨론의 정체를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는 세상권력의 총집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탄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밝힘으로써 신바벨론 제국의 운명을 통찰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제12-14절입니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14:12-14); 선지자 이사야가 히브리 전승 한 토막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미의 천사장 루시엘이 그만 자신의 지위와 분수를 잊어버리고 창조주 앞에 교만의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획책한 것입니다.
2) 아무리 아름다운 찬양의 천사장 루시엘이지만 패역의 죄를 범한 것이므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그 지위를 떠난 천사들과 함께 루시엘을 천상에서 땅으로 추방하고 맙니다(사14:12, 유1:6). 하나님을 대적하는 루시퍼 곧 사탄의 탄생입니다. 사탄은 이 땅에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자 천하를 꾀고 있습니다. 그 자가 마귀이며 그 총본영이 세상제국인 바벨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히브리 전승을 원용하여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새벽별 계명성(啓明星, morning star, son of the dawn)과 같은 미(美)의 천사장 루시엘이 왜 천상에서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제치고 자신이 창조주의 보좌에 앉기를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야만 하는 영광과 찬송을 자신이 받고자 했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땅으로 추방당하고 만 것입니다”(사14:12-15);
3) 둘째,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장 루시엘이 이 세상으로 쫓겨나서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루시퍼가 되고 있습니다. 그 휘하에 많은 세력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계19:19-21, 20:8-10). 그 가운데 특히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을 무너뜨리게 되는 신바벨론제국이 그 손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사14:4-11, 계18:2-3).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스올에서 영벌에 처해지는 것입니다(사14:15). 본문에서 이사야는 특히 악한 영과 그 하수인들이 행하고 있는 일의 특징을 3가지로 간추려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한 결과 그들이 자초하고 있는 비참한 최후에 대해서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4) 하나, 제16절입니다; “16. 너를 보는 이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하며”(사14:16);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놀라게 한다는 것은 전쟁을 통해서 패권을 움켜쥐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패권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세상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대세력을 제압하기 위해서 폭력사용을 주저하지 않으며 전쟁을 불사합니다. 온세상은 악한 영과 그 하수인들이 행사하는 폭력 앞에 공포를 느끼며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악한 세력의 첫번째 특징은 폭력과 전쟁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5) 둘, 제17절입니다; “17.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사14:17); 이 대목에서 2가지의 특징이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를 황무하게 하며 성읍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17a). 그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인류를 말살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악한 영과 그 하수인들이 직접 사람을 죽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17b).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맞서기 위하여 사탄은 사람을 죽이고자 합니다(막3:4).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이유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요3:16-17, 6:38-40, 눅6:9). 반면에 사탄과 그 하수인들은 생명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세력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계속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롬8:2).
6)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역사는 출애굽기의 기록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기적과 광야생활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은 사람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출21:2, 사58:6). 그리고 광야생활을 통하여 노예의식을 청산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출19:6). 그런데 악한 영과 그 하수인들은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을 전쟁포로로 삼아 노예로 영원히 부리고자 합니다(17c). 따라서 사로잡힌 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그것이 그들의 세번째 특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18. (패권을 행사하거나 제국을 건설하지 아니한) 열방의 모든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19. 오직 너(패권자 곧 이 세상의 지배자 또는 그들을 조종하던 마귀와 악한 영들)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제국의 영광도 지배자의 혈통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는 것임). 21. 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패권국과 제국이 멸망하면 그 문명이 역사 가운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결국에는 이 세상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소멸되고 마는 것임, 사65:17-18). 22.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그러나 현존세상에서도 영원한 제국은 없으며 그것이 여호와의 역사심판이라는 것임, 렘25:11-14, 29).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영원한 진리임을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증거한다는 것임). 23. 내(창조주 여호와)가 또 그것(패권국 바벨론)이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 웅덩이가 되게 하고(사13:19-22) 또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사14:9-11).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2b) 하시니라”(사14:18-23);
1) 첫째, 제18절입니다; “18. 열방의 모든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19.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사14:18-19); 하나님을 섬기며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을 수 있는 영광이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창2:2-3, 출16:29-30, 마11:28-30, 요14:27). 또 하나는, 죽음을 통과하여 창조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차 성도들이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것이 얼마나 큰 영광된 미래인지 모릅니다(요5:25-29).
2) 반면에, 악한 영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은 안식의 복을 얻지 못하며 생명의 부활에서 철저하게 제외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큰 권세를 움켜쥐어도 늘 불안하며 평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죽음의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무덤에서 깨워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못에서 시달리는 고통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마25:41, 눅16:23-24, 계19:19-20). 특히 제사장나라를 멸망시키게 되는 신바벨론제국과 황제의 미래가 그러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단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4:18-19).
3) 둘째, 제20절입니다; “20.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사14:20); 신바벨론제국과 황제의 미래가 그토록 참담하게 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멸망시킨 족속들의 땅을 차지하고서 이 세상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서는 무죄한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한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창4:10, 왕하21: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침략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결코 생명책에 기록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사14:20, 마7:20-23, 26:52). 그 이름이 생명책에 없는 자는 모든 역사와 위업이 이 세상에서 말살되고 맙니다(계21:27). 요컨대, 위대한 세상제국과 그들의 황제인 지배자의 말로가 그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4) 셋째, 제20절부터 제23절까지는 사실 바벨론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세상사람들과 나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시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뒤를 따라 폭력으로 패권제국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과 그 나라들에 대하여(사14:20) 하나님께서는 장차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강력하게 대응하실 것이라고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성도들을 동원하여 맞대응을 하게 할 것입니다(사14:21). ②하나님께서 직접 신위적인 능력으로 그들을 쳐버리실 것입니다(사14:22). ③그들의 삶의 터전을 완전히 황폐화시키고 말 것입니다(사14:23). 한 구절씩 그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5) 하나, 제21절입니다; “21. 너희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손 도륙하기를 준비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여 성읍들로 세상을 가득하게 하지 못하게 하라”(사14:21); 언뜻 보면 굉장히 오해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조상들의 죄악 때문에 그 자손들이 도륙 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보더라도 “5.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20:5b)라고 되어 있어 조상들의 죄 때문에 그 자손들이 처벌받는 것으로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목은 그러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6) 다음과 같이 더 깊은 내용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최초의 범죄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입니다(창4:8).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와 같은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카인에게서 엿보이기 때문에 사전에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계십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b). 이 세상에 시기심과 질투심을 느끼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3:9). 그러나 그 죄를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리지 아니하고 범행을 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7) 죄의 본성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과 그들의 나라를 이사야는 제사장나라를 파괴하는 바벨론제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의 본성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기 위하여 거침없이 정복하고 약탈하며 영토를 넓히고 있습니다. 더구나 세상사람들은 제국의 힘을 숭상하고 황제를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바벨론제국이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무너지더라도 그 뒤를 이어서 동일한 성격의 사람들과 그들의 제국이 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제일 먼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8) 이 세상을 폭력과 군사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바벨론과 같은 나라는 반드시 패망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뒤를 잇고 있는 족속과 제국에 대하여 저항하도록 성도들을 훈련시키실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을 대대로 훈련시켜서 계속 앗수르 족속과 맞서게 한 것과 같습니다(출17:8-16, 삼상15:1-9). 또한 페르시아 제국에서 악한 재상 하만과 그 일당을 도륙하고 있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역할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에9:2-28).
9) 둘, 제22절입니다; “22.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사14:22); 성도들의 힘과 단합만으로 바벨론의 뒤를 잇고 있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무너질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신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해야만 합니다. 그 옛날 출애굽의 하나님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사람의 계획과 도모함이 성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출17:11, 잠16:9). 그러므로 바벨론과 그 뒤를 잇고 있는 후예들을 응징하는 두번째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칼을 뽑으시는 것입니다.
10) 이사야는 멀지 아니하여 예언한 바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하게 됩니다; “주전 701년에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공격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성안에 갇힌 채 항복을 권유하는 앗수르 산헤립 장군의 최후통첩을 받게 된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구원을 호소합니다(왕하19:11-19). 히스기야 왕의 군대로써는 도저히 앗수르 원정군을 물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하룻밤에 적군 18만 5천명을 몰살시켜 버리십니다”(왕하19:34-35).
11) 셋, 제23절입니다; “23. 내가 또 그것이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 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빗자루로 청소하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사14:23); 이사야의 예언과 관련하여 이 세상에 등장하고 있는 제국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묵시록을 참조하면, 의미상 헬라와 로마제국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 제국의 흔적을 멸망의 빗자루로 깨끗하게 청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 그대로 역사가 진행되었을까요? 놀랍게도 그러합니다; 오늘날 앗수르 제국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실제로 앗수르 제국이 존재했는지 의문시하다가 겨우 그 흔적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12) 신바벨론 제국의 군사력과 그 웅장함에 비해서 그 존속기간이 참으로 짧습니다. 오죽하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포로생활이 70년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겠습니까?(렘25:11, 대하36:21) 실제로는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멸망을 당합니다(왕하25:1-7). 그러나 그 제국은 주전 539년에 어이가 없게도 바사의 고레스 왕과 메대의 다리오 왕의 연합 기습공격으로 멸망의 길에 들어서고 맙니다(스1:1, 단5:30-31, 6:28). 신바벨론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현대에 들어와서 큰소리를 쳤던 이라크의 독재정권 사담 후세인의 체제가 또 허무하게도 미국이 주도한 다국적군에 의하여 무너지고 맙니다. 산유국이기 때문에 겨우 나라를 꾸려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 그 옛날의 영광을 추억하기도 이제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13) 헬라의 영광은 오늘날 그리스의 국가부도위기를 생각하면 정말 고대시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로마의 영광도 그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하여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탈리아가 그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유럽 제일의 관광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가 그나마도 요즘은 그 첫번째 자리를 스페인에게 넘겨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본문 이사야의 예언을 다시 음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바벨론의 뒤를 이어 세상적인 힘과 군사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제국들은 반드시 역사 가운데 쇠퇴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섭리를 통하여 멸망의 빗자루로 쓸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훗날 그들의 도성은 고슴도치의 굴이 되고 그들의 영광은 웅덩이에 매몰되어 찾기가 힘들게 될 것이다”(사14:23 의역)
셋째로,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새로운 창조가 반드시 이루어짐을 말함, 사48:5-7, 55:11)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중근동의 패권국 앗수르제국이 주전 609년에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임),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앗수르의 멸망으로 신바벨론과 애굽이 대립하는 시대가 형성되어 그 속국들이 잠시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임).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여호와 하나님 앞에 영원한 패권국과 제국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임),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28. (다윗왕조의 제12대왕인)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일반적으로 주전 715년으로 보고 있음) 이 경고가 임하니라. 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앗수르의 멸망으로 잠시 속국의 신세를 벗어났다고 함부로 자만하지 말라는 것임).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왜냐하면, 그 뒤를 이어 더 강력한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임) 30.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힘이 센 블레셋 족속은 신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 당하게 될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것임). 31. (블레셋 5도시국가의)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그들의 강력한 갈대아군대의 침략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32.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계속 나타나는 세상 패권국들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임)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에게 이미 예언한 대로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그곳으로 피신하라는 것임)”(사14:24-32); 선지자 이사야가 앗수르제국의 멸망과 잠시 해방을 맞이한 블레셋 도시국가들이 다시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맞이하는 역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시 다음과 같이 둘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새로운 창조가 반드시 이루어짐을 말함, 사48:5-7, 55:11)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중근동의 패권국 앗수르제국이 주전 609년에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임),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앗수르의 멸망으로 신바벨론과 애굽이 대립하는 시대가 형성되어 그 속국들이 잠시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임).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여호와 하나님 앞에 영원한 패권국과 제국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임),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14:24-27);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한 멸망 예언(사14:3-23) 다음에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사14:25) 시간을 소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올라가서 궁극적으로 이사야가 찾아내고 있는 역사적 섭리의 대원칙, 그 실체적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14:24-27, 32)
1) 첫째,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한 멸망 예언(사14:3-23) 다음에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사14:25) 시간을 소급하고 있는 순서가 맞습니다. 역사적인 사실(fact)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먼저 앗수르 제국이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아니하여 앗수르 제국은 신바벨론과 메대의 연합공격으로 주전 612년에 수도 니느웨 지역을 함락당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신바벨론제국이 중동의 패권을 장악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가 주전 586년에는 마지막 제사장나라 다윗 왕조의 유대왕국마저 멸망시킵니다. 그러나 주전 539년에 바사와 메대의 연합공격에 수도권이 무너지게 됩니다. 바벨론 군대를 완전히 궤멸시킨 고레스가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2) 위와 같은 역사의 진행에 비추어보면 이사야가 바벨론 패망 다음에 앗수르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역사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순서의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이사야는 미리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신바벨론의 멸망을 다음과 같이 먼저 예언하고 있습니다; “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5.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사14:4-5). 그 다음에 앗수르 제국의 멸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사14:25);
3) 그 의도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것입니다(눅3:38). 모든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가르쳐주려고 합니다(롬11:36). 환언하면, 왜 인간의 역사가 그러한 모습으로 경영되고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원칙으로 세상을 경영하시며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지 그것을 천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참고로, 그와 같은 비슷한 경우를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족보에서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눅3:38).
4) 둘째, 그렇게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궁극적으로 이사야가 찾아내고 있는 역사적 섭리의 대원칙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14:24-27). 그 해답은 제32절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32.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그리스도)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사14:32). 한구절씩 분설해보고자 합니다;
5) 하나, 제24절입니다;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14:24);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의사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것을 역사적으로 실현하시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므로 그 어떠한 세력도 그것을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사55:11). 그와 같은 경우를 출애굽기에서 생생하게 엿볼 수가 있습니다.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의 약탈자 아말렉 족속이 기습했습니다.
6) 그들의 물품을 취하고 장정을 노예로 얻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에 적극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아말렉 족속을 역사 가운데 반드시 멸망시키고 말겠다고 맹세하십니다(출17:16). 그 말씀 그대로 역사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①먼저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말렉 족속을 정벌합니다(삼상15:1-9). ②다음에는 다윗 왕이 시글락을 약탈한 아말렉 잔당을 토벌합니다(삼상30:16-20). ③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 아말렉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하만 재상의 일파를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일망타진하고 맙니다(에3:1, 9:10-14).
7) 둘, 제25절입니다;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사14:25);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내용이 또 하나 사무엘의 기록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b). 앗수르제국의 황제 산헤립이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멸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선전관 랍사게 장군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안에 갇혀 있는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에게 최후통첩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을 감히 앗수르의 군마에 짓밟히는 토착신의 하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왕하18:22-25, 19:12). 그 사실을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에게 고발하면서 구원을 호소하자 하나님의 맹세가 빛을 발하고 맙니다;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병정 18만 5천명을 죽여버리고 만 것입니다”(왕하19:35).
8)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산헤립의 군대가 도륙 당하게 되는 것을 이사야는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유다)에서 파하며 나의 산(시온인 예루살렘)에서 그것을(앗수르의 군대를) 짓밟으리니”(사14:25a)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가 물러감으로써 산헤립에게 점령당해 있던 유다와 블레셋의 땅들과 백성들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앗수르의 지배가) 그들의(유다와 블레셋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사14:25b).
9) 셋, 제26절입니다;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사14:26); 하나님의 맹세는 비단 아말렉 족속이나 앗수르제국에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이나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인류와 국가들에 적용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더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5:29).
10) 열방을 향하여 펴고 있는 구원의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민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신앙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32. 그 나라(이방인 블레셋)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그리스도)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사14:32).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구원의 깃발로 세우시면 그 깃발 아래 선민 이방인 가리지 아니하고 모두가 피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사11:10). 오랜 세월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까지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불러 주시겠다고 하는 선언입니다. 이사야는 벌써 제11장에서부터 만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편 팔과 메시아의 깃발을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사11:10-16).
11) 넷, 제27절입니다;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14:27);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는 섭리에 대하여 이를 거역할 수 있는 존재는 피조세계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명쾌하게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0-21).
(2) “28. (다윗왕조의 제12대왕인)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일반적으로 주전 715년으로 보고 있음) 이 경고가 임하니라. 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앗수르의 멸망으로 잠시 속국의 신세를 벗어났다고 함부로 자만하지 말라는 것임).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왜냐하면, 그 뒤를 이어 더 강력한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임) 30.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힘이 센 블레셋 족속은 신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 당하게 될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것임). 31. (블레셋 5도시국가의)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그들의 강력한 갈대아군대의 침략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32.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계속 나타나는 세상 패권국들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임)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에게 이미 예언한 대로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그곳으로 피신하라는 것임)”(사14:28-32);
1) 오랜 세월 선민을 괴롭히던 블레셋 족속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입니다(사14:28-32). 선민들은 블레셋 족속에 대하여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 이유는 사사시대부터 그들과 이웃하면서 상호침탈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삿3:3, 31, 13:1, 15:14-20, 삼상4:1, 17:1). 블레셋 족속은 셈족이 아니라 본래 함족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그 옛날 아프리카에서 크레테 섬으로 이주하여(창10:14) 지중해연안에서 오래 살아 왔기에 해양민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일부가 지중해연안의 다른 족속들과 혼혈이 되어 잡종강세로 힘이 센 민족이 됩니다.
2) 그렇게 형성된 거인족의 한 갈래가 가나안 남부해안으로 쳐들어옵니다. 당시 왜소한 체구의 가나안 원주민들은 그들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따라서 노른자위 반달지역 해변의 땅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렇게 남의 땅을 빼앗아 살게 된 그들이 바로 블레셋 족속입니다. 그들은 해변가에 북에서부터 남으로 3개의 도시국가를 세웁니다. 그 이름이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입니다. 그리고 내륙에도 2개의 도시국가를 세웁니다. 에그론과 가드입니다. 훗날 가드에서 그 유명한 거인 골리앗이 나타납니다(삼상17:4);
3) 그리고 5도시국가를 다스리는 5왕들이 하나의 연맹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연맹왕의 칭호가 아버지 왕 또는 왕중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아비멜렉’입니다. 그는 블레셋의 땅 가운데 옥토인 그랄 평야를 식읍으로 가지고 있습니다(창20:2, 26:1). 오늘날 세상사람들은 현대 이스라엘국가가 가나안에 건설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틴에 건설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고 있는 이유는 주후 70년에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반면, 블레셋 족속들은 가나안 땅을 모두 차지하여 1,900년 가까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근대지도를 작성할 때에 블레셋 족속이 팔레스틴 사람으로 그리고 가나안 땅이 팔레스틴으로 명기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갑자기 20세기 중반에 팔레스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에 현대 이스라엘국가를 건립했습니다. 블레셋 족속들은 고대시대부터 자신들의 땅이라고 부르면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그 땅의 대부분을 유대인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 땅을 되찾기 위한 블레셋 후손들의 저항이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5) 좁게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갈등이지만 넓게 보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스라엘을 후원하고 있는 구미의 기독교국가와 팔레스틴을 지지하고 있는 중근동의 회교국가 사이의 분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 지역을 ‘세계 제일의 화약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에서 블레셋의 미래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4:28-32). 이제부터 구절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6) 첫째, 제28절입니다; “28.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이 경고가 임하니라”(사14:28); 유다의 왕 아하스가 죽자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됩니다(왕하16:20). 그 해는 북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제3년입니다(왕하18:1). 호세아 9년 곧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을 당합니다(왕하17:6).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가 이 경고의 말씀을 위탁 받은 해는 북조 이스라엘이 망하기 6년 전이므로 주전 728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하스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으로 즉위한 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7)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 통치시기에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이 2차례나 유다 왕국을 침략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히스기야 14년에 재침했을 때에는 유다의 대부분의 성읍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많은 성읍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앗수르의 원정군이 엄청난 희생을 당하고 어이없이 물러가게 되는 역사가 발생합니다(왕하19:34-37). 역사학자들의 다수설은 그때가 주전 701년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히스기야가 즉위한 해는 주전 715년이 됩니다. 십 수년의 년대차이가 발생한 것은 아하스 왕의 시대에 히스기야가 일찍 섭정을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8) 둘째, 제29절입니다; “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부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사14:29); 주전 701년경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는 대군을 몰고서 먼저 블레셋으로 쳐들어옵니다. 강력한 제국의 군대 앞에 거인족 블레셋의 도시국가들이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산헤립은 블레셋과 유다 왕국 사이에 있는 가장 중요한 요새지 라기스 인근에 주둔한 채 군대를 나누어 유다 왕국을 침략하게 합니다(왕하18:17). 공격은 성공적입니다.
9) 유다 왕 히스기야는 연전연패를 당하자 아예 예루살렘 성에 틀어박혀서 수성에만 전력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유명한 산헤립의 선전관 랍사게 장군의 최후통첩이 있게 됩니다. 항복을 권유하는 통첩 가운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담기게 됩니다(왕하19:10-12).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그 사실을 그대로 아뢰며 무조건 구원을 호소합니다(왕하19:14-19). 그러자 기적이 발생합니다. 하룻밤에 적군 18만 5천명이 시체로 발견되고 맙니다(왕하19:35). 하나님의 천사가 임하여 몰살시켜버린 것입니다.
10) 그 덕분에 블레셋이 함께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찬양을 올려드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행운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할 뿐입니다. 그 결과 장차 더 큰 환난 곧 신바벨론제국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조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다 왕 히스기야와 그의 아들 므낫세 왕도 비슷한 처신을 하고 맙니다(왕하20:16-19, 21:11-16). 따라서 다윗의 왕조도 블레셋과 같은 패턴의 위기를 또 맞이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더 큰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사14:29 의역).
11) 셋째, 제30절입니다; “30.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사14:30); 블레셋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해변가 내륙의 넓은 평야가 그랄입니다. 얼마나 농사가 잘되는 땅인지 모릅니다. 가나안의 다른 지역은 모두 가뭄이 들어도 그랄 평야만은 끄떡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이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그랄 지경으로 이주합니다(창20:1, 26:1).
12) 얼마나 그 땅이 비옥한지 초보 농사꾼 이삭이 백배의 소출을 얻고 거부가 되고 있습니다(창26:12-14). 그렇게 비옥한 땅에서 부자로 살고 있던 블레셋 족속들이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기근과 살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엄청난 전쟁의 발발로 블레셋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도 못하고 기근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죽게 됩니다.
13) 이사야는 평소 블레셋이 가난한 이웃 족속들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들만 호의호식했다는 잘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은근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30.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사14:30a). 블레셋은 잘 먹고 잘 살던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기체계가 발달하고 힘이 세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웃 민족을 침략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때문에 다윗왕조 유대왕국보다 먼저 바벨론에 의하여 블레셋이 망하게 됩니다(사14:30b).
14) 넷째, 제31-32절입니다; “31. 성문이여, 슬피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32.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사14:31-32); 북방에서 오는 정복군은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주전 604년에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대군이 침입하여 블레셋을 점령하게 됩니다(사14:31b). 다섯개의 도시국가가 소멸되고 맙니다(사14:31a);
15) 하지만 그 땅에 블레셋의 백성들은 많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의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사14:32). 비록 그들의 도시는 파괴되고 말지만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망하면서 그 땅이 비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구절에 대해서는 또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메시아의 깃발을 세우심으로 말미암아(사11:10) 새 시대가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영접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숙적인 블레셋 족속이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사14:32 의역).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요약함으로써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1) 첫째, 본문의 이사야 예언은 선민의 회복과 영광을 노래하면서 이방인들을 장차 종으로 삼는다고 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곧 선민의 영광으로 국한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선민우월사상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메시아의 오심과 신약적인 내용을 많이 예언하고 있다고 하는 이사야의 선지서가 그 정도의 내용에 머물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 700년 전의 선지자이며 선민사회의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실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선민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먼저 인식하고 그의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어쩔 수 없이 유대교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제약을 생각하면서 그의 선지서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그것을 학문적으로는 ‘간주관성’(間主觀性, subjective objectivity)의 문제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하는 곳에서는 완전한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배자가 선물하고 있는 가면적인 평온과 평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때로는 패권국의 힘이 워낙 막강하여 영원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패권을 자랑하고 있는 세상의 지배자 바벨론이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을 행하시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장차 하나님이 천하무적인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말미암아 드디어 제국이 망하고 황제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사람들이 비로소 다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①하나, 천하권세도 하나님 앞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신앙을 회복하여 영생을 얻고자 할 것입니다. ②둘,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③셋,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교만이며 그것이 사탄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3) 셋째, 악한 영들과 악한 세력의 특징 세 가지를 이사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①하나, 폭력과 전쟁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②둘,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고자 합니다. ③셋, 사람을 노예로 삼아 영원히 부리려고 합니다. 결코 자유와 해방을 주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무죄한 자가 피를 흘리며 세상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출2:23). 하나님께서 마침내 깃발을 세우시고 악한 영들과 그 추종자들을 타도하십니다. 그들을 사로잡아 불못에 던져버릴 것입니다(계19:20).
(4) 넷째, 역설적으로, 본문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방향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①하나,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②둘, 환경을 회복하고 생명을 살리고자 합니다. ③셋, 갇힌 자를 풀어주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사58:6). 그 사역에 동참하는 성도들은 주님 안에서 안식의 복을 누리며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새 예루살렘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계21:22-27, 22:1-5). 그와 같은 복과 거룩함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악한 영들이며 신바벨론제국의 권력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5) 다섯째, 지금도 혹자는 그 옛날 바벨론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와 같은 제국을 오늘날 건설하려고 하는 패권론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대항하는 바벨탑을 쌓지 말라고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만민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여러 백성을 지배하기 위하여 폭력과 군사력을 사용하여 또다시 바벨론과 같은 제국을 건설하는 자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그 흔적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사14:22-23). 끝으로 이사야는 악한 세력들을 도륙하는 영적인 전쟁에 성도들이 참전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예언까지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사14:21, 엡6:12).
(6) 여섯째, 본문 이사야 제14장에 기록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의 순서는 묘합니다. 주전 612년에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사14:25)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 제국이 패망한 것이(사14:4) 역사적인 흐름인데 그것을 거꾸로 열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역사를 거슬러올라가서 세상을 경영하며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창조주의 뜻과 말씀을 멸시한 채 폭력과 군사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제국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고 반면에 여호와신앙을 끝까지 파수하고 있는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팔을 벌리시고 있는 것을 똑똑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역사와 족보를 거슬러올라가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는 지혜를 의사 누가 역시 보여주고 있습니다(눅3:38). 그러한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아무쪼록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발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