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다메섹 아람왕국에 이어 선민의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하는 것을 보고서 이사야가 여호와께서 애굽제국을 위시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하다”(사17:1-18: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7. 11. 18:30

제목; “다메섹 아람왕국에 이어 선민의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하는 것을 보고서 이사야가 여호와께서 애굽제국을 위시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하다”(17:1-18:7)

설교일; 주후 2026 7 2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7 11일 금요일 작성)

 

여호와의 예언이 반드시 미래에 실현된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민과 이방인 모두에게 있어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의 경우에는(4:16)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러한 여호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두차례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15장 제6절의 말씀과 제22장 제12-14절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창세기 제15장에 있어서는 85세의 아브람에게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재차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당시 아브람은 자손의 번성을 주겠다는 여호와의 약속을 믿고서(12:2) 변방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10년이나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오고 있지만 아직도 일점혈육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내 사래가 불임이기 때문입니다(11: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다시 한번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믿기로 작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15:6a). 그 모습을 보고서 여호와는 아브람을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15:6b, 6:25, 4:3). 그 대목에서 두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아브람이 사람의 경험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약속이기에 믿은 것입니다(55:11, 15:1).

(2)  또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와 같은 새로운 창조를 이룩하실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17:1).

그렇지만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호와의 약속과 예언에 대한 성도의 믿음과 신앙고백은 엄청난 도전과 시련을 받게 됩니다(22:28). 창세기에서 예를 하나 들어보면,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이듬해에 사라의 몸에서 적장자 이삭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17:16).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예언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89세의 노파가 되어버린 아내 사라는 평생 불임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11:30). 또 하나는, 99세의 늙은이인 자신과 89세인 할멈인 사라가 합방하여 자식을 생산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비추어보면 불가능한 일이며 소가 웃을 일이기 때문입니다(17:17).

창세기 제18장을 보면 아내 사라의 생각도 남편 아브라함과 동일합니다(18:10-12). 그 사실을 파악하신 여호와께서는 사라를 야단치십니다. 그리고 믿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아브라함 부부에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 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18:13-15).

창조주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 곧 그 예언 그대로 이듬해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합방으로 인하여 적장자 이삭이 탄생하고 있습니다(21:1-5). 그와 같이 행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고서 사라가 기쁨의 웃음을 터뜨리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21:6-7).

창세기에서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은밀하게 자신을 방문한 블레셋의 연맹왕인 아비멜렉과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 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그들이 돌아가고 나자 아브라함은 새로 우물을 얻은 그곳에 뿌리깊은 에셀나무를 심고서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21:33).

그 의미는 유한한 인생살이보다 이제는 영생을 얻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4:26). 과연 족장 아브라함은 자신이 평생 이룩한 모든 것을 후계자인 이삭과 함께 여호와께 바치고 영생을 얻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엄청난 시험문제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22:1-2);

그러나 놀랍게도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그 시험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신 여호와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평생 이 땅에서 이룩한 모든 것을 전부 상속할 수 있는 후계자인)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영원한 대속의 제물은 여호와에 의하여)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1:29, 3:13-17)”(22:12-14).

이상과 같은 사실을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게 되면 여호와신앙의 본질인 믿음이란 것이 참으로 사람이 확신하고 그 안에 거하기가 쉽지 아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 이사야는 그러한 믿음을 어떻게 얻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 사실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여호와로부터 다메섹의 아람왕국과 사마리아의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 당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진작에 얻고 있었지만 그것을 반신반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주전 732년에 다메섹이 앗수르군대에게 점령을 당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 변방으로 끌려가면서 아람왕국이 그만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사마리아의 이스라엘왕국마저 똑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국제정세의 변동을 선지자 이사야가 생전에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더이상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90세가 된 사라가 아들 이삭을 생산하여 그 품에 안고서 기뻐하고 있는 그 모습을 이제는 반추할 뿐입니다.

그때부터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동족들에게 그대로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북조 이스라엘왕국처럼 마지막 남은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도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 뿐만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몰라보고 우상을 섬기며 현세적인 탐욕과 이기주의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방나라들도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서쪽의 블레셋과 동쪽의 모압은 물론이고 그들을 정복한 앗수르제국과 신바벨론제국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생전에 만나게 되는 아람왕국과 이스라엘왕국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을 먼저 수록하고(17:1, 3) 그 다음에는 그가 죽은 다음에 성취되는 여호와의 예언 곧 유대왕국(17:4-11)과 모압왕국의 멸망(17:2)은 물론 애굽제국(18:1-2)을 위시한 여러 제국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차례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17:12-14, 18:3-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다메섹(아람왕국의 수도임)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앗수르 군대의 침입으로 인한 다메섹 아람왕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음). 2. 아로엘(모압의 평야 지대이며 아르논 강 중류 북쪽에 자리잡고 있음, 2:36) (풍요로운)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모압왕국이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적국에 끌려가게 됨으로써 그 좋은 평야가 목초지가 되고 만다는 것임), 3. 에브라임(이스라엘왕국을 상징하고 있음. 초대 왕 여로보암1세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던 것임)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 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고 선민의 영광이 그 땅에서 사라지고 말듯이 그렇게 아람의 왕국들이 전부 멸망하고 만다는 것임).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선민의 나라와 이방인의 나라가 차별 없이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약육강식의 법칙을 쫓아 행동하면 언제나 동일한 처벌을 받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대목임). 4. 그 날에(선민의 나라에 망조가 드는 때에) 야곱(그 조상의 이름으로 선민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음)의 영광이 쇠하고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5.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의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전쟁에 져서 패잔병이 된 것임) 르바임 골짜기에서(블레셋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계곡의 침공로를 말함)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수비병력이 침략군의 포로가 되고 만 것임). 6.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그러나 나라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고 괴뢰정권이 성립된다는 것임. 예컨대, 주전 597년에 유대 왕 여호야긴과 쓸만한 인재와 재물이 전부 북송 된 채 허수아비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것과 같음, 왕하24:14-1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그 날에(선민의 나라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때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이 세상에서의 소망이 끊어진 그때서야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소원하게 될 것임), 8.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아무 소용이 없는 허망한 우상문화를 제거하고자 나설 것임), 9.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견고한 요새와 성들이 무너져 폐허가 되고 마는 것임), 10.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인들의 우상을 섬긴 대가가 그것인 것임). 11.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네 씨가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이고 지켜 주신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린 대가가 그러한 것임, 6:10-15, 28:33). 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선민나라의 멸망에 이어 창조주 여호와의 심판이 마치 파도처럼 이웃나라로 번져가고 있는 것임, 25:29),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세상 모든 나라들이 서로 멸망의 전쟁에 휘말리고 말 것임). 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대량 살육, 상호보복전쟁의 직전 마지막 순간에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전쟁이 멈추어 지고 그 대신에 역사의 종말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 65:17-18). 14.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역사의 심판과 더불어 이 세상이 사라지고 새 땅과 새 하늘이 창조되는 것임.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새 예루살렘에서 아침을 맞이하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있음, 66:20-21, 21:22-27)“(17:1-14); 본문은 다메섹의 아람왕국과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망하고 앗수르제국과 남조 다윗왕조의 유대왕국 그리고 모압왕국이 망하며 종국에는 바벨론제국과 모든 열방들이 하나같이 멸망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다메섹(아람왕국의 수도임)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앗수르 군대의 침입으로 인한 다메섹 아람왕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음). 2. 아로엘(모압의 평야 지대이며 아르논 강 중류 북쪽에 자리잡고 있음, 2:36) (풍요로운)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모압왕국이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적국에 끌려가게 됨으로써 그 좋은 평야가 목초지가 되고 만다는 것임), 3. 에브라임(이스라엘왕국을 상징하고 있음. 초대 왕 여로보암1세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던 것임)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 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고 선민의 영광이 그 땅에서 사라지고 말듯이 그렇게 아람의 왕국들이 전부 멸망하고 만다는 것임).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선민의 나라와 이방인의 나라가 차별 없이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약육강식의 법칙을 쫓아 행동하면 언제나 동일한 처벌을 받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대목임)“(17:1-3);

본문에서 이사야는 여러 나라가 역사 가운데 폐허가 되고 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유를 파악하기 위하여 구절씩 검토하면서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예언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1절입니다; “1.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것이라”(17:1); 이사야가 이와 같은 예언을 행하고 있는 시점은 주전 728년경 또는 주전 715년경이라고 있습니다. 이유는 스스로 28.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경고 임하니라”(14:28) 먼저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본문의 서두에서 1. 다메섹에 관한 경고”(17:1a) 역시 같은 맥락의 경고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이사야의 예언이 주전 728 또는 주전 725년경에 행해진 것이라고 한다면, 아람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주전 732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과거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예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본문 이사야의 경고는 전에 사라진 아람왕국 다메섹의 비극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훗날 종말의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로 다메섹이 완전히 황폐화되어 버리는 그때를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7:1).

3)      실제로 다메섹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주전 732년경 앗수르제국이 아람왕국을 정복하고 다메섹에 군대를 주둔하였지만 도시를 크게 파괴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왕하16:9). 오히려 다메섹에 들린 앗수르의 황제가 도시를 더욱 개발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제단을 그곳에 설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곳을 방문한 아하스 왕이 크게 놀라며 웅장한 제단을 부러워하고 있을 정도입니다(왕하16:10).

4)      둘째, 2-3절입니다; “2.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자가 없을 것이며, 3. 에브라임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7:2-3); 아로엘은 모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압 사람들이 그모스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디본 산당을 세웠는데 산자락에 아로엘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5:2, 17:2).

5)      모압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종말로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종말의 때에 다메섹 아람의 뒤를 아로엘 모압이 뒤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만 종말심판이 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이라고 자처하고 있던 이스라엘 12지파도 마찬가지라고 이사야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영광은 사라지고 그들도 하나님을 버렸기에 이방인 아람왕국이나 모압왕국처럼 성읍이 황폐해지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17:3).

(2)  4. 그 날에(선민의 나라에 망조가 드는 때에) 야곱(그 조상의 이름으로 선민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음)의 영광이 쇠하고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5.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의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전쟁에 져서 패잔병이 된 것임) 르바임 골짜기에서(블레셋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계곡의 침공로를 말함)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수비병력이 침략군의 포로가 되고 만 것임). 6.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그러나 나라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고 괴뢰정권이 성립된다는 것임. 예컨대, 주전 597년에 유대 왕 여호야긴과 쓸만한 인재와 재물이 전부 북송 된 채 허수아비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것과 같음, 왕하24:14-1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그 날에(선민의 나라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때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이 세상에서의 소망이 끊어진 그때서야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소원하게 될 것임), 8.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아무 소용이 없는 허망한 우상문화를 제거하고자 나설 것임), 9.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견고한 요새와 성들이 무너져 폐허가 되고 마는 것임), 10.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인들의 우상을 섬긴 대가가 그것인 것임). 11.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네 씨가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이고 지켜 주신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린 대가가 그러한 것임, 6:10-15, 28:33)“(17:4-11);

1)    첫째, 4-5절입니다; “4. 그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5.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의 손으로 이삭을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같으리라”(17:4-5); 이사야는 이미 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이 에브라임 요새의 멸절과 더불어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의 여로보암1세로부터 시작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패망과 그때문에 역사 가운데 사라지는 이스라엘 10지파의 최후에 관한 예언입니다.

2)    이제 이사야는 4절에서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의 최후와 선민이 완전히 사라질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그들이 베들레헴 가까운 르바임 골짜기에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이 임하고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르바임 골짜기 북쪽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는 아이들을 몰렉에게 인신제사로 바치는 가장 끔찍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왕하23:10);

3)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우상을 섬긴 도시와 지역이 사람 살기에 가장 어려운 곳이 되고 것입니다. 먹거리가 거의 사라지고 맙니다. 따라서 배가 고픈 백성들이 손으로 이삭을 베어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디로,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기아상태) 비참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4)    둘째, 6절입니다; “6. 그러나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7:6);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모두가 우상을 섬겼으며 심판의 대상입니다. 전부 심판을 받아 재앙 가운데 굶어 죽을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5)    하지만 가운데에서도 구원함을 얻는 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말씀은 옛날 선지자 엘리야의 판단까지 뛰어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자기 사람 외에는 북조 이스라엘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7,000명의 의인을 남기겠다고 언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왕상19:18).

6)    셋째, 7-8절입니다; “7. 그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8.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신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17:7-8); 마치 아합 시대의 7천명의 의인들처럼 종말에도 하나님신앙을 파수하는 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나라를 건설하는 역군이 것입니다.

7)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것입니다. ,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재발견할 것입니다. ,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일체의 우상을 배격할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구원만을 바라볼 것입니다.

8)    넷째, 9-10절입니다; “9. 그날에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10. 이는 네가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가지도 이종하는도다”(17:9-10); 이사야는 사람이 사는 성읍들이 무너지고 역사적으로 버림을 받게 되는 이유를 한마디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산당에서 우상을 섬기고 수풀 속에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알기 쉽게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9)    농사의 바알과 아름다운 여신 아세라가 합방을 통하여 세상에 풍년이 찾아온다고 믿으면서 백성들이 사제인 여자들과 음행을 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창조의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의 우상과 쾌락의 이방신을 섬긴 것입니다. 우상이 풍요와 번영을 가져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흉년과 몰락이 찾아오게 됩니다.

10)  솔로몬 왕이 통치 후반기에 잘못을 범하여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쪼개어지고 맙니다. 동일한 처벌이 종말에 임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방여인을 마음대로 후궁으로 삼고서 그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무조건 허용해주었습니다(왕상11:1-13). 여인들을 통하여 이방나라의 온갖 폐습이 제사장나라에 들어오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선민들이 무분별하게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우상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이방신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결과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모두에게 하나님의 종말심판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다섯째, 11절입니다; “11.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씨가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17:11); 세상적으로 문물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풍요와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 과학의 발전과 물질적인 번영 그리고 도시문명의 발달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입니다. 아무리 울타리를 두르고 씨앗을 자라게 하면 무엇 합니까? 결실을 함께 나누며 행복을 함께 맛보아야만 사람들이 병이 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12)  흔히 정신 없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여 풍요를 누리며 잘살게 되었다고 자랑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때문에 사라져버린 정신적이고 영적인 행복입니다. 인간관계도 물질적인 관계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번영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노년에 근심과 슬픔 가운데 자신의 성취의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경험할 따름입니다.

(3)  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선민나라의 멸망에 이어 창조주 여호와의 심판이 마치 파도처럼 이웃나라로 번져가고 있는 것임, 25:29),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세상 모든 나라들이 서로 멸망의 전쟁에 휘말리고 말 것임). 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대량 살육, 상호보복전쟁의 직전 마지막 순간에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전쟁이 멈추어 지고 그 대신에 역사의 종말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 65:17-18). 14.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역사의 심판과 더불어 이 세상이 사라지고 새 땅과 새 하늘이 창조되는 것임.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새 예루살렘에서 아침을 맞이하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있음, 66:20-21, 21:22-27)“(17:12-14);

1)    참으로 짤막한 본문입니다. 단지 3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용과 의미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역사를 섭리하시고 종말적인 심판을 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력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가운데 성도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있는지도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과연 그러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내용인지 지금부터 구절씩 검토하면서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2절입니다; “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17:12);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하면서 여러 나라와 민족이 살기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 마치 바다의 파도가 치고 있는 것과 같아서 슬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미는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에서 이해해야만 것입니다.

3)    점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대목은 욥기 38장입니다; “8. 바다가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때에 (여호와) 구름으로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바다의 파도)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38:8-11).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지와 바다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4)    물이 위로 솟구치려고 때에 마치 문을 만들어 닫고 빗장을 채우듯이 하나님께서 중력을 만드셔서 그것을 아래에 가두어 버렸습니다(1:9-10). 그러나 문제는 바다에서 파도가 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세가 바람을 맞아 사나워지면 땅을 집어삼킬 것만 같습니다. 오늘날 일명 쓰나미 알려지고 있는 바다 해일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파도가 침범할 없는 땅의 경계를 일찍이 엄격하게 정해 놓으셨기에 오늘날에도 지면에서의 인류의 삶이 가능합니다.

5)    여러 나라와 민족 사이의 다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다의 파도와 같이 계속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바다의 경계를 정하고 계시듯이 국지전(局地戰) 모두를 학살하는 전면전쟁(全面戰爭)으로 전개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 계속 제어하고 계십니다. 만약 제어장치가 깨어져버린다면 상호 보복적인 핵폭발로 말미암아 오늘날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는 산산조각이 나고 것입니다. 

6)    흔히들 지구를 가까이 태워버릴 있는 핵무기가 강대국들 사이에 비치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만약 어느 통치자가 실수로 공격을 명령하고 잘못 단추를 눌러버린다고 한다면 순식간에 상호 연쇄적인 핵공격으로 인류의 삶은 끝장나고 것입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시대를 지난 20세기후반기부터 살아오고 있는 인류입니다;

7)    그런데 과연 정치지도자들이 현명하고 지혜스러워서 아직 단추를 누르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때로 실수를 범할 있으며 최고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맞이하여 아직도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욥기에 비추어보면 명백하게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의 파도를 가두고 경계를 정하고 계시듯이 그렇게 열방의 전쟁을 제어하고 계십니다.

8)    그와 같은 사실을 본문에서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들이 모르고서 지내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돌보지 아니하시면 바닷물이 땅을 덮어버리듯이 그렇게 끝장이 나고 텐데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는 점을 모르고서 서로 이익을 챙기려고 다투며 전쟁을 일삼고 있는 여러 족속들의 행태가 한없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9)    둘째, 13절입니다; “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17:13); 세상을 섭리하시고 제어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감히 여러 족속들이 서로 전쟁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전쟁의 양상이 상호 보복적이며 브레이크가 없는 열차와 같습니다. 한꺼번에 모두가 망하게 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한 파국을 누가 어떻게 막고 계시는지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10)   대목을 이해하기 쉽게 마태복음 8장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8:23-27).

11)  사람들은 파괴를 향하여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네가 죽고 내가 살겠다고 하는 약육강식의 철칙으로 싸우고 있지만 나중에는 원한에 사무쳐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죽고 죽자는 식으로 일종의 치킨 게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1960년대 초엽 미국과 쿠바 사이의 바다에서 벌어졌던 미국과 소련 사이의 긴장과 같습니다. 한쪽이 크게 양보하지 아니하면 세계 3차대전으로 그리고 핵전쟁으로 이어지고 상황인 것입니다.

12)  당시의 상황을 젊고 대담한 미국 대통령의 승리라고 혹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것일까요? 본문에서는 분명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충돌을 하고 있는 그들을 꾸짖어 상황을 정리하신 것입니다. 창조주의 역사섭리 안에서 그들은 마치 바람에 나는 겨처럼 그리고 폭풍에 날리는 티끌처럼 모두들 물러간 것입니다”(17:13 의역). 옛날 바다와 파도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위력이 오늘날에도 은밀하게 역사하고 있기에 상호 공멸의 역사가 다시금 뒤로 물러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3)  셋째, 14절입니다;14.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17:14);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없이 막막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은 작은데 몰려오는 어려움은 월등히 것들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도 극복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아직도 너나없이 숨을 쉬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와 같은 결과를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요? 점에 대하여 본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14)  하루를 끝내면서 저녁까지 이어지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명예나 성취 또는 건강함이 일순간에 약탈당하고 강탈당할 것만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두려움의 실체는 자신의 능력과 상상을 넘어서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으며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창세기 2장에서 해결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2:2-3);

15)  사실상의 천지창조는 창세기 1장을 보면 이미 6 동안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7일에 마무리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인데 무엇을 했다는 것일까요? 비밀은 다음 3가지 용어 가운데 들어있다고 하겠습니다; 안식, , 그리고 거룩함입니다. 안식은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16)  그것은 천하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돌보고 관리하는 일입니다(1:26-27). 특히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막중한 청지기의 의무를 행하고 있습니다(6:39, 6:9). 하지만 사람의 인생살이가 그러하듯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능력은 빤한데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는 어렵기만 합니다. 어찌하면 될까요?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서는 결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과를 끝내면서 문제를 들고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먼저 상세하게 설명 드리면서 문제의 해결을 부탁 드립니다. 그와 같은 작업이 7일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7)  여호와 하나님의 답변을 듣습니다; “내일 해가 뜨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놓을 테니 너는 안심하고 잠을 자라고 하십니다”. 말에 모든 문제를 맡겨드리고 편히 잠을 이룹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모든 문제가 너무나 멋지게 해결되어 있는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바로 안식의 의미하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샤바트(שַׁבָּת)) 2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없는 것임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빨리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문제를 들고 나올 있도록 날이 바로 거룩한 안식일입니다. 하나는, 맡겨드리고 안심하고 주안에서 잠을 있는 자가 행복한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다음 아침에 문제가 해결된 날을 마주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8)  그것이 신앙생활 가운데 경험할 있는 축복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때문에 선지자 이사야가 신이 나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하나님께 말씀 드린 문제가 사이에 깨끗하게 해결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의 것을 강탈하고자 했던 적들을 물리쳐 주셨으며 네가 약탈 당한 것을 다시 찾아올 있도록 해주셨기 때문이다”(17:14 의역). 참고로, 본문의 내용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메소포타미아 다국적군을 물리치고 조카 롯을 비롯한 인질을 구출하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약탈당한 재물을 되찾아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14:15-20).

둘째로, “1. 슬프다 구스(이디오피아. 이사야 당시에는 구스의 왕가가 북진하여 나일강 유역을 차지하고 애굽제국을 이루고 있었음) (구스가 나일강의 상류지역임) 강 건너편(북쪽의 낮은 지역 하이집트를 말함)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두개의 나일강이 만나서 이루고 있는 삼각주 비옥한 평야를 두고서 전쟁이 발생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가벼운 갈대로 만들어진 카누가 빠른 속도로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음)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바로가 전쟁동원령을 내리고 급히 전령을 청나일강과 백나일강 유역에 있는 여러 봉신국의 왕들에게 보내고 있음)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상이집트 산지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거인이며 용사들임) 하는도다(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애굽제국은 주전 7세기에 앗수르제국, 주전 6세기에 신바벨론제국의 침입을 받고 있음. 두차례 모두 패전하여 통일왕조가 멸망하고 만 것임).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11:10,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외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깃발을 말하고 있음)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며 구원의 길로 나아오라는 것임, 19:21-2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뿌린 천국복음의 씨가 잘 자라서 풍성한 열매 맺기를 바라고 있는 것임, 15:8, 8:11, 13:). 5.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그러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있다는 것임, 13:13-15. 그러므로 결실하지 못하는 나무의 가지는 버림을 받고 말 것임, 15:2), 6.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여호와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영생구원을 얻지 못하고 이 땅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임, 3:19). 7.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애굽의 두 강 사이 삼각주를 차지하고서 제국을 형성한 지배민족과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가 된 족속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시온의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를 경배할 것이라는 예언임, 19:21-25, 66:20-21)“(18:1-7); 선지자 이사야가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에게서 받은 말씀을 가지고 장차 애굽제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으며 또한 먼 훗날 열방과 더불어 그들 이방의 지배 족속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슬프다 구스(이디오피아. 이사야 당시에는 구스의 왕가가 북진하여 나일강 유역을 차지하고 애굽제국을 이루고 있었음) (구스가 나일강의 상류지역임) 강 건너편(북쪽의 낮은 지역 하이집트를 말함)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두개의 나일강이 만나서 이루고 있는 삼각주 비옥한 평야를 두고서 전쟁이 발생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가벼운 갈대로 만들어진 카누가 빠른 속도로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음)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바로가 전쟁동원령을 내리고 급히 전령을 청나일강과 백나일강 유역에 있는 여러 봉신국의 왕들에게 보내고 있음)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상이집트 산지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거인이며 용사들임) 하는도다(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애굽제국은 주전 7세기에 앗수르제국, 주전 6세기에 신바벨론제국의 침입을 받고 있음. 두차례 모두 패전하여 통일왕조가 멸망하고 만 것임)“(18:1-2);

1)    적어도 다음 3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본문 내용입니다; 하나, 유다 히스기야가 앗수르 산헤립 군대를 막기 위하여 당시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구스의 왕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내고 있는 장면으로 보는 경우. ,  그와 달리 애굽의 통치자 구스의 왕이 유다의 왕에게 앗수르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동맹을 제안하는 사절을 보내고 있다고 보는 경우. , 무력으로 애굽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구스의 왕이 동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의 군대를 끌어 모으고자 사절을 보내고 있는 경우 등입니다. 이제부터 본문을 자세히 검토하면서 3가지의 경우를 따져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슬프다, 구스의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18:1); 먼저 구스’(18:1) 의미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대문명은 강의 유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의 강이 만나고 있는 넓은 삼각주지역은 비옥한 땅이며 그곳을 지배하는 민족이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그러한 입지는 둘입니다; 하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하나는, 나일 유역입니다.

3)    아시는 대로,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크리스 강이 만나고 있는 삼각주입니다. 그곳에서 고대 바벨론제국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디오피아에서 발원하고 있는 ()나일 강과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나일 강이 수단에서 만나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곳에 애굽제국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로 보고 있지만 고대의 개념은 약간 다릅니다. () 애굽제국을 여러 차례 지배하게 되는 나일 상류의 왕조를 통칭하여 구스라고 간편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4)    물론 애굽제국을 주로 통치한 왕조는 나일 하류에 살고 있는 애굽 인들의 왕가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디오피아의 구스 인과 수단의 누비아 인들이 힘을 합쳐서 애굽 인들을 물리치고 전체 애굽제국을 통치했습니다. 본문과 같은 예언을 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는 구스 인과 누비아 인들이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었던 애굽 25왕조(BC 740-656) 시대입니다. 참고로, 역사학자들은 당시 누비아 인들이 지배세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성경의 역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누비아가 아니라 구스라고 보고 있습니다; “9. 앗수르 왕은 구스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왕하19:9).

5)    구스의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18:1b) 어디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2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한국어성경 개역개정판처럼  건너편’(beyond)이라고 보고 있는 경우(KJV) 있고 하나는, ‘강줄기’(along)라고 보고 있는 경우(NIV)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번역이 정확할까요? 그것은 날개를 치는 소리가 나는 땅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해결이 문제입니다; 날개 치는 소리가 무엇일까요? 새들이 날개를 치는 소리일까요? 그러한 의미보다는 군사들의 병장기 소리가 요란하다는 뜻으로 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메뚜기 떼들의 날개소리가 요란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6)    가지의 경우를 합해본다면 지역은 풍요로운 곳으로서 메뚜기 떼들이 날아와서 먹을 것이 많은 곳입니다. 그리고 훈련이 잘된 군사의 수가 많은 지역입니다. 고대 애굽 제국에서 그러한 지역이 과연 어디일까요? 언뜻 보면,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예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애굽제국 삼각주 바로의 땅을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당시 메뚜기 재앙이 있었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홍해가로 매섭게 추격해오던 위풍당당한 바로의 군대의 모습을 연상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10:12-15, 14:6-10).

7)    그러나 구스의 먼저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적습니다. 오히려 이디오피아 건너편에 있는 동아프리카 여러 민족을 지칭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은 누비아 인들의 땅입니다. 왜냐하면, 구스의 강을 따라서 내려가면 수단의 누비아 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소결론을 맺어보자면 이사야는 당시 애굽을 통치하고 있는 구스와 누비아 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하고자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8)    이사야는 슬프다”(18:1a)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일까요? 구스와 누비아 인들의 땅이 장차 멸망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점은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은 아닙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제국 산헤립 황제의 군대가 거의 몰살을 당하고 물러가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19:35-36). 그러므로 훗날 페르시아제국에 의하여 애굽 제국이 망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전 525년경의 일입니다;

9)    둘째, 2 앞부분입니다; “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18:2a); 누가 갈대 배를 띄워 사자를 어디로 보내고 있는 것일까요? 3가지 경우를 수가 있습니다; 하나, 유다 히스기야가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원군을 청하고자 애굽의 바로 구스 왕에게 사자를 보내고 있는 경우입니다. , 그와 달리 애굽의 바로 구스 왕이 앗수르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고자 유다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고 있는 경우입니다. , 바로인 구스의 왕이 제국 내의 여러 왕들에게 사자를 보내고 있는 경우입니다. 과연 어느 경우가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일까요? 다음 구절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10)  셋째, 2 중간 부분입니다;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18:2b); 사자들이 전해야만 하는 황명이나 왕명이 매우 긴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첩한 사절들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향하고 있는 목적지를 이사야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왕국과 애굽제국 가운데 어느 쪽이 그러한 표현에 합당한 나라일까요? 당연히 애굽제국입니다. 청나일과 백나일이 합쳐서 수단으로 흐르고 있으며 다음에는 하류인 애굽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11)  물론 애굽 내에서도 나일 강의 여러 지류가 나누어서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왕국에도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작은 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시내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역시 가장 합당해 보이는 나라는 누비아 인들이 살고 있는 수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청나일과 백나일이 합쳐지고 있으므로 역으로 강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유추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다음 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2)  넷째, 2 말미입니다;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시초부터 두려움이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18:2c); 애굽제국 내에서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이며 시초부터 이웃나라에 크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비아 인들이며 오늘 수단 사람들입니다. 피부는 검지만 매끈매끈합니다. 그들을 동원하여 전쟁터로 나가기 위하여 애굽의 바로인 구스의 왕이 급히 친서를 보내고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강을 따라 경쾌한 갈대 배를 띄우고 있습니다. 바로의 사자들은 민첩하여 빠르게 배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소결론을 맺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다 히스기야가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에게 친서를 보내어 왔습니다.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침입이 예상되므로 원군을 보내어 달라는 것입니다. 구스 왕은 사안의 급함을 인지합니다. 따라서 나일 강에 가벼운 갈대 배를 띄워 급히 사자를 누비아로 보내고 있습니다. 장대하고 준수하며 용맹이 뛰어난 그들 병사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다 히스기야가 애굽의 바로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다는 전제가 신앙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14)  이사야를 포함하여 선지자들은 일관되게 다음과 같이 달리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의 원군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웃 강대국의 힘을 빌려서 적을 물리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강대국의 그늘에서 제사장나라가 당당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강대국의 힘보다 약한 하나님을 누가 의지하고 믿겠습니까? 그리고 위기 때마다 이웃 강대국의 도움만을 구하고자 하는 백성은 자립형 신앙인의 모습이 결코 되지 못할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15)  참고로, 달리 해석하는 경우가 하나 있습니다. 신앙상 교훈을 확실하게 주고 있는 추론입니다. 차제에 말씀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이 바닷길로 빠른 갈대 배를 띄워 다윗왕조의 왕에게 급히 친서를 보내어 왔습니다. 내용은 앗수르제국의 황제가 아람왕국과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한 후에 남조 유대왕국과 블레셋 등을 치고 이어서 애굽제국을 치고자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군사동맹을 맺어 야욕을 격퇴하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외치고 있는 내용이 본문이라는 것입니다.

16)  그럴 경우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바뀌게 됩니다; “애굽의 사자들은 빨리 너희들의 나라로 되돌아 가라. 여러 강들이 흘러 풍요로우며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들이 있어 강력한 군대를 가진 애굽제국의 황제 바로에게 전하도록 하라. 다윗왕조의 유대왕국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이니 세상적인 군사동맹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전하도록 하라”. 한마디로,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이 선지자 이사야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2)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11:10,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외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깃발을 말하고 있음)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며 구원의 길로 나아오라는 것임, 19:21-2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뿌린 천국복음의 씨가 잘 자라서 풍성한 열매 맺기를 바라고 있는 것임, 15:8, 8:11, 13:). 5.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그러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있다는 것임, 13:13-15. 그러므로 결실하지 못하는 나무의 가지는 버림을 받고 말 것임, 15:2), 6.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여호와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영생구원을 얻지 못하고 이 땅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임, 3:19). 7.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애굽의 두 강 사이 삼각주를 차지하고서 제국을 형성한 지배민족과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가 된 족속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시온의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를 경배할 것이라는 예언임, 19:21-25, 66:20-21)“(18:3-7);

1)      본문의 내용은 18 1-2절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점을 먼저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는 18장의 예언을 시작하면서 슬프다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법과 방향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세상적인 꾀와 무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는 제사장나라와 애굽제국의 행태가 눈에 환하게 보이는 듯하여 그것이 한없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2)      구체적으로, 신흥 강대국 앗수르제국이 중동 땅을 모조리 정복하고자 유대왕국으로 다시 쳐들어올 같으면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은 애굽제국에 원군을 요청하고 것입니다. 다윗왕조의 제사장나라이며 선민인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법과 방향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사대적인 외교를 통하여 강대국 애굽의 보호로 당면한 국난을 수습하려고 것입니다. 세상나라인 애굽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구스의 왕이 유다, 블레셋 등과 동맹관계를 맺어서 함께 동방에서 오는 위협을 제거하려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그들의 안중에는 창조주 하나님은 이미 죽어 있는 존재와 같습니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하는 말들을 하고는 있지만 신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있으며 세상사에 별로 관여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전혀 의지할 바가 된다고 하는 통념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불신앙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통탄하면서 문제해결의 정답을 이제부터 제시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정답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4)      본문은 3가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 세상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땅에 오시는 메시아와 복음의 선포입니다(18:3). , 여전히 세상을 감찰하시고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8:4-6). , 구스와 동아프리카 여러 족속을 아우르고 있는 애굽제국의 후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18:7) 등입니다.   상세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절씩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5)      첫째, 3절입니다; “3.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18:3);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일관되게 세상사람들에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역사를 섭리하시고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는 창조주 하나님은 전혀 의지할 바가 된다고 하는 통념을 가지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목에서 이사야는 다시 한번 메시아의 오심과 복음의 선포가 있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기치와 나팔소리 가지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6)      기치와 나팔소리가 무엇이기에 만민들이 그것을 우러러보고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조금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전면적인 심판을 준비하기 위하여 종말의 때가 시작되면 세상에 가장 먼저 이른 같이 메시아가 오시게 것입니다.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요엘 선지자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2:23). 그리고 메시아가 세상에 내거는 하나님의 깃발이라는 사실은 이미 이사야가 11장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7)      10.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11:10). 깃발은 세상사람들이 모두 있도록 높은 산에 내걸리게 것입니다. 그리고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이 있게 것입니다;

 이사야가 기치 다음에 나팔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옛날 시내 산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강림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같습니다;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연기가 옹기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19:18-19).

8)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으로 세상 만민에게 선포가 것입니다. 그런데 일은 그리스도 혼자서 세상에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세상에 그리스도의 오심과 만민구원의 복음을 널리 전할 것입니다. 세상 종말의 끝에 먼저 오신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 올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24.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풀이를 해보자면, 세상사람들이 메시아의 깃발을 바라보고 나팔소리와 같은 복음을 받아들여서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나라를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9)      뜻은 나라를 이제 창조주께서 함께 하시는 영생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것입니다(65:17-25, 21:22-27, 22:1-5).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담고 있는 것이 복음의 나팔 소리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세상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치와 나팔소리가 울리면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열방과 세상만민이 모두 메시아 곁으로 모이고 보고 들은 복음을 부디 생활화하십시오. 그것이 종말로 구원과 영생을 얻을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18:3 의역).

10)   둘째, 4절입니다; “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 쬐이는 일광(日光, 햇빛)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雲霧, 안개구름) 같도다”(18:4); 모든 생명체는 햇빛을 쪼임으로”(18:4b) 목숨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먼저 모든 식물이 햇빛을 받아 탄소동화작용을 함으로써 살아갈 양분을 얻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모든 동물은 식물이 만들어 놓은 양분을 흡수함으로써 세포에서 그것을 에너지로 전환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섭리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조용히 주관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이사야는 여기서 조용히 감찰함”(18:4a)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1)   가을은 결실을 앞둔 시점입니다. 시기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 식물이 열매와 함께 말라버리게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만물과 만민을 먹여 살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되는 환경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습기를 머금은 안개를 구름과 같이 보내셔서”(18:4c) 환경을 치유하시고 있습니다.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하겠습니다.

12)   셋째, 5-6절입니다; “5.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서, 6.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18:5-6); 식물은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거나 아니면 꽃과 함께 열매를 맺다가 꽃이 떨어지면서 열매가 완전히 영글게 됩니다(18:5a). 포도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13)   그런데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하나님께서 들짐승과 하늘의 새를 먹여 살리시기 위하여 조치를 취하시고 있습니다. 섭리는 홍수와 태풍을 일으켜서 상당한 양의 열매를 땅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18:5b). 동시에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어 무거워진 가지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서 땅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하면 동물들과 새들이 열매를 주워 먹음으로써 여름을 지내고 겨울을 나게 것입니다(18:6).

14)   넷째, 7절입니다;7. 그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시온 산에 이르리라”(18:7):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하나님의 생명살림의 역사가 메시아를 통하여 세상에 복음으로 선포가 것입니다.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높은 산에 하나의 깃발처럼 나부끼게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 가운데 이사야의 예언은 해발 800미터 고지대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구세주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3:13-17).

15)    깃발이 나부끼고 대속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만민구원과 영생의 복음이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되어 세상에 퍼져 나가게 되면 슬픈 인류의 역사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죄사함의 은혜를 깨닫고 나라의 백성들부터 십자가 아래로 몰려들게 것입니다. 그냥 맨손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들고 것입니다. 예물은 전도의 열매이며 성화의 열매입니다(66:20, 28:18-20). 무리 가운데 애굽 제국의 백성들이 함께 것임을 이사야가 자신 있게 예언하고 있습니다(19:21-25).

16)   주전 7-8세기 이사야의 시대에 애굽 제국을 좌지우지했던 구스 , 누비아 , 그리고 동아프리카의 여러 족속들이 모두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운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파하는 전진기지가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는 19장에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23.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시며 이르시되 백성 애굽이여,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3-25);

17)   사족을 더하자면,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18:2, 7)이라는 표현은 애굽제국 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묘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9장의 내용을 선지자 이사야가 18장에서 이미 완벽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본문의 내용을 요약함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1)  첫째, 이사야의 경고가 바로 종말 예언이라는 사실을 본문이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선민의 나라 뿐만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나라도 모두 사람이 없는 환경 가운데 종말을 맞이하게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구원과 영생의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제멋대로 인생을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라고 하더라도 르바임 골짜기 가까이 힌놈 골짜기에서 아이들을 우상 몰렉에게 인신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산당에서 여러 우상을 섬겼으며 수풀 속에서 여자 사제들과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버렸습니다. 결과 물질적 풍요와 쾌락은 누렸는지 몰라도 정신적 영적으로는 슬픔 가운데 빠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부지런히 살아온 인생의 결론이 하나님 보시기에 한갓 부질없는 것이 되고 것입니다. 이사야가 경고하고 있는 종말의 심판은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누구에게나 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시간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서야만 것입니다.

(2)  둘째, 바다에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지만 결코 사람이 살고 있는 땅덩어리를 완전히 휩쓸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경계를 정하시고 엄히 제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38:11). 그와 같은 욥기의 내용을 참조할 본문의 이사야 예언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사야의 그대로 열방이 민족의 이익과 자국의 발전을 위하여 국제사회에서 갈등과 투쟁의 역사를 되풀이 해오고 있습니다. 때로는 전쟁의 양상이 모두를 멸망시킬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다의 파도와 같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섭리로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마치 주님이 바다와 파도를 꾸짖어 잔잔하게 만드신 것과 같은 역사가 다시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을 통하여 호소하고 있습니다; “부디 해결할 없는 문제를 가지고 두려움에 떨면서 저녁을 맞이하지 마십시오. 문제를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말씀 드리고 해결을 맡겨드리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들이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편히 잠을 이루고 있는 사이 시간에 적들이 물러가게 것입니다”(17:14 의역).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주전 701 앗수르제국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 성에 갇힌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찾아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러자 밤사이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사 18 5천명을 죽여버리고 맙니다(왕하19:35). 이튿날 아침에 히스기야 왕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3)  셋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효력이 변함없이 나타나기에 진리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음을 빨리 깨닫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문제를 맡겨드리고 대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튿날 아침에 주시는 새날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새날이 자신의 상상이나 소원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조금 세월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해답이 정확하고 모두를 살릴 있는 공의로운 것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게 것입니다.

(4)  넷째, 이사야가 꿈꾸고 있는 그와 같은 하나님신앙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구에 앗수르 군대의 재침이 있게 되면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잠시 적을 물리치는 신앙의 승리가 있게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자신들의 신앙심과 능력으로 강력한 적군을 물리친 착각하고서 다시 교만하고 거만해져 버릴 것입니다(왕하20:12-19). 그리하면 본문 구스의 애굽제국처럼 종내에는 슬픈 역사를 맞이하고 것입니다(왕하21:11-16). 따라서 본문 이사야의 예언은 슬프다! 시작하고 있으며 끝도 의미상으로 슬픈 역사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의 본이 필요합니다. 반석을 어디서 얻을 있을까요? 이사야의 예언은 반석을 찾아서 메시아 예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5)  다섯째, 본문 이사야의 예언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고 복음이 나팔소리처럼 세상에 퍼져 나갈 때에 애굽제국과 구스의 슬픈 역사도 종말을 고하게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여전히 역사를 주관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예언은 다음 장인 19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민구원을 원하신다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에 울려 퍼지게 되면 그때에는 전쟁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는 화목의 대로가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설치될 것이라는 복된 예언입니다. 그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임하는 새로운 화목과 구원의 시대를 매우 구체적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한 구체적인 믿음을 영적인 안목으로서 생생하게 지니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