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땅이 흔들리고 깨어지며 세상문명이 사라질 때에 여호와께서 시온 산 예루살렘에 창조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다”(사24:1-23)
설교일; 주후 2026년 8월 3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7월 21일 월요일 작성)

본문 이사야 제24장은 크게 보면 이 세상의 종말과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지자 이사야가 특이한 시점의 이동을 가지고 묵시를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사야는 예언의 시점을 다음과 같이 옮겨가면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종말에 관한 묵시로 전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처음 장면은 인류의 삶의 터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예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사24:1). 사람이 살고 있는 지표면이 뒤집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기에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종말을 맞이하고 마는 것입니다(사24:2-4)
(2) 둘째, 둘째 장면은 세상사람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현세적인 욕심에 이끌리어 살아간 결과 그들의 터전에 여호와의 저주와 진노가 임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사24:5). 그에 따라 엄청난 지진과 화산의 폭발이 발생하여 인류의 대부분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입니다(사24:6).
(3) 셋째, 셋째 장면은 땅의 소출이 크게 감소하여 풍년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사24:7-8).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는 풍요의 기쁨이 사라지고 장래가 암담합니다(사24:9). 마침내 약탈이 만연하고 전쟁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성읍을 버리고 산으로 피난하여 초근목피로 살아갈 따름입니다(사24:10-13).
(4) 넷째, 그와 같이 인류역사의 종말에서부터 가까운 시점으로 당겨지고 있는 카메라의 초점이 갑자기 크게 뒤로 물러가서 여호와의 역사개입이 최후의 심판으로 전세계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24:14-20). 마침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새로운 천지를 창조하시고 새 예루살렘성에서 그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이사야의 묵시가 완성되고 있습니다(사24:21-23).
이상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면서 그 자세한 예언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창1:2a,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 이전의 상태로 피조세계를 돌아가게 만드신다는 의미임) 황폐하게 하시며(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고 마는 것임),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지표면을 뚫고서 용암이 분출하도록 지진이 크게 발생하고 마는 것임),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사람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서 살 길을 찾지만 피난처가 없음), 2. (삶의 터전 자체가 사라지므로)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종교적 신분의 차이가 없어지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주종관계가 끝나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남녀차이가 사라지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거래관계가 끝나며),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채권채무관계가 사라지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모든 이자가 없어질 것임). 3.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창1:2a, 우주가 다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임)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생명이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마는 것임).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이므로 반드시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것임). 4.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땅이 사라지는 것을 선지자 이사야가 슬퍼하고 있음),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이 세상의 종말이 임하는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음),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세상의 지배자들이 사라지는 것을 이사야가 영적으로 미리 보고 있음), 5.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삶의 터전인 땅을 오염시킨 주범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기적으로 약육강식의 사회를 만들고 말았기 때문임). 6. 그러므로 (언약의 상대방인 여호와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모든, 신6:10-15, 8:11-20, 28:15-48, 29:20-21)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7.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수확의 기쁨이 사라지며), 8.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풍년가가 사라지고), 9.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인생살이가 고난의 연속임). 10.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서로 살기 위하여 약탈을 일삼으며 전쟁을 벌이므로 성읍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것임), 11.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세상사는 재미가 완전히 소멸되고 마는 것임). 12.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마침내 인간의 문명이 사라지고 있는 것임). 13.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모두가 거지가 되어 세상을 떠도는 유민이 되고 마는 것임)“(사24:1-13);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창1:2a,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 이전의 상태로 피조세계를 돌아가게 만드신다는 의미임) 황폐하게 하시며(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고 마는 것임),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지표면을 뚫고서 용암이 분출하도록 지진이 크게 발생하고 마는 것임),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사람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서 살 길을 찾지만 피난처가 없음), 2. (삶의 터전 자체가 사라지므로)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종교적 신분의 차이가 없어지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주종관계가 끝나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남녀차이가 사라지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거래관계가 끝나며),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채권채무관계가 사라지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모든 이자가 없어질 것임). 3.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창1:2a, 우주가 다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임)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생명이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마는 것임).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이므로 반드시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것임). 4.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땅이 사라지는 것을 선지자 이사야가 슬퍼하고 있음),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이 세상의 종말이 임하는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음),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세상의 지배자들이 사라지는 것을 이사야가 영적으로 미리 보고 있음)“(사24:1-4);

1) 이사야는 제23장에서 해상왕국 페니키아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지중해 해양국가들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4장에서는 대륙국가들의 말로를 예언하면서 세상종말의 모습을 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 첫번째의 내용입니다. 그 특징은 천지창조의 모습과 닮아 있는 정반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제부터 구절을 따라가면서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1절입니다; “1.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사24:1);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그 정지(整地)작업을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에 아담부부의 가정에 ‘셋’(seth, 다른 씨)이라고 하는 또다른 아들을 주셔서 의인 아담의 족보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신 바가 있습니다(창4:25-26, 5:3-32).
3)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죄를 범한 기존의 세상을 창조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것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심판의 의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 가운데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1.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사24:1a); 태초에 땅이 혼돈했습니다(창1:2).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소재로 하여 우주를 창조하시고 질서를 세우셨습니다(창1:3-19).
4) 그런데 그 땅이 창조의 질서를 어기고 있는 피조물들에 의하여 더럽혀지고 있습니다(5절).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그 땅을 창조이전의 상태인 소재로 환원시키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라고 하겠습니다. 위와 같은 이사야의 예언이 나중에 다음과 같이 더욱 명료해지고 있습니다;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65:17).
5) 둘, “황폐하게 하시며”(사24:1b); 종말심판이 있기 전에 역사적인 심판이 먼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선민의 나라를 위시하여 모든 이방나라들이 대륙의 땅위에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기를 좋아하자 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전쟁에서 패하도록 하여 그 땅을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아예 황폐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6) 셋,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사34:1c); 역사적인 심판은 전쟁에만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하도록 만들어버립니다. 그 결과 마치 노아의 홍수 때처럼 지하수가 분출되고 지층이 어긋나기를 시작합니다(창7:11). 한마디로,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지면이 뒤집혀버리는 것입니다. 넷, “주민을 흩으시리니”(사34:1d); 완전한 종말이 오기 전에 국지적(局地的)인 심판이 먼저 임하고 있습니다.
7) 그래서 전쟁과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사람이 살고 있던 도성(都城)이 무너져 내립니다. 주민들이 피난을 가고 온 지면에 흩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바벨탑이 붕괴되자 주민들이 온 세상에 흩어진 것과 같습니다(창11:9). 그렇게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으면 그 백성들을 흩어 버리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됩니다.
8) 둘째, 제2절입니다; “2. ①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②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③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④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⑤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⑥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사24:2); 흔히 사람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의 뜻은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처럼 한평생 도시국가(polis)의 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9) 그런데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살고 있는 사회나 정치공동체에 있어서는 직업의 분화와 특정한 계급의 구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 가운데 위와 같이 6가지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과 상전 또는 여종과 여주인’은 계급구조의 예입니다. 나머지 4가지는 직업과 역할의 분화입니다.
10) 마침내 그 모든 분화와 계급이 사라지고 있습니다(사24:2).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만든 사회질서와 계급을 모두 없애 버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와 평등의 정신에 맞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목표는 이미 제11장 전반부에서 선을 보인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소위 ‘메시아의 나라의 풍경’이라고 하겠습니다.
11) 셋째, 제3절입니다; “3.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사24:3); 대륙국가의 백성들과 온 땅의 주민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엄격하게 심판하십니다. 심판의 방법은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역사심판과 종말심판 등 두 가지입니다.
12) 그 차이는 전자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새로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전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화’(사23:13)되어야만 합니다. 후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종말심판으로 그 땅이 완전히 창조 이전의 상태인 ‘공허’(창1:2)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13) 넷째, 제4절입니다; “4.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사24:4);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아니하다는 징조를 어떻게 느낄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가 3가지로 나누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들의 권위가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14) ②둘, 인간세상 여러 국가들이 모두 불황과 침체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③셋, 온 땅에 재해가 발생하고 이상기온으로 생산능력이 격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오늘날 주후 21세기가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2) “5.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삶의 터전인 땅을 오염시킨 주범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기적으로 약육강식의 사회를 만들고 말았기 때문임). 6. 그러므로 (언약의 상대방인 여호와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모든, 신6:10-15, 8:11-20, 28:15-48, 29:20-21)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7.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수확의 기쁨이 사라지며), 8.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풍년가가 사라지고), 9.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인생살이가 고난의 연속임). 10.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서로 살기 위하여 약탈을 일삼으며 전쟁을 벌이므로 성읍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것임), 11.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세상사는 재미가 완전히 소멸되고 마는 것임). 12.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마침내 인간의 문명이 사라지고 있는 것임). 13.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모두가 거지가 되어 세상을 떠도는 유민이 되고 마는 것임)“(사24:5-13);

1) 제24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유대왕국을 둘러싸고 있는 대륙국가들의 말로와 더불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 제5-13절에서는 사람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약육강식의 세상을 만들어서 계속 살아가게 되면 결국 모두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고 마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현상에 직면하게 되면 말세가 다가옴을 깨닫고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 구절씩 검토하면서 그 메시지의 뜻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5절입니다; “5.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사24:5);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게 되는 이유를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 이유는 그 땅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창조주의 생명사랑의 뜻을 어기며 이기적인 욕심을 쫓아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조차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고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제사장의 직분을 신실하게 행하겠다고 하는 애초의 맹세를(출19:3-8, 24:7-8) 저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의 땅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렘25:29).
3) 둘째, 제6절입니다; “6. ①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②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③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사24:6); 선민들의 나라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이방인들의 나라까지 빠짐없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있습니다(렘25:29). 창조주를 우상으로 격하시키고 그 말씀 대신에 자신들의 이익과 판단에 따라서 살아온 결과입니다. 한마디로, 마치 짐승의 사회처럼 약육강식의 철칙으로 세상을 운영한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무죄한 자가 흘린 피가 삶의 터전을 저주의 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②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그들에게 돌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③소돔과 고모라 같이 멸망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 롯의 가족처럼 구원을 받는 자가 소수에 불과합니다”(사24:6 의역).
4) 셋째, 제5-6절에서 이사야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살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다시 한번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말적인 심판이 있기 전에 이 세상에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판의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의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게 됩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가 계속이 됩니다. 둘, 마침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성읍이 불타버리고 이웃이 거의 몰살을 당하고 맙니다.
5) 참고로, 12지파 가운데 시므온 지파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에(창49:5-7) 그 지파의 장정의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고 맙니다(민2:13절, 59,300명, 민26:14절, 22,200명). 셋, 미움과 복수심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됩니다. 서로가 보복전쟁을 감행하게 되고 그 때문에 사람의 피가 온 세상에 흘러 넘치게 됩니다. 그 결과 땅이 저주를 받아 생산의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창3:17, 4:11-12, 6:12-13).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피를 많이 머금은 땅을 저주하여 마치 불임의 여성과 같이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창20:18).
6) 넷째, 제7-8절입니다; “7.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8.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사24:7-8); 앞 절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역사심판의 결과 성읍이 망하고 주민들의 수가 줄어들며 땅이 저주를 받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추수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맙니다. 더구나 일부 추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기에 풍악이 사라지고 탄식과 한탄만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7) 다섯째, 제9-10절입니다; “9.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 10.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사24:9-10); 그 비참함을 잊기 위하여 독주를 마시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맛이 더욱 쓰게 될 뿐입니다. 적의 공격으로 재물만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성읍이 허물어지고 이웃들이 학살을 당하고 주위가 적막강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농사를 지어 술을 만들어서 마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허물어진 마을을 볼 때마다 슬프고 외로운 마음이 도저히 위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8) 여섯째, 제11-12절입니다; “11.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12.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사24:11-12); 이사야는 그 장면에서 다른 의미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에게 포도주가 없으므로 삶의 즐거움과 기쁨이 없으며 그 마음이 위로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마실 수 있는 포도주가(막14:25) 없다는 것입니다.
9) 훗날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요15:1-3). 그 뜻은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주 얻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좋은 포도열매를 생산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심판을 당하고 삶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10) 일곱째, 제13절입니다; “13. 세계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사24:13); 이사야가 알기 쉽게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흉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특히 올리브 열매가 익기도 전에 우르르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포도열매도 수확이 엄청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어느 민족에게나 공통적으로 찾아오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 중에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11) 오늘날 21세기는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대입니다. 유전자조작으로 신품종 큰 열매 맺는 종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만들어서 생산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일일 생활권이 되고 있는 소위 ‘지구촌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아직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70억에 달하는 세계의 인구 가운데 기아와 영양실조에 처해있는 수가 줄어들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12) 구체적으로, 공해문제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이상기온이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수확이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하나님의 역사심판의 내용 일부가 벌써 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겸손하게 이사야의 예언에 새삼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창조주의 살아 계심을 믿지 않고 창조의 질서를 지키지 아니하며 제멋대로 살아온 현대인류의 행태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돌이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14.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으로 인하여, 출19:16-19)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가나안에서 동쪽에 있는 모든 대륙국가의 백성을 말함, 사11:11a)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가나안에서 서쪽에 있는 대양 지중해의 열방을 말함, 사11:11b)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6.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의인을 구원하시는 여호와, 벧후3:11-14)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선지자 이사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호와께 배은망덕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고 있음). 17. 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이르렀나니(그러므로 생각보다 빨리 임하는 여호와의 심판을 기억하라는 것임), 18. 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이 세상의 종말 역시 빨리 임하는 것임. 왜냐하면, 자신이 인생의 끝나면 부활하여 여호와의 존전에서 종말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임, 요5:24-29). 19.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1절과 3절, 이 세상 종말이 임하는 현상임), 20.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4-5절). 21. 그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보이는 하늘 그 궁창에서, 창1:6-8, 엡2:2) 높은 군대(사탄과 악한 영들, 엡6:12, 유1:6)를 벌하시며(계20:9-10),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요12:31-32, 계19:19-21), 22.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 같이 모이게 되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계20:15). 23. 그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계21:21-23)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새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여호와와 어린양의 영광임, 계5:11-14, 22:5)“(사24:14-23); 역시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4.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으로 인하여, 출19:16-19)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가나안에서 동쪽에 있는 모든 대륙국가의 백성을 말함, 사11:11a)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가나안에서 서쪽에 있는 대양 지중해의 열방을 말함, 사11:11b)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6.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의인을 구원하시는 여호와, 벧후3:11-14)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선지자 이사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호와께 배은망덕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고 있음). 17. 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이르렀나니(그러므로 생각보다 빨리 임하는 여호와의 심판을 기억하라는 것임), 18. 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이 세상의 종말 역시 빨리 임하는 것임. 왜냐하면, 자신이 인생의 끝나면 부활하여 여호와의 존전에서 종말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임, 요5:24-29). 19.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1절과 3절, 이 세상 종말이 임하는 현상임), 20.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4-5절)“(사24:14-20);

1) 이사야는 먼 훗날 종말론적인 심판과 구원이 이 세상에 동시에 임하고 있음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하나, 구원을 바라보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환호할 것입니다(사24:14-16a). ②둘, 그와 달리 하나님께 구원의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심판의 대상에 불과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는 종말의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24:16b-20).
2) 그와 같은 일이 자신의 인생의 종말에 또는 세상의 종말에 있어서만 경험되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의사 누가는 메시아의 오심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1-14).
3) 풀이를 해보자면, ①종말이 오기 전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한번 제공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구주 메시아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②그러므로 자신의 인생 가운데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이 땅에서 평화를 누리고 천군천사들처럼 종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③반대로, 구주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는 자는 이 땅에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심판을 당하며 종말의 두려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4) 그와 같은 복음적인 의미를 시사해주고 있는 이사야 예언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하나, 바다와 땅끝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환영하는 환호소리가 먼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사24:14-16a). ②둘, 그러나 그것을 환영하지 못하는 무리들이 있음을 이사야가 일인칭 ‘나’를 사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사24:16b). 배신을 거듭하는 사회에서 쇠약해진 ‘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사24:17).
5) ③셋, 창조주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기적인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는 마치 노아의 홍수 때처럼 이 땅에 임하고 있는 재앙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게 됨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사24:18-20). ④넷, 그러므로 그 속뜻은 그와 같은 재앙과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자신의 인생 가운데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6) 첫째, 제14절입니다; “14.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사24:14); 일출을 구경하기 위해서 큰 바다로 나갑니다. 그러면 수평선 저 멀리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는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밤 사이에 자욱하게 끼어 있던 안개와 구름을 말끔하게 사라지게 만드는 태양 빛의 위엄을 경이로움으로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강림하십니다. 그 위엄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의 영광을 큰 소리로 찬양합니다. 그 찬양은 동쪽 바다 끝에서부터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7) 둘째, 제15절입니다; “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사24:15); 중동에 있는 작은 왕국 유다에 살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는 종말의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방 땅에서부터 영광을 얻으시는 것을 영안(靈眼, 영적인 눈 또는 믿음의 눈)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영광이 점점 서진을 하여 지중해 끝에 이르기까지 만백성의 찬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사야는 특별히 해양국가와 그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영접하고 찬양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새해맞이 태양을 해양국가들이 먼저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8) 셋째, 제16절입니다; “16. 땅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사24:16); 모든 대륙국가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방 끝에서부터 서방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열방의 백성들이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만민을 똑같은 창조주의 공의로 심판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9) 그러나 동족에게 이사야는 ‘나’와 같은 선민들이 문제라고 은근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중심적으로 풀이하고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은 선민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이방인들을 혼내 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섬긴 결과 신앙생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나라가 쇠잔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사이에 위대한 창조주가 단지 유대왕국의 조상신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민들이 이방인들을 벌레 보듯 하고 있으니 다윗왕조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력이 쇠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나라를 세우신 이유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출19:6). 선민들은 마치 제사장처럼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는 일주일만 드리고(출29:37) 나머지 51주는 이방인들의 죄를 속죄하는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출29:38). 욥이 자기 자식만을 위한 제사장에서(욥1:5) 원수 같은 세 친구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거듭나듯이(욥42:10) 선민이 그렇게 거룩한 백성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11) 그런데 그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위임을 배신하고 있습니다(마12:39). 역사가 진행될수록 배신의 행동이 더욱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훗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를 배척하게 됩니다(마27:1-2). 그것이 가장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설파하는 메시아를 배척하고 자신들의 종교적인 정의만을 부르짖게 되는 유대인들은 구원의 대상에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요11:48-53, 롬10:3);

12) 넷째, 제17-20절입니다; “17. 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이르렀나니, 18. 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19.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20.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사24:17-20); 종말의 때가 되면, 심판과 구원 두 가지를 가지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에 강림하실 것입니다(신30:19, 마25:46, 요5:27-29, 살전4:16-17). 그때 이사야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어느 쪽에 속하게 될까요? 이사야는 구원이 아니라 멸망이라는 심판의 편에 속하게 되는 동족들의 딱한 처지를 내다 보고서 다음과 같이 아주 구체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13) ①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사24:17a, 18a). 창조주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그 뜻을 행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영접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사24:14-16a). ②둘,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게 되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사24:17b, 18b). 미련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함정에 빠지지 아니하는 인생입니다(고전1:23, 27).
14) ③셋, 하나님의 방법을 버리고 세상적인 꾀와 지혜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종말로 이 땅에 임하는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그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결말을 보게 될 것입니다(사24:19). ④넷, 스스로 함정을 벗어나서 영웅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죄와 사망의 올무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사24:17c,18c). 그 올무는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요13:26-27, 롬8:2). 마치 노아의 홍수 때와 같습니다(사24:18d). 그 사실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20.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사24:20);
(2) “21. 그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보이는 하늘 그 궁창에서, 창1:6-8, 엡2:2) 높은 군대(사탄과 악한 영들, 엡6:12, 유1:6)를 벌하시며(계20:9-10),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요12:31-32, 계19:19-21), 22.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 같이 모이게 되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계20:15). 23. 그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계21:21-23)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새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여호와와 어린양의 영광임, 계5:11-14, 22:5)“(사24:21-23); 이사야 제24장은 한마디로, 이 세상의 종말에 관한 묵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묵시의 끝이 바로 이 대목의 본문입니다. 그 마지막 묵시의 내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훗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내용을 참조하고 또한 사도 요한을 통하여 기록한 계시록의 내용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이 그 깊숙한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제21절입니다; “21. 그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사24:21); 여기서 ‘높은 데’는 하늘, 곧 눈에 보이는 궁창(창1:8, sky)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궁창에는 공중에서 권세를 잡은 자(엡2:2, 6:12), 곧 악한 영들이 군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군대가 하늘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마귀가 바벨론과 음녀를 내세워서 땅의 왕들 곧 세상임금들을 유혹하며 지배하고 있습니다(계17:1-5, 18:2). 마지막 때가 되면 그들 악한 영들이 공중과 지상에서 모든 세력들을 끌어 모아 하나님을 대적하여 마지막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사24:21). 그러나 그 결과는 허무하게 끝장이 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천사들을 보내시어 친히 그들을 토벌하고 벌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참고로, 그 전쟁의 구체적인 내용을 훗날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그리스도)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계19:19-21).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펴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0:7-10).
3) 요약해보자면, 땅에서는 그리스도가 천군천사를 이끌고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그들의 군대를 토벌합니다. 하늘에서는 창조주가 불을 내려서 사탄의 세력을 태워버립니다. 그 결과 마귀와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이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처해지고 그 추종세력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그와 같이 하늘과 땅 두 곳에서 종말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사야가 벌써 예언하고 있는데 그 대목이 바로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4) 둘째, 제22절입니다; “22.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같이 모이게 되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사24:22); 여기서 ‘깊은 옥’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하늘과 땅에서 전개되는 종말전쟁을 생각할 때에 그것은 사탄을 가두어 두는 ‘무저갱’(無底坑, Abyss)으로 보입니다(계20:3). 그러나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비추어보면 또다른 의미가 발견됩니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 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5-29).
5)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마치 베다니의 나사로처럼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요11:43-44).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영생의 부활이냐? 아니면 영벌의 부활이냐?가 그 앞에서 판가름이 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인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벌에 처해지는 것 그것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형벌’의 의미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죽음이 바로 ‘깊은 옥’의 또 다른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6) 셋째, 제23절입니다; “23. 그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사24:23). 본문은 3가지 내용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①하나, 해와 달이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②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③셋,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 내용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7) 하나, 해와 달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그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세상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피조물들은 하나같이 해와 달의 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식물이 자라며 동물들이 먹거리를 얻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햇빛이 없으면 생명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해와 달은 일종의 생명을 주는 빛의 신으로 숭상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굽제국의 신앙이 그러합니다(창41:45).
8) 피조물인 천체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그와 같은 세상을 없애 버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구체적으로 이사야는 죄와 죽음으로 물든 세상을 없애 버리시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이 그의 선지서 제65장에서 다음과 같이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사65:17-18).
9) 이사야의 예언을 훗날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1-2). 이사야의 기록과 요한의 계시록을 종합해보면, 결국 새로이 창조되고 있는 것이 3가지입니다; ①새 하늘과, ②새 땅, 그리고 ③새 예루살렘성입니다(사65:17-18, 계21:1-2).
10) 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히 영생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여 그 수도로서 새 예루살렘성을 준비하십니다(사65:18, 계21:2).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는 새 예루살렘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요한계시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성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21:22-23). 새 예루살렘성에는 성전이 없고 그 대신에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가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11) 셋, 그 보좌에서는 피조물인 태양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영광이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계21:23, 22:5). 그 영광의 빛이 모든 피조물에게 골고루 비추어 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함께 친히 왕들을 세우시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을 이기고 천국에 입성한 성도들입니다(눅22:28-30, 롬8:1-4, 26-30). 그와 같은 내용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22:5). 해와 달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빛이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요1:4);

12) 그와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 생명나무의 존재입니다.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보면 그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대륙국가들이 제사장의 나라부터 시작하여 전부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다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인간들이 흘린 무죄한 피로 말미암아 땅들이 저주를 받고 다시 혼돈과 공허의 상태로 돌아갈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 이전의 상태로 환원되고 만다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는, 심판과 종말이란 완전한 절망과 슬픔 그리고 비극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혼돈과 공허함으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하늘과 땅의 창조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사야의 예언은 그의 선지서 제65장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에서 한가지를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심판과 종말적인 심판이라고 하는 완전한 절망 가운데에서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사야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신실하고도 거룩하게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창17:1, 21:33, 22:12).
위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 심판의 현장을 보고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반성해야만 합니다. 왜 성읍이 망하였으며 재물이 약탈을 당하고 많은 이웃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는지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깨닫고 회심해야 합니다. 그 결과 이제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며 그 뜻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천국잔치의 포도주를 이 땅에서 맛보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만이 종말의 심판을 면제받고 영생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숨은 의미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종말의 두려운 묵시를 동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아전인수격인 종교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두려운 미래, 함정에 빠지는 위험, 죄의 올무를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동족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소원을 들어줄 메시아가 유다 땅에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를 놓치지 말고 이 땅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이사야의 간절한 마음이 깊숙이 배어 있는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그 마음이 바로 오늘날에도 동족의 회복과 구원을 간절히 소원하는 한국인 성도들의 마음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직접 통치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훗날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성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린양과 함께 보좌를 두시고 성도들을 왕으로 삼아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기술적인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사야의 본문 예언은 중요한 종말 예언입니다. 그 이유는 사탄과 악한 세력을 하늘과 땅에서 완전히 멸하시는 하나님, 그들을 심판하시고 영벌에 처하시는 하나님, 예루살렘의 왕으로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피조물인 해와 달을 생명의 원천으로 잘못 알고서 그것들을 섬기고 있는 우상문화를 철저하게 근절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본문에서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피조세계의 육신적인 삶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이사야의 종말 예언을 묵상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이 생명력으로 살아 숨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에서 간절하게 소망하면서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로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바로 영적인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