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애굽, 유다, 앗수르 3국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사30:1-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7. 30. 04:04

제목; “애굽, 유다, 앗수르 3국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30:1-33)

설교일; 주후 2026 10 4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730일 수요일 작성)

 

주전 8세기의 선지자 이사야에게 있어서 그가 생전에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최대의 위기는 앗수르제국의 황제 산헤립이 쳐들어온 때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 앗수르제국을 가나안 일대로 끌어들인 장본인은 어처구니가 없게도 유대 왕 아하스입니다.

그는 북쪽의 아람왕국과 이스라엘왕국이 힘을 합쳐서 유대왕국으로 쳐 내려오고 있기에 홀로 그들을 상대할 수가 없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앞뒤 생각이 없이 당장 앗수르제국의 황제인 (Pul)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고 원병을 요청합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한 앗수르제국의 디글랏 빌레셀3세는 차제에 서진하여 다메섹의 아람왕국과 사마리아의 북조 이스라엘왕국은 물론 아예 남조 유대왕국까지 모조리 정복할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야 중동 땅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앗수르제국의 불 황제는 쾌재를 부르면서 많은 원정군을 이끌고 서토(西土) 정벌에 나섭니다. 그 결과 주전 732년에 다메섹을 함락하고 아람왕국을 정복합니다. 이제는 남진하여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어서 예루살렘까지 쳐들어갈 속셈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유대 왕 아하스는 다메섹을 방문하여 (Pul)에게 승전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외세를 의존하며 사대주의 외교를 펴고 있는 아하스 왕은 더욱 한심한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불이 설치한 거대한 번제단을 보고 그것에 혹하고 있습니다. 마치 앗수르제국의 승전과 번영을 그 제단에서 섬기는 우상이 가져다 주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 결과 설계도를 구하여 예루살렘성전으로 보내어 똑같이 제조하라고 대제사장에게 명령합니다.

그와 같은 한심한 시대에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조국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외세의 침입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여호와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내용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3가지입니다;

(1)  첫째, 앗수르제국은 남진하여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북조 이스라엘왕국마저 집어삼킬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남조 유대왕국을 침략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그에 대한 대비를 하여야 합니다. 그 옛날 다윗대왕처럼 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임박하고 있는 앗수르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하여 서남쪽에 있는 애굽제국의 바로에게 군사원조를 요청해보아야 헛수고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애굽제국은 장차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에게 계속 패전하며 멸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셋째,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선민 답게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높이 들고(17:9-16) 왕과 귀족 그리고 백성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적들에게 맞선다고 하면 앗수르제국의 침략을 능히 막아낼 수가 있다고 선지자 이사야가 부르짖고 있습니다(11:10).

1)   그러나 주전 701년 유대 왕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예언을 듣지 아니하고 애굽제국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한편 수도이며 철옹성인 예루살렘만 수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방 대부분의 성읍이 앗수르의 말발굽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음을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원병을 이끌고 북진하지만 도중에 산헤립 황제의 정예병의 매복에 걸려서 그만 패퇴하고 맙니다(37:8-9, 왕하19:9). 이제는 고립된 예루살렘성의 운명이 풍전등화입니다.

2)   절체절명의 순간에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를 무시하는 교만한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치고자 천사를 보내십니다. 하룻밤에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사 18 5천명이 떼죽음을 당하자 피조물에 불과한 산헤립 황제는 수도 니느웨로 도망하고 맙니다. 그는 20년 후에 왕자의 난으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나자 유대 왕 히스기야가 다시 교만하게 변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와 강력한 유다의 군사력으로 당당하게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쳤다고 대내외적으로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선지자 이사야는 훗날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조국이 멸망하게 된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히스기야 왕에게 전달합니다(39:5-7).

그러나 현세적인 영광과 평안에 만족하고 있는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합니다(39:8). 그때부터 이사야는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기복신앙에만 매어 달리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미래에 대하여 절망적입니다.

그 대신에 먼 훗날 선민사회에 오시는 대속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를 소망하게 됩니다. 그의 뒤를 잇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 역시 그러하며 그것을 새 언약이라고 알기 쉽게 부르고 있습니다(31:33).

참고로, 이사야는 그의 선지서 제19장에서 먼 훗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되면 서로 원수지간인 3나라 앗수르와 애굽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온세상에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여호와의 기지가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19:21-2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여호와를 창조주가 아니라 우상으로 취급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앗수르를 대항할 계책을 세우지만)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애굽제국과 반 앗수르 동맹을 맺는)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사전 간구함이 없으므로 그것은 무효이며 패역한 행위라는 것임) .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생각보다 애굽의 지원병력이 약함을 말하고 있음, 왕하19:9)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애굽제국을 대국으로 믿고 사대외교를 한 것이 창피할 것임). 4. 그 고관(히스기야 왕이 보낸 사절)들이 소안(Zoan,  고센 땅 라암셋의 북쪽에 있는 고대 도시이며 주전 16-17세기에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가 있었던 곳임. 애굽의 동부국경을 지키는 요새지임)에 있고 그 사신들이 (그 멀리 구스 땅) 하네스(Heracleopolis, 나일강 상류에 있는 고대 도시임)에 이르렀으나, 5.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애굽제국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구원병을 이끌고 오지만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매복병에 걸려서 패퇴하고 마는 것임, 37:8-9). 6. 네겝(헤브론 이남의 메마른 지역을 말함)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메마른 네게브 지역을 지나 많은 예물을 가지고 히스기야 왕의 사절이 애굽으로 가지만 고생만 심하고 소득이 별로라는 것임), 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나일강의 큰 악어)이라 일컬었느니라(나일강에서만 큰소리를 치는 괴수에 불과하다는 것임). 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여호와 앞에 배은망덕한 히스기야 왕과 선민들의 행태를 기록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라는 것임).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8:44, 거짓말쟁이 마귀의 자식임), 여호와의 법(종의 법도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함, 15:25)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영적인 눈으로 미래를 보고 경고하지 말라는 것임, 39:8).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여호와의 징벌에 관하여 예언하지 말라는 것임).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예언으로 전하라는 것임). 거짓된 것을 보이라(거짓선지자의 말이 더 듣기에 좋다는 것임, 28:1-4). 11.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창조주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이기적으로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하겠다고 우상을 섬기며 사대외교를 하자고 하는구나). 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13.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죄악으로 말미암아 불현듯 멸망이 도래할 것임), 14.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나라(선민의 나라 유대왕국)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임).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14:13),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훗날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자 시드기야 왕이 재빨리 도망하지만 결국 잡히고 만 것임, 왕하25:5-6), 17. (여호와께서 유대왕국을 떠나 버리시기에 영적으로 약해진 선민 유대인들은) 한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도망하고(적을 두려워하여 도망하기에 바쁘다는 것임),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많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가고 고토에 남은 자는 연약한 자들 뿐일 것임, 왕하25:11-12)“(30:1-17); 본문 제1-7절은 그 주제가 애굽과 맺은 맹약이 헛되다는 것이고, 8-17절은 패역한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질책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둘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여호와를 창조주가 아니라 우상으로 취급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앗수르를 대항할 계책을 세우지만)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애굽제국과 반 앗수르 동맹을 맺는)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사전 간구함이 없으므로 그것은 무효이며 패역한 행위라는 것임) .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생각보다 애굽의 지원병력이 약함을 말하고 있음, 왕하19:9)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애굽제국을 대국으로 믿고 사대외교를 한 것이 창피할 것임). 4. 그 고관(히스기야 왕이 보낸 사절)들이 소안(Zoan,  고센 땅 라암셋의 북쪽에 있는 고대 도시이며 주전 16-17세기에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가 있었던 곳임. 애굽의 동부국경을 지키는 요새지임)에 있고 그 사신들이 (그 멀리 구스 땅) 하네스(Heracleopolis, 나일강 상류에 있는 고대 도시임)에 이르렀으나, 5.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애굽제국의 바로인 구스 왕 디르하가가 구원병을 이끌고 오지만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매복병에 걸려서 패퇴하고 마는 것임, 37:8-9). 6. 네겝(헤브론 이남의 메마른 지역을 말함)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메마른 네게브 지역을 지나 많은 예물을 가지고 히스기야 왕의 사절이 애굽으로 가지만 고생만 심하고 소득이 별로라는 것임), 7.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나일강의 큰 악어)이라 일컬었느니라(나일강에서만 큰소리를 치는 괴수에 불과하다는 것임)”(30:1-7);

1)    작은 나라가 이웃의 강대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면서 보호를 받아 자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나쁘다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그와 같은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을 때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세상나라 애굽을 상국으로 섬기면서 도움으로 제사장나라의 안보를 확보해 나간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태도가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경우(26:2-5, 46:1-4)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애굽에 군사원조를 요청하여 국난을 타개하라고 지시하시고 있을 때를 제외한다면 그것은 여호와신앙을 버린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이사야가 그러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잘못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무엇인지 구절을 따라가면서 다음과 같이 묵상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 자식들은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 베푸나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 맺으나 나의 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더하도다”(30:1); 이사야가 동족인 선민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첫번째 대목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조상인 야곱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야곱은 에서와 서로 먼저 태어나기 위하여 경쟁한 사람입니다(25:22-26). 장자가 족장의 지위를 상속하게 되어 있는 가부장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all or nothing게임과 같습니다. 집안에 있어서 장남이 차기 족장이며 훗날 왕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지차들은 그의 가신이 되어야 합니다. 에서보다 힘이 약한 야곱은 둘째로 태어납니다.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서 태어났지만 차이 때문에 평생 쌍둥이 에서의 종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신세입니다.

3)    ,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하여 야곱은 남은 세월을 투쟁의 삶으로 일관합니다. 그가 동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이 아니라 세상적인 꾀와 방법들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이 하나님의 것보다 낫다고 여기고 있는 패역함’(30:1a)입니다; 에서가 시장한 틈을 노려서 그의 장자의 명분을 얻고자 합니다. 먹을 것을 주고 뺏아오고 있는 것입니다(25:29-34). 하나님께 여쭈어 보거나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행위가 아닙니다. 또한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차기 족장에 대한 축복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음모에 동참하여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27:6-18).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서 행한 행위가 아닙니다. 따라서 가지 경우 모두 이사야가 그들이 계교 베푸나 말미암지 아니하며”(30:1b)라고 잘못을 지적할 만한 것들입니다.

4)    , 외삼촌 라반과 머슴살이 계약을 맺을 때에도 야곱의 관심은 오로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한 것입니다(29:15-20). 하나님께서 계약을 어떻게 생각하실 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맹약이 아닙니다. 마디로, 이사야가 맹약 맺으나 나의 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30:1c)라고 지적할 만한 일입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아니하고서 마음대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한 계획을 욕심껏 세상적인 방법으로 밀어 부치는 것이 죄에 죄를 더하는 행위입니다(30:1d). 그리고 비록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서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시행과정에 있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간섭을 배제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죄라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5)    둘째, 2-3절입니다;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 것이라”(30:2-3); 이웃 강대국을 상국으로 또는 종주국으로 섬긴다고 하여 자국의 안보와 평안을 확실하게 유지할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서,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고 한다면 애굽제국을 종주국으로 섬긴 유다 나라와 가나안의 왕국들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들에 의하여 수차례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30:2-3). 세상나라들이 창조주 하나님 대신에 일개 강대국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라부터 패망의 역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수치가 작은 나라에게 파급되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는 이상 세상나라의 강함을 의지하지 말고 강함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훗날 메시아를 보내셔서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실 것입니다(10:28).  

6)    셋째, 4-5절입니다; “4. 고관들이 소안 있고, 사신들이 하네스 이르렀으나, 5. 그들이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뿐임이니라”(30:4-5); 유대왕국을 비롯하여 가나안에 위치하고 있는 왕국들은 동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 서로는 애굽제국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유대왕국의 입장에서는 애굽제국과의 관계가 정치적으로 긴밀합니다. 이유는 430년간 애굽의 치하에서 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문물과 정치제도에 더욱 익숙하기 때문에 애굽제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면서 자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7)    그런데 이사야의 시대에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장악한 앗수르제국이 서진하고 있습니다. 주전 732년에 다메섹의 아람왕국을 정복하고 10 후에는 북조 이스라엘왕국마저 멸망시키고 맙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사신이 부리나케 애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왕국은 애굽의 북동면에 자리를 잡고 있는 행정 군사도시 소안’(zoan, 고센 라암셋의 북쪽에 있는 고대 도시임) 상주공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전권대사가 소안을 들러서 현지의 사정을 파악한 후에 급히 구스 바로가 있는 나일 상류의 도시 하네스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모습을 이사야가 4절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8)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구스 디르하가 군대를 이끌고 유다 왕국을 침입하고 있는 앗수르의 산헤립 왕과 전투를 벌입니다(왕하19:9, 37:9). 그러나 별로 성공적이지를 못합니다. 산헤립의 군대는 여전히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습니다(왕하19:8-13). 그러므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들(유다 가나안의 왕국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애굽)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민족(애굽)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뿐임이니라”(30:5).

9)    유다의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애굽이 패전하는 것을 보고서 비로소 이사야의 예언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세상에 의지할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나라를 의지한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시고 부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을 살려주십시오”(왕하19:1-4, 14-19). 결과 하나님의 천사가 밤중에 앗수르 원정군 18 5천명을 몰살시켜버리고 맙니다(왕하19:35, 37:36). 그것은 주전 701년에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예루살렘에 응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10)  넷째, 6절입니다; “6. 네겝 짐승들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 낙타 안장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 독사 날아다니는 불뱀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30:6); 여기서 네겝 () 사막성 기후를 지니고 있는 광야 또는 사막이며 주로 가나안 남부의 메마른 광야지역을 가리키고 있는 용어입니다. 헤브론 이남지역이 그러합니다. 강수량이 매우 적고 나무가 없으며 관목이 약간 있을 뿐입니다. 사철나무로서는 유일하게 에셀나무(tamarisk tree) 있습니다;

11)  그것은 바늘 잎을 가지고 있지만 뿌리를 자기 키의 3 정도나 깊이 뻗어서 사철 푸른 색을 띠고 있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블레셋의 연맹 아비멜렉과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한 후에 하나님에게 너무 감사하여 에셀나무를 심고 있습니다(21:33). 뜻은 에셀나무처럼 사철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메마른 네겝이지만 그곳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인도함을 받을 있는 은혜의 땅이라고 하겠습니다.

12)  본문에서의 짐승 하나님을 버리고 사탄의 사주를 받고 있는 세상권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13:6-8). 이사야는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을 섬기려고 하는 유대왕국이 마치 짐승과 같다고 질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낙타 안장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낙타 안장 야곱의 애처 라헬이 친정 아버지에게서 훔친 보물 드라빔을 감춘 적이 있습니다(31:34). 그와 마찬가지로 귀한 보물을 운반할 때에 사신(使臣, 사절로 오고 가는 신하) 직접 자신의 낙타 안장에 숨기고 길을 떠납니다. 기타 재물은 낙타의 등과 나귀의 등에 짐으로 싣게 됩니다.

13)  유다에서 애굽으로 가는 험합니다. 우선 지형적으로 메마른 광야인 네겝이 사막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시나이 반도를 지나야 합니다. 그곳에는 2가지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광야와 사막에는 독을 가진 뱀들이 많습니다. 하나는, 약탈민족들이 암사자와 수사자처럼 무리를 지어 출몰하는 지역입니다(17:8). 유다의 사신이 지금 많은 재물과 보물을 챙겨서 애굽의 황제인 바로에게 원군을 청하고자 가고 있는 길이 그러합니다. 한마디로, 화적 떼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애굽으로 간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한마디로, 그것은 허망한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와 같은 선민들의 불신앙을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4)  다섯째, 7절입니다; “7. 애굽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컽었느니라”(30:7); ‘라합 관하여 욥기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전제로 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욥기의 내용을 먼저 살펴봅니다;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 하시나니, 라합 돕는 자들이 밑에 굴복하겠거든”(9:13), “12.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 깨뜨리시며”(26:12).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라합과 추종자들을 치시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 동족들이 세상나라 애굽을 찾아가서 구원을 호소하는 것은 결과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30:7a).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가만히 앉은 라합”(30:7b) 수밖에 없도록 애굽의 힘을 먼저 무력화(無力化, become no power)시켜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임하도록 이사야가 소원하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 저미시고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51:9).

(2)   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여호와 앞에 배은망덕한 히스기야 왕과 선민들의 행태를 기록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라는 것임).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8:44, 거짓말쟁이 마귀의 자식임), 여호와의 법(종의 법도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함, 15:25)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영적인 눈으로 미래를 보고 경고하지 말라는 것임, 39:8).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여호와의 징벌에 관하여 예언하지 말라는 것임).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예언으로 전하라는 것임). 거짓된 것을 보이라(거짓선지자의 말이 더 듣기에 좋다는 것임, 28:1-4). 11.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창조주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이기적으로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하겠다고 우상을 섬기며 사대외교를 하자고 하는구나). 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13.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죄악으로 말미암아 불현듯 멸망이 도래할 것임), 14.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나라(선민의 나라 유대왕국)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임).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14:13),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훗날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자 시드기야 왕이 재빨리 도망하지만 결국 잡히고 만 것임, 왕하25:5-6), 17. (여호와께서 유대왕국을 떠나 버리시기에 영적으로 약해진 선민 유대인들은) 한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도망하고(적을 두려워하여 도망하기에 바쁘다는 것임),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많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가고 고토에 남은 자는 연약한 자들 뿐일 것임, 왕하25:11-12)“(30:8-17);

본문은 두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동족인 유대왕국의 백성들의 죄를 이사야가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30:8-14).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을 얻자면 어찌하여야 하는가?(30:15-17) 다루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하면서 내용을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8절입니다;8. 이제 가서 백성 에서 서판(書板, writing board) 기록하며 써서, 후세 영원 있게 하라”(30:8); 이사야는 당대에 2가지 작업을 진행한 선지자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그것을 백성 앞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을 자신의 세대에 행한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다음에는 예언의 내용을 글로 적어서 후대에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대인들이 보고 있는 대선지서 이사야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는 그가 계시로 받은 모든 하나님의 예언에 대하여 전부 선포하고 내용을 그대로 기록으로 남겼을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선포만 했거나 아니면 기록만 남긴 경우가 허다했을 것입니다.

2)      그렇게 말할 있는 근거가 바로 본문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먼저 백성들 앞에서 선포하고, 다음에 반드시 내용을 그대로 글로 적어서 후대에 영원히 남기도록 하라”(30:8 의역). 엄청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반드시 2가지 작업을 병행하도록 특별히 지시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선포와 기록이라는 2가지 작업을 병행하지 아니할 수도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기록으로 예언의 말씀을 남겨두라”(30:8b) 명령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당대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용이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 후세에도 자손들이 똑같은 잘못을 범한다면 동일한 처벌을 받게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 다음 절의 본문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3)      둘째, 9절입니다;9. 대저 이는 패역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30:9); 이사야 시대 선민들이 3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패역 거짓말 하나님말씀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3가지 죄를 범하고 있으므로 엄청난 처벌이 뒤따르게 된다고 하는 것이 본문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후세에 가서도 그와 같은 죄를 범한다면 동일한 처벌을 받게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사야가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한 효과가 과연 후세에도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자신이 들은 계시의 말씀이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4)      셋째, 10절입니다;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하라. 거짓된 보이라”(30:10);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보여주는 자들이 선지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엄격하게 분류하자면, 선견자와 선지자로 갈라질 있습니다. 선견자 그대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미래를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한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말로 전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죄에서 떠날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자신의 삶으로써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백성들에게 보여주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자들입니다.

5)      그런데 백성들이 선견자들에게 미래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30:10a). 더구나 선지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올바른 삶의 모습을 싫어합니다(30:10b). 대신에 그들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하나님 진노의 미래 대신에 장미 미래에 대하여 말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운 심판 대신에 세상에서도 살고 천국에서도 복을 누리는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증거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왜곡된 부드러운 말과 거짓말을 좋아하는(30:10c)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자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27-28).

6)      넷째, 11절입니다;11. 너희는 바른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 도다”(30:11); 이사야는 동족인 유다 백성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 백성들이 여호와신앙을 가진 자들을 넘어뜨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른 가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하나님을 섬긴답시고 좁은 로도 가지 말고 그저 보기에 부끄럽지 아니한 정도의 율법생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30:11a의역).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통찰하시고 계십니다(삼상16:7, 4:12-13). 그러므로 불편합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가 있는데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선민들이 불편하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저 눈감아 주시거나 아니면 아예 자기들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있도록 내버려달라는 것입니다(30:11b). 그렇게 계속 주장하다가 만약 하나님께서 떠나 버리신다면 그들의 신앙생활은 마치 앙꼬가 없는 찐빵과 같은 것이 되고 것입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이 본을 보여주고 있는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라 그저 유대교지도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생활이 되고 뿐입니다(23);

7)      다섯째, 12절입니다; “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업신여기고 압박 허망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30:12);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 그저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장미 미래를 예언해주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을 선호하고 있는 유다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불리기를 원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0:12a).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급하다고 하여 무작정 애굽에 사절을 파견하여 원군을 청하지 말라. 결과가 허망할 뿐이다. 앗수르 대군의 침략을 물리칠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심을 명심하라”(30:2-6의역).

8)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왕과 백성들이 이사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애굽의 바로에게 앗수르의 군대를 뒤쪽에서 압박해달라고(30:12b)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앗수르 황제 산헤립에 의하여 애굽의 바로인 구스 디르하가가 패배를 당하고 맙니다(왕하19:9). 허망 결과를(30:12c) 보고서야 급해져서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선지자 이사야를 찾게 됩니다(왕하19:2). 그리고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살려달라고 매어 달리게 됩니다(왕하19:14-19). 하나님께서는 간구마저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들어 주십니다(왕하19:35, 37:35-36). 진실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왕하19:34, 30:12a).

9)      여섯째, 13절입니다;13. 죄악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30:13); 선민들은 마치 옛날 아담 부부와 그들의 아들 카인이 범한 죄와 똑같은 범죄를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고 여기며 선민들은 무조건 구원의 대상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패역함과 거짓된 신앙에 대하여(30:13a) 이사야가 명쾌하게 장래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깥으로 돌출해 있는 담과 같아서 반드시 부딪힐 것이며 순식간에 무너지고 것이다”(30:13b 의역).

10)   일곱째, 14절입니다; “14. 그가 나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붙이거나 웅덩이에서 것도 얻지 못하리라”(30:14); 유대왕국은 누구에 의하여 멸망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겉으로 보면, 세상의 제국에 의하여 힘의 논리로 멸망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사야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그렇게 패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나라(유대왕국) 무너뜨리시되”(30:14a). 이사야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밀어 부쳤기 때문에 멸망 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0:9). 그러므로 멸망에서 건짐을 받을 있는 방법은 하나님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패역함과 거짓된 신앙생활 때문에 적군의 침입이 초래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정직하게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물꼬를 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전쟁의 위기 가운데에서도 유대왕국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지 않습니다. 그저 급하게 애굽의 바로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을 뿐입니다(30:2-4).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사장나라를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하십니다. 대목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그릇을 완전히 깨뜨려버리듯이 그렇게 철저하게 유대왕국은 부수어져 버리고 것이다. 불씨를 담을 있는 그릇이나 물그릇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완전히 박살을 내고 것이다”(30:14b 의역).

12)   여덟째, 15절입니다; “15.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30:15);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있는 방법 3가지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 먼저 이스라엘의 구원을 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30:15a). 이사야가 보기에 동족인 선민들이 여호와신앙보다 세상적인 방법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엄청난 국난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있습니다(30:2). 그들은 앗수르가 침입해오자 종주국인 애굽에 군사원조를 요청하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하기에 바쁠 따름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신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제사장나라를 멸망시켜 버리실 것입니다(30:5, 13-14).

13)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는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29:1). 그러나 예언을 수차례 동족들에게 전하면서 그가 확실하게 깨닫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참혹한 예언을 미리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달리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선민들의 회개와 하나님신앙의 회복을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자신 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30:18a).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구원 베푸시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을 얻을 있는 첫걸음입니다.

14)   , 다음은 하나님께로 조용히 돌이켜야만 합니다(30:15b). 적들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내침하고 있으므로 수습이 급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방법이든지 적을 막아낼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조용히 하나님께 먼저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그와 같이 이치에 맞는 말씀을 하시고 계실까요? 위급한 상황이므로 먼저 급한 불을 이러한 방법으로 빨리 진화하라고 그것부터 지시해 주셔야 하실 터인데 전혀 그리 하시지를 아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없는 하나님의 태도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행동했다가 실족하게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사울입니다.

15)   전쟁은 급한데 사사이며 대제사장인 노인 사무엘의 걸음이 더디기만 합니다(삼상13:8). 그에 따라 사울 왕은 사무엘을 대신하여 간단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전쟁을 시작합니다(삼상13:9). 사울의 제사가 끝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하고 있습니다(삼상13:10). 결과 전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무엘과 그의 군대에 의하여 전쟁의 승리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블레셋의 군대에 자중지란(自中之亂, intra conflict and struggle) 일어나게 하여 이스라엘이 어부지리(漁父之利, unexpected gain) 얻게 됩니다(삼상14:20-23). 한마디로, 전쟁의 승패가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6)   , 이사야는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0:15c). 2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온 사람 가운데에서도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다리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모든 것이 다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55:8-9).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잠잠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을 때까지 조용해야만 합니다. 대충 알겠다고 그냥 뛰쳐나가서 함부로 행동을 했다가는 난리가 나게 됩니다.

17)    하나는,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고 방법에 자신을 맡겨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가 일쑤입니다. 그러하므로 자신의 생각에 하나님의 생각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조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정답은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이미 다음과 같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6:42).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와 같습니다. 수술대 위에 잠잠히 올라가서 전문의가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수술을 받아야만 합니다. 신뢰함으로 전적으로 맡기고 마치 마취를 당한 것처럼 조용히 있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발생합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18)   아홉째, 16절입니다;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30:16); 만약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적을 막아내고자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패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팔이 내려간 경우와 같기 때문입니다(17:11). 물론 일부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둘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전투를 치른 결과 전체적으로 전쟁의 승패는 패전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그렇게 패전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이사야가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게 되면 결국은 말을 타고 전투를 치르거나 도망하게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빠른 말을 선택하여 달릴지라도 적들의 기마가 빨리 따라붙게 것이다. 왜냐하면, 간교한 야곱이 자신보다 간교한 외삼촌 라반을 만나게 되듯이(29:25-30, 30:34-36)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게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30:16 의미적 해석).

19)   열째, 17절입니다;17. 사람이 꾸짖은즉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30:17); 국력(國力, national power) 평가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합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상대적인 비교부터 합니다; 군사력의 차이, 국민의 영토의 크기, 부존자원과 산업생산력, 자본력과 과학기술의 차이 등입니다. 다음에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 평가합니다; 군대의 사기(士氣) 국민의 정신전력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런데 사기와 정신전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여호와 신앙입니다. 이유는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굳건히 믿고 의지하고 있으면 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물러가기 때문입니다(8:2).

20)   반대로,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다른 세상적인 것들을 의지하여 적들을 물리치고자 때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와 같은 경우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에 나섰을 가나안 원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공포에서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9. 말하되, 여호와께서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주민들이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시혼과 옥에게 행한 ,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2:9-11).

21)   그렇게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면 전쟁은 군사의 수의 차이로 승패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목숨을 구하고자 모조리 도망치기에 바쁩니다(30:17a). 결과 제사장나라도 망하고 백성들이 거의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겨우 일부가 살아남게 됩니다. 그들이 살아남게 이유는 하나님의 기치를 바라보고 달려갔기 때문입니다(30:17b). 장차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이 내걸고 계시는 깃발이 높은 산에서 펄럭이게 것입니다(30:17c). 깃발은 역사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그곳 무덤에서 삼일 후에 발생하게 되는 승리의 부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27:50-28:10). 그와 같은 부활과 영생의 하나님의 깃발이 펄럭이게 되었으니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아가서 부활과 복음의 증거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28:18-20, 24:44-48).

둘째로,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65:1-2).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33:19).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8:56, 11:16, 25-26). 19. 시온에 거주하며 ()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65:17-19, 8:1-2).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1:14-18),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1:8, 16:6-10),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35:3-5, 7:5). 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7:13). 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25.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위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6:1-3),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2:3)“(30:18-26);

(1)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존재와 입체적인 역사하심을 시사해주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이 벌써 터져 나오고 있는데 이유는 내용이 이스라엘의 구원의 과정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내용을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환난에서 구원을 받을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30:15). 하지만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지도자와 백성들은 달리 행동하고 맙니다(30:16). 때문에 제사장나라가 망하고 일부만이 살아남아서 산마루 위의 기치를 바라보게 것입니다(30:17).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장차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어 주시는 메시아의 깃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30:15-17 의역).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주시면 어떠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는 것일까요? 답변을 상당부분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그와 같은 시각에서 본문의 구절을 살펴보면서 함축된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8절입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있도다”(30: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하나님이실까요? 아니면 구원의 하나님이실까요?

1)      겉으로 보면, 창조주는 두려우신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심판이 아니라 부디 구원으로 나아오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30:18a, 54:1-2, 3:16-17, 2:5-11). 단지 기다리고 계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메시아를 보내셔서 다시 한번 강력한 은혜와 긍휼 베푸시고(30:18b)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 깨닫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30:18c).

2)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인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장차 나라가 망하는 환난을 당하고 유민으로 살게 되는 고생 길에 접어든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지하고 있습니다(30:20a). 그러나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메시아를 보내어 놀라운 은총과 긍휼을 베푸셔서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전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드실 것입니다.

(3)   둘째, 19절입니다; “19. 시온 거주하며 예루살렘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부르짖는 소리 말미암아 네게 은혜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니라”(30:19); 이사야는 메시아가 땅에 오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시온 예루살렘’ 2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30:19a). 훗날 메시아가 오시는 그곳 땅의 백성들을 2가지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을까요? 언뜻 보면, 같은 의미입니다. 시온이 바로 예루살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강조용법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다른 뜻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시온 다윗의 성이 있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수도를 말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훗날 다윗의 후계자가 그들에게 오셔서 이스라엘 제국을 회복하고 시온의 영광을 세상에 떨칠 것을 암시하고 있는 선민사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예루살렘 다릅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이란 도시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함께 살고 있는 지명이 바로 예루살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선민의 구원을 위하여 오시는 같지만 사실은 선민과 이방인 모두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사해주고 있는 용어들이라고 하겠습니다.

3)      통곡 부르짖는 소리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30:19b). ‘통곡 그냥 목놓아 우는 것입니다. 그저 큰소리로 울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애통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르짖는 소리 그냥 목을 놓아 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대상을 향하여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이 누구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부르짖고 있을까요? 한마디로,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용서해달라고 하는 울부짖음입니다.

4)      그러므로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응답하십니다(30:19c). 응답이 장차 구주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을 미리 알고서 심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가 사랑하고 있는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이 은혜로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마음속으로 동족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응답과 메시아의 오심을 증거하는 내용을 그의 선지서에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셋째, 20절입니다;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 떡과 고생 물을 주시나, 스승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스승 것이며”(30:20); 유다 왕국의 백성들에게 환난과 고생이 밀어 닥치고 있습니다(30:20a). 그들의 제사장나라가 이방인들의 제국에 의하여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엄청난 환난입니다.

1)      그리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오랜 세월을 지내게 됩니다. 그것이 말로 다할 없는 고생입니다. 도대체 이방제국의 치하에서 선민인 자신들이 수치스러운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일을 행하고 계신 것일까요? 이사야는 하나님의 숨겨져 있는 없는 역사섭리의 비밀을 가르쳐줄 스승께서 장차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0:20b).

2)      스승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것이기에 유대인들이 훗날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모습을 있을 것이라는 사실까지 말해주고 있습니다(30:20c). 요컨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스승으로서 세상에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라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5)   넷째, 21절입니다;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에서 말소리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것이며”(30:21); 영적인 스승으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어떻게 제자와 성도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것인지 교수법의 특징을 이사야가 몇가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사람들이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뒤쪽에서 관찰하고 계십니다. 오른 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아니면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결과 어떻게 교정해야 바른 ’(30:21c) 있는지를 말해 주십니다. 그것이 뒤에서’(30:21a)라고 하는 표현이 의미하고 있는 바라고 하겠습니다. , 메시아는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시고 있는 스승님이십니다. 따라서 사람의 음성인 말소리’(30:21b)로써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니다.

2)      그리고 백성들은 의문사항을 인자(人子, son of man) 메시아에게 질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대답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원하게 인간의 말로써 설명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공생애를 살게 되는 제자들은 스승과 같이 먹고 마시며 여행하게 됩니다. 모든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대하여 직접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로 없는 엄청난 은혜입니다(1:14-18).

(6)   다섯째, 22절입니다;22.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 입힌 부어 만든 우상 올린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30:22); 이사야는 대목에서 우상의 종류 2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 나무로 조각한 우상입니다(30:22a). , 쇳물을 부어서 만든 우상입니다(30:22b). 가운데 주신(主神)으로 섬기는 우상은 후자입니다. 그래서 은이 아니라 금박을 입히고 있습니다.

1)      예를 들면, 가나안에서는 바알 주신이며 부어서 만든 바알 신상에 금박을 입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인으로 만들고 있는 아세라 나무를 깎아서 아름답게 만든 목상(木像)이며 은박을 입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금과 은은 귀중하고도 비싼 금속입니다. 고대 유대왕국에서는 금화와 은화를 제조하여 통용하지 아니하는 대신에 금괴와 은괴 자체를 돈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상에 금박과 은박을 입혔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들을 고귀한 신으로 모시고 섬긴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꺼풀을 벗기고 보면, 추악한 사람들의 속내가 다음과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2)      한마디로, 되로 주고 말로 받겠다고 하는 심산입니다. 비싼 금칠과 은칠을 해주었으니 답례로 자신들에게 부디 금덩이와 은덩이를 안겨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은 황금 만능주의 사고방식이며 현세적인 기복 신앙입니다. 그렇게 타락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깨달음이 찾아오게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기 때문입니다. 결과 올바른 하나님신앙의 모습을 알게 성도들이 세속적으로 오염된 종교생활을 더럽게 여기고 우상을 버리게 것입니다(30:22c). 이사야는 은혜가 동족들에게 하루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본문의 예언을 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23절부터 26절에서는 이사야의 뿌리는 비유 하나님의 은혜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7)   여섯째, 23절입니다; “23. 땅에 뿌린 종자 께서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30:23); 말씀은 3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 종자를 땅에 뿌리는 내용입니다. ,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이야기입니다. , 열매를 나누어 먹는 이야기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1)      농사꾼이 밭에 종자를 뿌리듯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뿌립니다(30:23a). 예를 들어보자면,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그러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19:6-8, 24:3).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6:8-9, 2:1-4). 신약시대가 되면 메시아와 제자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의 복음으로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선포하게 됩니다(24:44-49, 1:8).

2)      그렇게 하나님말씀의 씨를 땅에 뿌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씨앗이 식물로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0:23b). 농사꾼이 자신이 열심히 거름을 주고 물꼬를 자주 터주어서 식물이 발아를 하고 자라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으로 자랑할지 몰라도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땅에 적기에 내려주지 아니하시면 농사가 결실을 얻을 없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지 아니하시면 단단한 땅에 부드러운 표토층’(表土層, top soil) 생성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씨앗이 발아(發芽, 싹트기) 수가 없습니다. 자연히 성장과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먼저 하나님께서 직접 먹이시는 가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30:23c).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의 동물들에게 먹거리로 풀을 주시고 있습니다(1:30). 풀은 농부가 씨앗을 일부러 땅에 뿌리지 아니하더라도 들판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씨앗이 자연적으로 날리도록 조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비록 가축들이 사람들의 소유로 되어 있더라도 목장에서 하나님께서 키워 주신 풀을 먹이로 삼아 자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방목(放牧)입니다.

4)      이사야가 말씀을 먼저 꺼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말씀을 우선적으로 머리와 마음속에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 말씀이 이해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훗날 메시아가 땅에 오셔서 동일한 취지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6:26).

(8)   일곱째,24. 가는 어린 나귀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먹이를 먹을 것이며”(30:24);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가축이 있습니다. 소와 나귀 등입니다(30:24a). 소는 밭을 가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나귀는 무거운 농작물과 도구를 실어 나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부가 농사를 짓고 나면 소출을 혼자서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수고한 소와 나귀에게도 곡식을 나누어서 먹여야만 합니다.

1)      물론 소나 등의 가축들은 들판의 풀을 뜯어 먹어도 수가 있습니다(30:23c). 그러나 농사를 짓느라고 많은 힘을 사용했기에 먹어야 앞으로도 농사일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추수한 곡식을 소와 어린 나귀에게도 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0:24b). 그것은 가장 맛있는 사료입니다. 물론 곡물이기 때문에 사람이 우선적으로 먹는 식량입니다(1:29). 그런데 그것을 소와 어린 나귀에게 나누어 먹이는 것입니다.

2)      그것은 농사를 지어 사람만 먹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가축과 동물들의 생명까지 살리고 돌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의 일환입니다. 참고로, 모세오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율법으로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10. 너는 여섯 동안은 너희 땅에 파종하여 소산을 거두고, 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23:10-11).

(9)   여덟째, 25절입니다; “25. 크게 살육하는 망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뒤에 개울과 시냇물 흐를 것이며”(30:25);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함께 살리고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정신을 땅에서 실천하는 것이 청지기 인간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기심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자신들의 뱃속을 이롭게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날에 대하여 이사야는 25. 크게 살육하는 망대 무너질 때에”(30:25a)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1)      목축사회에서 망대’(望臺, watch tower) 많은 가축을 살피기 위하여 언덕 위에 높이 세워놓은 전망대와 같은 것입니다(30:25a).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잠시도 정신을 팔지 않고 망대에서 자신의 가축을 살펴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축에 정신이 팔려서 중요한 다른 일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무엇인지 이사야가 조금 전에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릴지라도 곡식을 자라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30:23의역). 그러므로 사실을 잊어버리고 농사에만 매어 달리고 있는 자는 종말심판을 당하여 망대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심판을 당하게 것입니다(30:25a).

2)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일이라고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차제에 장인 라반을 위하여 불철주야 양치기로 헌신한 야곱의 솔직한 이야기와 그리스도가 아기 예수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고 하는 복음을 듣게 되는 양치기의 이야기를 비교하여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38. 내가 20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외삼촌의 양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31:38-40), “8.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2:8-12). 

3)      요약을 해보자면, 매우 이기적인 인물 라반의 머슴으로 20년간 살았던 야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망대에서 그토록 수고했지만 여전히 먹고 사는 일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베들레헴의 양치기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메시아의 탄생이야기를 복음으로 듣고 달려감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그들의 이야기가 의사 누가에 의하여 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불철주야 수고하고 있던 장소 망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30:25a). 대신에 인생의 목적이 되고 있는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너진 망대의 뒤쪽에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감격스럽게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고산(高山, 높은 )마다 준령(峻嶺, 험한 고개)마다 뒤에 개울과 시냇물 흐를 것이며”(30:25b).

(10)      아홉째, 26절입니다;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상처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 7 되어 7날의 같으리라”(30:26);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구원의 역사는 심판의 날에 망대가 무너지자 높은 곳에서부터 시냇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30:25). 그리고 시냇물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30:26a). 또한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그날에는 세상에서 백성들이 얻어맞은 상처를 고치시기 위하여 생명의 빛이 엄청나게 밝게 비추어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0:26c). 좀더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이사야의 예언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사도가 요한입니다. 그의 계시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가운데로 흐르더라.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열매를 맺고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노릇하리로다”(22:1-5).

2)      심판의 날에 사람들이 생업을 위하여 사용하던 망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30:25a). 그리하면 뒤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내리게 됩니다. 사도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땅으로 흘러내리는 강물입니다(22:1-2a).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가 고산마다 준령마다’(30:25b) 높은 곳에서부터 시냇물이 흘러내릴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3)      이사야는 구원의 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0:26a). 그것은 사도 요한의 설명에 따르면, 생명나무 잎사귀로 만국을 치료하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22:2b). 그리고 세상에서 성도들이 당한 고통을 치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빛입니다(30:26b, 1:4). 빛은 하나님의 얼굴에서 피조물에게 비치고 있는 영광의 광채입니다(22:4-5). 빛의 밝기는 피조물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영적인 존재가 아니면 감히 마주 쳐다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게 성도들이 훗날 천국에서 빛을 쪼일 있게 것입니다. 엄청난 생명의 앞에 피조물인 태양과 달이 무색해지고 있습니다(30:26c, 22:5).

4)      마지막으로 이사야가 일곱 날의 빛과 같다”(30:26d) 예언하고 있습니다. 종말심판의 날에 성도들은 오히려 구원의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30:25-26). 땅에서의 환난과 고난이 끝나고 천국의 시민으로 부활하여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생명수의 강을 만나고 생명나무의 잎사귀로 상처를 치료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어린양을 경배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생명의 빛으로 비추어져 와서 모든 것을 고치고 온전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완전한 구원과 치유가 임하는 날을 이사야는 일곱째 의미와 같다고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증언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치유를 받게 되는 그날이 바로 안식의 ’(2:2-3) 것입니다.

셋째로,27.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 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의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25:29), 28. 그의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여러 민족의 입에 미혹하는 재갈을 물리시리니, 29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며 피리를 불며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17:6-7). 30.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17:11-13),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9:23-24), 31.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앗수르제국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주전 609년에 멸망하고 마는 것임), 주께서는 막대기(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로 치실 것이라. 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메대왕국의 군대)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33. 대저 도벳(힌놈골짜기의 화장터를 말함)은 이미 세워졌고, 왕을 위하여 (아기 왕자를 전쟁의 신 몰렉에게 제물로 바치기로) 예비된 것이라(태워서 바치는 인신공양으로서 모압 왕 메사의 경우는 왕하3:27, 유다 왕 아하스의 경우는 왕하16:3).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방 신 몰렉에게 인신공양을 하여 외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선민들에게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것임)“(30:27-33);

(1)   먼저 본문 제27절부터 제29절까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6가지 질문을 가지고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이사야는 여호와의 이름 가까운 곳이 아니라 원방에서부터 오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는가?”(27a); 창조주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여호와로 섬기고 있는 민족이 선민들입니다. 그들 선민의 사회를 벗어나게 되면 이방세계입니다. 이방세계는 개로 나누어 수가 있습니다. 하나, 유다의 근방입니다. 하나는, 원방입니다;

1)      훗날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이 망하고 나면 백성들이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살게 것입니다. 그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는 그곳을 근방이라고 부를 있습니다. 특징은 하나님신앙을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선민들이 함께 살고 있기에 이방의 백성들에게도 창조주 하나님을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선민의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원방에는 그러한 기회가 없습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을 전혀 섬기고 있지 아니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땅이 바로 원방의 개념입니다.

2)      선지자 이사야는 이방인의 원방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0:27a). 그들 유물론적인 세계관에 젖어서 살고 있던 원방의 이방인들이 창조주 여호와의 이름을 갑자기 부르게 되는 것일까요? 이유가 바로 다음 구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쨌든 원방에서부터 여호와의 일이 심상하지 아니하게 발생하고 있을 때는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는 백성들이 바짝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일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여호와의 불붙는 진노 빽빽한 연기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27b);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원방의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의 역사가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악상이 하나님께서 이상 인내하실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5:16, 왕하21:11).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이 붙고 있습니다(30:27b). 그러한 상태로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여호와께서 강림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면목을 감추고 있다는 표현이 역시 빽빽한 연기입니다(30:27c). 옛날 시내 산에 강림하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자신의 얼굴을 빽빽한 연기로 감추고 계십니다(19:18).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의 진면목인 얼굴을 직접 보게 되는 피조물은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말기 때문에 사람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33:20).

(3)   셋째,여호와의 입술에 분노가 차고 혀에 불이 붙게 되는 것이 재앙인가?”(27c); 본래 피조물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창조가 되었으며 입과 혀에서 나오는 생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2:7). 모세의 기록과 그리스도의 증언이 그와 같습니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1:3),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사람이 떡으로만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니”(8:3, 4:4). 그런데 지금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창조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생명의 말씀도 아니고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고 있는 생기도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입술에서는 분노의 말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30:27d). 혀에서는 맹렬한 불기운이 품어지고 있습니다(30:27e).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에게 너무나 실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6:11-13). 특히 노아의 홍수 때처럼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고 계십니다; “6.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6). 그래서 이제 모두 없애 버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4)   넷째,여호와의 거친 호흡이 열방과 만민을 완전히 쓸어버리기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스스로 한번 자제를 하시고 계시는가?”(28);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세상과 함께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하십니다(28a).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 최종심판 직전에 갑자기 멈추시고 계십니다(28b). 구체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호흡이 사람들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고 있는 바로 순간입니다; “28. 그의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河水, 강물) 같은즉”(30:28a). 그런데 즉시 옥석을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구분하기 위한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여러 민족의 입에 미혹하는 재갈을 물리시리니”(30:28b);  그것은 영생(永生, eternal life)이냐?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이냐? 최종판정하기 전에 마지막 기회가 한번 주어지고 있는데 그때 현장에서 당사자는 입을 다물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증언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7:21-23).

(5)   다섯째,여호와의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자들이 밤에 행하는 가지의 행사는 무엇인가?”(29a); 선민들은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절기 유월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습니다(23:14-19). 거룩한 절기가 되면 밤에 다같이 노래하며 피리를 불고 여호와의 산으로 간다고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습니다(30:29a). 절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성전으로 입장합니다. 다음에는 피리를 불면서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국내외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가 되고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외우게 됩니다. 실로 선민들은 절기를 그렇게 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연중행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사실은 이사야가 주장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미혹에서 벗어나자면 이상의 신앙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6)   여섯째,이사야는 마음에 즐거움을 얻는 것과 이스라엘의 반석에게 나아가는 것을 직결시키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가?”(29b); 이사야가 여호와신앙의 반석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30:29b). 세상을 이기는 신앙(16:33) 모든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있는 견고한 신앙의 본에 대하여(4:1-11) 이사야가 직접 예언하고 있는데 모범과 반석이 바로 메시아의 교훈과 생애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메시아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1:12-13). 종말심판의 문전에서 마지막 미혹을 이기자면 그리스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사야의 상징적인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30:29).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4-25),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7)   본문 30절부터 33절까지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치시고 예루살렘 성을 구원하시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사야가 도벳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30:30-33). 구체적으로, 본문에서 이사야는 유대왕국을 정복하고자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오지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1a).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기 때문입니다(30:31b-32).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땅에 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도벳을 미워하고 우상을 섬기는 왕들을 전부 심판하고자 작심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30:33). 이제부터 구절을 풀이해보면서 의미를 깊은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8)   첫째, 30절입니다; “30.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 그의 팔의 치심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 폭풍 폭우 우박으로 하시리니”(30:30);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은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시대 홍수로 인한 심판이나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진 유황 심판 훨씬 능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폭우나 화염 뿐만 아니라 우박과 폭풍 동반하고 있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히 종말론적인 심판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폭풍 우박 심판이 언제 역사 가운데 임한 적이 있을까요? 출애굽 당시 애굽에 임한 재앙들 가운데 우박의 심판 들어 있습니다(9:18-22). 그것은 7번째 재앙이며 우렛소리 그리고 불과 함께 애굽 땅에 임하고 있는 심판입니다(9:22-24).

2)      그렇다면 폭풍의 심판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요? 태풍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보다는 미친 전쟁의 바람’(the crazy wind of war)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의 시대에 마치 질풍노도(疾風怒濤, 미친 바람과 노한 파도) 같이 적군 앗수르의 기마대가 유대왕국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가히 파죽지세(破竹之勢)입니다.

3)      전쟁의 폭풍을 누가 감히 잠재우고 히스기야 왕의 유대왕국을 구원할 수가 있을까요? 가나안 일대의 여러 왕국들이 기대하고 있는 애굽의 바로가 아닙니다(왕하19:8-9).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대왕국을 구원해 주십니다(30:30a, 31, 왕하19:34-35). 그와 같은 엄청난 창조주 여호와의 심판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이사야가 부득이 , , 우박, 그리고 폭풍 4가지가 한꺼번에 임한 것과 같다고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9)   둘째, 31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목소리 앗수르 낙담할 것이며, 께서는 막대기 치실 것이라”(30:31); 여호와의 목소리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다윗에게 약속한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왕상2:1-4) 예루살렘 성을 적군의 포위공격으로부터 구원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왕하19:34).

1)      이사야의 예언이 퍼져 나가자 유대왕국의 백성들은 구원의 희망에 가슴이 부풀고 반면에 앗수르의 군대는 낙담하게 것이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30:31a). 이유는 영이신 하나님께서(4:24) 움직이시면 피조물인 사람들의 영혼이 창조주의 기세를 먼저 느끼고 소멸의 두려움에 휩싸여서 미리 떨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15:12, 20:18-20, 2:9, 27:54, 5:8). 역시 밤중에 결단이 나고 맙니다.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정예병 18 5천명이 천사에 의하여 삽시간에 송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19:35). 죽음의 천사가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주께서 치시는 막대기”(30:31b)입니다.

2)      참고로, 평소에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켰다고 보기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부끄럽지만 자신의 방법이 잘못 되었다고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태도가 일찍이 다윗 왕이 말하고 있는 다음 말씀에 해당되고 있습니다; “4. 여호와께서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돌이켜)”(왕상2:4a). 그러한 경우에라도 이미 다윗 왕에게 약속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에 구원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다음 역사서에서는 다윗왕조의 왕들에 관한 기록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왕 하나님신앙을 회복하였으면 남은 통치기간에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만 합니다(17:1, 왕상2:4).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왕조를 튼튼하게 보호하겠다는 언약이 계속 유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구원을 얻은 다음에 그리 행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왕하20:12-19). 결과 뒤를 잇고 있는 므낫세 왕이 한번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왕하21:2-16). 유대왕국에서 모든 율법 책이 사라지고 있을 정도입니다(왕하22:8). 따라서 그때부터 제사장나라의 멸망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왕하21:11-16).

(10)      셋째, 32절입니다;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 치며 수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30:32); 앗수르를 징계하는 일은 이미 정해진 수순입니다(30:32a). 앗수르는 창조주 하나님을 약소국 유대왕국의 수호신 정도로 하찮게 여겼던 제국입니다(왕하19:12).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1)      때마침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낀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엎드려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왕하19:1619). 그러므로 이제는 예정된 수순 그대로 앗수르를 크게 징벌하고자 하십니다; “(여호와)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앗수르 군대) 치시리라”(30:32c).

2)      하지만 이사야는 이상한 구절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위에 (징계의 몽둥이를 휘두르실 때마다) 소고 치며 수금 것이며”(30:32b). 아무리 무엄하고도 교만한 앗수르의 군대의 병사 18 5천명을 전멸시켜 버리기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고는 하시지만 그래도 창조주의 마음이 아프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어 있는 자식과 같은 인간들입니다(1:26-27, 9:6).

3)      한두 사람도 아니고 18만명 이상을 하룻밤 사이에 모두 죽여야만 합니다(4:11).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소고와 수금이 동원되고 있습니다(30:32b). 그것은 자식의 비명소리와 고통을 모두 잊어버릴 있도록 귀를 막아버리는데 소용되고 있는 악기들입니다.

4)      참고로, 주후 12-13세기 유대인 주석학자인 다비드 킴히에 따르면 힌놈 골짜기에서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몰렉 우상에게 자식을 인신제사로 드릴 때에(7:31) 부친의 귀를 막아버리기 위해서 탬버린과 수금이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1)      넷째, 33절입니다; “33. 대저 도벳 이미 세워졌고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30:33); 구절은 적어도 가지로 해석이 있는 대목입니다; 하나, 앗수르의 군대를 희생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수가 있습니다. , 인신제사를 금지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이 강력하게 드러나는 대목으로 수가 있습니다. , 메시아를 대속의 제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으로 수도 있습니다.  먼저 도벳 사당의 인신제사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본 후에 경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1)      유다의 왕과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밖 서남방에 위치하고 있는 힌놈 골짜기 도벳 사당을 짓고 몰렉에게 아이들을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7:31, 왕하21:6). 그러한 악습과 인신제사는 요시야 왕에 의하여 금지되고 있습니다(왕하23:10).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있는 앗수르 군대를 골짜기에서 대거 희생시키려고 하십니다. 수가 무척 많습니다. 무려 18 5천명이나 됩니다(왕하19:35). 그들을 모두 죽이고 파묻어 버리기에는 힌놈 골짜기가 안성맞춤입니다. 골짜기는 깊고도 넓으며 시신을 태워버릴 땔감으로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 있은즉(30:33c&d). 그와 같은 정밀한 예언이 이사야에 의하여 발해지고 있습니다.

2)      이사야의 계시는 내용이 당면한 예루살렘 구원만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인 앗수르처럼 선민 유대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창조주로 제대로 섬기지 아니하게 되면 똑같이 멸망을 받을 있다는 내용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다음의 므낫세 왕이 힌놈 골짜기 도벳 사당에서 자신의 아들을 몰렉에서 인신제사로 바치고 있습니다(왕하21:6). 비록 그와 같은 우상숭배를 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이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있지만(왕하23:10)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3)      요시야의 막내 아들 시드기야가 왕으로 있는 동안에 그만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맙니다(왕하25:2-7). 그때의 참혹상을 이사야가 본문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고 수가 있습니다(30:33). 훗날 힌놈 골짜기는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언덕이 골고다 언덕입니다(27:33). 메시아가 그곳에서 십자가 처형이 되고 공동묘지 위에 있는 바위 굴에 안장이 됩니다(27:60).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시게 됩니다(28:1-10). 사건을 통하여 대속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과 구원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됩니다(6:4).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문을 다시 음미하면 좋겠습니다; “(a) 대저 도벳 이미 세워졌고 (b)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c) 깊고 넓게 하였고, (d)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e) 여호와의 호흡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30:33);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준비하신 제물을 마지막 인신제사로 바칠 있도록 사당인 도벳을 세우고 있습니다(30:33a, 1:29, 22:12-14). 장소가힌놈 골짜기 이어지고 있는 시온 높은 지대의 골고다 언덕입니다(11:10).

모든 인류의 대속을 위한 완전한 제물은 평범한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사용하는 완전한 속죄의 제사입니다(3:13-17, 7:27-28). 그리고 영원한 대속의 제물이므로 앞으로는 인신제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유다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30:33b, 27:37). 과연 선민 유다의 왕으로 오셔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이세상에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상임금을 물리치시고(12:31-32) 메시아나라의 영원한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사야가 진작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6. 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이라 것임이라”(9:6).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의 현장이 힌놈 골짜기 근방인 위쪽이라고 경우에는 나머지 예언의 내용 “(c) 깊고 넓게 하였고, (d)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e) 여호와의 호흡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30:33) 뜻이 다음과 같이 풀이될 있을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적용은 선민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 이방인 구분이 없습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은혜가 참으로 깊고도 넓습니다(30:33c).

(2)   칭의를 받고 의인이 되었다고 하여 금방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역할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합니다(1:8). 성령님께서 기도와 간구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제자 삶이 무엇인지 앞길을 인도해 주셔야만 합니다. 한마디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도들은 영적인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8:1-4). ,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동시에 성화의 과정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28:18-20).

(3)   여전히 잘못된 버릇과 행실이 성도들에게 마치 가시나무처럼 많이 도사리고 있습니다(30:33d, 고후12:7).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야 합니다. 이사야는 은혜롭게도 여호와의 호흡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30:33e)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호흡이기 때문에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   하나는 혀의 맹렬한 불로써(30:27) 성도의 잘못된 버릇과 행실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는 영적인 호흡을 불어넣어서 성도의 영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2:7, 1:8). 꿀같이 생명의 말씀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와서 성도들에게 생명력을 북돋우어 주는 것입니다. 은혜와 능력이 심령속에서부터 생수와 같이 터져 나오고 있기에 성도들이 세상을 이길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4:14, 6:55, 16:32-33).

  끝으로, 구약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외침은 하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여기고 제대로 섬기라. 종이 주인의 지시를 따르듯이 하나님 앞에서 종의 법도를 지키며 반드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라(4:3-11, 30:19-20, 15:25).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지나치게 내세우거나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수치를 당하게 것이다. 왜냐하면, 방향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30:1-5)”. 아무쪼록 역사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