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소돔과 고모라의 땅 그 절망과 아비규환의 광야와 사막에 다시 백합화를 피우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이사야가 찬양하다”(사34:1-35: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8. 6. 16:49

제목; “소돔과 고모라의 땅 그 절망과 아비규환의 광야와 사막에 다시 백합화를 피우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이사야가 찬양하다”(34:1-35:10)

설교일; 주후 2026 10 2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86일 수요일 작성)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제11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전 21세기에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 갈대아인의 우르에 살고 있던 아르박삿의 후손인 족장 데라가 장남 아브람 부부 및 장손 의 가족을 데리고 여호와의 명령으로 서방선교를 떠나고 있는데 그 목적지가 가나안 땅입니다(11:31a). 그렇지만 부동산에 밝은 족장 데라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개발가치가 엄청난 땅을 발견합니다.

그는 그 일대의 많은 땅을 싼값에 사들이고 그곳을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합니다. 물이 풍부하고 목초가 잘 자라고 있는 그 지역을 선점하여 목장지로 만들고 그 중심지에 도시를 개발하면 메소포타미아 중심지에서 서진하고 있는 셈족들에게 분양하여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신도시 개발에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에 따라 부자인 족장 데라는 자신이 가진 전재산을 그 사업에 투자하고 무려 60년 세월을 그 일에 매어 달리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적인 이익을 전심전력으로 추구하고 있는 족장 데라인지라 그만 여호와의 선교명령은 뒷전이 되고 맙니다.

그는 필생의 사업을 일찍 죽은 삼남 하란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 일에 전적으로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11:28, 31b-32). 도중에 여호와께서는 수차례 족장 데라에게 본래의 목적지 가나안을 향하여 서남진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쇠귀에 경읽기입니다.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의 말씀은 데라의 장남 아브람 부부에게 임하고 있습니다(12:1). 아브람은 아내 사래가 불임이므로 아들이 없습니다(11:30).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그들 부부에게 자손의 번성을 주시겠다고 가장 먼저 약속하고 있습니다(12:2a). 당시 여호와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일종의 쌍방간 언약’(a bilateral verbal contract)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아브람 부부가 먼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부친 데라의 막대한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포기하고서 하란을 떠나 선교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12:1, 11:31).

(2)  둘째, 그곳의 현지  원주민들에게 아브람 부부가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남은 평생 선지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12:2c, 14:18-20, 20:7, 23:6, 7:2-3).

(3)  셋째, 그리하면 자손의 번성과 아브람 이름의 창대함 그리고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강력한 보호와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은혜를 반드시 베풀어주겠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이 철석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12:2-3).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아브람 부부가 장조카 롯의 가족과 함께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12:4-5).

가나안의 원주민 함 족속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이주민 셈족(9:26) 곧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온 히브리인(14:13) 아브람 일행을 별로 환영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인종도 차이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12:7-8, 23:15, 43:32, 46:34). 그들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여호와신앙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아온 함족, 그것도 가나안의 후손들인 것입니다(9:25).

그러므로 여호와신앙을 전파하기 위하여 들어간 가나안 땅은 물론 때로는 흉년을 피하기 위하여 들어간 함족의 땅 애굽이나 블레셋의 그랄 땅에서 아브람 부부와 그들의 자손인 이삭과 야곱의 가족들은 원주민들의 냉대를 받게 됩니다. 여호와의 강력한 보호하심의 은혜가 없었다고 하면 떠돌이 호족에 불과한 그들이 현지에서 제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12:17, 14:14-16, 20:7, 17-18, 26:2-33).

그런데 창세기 제13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브람 부부가 출애굽하여 가나안 남부 벧엘 땅에 들어왔을 때에 애굽에서 바로로부터 받은 많은 재물 가운데(12:16) 상당부분을 장조카 롯에게 주고 있습니다(13:1-6). 그 이유는 자식이 없는 그들 부부가 장조카 롯을 마치 아들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을 얻어 갑자기 부자가 된 롯의 부부가 생각이 달라지고 맙니다. 고생스럽게 나이 많은 백부와 백모를 모시고 황량한 가나안 땅에 목축업자로 마냥 떠도는 것 것보다는 염해 인근의 번성한 도시 소돔으로 들어가서 향락을 누리며 부자로 한세상 살고 싶은 것입니다(13:10-13).

졸지에 아들처럼 여기고 있던 장조카 롯의 가족이 자신을 척박한 가나안 땅에 남겨두고 멀리 소돔성으로 떠나버리자 노인 아브람 부부는 인간적으로 외롭고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강력한 보호하심과 약속하신 축복 곧 자손의 번성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12:2-3).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더욱 구체적인 약속의 말씀으로 그들 부부를 격려하여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여호와신앙인의 진면목을 보여주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보고 있는 모든 땅을 장차 너희 자손에게 줄 것이며 네가 직접 발로 디디고 다닌 땅을 전부 너희 부부에게 줄 것이다. 이제부터는 떠돌이 호족이 아니라 원주민들이 부러워하는 구국의 영웅이 될 것이다”(13:14-18의역).

그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헤브론 마므레 땅에서 자신의 성을 가진 호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람 부부에게는 원주민들이 무시할 수 없는 사병 318명과 많은 재산이 있습니다(14:14b). 그리고 원주민 아모리 족속의 호족들과 연합하여 그 지역을 침입한 메소포타미아 다국적군을 쳐서 북송 중에 있던 포로들과 재물을 되찾아오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14:13-16, 24).

그때 아브람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가 소돔성에 살고 있던 롯의 가족이 적들에게 포로가 되어 북송이 되고 있었으며 그들의 재산이 약탈당했기 때문입니다(14:12-14a). 그렇지만 백부에 의하여 구원을 얻은 롯의 가족은 다시 소돔성으로 되돌아가서 계속 부자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9:1).

그후 극도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등 염해지역 부자 성읍에 대한 여호와의 불심판이 발생합니다(19:24-25). 그 불심판으로부터 극적인 구원을 받은 자는 롯과 그의 두 딸 뿐입니다(19:16, 26, 29). 그후 아비의 아들을 잉태한 두 딸이 모압과 암몬의 땅으로 들어가서 훗날 그 지역 원주민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19:33-38).

그러한 역사가 있기에 주전 1,446년에 세상제국 애굽에서 출애굽 해방을 얻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 땅 르비딤에 머물고 있다가 갑자기 그곳을 떠나 인적이 없는 시나이 반도 남단 시내 산 앞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19:1-2). 그리고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북상하여 전진할 때에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조상 아브라함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왕국들을 도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0:21, 2:5, 9-12, 19). 그 대상이 미디안, 에돔, 모압과 암몬 등입니다.

참고로,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가 낳은 아들의 자손들입니다(25:1-6). 에돔 족속은 아브라함의 적장자인 이삭의 장남 에서의 자손들입니다(25:25, 36:9). 모압과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장조카 롯의 자손들입니다(19:37-38). 그리고 미디안 땅과 에돔 땅의 주변과 수르 지역에는 아브라함의 서장자인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25:13-18).  

그에 따라 모세가 요단 강 동편에서 차지할 수 있었던 지역은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입니다. 구체적으로, 남쪽의 시혼왕국과 북쪽의 옥왕국인 것입니다(21:23-26, 33-35, 2:24, 3:3). 그 땅을 모세는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에게 먼저 배분합니다. 물론 그들 지파의 정예병이 요단 강을 함께 건너가서 가나안정벌에 합류한다는 조건입니다(32:16-33);

  

이듬해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가 최고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가서 수년간 정복전쟁에 돌입합니다. 그 결과 가나안 원주민을 치고 그 땅을 얻어 9지파와 나머지 므낫세 반지파에게 분배한 것입니다(13:8, 14:1-5).

이상과 같은 역사를 참고하여 보면 본문 이사야 제34장과 제35장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이해됩니다;

(1)  첫째, 영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타락하여 여호와의 불심판을 받은 성읍이 소돔과 고모라(19:24-25)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 등 넷입니다(29:23). 그들 도시국가의 주민들은 염해지역에서 무진장 생산되고 있는 암염을 독점하여 이웃지역에 고가로 팔고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을 오가는 대상들에게 팔아서 큰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아시스지역을 개발하여 대상들에게 휴식과 향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부를 얻어 4개의 도시국가는 작은 성 소알과 더불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멀리서 보고서 부자인 중년의 롯은 그곳으로 들어가서 살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치와 향락이 지나쳐서 영적 성적인 타락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 도시국가의 멸망을 감지하지 못한 안이한 선택입니다(13:13).

(2)  둘째,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 등 4개의 성읍이 여호와의 불심판으로 완전히 멸망하고 말지만 그것으로 염해지역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훗날 힘있는 종족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서 부유한 왕국을 다시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 에돔왕국과 모압왕국입니다. 참고로, 염해의 남쪽에서 발전한 왕국이 에돔이고 염해 동편의 왕국이 모압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전철을 밟게 되는 부유하면서도 죄악이 범람한 왕국이 바로 에돔왕국과 모압왕국이며 그들이 다시 여호와의 역사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본문 제34장에서는 에돔왕국의 멸망으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34:5-15). 그리고 모압왕국의 멸망에 대해서는 벌써 선지자 이사야가 제15-16장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3)  셋째, 여호와의 역사심판은 에돔왕국과 모압왕국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죄악을 범하고 있는 온 세상 모든 나라와 족속에게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5:29). 그러한 측면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제34장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2.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모든 군대)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 당하게 하셨은즉(창조주 여호와에게 대적하는 모든 악한 영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열국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말 것임, 19:19-21, 20:7-10), 3. 그 살륙 당한 자는 내던진 바 되며(19:21, 모든 새의 먹이가 되고)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이 세상의 모든 나라의 역사가 현존하는 천지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기 전에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는 것임), 그 만상의 쇠잔함이 (그때가 되면 자연히)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34:1-4).

(4)  넷째, 그렇지만 여호와의 긍휼과 회복하심의 은혜가 그 땅에 먼저 임하고 있습니다(33:19). 그 증거가 바로 메시아의 복음이 그들의 땅에 들리며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로 그들 가운데 진심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남은 인생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31:33-34, 2:23, 28-29). 그와 같은 사실을 선지자 이사야는 제19장 말미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날에(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보혜사 성령님이 역사하는 새언약의 시대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65:20),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9:15-16).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65:1-2, 2:23-25, 3:4-10). 23.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복음의) 대로가 있어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창조주 여호와의 은혜와 대속의 그리스도를) 경배하리라! 24.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1-25).

(5)  다섯째, 본문 제35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성도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여호와의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을 일부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광야에서 살 길이 열리고 사막에서 백합화가 피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가나안과 홍해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요르단의 광야에서 살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선민의 역사와 기독교의 자취를 찾아보기 위하여 그곳에 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막이 대부분인 아라비아 땅에서는 검은 황금 석유가 생산되어 그 결과 삭막한 모래 위에 살고 있던 백성들이 이제는 백합화를 키우는 정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여호와의 보살핌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창조주 여호와의 품으로 달려 나오는 회심을 조속히 해야만 할 것입니다. 너무 늦어지면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다시 그 땅에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열국(모든 나라)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말과 글 그리고 문화가 같은 족속을 말함)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육지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을 말함),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하늘을 나는 새들과 대륙을 건너가는 큰 새들까지 모두) 들을지어다(창조주이시며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이사야의 선포임). 2.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모든 지역)향하여 진노하시며(선민들이 범한 죄악을 똑같이 범하고 있는 모든 나라와 족속에 대하여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동일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임, 25:29), 그들의 만군(많은 군대)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 당하게 하셨은즉(여호와에게 대적하는 패권국과 제국들 그리고 모든 민족과 나라들에게 서로 전쟁을 통하여 공멸하게 만드는 그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발생한다는 것임, 24:7), 3.  살륙 당한 자는 내던진 바 되며(전사자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19:21)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4:10-12), 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천체가 붕괴되고 하늘이 사라지며, 24:29),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땅도 지상의 삼라만상도 함께 사라지게 될 것임, 65:17, 24:30, 21:1). 5.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종말전쟁에서 여호와의 군대가 승리함을 말함, 19:14-21), 보라 이것이 (지상에서는 여호와의 역사심판이 먼저)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그 종말의 징조가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의 멸망과 그 뒤를 잇고 있는 인근 에돔왕국의 멸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임, 25:29). 6.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보스라에 있고 큰 살륙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선민의 나라에서 그토록 열심히 성전에서 속죄의 제물을 바쳤지만 그것이 올바른 여호와신앙에 기초한 것이 아니므로 허사가 되고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당하고 말았듯이, 1:11-12, 29:13, 58:6,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약육강식의 사회를 경영한 인근 보스라에 수도를 두고 있는 에돔왕국이 여호와의 진노로 이웃 모압왕국처럼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임, 25:10-12). 7.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함께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율법의 제례의식도 몰라서 제물로 들소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그와 같은 이방인들은 모두 에돔왕국처럼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당하고 말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임)“(34:1-7);

(1)  본문 이사야 제34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피조세계를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는 살육전쟁의 참상을 막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취하고 계시는 조치에 대하여 3가지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 열국 사이의 미움과 민족들 사이의 불화가 끊임없이 전쟁을 유발하며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시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34:1-3). , 결과 하늘에서 하나님의 칼이 나타나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34:4-5). , 그러나 어린양의 피가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되어 효과가 이방 땅에 미치고 있으므로 장차 그들이 전쟁을 버리고 하나님께 사죄의 제사를 드린다면 땅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34:6-7).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구절을 검토하면서 깊은 내용을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1. (a)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b)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c) 땅에 충만 , (d)세계 세계에서 나는 모든 이여 들을지어다”(34:1); 의미를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국가와 국가의 구성원이 되고 있는 민족은 의미가 다릅니다. 국가는 하나의 조직체이므로 조직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여 냉철하게 정책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은 사람들의 집합이므로 인간의 감성과 열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민족 역시 집단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때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양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기본적인 차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들은 국가의 이익을 잠시 내려놓고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말씀을 들으라”(34:1a 의역), “그리고 여러 민족들은 집단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양심의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34:1b 의역).

2)      세상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을 들어야만 하는 대상이 사람들에 국한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해당사자에는 만민 뿐만 아니라 세상만물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따라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의 모집단인 뿐만 아니라 땅에서 발생하여 풍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모든 식물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34:1c 의역), “그리고 인간세계에 함께 살고 있는 가축들과 별도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모든 야생의 동물들도 모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34:1d 의역).

(3)  둘째, 2절입니다;2. (a)대저 여호와께서 열방 향하여 진노하시며, (b)그들의 만군(armies) 향하여 내사, (c)그들을 진멸하시며, (d)살륙 당하게 하셨은즉”(34:2); 하나님께서 무엇에 대하여 진노하시는지를 이사야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은 둘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가장 조직체인 국가들입니다(34:2a). 하나는, 나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국가의 폭력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군대들입니다(34:2b).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가의 이익이 서로 충돌할 때에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평화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으로써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할 있는 약육강식의 방법론입니다.

2)      서로가 양보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말살함으로써 오로지 자신만이 생존과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약육강식의 사회의 횡포와 포악성에 대하여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전면적으로 홍수심판하신 바가 있습니다. 당시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6:3a),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6:6-7).

3)      노아 시대의 전면적인 심판의 모습과는 달리 이사야는 제한적인 심판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님께서 신위적인 방법으로 군대를 쓸어 버리시는 것입니다(34:2c). 그것은 히스기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인 18 5천명을 진멸하신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왕하19:35). , 국가들이 서로 전쟁하여 살육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시는 방법입니다(34:2d).

(4)  셋째, 3절입니다; “3. (a) 살륙 당한 내던진 되며, (b) 사체의 악취 솟아오르고, (c) 산들 녹을 것이며”(34:3); 국제전쟁의 참상이 어느 정도일까요? 이사야가 참상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3. 살륙 당한 내던진 되며”(34:3a); 군사들만 살육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에게 점령당하게 되면 공공연히 민간인들의 저항의식을 말살시키고자 성읍에서 대대적으로 무자비한 살인행위가 자행됩니다. 그리고 사체를 구덩이를 파고서 내던져버립니다. 그와 같이 끔찍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2)      , 사체의 악취 솟아오르고”(34:3b);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죽은 자들에 대하여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동네를 완전히 불태워버려서 모든 주민들이 몰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의 시신이 매장이 되지 못하고 산야에 흩어져서 악취를 오랫동안 풍기게 됩니다.

3)      , 산들 녹을 것이며”(34:3c); 적들의 칼에 베이고 창에 찔린 부위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없는 백성들의 피가 산천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피를 흠뻑 덮어쓰게 산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녹아 내리고 있다고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둘입니다; 하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기에 고귀한 존재입니다(1:26-27). 하나는, 그러므로 생명의 피를 흘리게 하거나 피를 흡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9:5-6, 32:34).

(5)  넷째, 4절입니다; “4. (a)하늘 만상 사라지고, (b)하늘들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c) 만상 쇠잔함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34:4); 인간세상의 전쟁의 참상이 사람들의 죽음과 무죄한 자의 흘림 그리고 땅의 황폐함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에 피해가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잘못과 피해가 극단에까지 이르도록 내어 버려두고 있다는 것이 자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글귀의 조각을 잠시 살펴봅니다;

1)      하나, “4. 하늘 만상 사라지고”(34:4a); 전쟁무기의 발달이 굉장합니다. 예를 들면 핵폭탄의 경우 먼저 하늘로 죽음의 버섯구름이 치솟게 됩니다. 속에서부터 엄청난 빛과 열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렇게 되면 땅의 생물은 물론 하늘에 있는 생물까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의 재가 날리는 곳에는 식물들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여러 세대에 걸쳐서 유전자의 변이가 계속 발생하게 됩니다.

2)      , 하늘들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34:4b); 이사야가 민족의 하늘을 포괄적으로 묘사하여 하늘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량학살 보복전쟁이 꼬리를 물고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대전이 다시 발생하게 되면 여러 나라의 하늘들이 엄청난 공습과 폭격으로 말미암아 동시에 두루마리 같이 말려 올라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것입니다.  

3)      , 만상 쇠잔함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34:4c); 마치 세상의 종말을 미리 보여주는 것과 같은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되면 삼라만상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천지간에 호흡을 하고 있는 모든 동물과 생물들이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발생하고 것입니다. 또한 전쟁 후의 공해문제가 심각해질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임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자멸적인 전쟁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내어 버려두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6)  다섯째, 5절입니다;5. (a)여호와의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b)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c)진멸하시기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34:5); 세계대전으로 인류가 공멸하기 전에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이사야의 예언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대목입니다. 내용은 하나님의 칼이 하늘에서 무엇인가 만족스럽게 마셨다고 하는 문장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1)      하나,5. 여호와의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34:5a); 백성들이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물을 태우는 연기와 기름 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1:7-9). 연기와 냄새를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응답을 주십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태양력으로 매년 10 10 ()속죄일에 가장 죄사함의 제사를 드립니다(16:29-34). 그때 대제사장이 지성소까지 들어가서 일년 동안 백성들이 지은 죄를 모두 용서했다고 하는 신탁을 받아서 나와 회막의 뜰에서 장로들에게 선포하게 됩니다(25:22, 하나님이 모세와 대제사장을 만나는 곳은 지성소 내의 속죄소임, 29:42, 대제사장이 장로들을 만나는 곳은 번제단이 있는 회막의 뜰임, 16:15-17). 그와 같은 대속의 제사가 메시아에 의하여 장차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의 영원한 제사가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2)      ,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34:5b); 메시아의 대속의 죽으심이 선민만을 대속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들이 원수로 여기고 있는 에돔 족속까지 용서하시는 대속의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 진멸하시기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34:5c); 에돔 족속 뿐만이 아닙니다. 진멸하기로 예정하신 모든 백성 위에 대속의 은혜가 임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은혜 안에 들어올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개인별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7)  여섯째, 6절입니다; “6. (a)여호와의 어린양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b)기름 숫양의 콩팥기름으로 윤택하니, (c)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 보스라 있고, (d) 살륙 에돔 땅에 있음이라“(34:6); 워낙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사야가 좀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확실하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6. 여호와의 어린양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34:6a);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의 희생의 피만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온전히 용서할 있는 능력으로 역사하게 됩니다(1:29, 3:13-15).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1.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 기름 숫양의 콩팥기름으로 윤택하니”(34:6b); 어린양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죄사함을 얻게 백성들은 남은 인생을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마치 선민들이 제물의 기름을 태우듯이 성도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기름을 태우면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소위 제자의 길이며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삶입니다(16:24, 28:18-20).

2)      ,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 보스라 있고”(34:6c); 선민들만 그러한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게 되는 이방인들도 그리하여야 합니다. 이사야는 에돔 족속의 수도 보스라에서도 여호와를 위하여 희생적인 삶을 살겠다고 하는 헌신들이 있어야만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 살륙 에돔 땅에 있음이라”(34:6d); 그와 같은 결단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 아니하면 예정된 하나님의 심판이 에돔 땅에 임하게 것입니다. 그것은 상상도 없는 살육입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잠시 언급한 것만 보더라도 인구의 3분의 1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9:18).

(8)  일곱째, 7절입니다; “7. (a)들소 송아지 수소 함께 도살장에 내려가니, (b)그들의 취하며, (c) 기름으로 윤택하게 되리라”(34:7); 이사야의 예언이 결론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하나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모두가 멸망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있도록 백성들이 스스로 겸비하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동물들과 땅의 운명이 전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성도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이사야의 표현 그대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들소와 가축들인 송아지와 수소가 모두 떼죽음으로 당하고(34:7a) 땅에 피가 흘러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34:7b). 반대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 앞에 회개한다면 모든 동물과 땅이 다시 살아나고 회복되는 놀라운 미래가 전개될 것입니다(34:7c).

둘째로,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영적 성적 타락과 약자에 대한 포학함이 절정에 이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등지에 대한 여호와의 불심판이 임하는 날임, 18:20-21, 19:24-25),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소돔 성 등지의 의인을 구원하고자 열심히 여호와 앞에서 중보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말하고 있음, 18:22-33) 신원하시는 해라(19:29). 9.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고 훗날 그 땅에 재건된 왕국) 에돔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 붙는 역청이 되며(에돔왕국이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 등과 동일하게 잘못을 행하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동일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임), 10.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불심판의 결과를 의미함, 19:28),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그 결과 가뭄과 흉년으로 그 땅에 주민이 사라지는 것임), 11.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야생동물만이 거처하는 메마른 광야가 되고 마는 것임).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나중에는 혼돈의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임, 1:2), 12.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다시는 왕국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족장과 호족들도 사라지고 말 것임), 13.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인걸은 간데 없고 산천만 의구하다는 야은 길재의 시보다 더욱 허무하고 처참한 광경임), 14.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로 삼으며(야생조류와 짐승들만 그 땅에 들끓고 있는 것임), 15. 부엉이가 거기에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야생의 땅이 되어 짐승들이 번성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발길이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는 것임). 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노아의 홍수 후 현대인류가 번성하기 이전 그 땅에 노아의 방주에서 방생이 된 암수 쌍쌍의 동물들에 의하여 야생의 삶이 먼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임, 7:6-10, 9:1-7). 17.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새로운 천지를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내용을 다시 참고할 필요가 있음, 1:20-25, 30)“(34:8-17);

(1)  먼저 본문 8-15절에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메시아의 희생을 외면하는 , 에돔과 같은 자에게 심각한 여호와의 보복이 임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훗날의 역사를 참조하면, 비록 에돔이 주전 2세기말 유대에 복속되어 이두매로 바뀌지만 주전 1세기 중반에는 로마의 도움으로 그들의 헤롯왕가가 오히려 유다를 지배하게 됩니다. 유다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헤롯대왕은 땅에 오시는 메시아를 살해하고자 했으며(2:13-18) 그의 아들인 갈릴리의 분봉 헤롯 안디바는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됩니다(14:1-12). 그리고 헤롯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1세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탄압하고 사도 야고보를 죽이게 됩니다(12:1-2). 한마디로, 헤롯 왕가는 메시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는 악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알고 있기나 것처럼 선지자 이사야가 메시아의 복음사역에 적대적인 에돔과 같은 자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보복에 대하여 본문에서 심각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참상은 한마디로, 에돔 지역에 옛날 사라진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이 다시 발생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의 본문 예언은 지옥의 모습을 연상시켜주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제부터 구절을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의미를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8절입니다; “8. (a)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이요, (b)시온의 송사 위하여 신원하시는 ”(34:8);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이 장차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4:8a). 그런데 심판에는 하나의 기준이 있을 것이라고 동시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바로 시온의 송사 관련되고 있습니다(34:8b). 여기서 시온의 송사 시온성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시는 메시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이 바로 죄인인 자신을 살리기 위한 거룩한 희생임을 깨닫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들은 신원이 회복될 것입니다. 반면에 사실을 외면하고 스스로 의인으로 행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그때가 어김없이 장차 임하게 것임을 이사야가 확실하게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3)  둘째, 9절입니다; “9. (a)에돔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 되고, (b) 티끌 유황 되고, (c) 불붙은 역청 되며”(34:9); 이사야는 메시아의 대속의 죽으심을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계속 제멋대로 인생을 사는 자들을 에돔 족속으로 보고 있습니다(34:9a). 훗날의 역사를 보면, 에돔 족속이 이두매인이 되고 그들의 헤롯 왕가가 유다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롯 대왕은 유다 지배를 영구히 하고자 유다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죽이고자 합니다(2:13-16). 그와 같은 사실은 땅에서 영원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며 살고자 하나님의 간섭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배척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에돔 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바로 옛날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입니다(19:23-25, 29:23).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이 또다시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제멋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하나님의 보복이 역사적인 심판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사야의 세부적인 예언의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2)    하나,9. 에돔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 되고”(34:9a); 에돔의 땅은 훗날 요르단에 속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아스팔트의 재료가 되는 역청이 풍부합니다. , 티끌 유황 되고”(34:9b); 그런데 그곳에 유황불이 떨어지게 되면 엄청난 비극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발생하여 융단폭격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하늘이 타버릴 것만 같은 재앙이 발생할 것입니다. , 불붙은 역청 되며”(34:9c); 하늘에서 죽음의 재가 땅으로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세상이 불못으로 변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땅에 임하고 있는 지옥의 모습입니다(20:14);

(4)  셋째, 10절입니다; “10. (a)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b)세세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34:10); 땅에서도 지옥과 같이 저주받은 모습이 나타날 수가 있음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지옥불과 같이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과 연기가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34:10a).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땅의 생산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서로 죽고 죽이며 약탈을 통하여 강자만이 살아남는 곳입니다. 그와 같이 무시무시한 곳이므로 그곳을 통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34:10b). 그리고 그러한 곳에 유배간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지옥의 아비규환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참고로, 옛날 아우를 죽인 카인이 그러한 으로 유배를 적이 있습니다(4:11-16).

(5)  넷째, 11절입니다; “11. (a)당아새 고슴도치 차지하며, 부엉이 까마귀 거기에 것이라. (b)여호와께서 위에 혼란 줄과 공허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34:11);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없는 저주 받은 땅에 어떠한 부류의 사람들이 득세하고 살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당아새와 고슴도치와 같은 자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그들과 함께 그곳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4:11a). 의미는 펠리칸처럼 생겨서 먹성이 좋으며 습성은 올빼미처럼 밤을 좋아하는 당아새와 같은 인간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고슴도치처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가시로 중무장되어 있는 자들이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 한둘이 아님)하므로 사체(死體, 죽은 시체) 파먹기 위하여 밤에는 부엉이, 낮에는 까마귀가 설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은 더이상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피조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창조이전의 혼돈과 공허 속으로 되돌아가버린 것과 같습니다(1:2, 34:11b). 그것이 하나님의 저주이며 최후심판의 모습입니다(34:8).

(6)  다섯째, 12절입니다; “12. (a)그들이 국가 이으려 하여 귀인들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b) 모든 방백 없게 것이요”(34:12); 혼돈과 공허의 세상이므로 가지가 존재할 없게 됩니다; 하나는, 국가의 질서가 잡히지 않습니다. 서로가 힘을 행사하고 있기에 그것을 조정하고 다스릴 있는 귀인(貴人, 귀하신 ) 없는 것입니다(34:12a). 그것은 마치 소견대로 행하고 있는 사사시대와 같습니다(21:25). 하나는, 하나님의 선지자 또는 하나님의 사람인 방백이 없는 것입니다(20:7, 23:6, 34:12b).

(7)  여섯째, 13절입니다; “13. (a) 궁궐에는 가시나무 나며, (b) 견고한 에는 엉겅퀴 새품 자라서 승냥이 굴과 타조 처소가 것이니”(34:13); 메시아의 구원사역을 방해하고 도리어 해치고자 하는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아비규환의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살게 것이라고 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를 모두 외면하고 그들에게 맞는 무질서의 사회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죽이고 약탈하는 무서운 사회를 형성하고 그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불심판을 당하고서도 정신들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 마침내 그들의 궁궐과 도성이 모두 훼파되고 마는 비극을 맞이하게 것입니다(34:13).

2)      선지자 이사야는 대목에서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칼과 전투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의 말로가 다음과 같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13. 궁궐에는 가시나무 나며”(34:13a); 다시는 국가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궁궐이 버림받고 있습니다. 가시나무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살지를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 견고한 에는 엉겅퀴 새품 자라서 승냥이 굴과 타조 처소가 것이니”(34:13b); 견고한 성은 요새지인 성읍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할거하던 약탈족속들도 결국에는 강한 상대를 만나서 모두 죽고 성은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결과 엉겅퀴와 새품으로 불리고 있는 도깨비 바늘이 자라서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짐승은 승냥이와 타조일 것입니다;

(8)  일곱째, 14절입니다;14. (a)들짐승 이리 만나며, (b)숫염소 동류 부르며, (c)올빼미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 삼으며”(34:14); 노아의 홍수 때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악함 때문에 가축과 들짐승 그리고 새와 땅까지 모두 저주하셨습니다(6:5-7, 11-13). 그러나 무지개언약을 세우신 이후에는 사람의 잘못 때문에 동물과 환경까지 저주하지 않습니다(8:21, 9:11). 덕택에 사람들이 사라진 땅에 각종 들짐승과 새들이 번성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이사야의 예언을 살펴보면 질이 별로 좋은 동물들이 아닙니다; 하나,14. 들짐승 이리 만나며”(34:14a); 가축이 사라지고 들짐승들만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습성이 비슷한 이리와 같은 짐승을 만나서 서로 투쟁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숫염소 동류 부르며”(34:14b); 양과 달리 염소는 버릇이 고약합니다. 한마디로, 제멋대로이며 머리로 상대를 들이박으려고 합니다. 가운데 숫염소가 성질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한 숫염소가 같은 종자를 만나서 투쟁의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 올빼미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 삼으며”(34:14c); 밤에 먹을 것을 찾는 올빼미입니다. 야행성이므로 남이 쉬는 시간에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종류가 살아남아서 밤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 무서운 곳입니다.

(9)  여덟째로, 15절입니다; “15. (a)부엉이 거기에 깃들이고 낳아 까서 그늘에 모으며, (b)솔개들 각각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34:15);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부엉이와 솔개들입니다. 그것이 메시아를 배척하고 하나님의 보복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하늘의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하늘이 사라지고 낮에는 솔개들이 먹이를 채어가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사냥꾼 솔개가 짝짓기를 많이 하고 개체의 수가 자꾸만 늘어가고 있습니다(34:15b). 그리고 밤에는 부엉이들의 세상입니다. 그들이 밤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많아서 득세하면서 부엉이의 개체의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이사야는 알을 많이 낳고 번식을 많이 하고 있다”(34:15a 의역)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본문 16-1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있는 방법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이사야는 장차 시온에서 발생하는 , 메시아의 대속의 죽으심을 시온의 송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4:8b). 일종의 송사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는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판결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메시아의 희생의 제사가 자신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임을 깨닫고서 크게 회개하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누구나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33:17-24, 5:44-48, 16:24, 22:28-30).

2)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헤롯대왕처럼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2:13) 또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외면하고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보복을 받게 것입니다(34:8a).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고자 참상을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34:9-15). 그것은 한마디로, 세상에서 맛볼 있는 지옥의 모습들입니다. 이제 본문에서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11)    첫째, 16절입니다; “16. (a)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b)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c)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d)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e)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34:16). 하나씩 나누어서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16. 너희는 여호와의 에서 찾아 읽어보라”(34:16a);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의 근거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적어놓은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장은 지금까지 전래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 이사야의 예언이 가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에 틀림없다고 증거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놓은 책은 모세오경과 역사서 그리고 성문서와 시가 등입니다. 그것은 이사야의 시대보다 앞선 것이며 양피지에 적혀 전승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그렇게 자신 있게 주장할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그의 예언과 기록된 말씀을 대조할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2)      ,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하나도 없고”(34:16b); 이사야는 자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예언은 전부 그때까지 히브리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말씀과 동일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그것에서 벗어난 빠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 없는 것이 없으리니”(34:16c); 이유는 놀랍게도 하나님 말씀이 전부 짝이 있도록 계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짚신에도 짝이 있듯이 말씀은 서로 짝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시고 그만 두시지 않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이해능력과 기억능력이 창조주와는 비교할 없을 정도로 빈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할 때까지 되풀이하여 설명해주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짝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3)      , 이는 여호와의 이를 명령하셨고”(34:16d); 말씀이란 모두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8:3, 4:4). 창조주는 입으로 말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뜻과 의미가 동일합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에(6:8-13, 4:4, 8:3) 당연히 기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짝을 찾아서 서로 대조하고 비교하면서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성경공부와 말씀묵상의 방법론이 것입니다.

4)      다섯, 그의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34:16e);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딤후3:16, 고전2:13).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란 피조물이 쉽게 이해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창조의 신비가 놀랍고 역사섭리가 오묘하기 그지 없기 때문입니다(11:33). 그와 같은 고차원의 말씀을 어떻게 사람들이 알아들을 있도록 말하고 기록할 수가 있을까요?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그렇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이 온전히 영에 사로잡혀서 단지 손과 입의 도구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5)      그에 따라 성경공부와 말씀묵상의 방법도 그러합니다. 전적으로 성령님의 감동 가운데 영에 사로잡혀서 깊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합니다(37:1, 40:1). 세상의 모순가운데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던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환한 빛으로 일순간에 해결되는 은혜를 맛보아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지혜가 주어지면 자신의 인간적인 지식과 지혜가 앞에서 새로워지고 높은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경험하게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씀의 묵상과 깨달음의 은혜를 직접 체험하시는 소중한 성경공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    둘째, 17절입니다; “17. (a)여호와께서 그것들 위하여 제비 뽑으시며, (b)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c)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34:17). 구절은 훗날 주전 5세기에 페르시아제국에서 발생하는 부림절 사건과 상호 비교하는 대목입니다. 그것이 일종의 짝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살펴보면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17. 여호와께서 그것들 위하여 제비 뽑으시며”(34:17a); 여기서 그것들 에돔 족속과 같은 자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헤롯대왕과 같은 자들입니다. 헤롯대왕은 자신의 왕가의 이익을 위하여 유다 땅을 계속 지배하고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죽이려고 합니다(2:13-16). 그와 같이 세상의 기득권 유지에 눈이 멀어서 만민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의 복음사역을 방해하고 아예 죽여버리려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보복을 입게 되는 그것들입니다.

2)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는다 하는 것은 성문서 에스더에 기록되어 있는 부림절 사건과 관련되고 있습니다(9:19-32). 옛날 아말렉의 아각의(삼상15:8) 후손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제국 하만 재상이(3:1)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고서 차제에 제국 내에 살고 있는 모든 선민들을 일거에 살해하고자 획책합니다(3:6). 그래서 제비 뽑기’(부르) 하여 그해 12 13일을 거사일로 확정합니다(3:7). 그러나 그날이 불행하게도 그들의 제삿날이 되고 맙니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의 함정에 그들이 빠지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메시아를 죽이고 자신들이 영원히 땅에서 영화를 누리고자 획책했기 때문에 그것들 오히려 땅에서 하나님의 보복으로 지옥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34:17b);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는 대해서는 이사야가 이미 상세하게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9.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티끌은 유황이 되고,  땅은 붙는 역청이 되며, 10.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34:9-10).

4)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 심판을 받아 지옥과 같은 불못으로 변해버린 땅이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요컨대, 메시아를 죽이고 부활의 사건마저 외면했기에 그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천벌을 받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34:17c); 그들만 그러할까요? 그들의 전철을 따르고 있는 자들은 영원히 그곳에서 살게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하겠습니다(19:20, 20:14).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영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25:41, 46, 5:29).

셋째로,1. (반사막성, 半沙漠性 기후를 지니고 있는 가나안 남부 네게브와 같은) 광야와 메마른 땅(비가 내림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모래) 사막 (지형의 변화로 토지와 초지가 됨으로 말미암아)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식물이 광야와 사막에)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해상왕국인) 레바논의 영광 (초생달 지역의 산지인) 갈멜과 (그 남부의 비옥한 땅)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자신을 불모지에서 농경지로 변모하게 한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리로다(1:11-13, 22:1-2). 3. 너희(성도)(하늘의 권능을 부어 주시는 성령의 임재를 받아, 1:8)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40:7), 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약육강식의 세상을 심판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을 확고하게 가지라는 것임).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세상심판과 동시에 성도를 구원하여 주실 것임, 살전4:14-18). 5. 그때(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될 때, 19:9-10)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영적인 눈이 뜨이고 귀가 들리게 될 것임, 6:13, 11:5), 6.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메시아와 그의 사도가 성령의 권능으로 장애자의 발을 치유하여 줄 것이며, 5:8-9, 3:6-8),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메시아가 벙어리를 말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니, 9:32-33),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지하수가 터져 나올 것이며, 17:6) 사막에서 (지형의 변화가 발생하여)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뜨거운 사막과 메마른 광야가 변하여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좋은 토지와 목초지가 될 것이며, 1:11-13.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천지창조를 노래하고 있는 대목임), 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19:21-25, 메시아가 오시면 이스라엘과 앗수르 그리고 애굽 사이의 전쟁의 길이 복음을 전파하는 길이 되고 나아가서 인적교류와 평화로운 무역의 길로 바뀐다는 것임),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65:17-25, 21:1-8, 21-27). 우매한(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한 어리석은 자칭 의인을 말함, 7:30, 18:14)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9. 거기(새 예루살렘성 메시아의 나라, 11:4-9, 65:17-18)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21:27a),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21:27b),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66:20-22)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65:17-20)“(35:1-10);

(1)  먼저 본문 제1-2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시온의 메시아를 바라보는 자에게 임하는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막에 백합화가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뜻 보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바라보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앞장인 34장에 실려 있는 내용과 비교해보면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메시아를 외면하고 있는 에돔이나 헤롯왕가와 같은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보복에서 벗어나서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사야의 간구의 내용이면서 동시에 그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과연 그러한 내용이 어떻게 본문 가운데 절실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묵상을 통하여 깊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한번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a)광야 메마른 기뻐하며, (b)사막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35:1); 이사야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과 주변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동족들이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1)      하나, 광야 메마른 기뻐하며”(35:1a); 남쪽 유다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이사야의 표현과 같이 광야와 메마른 땅입니다. 헤브론 이남의 땅은 네게브 광야입니다. 그곳은 (, semi-) 사막성 기후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래보다는 흙이 많으므로 그냥 네게브 광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네게브는 목축을 주로 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헤브론 이북의 땅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밭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가 많지 아니하여 역시 메마른 지역이라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땅을 블레셋이 차지하고 있는 해안지역이나 북쪽 이스라엘의 해안지역 사론처럼 비옥한 들판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변화시켜줄 있는 방법이 2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기에 풍족하게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11:14, 5:24, 2:23). 봄에 이른 비가 내리면 발아가 가능하며 새싹들이 자라나게 됩니다. 여름에 늦은 비가 내리면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나 열매를 충실하게 맺을 수가 있습니다. 덕택에 가을 추수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는, 옛날 다윗대왕 시대의 이스라엘제국을 다시 한번 역사 가운데 실현시켜주는 것입니다(1:19-20, 49). 그러면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자신들의 비옥한 농산물을 가지고 다윗의 제국에 조공할 것입니다(60:5-9). 그와 같은 제국의 기쁨을 선민들이 다시 맛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내용은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희망하고 있는 그러한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적기에 충분한 비가 내려 풍년이 들고 다윗제국을 회복하여 조공을 얻는 차원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이어서 환경자체를 완전히 새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60:1-4, 65:17-25).

4)      , 사막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35:1b); 사람의 마음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환경 자체를 완전히 새것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사야는 사막을 백합화가 자라나는 땅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묘한 비유입니다.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선민들이 쉽게 이해할 있는 하나님의 가장 역사가 사막을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나마 목축이라도 있는 남쪽 광야를 벗어나게 되면 사막지대입니다. 그들은 목축을 하면서 사막을 만나게 되면 절망합니다. 사막을 지나 장미나 백합화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땅에 도달할 있기를 얼마나 희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5)      그러한 동족들의 염원을 알고 있는 이사야가 소원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메시아의 오심을 통하여 그들의 땅에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위해서는 영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발생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백성들의 마음 속에 뿌려지고 하나님신앙으로 자라나야만 합니다. 씨앗을 발아시킬 있는 마음 밭을 만들기 위해서는(13:18-24) 회개하고 메시아를 영접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3:2, 4:17, 1:12-14). 그리하면 에돔에 내리는 하나님의 보복을(34:9-17) 피할 수가 있으며 메마른 마음과 환경이 부드럽고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변화가 것입니다(35:1).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  둘째, 2절입니다;2. (a)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b)레바논 영광과 갈멜 사론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c)그것들이 여호와 영광, (d) 우리 하나님 아름다움 보리로다”(35:2); 선민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서 꿈꾸고 있는 이상향에 대하여 이사야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치 환상과 같은 본문의 미래가 도래한다는 예언입니다. 선민들이 시온의 송사(34:8b) 메시아의 죽으심과 부활을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책으로 받아들이느냐? 않느냐? 선택에 따라 황홀한 미래가 전개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헤매게 되느냐?(34:8a)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1)      또다른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할 있는”(35:1) 마지막 기회가 제공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대속의 죽으심을 외면하여 에돔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전락되고 있다고 한다면, 더이상 머뭇거려서는 안됩니다. 빨리 잘못된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만 합니다. 메시아를 구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다음과 같은 은혜가 임한다고 이사야가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2)      하나,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35:2a); 사막과 같은 마음, 메마른 마음이 변하여 생명을 잉태하고 싹을 띄우며 자라나게 하는 풍요로운 마음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성도들의 마음속에 임하고 있습니다(17:21). 결과 환경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많아지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들이 생명을 살리고 돌보게 되면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나라가 무성해지는 것입니다.

3)      , 레바논 영광과 갈멜 사론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35:2b); 그와 같은 변화를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익숙한 지명과 환경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영광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지중해무역으로 부국이 페니키아의 중심도시가 두로입니다. 오늘날 레바논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다로 뻗어 나가면서 잘살게 되는 영광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에 살던 사람들이 사막을 지나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과 같은 기적이 바로 선민들이 지중해 해변의 기름진 땅을 얻는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소유하고 있던 사론 들판이 그렇습니다. 풍요로운 땅이 욥바에서 갈멜 산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사론의 아름다움으로 변모한다고 하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4)      , 그것들이 여호와 영광”(35:2c); 세상에 누가 사막과 같은 마음을 생명을 살리는 풍요로운 마음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 누가 광야와 메마른 땅을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역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모든 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의한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 우리 하나님 아름다움 보리로다”(35:2d); 선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21:10)라는 용어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는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5)      선민만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여호와입니다. 그리고 선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방인의 군대를 무찌르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선민만의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라는 용어가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사야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계시를 받아 가장 먼저 동족인 선민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하고 있는 계시의 말씀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계시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피조물 전체의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65:17, 8:18-22).

6)      사실을 깨닫고 있는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을 말로 전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글로 적고 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의 ()선지서 가운데 이방인들에 대한 예언이 풍성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에는 우리 모든 피조물들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35:2d)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아름다움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주장 그대로 우리 모두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신 생명살림의 역사를 바라보고 찬양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사야가 전달하고 있는 세상에 비추어보면 비로서 본문의 다음 구절들이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됩니다;

(4)   셋째, 3절입니다;3. (a)너희는 약한 강하게 하며, (b)떨리는 무릎 굳게 하며”(35:3); 살기다툼이 치열한 세상, 특히 약육강식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건하게 해야만 한다고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 말씀인지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1)      하나, 3. 너희는 약한 강하게 하며”(35:3a); 하나님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를 생각해보면 그런지 금방 있습니다. 사람들이 창조주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19:14). 그런데 노아처럼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구원의 방주를 건립하고 있는 것은 세상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게 되는 얼빠진 짓이며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막심한 행동입니다(6:9-16, 24:38-39). 더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바쳐서 구원의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외롭고 힘이 빠지는 노릇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을 향하여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약해진 마음과 손을 강하게 다잡으라는 것입니다”(35:3a 의역). 이유는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으로 현장을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 떨리는 무릎 굳게 하며”(35:3b); 세상의 관습을 쫓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면 이웃들이 결코 좋은 시선으로 보아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브람이 가나안의 중심 세겜에서 당한 일과 같습니다(12:6-7). 그곳에서 아브람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했을 때에 광경을 처음 보게 되는 원주민들의 태도가 이상합니다. 자신들의 종교와 전통을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이주민 아브람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방 가나안 땅에 여호와신앙을 전파하고자 들어왔던 선지자 아브람의 무릎이 덜덜 떨리고 있습니다. 그는 급히 짐을 챙겨서 사람들이 별로 살고 있지 아니한 땅을 찾아 남하하고 있습니다(12:8-9). 그런데 이사야는 성도들에게 아브람처럼 도망치지 말고 떨리는 무릎을 굳건히 하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35:3b). 이유는 메시아께서 오실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32:1).

(5)   넷째, 4절입니다; “4. (a)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b)두려워하지 말라, (c)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d)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35:4);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과 영생보다는 현세적인 삶과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호와신앙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아니한 일입니다. 가지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하나는, 자신들의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합니다. 그에 따라 사회적인 불이익이 찾아옵니다. 하나는,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게 됩니다.

1)      여기서 이사야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장차 땅에 오시는 메시아에 관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전통적인 유대인사회가 결코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선민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대교의 교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박해를 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지만 고난과 환난을 극복해야만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성취될 있습니다;

2)      따라서 이사야는 메시아를 앙망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악한 자들을 겁내지 말고 하나님신앙을 굳건히 하세요.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혼을 소멸시킬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세요”(35:4ab 의역) 예언을 통하여 크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10:28).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굳건히 여호와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5:4). 찾아오시는 이유가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해자들을 징치하기 위한 것입니다(35:4c). 하나는, 온전한 구원을 베풀기 위한 것입니다(35:4d).

(6)   다섯째, 5절입니다; “5. (a)그때 맹인의 밝을 것이며, (b) 듣는 사람의 열릴 것이며”(35:5); 이사야는 처음으로 환상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선지자로 세움받게 되었을 때에 참으로 이상한 계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6:9-10).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동족들인 유대인들은 믿음의 눈과 영적인 귀가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땅에 오시는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배척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그들의 땅이 황폐해지고 세상에 유민이 되어 떠돌게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사야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2)      하나님의 답변이 다음과 같습니다; “13. 중에 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6:13). 유대인들은 그들의 유대교에 의하여 자신들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3)      메시아의 사역의 뒤를 잇고 있는 제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것입니다. 성도들이 히브리경전을 새로이 해석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땅을 새롭게 할 때에 유대인들의 구원도 이루어진다고 하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유대인들처럼 자신들의 사상과 교리가 메시아의 만민구원의 복음보다 의롭다고 생각하는 민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4)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사상으로 구원을 얻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믿음의 눈이 어둡고 영적인 귀가 막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아의 복음사역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다음과 같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5. 그때 맹인의 밝을 것이며, 듣는 사람의 열릴 것이며”(35:5).

5)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의 예언에 대하여 훗날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응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5. 맹인이 보며,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11:5).

(7)   여섯째, 6절입니다; “6. (a)그때에 저는 사슴같이 것이며, (b) 못하는 혀는 노래하리니, (c)이는 광야에서 솟겠고, (d)사막에서 시내 흐를 것임이라”(35:6); 자신의 인생 가운데 메시아를 진심으로 만난 자는 마음과 행동에 변화가 발생합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말씀의 뜻을 구원의 복음으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영적인 은혜입니다;

1)      구체적으로, 메시아의 오심과 죽으심이 모두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동안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하였음을 회개하게 되면 3가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더불어 자신의 죄와 육신적인 삶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6:4a). ,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자신에게 영적인 삶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6:4b). ,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의 은혜를 입게 되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게 되는 순간, 놀랍게도 하나님의 영이 성령님으로 강림하여 성도에게 임재하시게 됩니다(8:14-15). 그것이 크나큰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2)      성도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8:8-15) 마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12:1-4, 19:20-22, 29, 20:17-18), 영과 육이 강건해지고(35:5) 약한 곳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시며(35:6a&b) 환경을 변화시켜 주시는(35:6c&d) 완벽한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사실을 위와 같이 이사야가 6절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7-10절에서 이사야는 지옥과 같은 세상이 에덴동산, 예루살렘성과 같이 회복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데 점을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8)   일곱째, 7절입니다; “7. (a)뜨거운 사막 변하여 것이며, (b)메마른 변하여 원천 것이며, (c)승냥이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 것이며”(35:7); 지옥과 같은 땅이 놀랍게 변화하는 모습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7. 뜨거운 사막 변하여 것이”(35:7a); 일반적으로 사막은 낮시간에는 무척 뜨겁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낮시간만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뜨거운 사막 밤이 되어도 무척 뜨거운 곳입니다. 꺼지지 아니하는 불이 붙어 있는 지옥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4:9-10, 16:24).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연못이나 호수가 되고 있습니다. 호수는 예루살렘성에 등장하고 있는 바로 호수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33:21). 따라서 이사야는 지옥과 같은 세상이 천국과 같은 세상으로 바뀌는 기적이 장차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기적을 창출할 수가 있을까요? 그의 예언이 다음 단락에서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2)      , 메마른 변하여 원천 것이며”(35:7b); 메마른 땅과 같은 인생이 생명의 통로가 있는 복을 얻어야만 합니다. 방법은 생명의 창조주를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1-2),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b).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함을 받아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하면 말씀의 인도함을 실수 없이 받을 수가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애를 쫓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3)      그렇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게 되면 생명의 창조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세상에 전해줄 있는 복의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은 메마른 인생이 복의 원천에 잠겨 있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생명의 능력으로 지옥과 같은  땅이 에덴동산으로 변화되는 즐거움입니다. 훗날 사도 요한은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생수의 강물이 바로 생명수입니다(4:14, 22:1). 생명수를 마시고 강변의 비옥한 토양에서 생명나무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나무의 열매가 영생을 주며 잎사귀가 만국을 치유하고 있습니다(22:2). 조금 풀이를 해봅니다;

4)      메마른 땅이 기름진 땅으로 변할 있는 것은 창조주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메마른 심정이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할 있는 기름진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하면 사회와 환경도 생명을 살리고 돌볼 있는 곳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메시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가 남은 평생을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리하면 과정 중에 하나님나라가 확장되어 나갑니다.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근원과 통로 있는 축복이(12:2-3) 성도로 말미암아 땅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5)      , 승냥이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 것이며”(35:7c); 승냥이는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 먹고서 생존하는 짐승입니다. 그러므로 승냥이가 살고 있는 곳은 생명을 살리고 돌볼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메시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장소가 변화하게 됩니다. 승냥이가 살고 있던 지역이 풀과 갈대와 부들’(갈대와 비슷하지만 키가 작고 부드러운 식물) 생산하는 지역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은 가축의 먹이가 됩니다(41:2). 그러면 사람들이 목축을 하면서 풍요를 누리고 삶의 기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9)   여덟째, 8절입니다; “8. (a)거기에 대로 있어 길을 거룩한 이라 일컫는 되리니, (b)깨끗하지 못한 지나가지 못하겠고, (c)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것이라. (d)우매한 행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35:8); 이사야는 여호와신앙이 회복되면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교류가 증진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을 대로가 회복이 되는 으로(19:23), 그러하지 못한 경우를 대로가 끊긴 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33:8). 길은 생명을 살릴 있는 복음의 대로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사야가 거룩한 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5:8a).

1)       거룩한 언급함으로써 이사야 예언은 어느 사이에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길을 걸어서 천국에 들어갈 있는 사람들의 자격에 대하여 훗날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이나 가증한 또는 거짓말하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들어가리라”(21:26-27);

2)      이사야의 본문과 대조를 해보게 되면 요한계시록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깨끗하지 못한 지나가지 못하겠고”(35:8b);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속된 것을 버리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      ,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것이라”(35:8c);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피가 자신을 위한 사죄의 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물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가는 자가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고 천국에 입성하게 것입니다.

4)      , 우매한 행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35:8d);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긴 자들이 가증한 사람들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좁은 길입니다. 자신의 희생을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무릅쓰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가는 길을 쫓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증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우상을 섬기고자 합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은 마치 알라딘의 램프요정 지니 같아서 주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도구로서의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5)      그런데 우상이 과연 지니처럼 마법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데 우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의 비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점에 대한 이사야의 날카로운 지적이 다음과 같습니다; “17. 나머지로 신상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 도다”(44:17). 피조물인 사람이 만든 조각품에 불과한데 우상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겠습니까?

6)      그래서 이사야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사르고 또한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 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44:19-20). 능력도 없는 가증한 물건을 만들어 구원주라고 섬기고 있는 이유는 쉽게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허탄한 마음에 미혹된 결과라는 지적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우매한 자의 잘못된 처사인 것입니다.

(10)      아홉째, 9절입니다; “9. (a)거기에는 사자 없고 사나운 짐승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b)오직 구속함을 받은 그리로 행할 것이며”(35:9); 사도 베드로의 표현에 따르면, 성도를 집어 삼키려고 하는 사자가 사탄과 악한 영들입니다(벧전5:8). 사도 요한은 그들의 사주를 받고서 성도들을 핍박하는 권력자들을 짐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13:4-8). 그와 같은 사탄과 악한 영들 그리고 짐승들은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35:9a). 그러면 누가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만 들어갈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5:9b).

(11)      열째, 10절입니다; “10. (a) 여호와의 속량(贖良, 천민의 신세를 면하고 양민이 되는 )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b) 노래하며 시온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喜樂, 기쁨과 즐거움) 띠고, (c)기쁨과 즐거움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35:10); 흔히 대선지서 이사야를 작은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뿐만 아니라 메시아의 구원사역의 내용과 하나님의 영의 강림과 역사하심의 내용이 예언으로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특징을 특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0. 여호와의 속량(贖良, 천민의 신세를 면하고 양민이 되는 )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35:10a); 구원의 계획이 본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있도록 구원하려는 계획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은혜로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하나님께 돌아올 있게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2)      , 노래하며 시온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喜樂, 기쁨과 즐거움) 띠고”(35:10b);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며 앙망하고 있던 사람들이 시온을 바라보고서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11:13). 그것은 영생을 주는 구원이 시온에서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메시아의 오심과 대속의 죽으심이 시온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인류의 역사 가운데 성취하는 장소가 예루살렘 골고다언덕 십자가입니다(27:33). 그리고 언덕에 있는 바위굴 무덤입니다(27:60). 무덤에서 죽은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20:16-29, 고전15:4). 구원성취의 기쁨과 부활의 즐거움이 함께하고 있는 시온을 바라보고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의 주인 구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3)      , 기쁨과 즐거움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35:10c); 메시아를 남은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됨으로써 성도들이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24:49, 1:8, 2:1-4). 그때부터 남은 인생 가운데 구원의 기쁨과 영생의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처럼 부활을 얻을 있다는 언약을 믿고서 살아가게 됩니다(3:10-11).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성도들은 죽음의 슬픔과 죄의식의 탄식을 물리치고서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일꾼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8:1-4, 34-39).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시면 모두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다가 결국은 세계대전으로 함께 멸망하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26:52b).

그러므로 종말심판 인류와 살아 있는 모든 생물과 땅과 하늘까지 모두 멸망시킬 있는 비극적인 죽음의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유일한 구원주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메시아의 대속의 제사가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흡족하게 만족시키는 역사가 세상에 임하게 것입니다.

사실을 믿으며 남은 인생을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이 성도들인데 장차 그들이 땅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세상을 구원하는 성도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있기를 고대하면서 이사야가 본문의 예언을 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독생자를 땅에 메시아로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피조물의 잘못과 허물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감당하시기 위하여 아들 메시아가 시온(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게 되는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입니다. 이사야는 시온에서 메시아의 희생이 있게 되면, 구원을 바라보는 자와 외면하는 자가 발생할 것이며, 그들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만약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땅에 다시 자리를 잡은 에돔 족속의 헤롯 왕가처럼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는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복을 받게 것입니다. 결과는 헤롯의 왕가가 망하듯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그들의 국가가 망하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아름다운 환경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2)   그들은 마치 지옥불 속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는 그들의 삶의 아비규환과 그들의 사회와 환경의 황폐함에 대하여 상세하게 상징적인 수법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깊이 묵상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지옥과 같은 세상을 만들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상을 함께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4)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장차 메시아가 그들의 땅에 오신다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서 영생이냐 영벌이냐가 결정된다고 하는 사실을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5)   이사야의 예언을 듣는 동족들이 신빙성을 의심할 같아서 이사야가 가지 이야기를 본문에서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므로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짝을 정경에서 찾아서 대조해보면 진위여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서로 진리로 짝을 이루어 자증(自證, self-verification) 해주고 있으므로 사실에 유의하여 면밀하게 성경공부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6)   좋은 예로써 이사야는 제비 뽑기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훗날 에스더 시대의 이야기를 200여년 전에 이사야가 미리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 anti-)유대세력들이 페르시아제국내의 유대인들을 일시에 말살시키려고 제비를 뽑아 거사일(擧事日) 확정하였지만 그날에 도리어 자신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부림절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보복으로 땅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를 외면한 에돔 출신 헤롯 왕가의 운명과 같다는 이사야의 지적이라고 하겠습니다.

(7)   이사야의 설명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동일한 은혜와 심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옛날의 역사와 사건이라고 하여 결코 낡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판례와 같아서 동일한 사례를 만나게 되면, 법원칙이 다시 부활하여 생명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8)   34장의 이사야의 예언은 끔찍합니다. 메시아를 죽음의 형장으로 보내고 대속의 은혜를 외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보복하심이 참혹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마치 지옥의 시련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훗날의 역사 가운데 실제로 메시아를 배척했던 예루살렘의 유대교지도자들과 헤롯 왕가에 엄청난 시련이 닥치고 있습니다. 주후 70년에 로마군대가 침입하여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24:2).

(9)   그렇지만 35장이 시작되자마자 희망과 기쁨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고 사막에 꽃이 피는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광야와 같은 인생,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으로 전파되는 새로운 시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말씀 가운데에는 메시아를 배척하여 사망의 질곡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다시 회개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는 뜻이 강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결론은 우리 피조물들은 모든 생명을 구원하고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아름다움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는 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그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영광을 찬양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