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22 과 (10:32-52) <OBS2-22>(손진길 작성)
[Q1]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갈 길을 정하는 선생과 아직은 깨닫지 못하지만 결국은 그 길을 쫓아가야 될 제자들”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부해보자. 먼저 예수를 잡아죽이려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갈 길을 정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이 나타낸 반응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l 한 마디로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음(10:32). 그 이유는 첫째, 앞장서서 사지(死地)를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놀랐기 때문임. 둘째, 그 여파가 자신들에게도 미칠 것만 같아서 두려워한 것임. 셋째, 죽음을 향해 가는 선생의 모습은 승리를 향해 가야 될 메시아의 모습과 달라서 놀란 것임.
l 그와 같은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사람이란 승리가 예견되면 모두들 기뻐하지만 그 대신에 실패가 뻔할 것 같으면 곧 다가올 환난에 대한 두려움에 미리 사로잡히는 존재이기 때문임.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이 축복의 길이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죽음이 통과의례(通過儀禮, 통과해야만 하는 형식이나 과정)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부자청년처럼 버려야 될 경우라면 놀라고 두려워하며 머뭇거리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똑 같은 사람의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음.
[Q2]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을 세 번째로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가르치자 제자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낸 반응은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l 제자들의 반응은 당장 맞이할 스승의 죽음보다는 부활 후에 있을 메시아 왕국에서의 논공행상(論功行賞, 공로를 평가하여 상급을 베푸는 것)에서 더 높은 자리 차지하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10:37,41). 요컨대, 그들은 죽음을 앞둔 인간 예수의 고통과 두려움을 외면한 것임.
l 아무리 사람들의 심성이 고통을 싫어하고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제자들의 반응은 몰염치한 것임. 그 이유는 지난 3년6개월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지낸 긴 세월이 사제지간(師弟之間, 스승과 제자 사이)에 남아 있기 때문임. 그리고 아무리 부활이 좋다고 하더라도 십자가 처형은 참혹한 극형(極刑, 극악한 형벌)인 것임. 십자가에서 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나 끔찍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로마 제국이 그들의 시민에게는 결코 적용하지 아니하는 형벌(刑罰, 형을 살리고 처벌함)이었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당할 고통을 제자들이 마치 남의 일인 양 외면하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배신인 것임.
[Q3] 제자들의 몰염치한 관심사항에 대하여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인가?
l 부활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은 성부 하나님의 소관이라고 정확하게 밝히심 (마20:23). 그리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섬김의 잔과 목숨 바친 대속의 세례(막10:38, 45) 때문이지 결코 높은 자리나 권세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심(막10:38, 42-43).
l 따라서 죽음 없는 부활이 없듯이 제자들도 결국 예수님이 마신 잔과 십자가 세례를 받게 될 것임을 예언하심(10:39). 요컨대, 초대교회시대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말미암아 그 공로를 인정받고서 하나님 나라에서 면류관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임.
[Q4]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라고 부른 것은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관심사와 비교할 때 무엇이 다른가?
l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디매오의 소원은 진솔하고 그의 믿음은 소박한 것이었음. 그의 믿음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10:47-48)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그의 소원은 소경신세를 면하기를 원한 것임(10:51). 그런데 바디매오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은혜까지 주시는 예수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예수님을 쫓아가서 제자가 된 것임(막10:52). 그러므로 바디매오의 믿음은 첫째, 거지신세 면할 금과 은(행3:6)이나 “거지근성”에 입각한 부귀영화, 출세와 만사형통의 구걸이 아님. 둘째,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식”의 서원주의나 율법을 강조하는 의인의 축복이 아님. 셋째, 다윗 자손이 세울 제국의 도래도 그의 관심사가 아닌 것임.
l 그렇지만 열두 제자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라나선 동기가 바디매오와 다름. 그들은 메시아를 만나서 선지자가 되고 다윗 제국이 건설되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했던 것임(마20:24).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관심사는 메시아가 나타나서 자신들의 유대교를 적극 뒷받침해주고 다윗 제국을 재건하여 온 세상에 선민의 위세를 드높여주기를 원한 것임.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관심사와 열두 제자의 믿음은 소박한 바디매오의 관심사 및 믿음과 묘하게도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임.
[Q5] 믿음으로 구원받은 인생이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대 원칙은 무엇인가?
l 예수님이 공생애 가운데 많은 병자를 치료하시면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심(막10:52, 마9:22).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그냥 기뻐하면서 떠나가버린 경우와 그렇지 아니한 경우가 나타나고 있음. 예를 들면, 혈루증 여인은(막5:34) 그냥 가버렸음. 그러나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려둔 채 예수님을 찾았고 눈뜨자마자 그대로 예수님을 좇아갔음(10:52).
l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의 성령의 역사는 남은 인생길에서 예수님을 쫓아가는 자들의 삶을 기술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음. 그래서 사도행전이 유일한 신약의 역사책으로 남아 있음. 같은 맥락에서 복음서를 살펴보면, 수없이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도움으로 치료도 받고 구원도 얻었지만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던 소수만이 성경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음. 그 드문 이름 중의 하나가 바로 바디매오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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