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23 과 (11:1-33) <OBS2-23>(손진길 작성)
[Q1] 예루살렘 입성 직전 동쪽 3km지점에 위치한 베다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상상 밖의 지시를 하시며 예루살렘을 다녀온 다음날 다시 입성하기 전에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또한 상식 밖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바 그 주된 초점(Focus)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l 인간의 소유권도 그리고 인생으로 주어진 모든 시간도 오로지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만민구원 사역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도록 하고 있음. 구체적으로, “주가 쓰시겠다”하라고 말하여(막11:3) 어린 나귀 한 마리를 예수님이 징발하고 있음. 그 다음에는 제철도 아닌데 예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고 있지 아니하다고 책망하면서 무화과 나무를 처벌하고 있음(막11:12-14, 20-21).
l 공생애 마지막 예루살렘입성을 위하여 예수님이 사용하고자 한 것은 어린 나귀 한 마리와 무화과 열매 조금뿐이었음. 그런데 어린 나귀는 준비가 되었으나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제철이 아니라 준비가 안되고 있었음. 그것을 보시고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임(막11:12-14). 그와 같은 비상식적인 행동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하겠음; “계절을 쫓아 인간에게 주어지고 있는 인생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영적인 과실을 맺는데 전적으로 사용되어야 마땅하다는 강력한 교훈”을 담고 있음.
l 항상 준비가 된 인생은 미리 준비가 된 나귀처럼 주민들의 “호산나 열창” 환영분위기를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임. 그러나 영적인 추수를 할 수 있는 준비가 안되고 자연적인 계절의 순환만을 즐기고 있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게으른 종은 저주를 받게 될 것임(11:8-10,14,21). 그것은 “달란트의 비유”와 동일한 시각임(마25:15-30).
[Q2] ‘스가랴 제9장 제9절’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서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누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는가?
l 나귀의 소유권을 가진 주인이 창조주의 목적을 위하여 그 징발에 응했기 때문임. 그 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음;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6). 그것은 창세기에 기록되고 있는 리브가의 출가와 동일함;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창24:58). 그와 같은 믿음의 화답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임.
l 그러므로,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살전5:20)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관찰하면서(마24:32-36) 항상 마음의 준비와 물질적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임. 결국, 하나님이 이미 작정하신 일이기에 이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것임. 요컨대, 하나님의 뜻과 그 이루시는 때에 인간의 뜻과 그 시기를 맞추어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요체가 됨.
[Q3] 반대로, 무화과나무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l 무화과나무는 자연의 때를 따를 뿐임(11:13). 평상시에는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 것임.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이 있게 되면 영적인 초자연적 의지가 우선하게 됨(11:14,22).
l 인간은 평상시에는 자연의 법칙과 사회적 상식을 믿고 살아가고 있으나 하나님의 뜻이 특별하게 개입된 때에는 상식적 판단과 자연적 순리만을 고집할 수는 없음(창24:50, 막11:22-24).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그 때를 잘 관찰하고서 그 뜻에 맞추어서 인생을 재조정하여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성도들의 청지기 된 자세인 것임.
[Q4] 하나님의 의지가 자연에 대해서는 100% 우선하여 관철되지만 인간과 관련하여서는 인간의 동의나 전제(前提) 행위에 기초하여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는 무엇인가?
l 대표적인 경우가 다음과 같음; 첫째, 혐의를 용서한 후에 기도를 해야 응답이 있음(11:25). 둘째, 축복과 저주의 시금석이 된 아브라함임. 즉, 아브라함 대접이 곧 하나님 대접이 되는 것임(창12:3). 셋째, 어린아이를 사람 대접하는 것이 예수님 대접에 해당된다는 것임(막9:37).
l 요컨대,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과 인간이 다 똑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그것들을 아끼고 제 몸같이 돌보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방법이라는 것임(창1:26-30, 레19:18). 그것이 모든 하나님 말씀의 취지인 대강령이며(막12:30-31) 하나님이 창조하신 “심히 좋은 세상”을 회복하는 방법인 것임(창1:31).
[Q5]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과 끝을 성전청결(요2:14, 눅19:45)에 초점(Focus)을 맞추고 있는 바 결국,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누구의 성전을 깨끗게 하신 것인가?
l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마24:2)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지면서(마27:51)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믿는 자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임하게 된 것임(행2:1-4). 그와 같은 새 언약의 시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직접 예배하는 시대가 메시아인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가 있음(요4:23-24). 그 일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성취된 것임.
l 구체적으로 관련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①성소휘장의 갈라짐(막15:38). ②만민의 기도하는 집 회복(11:17). ③몸이 바로 성전이 됨(고전6:19). ④하나님의 권세가 각 사람에게 세례로서 성령으로 임함(11:30, 행2:3) 등임. 따라서, 이제 성전청결의 대상인 장소(Locus)는 각 교회와 개인이라고 말할 수 있음.
'마가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제25과(손진길 작성) (0) | 2021.01.10 |
---|---|
마가복음 제24과(손진길 작성) (0) | 2021.01.09 |
마가복음 제22과(손진길 작성) (0) | 2021.01.07 |
마가복음 제21과(손진길 작성) (0) | 2021.01.06 |
마가복음 제20과(손진길 작성) (0) | 2021.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