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마가복음 제20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 5. 16:34

마가복음 제 20 (9:33-50) <OBS2-20>(손진길 작성)

 

[Q1] 예수님 따라 구도(求道)의 길을 나선 제자들에게조차 발견되는 “첫째가 되고자 하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것을 다루시는 예수님의 처방은 어떠한가?

l  첫째가 되고자 하는 마음의 정체는 성장하고 발전하여 만물을 다스리도록 축복받은 바 있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성임(1:28). 그렇지만 그 심성을 그대로 자연상태로 내버려두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T. Hobbs 용어)으로 발휘되어 끊임없는 분쟁을 유발하게 되는 것임(9:34).

l  이에 따라 그 본성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처방의 핵심은 “끝자리에 서서 뒤쳐져있는 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서 그것을 어루만져주는 섬김의 자세를 배우라”라는 것임(9:35). 그것을 오늘 날 섬김의 리더쉽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음.

 

 [Q2] 가부장적인 고대 유대사회(남성위주, 어른중심)에서 소외된 여자와 어린이들에 대한 마가복음의 기록은 어떻게 바뀌고 있으며 9:37’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l  마가복음의 기록은 소외(6:44)에서 참여(8:9, 9:37, 10:5-9)바뀌고 있음. 그것은 소외된 자도 이제는 사람 대접을 해주라는 것임.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도 똑 같은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기 때문임.

l  예수님은 소외된 자들을 사람 대접해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 대접해주는 것이라고 첨언하고 있음(9:37). 그것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계명이 하나로 통일되는 방안인 것임(12:30-31).

l  환언하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소외된 자 없이 인간을 모두 사람 대접해 주는 것임. 그것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예수님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임. 참고로, 김성일 장로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것은 예수님 이름으로 사람대접해주는 일에 쓰여질 수 있을 것임.

 

 [Q3] 섬김의 방법으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은 무엇인가?

l  예수님 당시에 어떤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있으나 예수님의 정식 제자들과 의견을 달리하고 있었음(9:38).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복음을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자들이 아니면 이견자(異見者)라도 포용하는 것이 섬김의 자세라는 것임(9:39-40).

l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두 번째 방법은 “이견(異見)의 용납”임. 오늘 날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자신들의 교단과 복음에 대한 해석이 다소 다르다고 하여 이단시하고 있는 태도는 본문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여지가 있다고 하겠음.

 

[Q4] 첫째가 되고자 하는 마음, 즉 출세욕, 명예욕, 지배욕 때문에 빚어지는 분쟁을 해소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자기발전의 동인으로 만들어 가시는 예수님의 대안과 처방을 모두 찾아서 열거해보면 무엇 무엇인가?

l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인간관계를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음; ①사람 대접해 주라(9:37). ②예수님 이름이면 이견자라도 용납하라(9:39). ③그리하여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라(9:41). ④믿음의 본이 되라. 그리하여 실족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9:42). ⑤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라(9:43-47). ⑥소금의 사명을 중심으로 서로 합력(合力)하라(9:50). ⑦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다시 지옥 불로 연단하고 정제시킴을 기억하라(9:49) 등임.

l  위의 여러 가지 방안을 하나로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나와 너와 우리 모두를 똑같이 창조하셨다는 것임. 그러므로 동일한 권리를 향유하고 의무를 행하는 자로 서로 대접하는 것이 옳다는 것임. 한 마디로 타인도 자신과 똑같이 인간대접을 해주라는 것임. 그것이 피조물과 피조 세계를 만드신 창조주의 뜻을 존중하는 태도라는 것임(삼상2:30, 9:37, 7:12).

 

[Q5] 첫째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뭇사람의 끝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것(9:35)이라는 역설적인 방법의 삶인데 예수님은 만물의 주인, 만인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마지막 끝자리는 어디였는가?

l  예수님은 한없는 겸손과 온유의 삶을 살아오셨음(11:28-30, 2:5-8). 그리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칼 대신 십자가를 선택하셨음(26:52-54).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신 것만도 비참한 일인데 다시 죄인이 되시고 짐승처럼 저주스러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것임. 그러므로 예수님이 서신 가장 밑바닥은 십자가의 자리이며 그 다음에는 땅 속에 있는 무덤 곧 음부의 세계인 것임.

l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음부의 세력을 깨부수고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 것임. 그리하여 하늘나라 보좌에서는 하나님과 어린양이 함께 찬양을 받게 된 것임(4:2-6, 5:6-8). 다시 한번 살펴보면, 만민과 만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없는 겸손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고 십자가 상에서 짐승취급을 받고 음부의 세력에 버려지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곳에서부터 살리는 이의 능력이 역사한 것임(8:11). 그러므로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의 역사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인 것임.

l  비근한 사례로서는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경우가 그러함. 요셉은 감옥살이까지 하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의 생명을 구하고 애굽 주변국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임. 한 마디로, 만민구원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행적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 창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인 것임(5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