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19 과 (9:14-32) <OBS2-19>(손진길 작성)
[Q1] 믿음의 크기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의 정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의 경우와 제자들의 경우 그 믿음의 크기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l 믿음의 크고 작음은 “할 수 있거든”의 믿음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믿음의 차이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음(막9:23). 그것은 창조주의 의도와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자(예수님)와 그 이해가 부족한 자(제자들)의 차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음.
l 그런데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100%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되면, 그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언제 어떤 방법으로 구원해 주실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명백한 의도와 계획을 쉽게 파악할 수가 없어서 심히 답답한 것임. 따라서 구원과 영생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고히 하고서 남은 생을 믿음으로 계속 전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습관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임(막14:39).
l 기본적으로, 문제해결의 방법과 대안제시에 있어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를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로 함부로 재단할 수가 없음(사55:8-9).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로 그만 옳다고 판단하고서 함부로 행하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그 책임을 무엄하게도 하나님에게 전가시키는 행태가 심한 것임. 따지고 보면, 본래 “거룩하다”는 “성(聖)”이란 단어의 뜻이 “자신의 왕(王)에게 먼저 입으로 묻고서(口) 그 귀로 똑똑히 들은 바를(耳) 행한다”는 의미의 합성어라고 할 수 있음.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묻고서 그 대답을 영적으로 받아서 행한 것이(요8:26) 아니면 완전한 거룩함을 이루는 해결 방안이 못 되는 것임. 한 마디로, 그것은 믿음의 궤도에서도 이탈하고 있는 것임.
[Q2] 구체적인 사례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도파악은 어떻게 가능한가?
l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의도라는 Pipe Line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음.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을 힘입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함.
l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 역사의 방향을 알게 해주는 말씀공부와 성도들의 구체적인 물음인 기도를 통하여 파악되어져 나감(막9:29).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사례별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답을 얻어서 행하는 것이라고 손쉽게 정의할 수 있을 것임.
[Q3]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다 하더라도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데 있어서는 여전히 자주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데 그러한 경우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기도의 형태는 여기서 무엇이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l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9:24)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는 사도 바울의 진술과 같은 맥락임. 그와 같은 기도는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잘 알고 있으므로 “은혜와 눈물” 그리고 영적 치료(Spiritual healing)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음.
l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뜻과 능력을 의지하여 그대로 행하며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의도대로 구원의 능력이 크게 나타날 것임(막9:25-27). 그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위와 같이 진단하고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믿음생활의 기본인 것임. 또한 그것이 진솔하고 올바른 기도의 핵심인 것임.
[Q4] 결국, 기독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그 약속을 깨달아 온전히 믿고서 그 믿음대로 살 수 있도록 기도를 통하여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함으로써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의도대로 만민의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나는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음. 그러므로 타 종교와는 기도의 형태에 있어서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l 다음과 같은 특징이 그 차이를 말해주고 있음; 첫째로, 명상(meditation) 보다는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묵상하는 기도임(contemplation). 둘째로, 계시를 찾기보다는 이미 주신 계시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올바로 적용하기 위하여 그 뜻을 정확하게 구하는 기도임. 셋째로, 중언부언하기 보다는 깨달은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구하는 기도임(고전14:19).
l 한 마디로, 기독교는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임. 창조주 하나님은 인격적인 유일신인데 그 이유는 일찍이 믿음의 조상들과 대화를 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며(창18:1, 22, 33, 단10:16-21)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서 인간과 함께 사시면서 인간의 일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임.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인간을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하는 종교인 것임(계3:20).
[Q5]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두 번째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동기와 이유는 무엇인가?
l 자신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미리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죽음이기에 인간의 몸으로 그와 같은 극형을 감당하기가 심히 난감했다고 볼 수 있음.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대속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 매어 달렸다고 하겠음(막14:35-36). 그러나 그 결과는 동일했음. 복음서는 그와 같은 인자 예수의 인간적 갈등과 기도결과의 거듭된 동일성을 잘 보여주고 있음(요12:27-28, 33). 기도를 여러 번했지만 그 결과가 똑같이 주어지기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그 결과의 동일성을 거듭 확인해 준 것으로 일단 볼 수 있음.
l 다음으로 예수님은 충격적인 예언을 거듭 확인해줌으로써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재차 당부한 것으로 볼 수 있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부활 후 제자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한 반복된 학습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임. 그렇지만 거듭된 예언의 확인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을 당하신다는 예수님의 예언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역시 불가능했음(막9:32). 그 이유는 제자들이 여전히 다윗 대왕의 후계자로 오시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그 마음 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임.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하여 시온의 영광을 온 사방에 떨쳐야 하는 자가 메시아인 것임. 그런데 메시아로 믿고 있는 스승 예수가 재차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믿을 수도 없고 또한 승복할 수도 없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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