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장자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정신개조에 나서시다”(출15:1-27)
설교일; 주후 2025년 6월 2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4년 12월 28일 토요일 작성)
출애굽기 제15장의 구성은 제1절부터 제21절까지를 살펴보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홍해의 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놀라운 승리를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구원과 승리의 노래가 다음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애굽 군대의 추격으로 홍해 가에서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그 사이에 마른 길을 내신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을 모세가 찬양하고 있습니다(출15:8-9, 13-18).
또 하나는, 마른 길을 건너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바로의 정예병을 여호와께서 저지하면서 모세를 통하여 홍해의 바다물을 다시 합쳐서 전부 수장시켜 버리십니다(출15:3-7, 10-12, 19). 그와 같은 여호와의 놀라운 승리의 모습을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이 백성들과 함께 춤추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출15:1-2, 20-21).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러한 여호와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와 바로의 추격군대를 완전히 쳐부순 승리로 말미암아 다시는 세상의 노예로 살지 아니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와를 섬기면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들의 여호와 찬양은 무척 뜨겁고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그 점을 모세가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15:1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영원한 구원을 얻어서(요14:1-3) 이제는 여호와의 백성 답게 거룩하게 살아가게 될 것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마5:44-48).
그러나 제22절부터 제27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 마라에서의 백성들의 원망과 엘림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의 섭리를 바라보게 되면 홍해를 건넨 모세의 여호와 찬양은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창조주 여호와의 전능하신 구원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총 진군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광야에서 물이 떨어지면 여호와를 원망하면서 지도자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출15:22-24). 양식이 떨어지게 되자 그 불평과 불만은 절정을 치닫게 됩니다(출16:2-3).
되돌아보면, 100년 이상 애굽의 고센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출애굽의 해방을 선물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애굽인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추격해오고 있는 바로의 군대를 몰살하기 위하여 홍해의 기적을 일으키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한 사실을 반추한다고 하면 광야에서 샘물을 찾아내게 하고(창16:7, 21:19) 먹거리를 제공하는 역사는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왕상19:6-8). 그러므로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과 전능하신 구원의 능력을 기억하고서 백성들이 진정으로 믿음으로 간구하였다고 한다면 출애굽한 그해에 그들은 넉넉하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출13:17 반대해석).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같이 마치 부모에게 젖을 달라 또는 먹을 것을 달라고 수시로 떼를 쓰는 미숙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세상적인 어려움을 해결하여 주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인식과 믿음이 성숙되어 있지 못한 것입니다(출15:24-25);
그렇다고 하면 언제 그러한 성숙한 믿음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선민 이스라엘의 긴 역사 가운데 선민의 정통성을 자랑하고 있던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주전 586년경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의 내침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절망적인 역사를 경험하면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마련하여 주시는 완전한 구원의 시대를 새언약의 시대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3).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출애굽 당시에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언약을 맺었지만(출19:4-6) 선민 이스라엘이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이방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여호와의 뜻을 결코 실천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렘31:32, 마12:39-41).
(2) 둘째, 그에 따라 이 세상을 이기는 완전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영원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출15:22-27). 그러므로 여호와의 은혜로 말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성도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거룩한 백성을 완전히 해방하고 온전히 구원하는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렘31:33, 롬8:1-2).
(3) 참고로, 요엘 선지자 역시 그 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비와 불과 연기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말세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2:28-3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모세가 선창을 하고 백성들이 후창을 한 것으로 보임) 그(하나님 여호와)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피조세계보다 더 높이 계시며 창조주의 영광을 지니신 여호와이심을 찬양함),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자신의 백성을 해치려는 대적을 수장시켜 버리셨도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뒷배가 되시고) 노래시며(찬양의 대상이 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이 세상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여 주신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창조주이시며 지금도 나의 인생을 섭리하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나의 찬양의 대상이시고),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믿음의 열조들을 구원하셨음을 내가 알고 있기에, 출2:24-25, 3:15)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전능하신 창조주를 경외하며 찬양한다는 것임, 창22:12, 출3:14).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창조주 여호와를 이길 수 있는 피조물이 없다는 것임, 욥41:12-13, 25, 33-34, 요12:31).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바로의 추격군대를 홍해에 수장, 水葬,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을 영원히 분리하신 것임, 출14:13), 5. 깊은 물이 그들(애굽의 추격군사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군대지휘관에 이어 병사들의 수장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강조용법이 되고 있는 것임).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양손 가운데 힘있는 손을 의미함)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반역의 무리를 응징하심, 사14:14-15).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심판주 여호와의 출현 앞에 모든 피조물은 그 몸과 마음이 녹아 내리고 마는 것임, 벧후3:10-13).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시적으로 표현함),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바닷물이 갈라져서 양쪽으로 응집이 됨으로써 그 사이에 길을 내고 있는 것임). 9.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바로의 추격군은 어리석게도 그 마른 길로 쫓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로잡아 올 수 있다고 속단한 것임), 10.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갈라진 바다물이 다시 합쳐지고),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애굽 군사들이 수장되고 만 것임).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이 찬송의 문구는 훗날 제사장 마카비 가문이 외세인 시리아 군대와 전쟁을 치면서 선언한 것으로 유명함)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이듬해 발생한 고라 도당의 반역사건 당시 여호와의 명령으로 땅이 입을 벌려서 반역자와 그 재산을 삼킨 경우에도 사용될 수 있는 문구임, 민16:31-33)”(출15:1-12); 홍해바다에 마른 길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는 한편 그 뒤를 추격하고 있는 바로의 정예병을 수장시켜버린 여호와의 이적 홍해사건을 모세가 노래하면서 백성들에게 그것을 여호와 찬양으로 가르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그 의미를 일반화하여 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임하고 그 반면에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악한 세력들에 대해서는 심판의 철퇴가 내리게 된다는 사실을 모세가 또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전개를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모세가 선창을 하고 백성들이 후창을 한 것으로 보임) 그(하나님 여호와)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피조세계보다 더 높이 계시며 창조주의 영광을 지니신 여호와이심을 찬양함),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자신의 백성을 해치려는 대적을 수장시켜 버리셨도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뒷배가 되시고) 노래시며(찬양의 대상이 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이 세상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여 주신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창조주이시며 지금도 나의 인생을 섭리하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나의 찬양의 대상이시고),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믿음의 열조들을 구원하셨음을 내가 알고 있기에, 출2:24-25, 3:15)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전능하신 창조주를 경외하며 찬양한다는 것임, 창22:12, 출3:14).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창조주 여호와를 이길 수 있는 피조물이 없다는 것임, 욥41:12-13, 25, 33-34, 요12:31).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바로의 추격군대를 홍해에 수장, 水葬,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을 영원히 분리하신 것임, 출14:13), 5. 깊은 물이 그들(애굽의 추격군사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군대지휘관에 이어 병사들의 수장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강조용법이 되고 있는 것임)”(출15:1-5); 그날 밤과 새벽 그리고 아침에 홍해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음 3가지 사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1) 첫째, 바알스본 맞은 편 홍해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서 쉬고 있는 그 밤에(출14:2) 멀리 믹돌 사이에 난 길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는 애굽의 추격군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파수꾼을 통하여 그 사실을 전해 듣자 모세와 장로들이 천막에서 나와 비하히롯 언덕에 올라가서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포에 떨게 됩니다.
2) 앞쪽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입니다. 꼼짝 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가 될 처지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고센 땅에 이어서 이제는 홍해 가에서 다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출14:10).
3) 둘째, 울부짖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대안을 모세에게 알려주십니다.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 위에 내밀고서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홍해가 갈라지고 있습니다. 마치 양쪽에 높은 수족관이 생긴 것처럼 엄청난 벽이 생기고 바닷물이 그 안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의 추격군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여호와의 이적입니다.
4) 다음 순간 엄청난 바람이 그 수족관과 같은 벽사이에 불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마른 길이 발생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뻔히 입을 벌리고 놀라지만 말고 이제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발로 걸어서 홍해를 건너가도록 조치하라. 양쪽에서 넘실대는 바다물을 보지 말고 여호와께서 만드신 구원의 길만 응시하면서 빨리 건너가도록 하라. 그러면 새벽에 여호와의 새로운 역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을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를 영원히 다시 만나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출14:13, 15-16);
5) 그 말씀 그대로 실천하였더니 새벽에 홍해 건너편 언덕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을 잡으려고 뒤따라 홍해의 마른 길로 들어섰던 애굽의 추격군들이 모조리 바다속에 수장이 되고 만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출14:30). 수많은 시신과 나무로 만들어진 군수품들이 홍해 중간에 떠올라 있는 것까지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황금빛 투구를 쓰고 있는 바로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니 추격군에게 명령을 내리던 바로와 대신들이 근위병을 데리고 속절없이 회군한 것으로 보입니다.
6) 셋째, 아침의 밝은 해가 동편에서 서편으로 따뜻한 햇살을 비추고 있습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놀라운 홍해의 모습을 오래 내려다보고 있던 모세와 백성들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동편의 언덕에서 여호와 찬양을 시작합니다(출15:1). 모세가 선창을 하고 백성들이 후창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주내용을 간추려 보면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하듯이 시적으로 노래하고 있는데 그것이 두가지입니다;
7) 하나는, 창조주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너무나 높고 영광스러운 것이어서 피조물인 우리가 아무리 찬양하여도 그 구원의 역사를 다 표현할 수가 없다는 고백입니다(1-2절). 또 하나는, 애굽제국의 무적의 정예병을 단숨에 홍해물로 몰살하고 말았으니 창조주 여호와의 그 놀라운 위력 앞에 그 누가 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3-5절).
(2)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양손 가운데 힘있는 손을 의미함)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반역의 무리를 응징하심, 사14:14-15).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심판주 여호와의 출현 앞에 모든 피조물은 그 몸과 마음이 녹아 내리고 마는 것임, 벧후3:10-13).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시적으로 표현함),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바닷물이 갈라져서 양쪽으로 응집이 됨으로써 그 사이에 길을 내고 있는 것임). 9.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바로의 추격군은 어리석게도 그 마른 길로 쫓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로잡아 올 수 있다고 속단한 것임), 10.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갈라진 바다물이 다시 합쳐지고),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애굽 군사들이 수장되고 만 것임).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이 찬송의 문구는 훗날 제사장 마카비 가문이 외세인 시리아 군대와 전쟁을 치면서 선언한 것으로 유명함)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이듬해 발생한 고라 도당의 반역사건 당시 여호와의 명령으로 땅이 입을 벌려서 반역자와 그 재산을 삼킨 경우에도 사용될 수 있는 문구임, 민16:31-33)”(출15:6-12);
1)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모습을 피조물인 사람이 상상하여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요4:24). 훗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보이지 아니하는 바람을 그림으로 형용할 수는 없습니다(요3:8a). 다만 그 바람의 작용으로 발생하는 현상과 그 소리만을 묘사할 수가 있을 따름입니다(요3:8b). 그러한 이치 때문에 모세는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여호와의 역사하심을 사람의 모습에 비추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2) 첫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른손잡이입니다. 오른손의 힘이 왼손보다 더 셉니다. 따라서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양손 가운데 힘있는 손을 의미함)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15:6)라고 모세가 알기 쉽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흔히 패권국이 기침만 해도 주변의 약소국은 감기에 걸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 콧김만 흥하고 불어도 홍해가 갈라지고 그 사이에 마른 길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시적으로 표현함),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바닷물이 갈라져서 양쪽으로 응집이 됨으로써 그 사이에 길을 내고 있는 것임)”(출15:8). 마치 여호와의 콧김에 지상에서는 태풍이 발생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4) 셋째,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제1장을 참조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십니다(창1:1-5). 그리고 지금도 그 말씀으로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자연계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여호와의 말씀에 바람이 일어나거나 잠잠해지고(10a), 바다물이 갈라지거나 합쳐지며(10b), 땅이 갈라지거나 합쳐지는 일이(12절) 신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세와 같이 노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 13. 주(여호와 또는 주님)의 인자(긍휼)하심으로 주께서 (유월절 밤의 이적으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또는 대속의 십자가 구속으로, 요5:24, 11:26),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천성의, 히11:16) 거룩한 처소(요14:1-3)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렘25:29, 선민들은 물론 여러 이방나라와 백성들이 여호와의 심판의 소식을 듣고) 떨며, (예루살렘의 멸망에 이어 주변 이웃나라인)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렘25:20),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실제로 주전 586년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에 즈음하여 그러한 주변나라들 역시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 것임, 렘25:21, 27:3-8)!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성도를 온전히 구원하기 위하여 대적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의 임금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받고 쫓겨나게 되는 것임, 시110:5-7, 요12:31, 계19:19-21. 그와 같이 홍해사건은 이 세상 종말심판과 그 의미가 연결되고 있는 것임).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덴동산과 같이 성도들이 여호와와 동거할 수 있는 동산을 말함, 창2:7-10)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천성의 새 예루살렘을 의미함, 히11:16, 계21:22-27)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세우신 (히9:12, 하늘의)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20. 아론의 누이(누나) 선지자 미리암(아론이 모세의 3살 연상이고 미리암은 10살정도 연상으로 보임, 출2:4, 7, 7:7, 민12:1)이 손에 소고(작은 북)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이스라엘 무리 남자들은 모세의 선창에 따라 후창을 하고 여인들은 미리암의 선창에 따라 후창한 것으로 보임)”(출15:13-21); 여기서는 모세의 여호와 찬양이 어느 사이에 이 세상의 종말심판과 성도들의 영원한 구원의 예언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여인들의 여호와 찬양을 이끌고 있는 여선지자 미리암의 찬양이 또한 간략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점을 알기 쉽게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3. 주(여호와 또는 주님)의 인자(긍휼)하심으로 주께서 (유월절 밤의 이적으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또는 대속의 십자가 구속으로, 요5:24, 11:26),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천성의, 히11:16) 거룩한 처소(요14:1-3)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렘25:29, 선민들은 물론 여러 이방나라와 백성들이 여호와의 심판의 소식을 듣고) 떨며, (예루살렘의 멸망에 이어 주변 이웃나라인)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렘25:20),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실제로 주전 586년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에 즈음하여 그러한 주변나라들 역시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 것임, 렘25:21, 27:3-8)!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성도를 온전히 구원하기 위하여 대적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의 임금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받고 쫓겨나게 되는 것임, 시110:5-7, 요12:31, 계19:19-21. 그와 같이 홍해사건은 이 세상 종말심판과 그 의미가 연결되고 있는 것임).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덴동산과 같이 성도들이 여호와와 동거할 수 있는 동산을 말함, 창2:7-10)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천성의 새 예루살렘을 의미함, 히11:16, 계21:22-27)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세우신 (히9:12, 하늘의)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출15:13-19);
1) 의미의 확장이 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장입니다. 모세는 주전 1,446년 4월에 여호와께서 홍해사건을 발생하게 하여 확실한 구원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1-12절). 영원히 애굽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도록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적인 사건의 의미가 주후 32년 4월에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사건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창조주의 은혜가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홍해사건의 의미의 확장입니다;
2) 그와 같은 의미의 확장이 먼 훗날 이루어지고 있기에 먼저 선을 보이고 있는 그것을 일종의 예언과 예표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 재교육하시는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4-48).
3)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본문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13. 주(여호와 또는 주님)의 인자(긍휼)하심으로 주께서 (유월절 밤의 이적으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또는 대속의 십자가 구속으로, 요5:24, 11:26),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천성의, 히11:16) 거룩한 처소(요14:1-3)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15:13)는 구절은 처음에는 여호와께서 홍해사건을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신 사실을 찬양하고 있지만 그 의미가 먼 훗날 구원주이신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 희생으로 성도들을 구원하여 영원한 처소인 천국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으로 확장이 되고 있습니다.
4) 둘째, 제14절에서 16절까지의 내용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족속을 홍해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애굽의 정예병을 홍해에 수장하고 말았다는 놀라운 이적을 듣고서 가나안 주민들을 비롯하여 주변의 나라들 곧 블레셋, 에돔, 모압 등이 크게 놀라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우선 풀이가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은 멀리 떨어져 있는 홍해에서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그 정도의 큰 영향력을 소문으로 가나안과 그 주변의 민족들에게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의 침입으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당시 반(反)바벨론 동맹을 형성하고 있던 주변국들이 차례로 패망을 당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5) 셋째,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덴동산과 같이 성도들이 여호와와 동거할 수 있는 동산을 말함, 창2:7-10)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천성의 새 예루살렘을 의미함, 히11:16, 계21:22-27)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세우신 (히9:12, 하늘의) 성소로소이다”(출15:17)라는 구절은 언뜻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주의 기업의 산’을 에덴동산과 같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 나타나는 구절들 곧 주의 손으로 세우신 영원한 성소를 예비한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것은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하늘의 성소와 새 예루살렘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요14:1-3, 히9:12, 계21:21-27).
6) 넷째,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출15:18-19); 다음 두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하나는, 모세가 영원히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여호와께서 홍해사건을 통하여 바로의 추격군을 몰살시키고 이스라엘 자손을 온전히 구원하셨다고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전 1,446년에 홍해에서 발생한 여호와의 이 세상 심판과 성도에 대한 구원의 역사는 하나의 예표가 되는 것이며 그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먼 훗날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여호와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하나님나라로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들어가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2) “20. 아론의 누이(누나) 선지자 미리암(아론이 모세의 3살 연상이고 미리암은 10살정도 연상으로 보임, 출2:4, 7, 7:7, 민12:1)이 손에 소고(작은 북)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이스라엘 무리 남자들은 모세의 선창에 따라 후창을 하고 여인들은 미리암의 선창에 따라 후창한 것으로 보임)”(출15:20-21);
1) 애굽제국의 동북면 고센 지역에서 430년간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중노동에서 해방하여 애굽의 국경 바깥으로 탈출하게 하신 여호와의 목적은 모세를 출애굽지도자로 파송하기 전에 호렙 산에서 그를 사명자로 세울 때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2) 먼저 호렙 산 중턱 꺼지지 아니하는 가시나무 불꽃 가운데서 여호와께서는 접근하고 있는 모세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두 구절을 연결해보면,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하여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이 세상에 여호와신앙을 전하는 선지자로 살아가게 하며 믿음의 본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여호와의 뜻이 제4장과 제19장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4:22), “4. 내가 애굽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4-6).
4) 요컨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며 그 맡은 사명은 자신의 죄를 여호와 앞에서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민족이 곧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고 이세상을 구원하는 여호와의 뜻과 그 역사섭리의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인생들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5) 그와 같은 측면에서 바라볼 때, 모세와 아론의 누나인 여선지자 미리암이 작은 북을 손에 들고서 홍해사건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하는 노래를 스스로 지어서 선창하고 그 뒤를 모든 여인들이 후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본문은 그 의미가 대단합니다(20-21절).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데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아니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6)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영적인 창세기라고 불리고 있는 욥기 마지막 제42장에서 여호와의 제사장 욥이 7명의 아들과 동등하게 3명의 딸들에게도 재산을 나누어 주고 또한 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욥42:13-15);
그 이유는 남녀평등이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이라는 사실을 벌써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복음서의 저자인 의사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예수님의 공생애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여인들의 이름을 누가복음 제8장에 남기고 있는데 그 점도 눈 여겨 볼 만한 것입니다(눅8:1-3).
셋째로, “22. 모세가 홍해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도움을 받아, 출13:20-22)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출13:18, 20, 애굽의 동쪽 국경을 벗어나면 지중해에서 홍해까지 거친 광야가 펼쳐지는데 그것이 자연적인 성벽 역할을 하고 있음.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그 광야를 성벽이라는 의미를 담아 수르라고 부르고 애굽에서는 같은 의미로 에담이라고 부르고 있음, 창16:7, 출13:20)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광야를 행진할 때에는 먼저 척후를 보내어 샘물부터 찾아야 함. 그런데 그 일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음),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척후가 모처럼 샘물을 발견하였지만 마시지 못하는 쓴 물임, 그러한 의미를 담아서 히브리인들이 그 지명을) 마라라 하였더라(그와 같이 지형지물이 없는 광야에 지명이 생기고 있는 것임). 24.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방과 홍해사건을 선물하여 준 여호와의 은혜를 그만 잊어버리고)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마실 물을 빨리 여호와께 기도하여 얻어내라는 것임. 그러한 해결책이 나타나지 아니하면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겠다는 불경한 태도임. 그것이 여호와의 능력을 시험하는 백성들의 패역한 행동임, 출17:7, 마4:7),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그 나무를)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먼 훗날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여호와의 용서와 칭의의 은혜가 주어짐을 예표하고 있다고 하겠음)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신실한 종의 법도를 지키는지 아니면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다시 불경한 태도를 보이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에 따라 상벌을 정하겠다는 것임, 24절), 26. (구체적으로)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요컨대, 종의 법도를 올바르게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모든 재앙에서 구원을 얻을 것임, 출10:23, 11:7),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여호와 라파)! 27. 그들이 (여호와의 인도하심에 따라 오아시스)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완전수인) 12(충분한 샘물)과 종려나무(물가에서는 꿀과 같은 대추 야자가 열리고 있는 나무들이) 70 그루(완전수 7에 10을 곱한 것이므로 너무나 풍성하다는 것임)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오아시스)에 장막을 치니라(거처를 마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니라)”(출15:22-27);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2. 모세가 홍해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도움을 받아, 출13:20-22)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출13:18, 20, 애굽의 동쪽 국경을 벗어나면 지중해에서 홍해까지 거친 광야가 펼쳐지는데 그것이 자연적인 성벽 역할을 하고 있음.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그 광야를 성벽이라는 의미를 담아 수르라고 부르고 애굽에서는 같은 의미로 에담이라고 부르고 있음, 창16:7, 출13:20)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광야를 행진할 때에는 먼저 척후를 보내어 샘물부터 찾아야 함. 그런데 그 일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음),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척후가 모처럼 샘물을 발견하였지만 마시지 못하는 쓴 물임, 그러한 의미를 담아서 히브리인들이 그 지명을) 마라라 하였더라(그와 같이 지형지물이 없는 광야에 지명이 생기고 있는 것임). 24.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방과 홍해사건을 선물하여 준 여호와의 은혜를 그만 잊어버리고)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마실 물을 빨리 여호와께 기도하여 얻어내라는 것임. 그러한 해결책이 나타나지 아니하면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겠다는 불경한 태도임. 그것이 여호와의 능력을 시험하는 백성들의 패역한 행동임, 출17:7, 마4:7),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그 나무를)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먼 훗날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여호와의 용서와 칭의의 은혜가 주어짐을 예표하고 있다고 하겠음)”(출15:22-25a);
1) 애굽의 동쪽국경을 벗어나면 지중해에서 남쪽 홍해 지역으로 길게 광야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남북으로 길다란 그 광야가 마치 성벽과 같이 자연적인 국경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가나안에서는 그 광야를 성벽이라는 의미로 ‘수르 광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점은 애굽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성벽이라는 뜻을 담아서 ‘에담 광야’라고 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고센 땅을 벗어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에담 광야에 들어서게 되자 갑자기 공중에 구름기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출13:20-22). 그것이 앞서가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두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뜨거운 광야의 햇빛을 가려주는 양산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여 줍니다(출13:22). 또 하나는, 마치 안내견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입니다(출13:20-21).
3) 사실은 그 구름을 인도하고 있는 자가 여호와시라고 모세가 기록하고 있습니다(출13:21). 또한 여호와의 사자가 숨어 있습니다. 그 여호와의 사자는 홍해사건을 통하여 잠시 그 정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출14:19). 물론 해가 지고 나면 광야의 밤은 매우 춥습니다. 따라서 구름속에서 그때는 불기둥이 나타납니다. 지면의 공기를 데우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런데 홍해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에 그 구름기둥이 추격하고 있는 애굽의 군대를 감싸고 그 속에 흑암이 임하여 대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출14:19-20). 홍해사건이 끝나자 이튿날 아침에 구름기둥이 다시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 안내를 따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3일동안 행진하고 있습니다(22절). 미리 척후를 보내어 샘물을 수색하고 있지만 모처럼 발견한 것이 쓴 물이라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23절).
5) 갈증을 이기지 못한 백성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간구하여 모세는 빨리 마실 물을 자신들에게 달라는 것입니다(24절). 마치 떼를 쓰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가만히 여호와께 선처를 맡기고 있으면 엄청 시원한 생수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인데(출14:13)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본성이 선하지 못한 죄인들입니다(출14:10-12, 15:24).
6) 그것이 성경에서 보고 있는 인간론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자신이 성육신하여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아버지 하나님과 같이 선하지 못하다고 부자관리 젊은이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육신에 선한 것이 없다고 실토하고 있습니다”(눅18:19, 롬7:23-24).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선천적인 죄의 본성을 도려낼 수가 있을까요?(창6:5-6, 8:21) 그 영적인 수술의 방법이 마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7)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그 나무를)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먼 훗날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여호와의 용서와 칭의의 은혜가 주어짐을 예표하고 있다고 하겠음)”(출15:22-25a); 쓴 물과 같은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의 아들 답게 선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자면 여호와께서 가리키시는 나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8) 그 나무를 던져서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듯이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여호와 이레 성육신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창22:13-14, 요1:14, 29)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시는 것입니다(사53:4-12, 막8:31, 요1:13-17). 또한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과 제자들을 천국복음의 전파자로 온세상에 파송하십니다(마28:18-20). 그때부터 사람들이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며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화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2)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신실한 종의 법도를 지키는지 아니면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다시 불경한 태도를 보이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에 따라 상벌을 정하겠다는 것임, 24절), 26. (구체적으로)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요컨대, 종의 법도를 올바르게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모든 재앙에서 구원을 얻을 것임, 출10:23, 11:7),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여호와 라파)! 27. 그들이 (여호와의 인도하심에 따라 오아시스)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완전수인) 12(충분한 샘물)과 종려나무(물가에서는 꿀과 같은 대추 야자가 열리고 있는 나무들이) 70 그루(완전수 7에 10을 곱한 것이므로 너무나 풍성하다는 것임)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오아시스)에 장막을 치니라(거처를 마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니라)”(출15:25b-27);
1)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자주 여호와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실 물과 먹거리를 제 때에 제공하여 주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길 것이고 그러하지 아니하면 우상을 섬기고 말겠다는 으름장입니다. 참으로 고약한 성질 머리이며 패역한 백성입니다. 그러자 드디어 여호와의 무서운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구체적으로)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요컨대, 종의 법도를 올바르게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모든 재앙에서 구원을 얻을 것임, 출10:23, 11:7),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여호와 라파)!”(출15:25b-26).
3) 요컨대, 여호와께서는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아니면 거역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순종하면 재앙을 면하게 하고 모든 질병을 치유하여 줄 것입니다. 불순종하면 애굽 사람처럼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에 내버려 두겠다는 것입니다. 훗날 그와 같은 맥락에서 여호와는 대제사장 엘리의 집에 말씀하십니다;
4)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만약 성도가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종의 법도를 온전히 행하게 되면 어떠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5) 두가지 상급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는, 성도가 향년을 맞이하여 육신적인 죽음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무덤을 찾아오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부활하여 영생의 천국잔치에 참여하며 하나님자녀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게 됩니다(요5:24-29, 눅22:28-30). 또 하나는, 광야와 같은 세상을 지나 엘림과 같은 오아시스에 들어가는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27절);
결론적으로, 성경말씀을 읽다가 보면 특히 요한복음에서 이상한 구절이 2군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또 하나는,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6).
첫번째의 예수님 말씀은 천국복음을 믿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벌써 영생으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성도가 향년을 맞이하면 죽고 마는 것일까요?...
두번째의 예수님 말씀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있는지를 마르다를 대표자로 삼아 우리 성도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생명의 주인으로 삼아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신실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역시 향년을 맞이하면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두가지 종류의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세계에서는 타당성이 없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제4장의 말씀 한구절을 묵상하게 되면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의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육신을 가진 피조물인 사람은 시공간에 갇힌 사고와 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영이신 창조주 여호와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하고 있으며 피조세계와 천국을 동시에 투과하고 있습니다.
(2) 둘째,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영이신 창조주 여호와를 만난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갇힌 사고가 아니라 영적인 초월적인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인식은 인간의 좁은 생각과 경험으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3) 그 두가지 개념을 가지고 요4:24말씀을 다시 음미해봅니다; “오로지 여호와의 말씀을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받아 그 뜻을 깨닫고 아무쪼록 그것을 진리로 삼아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할 때에 예배인생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시공간에 갇힌 경험과 이치를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대신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영이신 창조주의 말씀을 영접하여 그 의미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 육신의 몸이 죽고 그것을 초월하는 영생의 몸이 새로이 창조가 되어 그리스도처럼 부활을 입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이미 바울 자신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재림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기존 신관과 세속적인 종교생활을 청산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가 얻은 그 부활과 영생에 참여하고자 남은 인생을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 출애굽기 제15장 모세의 노래를 다시 한번 묵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홍해사건이 사실은 먼 훗날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므로 그 점을 깨닫고 모세가 그와 같이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음을 새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익명의 히브리서 저자가 제1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주전 15세기의 인물 모세가 주후 1세기에 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소원하였으며 부활의 주님을 만나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기를 사모하였다는 구절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누가복음 제24장과 요한복음 제5장과 제11장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영생의 상급을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의 성도의 삶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