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메뚜기 떼가 날아들고 흑암의 역사가 발생하면 생각해야 하는 것들”(출10:1-29)
설교일; 주후 2025년 5월 2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4년 12월 10일 화요일 작성)
중국에서 선교사의 딸로 어린시절을 보낸 미국의 여류작가 펄벅(Pearl S. Buck, 1,892-1,973)이 주후 1931년에 발표한 소설 ‘대지’(The Good Earth)는 7년후 그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소설 대지는 1910년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중국의 농민 출신 왕룽 일가가 겪고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하여 넓은 대륙에 살고 있는 중국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해혁명을 분깃점으로 하여 중국에서는 전근대적인 통일왕조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국인들에 의한 근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민계급인 지주와 상인들이 국민당을 지지하면서 군벌들이 할거하고 있는 중국천하를 다시 통일하려고 하지만 외세의 침입이 계속되고 있기에 자주적인 통일국가의 수립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마침 1917년에 이웃나라 러시아에서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노동자 농민계급을 선동하고 조직하여 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중국 땅에서도 노동자 농민계급을 파고들어 의식화하고 있는 공산당이 등장하였는데 그들이 처음에는 내침하고 있는 일본제국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하여 국민당의 군대와 연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마오쩌둥이 전략적으로 국민당과의 연합을 깨어 버림으로써 장제스가 지휘하는 국민군은 홀로 일본 관동군과의 힘겨운 전투를 계속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국민당 군대의 힘이 자꾸만 소진되고 있습니다.
훗날의 역사를 참조하여 간략하게 현대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1945년 8월이 되자 중국의 동부 해안지역을 차지하고서 대담하게도 세계적인 신흥 산업 강대국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벌이고 있던 일본제국이 미군의 원자탄 투하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직전에 갑자기 일본제국에 선전포고를 한 소련군이 극동에서 남하를 시작합니다. 소련군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에 힘입어 만주에 진출하고 있는 관동군에게 평화적 귀국을 보장하면서 손쉽게 항복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이어서 소련군은 북한을 점령하고 그곳에서 군정을 실시합니다.
장제스의 국민군은 갑작스러운 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차제에 중국대륙을 통일하려고 노력하지만 국내적으로 큰 난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국의 서북부 농촌지역에서 오랜 세월 군사력을 기르고 있던 마오쩌둥의 공산군이 인민의 군대로 이름을 바꾸어 동진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마오쩌둥의 공산군을 중국의 기득권세력과 외세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는 위대한 인민의 군대로 인식하고서 크게 환영하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장제스의 국민군은 마오쩌둥의 군대에게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마저 공산화가 되면 큰일입니다. 왜냐하면, 동유럽의 여러 나라가 소련군의 진주로 말미암아 이미 공산화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서둘러 장제스의 국민군을 도와 동북아의 대륙국가 중국의 공산화를 저지하고자 나서지만 당시의 중국 국민군의 기강해이와 부정부패로 인하여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1949년에는 근대적인 자주의식을 가지게 된 중국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공산당을 지지함으로써 부유한 중국내 지주와 상인들의 후원과 미국의 지원에 크게 의지하고 있던 국민당 장개석의 군대가 패배를 당하고 마침내 외딴 섬 대만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자 중국대륙에는 1949년말에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홀로 집권하는 공산주의 통일국가가 수립되고 맙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중공’(中共)의 성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세계의 패권은 유럽의 섬나라 대영제국에서 북아메리카의 합중국인 미국으로 이전되고 맙니다.
세계의 패권국이 된 미국은 팽창하고 있는 공산주의 세력을 극동에서 막아내고자 불가피하게 1949년 말부터 패망한 적대국 일본의 군수산업을 다시 일으키고 주일미군기지를 확충하는 등 엄청난 정책전환을 실시합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극동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국의 ‘대(大)봉쇄정책”(the Great Containment Policy)입니다.
이듬해 1950년 6월에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은밀하게 양성한 김일성의 북한 인민군을 내세워서 한반도의 적화통일에 나섭니다. 미국정부는 급히 유엔군을 동원하고 미군을 대거 투입하여 남한을 살려서 공산주의 세력을 막아내는 전초기지로 계속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극동지역의 대변혁기의 시작점에 중국대륙에서는 농민들의 행태가 어떻게 근대적인 모습으로 달라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일까요? 펄벅의 장편소설 대지를 참조하면, 가장 먼저 전근대적인 농민들이 무작정 고향을 떠나 ‘이촌향도’(離村向都, Rural Exodus)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을 덮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일부 중국농민들이 기아선상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대로 땅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던 농민들이 고향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향하도록 만드는 엄청난 사건을 펄벅은 메뚜기 떼의 등장으로 아주 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빈민이 되어 살고 있는 농촌 출신들이 그곳에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의 근대화와 산업혁명이 너무나 지지부진하여 먹고살 방도가 역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도시의 빈민으로 또는 부랑아로 살아가고 있던 농촌 출신들이 전근대적인 권위체계를 부정하고 통일왕조 청나라를 붕괴시키고자 나서게 됩니다.
펄벅은 자신의 소설 대지의 주인공 왕룽 가족이 대도시에서 발생한 신해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무정부상태가 발생하자 부자의 재물을 약탈하는 군중의 무리에 합세하여 운 좋게 크게 한몫 챙기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 부부는 그 돈을 가지고 다시 농촌으로 들어가서 부농이 되어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현실적이면서도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그 스토리에는 농촌출신의 도시빈민들이 당시 직면하고 있던 대도시에서의 절망스러운 모습과 그 어두운 시절을 벗어나자면 기존 권위체제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나름대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작가인 펄벅은 중국의 근대화와 사회주의화 이전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중국백성들의 이기적인 심성을 가지고 아주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기 위하여 부자들의 보따리를 터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들 빈민들이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체제전복으로 인한 이익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도시빈민들의 어두운 모습이 훗날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인민군이 천하통일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 옛날 애굽제국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일구어 내기 전에 그곳에 임한 여호와의 흑암의 재앙과 비슷합니다.
그러한 구체적이고 매우 상징적인 묘사는 저자인 펄벅이 중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제10장의 두가지 재앙도 모세가 그 시절에 애굽에서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체험하였기에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모세가 애굽제국의 바로와 신하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사용하시는 두가지 재앙 곧 메뚜기 떼의 출몰과 흑암의 재앙에 관하여 자신이 경험한 바를 아주 자세하게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마지막 10번째 재앙인 애굽인 장자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몰살이 임하기 전에 출애굽기 제10장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의 8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의 습격과 9번째 재앙인 3일간 흑암의 출현은 그 깊은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점을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 모세가 기록한 오경의 내용에 예수님은 벌써 자신에 관한 메시아의 기록이 예언으로 들어있음을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여 흩어진 사도와 제자들을 불러모은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눅24:44-45). 그와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자 그날 정오부터 예루살렘에 임한 흑암의 권세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막15:33-34). 그 옛날 모세시대 흑암의 재앙을 참조하면, 그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부활하기까지 3일간 영적인 어둠의 권세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눅23:44-24:3, 롬8:1-2, 엡2:2, 6:12).
(2) 둘째,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제국의 황제를 신의 아들로 섬기고 있는 이방인의 나라가 애굽제국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제국의 영광을 온누리에 떨치고 여러 족속의 힘을 하나로 모아 하늘에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고자 시도한 인간의 욕망이 애굽제국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창11:1-9, 계17:5). 그러한 애굽에 철퇴를 가하기 위하여 창조주 여호와는 모세를 통하여 그 땅에 메뚜기 떼를 날아들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흑암의 재앙이 임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출10:12-23). 그 결과 농업국가인 애굽제국은 엄청난 흉년을 경험하게 되고 먹거리가 사라지는 고통 가운데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눈먼 소경이 되어 3일간을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 3일간 지속된 흑암으로 말미암아 제국자체의 질서와 체계가 바벨탑처럼 붕괴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그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정치적인 타협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의견이 좁혀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출10:24-29). 결국 전염병에 이어 기근이 발생하고 흑암의 재앙이 임하고 있지만 칼이 상징하고 있는 직접적인 죽임이 집안에서 발생하기 전까지는 끝까지 여호와의 뜻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버티어 보겠다고 하는 오만한 인간의 심성이 바로 궁에서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그와 같은 끈질긴 완악한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면서 모세는 그 죄악을 청산하기 위하여 구세주 그리스도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극악한 처형방법인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히11:24-26).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먼 훗날 변화산에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모습 가운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눅9:30). 실제로 순식간에 영광스럽게 그 모습이 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 및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에서 환상가운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주제가 놀랍게도 예루살렘에서 맞이하는 구원주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음인 것입니다(눅9:3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바로를 만나기 위하여 바로 궁으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역설적으로, 바로와 신하들의 불순종을 통하여 여호와의 전능하심이 더욱 무신론과 우상의 제국 애굽에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임),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여호와의 역사는 당대에만 그 위대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훗날의 역사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는 것임, 그 점을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말씀이 지니고 있는 넓이와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음, 엡3:19).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하여 애굽의 압제 바깥으로 내)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요청하고 있는 여호와의 요구는 언제나 동일함. 그 점은 선민 이스라엘의 훗날의 역사에서도 동일함, 사58:6).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이제부터 바로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겪게 되는 애굽에 대한 여호와의 엄청난 재앙 메뚜기 떼의 습격에 대하여 상세하게 사전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임),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메뚜기 재앙은 애굽제국 전체에 임하게 된다는 것임).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애굽인들은 절망적인 흉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임, 창45:6),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애굽인들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임),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여호와의 종은 맡은 주인의 명령만 수행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함. 미련을 떨고 그 자리에 앉아서 대접을 받아서는 안되는 것임, 창24:33, 56),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올무가) 되리이까? 그 사람(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먹거리가 사라지면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멸망이 찾아오는 것임) 하고,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이제는 정치적인 협상에 들어가는 것임)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여호와를 섬기는 여호와신앙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는 것임).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남자들)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여자들을 제외하고 남자들만 보내도 충분하다는 바로의 주장임).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어린아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소홀해지기 쉽다는 바로의 억지임).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결국 바로는 이스라엘 장정만 잠시 출애굽을 허가하고 처자식을 전부 인질로 삼겠다는 것임).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제안을 거절하자 즉시)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출10:1-11);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바로를 만나기 위하여 바로 궁으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역설적으로, 바로와 신하들의 불순종을 통하여 여호와의 전능하심이 더욱 무신론과 우상의 제국 애굽에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임),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여호와의 역사는 당대에만 그 위대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훗날의 역사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는 것임, 그 점을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말씀이 지니고 있는 넓이와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음, 엡3:19).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하여 애굽의 압제 바깥으로 내)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요청하고 있는 여호와의 요구는 언제나 동일함. 그 점은 선민 이스라엘의 훗날의 역사에서도 동일함, 사58:6).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이제부터 바로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겪게 되는 애굽에 대한 여호와의 엄청난 재앙 메뚜기 떼의 습격에 대하여 상세하게 사전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임),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메뚜기 재앙은 애굽제국 전체에 임하게 된다는 것임).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애굽인들은 절망적인 흉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임, 창45:6),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애굽인들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임),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여호와의 종은 맡은 주인의 명령만 수행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함. 미련을 떨고 그 자리에 앉아서 대접을 받아서는 안되는 것임, 창24:33, 56)”(출10:1-6);
1) 먼 훗날 히브리경전을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에 비추어 재해석하여 서신서를 작성하게 되는 자 곧 이방인을 위한 사도인 바울은 그 본래 신분이 랍비 사울입니다. 그는 10여세의 소년시절부터 당시 선민 유대인사회의 가장 뛰어난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히브리경전을 십 수년 공부하고 율법선생의 자격을 취득하여 랍비가 된 인물입니다(행22:3). 그러한 경력을 가진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서 에베소서 제3장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고 있습니다;
2)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the love of Christ that surpasses knowledge)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what is the breadth and length and height and depth) 하나님이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I pray that)”(엡3:17-19);
3)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두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문장입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 사랑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독생자 그리스도가 만민을 구원하여 천국에 데려가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스스로 희생한 것입니다.
4) 또 하나는, 그 구원의 사랑 앞에 죄인인 우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할 수가 없으며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도 회개하는 성도를 전부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맞아 들이는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십니다(사65:17-18, 계21:1-2). 그와 같은 의미에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대속의 십자가 사랑으로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새역사는 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길이와 넓이 그리고 그 깊이와 높이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눅24:44-53).
5) 구체적으로, 그 구원계획의 길이는 창세기 제3장에서 그리고 출애굽기 제10장 본문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생명과까지 따먹고 죄 가운데 영생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방지하고 훗날 여자의 아들을 구원주로 보내어 반드시 그들과 그들의 자손을 구원하고자 계획하십니다(창3:15, 22-24). 그리고 본문에서는 애굽의 백성들을 수차 징계하시지만 훗날 반드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하고자 계획하시는 것입니다(출10:1-2, 사19:19-25).
6) 창조주 여호와의 구원계획의 넓이는 선민 이스라엘만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이방 애굽인까지 모두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창18:20-32, 출19:4-6). 그러한 측면에서 주전 8세기의 선지자 이사야가 그의 대선지서에 여호와의 뜻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사19:22).
7) “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65:1-2);
애굽인 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환언하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진리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3일만에 부활하고 40일후에 승천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조물 사랑 곧 영생구원의 깊이와 높이입니다(엡3:19, 롬8:1-8).
8)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본문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이해가 됩니다; 첫째, 제1절에서 여호와는 애굽에 많은 재앙을 내리지만 그것은 훗날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와서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제2절에서는 모세가 그 사실을 기록하여 히브리경전을 남겨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여호와의 선민구원과 이방인구원 곧 만민구원의 뜻을 훗날 구원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와서 실현하신다는 사실을 미리 예언하여 두라는 것입니다(눅24:44-45).
9) 셋째, 제3절에서 여호와가 애굽에 내리시게 되는 8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의 습격은 그 피해가 대단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사전에 바로에게 보내어 그 사실을 똑똑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바로가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여호와의 뜻에 순종한다면 예정되어 있는 모든 재앙을 중지할 것입니다. 그러하지 아니하고 고센 땅의 이스라엘 자손을 계속 노예로 부리고자 하면 엄청난 메뚜기 떼의 재앙을 새로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4절).
10) 넷째, 메뚜기 떼가 온 지면을 덮어버리게 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합니다(6a). 더구나 우박피해를 겨우 면한 모든 농작물과 열매를 먹어 치우게 됨으로 인하여 애굽인들은 기아선상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5절). 그와 같은 상세한 사전예고가 있지만 바로는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모세가 아론과 함께 별 소득 없이 바로 궁을 나오게 됩니다(6b). 과연 유사이래로 아무런 준비 없이 모진 흉작을 만나게 되는 애굽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2)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올무가) 되리이까? 그 사람(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먹거리가 사라지면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멸망이 찾아오는 것임) 하고,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이제는 정치적인 협상에 들어가는 것임)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여호와를 섬기는 여호와신앙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는 것임).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남자들)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여자들을 제외하고 남자들만 보내도 충분하다는 바로의 주장임).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어린아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소홀해지기 쉽다는 바로의 억지임).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결국 바로는 이스라엘 장정만 잠시 출애굽을 허가하고 처자식을 전부 인질로 삼겠다는 것임).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제안을 거절하자 즉시)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출10:7-11);
1) 바로 궁에는 마술사들만 바로를 보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현인 지혜자들이 또한 애굽제국의 최고권력자인 바로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그들 지혜자들이 바로에게 직언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호와가 애굽 땅에 7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심각한 재앙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모세를 보내어 사전예고를 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어김없이 재앙이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메뚜기 떼의 습격이 있게 되면 제국의 존립이 위태로워집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기아선상에 내몰리게 되면 정부의 곡간과 부자들의 곡간을 습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말 그대로 고센 땅의 히브리인을 출애굽함으로써 여호와의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는 재앙덩어리를 일찍 정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부디 그렇게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7절 의역).
2) 지혜자들의 말을 흘려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젊은 바로 아멘호텝2세가 모세와 아론을 다시 불러들입니다(8a). 그리고 정치적인 타협을 시도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다음 4단계입니다; 첫째,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허락을 구하고 있으니 누구 누구가 갈 것인지 결정하여 말하도록 하라(8b). 둘째, 그 제안에 대하여 모세가 즉시 대답합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두 움직여야 하므로 당연히 가축을 전부 몰고 가야 합니다”(9절 의역).
3) 셋째, 그 말을 듣자 바로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역(逆)제안(counter offer)을 합니다;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남자들이다. 그러므로 부녀자들을 고센 땅에 남겨두고 남자들만 출애굽을 하도록 하라. 더구나 어린 남자아이까지 데리고 광야로 나서게 되면 고생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여인들에게 아이들을 전부 맡겨두고 다녀오도록 하라”(10-11a). 넷째, 도저히 모세와 아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바로의 억지스러운 제안입니다. 그것으로 협상은 결렬되고 분노한 바로에 의하여 두사람이 궁밖으로 쫓겨나고 맙니다(11b).
둘째로,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메뚜기 재앙을 일으키도록 시행하라는 명령임). 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밤낮없이 계속)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시리아와 요르단 그리고 아라비아로부터 모든) 메뚜기를 (서쪽 애굽으로 가도로 바람으로 훅)불어 들인지라.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애굽 온 땅에 빠짐없이)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 메뚜기가 ①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메뚜기 떼로 말미암아 애굽인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짐), ②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곡식류를 포함) ③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초근목피, 草根木皮로 흉년을 이겨 내기도 어려워짐). 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막상 메뚜기 재앙이 임하자 바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서 항복하고 있는 것임), 17.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모세가 액면 그대로 일단은 무조건 항복으로 받아들인 것임. 사실 메뚜기 재앙이 계속되면 애굽인들이 모두 아사하게 되기 때문임). 18.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9.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바람의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창8:1, 마치 성령의 바람과 같음, 요3:8)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수장하니, 출14:27-28),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4:23, 10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임할 때까지는 그러한 것임)”(출10:12-20);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메뚜기 재앙을 일으키도록 시행하라는 명령임). 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밤낮없이 계속)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시리아와 요르단 그리고 아라비아로부터 모든) 메뚜기를 (서쪽 애굽으로 가도로 바람으로 훅)불어 들인지라.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애굽 온 땅에 빠짐없이)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 메뚜기가 ①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메뚜기 떼로 말미암아 애굽인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짐), ②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곡식류를 포함) ③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초근목피, 草根木皮로 흉년을 이겨 내기도 어려워짐)”(출10:12-15);
1) 모세가 기록한 오경 가운데 첫번째인 창세기 제1장에서는 창조주 여호와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지으신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창1:3, 6). 그러므로 여호와는 애굽에 메뚜기 떼 재앙을 일으키기 위하여 단지 말씀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12b).
2) 그러나 연약한 피조물인 모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자신에게는 공중을 날고 있는 메뚜기 떼를 애굽 땅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기에 한번 용기를 내어봅니다. 그것이 애굽 땅 위에 단지 손을 내밀고 여호와께서 위탁하신 말씀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12b) 좀더 믿음직스럽게 여호와께서 주신 신물인 지팡이를 의지하여(출4:17) 그것을 손에 꼭 쥐고서 팔을 애굽의 땅 위에 뻗치고 여호와의 명령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13a).
3) 그와 같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서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대단합니다. 동풍을 타고서 멀리 시리아와 요르단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메뚜기 떼가 엄청나게 애굽 땅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13b). 그것은 마치 그 옛날 동방에서 목축을 하던 힉소스인들이 철제전차와 강궁을 가지고 애굽으로 쳐들어온 것과 비슷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사전설명한 그대로 심각한 재앙이 메뚜기 떼의 의하여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먼저 애굽인들의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가 지면을 완전히 덮고 있으므로 발을 디디고 이동하여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벌레인 메뚜기의 먹성은 돼지의 먹성에 버금갑니다. 우박피해를 면하고 겨우 살아남은 모든 작목과 유실수가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그 결과 애굽 땅에는 기근이 찾아옵니다. 보통 흉작이면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그나마 목숨연장을 할 수가 있는데 메뚜기 떼가 모든 나무와 풀까지 전부 먹어 치우고 있기에 그대로 버려두면 애굽제국 자체가 백성들이 아우성과 소요로 무너질 판국입니다. 비상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2) “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막상 메뚜기 재앙이 임하자 바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서 항복하고 있는 것임), 17.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모세가 액면 그대로 일단은 무조건 항복으로 받아들인 것임. 사실 메뚜기 재앙이 계속되면 애굽인들이 모두 아사하게 되기 때문임). 18.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9.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바람의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창8:1, 마치 성령의 바람과 같음, 요3:8)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수장하니, 출14:27-28),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4:23, 10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임할 때까지는 그러한 것임)”(출10:16-20);
1)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여호와의 세움을 받고서 동족들을 만나고자 고센 땅으로 들어오기 전에 장차 애굽 땅에서 창조주 여호와가 어떠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리고 갈지에 대하여 미리 다음과 같이 세밀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출3:19-20).
2) 과연 여러가지 이적 가운데 여호와의 마지막 재앙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때가 되어야 고센 땅에서 애굽인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해방을 맞이하고 애굽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 크게 역사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알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모세에게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계십니다;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4:23).
3)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을 굴복하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을 이루어 내시는 여호와의 마지막 재앙이 애굽인 장자의 몰살입니다(출12:29-36). 그 사실을 여호와의 예언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모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자신의 목전에서 지금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있는 바로이지만(16-17절) 그가 수많은 메뚜기 떼가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전부 애굽에서 물러가게 되는 것을 볼 때에는 그 마음이 또 변하고 말 것입니다(20절).
4)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재앙의 시간이 그대로 오래 지속되어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어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사랑의 마음과 약속의 말씀을 창세기 제9장에 소위 ‘무지개 언약’으로 모세가 구체적으로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창9:9-17). 창조주 여호와의 그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모세이기에 두말하지 아니하고 바로 궁을 나서자 여호와께 간구합니다(18절);
5) 바로가 일단 용서를 구하고 있으니 부디 애굽의 백성들을 기아의 위기에서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위력으로 바람의 방향이 일제히 바뀌고 있습니다. 동풍이 아니라 서풍이 불게 되자 그 바람을 타고서 애굽의 지면을 덮고 있던 메뚜기 떼가 한꺼번에 동쪽으로 날아갑니다(19a). 결국에는 애굽의 국경 바깥 홍해로 몰려가서 메뚜기 떼가 일제히 수장이 되고 맙니다(19b). 그것은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갈릴리호수 동쪽 이방인 성읍 거라사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을 미리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군대귀신이 들어간 돼지 떼가 일제히 호수로 뛰어들어 한꺼번에 죽고 마는 것입니다(눅8:32-33).
셋째로,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번에는 사전예고가 없이 곧바로)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조치임).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무덤 속 3일간을 상징하듯이, 막15:33-16:6)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여호와의 신위적인 구별하심으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가축 없이 광야를 여행하면 아사의 위기가 찾아오게 됨을 바로가 알고서 그런 계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임).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모세는 음식을 말하지 아니하고 제물로 가축을 사용하므로 그것은 바로가 반드시 자신들에게 주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음),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그 이유는) ①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속죄의 제물로 가축을 사용한다는 것임), ②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어느 것이 제물로 사용이 되는 것인지 사전에)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피조물의 모든 책임은 결국 창조주의 책임으로 귀결되고 있음) 그들 보내기를(히브리인 및 재산의 출애굽을) 기뻐하지 아니하고(결코 용인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정치적 타협의 완전결렬을 의미함).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재앙 장자의 죽음 뿐임, 출4:23)”(출10:21-29);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번에는 사전예고가 없이 곧바로)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조치임).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무덤 속 3일간을 상징하듯이, 막15:33-16:6)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여호와의 신위적인 구별하심으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출10:21-23);
1) 훗날 사도 요한은 노년에 제4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여호와의 독생자가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을 생명의 빛으로 전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성육신하셨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요1:14-18). 그런데 그 생명의 빛을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싫어하고 있습니다(요1:9-11).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의 빛보다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는 어두움을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3:19).
2) 세상사람들은 내세에 천국에서 영생을 얻어 누리는 것보다는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화가 한정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약육강식의 철칙에 따라 약한 자를 짓밟고 강자가 되어 탐욕스럽게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타인의 목숨을 해치는 일조차 서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창6:2-8). 그와 같은 자신들의 더러운 탐욕과 흉계의 현장을 외부에 드러내지 아니하기 위하여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있는 그들입니다(요3:20).
3) 그렇다면 창조주 여호와의 생명을 살리는 말씀의 빛보다 고센 땅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림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세상적인 이익을 더 선호하고 있는 어둠의 자식들 곧 바로와 신하들 그리고 애굽인들을 징계하는 여호와의 방법이 무엇일까요? 가장 어울리는 방법이 사실은 흑암의 재앙입니다. 한마디로, 흑암을 그 땅에 계속 임하게 하여 그 속에서 살아가도록 그들을 내버려두는 것입니다(롬1:28-32). 그러나 여호와의 깊은 뜻은 피조물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그것이며 훗날 대속자 그리스도를 보내주는 것입니다(욥19:25-27, 사53:4-6, 막3:4).
4) 그것이 피조물의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여호와의 생명살림의 역사입니다(마5:43-48, 막12:30-31, 눅10:33-37). 그러므로 단지 3일간만 애굽 땅에 흑암의 권세가 지배하도록 허용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흑암은 최소한 애굽인들이 벽을 더듬어 가면서 촉각으로 식사준비를 하고 화장실 출입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듬을 만한 정도의 흑암이라고 모세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21절). 그러한 흑암의 재앙이 애굽제국에 유일하게 임하지 아니하고 있는 지역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고센 땅입니다(23c).
(2)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가축 없이 광야를 여행하면 아사의 위기가 찾아오게 됨을 바로가 알고서 그런 계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임).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모세는 음식을 말하지 아니하고 제물로 가축을 사용하므로 그것은 바로가 반드시 자신들에게 주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음),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그 이유는) ①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속죄의 제물로 가축을 사용한다는 것임), ②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어느 것이 제물로 사용이 되는 것인지 사전에)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피조물의 모든 책임은 결국 창조주의 책임으로 귀결되고 있음) 그들 보내기를(히브리인 및 재산의 출애굽을) 기뻐하지 아니하고(결코 용인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정치적 타협의 완전결렬을 의미함).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재앙 장자의 죽음 뿐임, 출4:23)”(출10:24-29);
1) 흑암의 재앙이란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들이 일시에 맹인이 된 것과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면 나름대로 여러가지 다른 감각을 발달시켜서 어느정도 눈의 기능을 대신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가는 도중에 갑자기 온 세상에 흑암이 임하듯이 눈이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면 그것은 벌써 절반이상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침대에서 일어나서 움직이고 싶은 의욕이 일시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23b).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없어지니 살아있어도 산 목숨이 아닌 것입니다(23a).
2) 현대생활에 있어서도 갑자기 밤중에 전깃불이 나가게 되면 온 세상이 캄캄하여 어쩔 줄을 모르게 되는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그러한 일이 며칠간 재앙으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면 권력자가 누리고 있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에 따라 바로가 급히 모세를 궁으로 불러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빨리 출애굽을 하고 그 전에 흑암의 재앙을 제거하여 달라고 요청합니다(24절). 그런데 모세가 주의를 기울여서 바로의 제안을 제대로 들어보니 그의 말은 이스라엘 자손들만 출애굽을 하고 그들이 치고 있는 양과 소를 애굽에 그냥 두고서 떠나라는 것입니다(24b).
3) 그것은 재산을 두고서 몸만 애굽 바깥으로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그 순간 모세는 두가지 여호와의 예언이 아직 달성되지 아니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적으로 애굽인 장자의 죽음이 아직 여호와의 재앙으로 애굽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출4:21-23). 또 하나는, 여호와는 모세에게 출애굽의 시간이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웃 애굽인들로부터 많은 물품을 얻어서 국경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주신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출3:20-22).
4) 지금의 상황은 그와 반대입니다. 도리어 이스라엘 자손들의 가장 큰 재산인 양과 소를 애굽에 남겨두고서 떠나라고 바로가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지사를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세가 바로에게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모세는 음식을 말하지 아니하고 제물로 가축을 사용하므로 그것은 바로가 반드시 자신들에게 주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음)”(25절).
5) 모세의 말이 더욱 강경해집니다;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그 이유는) ①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속죄의 제물로 가축을 사용한다는 것임), ②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어느 것이 제물로 사용이 되는 것인지 사전에) 알지 못함이니이다”(25절과 26절). 그러자 바로의 안색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6) 그는 80세의 힘없는 늙은이 모세에게 결코 굴복하고 싶지가 않습니다(27절). 바로의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젊은 바로 아멘호텝2세가 고함을 지르고 있습니다; “다시는 내 눈에 뜨이지 말라. 다시 보게 되면 내가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28절). 모세도 지지 아니하고 한마디를 하고서 바로 궁을 나섭니다; “다시 타협을 하겠다고 얼굴을 마주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부디 출애굽을 해달라고 그대가 내게 애걸복걸하는 일만이 이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29절 의역);
결론적으로, 선지자인 모세는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출애굽의 역사가 발생하게 되는지 그것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이미 들었기에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와 정반대의 인물이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 아멘호텝2세입니다. 그는 약자인 히브리인 이스라엘 족속을 노예로 삼아 중노동에 동원하고 있는 것이 약육강식의 세상이치에 비추어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노예의 몸값을 가축인 소의 가격과 동일하게 매기고 있는 고대사회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로가 노예인 이스라엘 자손이나 80세의 늙은이 모세를 겁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변수는 그들의 수호신 여호와의 탁월한 능력입니다. 애굽의 바로에게 진노한 여호와의 신위적인 처벌이 9가지 재앙으로 애굽 땅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는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면 모세를 불러서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항복하는 척하면서 재앙이 물러가도록 요청하고 있지만 그것이 본심은 아닙니다. 따라서 흑암의 재앙이 3일간 애굽 땅에 임하게 되었을 때에 먼저 모세를 불러서 타협을 시도하다가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 그를 내치고 맙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대답을 다음과 같은 속담 구절에서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고집 센 사람은 관에 못질하는 것을 보아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애굽에서는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바로의 장남이 여호와의 징벌로 죽게 됩니다. 신하들의 장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백성들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이 전부 몰살을 당하게 되는 비극이 하룻밤에 발생하게 됩니다.
그 초상을 겪으면서 비로소 바로가 하나의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태자의 죽음과 그의 관뚜껑에 못을 박는 죽음이다. 그 다음에는 나의 순서가 아닌가?’. 등골이 오싹합니다. 그때서야 진심으로 재앙 덩어리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데리고 속히 애굽을 떠나달라고 바로가 모세에게 매어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이 고대 애굽의 제왕 바로 뿐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러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모세의 기록인 출애굽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공간을 단숨에 뛰어넘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 주고 있는 여호와의 지혜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어서 아무쪼록 바로에게 주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겸손하게 자신의 마음판에 새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