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고냐(손진길 작성)

소설 여고냐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4. 16. 10:06


소설 여고냐9(작성자; 손진길)

 

주전 601년 가을 예루살렘 왕궁에서 33세의 여호야김왕이 왕비 느후스다와 함께 세자빈 후보에 오른 두 처녀의 선을 보고 있다. 그녀들은 그해 14세인 세자 여고냐보다 연상이다.

하나의 처녀는 외무대신 아히감의 딸인 아비가일인데 그녀는 금년에 17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처녀는 제사장 스라야의 딸인 안나인데 그녀가 16세이다. 두 처녀 모두 똑똑하고 건강하며 현모양처감이다. 그래서 여호야김왕 부부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오늘 최종 간택이 있다는 소식을 세자 여고냐의 스승인 하달이 공부시간에 넌지시 제자인 세자에게 가르쳐준다. 그러자 여고냐가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엉뚱한 질문을 한다. 그것은 다분히 어색한 화제를 돌리고자 하는 의도이다.

하지만 그 질문이 중요한 것이다; “스승님, 오래전부터 제게 가르쳐 주신 내공심법은 어째서 아직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나요?... 벌써 7년간이나 수련했지만 저는 내력을 사용하여 무기를 휘두를 수가 없어요스승님은 공중을 휙휙 나르는 수준인데 말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스승 하달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도 세자님의 연령 정도에 내공심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내공을 이용하여 무기를 사용하는 단계에 오르게 된 것이 10년공부를 한 다음입니다. 그러니 3년만 더 수련하시면 그 단계의 내공을 얻으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세자 여고냐가 추가로 질문한다; “스승님, 그렇다면 제가 사부님처럼 몸을 가볍게 하여 공중으로 비상하는 수준에 도달하자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 말을 들은 하달이 진지하게 대답한다;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수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무예습득에 있어서는 개인차가 큽니다. 그런데… “.

하달이 세자 여고냐의 눈망울을 쳐다보니 참으로 그런 경지에 올라가고 싶어하는 열망이 가득하다. 그래서 희망적인 답변을 해준다; “그렇지만 제 경우에는 7년을 더 수련한 결과 그러한 경지에 접어 들었습니다. 제 나이 24세에 발생한 대사건이지요그래서 저는 그 이듬해에 25세의 나이로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에 온 것입니다“.

세자 여고냐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유다왕국 제1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사부님에 비하면 제가 자질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저도 이제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게 될 것이니 장차 처자식을 제 힘으로 보호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 하달이 생각한다; “똑똑하고 현명한 세자이구나. 그가 훗날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잘 이끌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 과연 그날이 희망적으로 전개가 될지 아니면 불행한 사건으로 채 꽃을 피우지 못하게 될지 당시에는 사제간에 아무도 모르고 있다.

한편 세자빈으로 두 처녀의 선을 본 여호야김왕이 아내인 왕비 느후스다에게 말한다; “과인이 볼 때에는 두 사람 모두 합격입니다. 한사람은 세자빈으로 삼고 또 한사람은 세자의 후비로 삼으면 되겠군요. 누구를 정비로 삼고 누구를 후비로 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세자의 선택에 따른 문제지요. 그러니 이쯤에서 우리는 빠지고 세자에게 선을 보고 최종결정을 하라고 지시할까 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왕비 느후스다가 생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도 며느리가 한꺼번에 두사람이 생기면 좋지요. 그러면 우리가 옆방으로 옮기고 세자를 불러서 이곳에서 선을 보고 결정하도록 하십시다”.

14세의 세자 여고냐가 처음으로 최종후보에 오른 두 처녀와 선을 본다. 그런데 여고냐의 눈길이 자꾸만 외무대신 아히감의 딸 아비가일을 향하고 있다. 그녀에 비하여 제사장 스라야의 딸인 안나가 미모나 지적인 모습에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살이 더 적으니 더 좋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세자 여고냐가 아비가일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대신 아히감의 저택을 자주 출입하면서 별채에 있는 그녀를 멀리서 몇 번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눈에서 가까워지면 벌써 친근감이 생겨서 더 마음에 드는가 보다. 따라서 세자 여고냐의 낙점은 17세인 아비가일이 세자빈이고 16세인 안나가 후비이다.

그 결과를 보고서 여호야김왕 부부가 대단히 기뻐한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세자빈이 17세이므로 세자와 합방하면 금방 자녀를 생산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가에서는 일찍 자손을 얻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또 하나는, 제사장 스라야의 집안보다는 대신 아히감의 집안이 예루살렘에서 더 명문가이기 때문이다.

여호야김왕 부부의 소원대로 세자 여고냐와 두 처녀가 혼인식을 올리고 차례로 합방하게 되자 자녀가 출생하기를 시작한다. 이듬해에 세자빈이 먼저 아들을 생산한다. 여호야김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이름을 스알디엘이라고 짓는다.

주전 599년에는 후비 안나가 아들을 낳는다. 그 이름을 여호야김왕이 말기람이라고 지어준다. 그 다음해인 주전 598년에 세자빈 아비가일이 두번째 아들을 생산한다. 세자 여고냐가 아들 셋을 얻은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다윗왕가에서는 크게 축하를 한다.

왕족들이 모두 기뻐하는 것을 보고서 여호야김왕이 이제는 3아들의 아비가 된 세자 여고냐에게 마음에 드는 대로 아들 이름을 지어주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여고냐가 브다야라고 짓는다. 그 이름은 부왕의 외조부인 귀족 브다야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왕궁에 거처하고 있는 대비 스비다가 크게 기뻐한다. 친정아버지의 이름이 왕손에게 물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인 여호야김왕에게 한마디를 한다; “세자의 효심이 깊어요. 홀로 왕궁에 기거하고 있는 이 할미의 마음까지 위로를 해주니 말입니다. 주상은 복이 많아요… “.

세자 여고냐가 셋째 아들을 얻은 주전 598년까지는 다윗왕조 유다왕국이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주전 601년부터 시작한 군사력증대와 군비강화가 만 3년만에 눈에 띄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유다왕국의 군사력이 강해지자 주변국들이 감히 침략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렇게 자주적이고 강력한 유다왕국을 건설하자 여호야김왕이 기분이 좋다. 이제는 세자가 17세이고 왕손이 3명이나 된다. 주변의 강대국인 애굽제국과 신바벨론제국이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아직 전쟁을 벌이지 아니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다왕국이 천하태평인 것이다.

여호야김왕은 자신이 정치를 잘해서 유다왕국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예루살렘성전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궁궐로 불러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우려하고 있는 인물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살고 있다. 외무대신 아히감의 저택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집주인인 아히감과 함께 유다왕국의 여호와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한 것을 자주 한탄하고 있다.

예루살렘성전에서는 제사장 스라야와 같은 여호와신앙이 투철한 자들이 다윗왕가의 무사안일을 한탄하고 있다. 성군 요시야의 시절에 잠시 유월절을 지키고 그 후에는 그의 아들들이 연이어 국왕이 되고 있지만 하나같이 부왕의 모범을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왕조라고 하면 다윗대왕의 여호와신앙을 따라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런데 성군 요시야 시대를 제외하면 근래 다윗왕가의 왕들이 그러하지가 아니하다. 그러니 예루살렘의 귀족들과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황금만능주의 사조에 젖어서 살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향락문화가 예루살렘과 유다왕국에 만연되고 있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바알을 섬기는 산당제사에서 여사제와의 혼음을 제도화하고 있다. 따라서 바알신을 섬기는 여제자들이 유다의 남자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스다롯을 섬기는 남자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린 다음에는 스스로 남창이 되어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아스다롯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는 부녀자들과 성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더구나 남자들과도 남색하고 있다. 그러한 시대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질책과 우리야 선지자의 강력한 질타가 예루살렘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야김왕은 회개하지를 아니하고 있다. 대부분의 예루살렘 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를 미워한다. 그 결과 여호야김왕이 애굽으로 피신한 선지자 우리야를 잡아와서 참형에 처하고 만다(26:20-23). 선지자 예레미야는 외무대신 아히감이 은밀하게 숨겨 주었기에 겨우 살해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26:24).

가택연금생활에 들어간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왕 4년인 주전 605년에 제자인 바룩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구술하여 주고 그것을 글로 적어서 백성들에게 선포하라고 지시한다. 그때 사마리아성에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치욕을 당하고 돌아온 여호야김왕이 유다왕국을 보호하지 아니한 여호와의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분노한다.

그 결과 그는 선지자 우리야를 처형하였으며 선지자 예레미야까지 체포하고자 나선 것이다. 그렇지만 에루살렘 성내에는 여전히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이 제법 있다. 그들이 주전 604년에 여호야김왕에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금식기도를 시행하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을 여호야김왕이 어렵게 받아들인다. 그러자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제자인 서기관 바룩에게 기록하게 한다. 그것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라고 지시한다.

그 내용을 들은 일부 대신들과 제사장들이 그 예언의 기록을 국왕에게 보이면 혹시 여호와신앙심이 생겨날지 모르겠다고 예단한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왜냐하면, 바룩이 기록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불에 태워버리는 만행을 여호야김왕이 자행하고 말기 때문이다(36:20-25).

그것을 보고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극소수의 예루살렘 대신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탄식한다. 그 결과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믿고서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을 피하고 화친을 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일부 대신들이 은밀하게 행동에 나서게 된다.

외무대신 아히감이 몇 년 후 벼슬을 버리고 자택에서 은거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그다랴엘리엘을 바벨론으로 유학보낸다. 그와 달리 예루살렘의 귀족인 가레아는 아들들을 애굽의 수도로 유학을 보낸다. 그들은 여호와의 예언을 듣지 아니하고 있는 여호야김왕의 유다왕국이 결국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리 그 후의 시대를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자인 여고냐는 그렇게 가볍게 행동할 수가 없다. 여호야김왕이 부친이며 또한 그가 유다왕국의 국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17세가 된 주전 598년에 예루살렘에서 바쁘다. 동방에 있는 신바벨론제국의 움직임이 심상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느부갓세살 황제가 서쪽에 있는 유다왕국의 주변국인 아람과 암몬 그리고 모압에 전령을 보내어 군사를 내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첩보이다. 그것은 멀지 아니하여 느부갓네살이 다국적군대를 이끌고 유다왕국을 징벌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전 601년부터 여호야김왕이 바벨론으로 가는 조공을 끊어버리고 그 대신에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느부갓네살 황제가 반역의 조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압도적인 원정군을 편성하여 유다왕국을 초토화시켜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첩보를 받고 있는 여호야김왕과 세자 여고냐는 군비를 강화하고 전선을 시찰하기에 바쁘다. 그 대신에 일부 귀족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자녀들을 바벨론이나 애굽으로 빼돌리기에 바쁜 것이다.

참으로 어수선한 주전 598년의 예루살렘 유다왕국이다. 과연 세자 여고냐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