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주후 31년 10월경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남행하면서 예수님이 시행하신 일들”(눅10:1-4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8. 22. 04:05

제목; “주후 31 10월경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남행하면서 예수님이 시행하신 일들”(10:1-42)

설교일; 주후 2024 10 13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 22일 목요일 작성)

 

오늘의 본문에 대한 검토를 시작할 때에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관련기록은 요한복음 제7장의 앞부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복음사역을 하면서 공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경험자가 막내 사도 요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그의 복음서 기록이 정확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그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주후 29 4월과 30 4월의 유월절에 연이어 예루살렘을 2차례 방문하였으나 결국은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안식일을 어기는 죄인으로 규정이 되어 그들의 살해위협을 받기에 이른 것임, 5:15-18)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이제는 주후 31년의 가을에 접어들어)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סֻּכֹּ֛ות, 히브리어로 숙곳이며 태양력으로는 10월 중순이며 8일간임, 23:34-36)이 가까운지라. 3. (예수님의) (13:55,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로서 소위 이종동복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변방 갈릴리)를 떠나 (선민이 많이 살고 있는)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세상에 나아가 그 뜻을 크게 펴기를 원하면서) 묻혀서(고향이 있는 갈릴리 일대에서만 조심스럽게)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형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선친 목수 요셉의 혈통이 아님을 남동생들이 진작에 알고 있기에 그를 다윗대왕의 후계자인 메시아로는 일체 믿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1:18-25). 10. (비록 가난한 나사렛의 목수 집안이지만 그래도 다윗혈통인) 그 형제들이 (가을 초막절)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후에 (예수님) 자기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되,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7:1-5, 10).

그때는 예수님의 공생애 3 6개월 가운데 마지막 6개월을 남기고 있는 시점입니다(10:1). 누가복음 제3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주후 28 10월경 초막절 무렵에 30세가 되자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를 시작하고 있습니다(3:1-2, 23).

그러므로 요한복음 제7장 앞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초막절은 주로 갈릴리에서 3년간 복음사역을 하신 예수님이 이미 사도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2차례나 예언한 그대로(9:20-27, 44-45) 이제는 대속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자신의 결심을 굳건히 하면서(9:51-56) 남하하고 있는 주후 31 10월초인 것입니다(9:51-52, 10:1-2);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사마리아와 유대 땅에 대하여 가급적 빠르게 천국복음을 두루 전파한 다음에 이듬해 곧 주후 32 4월경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처형을 당하게 되시는 것입니다(22:7-8, 66-71, 23:1-3, 24-26, 44-49).

6개월 곧 반년 동안에 예수님 일행은 사마리아와 유대지역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듬해 4월 초순에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유월절 양으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지역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을 빨리 전파하고 병든 자, 장애자, 귀신 들린 자를 대대적으로 치유하기 위하여 70인의 제자들을 35개조로 나누어 한꺼번에 파송하고 있습니다(10:1-9).

일찍이 갈릴리지역에서 12사도에게 위임한 바와 같은 강력한 복음전파의 능력은 물론 각종 질병과 장애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소위 축사(逐邪)의 권세까지 제자 70인에게 아낌없이 부여하고 있습니다(9:1, 10:9). 그리고 제자들이 방문한 지역을 예수님은 스스로 빠른 속도로 재차 방문하고 있는 것입니다(10:1).

특히 예수님은 선민 유대인과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이분법을 철폐하고자 하십니다. 그 방법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제자들과 백성들 그리고 바리새인 모두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10:29-37). 그러므로 그 비유가 가리키고 있는 궁극적인 교훈이 다음 두가지라고 하겠습니다;

(1)  하나는, 창조주 여호와는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를 사랑하며 그들의 생명을 전부 구원하기를 원하신다고 하는 만민구원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10:33-37).

(2)  또 하나는, 영생구원의 기준은 선민구원 이방인 멸망이라는 잘못된 유대교식의 이분법이 아니라 그 출신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영생으로 구원한다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만민평등의 천국복음인 것입니다(10:25-28, 37, 22:12-14).

그 비유가 율법선생인 어느 랍비와의 대화 가운데 등장하고 있으므로 그 점을 감안하여 예수님의 메시지를 말하자면,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의 해석에 있어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그 대목을 근본적으로 선민의 이웃은 같은 유대인이므로 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며 주변의 이방인들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여호와의 진노와 멸망의 대상이라고 잘못 인식하여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랍비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와 같이 사랑과 구원의 대상인 이웃을 역사적으로 동족인 유대인으로 제한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하나님 말씀풀이가 참으로 잘못된 것임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결국 그 비유의 깊은 의미는, 선민과 이방인을 구분하거나 차별하지 아니하고 그들 모두는 창조주 여호와가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구원의 대상임을 확실하게 알아야 현실적으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하나님복음을 제대로 실천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0:27, 5:44-48).

그 다음에는 세속적인 일에 분주한 것보다는 시간을 내어 예수님으로부터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예루살렘 인근에 있는 교외마을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르다와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9:38-42).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면 오늘의 본문은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주제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사마리아에서 실시되는 단기간 35개조의 전도사역(10:1-16), ②그 엄청난 결과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감사의 기도(10:17-24), ③선한 사마리아인을 생각하라는 말씀(10:25-37), ④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 베다니에서 주신 가르침의 말씀(10:38-42) 등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누가복음 제10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성도들의 세상살이의 방법론이 다음과 같이 3가지라는 것입니다;

(1) 첫째, 유대인으로 구성된 12사도가 아니라 이방인 제자까지 참여한 70인의 제자로 사마리아 전도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많은 선교팀을 내보내고 현지인 제자를 참여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빠른 전도의 열매를 얻을 수가 있는 전도의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본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가 창조한 이웃을 하나같이 내 몸과 같이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모두 자신의 이웃으로 인정하고 함께 구원을 얻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신앙인 것입니다.

(3) 셋째, 세상적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복음의 뜻을 듣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아니하고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하여 무지하게 열심히 일하고 살아보아야 그것으로 자신의 영생구원을 결코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빠른 속도로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9:52-56,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선택하여) 따로 70인을 (전도일꾼으로)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사마리아지역의)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2씩 앞서 보내시며(일찍이 갈릴리지역에서는 예수님이 12사도에게 제자들을 붙여서 12개조를 운영하여 복음전도를 실시하심, 9:1-7. 그것보다 사마리아지역에서는 훨씬 많은 35개조를 조직하고 운영하여 빠른 시간내에 필요한 전도를 전부 마치고자 하심. 그 뒤를 예수님이 아주 빠른 속도로 재차 방문하시는 것임. 그만큼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월절에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예수님의 일정이 빡빡한 것임),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천국에 계시는 여호와)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복음사역을 해야 하는 지역은 넓은데 예수님의 일정이 바쁘고 전도일꾼이 부족한 것임. 그것이 기도제목임).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악한 영의 조종을 받고 있는 지역민들의 저항이 클 것임을 미리 알고 계심). 4.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로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성령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물심양면으로 크게 발생할 것이므로)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복음사역에만 전념하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그 옛날 선지자 야곱처럼, 47:7, 10,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처럼, 24:36)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선한 마음의 열매는 주님의 상급으로 돌아옴, 11:1).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주님이 마련하여 주신 일정과 도우심에 만족하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그 옛날 거짓선지자 발람처럼 세상적인 대접과 이익을 쫓아 움직이지 말라, 22:17, 32).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12사도의 경우와 같이 이미 제자들에게 위임한 권능과 권세로, 9:1-2)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병고침은 수단이며 목적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구원을 위한 천국복음의 전파임).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9:5, 미련없이 주님의 손에 맡기도록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날(종말심판의 날) 소돔이(19:24-25)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역사심판보다 종말심판이 영벌에 관한 심판이므로 더욱 절망적인 것임, 20:13-15). 13. 화 있을진저 (가버나움 북쪽의 성읍) 고라신, 화 있을진저 (가버나움 동북쪽의 작은 성읍) 벳새다, (선민 유대인이 살고 있는)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이방인 곧 페니키아사람이 살고 있는)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그 옛날 선지자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자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3:5-6, 12:41)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8:11-12, 선민사상과 의인사상에 젖어서 그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서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진심으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종말심판을 받고 마는 것임). 15. (많은 주민들이 그리스도의 천국복음보다는 현세적인 복락을 주겠다고 하는 마귀의 거짓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4:6-7)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인하여 추락하게 되는 것임, 14:14-15).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스승이신 예수님이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자신들에게 전해주었다고 제자들이 믿고서 그대로 전도현장에서 실시한 결과 놀라운 이적의 발생을 보게 된 것임, 17).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완전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머리 권세를 깨뜨리시는 것임, 3:15).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6:12, 미워하는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그 사람을 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이 진짜 원수인 것임)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성령이 임재하여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8:30),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8:31,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영생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유한한 삶을 사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임, 3:10-16, 11:16, 21:27)”(10:1-20);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9:52-56,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선택하여) 따로 70인을 (전도일꾼으로)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사마리아지역의)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2씩 앞서 보내시며(일찍이 갈릴리지역에서는 예수님이 12사도에게 제자들을 붙여서 12개조를 운영하여 복음전도를 실시하심, 9:1-7. 그것보다 사마리아지역에서는 훨씬 많은 35개조를 조직하고 운영하여 빠른 시간내에 필요한 전도를 전부 마치고자 하심. 그 뒤를 예수님이 아주 빠른 속도로 재차 방문하시는 것임. 그만큼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월절에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예수님의 일정이 빡빡한 것임),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천국에 계시는 여호와)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복음사역을 해야 하는 지역은 넓은데 예수님의 일정이 바쁘고 전도일꾼이 부족한 것임. 그것이 기도제목임).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악한 영의 조종을 받고 있는 지역민들의 저항이 클 것임을 미리 알고 계심). 4.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로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성령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물심양면으로 크게 발생할 것이므로)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복음사역에만 전념하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그 옛날 선지자 야곱처럼, 47:7, 10,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처럼, 24:36)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선한 마음의 열매는 주님의 상급으로 돌아옴, 11:1).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주님이 마련하여 주신 일정과 도우심에 만족하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그 옛날 거짓선지자 발람처럼 세상적인 대접과 이익을 쫓아 움직이지 말라, 22:17, 32).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12사도의 경우와 같이 이미 제자들에게 위임한 권능과 권세로, 9:1-2)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병고침은 수단이며 목적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구원을 위한 천국복음의 전파임)”(10:1-9);

1)    누가복음 제3장 제1-2절에 기록되어 있는 연대를 가지고 추정을 해보면 세례 요한의 공생애는 주후 28년 봄 유월절 무렵에 시작이 되고 그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난 나사렛 예수의 공생애는 그해 가을 초막절 무렵에 시작되고 있습니다(1:36절과 눅3:23절도 참조함). 그런데 요한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시작한 이듬해 유월절 무렵 곧 주후 29 4월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성전청결사건을 일으키고 은밀하게 산헤드린 대공회원인 니고데모를 만나게 됩니다(2:13-22, 3:1-10).

2)    그 다음해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지만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된 병자이며 장애자인 한사람을 안식일에 낫게 해준 일로 말미암아 안식일 규정을 위반한 자라는 죄목으로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5:1-18). 그때부터 유월절을 맞이하여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전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저 고향 나사렛이 있는 갈릴리 일대에서만 복음사역을 조심스럽게 시행하고 있습니다(7:1).

3)    그러나 공생애를 시작한지 3년이 지나가려고 하자 그때에는 더 이상 예루살렘으로 남행하는 일을 미룰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자신의 공생애가 3 6개월이며 그 끝에는 주후 32 4월 유월절기간에 대속의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9:51-53). 그리하면 무덤속에서 3일후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불러모아 재교육을 시행하고 40일후에는 감람산에서 승천하게 되십니다(24:1-12, 44-53).

4)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게 만들어주면 그때부터 성령세례를 받은 제자들이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초대교회의 시대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24:49, 1:8, 2:1-4). 그와 같은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남하하는 길에 마주치고 있는 사마리아지역에 대해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복음전파를 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이 12사도를 조장으로 사용한 갈릴리 지역에 대한 전도보다 더욱 적극적인 것입니다(9:1-6, 10:1).

5)    많은 제자들 가운데 사마리아 현지출신을 포함하여 70명의 제자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갈릴리지역에서 12사도에게 시행한 것과 같이 복음을 전파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모두에게 부여하여 여러 성읍으로 일시에 파송하는 것입니다(10:1-9). 2명씩 35개조를 조직하여 운영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갈릴리지역에서 12사도가 앞장을 서서 시행한 12개조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입니다.

6)    그리고 그 뒤를 예수님이 따라가면서 재차 천국복음을 전파하십니다(1). 물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들 35개조의 사마리아지역 전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에 따라 70명의 제자들이 가는 그 길에서는 숙식을 해결해주는 집도 복음전파를 위한 장소도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자리도 일체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팀은 별도의 여비나 준비물이 사실 필요하지가 않습니다(4-9).

7)    그리고 빠른 전도를 위해서는 별도로 친지를 방문하는 등의 개인적인 볼 일을 볼 수도 없습니다(4). 오로지 현지에서 주님이 준비하신 것들을 먹고 마시면서 복음사역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치유의 사역을 할 때에는 반드시 천국복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9). 왜냐하면, 육신을 고치는 것은 하나의 수단이지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한한 삶을 끝내고 주님으로부터 영생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8)    예수님은 마음은 바쁜데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언제나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에 따라 제자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더 많은 일꾼을 보내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고 특히 현지인을 전도일꾼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2, 66:21, 28:19-20). 그리고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악한 영들의 준동이 심각합니다(3).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언제나 간구하면서 복음전파에만 매진하여야 합니다. 자칫 한눈을 팔게 되면 마귀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4절과 7).

(2)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9:5, 미련없이 주님의 손에 맡기도록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날(종말심판의 날) 소돔이(19:24-25)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역사심판보다 종말심판이 영벌에 관한 심판이므로 더욱 절망적인 것임, 20:13-15). 13. 화 있을진저 (가버나움 북쪽의 성읍) 고라신, 화 있을진저 (가버나움 동북쪽의 작은 성읍) 벳새다, (선민 유대인이 살고 있는)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이방인 곧 페니키아사람이 살고 있는)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그 옛날 선지자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자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3:5-6, 12:41)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8:11-12, 선민사상과 의인사상에 젖어서 그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서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진심으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종말심판을 받고 마는 것임). 15. (많은 주민들이 그리스도의 천국복음보다는 현세적인 복락을 주겠다고 하는 마귀의 거짓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4:6-7)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인하여 추락하게 되는 것임, 14:14-15).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스승이신 예수님이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자신들에게 전해주었다고 제자들이 믿고서 그대로 전도현장에서 실시한 결과 놀라운 이적의 발생을 보게 된 것임, 17)”(10:10-16);

1)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전도여행을 떠나고 있는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다음과 같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천국복음의 전파자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성읍에 대해서는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고 하는 심정으로 미련스럽게 씨름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0). 그곳의 전도만을 위해서 뼈를 묻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때로 전도여행의 설계자이며 파송자인 주님의 뜻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게 합니다.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이지 사람의 의지와 공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17:10, 1:12-14).

2)    또 하나는, 천국복음을 영접하지 아니하는 동네에 대해서는 전도자가 미련없이 자신의 신발을 털어버리고 물러나야 합니다(11). 그 이유는 그렇게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맡겨드릴 때에 그 뒤를 따라 방문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크게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절과 11). 만약 고약하고도 미련하게 세상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현지인들이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면하거나 배척하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경고가 본문에서 두렵게 나타나고 있습니다(12-16).

3)    소돔에 대한 불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육신을 멸하는 역사적인 불 심판 뿐만이 아니라(19:24-25) 그 영혼까지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처해지는 최후의 심판이 찾아오고 말기 때문입니다(25:46, 5:24-29). 특히 예수님은 지난 3년간 주로 고향이 있는 갈릴리지역에서 복음사역을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영접한 주민들보다 그러하지 아니한 백성들이 더 많았다고 하는 사실이 본문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13절과 15).

4)    그 결과 그러한 불신앙인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임할 것인데 그것이 이방인의 경우보다 더욱 심각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12-14).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이기적인 선민사상과 현세적인 메시아사상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하고 있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크게 반대하고 배척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5-16). 그러므로 오늘날 자기 집단이나 자기 민족의 우월사상에 빠지고 또한 끼리끼리 결탁하여 세상적인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강력한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각보다 창조주 여호와의 종말심판과 새역사의 창조가 훨씬 빠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16, 24:32-39, 48-51, 1:7-8).

(3)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완전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머리 권세를 깨뜨리시는 것임, 3:15).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6:12, 미워하는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그 사람을 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이 진짜 원수인 것임)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성령이 임재하여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8:30),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8:31,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영생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유한한 삶을 사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임, 3:10-16, 11:16, 21:27)”(10:17-20);

1)    갈릴리와 사마리아는 두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에는 선민사상을 지닌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사마리아에는 이방인처럼 변해버린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에 참여했던 10지파의 자손들이 혼혈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왕하17:23-24). 또 하나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호와를 우상의 하나로 여기면서 소위 다신론(多神論)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왕하17:28-29). 그와 달리 유대인들은 유일하신 여호와신앙을 전통적인 자신들의 유대교로 파수하고 있습니다(6:4-5).

2)    그런데 예수님이 12사도를 보내어 갈릴리지역에서 복음전도활동을 한 경우와 지금 70인의 제자들을 보내어 사마리아 지역에서 전도활동을 한 결과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하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화 되어버린 사마리아 지역에서 도리어 전도의 열매가 풍성한 것입니다(17-18).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유대교인인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세속적인 것으로 타락시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크게 보아 3가지입니다;

3)    첫째, 만군의 여호와는 오로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매우 이기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둘째,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풀이도 매우 아전인수격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의 백성인 선민 이스라엘만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은 전부 선민인 자신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고 그렇게 독점욕에 사로잡혀서 종교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들의 메시아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가 메시아를 유대 땅에 보내어 주시면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처럼 외세를 일거에 물리치고(왕하19:34-35) 또한 다윗대왕이 건설했던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여(삼하8:1-14) 유대인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4)    그와 같은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탐욕에 사로잡혀 종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므로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들의 잘못된 신앙을 질책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아예 나사렛 예수를 유대교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서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정죄하고 로마총독의 사형집행권을 빌려서 없애 버리고자 합니다(5:18, 18:31, 14:1-2, 10-11, 27:1-2). 그러므로 무지한 이방인을 회개시키는 것보다 잘못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유대교인들을 회개시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5)    이제 예수님이 몇 달 후에 예루살렘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 들어가게 되면 이 세상에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3일만에 예수님은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십니다. 제자들을 천국복음으로 재무장하여 온세상에 복음전파자로 파송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아버지께 부탁하여 제자들에게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십니다(14:16-20, 24:49, 1:8). 그 목적은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 제자들이 온세상에 나아가서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많은 백성을 구원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19, 28:18-20).

6)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여 성도들에게 내주 역사하시게 되면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회개하는 백성들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놀라운 시대가 전개될 것입니다(2:1-4, 36-42). 그에 대한 표현이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6:12, 미워하는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그 사람을 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이 진짜 원수인 것임)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성령이 임재하여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8:30),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8:31,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10:19). 그러나 유한한 인생의 궁극목적은 역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의 인도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임을 예수님이 다시 한번 강조하고 계십니다(20, 11:16, 21:27).  

둘째로,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사람의 원수인 사탄과 악한 영을 물리친 일을, 17-18)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실천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자인 그리스도)게 주셨으니(5:27, 8:25-30, 10:30, 38, 17:10),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계시의 주관자가 성자 하나님이심, 11:27),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아브라함의 경우는 요8:56).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그 옛날 수많은 믿음의 열조들이 생전에 구원주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소원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무덤속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무덤 속 부활을 바라고 있는 것임, 5:24-29). 25. 어떤 (랍비인)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어려운 문제를 내어, 4:2)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부자관리의 질문과 같은 것임, 18:18)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그 랍비가) 대답하여 이르되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6:5, 쉐마임), 또한 (선민사회에서의)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19:18, 5:43)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선민 유대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선민인)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역시 선민인)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4:9)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응급처치를 하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입원하고 보살펴준 것임).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20:2) 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3사람(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여호와의 성품인 헤세드 곧)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12:30-31)”(10:21-37);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사람의 원수인 사탄과 악한 영을 물리친 일을, 17-18)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실천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자인 그리스도)게 주셨으니(5:27, 8:25-30, 10:30, 38, 17:10),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계시의 주관자가 성자 하나님이심, 11:27),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아브라함의 경우는 요8:56).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그 옛날 수많은 믿음의 열조들이 생전에 구원주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소원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무덤속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무덤 속 부활을 바라고 있는 것임, 5:24-29)”(10:21-24);

1)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다윗왕조의 유다왕국이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의 내침으로 멸망을 당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5:1-7, 11-12). 그후 주전 527년경 페르시아제국의 초대황제 고레스의 호의로 포로에서 해방이 된 유대인들이 다윗가문의 후계자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가문의 후계자인 예수아의 인도로 고토(故土)에 돌아와서(1:1-4) 작은 규모의 예루살렘 제2성전을 주전 516년에 건축하게 됩니다(6:15-18).

2)    비록 주전 586년에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불타버린 솔로몬성전과 비교하면(왕하25:9) 2성전은 4분의 1규모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감격스럽게도 70년만에 재건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여호와신앙은 성전의 재건처럼 그렇게 회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주전 458년경 율법학자인 에스라가 일부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유민들에게 히브리경전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3년후 주전 445년경에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제국의 황제 아닥사스다의 호의로 유대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3)    율법학자 에스라와 느헤미야 총독은 유대인들의 여호와신앙을 바로잡고 선민의 신앙의 순수성을 되살리고자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느헤미야 총독의 뒷배가 되어 주던 아닥사스다 황제가 주전 423년이 승하하고 나자 느헤미야의 권력이 졸지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기회를 노리고 있던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권력을 장악한 것입니다.

4)    대제사장은 암몬의 권력자 도비야와 손을 잡고 유대교의 교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것이 외세의존적이며 세속적인 타락한 종교행위에 불과합니다(그 선례가 13:7에 기록되고 있음). 그러한 유대교의 타락을 보고서 백성들이 십일조를 제대로 성전에 바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살길을 찾아 예루살렘을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그 선례가 13:10에 기록되어 있음). 

5)    그와 같은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서 주전 410년경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자신의 심정을 그의 소선지서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3:10-12). 그후 주후 28년경 요단 강가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칠 때까지(3:1-3) 유대사회에서는 옛날처럼 성령의 임재를 받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올바르게 깨달아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선지자가 일체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6)    따라서 그 사이의 400여년의 기간을 신구약의 중간시대 또는 회색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성령의 감동으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깨달아 백성들에게 외치는 선지자의 역할을 대신하고자 주전 2세기 중반부터 유대사회에 등장한 일단의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성령의 임재가 없더라도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 히브리경전을 읽고 그 뜻을 파악할 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사제지간에 힘을 합하여 100여년동안 세가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7)    첫째, 읽을 수 있는 히브리경전인 미크라에 대한 연구입니다. 둘째, 판소리처럼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 히브리경전인 미쉬나를 글로 적고 그것을 계속 증보합니다. 최종본이 탈무드입니다. 그 내용을 바리새인들이 역시 공부합니다. 셋째, 미크라와 미쉬나를 전부 공부하고 연구하여 용어사전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히브리경전의 뜻풀이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는 주석 곧 미드라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와 같은 노력이 사제간에 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8)    예를 들면, 경건한 유대인은 십대인 아들이 똑똑하면 그를 유명한 랍비 문하에 생도로 들이고 있습니다(22:3). 일종의 도제인 생도가 스승인 랍비로부터 10여년간 수학하여 미크라와 미쉬나 그리고 주석서인 미드라쉬를 공부하여 익히게 되면 30세 정도에 소정의 자격시험을 봅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면 그때부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 곧 랍비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수백명에 불과한 랍비 가운데 소수가 그 실력이 뛰어나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면 산헤드린 대공회에 회원으로 영입이 되고 있습니다;

9)    그들이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70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공회에서 비록 소수파이지만 종교재판에 있어서 최종적인 율법해석을 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판결을 내리는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율법학자 또는 교법사들을 예수님 당시에도 옛날에 사라진 왕국시대의 직위를 차용하여 여전히 서기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서기관, 랍비, 생도라고 하는 일종의 hierarchic structure’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대적인 배경에 비추어보면 본문의 말씀은 그 풀이가 가능합니다.

10)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될 수 있습니다;  70인의 제자들이 35개조를 이루어 사마리아 전역을 나누어 돌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와 장애자를 치유하며 귀신들린 자를 고쳤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열매가 풍성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땅에서는 성령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단지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율법교육을 실시한 바리새인의 시대가 너무나 오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영적으로 눈먼 자들입니다(4:24). 그리고 영이신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지도 못합니다(39:9). 오로지 인간의 눈과 백성들의 인기에 기대어 율법선생으로 또한 종교적인 의인으로 행세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독생자가 주관하여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여 주었는데(10:22, 11:27) 이제는 나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여 크게 역사하여 주시니 참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믿음의 열조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새언약의 시대(31:33)가 이와 같이 전개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복음사역에 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창조주 여호와의 큰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21-23절 의역).

(2)  25. 어떤 (랍비인)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어려운 문제를 내어, 4:2)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부자관리의 질문과 같은 것임, 18:18)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그 랍비가) 대답하여 이르되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6:5, 쉐마임), 또한 (선민사회에서의)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19:18, 5:43)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선민 유대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선민인)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역시 선민인)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4:9)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응급처치를 하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입원하고 보살펴준 것임).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20:2) 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3사람(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여호와의 성품인 헤세드 곧)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12:30-31)”(10:25-37);

1)    사마리아지역에는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의 유민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선민으로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는 역사적으로 둘입니다; 하나는, 주전 722년에 이스라엘 10지파가 참여한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악랄하게도 앗수르 황제는 선민임을 자랑하고 있는 이스라엘 10지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식민정책과 혼혈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습니다.

2)    그 방법이 이스라엘의 자손을 포로로 북송하여 앗수르제국 변방에서 살아가도록 만들고 그 대신에 그 땅에는 변방의 여러 족속을 옮겨서 살도록 조치했습니다(왕하17:23-24). 따라서 일부 고토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10지파의 백성들이 그만 식민정책으로 그 땅에 들어온 앗수르 변방의 족속과 혼혈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북조 이스라엘의 땅에 들어온 이민족들은 자신들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연히 사마리아에서는 여호와도 우상의 하나로 취급되고 만 것입니다(왕하17:33);

3)    따라서 주전 537년경 신바벨론제국이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이 출범하자 초대황제 고레스가 칙령을 내려서 포로들을 해방시켜주었지만(1:1-4) 고토로 돌아온 유대인들과 북쪽의 사마리아인들은 그 여호와신앙의 차이가 역력합니다. 유대교지도자인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여호와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예루살렘 제2성전을 재건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사마리아인들은 우상의 하나로 전락해버린 여호와를 모시고자 스룹바벨에게 함께 제2성전을 짓고 싶다고 말한 것입니다(4:1-2).

4)    그것을 보고서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일언지하에 그 요구를 묵살하고 맙니다(4:3). 그때부터 사마리아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적대시합니다(4:4). 그러나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에 제2성전이 건축이 되고 맙니다(6:14-18). 그러자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 자신들의 여호와성전을 건축합니다. 그러나 주전 128년 하스모니안 왕조의 군대에 의하여 그 성전이 파괴되고 맙니다. 그때부터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 당시까지 그리심 산의 산당에서 우상의 하나로 여호와를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4:20).

5)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사마리아지역에는 유대교인들이 모이는 회당이 없으며 율법선생인 랍비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그 현장에 느닷없이 랍비가 등장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둘입니다; 하나는, 예수님 일행이 갈릴리에서 남하하여 사마리아지역에 들어오자 그들의 복음사역을 감시하던 랍비들이 은밀하게 뒤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6)    또 하나는, 사마리아지역에서 예수님의 70명의 제자들이 여러 성읍을 돌면서 복음사역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고 있는 것을 보고서 랍비 한사람이 예수님을 골탕 먹이고자 어려운 문제를 질문형식으로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헬라어성경에서는 누가복음 제10장 제25절에서 특이한 용어 에크페이라존’(κπειράζων)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철저하게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그 용어는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사용한 페이라조’(시험하기 위하여 유혹하다, 4:2) 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그 용어가 4:7에도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7)    그 시험문제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입니다(25). 언뜻 보면 훗날 유대 땅에서 어떤 젊은 부자관리가 질문한 내용과 같습니다(18:18). 그러나 그 질문의 태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랍비인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골탕 먹이고자 어려운 문제를 시험삼아 던진 것이고(10:25) 부자청년은 정말 그것이 알고 싶어서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답변에 차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8)    부자청년의 질문에 대해서는 깊은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육신하여 인간의 아들이 되어버린 나 그리스도 예수도 여호와의 종이며 육신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의 절대선을 실천하기에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나보고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절대선은 오직 창조주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의 발휘라고 하는 진리를 인정하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만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공의의 정신아가페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서 우리 피조물인 인간들은 여호와 앞에 서게 되면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17:1). 따라서 누구나 구원주 그리스도를 믿고 여호와의 종의 법도를 지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한평생 여호와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에 여호와의 은혜로 영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18:19-30절 의역).

9)    반면에 랍비의 시험에 대해서는 반종(半種, 혼혈을 말함)이라고 사마리아인을 이방인처럼 멸시하지 말고 그들을 선한 이웃으로 잘 대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6:27, 31). 그것이 바로 그 랍비에게 역으로 질문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물음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율법규정이 무엇이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10:26절 의역). 히브리경전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치고 있는 랍비이므로 그의 대답이 대단히 좋습니다; “모세오경인 신명기 제6장 제5절에는 여호와를 전심전력으로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레위기 제19장 제18절에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27);

10)  그 대답을 흡족하게 여기시고 예수님이 진심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대로 시행하면 영적으로 살림을 얻을 수가 있다”(28). 그 랍비는 율법규정을 모두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선민인 동족 유대인을 나의 이웃으로 여기고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교묘하게 예수님에게 질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29). 그 질문에 대하여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온전히 해석하고 있는 예수님의 답변이 하나의 비유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속에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의 진수가 이해하기 쉽게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11)  그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30-35). 구태여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아가페 사랑을 들먹이지 아니하더라도 선한 사마리아인을 좋은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이방인을 선민과 함께 구원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결론이 다음과 같습니다; “너도 그와 같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말고 위기에 처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라”(37절 의역). 참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고 만민을 구원하고자 진심을 다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셋째로,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예루살렘의 근교마을인 베다니)(민박집을 찾아서) 들어가시매, (베다니 나사로의 바로 아래 여동생이며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민박) 집으로 영접하더라(몇 달 후에도 그러함, 11:20).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 (복음의) 말씀을 듣더니, 40. (손님대접을 하기 위하여 주방에서 분주한)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마리아)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개인적인 부탁까지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비록 손님이지만 그 집주인 나사로와 친한 사이임, 11:11).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세속적인)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세상일은 줄이고 이제는 영생의 구원에 관한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8:5-6). 마리아는 이 좋은 편(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듣는 것)을 택하였으니 (세상 염려와 분주함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천국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자 결단하면 기타의 세속적인 염려와 어려움을 해결하여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임. 따라서 성도는 안심하고서 지상명령의 실천과 성화를 이루는 삶에 진력할 수가 있는 것임, 28:18-20, 22:28-30, 4:11-13) 하시니라”(10:38-42);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예루살렘의 근교마을인 베다니)(민박집을 찾아서) 들어가시매, (베다니 나사로의 바로 아래 여동생이며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민박) 집으로 영접하더라(몇 달 후에도 그러함, 11:20).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 (복음의) 말씀을 듣더니”(10:38-39);

1)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 다윗시대부터 가장 큰 성읍이며 수도입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성전이 그곳에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 절기를 맞이하면 국내외에서 수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순례길에 나서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찾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예루살렘의 물가는 엄청 비쌉니다.

2)    자연히 부자가 아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지 못하고 교외지역의 민박집을 이용하고 있는데 가난한 변방 갈릴리 출신인 예수님 일행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3년이 넘도록 공생애 기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면 언제나 동편 감람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베다니의 민박집을 애용하고 있는데 그 집의 주인이 바로 동년배인 나사로입니다(11:11);

3)    그리고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여자가 나사로의 바로 아래 여동생인 마르다입니다. 그것으로 보아 나사로는 나이가 30대초반이지만 아직 미혼인 노총각입니다. 마르다의 여동생이 마리아인데 나이가 막내사도인 요한과 비슷합니다(그래서 그런지 베다니 마리아의 향유부음 사실을 사도 요한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음, 12:3). 베다니의 마리아는 예수님보다 10살 연하로 보입니다.

4)    마르다는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에 오면 언제나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으므로 그 일행을 마중하고 식사를 준비하기에 바쁩니다(38). 그와 달리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천국복음의 설명을 듣기에 열심입니다(39). 집주인 나사로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평소에는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시간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2)  40. (손님대접을 하기 위하여 주방에서 분주한)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마리아)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개인적인 부탁까지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비록 손님이지만 그 집주인 나사로와 친한 사이임, 11:11).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세속적인)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세상일은 줄이고 이제는 영생의 구원에 관한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8:5-6). 마리아는 이 좋은 편(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듣는 것)을 택하였으니 (세상 염려와 분주함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천국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자 결단하면 기타의 세속적인 염려와 어려움을 해결하여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임. 따라서 성도는 안심하고서 지상명령의 실천과 성화를 이루는 삶에 진력할 수가 있는 것임, 28:18-20, 22:28-30, 4:11-13) 하시니라”(10:40-42);

1)    12사도에 그 스승인 예수님을 포함하면 도합 13명입니다. 그리고 집주인이며 오빠인 나사로와 여동생 마리아 등을 포함하면 자기까지 마르다가 준비해야 하는 음식은 자그마치 16인분입니다.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마르다는 주방에서 매우 바쁩니다(40a). 도와주는 일손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그때문에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듣기에 열심인 여동생 마리아에게 눈짓을 여러 번 했지만 요지부동입니다. 마침내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일부러 다가와서 직접 요청하고 있습니다. 부디 마리아를 주방으로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40b).

2)    그때 의외의 답변이 예수님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세속적인)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세상일은 줄이고 이제는 영생의 구원에 관한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8:5-6). 마리아는 이 좋은 편(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듣는 것)을 택하였으니 (세상 염려와 분주함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10:41-42).

3)    그 의미를 간략하게 풀이해보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천국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자 결단하면 기타의 세속적인 염려와 어려움을 해결하여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안심하고서 지상명령의 실천과 성화를 이루는 삶에 진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28:18-20, 22:28-30, 4:11-13).

4)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여호와의 영생구원의 뜻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영적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어졌다는 것입니다(5:24). 벌써 그의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옮겨져 있으므로 이 세상에서 그 아무도 그것을 빼앗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10:28-29). 그러므로 세상적인 일에 골몰하여 그 영원한 생명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요컨대, 마르다의 일보다 마리아의 일이 훨씬 중요하며 우선적인 것이라는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본문에서 두가지를 강조하십니다; 하나는, 바리새인들이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해석하여 유대교인들에게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선민 유대인만이 여호와의 현세적인 구원의 축복을 받고 주변의 이방인들에게는 여호와의 저주와 진노가 멸망으로 주어진다고 하는 이분법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세상일에 분주하여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듣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방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바쁜 마르다 보다 예수님의 발치에서 천국복음을 듣기에 바쁜 마리아가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대조적으로 비교하여 알기 쉽게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그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본문의 말씀을 자주 음미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성도들에게 기타 세상일에 대한 염려와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주님의 큰 은혜가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