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충격적인 변화산상의 모습과 남하하는 예수님과 제자들”(눅9:28-6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8. 19. 00:22

제목; “충격적인 변화산상의 모습과 남하하는 예수님과 제자들”(9:28-62)

설교일; 주후 2024 10 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 19일 월요일 작성)

 

약속의 땅 가나안의 북쪽에서 발생하고 있는 충격적인 변화산상의 모습은 그 속에 한가지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그 진리가 다음과 같습니다; “35.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만민구원을 위하여 구세주로)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영생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제자들을 장차 천국으로 인도할 그리스도, 2:36, 4:12)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때에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과 오순절 성령의 강림과 내주 역사가 있기 전까지는, 2:1-11, 36-41)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9:35-36).

그 의미는 한마디로, 오직 예수님의 말만 듣고 그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가게 되면 변화산상에서 보여준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여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변화산상의 하나님나라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 그곳에 초막 3을 짓고 함께 살기를 소원하였지만 당장은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은 훗날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말씀한 그리스도의 예루살렘에서의 별세가 있게 되면(9:31) 그때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모세오경에 따르면 그 저자인 선지자 모세는 주전 1,406년경 120세의 나이로 염해 동북면에 있는 느보산에 올라가 비스가 산지 서쪽 정상에서 멀리 요단강 건너편에 펼쳐지고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풍경을 전부 관찰한 다음에 소천합니다(34:1, 5). 백성들이 그 시신을 그 산지의 골짜기에 묻었으나 오늘날 그 묘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34:6). 도대체 이스라엘의 국부(國父)로 볼 수 있는 모세의 시신은 어디로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

1)   그 점에 대하여 먼 훗날 장로 유다가 그의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9. (여호와의) 천사장 미가엘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죄와 사망의 법을 주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8:2)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훗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하나님 복음을 전파하시고 회개하는 백성을 주님의 제자로 삼아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하다가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역할을 마귀가 방해하고 있으므로 그를 엄중하게 처벌하게 된다는 것임, 20:2) 하였거늘,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만민을 구원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지 못하고 함부로)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창조주 여호와의 세상구원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현세의 부귀영화만을 본능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자들은 전부 종말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고 마는데 그 부류가 3종류임). 11. 화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첫째 부류는 가인처럼  여호와의 전능하신 눈을 속이고 완전범죄를 실행할 수 있다고 제멋대로 믿고 있으며, 4:7-12),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둘째 부류는 세상적인 이익을 탐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저버리는 발람과 같은 자이며, 22:17, 32-33, 25:1-3, 31:8), 고라의 패역을 따라(셋째 부류는  하나님의 고유권한을 침범하는 고라와 같은 무도한 자이므로, 16:8-11) 멸망을 받았도다”(1:9-11).

2)   요컨대, 죽은 모세를 영원히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잡아두고자 하는 마귀의 계획이 훗날 여호와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맞아들이고 있는 주님의 역할로 말미암아 무산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세가 변화산상에 나타나 여호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이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제는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음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9:31).

(2) 둘째로, 엘리야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바알 신을 주신으로 섬기고 있는 영적으로 캄캄한 북조 이스라엘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 시대에 여호와의 쓰임을 크게 받은 선지자입니다(왕상17-19). 그는 훗날 수제자 엘리사에게 남은 일을 맡기고 요단강가에서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자 회오리 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왕하2:11);

그와 같이 특이하게 휴거한 선지자 엘리야가 변화산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시대가 시작이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일이 시작된다는 것으로 풀이가 되고 있습니다.

(3) 셋째로, 변화산상에서 사도 베드로가 자기도 모르게 초막 3을 짓고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를 모시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9:33). 그러나 그 소망은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훗날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다음과 같은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1:29, 36) 골고다에서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야만 합니다(23:44-49).

2)   둘째, 무덤속에서 3일만에 예수님이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24:6-9) 40일간 제자들에게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며 부활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24:44-49).

3)   셋째, 부활하신 주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마치 그 옛날의 선지자 엘리사처럼 그 믿음이 확고하게 됩니다(24:50-53, 왕하2:9-14). 그들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님의 임재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되면 주님의 뒤를 따라 승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1:8, 2:1-4, 22:28-30).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은 모세나 엘리야가 비록 변화산상에 펼쳐진 하나님나라의 환상 가운데 등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는 구원주 그리스도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고 그 길을 열어주는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14:1-3). 그러므로 35.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35)는 여호와의 음성은 지금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성도들의 삶에 동행하시며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에 따라 변화산상의 이적이 있은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남하하기 시작하십니다. 그 가운데 본문에서는 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 만나게 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9:37-6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28. 이 말씀을(사도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자가 있다는 말씀을, 27) 하신 후 8일쯤 되어 예수께서 (수행사도 3명 곧)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16:13, 빌립보 가이사라의 북녘에 있는 헬몬산 남쪽줄기의 어느)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1:14, 인자인 예수님에게 독생자의 영광이 임하여 그)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1:9, 34:6, 천사장 미가엘이 그 시신을 하늘로 옮겨간) 모세와 (요단강가에서 승천한, 왕하2:11)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1:29,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여호와의 독생자) 예수의 영광(9:3-4)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모세와 엘리야)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3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임)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모세와 엘리야가 완전히 사라짐). (3사도들 역시)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여호와의) 소리가 (사람의 음성처럼 울려)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그리스도의 말만이 구원을 얻는 길임, 3:22-23, 4:12)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훗날 사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때에는(24:45-48, 예수님이 부활하여 이제는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9:1, 사도들에게 벌써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었지만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여 그 일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어 스승이신 예수님의 마음이 상하고 있음).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내가 직접 축사의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하시니, 42. (가까이)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귀신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쫓겨나기 전에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임).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현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9:28-43a);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8. 이 말씀을(사도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자가 있다는 말씀을, 27) 하신 후 8일쯤 되어 예수께서 (수행사도 3명 곧)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16:13, 빌립보 가이사라의 북녘에 있는 헬몬산 남쪽줄기의 어느)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1:14, 인자인 예수님에게 독생자의 영광이 임하여 그)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1:9, 34:6, 천사장 미가엘이 그 시신을 하늘로 옮겨간) 모세와 (요단강가에서 승천한, 왕하2:11)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1:29,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여호와의 독생자) 예수의 영광(9:3-4)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모세와 엘리야)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3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임)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모세와 엘리야가 완전히 사라짐). (3사도들 역시)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9:28-34);

1)    예수님은 사도와 제자들을 데리고 가버나움을 떠나 산이 많은 북쪽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분봉 왕 헤롯 빌립2세가 다스리고 있는 드라고닛 지방의 수도인 빌립보 가이사라에서 조용히 사도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말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십니다(16:13). 그때 사도 베드로의 놀라운 신앙고백이 있게 됩니다(16:16, 9:20). 그러자 예수님이 사도들 가운데 몇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생전에 보게 될 것임을 언급하십니다(9:27);

2)    그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드라고닛 지방을 벗어나 북쪽으로 이동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드디어 8일후에 스승이신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헬몬산 남쪽줄기의 어느 산에서 변화산상의 환상을 수행사도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28b-29). 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갑자기 변하여 여호와의 독생자의 영광이 드러나고(29, 1:14)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습니다(30).

3)    그들의 대화내용은 벌써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예언하신 것으로서(22) 자신의 대속의 죽음 곧 예루살렘에서의 별세에 관한 것입니다(31). 스승이신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형을 받고 그곳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할 것임을 알고서 밤새 기도에 힘쓰고 계시는데 수행사도 3사람은 당사자가 아니므로 습관적으로 잠에 빠져 있습니다(22:45). 그렇지만 변화산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환상 가운데 펼쳐져 있는 것을 홀연 잠이 깨어 보게 된 것입니다( 32).

4)    그 광경이 참으로 놀랍고도 황홀합니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모세와 엘리야가 그 자리를 떠나고자 합니다(33a). 그것을 보고서 사도 베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얼른 스승에게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초막 3을 여기에 지어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를 모시고 영원히 함께 살고 싶으니 두사람을 붙잡아 달라는 것입니다(33b). 그 순간 짙은 구름이 나타나 모든 사람을 감싸고 있습니다(34a). 그 구름속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오직 스승 예수의 모습만 보이는데 모든 피조물이 두려워하는 창조주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34b, 20:18-19).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2)  35. 구름 속에서 (여호와의) 소리가 (사람의 음성처럼 울려)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그리스도의 말만이 구원을 얻는 길임, 3:22-23, 4:12)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훗날 사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때에는(24:45-48, 예수님이 부활하여 이제는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9:35-36);

1)    짙은 구름속에서 들려오고 있는 여호와의 음성은 한가지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지 이 세상에 율법을 준 모세나 하늘로 승천한 큰 선지자 엘리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35절 의역).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는 장차 이 세상을 구원하는 대속자 그리스도가 오실 것임을 예언한 자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눅24:44-45, 11:16, 26).

2)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환상 가운데 잠시 펼쳐진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떠나가지만 사도들의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남아 계십니다(36a). 그리고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여호와의 음성만이 사도들의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35). 그 음성이 오랜 세월 사도 베드로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3)    그렇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동족 유대인들의 현세적인 소원 곧 정치적인 메시아가 이 세상에 와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여 주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10:37-41). 그런데 그의 소원이 스승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자 그만 무너지고 맙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을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가 아니라고 여기고 그 곁을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14:50);

4)    그러나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찾아오십니다(24:26-43). 그때서야 베드로는 변화산상의 영적인 체험의 의미를 되돌아보면서(36b)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주임을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24:44-49). 그러므로 훗날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내주 역사하기를 시작하시자 사도 베드로가 앞장서서 예루살렘사람들에게 유일한 구원주는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빨리 자신의 죄를 고하고 회개함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얻으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2:36-41, 3:22-26, 4:10-12).  

(3)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9:1, 사도들에게 벌써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었지만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여 그 일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어 스승이신 예수님의 마음이 상하고 있음).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내가 직접 축사의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하시니, 42. (가까이)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귀신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쫓겨나기 전에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임).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현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9:37-43a);

1)    만약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변화산상의 환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유일한 구원주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었다고 한다면 여호와의 독생자에 의하여 영적인 권위를 위임 받은 그들이(9:1) 마귀의 졸개인 귀신 정도는 거뜬히 쫓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10:17-19).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여전히 위대한 선지자 또는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정치적 메시아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2)    그 때문에 하산한 이튿날 성읍에서 열린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그만 강하게 저항하는 귀신을 아이에게서 쫓아내지 못하게 됩니다(37, 40). 그러자 그 부친이 귀신들린 외아들을 데리고 안타깝게 예수님을 직접 찾아오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38-39). 그 모습을 보고서 예수님이 통탄하십니다(41a). 자신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3일후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여호와의 독생자의 영광을 온전히 사도와 제자들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게 되면 그들이 복음사역자로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41b).

3)    그러므로 부활하시는 예수님이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허락을 얻어서 빨리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어주어야 합니다(24:49, 14:16-20, 1:8). 당장은 그 현장에서 예수님이 그 사람의 외아들을 앞에 세우고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41c, 42b). 귀신이 떠나면서 본능적으로 숙주인 아들을 넘어뜨리고 해치고자 합니다(42a). 역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시고 악한 영은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 무리들입니다(6:12).

4)    예수님이 그 아이를 낫게 하여 부친에게 돌려주고 있습니다(42c).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보고서 그곳의 백성들이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43). 그들은 헬몬산 남녘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이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소원하고 있는 그러한 유대교리나 정치적 메시아사상에 물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보다 훨씬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위력을 보고서 더 강한 신을 발견한 일에 놀라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들 갈릴리 북쪽의 이방인들에게 훗날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도들에 의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전파가 될 것입니다(9:1-2).

둘째로, “43b.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에게만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신 것임), 44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9:22절에 이어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희생에 대하여 두번째로 예언하신 것임),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선민의 나라가 없어지고 예루살렘성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임, 6:9-12. 사도와 제자들조차 여전히 예수님을 선민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기고 있는 것임. 그것은 선민의 종교인 유대교와 현세적인 소원성취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넉넉하게 알 수가 있는 대목임).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스승이신 예수님의 예언을 듣지 아니한 것으로 치부하고 마는 것임).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변화산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환상을 보았으므로 사도들은 이제 곧 선민의 제국이 재건되면 먼저 큰 자리를 차지할 욕심을 보이며 서로 공로가 크다고 논쟁하고 있음),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사도들의 마음속에서 공을 다투고)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25:40, 소자 하나를 돌보고 사람대접을 해주는 자가 바로 주님의 제자이며 여호와의 종이라는 것임).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대속의 생애를 살아가게 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여호와의 상급을 얻게 된다는 것임).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성도의 삶은 섬기는 리더십이며 세족식의 정신과 같은 것임, 13:3-15)”(9:43b-48);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3b.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에게만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신 것임), 44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9:22절에 이어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희생에 대하여 두번째로 예언하신 것임),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선민의 나라가 없어지고 예루살렘성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임, 6:9-12. 사도와 제자들조차 여전히 예수님을 선민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기고 있는 것임. 그것은 선민의 종교인 유대교와 현세적인 소원성취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넉넉하게 알 수가 있는 대목임).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스승이신 예수님의 예언을 듣지 아니한 것으로 치부하고 마는 것임)”(9:43b-45);

1)    변화산상에서 사도 베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곳에 초막 3을 지어 예수님과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33). 그것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2)    비록 변화산상에서 하산한 다음날 엄청난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을 예수님이 보여주고 있지만(42-43) 정작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이름이 훗날 생명책에 기록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가 될 때에 성도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아(5:25-29) 여호와와 주님의 보좌가 자리잡고 있는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서 영생의 기쁨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누리는 그것입니다(10:20, 21:22-27).

3)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여호와의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인으로 간주된 성도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4)    성도가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듭난 삶을 끝까지 살아가게 되면 주님이 그 자를 부활하게 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5:24-29, 14:1-3). 그러므로 변화산상에서 사도 베드로가 소망하고 있는 바를 이루어 주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속죄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 일이 중요하므로 사도와 제자들에게 두번째로 자신의 대속의 죽음에 대하여 예언하고 계십니다(44).

5)    그러나 사도와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번에도 외면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상정하고 있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승리자이지 결단코 로마총독에 의하여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마는 그러한 맥없는 패배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예언의 자세한 내용을 결코 스승이신 예수님께 질문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45).

(2)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변화산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환상을 보았으므로 사도들은 이제 곧 선민의 제국이 재건되면 먼저 큰 자리를 차지할 욕심을 보이며 서로 공로가 크다고 논쟁하고 있음),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사도들의 마음속에서 공을 다투고)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25:40, 소자 하나를 돌보고 사람대접을 해주는 자가 바로 주님의 제자이며 여호와의 종이라는 것임).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대속의 생애를 살아가게 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여호와의 상급을 얻게 된다는 것임).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성도의 삶은 섬기는 리더십이며 세족식의 정신과 같은 것임, 13:3-15)”(9:46-48);

1)    유대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는 정치적인 구세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는 메시아가 유대 땅에 오면 가장 먼저 신위적(神威的)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시대와(21:24-35) 다윗의 시대(삼하8:1-14) 그리고 히스기야 시대에(왕하19:34-35)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놀랍게 승전한 그 영광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선민의 영광과 현세적인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온 것일까요? 그것이 결코 아닙니다.

2)    그 반대로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그들 모두를 구원하는 이른바 만민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여호와의 독생자입니다(1:12-14, 3:16). 그리고 현세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을 이 세상에 전파하고자 오신 것입니다(3:13-15, 6:38-40). 그에 따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면 무덤속에서 제3일에 영생의 부활을 얻기 위하여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버림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두차례나 예언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22절과 44);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언을 새겨듣는 사도가 없습니다. 모두들 유대교인들과 같은 정치적 메시아의 승리가 임박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19:35-40, 21:7-11). 그러므로 선민의 제국이 성립이 되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공을 다투기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46). 그와 같은 추태를 보시고(47a)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데려다 보여주면서(47b)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4)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25:40, 소자 하나를 돌보고 사람대접을 해주는 자가 바로 주님의 제자이며 여호와의 종이라는 것임).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대속의 생애를 살아가게 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여호와의 상급을 얻게 된다는 것임).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성도의 삶은 섬기는 리더십이며 소위 세족식의 정신과 같은 것임, 13:3-15)”(9:48);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자 하는 성도는 누구나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23-26).

셋째로, “49. (사도)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려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지(제자가 되어 스승님을 모시고 전도여행에 나서지) 아니하므로 (우리 사도들이 그자의 축사의 활동을)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훗날 생전에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다닌 적이 없는 성도들이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나고 그들이 사도들처럼 복음사역을 할 것이므로 그 점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보임, 20:29, 고전11:1, 15:8-11). 51. 예수께서 (예루살렘 교외 감람산에서, 24:50-51)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마지막 유월절을 앞둔 전년도의 후반기임을 알 수 있음. 곧 주후 31년 후반기 초막절 무렵임, 7:1-10) (자신의 대속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31)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드디어 갈릴리를 떠나 남행하여 사마리아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임), 52. (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선택한)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할 장소와 숙식을 해결할 장소를 사전에 물색하는 등 여러가지를)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갈릴리와 인접하고 있는 사마리아 북편의 성읍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인처럼 변해버린 북조 이스라엘 출신 동족들을 이제는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면서 멸시하고 상종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것임, 4:9, 4:1-4). 54. (3:17, 성격이 불같이 급한)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사마리아인의 행동에 분격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도말하고 싶어하는 것임) 55. 예수께서 (야고보 형제를) 돌아보시며 (26:52-54, 복음전파는 칼로써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을) 꾸짖으시고, 56. 함께 (9:5, 그 마을을 우회하여)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는 결심을 훗날의 사도 베드로처럼 그 자가 밝히고 있음, 26:33).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를 당하시고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정죄가 되어 마침내 로마총독의 선고로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되면 제자들은 물론 사도들까지 스승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것임, 14:50) ,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것보다 살아 있는 동안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그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것임),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면 그의 가족을 돌보고 구원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 되고 있는 것임, 9:1-3, 10:1, 16:7, 11)”(9:49-62);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9. (사도)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려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지(제자가 되어 스승님을 모시고 전도여행에 나서지) 아니하므로 (우리 사도들이 그자의 축사의 활동을)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훗날 생전에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다닌 적이 없는 성도들이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나고 그들이 사도들처럼 복음사역을 할 것이므로 그 점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보임, 20:29, 고전11:1, 15:8-11)”(9:49-50);

1)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크게 보아 사도파장로파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파에 있어서도 12사도후속사도 2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사도와 후속사도의 특징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도라고 하면 원칙적으로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지내면서 복음사역을 한 수행제자를 말하고 있습니다(1:21-22). 그에 따라 가룟 유다가 스승을 배신하여 탈락이 되자 그 기준에 따라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그 수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1:16-20, 25-26).

2)    또 하나는, 후속사도인 바나바와 바울은 그러한 전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로 초대교회의 개척에 있어서 12사도에 필적하는 천국복음에 대한 이해와 신위적인 능력 행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사람을 합해도 초대교회에서 사도는 14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장로의 수는 자꾸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만큼의 복음에 대한 말씀의 권위와 능력 행함은 없을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권위와 능력을 성도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초대교회에서는 장로로 세우고 있습니다.

3)    세월이 갈수록 사도의 수가 줄어들고 장로의 수는 자꾸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여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스스로 자신을 장로의 한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5:1, 요한21:1, 요한31:1). 그 이유는 장로와 사도와의 알력과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의 회교지도자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그러한 심각한 분파가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는 사도파와 장로파 사이에 전혀 보이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러한 초대교회의 역사를 미리 아시는지 본문에서 예수님이 과격한 사도 요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함께 지낸 경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를 너희들이 차별하거나 그 행동을 금지하지 말라. 그 이유는 나를 반대하지 아니하는 그 자들은 너희들과 같이 초대교회를 세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49-50절 의역). 스승 예수님의 말뜻을 노년의 사도 요한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요한2서와 요한3서를 기록할 때에 장로인 나는이라고 서신서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2)  51. 예수께서 (예루살렘 교외 감람산에서, 24:50-51)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마지막 유월절을 앞둔 전년도의 후반기임을 알 수 있음. 곧 주후 31년 후반기 초막절 무렵임, 7:1-10) (자신의 대속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31)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드디어 갈릴리를 떠나 남행하여 사마리아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임), 52. (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선택한)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할 장소와 숙식을 해결할 장소를 사전에 물색하는 등 여러가지를)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갈릴리와 인접하고 있는 사마리아 북편의 성읍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인처럼 변해버린 북조 이스라엘 출신 동족들을 이제는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면서 멸시하고 상종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것임, 4:9, 4:1-4). 54. (3:17, 성격이 불같이 급한)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사마리아인의 행동에 분격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도말하고 싶어하는 것임) 55. 예수께서 (야고보 형제를) 돌아보시며 (26:52-54, 복음전파는 칼로써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을) 꾸짖으시고, 56. 함께 (9:5, 그 마을을 우회하여)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9:51-56);

1)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가 3년반이라는 사실을 벌써 알고 계십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속의 십자가를 질 때까지 반년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갈릴리에서 남행길에 오르고 있습니다(51).

2)    남하하여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경계선에 서자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선택한 선발대를 사마리아 북쪽 성읍에 미리 보내고 있습니다(52).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숙식하기에 적합한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찰하고 와서 부정적으로 보고합니다.

3)    갈릴리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라고 하더라도 예루살렘성전에 순례를 가고 있는 무리를 자신들의 성읍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53). 그만큼 예수님 당시 선민사상에 젖어 있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그들로부터 반종(半種)으로 불리며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사마리아인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4:9, 4:1-4).

4)    서로 상종하지 아니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유대인인 예수님 일행을 배척하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4:9). 역사적으로 주전 120년대에 하스모니안 왕조의 군대가 그리심산에 세워져 있는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을 파괴한 후부터 더욱 관계가 악화된 것입니다(4:20).

5)    그 점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불같이 흥분하고 있는 사도 야고보와 요한에게 진정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54-55). 그리고 그 성읍을 우회하여 다른 성읍으로 들어가십니다(56). 그들 북쪽의 사마리아인 역시 수가성에서 행한 것처럼 전부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구원할 대상이지(4:28-42) 결코 그 옛날 하스모니안 왕조 때에 그러한 것처럼 칼로 정벌할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3)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는 결심을 훗날의 사도 베드로처럼 그 자가 밝히고 있음, 26:33).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를 당하시고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정죄가 되어 마침내 로마총독의 선고로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되면 제자들은 물론 사도들까지 스승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것임, 14:50) ,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것보다 살아 있는 동안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그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것임),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면 그의 가족을 돌보고 구원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 되고 있는 것임, 9:1-3, 10:1, 16:7, 11)”(9:57-62);

1)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에 입성한 이후 그곳에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실시하십니다(22:14-15). 그리고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자신이 체포를 당하여 처형장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사도와 제자들이 스승을 버리고 떠날 것이라고 미래를 예언하십니다(26:31). 그 말씀을 듣자 베드로를 위시하여 사도들이 자신들은 스승님을 버려두고 의리 없이 그렇게 혼자만 살겠다고 떠날 사람이 아니라고 맹세합니다(26:33, 35, 22:33).

2)    그러나 현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고 하산하는 그때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체포조에게 예수님이 스스로 잡혀 가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사도들이 뿔뿔이 제살길을 찾아서 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14:50). 그와 같은 미래를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맹세를 하자(57) 자신은 그 말에 의지하여 자신의 몸을 의탁할 수가 없는 외로운 길을 홀로 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58).

3)    그 말씀이 사실입니다. 훗날 대속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내주하여 역사하지 아니하게 되면 결코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24:49, 1:8, 2:1-4, 8:1-2). 그러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천국에 입성하여 영생의 복락을 누리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누구나 영적인 삶을 세상적인 삶보다 우선시해야 합니다.

4)    그와 같은 의미에서 주님으로부터 부르심(Calling out)을 받게 되면 사도들처럼 그리고 그 옛날의 엘리사처럼 만사를 젖혀두고 곧바로 주님을 따라나서는 결단과 결행이 오늘날에도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59-62);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자 또는 가족을 제대로 작별하고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자 등은 그것이 핑계가 되어 결국 Calling out에 응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결단을 늦추게 되면 그것을 기회로 삼아 악한 영들이 기어코 그 발을 붙들고 마는 것입니다(6:12).

결론적으로,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은 수행사도들에게 천국의 모습을 일부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보고서 얼마나 좋은지 사도 베드로가 초막 3을 짓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자기도 모르게 소원합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 줄 유일한 구원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무덤에서 3일후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훗날 사도들이 거처할 곳을 마련하고자 하십니다(14:1-3). 그 일을 위해서는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서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사도들에게 예언하여 주지만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눈앞에 다가오는 입신양명의 꿈에 한껏 부풀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여 시온의 영광을 사해에 떨치는 인물입니다.

그 인물이 바로 자신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이시기에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면 곧 이스라엘제국이 성립될 것만 같습니다. 그때는 높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자 하는 꿈에 모두들 부풀어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거는 기대를 버리고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홀로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 하고 또한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도 빨리 제자들에게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도록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그 길을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마음과 사명이 진하게 스며 있는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자주 본문을 음미하시면서 스스로 제자의 길을 가다듬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