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예수님이 그리스도를 만나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여인들에게 주시는 새로운 삶”(눅8:1-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8. 8. 16:57

제목; “예수님이 그리스도를 만나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여인들에게 주시는 새로운 삶”(8:1-25)

설교일; 주후 202491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 8일 목요일 작성)

 

본문에 들어오기 전 누가복음 제7장 말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발에 향유를 붓고 눈물로 회개한 여인에게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었음을 선포하십니다(7:48, 50). 그 반면에 선민사상과 의인사상에 젖어 있는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면서 그에게는 죄사함의 권세가 없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7:47, 49).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제8장에 들어서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전반부에서 죄사함을 받은 여인들과 성도들이 어떠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점을 저자인 의사 누가가 다각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8:1-25).

그리고 제8장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이 이방인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여 행하신 일과 유대인지역에 돌아와서 행하신 일을 의사 누가가 알기 쉽게 차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8:26-56).

먼저 이방인 지역에서는 예수님이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러자 경제적 손실을 우려한 주민들의 요청에 직면하여 예수님 일행은 그만 다른 복음사역을 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8:37). 

그와 달리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갈릴리지역으로 돌아와서는 12년이나 혈루병에 시달리고 있는 여인이 기적적으로 나음을 입고 있습니다(8:43-44). 더구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되살아나게 되는 엄청난 이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8:54-55).

누가복음 제4장을 참조하면,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복음사역에 있어서 어려움이 너무 커서 그곳을 떠나시게 됩니다(4:23-24, 28-30). 그와 달리 대도시 가버나움에 와서는 회당에서 천국복음도 전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기도 하십니다(4:31-36). 그와 같은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차이가 지역에 따라 어째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여인들 가운데 사도인 남자들 못지 아니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서 헌신적으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도운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의사 누가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러한 믿음의 여인들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것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과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대한 말씀이 또한 수록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본문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의사 누가가 ①막달라 마리아, ②구사의 아내 요안나, 그리고 ③수산나와 ④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재정적으로 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8:2-3). 그 가운데 지금까지 누가복음에서 저자 누가가 소개한 여인은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죄 많은 여인 뿐입니다;

1)   그녀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씻기면서 크게 회개를 한 것입니다(7:38). 그 여인이 만약 그후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일부 재정지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항목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예수님 일행)을 섬기더라”(8:3)에 포함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①막달라 마리아와 ②구사의 아내 요안나 그리고 ③수산나에 대해서는 어떠한 추론이 가능한 것일까요?...

2)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는 의사 누가가 다른 복음서에 없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7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갈릴리호수 서안, 西岸의 성읍 막달라 출신)이라 하는 마리아”(8:2). 다음 3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그녀에게서 7귀신을 쫓아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녀는 갈릴리의 막달라 출신이지만 대도시에 진출하여 돈을 많이 번 여성으로 보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복음사역에 재정적인 도움을 크게 준 여제자입니다.

3)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복음사역을 하는 공생애 3 6개월 동안 남자인 12사도만큼 열심히 전도여행에 동참하고 헌신한 여성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그 현장을 끝까지 지켜본 여제자로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이종동생인 사도 요한이 기록한 제4복음서를 참조하면 그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마리아, 1:27, 38)이모(27:56, 세배대의 아내이며 사도 요한의 모친인 살로메, 15:40)글로바의 아내 마리아(24:18, 부활하신 예수님을 엠마오로 가는 길에 만난 글로바의 아내가 마리아인데 그녀는 예수님의 숙모로 보임)막달라 마리아(20:16-18,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마리아는 여사도로 부를 수 있는 여인임)가 섰는지라”(19:25).

4)   의사 누가가 요안나에 대해서는 친절하게도 3. 헤롯(안디바)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8: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저술한 제4복음서에 따르면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의 청지기의 아들을 예수님이 중병에서 살려 주신 적이 있습니다(4:46-52). 가나에서 예수님이 분봉 왕 헤롯의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4:50)고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에 가버나움 대도시 자택에 있는 그 신하의 아들이 낫게 된 것입니다(4:52). 그 사실을 확인하자 그 신하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구원주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4:53). 그로 미루어 보아 요안나는 분봉 왕 헤롯의 재정대신인 남편의 은밀한 지시로 예수님 일행의 공생애를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5)   이제는 이 대목에서 단 한번 그 이름이 나타나고 있는 수산나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요안나(Joanna)라고 하는 이름은 히브리 이름 요하난’( יוחנן)에서 파생되는 히브리식 여성이름이면서 그것을 라틴어로 적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롯 분봉 왕의 재정대신인 구사의 아내는 히브리식 이름과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귀족입니다. 그렇지만 수산나(Σουσάννα, 백합)는 전적으로 헬라식 이름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헬라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하면 정체를 알 수가 없는 그녀가 누가복음 제7장의 기록을 참조하면, 가버나움의 로마군 병영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인 백부장의 아내일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 백부장은 유일신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으며 유대인들에게 회당을 지어준 인물입니다(7:5, 7-8). 그러므로 헬라인 아내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하를 낫게 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헬라인 아내 수산나를 파견한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로, 막달라 마리아, 구사의 아내 요안나, 백부장의 아내 수산나 외에도 갈릴리의 선주이며 부자인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가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재정지원을 아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살로메는 예수에게 자신의 두 아들을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면 중용하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20:20). 어쨌든 그녀들의 헌신은 영적인 체험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 앞길에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도우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1)   첫째, 나사렛 예수가 구원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녀들이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에는 7귀신을 쫓아내고 자신을 치유하여 준 분이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재정적으로 힘껏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자신의 아들을 중병에서 살려준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백부장의 아내를 수산나로 볼 경우에는 그녀는 먼 거리에서 말씀만 하셔도 남편의 부하가 낫게 되는 이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는 조카인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아들 둘을 그 제자로 보내고 재정지원을 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예수님이 그녀들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천국복음이라는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8:8). 그러한 맥락에서 의사 누가가 씨뿌리는 비유를 뒤이어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믿었기에 자신의 질병이 떠나가고 장애가 치유가 되는 영적인 체험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점을 의사 누가가 등불을 켜서 사방을 밝히고자 반드시 높은 곳에 둔다는 예수님의 말씀과(8:15-18) 제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만드시는 주님의 동행의 역사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8:24).

5)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는 이웃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자들의 복음사역의 일정에는 언제나 주님께서 동행하시면서 세상적인 풍파와 어려움을 잠재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있음을 의사 누가가 참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글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7:47-48,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 많은 여인에게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선포한)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수행하는) 12제자(6:13-16, 남자인 12사도를 말함)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남자인 예수님을 직접 수행할 수 없는 여자제자 가운데)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예수님 일행)을 섬기더라.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2:2,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이 먹어버렸고(12), 6. 더러는 바위 위(완악한 바위와 같은 마음, 8:15)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13:25-30, 가라지와 같은 사이비 신앙인)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옥토와 같은 좋은 심성을 가진 자의 마음)에 떨어지매, (싹이) 나서 백 배의 결실을(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많은 사람을 구원, 15)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선민사상과 의인사상에 빠져 있는 바리새인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치부되는 그 여인이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구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구원을 받게 된 성도가 앞으로 주님을 모시고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는 예수님의 말씀임)”(8:1-8);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7:47-48,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 많은 여인에게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선포한)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수행하는) 12제자(6:13-16, 남자인 12사도를 말함)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남자인 예수님을 직접 수행할 수 없는 여자제자 가운데)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예수님 일행)을 섬기더라.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8:1-4);

1)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경험하신 일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마을에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그 불쌍한 여인이 자신이 매우 아끼고 있는 비싼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씻기고 있기 때문입니다(7:37-38). 비록 말이 없을지라도 그녀가 무엇을 예수님에게 소원하고 있는 것인지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2)    자신의 죄를 회개하오니 부디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님만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베풀어줄 수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그녀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또한 구원을 얻었다고 그 자리에서 선포하여 주십니다(7:48, 50).

3)    그 반면에 자신들은 선민이며 의인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구원이 불필요하다고 자신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대해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새언약의 시대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터에서 아이들이 피리를 부는 비유’(7:32-35)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초청하면서 어떻게 홀대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도 하십니다(7:44-47).

4)    바리새인 시몬과 비교하면 동네에서 죄인취급을 당하고 있는 그 여인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관심이 이제는 남자인 12사도와 더불어 자신의 복음사역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여제자들에게 옮겨지고 있습니다(8:1). 그와 같은 맥락에서, 3복음서의 저자인 의사 누가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재정적으로 돕고 있는 여인들에 대하여 제8장 앞부분에서 먼저 기록하고 있습니다(2-3).

5)    그 이름이 막달라 마리아, 구사의 아내 요안나, 로마인 백부장의 아내로 보이는 수산나, 그리고  여러 여제자들입니다. 그녀들에 대해서는 벌써 모두(冒頭, 글의 첫머리)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였으므로 그 내용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헌신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복음전파의 현장에 모여든 유대인 백성들에게 한가지 비유로써 앞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야 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시작하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4).

(2)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2:2,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이 먹어버렸고(12), 6. 더러는 바위 위(완악한 바위와 같은 마음, 8:15)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13:25-30, 가라지와 같은 사이비 신앙인)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옥토와 같은 좋은 심성을 가진 자의 마음)에 떨어지매, (싹이) 나서 백 배의 결실을(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많은 사람을 구원, 15)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선민사상과 의인사상에 빠져 있는 바리새인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치부되는 그 여인이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구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구원을 받게 된 성도가 앞으로 주님을 모시고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는 예수님의 말씀임)”(8:5-8);

1)    선민사상과 의인사상을 버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함으로써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자 결단한 자들이 4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입니다(8a). 그렇게 귀한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게 되면 그 전도와 성화의 열매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8b).

2)    그런데 그와 같은 영생구원의 복음에 대한 확신은 영적으로 새언약을 받아들이는 자들에 국한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예수님은 본문에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8c)고 외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소위 씨뿌리는 비유를 살펴보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선포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합니다.

3)    첫째, 길가에 천국복음의 씨가 떨어지고 악한 영들이 얼른 그 말씀을 물어가 버리고 맙니다(5). 둘째, 천국복음을 완악한 바위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6). 셋째, 우상을 섬기고 거짓선지자의 말에 현혹이 되고 있는 자는 그것이 가시가 되어 복음을 외면하게 됩니다(7).

4)    넷째, 오로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여호와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 이제부터 복음전파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그런 사람들이 복음의 씨앗을 옥토에 받아 들인 자들입니다(8a). 그들이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8b).

5)    그렇게 구체적으로, 갈릴리의 큰 동네에서 많은 무리들에게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대하여 제자들이 과연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이 다음 단락에서 제자들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9-15). 그리고 차제에 제자들이 복음의 빛을 널리 비출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등경위에 두고 있는 등불의 비유’(16)로 은근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9. (4가지 경우 중 하나만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말씀은 실제 농사의 소출과 비교할 때 도저히 이해하기 힘이 들어서)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성도들도 모르는 것은 주님께 기도로써 여쭈어야 함),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써 주님의 제자가 된 자에게는 말씀을 보고 그 의미를 깨닫고자 기도하면 영적인 도우심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임)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선민사상 또는 의인사상에 젖어서 예수님을 구원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영적인 깨달음이 함께하지 아니함).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구원과 영생을 주는 seed) 하나님의 말씀이요(영생의 구원을 희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need를 충족하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일 뿐이다),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2:2,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8:15, 그 옛날 애굽의 바로처럼 다시 완악한 마음으로 되돌아감으로 말미암아) 뿌리가 없어(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없어서)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세속적인 소원성취를 주는 거짓선지자의 말을 더 선호하여)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절대선을 가지신 창조주 여호와의 용서를 얻고 그 앞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주님과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고 마침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그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의 빛을 성도들을 통하여 온세상에 비추시는 것이다) . 17. (그러므로 장차 여호와의 진리의 빛 앞에 세상적인 외식자들의)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물심양면으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섬긴 여인들처럼 헌신과 희생의 열매가) 있는 자는 받겠고, (세속적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살아서 그러한 흔적이)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영생의 천국에서는 세상의 권력과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임) 하시니라”(8:9-18);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9. (4가지 경우 중 하나만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말씀은 실제 농사의 소출과 비교할 때 도저히 이해하기 힘이 들어서)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성도들도 모르는 것은 주님께 기도로써 여쭈어야 함),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써 주님의 제자가 된 자에게는 말씀을 보고 그 의미를 깨닫고자 기도하면 영적인 도우심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임)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선민사상 또는 의인사상에 젖어서 예수님을 구원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영적인 깨달음이 함께하지 아니함)”(8:9-10);

1)    갈릴리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크게 보아 두가지 산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산지와 들판에서 경영하고 있는 농축산업(農畜産業)입니다. 또 하나가, 갈릴리호수에서 경영하고 있는 어업(漁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면서 갈릴리사람들 가운데 농민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습니다.

2)    그 이유는 농업 소출은 4분의 1이 아니라 뿌린 씨앗에 비하여 수십 배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모인 무리들이 돌아간 다음에 조용히 스승이신 예수님께 그 비유의 내용을 다시 설명하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9). 그러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상세하게 답변을 주고자 하십니다(10a).

3)    왜냐하면, 제자들에게는 그 깊은 내용을 잘 가르쳐서 장차 양떼를 먹이는 목자로 파송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영적인 비유의 말씀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자상한 설명이 주어지지 아니하고 그저 비유의 말씀만이 알 듯 모를 듯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10b).

4)    그와 같은 예수님의 답변으로 미루어 볼 때, 성도들은 성경말씀을 읽다가 모르는 대목에 대해서는 그 뜻을 영적으로 깨닫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깨달은 말씀에 대해서는 부디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과정이 쉽게 말하자면 말씀에 대한 묵상(默想, שׂ֥וּחַ, 시아흐, 24:63)이라고 하겠습니다.

(2)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구원과 영생을 주는 seed) 하나님의 말씀이요(영생의 구원을 희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need를 충족하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일 뿐이다),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2:2,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8:15, 그 옛날 애굽의 바로처럼 다시 완악한 마음으로 되돌아감으로 말미암아) 뿌리가 없어(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없어서)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세속적인 소원성취를 주는 거짓선지자의 말을 더 선호하여)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절대선을 가지신 창조주 여호와의 용서를 얻고 그 앞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주님과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고 마침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8:11-15);

1)    오늘날 주후 21세기는 과학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새로운 산업이 자꾸만 창출되어 나오고 있는 그러한 시대입니다. 특히 여러 산업군에서는 첨단산업을 개발하기 위하여 연구개발(R&D) 분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향을 알기 쉽게 Seed Need’라고 규정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왜냐하면, 새로운 산업에 대한 수요(need)가 대중으로부터 나타나게 되면 산업분야에서는 그에 대한 개발을 서둘러서 가장 빨리 새로운 제품’(seed)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업체만이 경쟁력을 가지며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상식을 가지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씨뿌리는 비유를 다시 음미하여 보면 다음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3)    첫째, 악한 영들이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다스리고 있는 사악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한한 삶을 살다가 고통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영생의 구원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그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세상제국 애굽의 압제에서 부디 구원하여 달라고 조상들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던 그 간구가(2:23-25) 예수님 당시에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4)    둘째, 일찍이 요엘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구원주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셔서 영생의 소망을 만족하게 해달라는 간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2:23, 28).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 여호와를 믿는 자의 심령속에 그리스도와 성령을 임재하여 주는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임박하고 있습니다(31:33). 그 이유는 그 시대를 보게 하여 달라는 간구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영적인 백성들의 수요(need)입니다.

5)    셋째, 그에 대하여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하나의 구원의 씨앗(seed)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심고자 하십니다(11). 그런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의 수가 소수입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만민구원보다는 선민만의 구원을 원하고 있습니다. 영생구원보다는 당장 세속적인 구원의 축복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영생의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선민의 영광을 사해에 떨친 다윗제국의 재건을 원하고 있습니다.

6)    그러므로 ①선민사상 그것이 마귀가 되어 복음의 씨앗을 물어가 버리고 맙니다(12). 그리고 ②세속적인 축복사상이 영생구원을 대신하고 맙니다. 그에 따라 당장 자신에게 현세적인 이익이 없으면 멀지 아니하여 천국복음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13). ③ 사람들은 자신들만 이 세상에서 부귀와 영광을 영구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집단 이기적인 지상천국의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아니하고 있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배척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7)    그것이 소위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세속적인 인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4). 그와 같은 3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영접하는 백성들은 참으로 귀한 성도들입니다(15). 그 중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사도와 제자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봉사하고 있는 여성제자들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8:2-3). 

(3)  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그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의 빛을 성도들을 통하여 온세상에 비추시는 것이다) . 17. (그러므로 장차 여호와의 진리의 빛 앞에 세상적인 외식자들의)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물심양면으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섬긴 여인들처럼 헌신과 희생의 열매가) 있는 자는 받겠고, (세속적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살아서 그러한 흔적이)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영생의 천국에서는 세상의 권력과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임) 하시니라”(8:16-18);

1)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자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그때부터 성령님의 보호하심과 주님의 영적인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에 따라 성도들이 가는 그 길에 천국복음을 영접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고자 애를 쓸지라도 그들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8:37).

2)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복음의 등불을 온세상에 비추도록 주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6). 또 하나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고 계시기에 이 세상의 임금이 그 힘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천국복음이 선포되는 그 현장에서 쫓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12:31).

3)    세상임금과 권력자들이 발버둥을 쳐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의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어두움의 권세가 물러가며 빛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17). 그러므로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천국에서의 상급과 영생의 영광이 상상 이상이지만(18a), 그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면하고 성도들을 핍박한 죄인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처해지고 마는 것입니다(18b, 25:46).

셋째로, “19.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와 그 동생들(13:55-56, 남동생이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4명이고 여동생이 여러 명임)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 찾아) 왔으나, (예수님의 복음사역 현장에 모여 있는 많은 백성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모인 무리의 질서를 정리하고 있던 제자들 가운데 한사람) (스승이신 예수님께)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영생의 천국에서는 구원받은 자가 한가족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임, 1:12-13) 하시니라.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어선)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갈릴리)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지중해에서 높은 산맥을 지나 골짜기로 내리치고 있는) 광풍이 (저지대의 평평한) 호수로 (휘몰아) 내리치매 (큰 파도가 발생하여)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주무시고 있는 스승 예수님을)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구원을 호소)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1:12-13,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과 그 권세에 의거한 성도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제자들이 영생의 천국보다 유한한 현세에 더 휘둘리고 있기에 이 세상 자연을 이기시는 스승 예수님이 신기한 것임) 하더라”(8:19-25);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9.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와 그 동생들(13:55-56, 남동생이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4명이고 여동생이 여러 명임)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 찾아) 왔으나, (예수님의 복음사역 현장에 모여 있는 많은 백성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모인 무리의 질서를 정리하고 있던 제자들 가운데 한사람) (스승이신 예수님께)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영생의 천국에서는 구원받은 자가 한가족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임, 1:12-13) 하시니라”(8:19-21);

1)    예수님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12사도는 물론 예수님의 가족이 복음사역의 현장에 당도하였음을 전하고 있는 제자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되고 있는 여제자들에게 주시고 있는 예수님의 중대한 말씀입니다. 그 요지는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사역에 나서고 있는 제자들은 그 신분이 벌써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가게 되면 그러한 성도는 천국에서 주님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시며 면류관을 쓰고서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는 신분이 된다고 누가복음 제22장 제28-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천국의 말씀을 영접하고 있는 성도들이 앞으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나서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기만 하면 벌써 그리스도와 한가족이 된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21).

3)    그 말씀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제14장에서 다음 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성령 하나님)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성부, 성자, 성령의 가르치심이 영적으로 동일함을 말하고 있음)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심령 속에)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성전을 마련하여, 고전6:19)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성령의 전에 임재하기 위하여)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영적으로 재림한 것을) 보리니, 이는 내가 (너희 심령 속에서) 살아있고 너희도 (영적으로) 살아있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31체 하나님이 성도의 심령속에 함께 임재하여 내주역사하시는 것임)”(14:16-20).

4)    한마디로,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영적으로 재림하여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일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성령님을 또다른 보혜사로서 성도들에게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님의 전에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영적으로 임재하여 성도에게 내주 역사하시게 됩니다. 그와 같이 31체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복음사역을 할 수가 있게 되었으므로 성도는 주님과 한 몸이 되고 새로운 가족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어선)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갈릴리)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지중해에서 높은 산맥을 지나 골짜기로 내리치고 있는) 광풍이 (저지대의 평평한) 호수로 (휘몰아) 내리치매 (큰 파도가 발생하여)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주무시고 있는 스승 예수님을)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구원을 호소)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1:12-13,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과 그 권세에 의거한 성도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제자들이 영생의 천국보다 유한한 현세에 더 휘둘리고 있기에 이 세상 자연을 이기시는 스승 예수님이 신기한 것임) 하더라”(8:22-25);

1)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살아가게 되면 벌써 그 신분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 고향이 바로 영생의 천국입니다. 그리고 훗날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사도 바울의 말 그대로, 이 세상만물을 다스리고 구원할 자들입니다(8:19-21). 그런데 그러한 정체성과 사명의식이 부족하기에 갈릴리호수에서 발생하고 있는 광풍과 높은 파도에 절망하고 있는 제자들입니다(22-24a).

2)    그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전도여행에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24a). 그러자 어선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광풍과 파도를 꾸짖어 단숨에 잠잠하게 만들고 계십니다(24b). 그와 같은 일이 장차 성도들의 전도여행과 복음을 실천하는 삶속에서 발생할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간구하는 믿음생활이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이기에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25, 14:16-20, 5:19, 16:6-7).

결론적으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인으로 불리고 있는 여인이 살그머니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 발에 향유를 붓고 울면서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긴 일이 발생하였음을 누가복음 제7장 말미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회개의 눈물과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여 주십니다(7:48, 50).

반면에 그 집주인 시몬과 그의 동료인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는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구원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율법에 의거 죄인 취급하면서 자신들은 상대적으로 의인이라고 하는 그 잘못된 생각에 대하여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7:44-46).

그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누가복음 제8장 전반부인 본문에 있어서는 두가지 내용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많은 여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재정적으로 도왔다는 것입니다(8:2-3). 그녀들의 물심양면의 헌신과 봉사를 보고서 예수님이 소위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그것이 참으로 귀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8:8,15).

또 하나는, 그 선행이 복음사역에 빛을 비추게 될 것이며(8:16), 장차 주님의 영적인 임재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8:21), 세상의 어려움을 이기게 될 것이라고(8:24-25) 입체적으로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본문의 맥을 짚어가면서 다시 한번 그 깊숙한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죄 많은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또한 주님의 가족으로 삼아 주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거듭난 삶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