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산상수훈의 내용을 대중들에게도 선포하신 예수님이 만민구원의 증거와 영생구원의 증거를 보이시다”(눅7:1-2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8. 2. 02:30

제목; “산상수훈의 내용을 대중들에게도 선포하신 예수님이 만민구원의 증거와 영생구원의 증거를 보이시다”(7:1-23)

설교일; 주후 2024 9 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 2일 금요일 작성)

 

일반적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히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은 새로 임명한 12사도 및 여러 제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예수님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의 내용을 산에서 그들에게 특별교육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점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마태복음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께서 (많은 백성인)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별도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12사도를 위시한 여러)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1-3), “28. 예수께서 이 말씀(산상수훈)을 마치시매, 무리(12사도와 여러 제자)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여호와의 뜻이므로 자연히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여호와의 권위가 주어지고 있음), 그들의 서기관들과(선민우월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에 젖어 있는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의 주장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백성의) 무리가 따르니라. 2.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7:28-8:2).

그런데 누가복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12사도를 위시한)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5:1-3절과 같은 내용이므로 산상수훈임)”(6:20),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이것은 산상수훈의 내용을 평지에서 여러 백성들에게 역시 선포하신 것으로 보임)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로마군대의 간부인 이방인)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6:49-7:2).

여기서 누가복음 제7장 제1절의 말씀이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산상수훈을 제6장 마지막 절에 이르기까지 기록한 다음에 돌연 저자인 의사 누가가 제7장에 들어서자마자 예수님이 모든 말씀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의 진수를 담고 있는 산상수훈의 내용까지 아낌없이 산 아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들려주셨음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가지 진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예수님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으로 체계화하여 그것을 사도와 제자들에게 먼저 교육한 다음에는 반드시 여러 대중들에게도 그대로 선포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서 영생의 구원을 얻으라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심의 발로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복음선포가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일깨워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첫째로, 예수님이 이방인인 로마인 장교의 부하를 고치시고 계십니다(7:2-10). 그것은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왔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인 성문을 빠져나오고 있는 상여를 멈추게 하고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내고 계십니다(7:11-17). 그것은 영생구원의 능력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말로만 백 번 외치고 가르치는 것보다 한번 죽은 자를 살려 내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이 현세적인 종교생활을 뛰어넘는 영생의 소망과 믿음을 가지게 하는 확실한 방법인 것입니다;

  

셋째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그만 낙심하여 세속적인 종교생활과 현세적인 소원성취에 빠져들고 마는 불행한 경우가 있음을 예수님이 비근한 예를 들어서 제자들에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 한두번이 아니고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함)하기 때문에 특별히 누가복음 제7장 제18절 이하에 수록되어 있는 선지자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깨달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산에서 특별히 들려준 산상수훈을 위시한) 모든 말씀을 (하산하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갈릴리의 대도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아끼는 부하)병들어 죽게(중병에 들어 위중한 상태가)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하나님의 능력으로 불치의 병을 치유한 것)을 듣고 (민간인이며 백부장 자신과 친한)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가버나움 주민들에게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유대인 장로들이 이방인 그것도 지배민족인 로마의 백부장에 대하여 신원보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함). 5. (왜냐하면, 로마의 백부장인) 그가 (자신의 동족인 로마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변방 유대인에 불과한 다른 족속인) 우리 민족을 (아가페적으로)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유일신 여호와신앙을 인정하고서)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유대인 장로들과)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로마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병영을 말함)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자신의 지인인)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로마인 병사의 병영)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민간인이 병영에 출입하는 것을 삼가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사자가 비천한 자의 숙소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겸손으로 보임). 7.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지닌)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세례 요한의 겸손과 같은 것임, 3:16).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그저 멀리서 한마디만 하셔도 피조물인 인간의 병은 치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보이고 있는 것임).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예수가 최고신의 권위를 지닌 구원주 그리스도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임).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창조주 여호와의 독생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로마인 곧 이방인 백부장)를 놀랍게 여겨 (장로들에게서 몸을)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제자들과 유대인 백성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선민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는 만민구원의 복음의 근거를 말하고 있는 대목임. 곧 혈통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오직 창조주 여호와를 온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간주가 된다고 하는 이른바 이신칭의, 以信稱義의 원칙이 작용하는 것임, 15:6, 1:12-13).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그것은 예수님이 가나에서 행하신 두번째 표적 곧 말씀만으로 멀리 가버나움에 있는 헤롯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한 것과 같은 것임, 4:50-54)”(7:1-10);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산에서 특별히 들려준 산상수훈을 위시한) 모든 말씀을 (하산하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갈릴리의 대도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아끼는 부하)병들어 죽게(중병에 들어 위중한 상태가) 되었더니”(7:1-2); 예수님 행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 특징이 크게 보아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첫째, 사도와 제자들을 따로 불러 산과 같은 외떨어진 곳에서 먼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6:12-13, 20-49, 5:1-7:29).

2)    둘째, 그 내용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천국복음에 대한 설명을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산하여 그곳에 모여 있는 백성들에게 선포하여 주십니다(7:1a). 그리고 병자와 장애자도 고쳐 주십니다(8:1-4).

3)    셋째, 그 다음에는 인근 대도시를 방문하여 많은 주민과 모인 무리들에게 천국복음도 전하시고 또한 병자와 장애자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하여 주고자 하십니다(7:1b-2, 8:5).

(2)  “3. 예수의 소문(하나님의 능력으로 불치의 병을 치유한 것)을 듣고 (민간인이며 백부장 자신과 친한)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가버나움 주민들에게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유대인 장로들이 이방인 그것도 지배민족인 로마의 백부장에 대하여 신원보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함). 5. (왜냐하면, 로마의 백부장인) 그가 (자신의 동족인 로마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변방 유대인에 불과한 다른 족속인) 우리 민족을 (아가페적으로)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유일신 여호와신앙을 인정하고서)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유대인 장로들과)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로마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병영을 말함)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자신의 지인인)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로마인 병사의 병영)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민간인이 병영에 출입하는 것을 삼가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사자가 비천한 자의 숙소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겸손으로 보임). 7.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지닌)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세례 요한의 겸손과 같은 것임, 3:16).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그저 멀리서 한마디만 하셔도 피조물인 인간의 병은 치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보이고 있는 것임).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예수가 최고신의 권위를 지닌 구원주 그리스도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임)”(7:3-8);

1)   마태복음 제8장 제5-9절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의사 누가는 가버나움 현지를 직접 방문하여 더 상세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 내용을 분석한 결과 본문에서와 같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건의 자초지종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복음의 진수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첫째,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이 일부러 가버나움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 로마인 백부장이 어떠한 성품의 사람인지를 두가지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3-5); 하나는, 그 로마인 백부장은 피지배민족인 유대인들을 대함에 있어서 사랑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5a). 그것은 민족의 구별과 차별을 넘어서고 있는 대단한 인류애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최고의 신임을 알고서 유대인들에게 회당(synagogue)을 지어주었다는 것입니다(5b).

3)   그것은 그 옛날 페르시아의 황제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보호하심을 얻기 위하여 솔로몬의 예루살렘성전을 4분의 1규모로 재건하도록 도와준 일과 비슷합니다(1:1-4). 하지만 고레스 황제는 일종의 호국사찰을 짓는 심정으로 작은 규모의 제2성전을 건설하도록 허락하였지만 본문에서의 백부장의 태도는 그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 지 그 점을 다음 대목에서 그의 벗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또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6-8).

4)   둘째, 그 다음에는 백부장의 벗들이 예수님에게 백부장의 믿음 두가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6-8); 하나는, 최고신인 창조주 여호와의 사자인 예수님이 누추한 자신의 집인 로마군대의 병영을 방문하는 것이 피조물인 백부장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는 말인데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신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6). 또 하나는, 그저 구원주인 예수님이 한마디 말씀만 던져 주셔도 자신의 부하의 중병이 그대로 치유가 될 것임을 백부장이 확실하게 믿고 있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7-8).

(3)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창조주 여호와의 독생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로마인 곧 이방인 백부장)를 놀랍게 여겨 (장로들에게서 몸을)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제자들과 유대인 백성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선민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는 만민구원의 복음의 근거를 말하고 있는 대목임. 곧 혈통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오직 창조주 여호와를 온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간주가 된다고 하는 이른바 이신칭의, 以信稱義의 원칙이 작용하는 것임, 15:6, 1:12-13).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그것은 예수님이 가나에서 행하신 두번째 표적 곧 말씀만으로 멀리 가버나움에 있는 헤롯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한 것과 같은 것임, 4:50-54)”(7:9-10);

1)   유대인 장로들이 전해주고 있는 로마인 백부장의 민족의 차이를 넘어선 인류사랑과 최고신 여호와에 대한 예우 또한 그의 벗들이 전해주고 있는 백부장의 겸손하고도 분별력 있는 믿음의 태도가 그리스도 예수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만민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백부장의 행동이며 창조주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는 백부장의 믿음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2)   한마디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액면 그대로 믿음으로 영접하고 있는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을 알게 되었기에 예수님의 그에 대한 평가가 다음과 같습니다; “따르는 무리(제자들과 유대인 백성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7:9b). 그와 동시에 사람의 모든 병과 장애를 고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가 되어 백부장의 부하인 그 병자의 중병이 즉시 낫고 있는 것입니다(10). 

둘째로, “11. 그 후에 예수께서 (대도시 가버나움에서 남하하여 남서쪽 120리 지점인)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나인)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상여에 싣고서) 메고 (묘지를 찾아 성문을 통과하여 바깥으로)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아들의 죽음도 슬픈 일이지만 경제적으로 율법사회에서는 외아들이 죽고 나면 집안에 남자가 없게 되어 여자인 가족들은 토지소유권이 사라지고 생계가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아시는)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상여에 실리어 있는)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여호와의 능력을 행하시는 선지자 나사렛 예수임을 알고서 그 자리에)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훗날 달리다쿰의 역사와 무덤속에서 나사로를 살린 것과 같은 창조주 여호와의 음성이 전달되고 있는 것임, 8:52-56, 5:41, 11:43), 15. 죽었던 자가 (관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를 꺼내어 주자 그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다시 살아난 외아들 청년을)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예수를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 그리고 나인성의 주민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 옛날 여호와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린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왕상17:20-24, 왕하4:32-37)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자기 백성(선민 유대인)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큰 선지자 또는 메시아라고 하는)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7:11-17);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1. 그 후에 예수께서 (대도시 가버나움에서 남하하여 남서쪽 120리 지점인)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나인)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상여에 싣고서) 메고 (묘지를 찾아 성문을 통과하여 바깥으로)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아들의 죽음도 슬픈 일이지만 경제적으로 율법사회에서는 외아들이 죽고 나면 집안에 남자가 없게 되어 여자인 가족들은 토지소유권이 사라지고 생계가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아시는)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상여에 실리어 있는)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여호와의 능력을 행하시는 선지자 나사렛 예수임을 알고서 그 자리에)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훗날 달리다쿰의 역사와 무덤속에서 나사로를 살린 것과 같은 창조주 여호와의 음성이 전달되고 있는 것임, 8:52-56, 5:41, 11:43), 15. 죽었던 자가 (관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를 꺼내어 주자 그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다시 살아난 외아들 청년을) 어머니에게 주시니”(7:11-15);

1)    지금까지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많은 병자와 장애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逐邪)의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복음사역은 영생구원의 하나님능력을 보여주기에는 미흡한 것입니다. 당장 죽은 자를 살려내는 하나님의 역사를 백성들에게 눈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을 따르고 있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영생의 믿음을 확실하게 가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2)    따라서 예수님이 그 옛날 선지자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큰 일을 하나 행하고자 하십니다(왕상17:20-24, 왕하4:32-37). 그 일이 가버나움에서 120리 남서쪽에 있는 작은 고을 나인성에서 발생하게 됩니다(12-15). 이름하여 예수님이 처음으로 죽은 자를 살려 내시는 이적입니다. 제자들 및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나인 성읍으로 들어가고자 성문 가까이 접근했을 때의 일입니다(11). 마침 과부의 아들인 청년이 죽어서 그 상여가 성문을 빠져나오고 있습니다(12a).

3)    그것은 성밖에 있는 공동묘지로 시신을 운구하고 있는 행렬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상여를 뒤따르면서 슬피 울고 있는 그 모친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한눈에 그녀가 과부이며 외아들이 죽어서 너무나 슬픈 것임을 알게 됩니다(12b). 고대 율법사회에서 기업의 상속권이 아들에게 있습니다. 이제 아들이 죽고 말았으니 그 과부인 모친에게는 생계의 수단마저 사라지고 있습니다. 친척인 남정네들에게 아들의 기업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들이 없는 과부에게는 걸인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가혹한 사회제도입니다. 예수님이 과부인 모친을 불쌍하게 여기십니다(13a);

4)    그 점을 아시고서 예수님이 살길을 마련하여 주고자 하십니다. 그 방법이 죽은 독자를 다시 살려내는 것입니다. 먼저 과부에게 울음을 멈추라고 말합니다(13b). 그 다음에 상여를 멈추게 하고 칠성판 위에 놓여 있는 관에 안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에게 명령합니다(14). 생기를 마시고 당장 살아나라는 것입니다. 관뚜껑을 열어주자 거짓말처럼 죽은 청년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15a). 그렇게 살아난 아들을 과부인 모친에게 되돌려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5b);

(2)  16. 모든 사람(예수를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 그리고 나인성의 주민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 옛날 여호와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린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왕상17:20-24, 왕하4:32-37)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자기 백성(선민 유대인)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큰 선지자 또는 메시아라고 하는)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7:16-17);

1)    그 광경을 목격하고 있던 백성들은 800여년 전에 발생했다고 하는 큰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적을 자신들이 직접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금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창조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16a). 그런데 자신들의 눈앞에서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이적이 다시 발생하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2)    나사렛 예수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제는 장례행렬을 멈추게 하고 장지로 향하고 있는 청년의 시신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히브리경전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두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는,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큰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뒤를 나사렛 예수가 잇고 있다는 것입니다(16b).

3)    또 하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로마총독부와 헤롯 왕가를 쳐부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여 줄 그들의 메시아라는 것입니다(16c). 그 이야기가 소문으로 들려오자(17) 그때부터 로마총독과 헤롯의 분봉왕들이 간자들을 파견하여 예수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9:7-9, 23:14-16).

4)    그리고 갈릴리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선지자 세례 요한도 나사렛 예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면서 자신의 출옥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의사를 타진하고자 합니다(18-20). 과연 그 일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 것일까요? 또한 그 일을 계기로 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과연 어떠한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일까요?...

셋째로, “18.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나사렛 예수가 큰 선지자이며 메시아로 백성들의 평판을 받고 있다는 것, 16-17)(가버나움 옥중에 있는 스승인 세례 요한)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할 선민 유대인들의 정치적인 메시아)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세례 요한이 보낸 2명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침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아주 정확하게 세례 요한의 말을 전달하고 있는 것임), 21. 마침 그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여전히 천국복음을 전파한 다음에 병자와 장애자 그리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기에 매우 바쁜 예수님이심).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천국의 복음전파와 온갖 병자를 고쳐서 하나님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게 하는 그것임을 알려주고 결코 유대교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현세적인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그러한 피의 역사의 순환이 아님을 알려주라는 것임).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현세적인 정치적 메시아를 소망하지 말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하는 구원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1:12-18)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7:18-23);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8.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나사렛 예수가 큰 선지자이며 메시아로 백성들의 평판을 받고 있다는 것, 16-17)(가버나움 옥중에 있는 스승인 세례 요한)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할 선민 유대인들의 정치적인 메시아)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세례 요한이 보낸 2명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침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아주 정확하게 세례 요한의 말을 전달하고 있는 것임)”(7:18-20);

1)    갈릴리 분봉 왕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체포를 당한 세례 요한이 오래 감옥생활을 하는 가운데 얼마나 초조하게 나사렛 예수의 구원을 소망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첫째, 그는 자신의 제자를 파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의 현장을 면밀하게 살피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2)    둘째, 백성들이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평가하고 있는지 그 점을 중점적으로 보고해 달라는 것입니다. 셋째, 마침내 나인성에서 예수님이 죽은 청년을 살려낸 일로 말미암아 그 옛날 큰 선지자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다는 대단한 평가를 얻고 있으며 혹자는 선민 유대인들이 그토록 오래 기다리고 있던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하나님의 사자(왕하19:35-37) 메시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16-17).

3)    그러한 보고를 제자들에게서 듣게 되자 세례 요한은 한가지 사실을 제자 둘을 나사렛 예수에게 보내어 급히 확인하고자 합니다(18-19a). 그것은 당신이 선민 유대인들이 그토록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라고 한다면 당장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헤롯 왕가를 물리치고 갈릴리의 감옥에서 나를 구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19b).

4)    그러나 혹시 그와 다른 메시아라고 한다면 당신의 정확한 정체가 무엇인지 차제에 알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19c). 스승인 세례 요한의 질문을 나사렛 예수를 방문한 그의 2명의 제자가 아주 정직하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20). 과연 나사렛 예수의 답변이 무엇일까요? 그는 12군단이 넘는 하늘의 사자를 동원하여(26:53) 그 옛날 히스기야 왕때처럼 즉각 외세를 물리치고(왕하19:35) 다윗대왕이 건설한 것과 같은 선민의 제국을 중근동에 다시 세우며(삼하8:14) 나아가서 같은 방법으로 이 세상을 완전히 무력으로 정복하고자 나서는 것일까요?(26:53)...

(2)  21. 마침 그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여전히 천국복음을 전파한 다음에 병자와 장애자 그리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기에 매우 바쁜 예수님이심).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천국의 복음전파와 온갖 병자를 고쳐서 하나님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게 하는 그것임을 알려주고 결코 유대교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현세적인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그러한 피의 역사의 순환이 아님을 알려주라는 것임).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현세적인 정치적 메시아를 소망하지 말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하는 구원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1:12-18)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7:21-23);

1)    예수님이 여러 사도와 제자들 그리고 백성의 무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 두가지 복음사역의 내용입니다; 하나는, 창조주 여호와 곧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누구에게나 알기 쉽게 가르쳐주며 그것이 옛날부터 수많은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선포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계시의 올바른 의미임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11:27, 24:44-45).

2)    또 하나는, 여호와의 뜻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그 진리성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고자 모든 병자와 장애자를 고치며 사람을 숙주로 삼아 그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내쫓는 소위 축사(逐邪)의 이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    그 두가지 사명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독생자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셨기에 예수님의 3 6개월간의 공생애는 그 일을 수행하느라고 매우 바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서 신위적(神威的)인 능력으로 제멋대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 이스라엘의 제국을 재건하는 일은 결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4)    훗날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념과 행동수칙을 전혀 모르고 있던  수제자 베드로가 당장 스승의 체포를 막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하고 칼을 빼어 휘두르게 되자 뜻밖에 예수님의 호된 질책을 받게 됩니다;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26:52-54);

5)    예수님의 공생애 3 6개월 동안 사도 베드로는 스승과 함께 먹고 마시며 모든 전도여행을 같이했습니다. 그 모든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베드로는 수석사도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승이신 예수님이 3번이나 예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준 만민구원의 길의 실체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8:31-33, 9:31-32, 10:33-34).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전령으로 이 세상에 먼저 온 세례 요한 역시 그러합니다(19-20). 그만큼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끝자락에는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6)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 마련하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계획은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공생애 끝에 다음과 같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입니다;  첫째, 대속자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영원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26:54).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의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게 되는 일이 그때부터 발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7)    둘째, 예수님이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천국복음을 믿고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영생구원의 길이 열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된다는 것입니다(28:18-20, 22:28-3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셨을 때 그들에게 그러한 내용을 재차 교육하고 계시는 것입니다(24:44-49).

8)    예수님은 당장 세례 요한에게 그 사실을 모두 설명해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자신에게 보낸 생도 2명에게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7:22a); 그리스도의 사명이란 칼로써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적인 치유함을 받도록 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영적인 소경을 치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눈이 열리게 해야 합니다(6:9-10, 24:30-32, 44-45). 올바른 성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예수님이 그 모범을 보여주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어야 합니다(24:47-49).

9)    둘째,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7:22b); 이 세상에서 악한 영들이 사람들을 계속 죄와 사망의 법에 가두어 두고자 권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귀와 그 부하인 귀신의 권세를 깨어버리는 능력이 그리스도인 자신에게 있음을 똑똑히 보여주고자 하십니다(8:1-2). 그에 따라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치의 병자를 치유하고 귀머거리와 같은 장애자를 고치며 사망의 권세에 들어간 자를 되살려 내시는 것입니다(7:22b).

10)             셋째,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7:22c); 여기서 가난한 자의 의미는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영적인 빈곤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권력과 부를 많이 가지고 있어도 꺼져가는 자신의 목숨을 연장할 수가 없으며 생노병사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한갓 무력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셋이나 아브라함처럼 부디 유한한 인생을 가져가시고 영생을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4:26, 21:33). 그들의 간구에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천국복음으로 응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7:22c);

11)             그와 같은 예수님의 답변을 듣게 되는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과연 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요? 그는 당장 감옥에서 풀려나고자 하는 생각을 이제는 접어버릴 것입니다. 선민들의 현실적인 소원 곧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그들의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에 그만 자신이 사로잡혀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린 세례 요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로지 만민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영생의 천국을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성취하고자 매진한다는 그 사실을 깜빡한 것입니다(7:28). 세례 요한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서(7:23, 그리스도의 사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실족하는 일) 다가오는 참형을 묵묵히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14:10-12).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만민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영생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도록 예수님이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자 하십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결심과 만민구원 및 영생구원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례 요한은 그만 동족인 선민의 현실적인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 메시아의 길이라고 감옥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일은 자신의 출옥과 관련되어 있기에 세례 요한의 마음이 초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나인성에서 나사렛 예수가 죽은 청년을 살려내었으며 그가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일 것이라고 하는 소문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갈릴리의 감옥에서 생도들을 통하여 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자 드디어 세례 요한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듣게 되는 답변은 자신의 생각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는 칼로써 이 세상을 정복하거나 선민의 제국을 건설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따라 칼이 아니라 대속의 제물이 되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공생애를 통하여 흔들림 없이 실천하신 그 사명을 이제는 우리가 주님안에서 다함께 끝까지 감당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