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예수를 따르는 갈릴리의 제자들과 시비를 걸기 위하여 갈릴리에 모여든 바리새인들”(눅5:1-3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7. 24. 04:59

제목; “예수를 따르는 갈릴리의 제자들과 시비를 걸기 위하여 갈릴리에 모여든 바리새인들”(5:1-39)

설교일; 주후 2024 8 1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 24일 수요일 작성)

 

나사렛 예수가 갈릴리지역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백성들의 질병과 장애를 낫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逐邪)의 이적을 보이자 제자로 따라나서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이 자신을 수행하는 제자로 특별히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3 6개월간의 공생애 기간에 도합 수행제자 12명을 두고 있는데 그들이 모두 남자이며 이름하여 사도(使徒, 헬라어로는 아포스톨로스 πόστολος이고, 영어로는 apostle)로 불리게 됩니다. 그들 사도들이 실행하고 있는 일은 크게 보아 다음 3가지라고 하겠습니다;

(1)  첫째, 마치 도제(徒弟)처럼 스승이신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3 6개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끝까지 동행하고 있습니다(1:21-22).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이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스승으로부터 직접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6:13-45).

(2)  둘째, 스승이신 예수님의 복음전도와 병자에 대한 치유가 질서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몰려든 무리들을 정리하는 일을 12사도가 앞장을 서서 수행하고 있습니다(8:45, 9:14-15, 12:21-22).

(3)  셋째,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수많은 제자들을 12조로 나누고 그들의 조장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12사도라고 하겠습니다(9:1-6, 10:1). 

그런데 12사도 가운데 무려 8명이 갈릴리 출신입니다(1:40-51, 21:1-2). 그 가운데 오늘의 본문인 누가복음 제5장에는 5명을 예수님이 직접 제자로 부르신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당시 갈릴리호수에서 어로작업을 하고 있는 어선들을 위한 선착장과 생선을 땅 위에 올리는 물양장(物揚場) 시설이 전부 되어있는 마을이 게네사렛입니다.

그 위치는 서북쪽 호안(湖岸)이며 갈릴리의 큰 성읍 가버나움의 인근 남서쪽입니다. 밤새 어선들이 호수에서 잡아온 생선을 아침에 게네사렛 물양장에서 하역하면 그것을 도매로 사서 상인들이 인근 대도시 가버나움에 내다 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의 선창가에는 상인들과 어부들이 아침부터 모여들어서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사렛 예수가 아침에 그곳을 방문하여 천국복음을 무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5:1-3). 그 광경을 유심히 보면서 자신들의 어선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시몬의 형제와 야고보의 형제입니다(5:2-11);

그곳 게네사렛에서 복음사역을 하시던 예수님이 어부로 일하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4명을 차례로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5:10-11). 그 다음에는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세관원으로 일하고 있는 레위를 보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5:27-28).

참고로, 레위는 세관원이 되기 위하여 헬라어 시험을 본 인물입니다. 따라서 그가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훗날 헬라어로 복음서를 저술합니다. 그의 새로운 이름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마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참조하면 갈릴리지역에서 3명을 더 사도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이름이 빌립나다나엘이고(1:43-51) 나중에 도마가 합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21:1-3). 그 가운데 도마의 별명 디두모를 정답게 부르고 있는 인물이 바로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입니다. 그로 미루어 보아 도마는 평소 요한의 동무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갈릴리 출신 사도 8명을 제외하고 나면 12명의 사도 가운데 4명이 유대지역 출신입니다. 그 이름이 ①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④가룟 유다입니다. 그 가운데 가룟 유다는 가룟 출신의 유다라는 의미이고, 셀롯인은 열심당원이라는 뜻이며, 기타 2명은 부친의 이름을 그 앞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력가문의 자제들입니다;

그와 같이 갈릴리지역에서 예수님이 제자로 따라나서라고 소위 Calling Out할 때에  즉각 호응하여 훗날 사도로 중용이 된 인물들이 제5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또한 제5장에서는 갈릴리에 모여든 유대교지도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좋지 아니하게 생각하여 시비를 걸고 있는 무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전국에서 갈릴리 예수님의 복음사역현장에 모여든 바리새인들인데 3부류로 나누어집니다; ①산헤드린 공회원인 서기관들과 ②백성들의 율법선생인 랍비들 ③그리고 서기관들과 랍비들의 제자인 생도들입니다. 참고로, 생도들은 십대인 청소년시절부터 서기관이나 랍비의 제자가 되어 그들의 학문을 체계적으로 밤낮 배우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생도들은 스승의 집에서 사숙을 하면서 철저하게 히브리경전과 히브리전승 그리고 주석 등을 10년 넘게 배우면서 그 학풍을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소정의 시험을 치루어 합격하면 랍비의 자격을 얻게 되는데 그때 그들의 나이가 30세무렵입니다(22:3-5, 7:58, 9:1-3).

랍비인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랍비 가운데 백성들의 평판이 좋고 유대교에 대한 충성심이 높으며 그 실력이 뛰어나면 산헤드린 대공회나 지방공회에 회원으로 영입되어 율법학자인 교법사가 되며 평소에는 종교재판 관련업무를 처리하는 서기관의 직무까지 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대공회에서는 다수파가 장로인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만 공부하고 대제사장을 도와서 유대교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소수파인 바리새인 곧 교법사와 서기관들은 모세오경 뿐만 아니라 선지서와 시편 등 모든 히브리경전에 통달하고 있습니다;

그들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성전의 산헤드린 대공회는 물론 지방의 산헤드린 공회에서 유대교리에 대한 해석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나사렛 예수의 주장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말하고 있는 천국복음사상은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선민만의 구원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비록 갈릴리지방에서 나사렛 예수가 선보이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사상이 전통적인 유대교리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백성들이 메시아라고 서서히 믿고 있는 예수는 유대교지도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세나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결코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는 외세인 헤롯 왕가나 로마총독에 대한 반감을 전혀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가 어떻게 외세를 몰아내고 그 옛날 다윗의 이스라엘제국과 같은 선민의 제국을 건설할까요?...

아무리 나사렛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사상을 검증해보아도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전혀 아닙니다. 따라서 갈릴리지역에서부터 서기관, 랍비, 생도 등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5:21, 30, 3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무리(어부들과 상인들 그리고 일부 게네사렛 주민들)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2(시몬 형제들의 어선과 야고보 형제들의 어선)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베드로, 8)의 배라(가난한 어부의 마을 벳새다에 살고 있는 시몬은 가버나움의 부자이며 선주인 세배대의 일꾼이므로 그 배는 선주 세배대의 어선으로 보임, 1:40-44). (시몬에게)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호수에 떠있는 배에서 호안에 자꾸만 모여 들고 있는 많은 무리들에게 효과적으로 천국복음을 설파하신 것임),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21:33, 그 옛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뿌리깊은 에셀나무를 심고서 영생을 달라고 창조주 여호와께 간구한 것과 같음).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어부로서의 나의 경험을 내려놓고 선지자인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호수로 나아가서)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천)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그물이 찢어질 정도인지라). 7. 이에 (급히)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선주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 형제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오랜 세월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 여호와의 이적을 보고서 나사렛 예수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현신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 옛날 모세처럼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임, 33:20)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가버나움에 살고 있는 부자 선주이며 유명한 레위인 가문인)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4:19)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생업을 버려두고 부친의 집을 떠나 전적으로, 12:1-4) 예수를 따르니라”(5:1-11);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무리(어부들과 상인들 그리고 일부 게네사렛 주민들)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2(시몬 형제들의 어선과 야고보 형제들의 어선)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베드로, 8)의 배라(가난한 어부의 마을 벳새다에 살고 있는 시몬은 가버나움의 부자이며 선주인 세배대의 일꾼이므로 그 배는 선주 세배대의 어선으로 보임, 1:40-44). (시몬에게)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호수에 떠있는 배에서 호안에 자꾸만 모여 들고 있는 많은 무리들에게 효과적으로 천국복음을 설파하신 것임),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21:33, 그 옛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뿌리깊은 에셀나무를 심고서 영생을 달라고 창조주 여호와께 간구한 것과 같음).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어부로서의 나의 경험을 내려놓고 선지자인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호수로 나아가서)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5:1-5);

1)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고 있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처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태어나 자라게 되자 다음과 같은 주요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이미 보여준 바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가 베들레헴 어느 민가의 외양간에서 태어나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구유에 누워 있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곳을 방문한 에델 망대의 목자들이 천사를 통하여 들은 찬양의 말씀,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구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평화”(2:14)라고 하는 말의 뜻을 그곳에서 깨닫게 됩니다.

2)    그 이유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스럽고 천진난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칼로써 세상사람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키고자 하는 독재자나 정복자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며 그 자체 가장 온유하며 새로운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기쁨의 상징입니다(11:28-30).  그것이 왕궁의 좋은 방에서 태어난 모습이 아니라 가축의 우리에서 태어나 그 구유에 평화스럽게 온유하게 누워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인 것입니다.

3)    둘째, 메시아를 만나기를 오랜 세월 학수고대하고 있던 노인 남녀 두 사람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접견하고 있습니다(2:25-28, 36-38). 그들은 만민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으며 특히 여선지자 안나는 아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예루살렘성전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30년 후에 백성들에게 소개할 내용을 미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의사 누가가 안나를 여선지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여기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증거하고 있는 장소가 선민들의 유대교와 메시아사상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그들의 성전이라고 하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선민우월사상과 자신들만의 현세적인 구원사상을 넘어서서 여호와 하나님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그들의 중심지에서부터 새로이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의 회개운동이 그곳에서 크게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리하지 못하게 되면 그들이 버린 돌이 이방인들을 먼저 구원하는 복음의 주춧돌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20:17-18).

5)    셋째, 예수님은 갈릴리의 산골마을 나사렛에서 성장하지만 유월절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매년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12세가 된 예수가 예루살렘성전에서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2:42, 49). 예루살렘성전에 임재하여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넷째, 나사렛 예수는 30세가 되자 요단 강가 베다니 마을을 방문하여 세례 요한을 만나고 그로부터 회개의 물세례를 받습니다(3:21-22). 그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강림하여 예수에게 임재합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사렛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가 행할 복음사역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6)    다섯째, 예수는 큰 선지자의 경지가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이 요단 강가에서 분명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선민과 이방인 모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서 영생의 구원을 얻을 준비를 하라고 온세상에 외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힘있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충만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3가지 믿음의 자세가 확고하여야 하다는 사실을 광야의 시험을 통하여 깨닫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가 사도 마태처럼 그의 복음서에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4:1-13).

7)    그 믿음생활의 비결 3가지의 내용이 ①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을 믿으며, ②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상급만을 받을 것이며, ③끝까지 자신의 생명의 주인인 여호와 앞에서 종의 법도를 확실하게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아버지 하나님을 자신의 종처럼 부리고자 하는 교만에 결코 빠지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준비가 모두 끝나자 예수님은 고향이 있는 갈릴리지역을 방문하여 회당에서 모인 무리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치유사역을 실시하기 시작하십니다(4:14-44).

8)    그런데 누가복음 5장인 본문에 들어서게 되면 예수님은 회당이 아니라 어부들과 상인들의 생활의 터전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동시에 수행제자로 삼고자 몇 사람을 Calling Out하십니다(5:1-11).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이 넓어지며 그 일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고자 자신의 사도를 모집하여 교육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복음사역의 현장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유대교의 총본산인 예루살렘성전의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그리고 여러 대도시의 지방공회에서 유대교지도자들이 갈릴리 복음사역의 현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5:17).

9)    그들은 예수님의 치유능력은 그 옛날 엘리야나 엘리사의 능력과 같이 대단한 것이지만 그가 전하고 있는 만민구원의 천국복음을 생각하면 나사렛 예수는 유대교인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선민만의 구원과 다윗제국의 재건을 이루어 줄 메시아의 모습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유대교지도자 가운데 교리의 해석과 종교재판의 주역이 되고 있는 서기관들과 랍비들 곧 바리새인들이 날카롭게 나사렛 예수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게 됩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의사 누가가 본문에서부터 구체적으로 기록하기를 시작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0)  특히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새로운 천국복음전파의 현장인 게네사렛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밤새 갈릴리호수에서 어로작업을 한 어부들이 새벽에 어선을 게네사렛 선착장에 대고서 잡아온 생선을 그곳 시장에 팔기 위하여 물양장에 올리고 있습니다. 둘째, 그 생선을 사서 큰 성읍 가버나움과 여러 마을에 팔기 위하여 중매인들이 아침부터 그곳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셋째, 그러한 생업의 현장을 아침 일찍 예수님이 방문하여 그들에게 큰 소리로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1).

11)  넷째, 모여드는 백성이 많아지자 예수님은 시몬의 빈 배를 빌려서 그 중앙에 올라타고 앉아서 편하게 호안의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십니다(2-3). 다섯째, 예수님은 그 배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는 시몬 베드로에게 한번 놀라운 어획의 기적을 눈으로 보여주고자 하십니다(4). 밤새 호수에서 어로작업을 했지만 별로 잡은 것이 없는 시몬입니다(5a).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말씀 앞에 자신의 경험을 내려놓고 다시 출항하고 있습니다(5b). 예수님이 그 어선에 타고 계십니다. 그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2)  6. 그렇게(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천)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그물이 찢어질 정도인지라). 7. 이에 (급히)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선주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 형제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오랜 세월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 여호와의 이적을 보고서 나사렛 예수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현신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 옛날 모세처럼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임, 33:20)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가버나움에 살고 있는 부자 선주이며 유명한 레위인 가문인)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4:19)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생업을 버려두고 부친의 집을 떠나 전적으로, 12:1-4) 예수를 따르니라”(5:6-11);

1)    갈릴리호수의 어부가 아니라 갈릴리 산골마을 목수였던 나사렛 예수가 가르쳐준 그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어획량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6). 그것은 일시에 호수의 많은 물고기들이 그리스도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움직여서 그물안으로 들어간 결과로 보입니다.

2)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는 도저히 그 많은 생선을 자신의 배에만 실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배가 전복이 될 것만 같습니다. 얼른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동업자 야고보 형제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두 척의 어선에 생선을 나누어 실었지만 역시 만선입니다(7).

3)    그 모습을 보고서 배안에서 시몬이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서 고백합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여호와의 능력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제가 여호와를 만났으니 죽임을 당할 위기에 빠졌습니다(33:20). 부디 이 죄인을 살려 주시고 그대로 떠나 주시기 바랍니다”(8절 의역);

4)    시몬 베드로의 간청을 그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의 동생 안드레와 다른 어선에 타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크게 놀라고 있습니다(9-10a). 자신들이 평소에 알고 있던 나사렛 예수가 아닌 것입니다. 그는 이미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구원주이며 심판주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5)    그때 그들 4사람을 자신의 수행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10b). 그들은 마치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12:1-4)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부친의 집을 떠나 어선을 버려두고 생업의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11). 그때부터 그들은 특이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6)    참고로, 사도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의사 누가의 본문내용과 약간 다릅니다(4:21-22). 그와 같이 사도들 사이에 통용이 된 이야기와 훗날 의사 누가가 직접 현지를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수집한 내용과는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부름 Calling Out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따라 나섰다고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요컨대, 그와 동일한 은혜를 얻은 자들이 오늘날의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그 옛날 나병환자 나아만 장군을 선지자 엘리사가 고쳐준 역사가 있음, 4:27, 왕하5:1, 14. 그러므로 여기서의 나병환자는 나사렛 예수를 엘리사와 같은 큰 선지자로 여기고 있는 것임) 하니,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4:6-8, 고대사회에서 불치의 병인 나병을 낫게 하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임). 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바리새인들에게 시비거리를 제공하지 아니하기 위하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발 없는 말처럼 소문이 빨리 퍼지며 비밀 엄수하라고 당부한 것이 도리어 더 빨리 더 멀리 퍼지고 있는 것임),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예수님의 천국말씀에 우선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영생구원을 위하여 더 좋은 일이기에 육신적인 병고침보다 그 순서가 앞서 있는 것임) 모여 오되(예수님께 몰려들되), 16. 예수는 (온종일 복음사역을 하다가 너무 피곤하므로 현장에서)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먼저) 기도하시니라.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나사렛 예수의 복음사역이 유대교인들이 바라고 있는 메시아의 역할에 어울리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전국각지에서 곧)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갈릴리에서 몰려든 백성들과 자리를 함께하여 몰래) 앉았는데 (갈릴리 현지에서)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소문 그대로)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 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라 내리니(큰 선지자인 예수가 결코 불쌍한 중풍병자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고쳐 주실 것으로 믿고서), 20. 예수께서 그들(중풍병자와 그 침상을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죄사함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여호와 뿐이심) 하시니(그런데 나사렛 예수가 분수도 모르고 감히 여호와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음.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명백하게 신성모독임),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이미 사람들의 내심을 모두 파악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이심, 4:13) 23.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나는 너희들이 유한한 육신적인 치유보다 여호와로부터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영원한 영생의 복락을 누리기를 더 원하고 있다는 것임)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1:14, 18, 5:24, 27)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말씀 한마디로 새로운 인생을 선물하여 주시는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임, 17:1, 65:17-20),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2:14,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나음을 입은 자에게 평화가 찾아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5:12-26);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그 옛날 나병환자 나아만 장군을 선지자 엘리사가 고쳐준 역사가 있음, 4:27, 왕하5:1, 14. 그러므로 여기서의 나병환자는 나사렛 예수를 엘리사와 같은 큰 선지자로 여기고 있는 것임) 하니,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4:6-8, 고대사회에서 불치의 병인 나병을 낫게 하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임). 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바리새인들에게 시비거리를 제공하지 아니하기 위하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발 없는 말처럼 소문이 빨리 퍼지며 비밀 엄수하라고 당부한 것이 도리어 더 빨리 더 멀리 퍼지고 있는 것임),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예수님의 천국말씀에 우선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영생구원을 위하여 더 좋은 일이기에 육신적인 병고침보다 그 순서가 앞서 있는 것임) 모여 오되(예수님께 몰려들되), 16. 예수는 (온종일 복음사역을 하다가 너무 피곤하므로 현장에서)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먼저) 기도하시니라”(5:12-16);

1)    예수님의 복음사역이 갈릴리의 여러 마을에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사 누가가 한가지 특이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있을 때에 사람을 상종하면 되지 아니하는 나병환자가 은밀하게 나사렛 예수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12a).

2)    일단 나병환자로 제사장에 의하여 판명이 되면 그때부터 환자는 마을을 떠나 외딴곳에서 살아가야 합니다(13:45-46). 그리고 사람과 마주쳐서도 아니됩니다.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경우에는 돌팔매를 맞게 됩니다. 그것은 나병의 전염을 예방하기 위한 율법의 규정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병환자는 돌에 맞을 각오를 하고서 온몸을 감싼 채 나사렛 예수를 그 옛날 엘리사와 같은 큰 선지자로 여기고 대담하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 앞에 엎드려서 간청하고 있는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12b).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님은 그 자가 바로 나병환자임을 진작에 인지하고 있습니다;

4)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당장 그 나병환자를 물리치거나 격리시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일체 발설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은 그 환자에게 간단하게 안수하면서 깨끗함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13). 그 순간 여호와의 능력에 의하여 나병환자가 일시에 낫게 됩니다(4:7, 12:13-16). 다른 사람들은 어떤 병이 낫게 된 것인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이 그에게 한가지 주의사항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일체 발설하지 말고 조용히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정결예식을 치루도록 하라(14:2-32). 그리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라”(14절 의역). 나병을 낫게 하는 일은 사실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행했다고 하는 소문을 듣게 되면 유대교지도자들이 시비를 걸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에 대비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이 또한 들어있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6)    그러나 그러한 경고가 완전하게 비밀을 유지하는 관건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가 불치인 나병까지 낫게 했다는 소문이 갈릴리 일원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많은 병자들과 장애자들이 홍수처럼 예수님의 사역현장에 몰려들고 있습니다(15). 물론 그들은 육신적인 병도 고치고 마음의 병도 고칠 수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15b).

7)    예수님은 그들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먼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병든 자와 장애자를 일일이 안수와 기도로 고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기진맥진하게 되면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면서 기도하여 원기를 되찾고 있습니다(16). 그 다음에는 다시 복음사역의 현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나사렛 예수의 복음사역이 유대교인들이 바라고 있는 메시아의 역할에 어울리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전국각지에서 곧)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갈릴리에서 몰려든 백성들과 자리를 함께하여 몰래) 앉았는데 (갈릴리 현지에서)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소문 그대로)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 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라 내리니(큰 선지자인 예수가 결코 불쌍한 중풍병자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고쳐 주실 것으로 믿고서), 20. 예수께서 그들(중풍병자와 그 침상을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죄사함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여호와 뿐이심) 하시니(그런데 나사렛 예수가 분수도 모르고 감히 여호와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음.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명백하게 신성모독임)”(5:17-20);

1)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 수상한 무리가 몰래 들어오고 있습니다(17). 그들의 정체는 유대교의 총본산인 예루살렘성전에서 밀파한 서기관들입니다. 바리새인의 지도자들인 서기관은 랍비를 데리고 함께 나사렛 예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 숨어들고 있습니다. 그들 뿐만이 아닙니다. 여러 지방의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이 또한 은밀하게 나사렛 예수의 행동을 살피고자 현장에서 그의 사역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2)    그들의 관심사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선지자의 능력을 진작에 뛰어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그는 메시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전하고 있는 천국복음은 좀 이상하다. 우리 유대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라고 한다면 응당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의 다윗제국을 재건하겠다고 선포해야 하는데 그것이 전혀 아니다. 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가? 그는 유대교를 파수하는 우리 선민의 메시아인가? 아니면 우리 유대교를 반대하고 있는 이단아인가? 예의 주시하고 만약 나사렛 예수가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한다면 강하게 질책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유대교를 지키는 길이다”.

3)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을 진정으로 싫어하는 자가 바로 마귀입니다. 그 마귀가 유대교지도자들의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구원사상 그리고 현세적인 축복사상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특히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자라는 관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자신들도 모르게 유대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는 일에 동원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런데 마침 한 중풍병자를 침상 째 지붕에서부터 예수님이 사역하고 있는 방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19). 본래는 정상적으로 모인 무리를 뚫고서 중풍병자의 침상을 그 친지들이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18). 따라서 부득이 남의 지붕을 뚫고서 침상에 줄을 매달아 중풍병자를 방안으로 들여보내는 비상수단을 강구한 것입니다;

5)    그 절박한 광경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와 그 친지들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20a),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20b)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깨끗함을 받으라는 말과 병마야 떠나가라고 하는 말은 선지자가 행할 수 있는 명령에 속하므로 바리새인들의 시비거리가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전권에 속하고 있는 죄사함의 문제는 전혀 다릅니다.

6)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이상 선지자라고 하더라도 결코 네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모독하는 가장 무서운 율법위반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에 불과한 예수가 스스로 여호와의 전권을 침범하여 교만하게 행사하는 참람죄를 범하고 말았으니 그 장면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서 이제 예수님께 달려들 것입니다.

(3)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이미 사람들의 내심을 모두 파악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이심, 4:13) 23.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나는 너희들이 유한한 육신적인 치유보다 여호와로부터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영원한 영생의 복락을 누리기를 더 원하고 있다는 것임)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1:14, 18, 5:24, 27)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말씀 한마디로 새로운 인생을 선물하여 주시는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임, 17:1, 65:17-20),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2:14,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나음을 입은 자에게 평화가 찾아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5:21-26);

1)    그런데 서기관을 필두로 하여 랍비들과 기타 바리새인들이 행동으로 나서기 전에 예수님께서 이미 그들의 내심을 알고서 선수를 치고 계십니다(21-22).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병이 나았으니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책잡힐 일이 전혀 없다. 그리고 그 말은 단지 육체적인 치유만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에게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알려주기 위하여 일부러 그 중풍병자가 죄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였다. 나는 사람들의 죄를 사해줄 수도 있는 권한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고 있는 구원주 그리스도이다”(23-24a 의역).

2)    그 다음에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24b)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로부터 벌써 죄사함을 받았기에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그 중풍병자는 즉시 병이 나아서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친지들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25, 2:14). 그와 같이 영적으로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의인으로 간주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면 육신적인 나음은 현세적으로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단지 그 일이 그에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생명의 주인이며 구원주가 되시는 주님의 몫이라고 하겠습니다.

3)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던 백성들이 하나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신적인 능력과 죄사함의 은혜를 선포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26).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므로 서기관과 랍비 그리고 기타 바리새인들이 더 이상 함부로 나설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가서는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대로 버려두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과 죄사함의 은혜까지 함부로 선포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의 행보를 산헤드린 대공회가 제어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성전에서 드리고 있는 대()속죄일의 제사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16:29-34). 그러므로 비상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유대인 사회에서 관세를 거두여 황제에게 바치고 있는 세관원은 한마디로, 매국노이며 죄인취급을 받고 있음. 그런 세관원을 예수님이 감히 제자로 부르신 것임), 28. (갈릴리의 세관원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그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따르니라(세관원 레위는 동족들이 보기에 떳떳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심정을 지니고 있는 자임. 따라서 그 옛날 엘리사처럼 큰 선지자로 불리고 있는 나사렛 예수의 생도가 되고자 즉시 따라나선 것임, 왕상19:21. 그는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신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훗날 자신의 이름을 마태라고 개명하고 있음, 9:9).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유대교지도자인 그들은 세관원을 동족인 선민을 괴롭히는 매국노이며 종교적으로 엄청난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음)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일체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구원과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임, 7:30, 18:11-14).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세례 요한의 금욕생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1:12-18, 3:29-30)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스스로 여호와 앞에 의인으로 여기고 대속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자들은 빨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을 선택해야 함. 그것이 흉악의 결박과 굴레를 풀어주고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임. 그것이 금식기도의 목적인 것임, 58:6).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천국복음을 듣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서는 자가 대속자 그리스도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임. 그러한 성도에게 여호와의 은혜로 거듭난 삶이 주어지게 되는 것임).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그러나 종교적인 기득권의 유지에만 매달리고 있는 너희 바리새인과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구나!)함이니라”(5:27-39);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유대인 사회에서 관세를 거두여 황제에게 바치고 있는 세관원은 한마디로, 매국노이며 죄인취급을 받고 있음. 그런 세관원을 예수님이 감히 제자로 부르신 것임), 28. (갈릴리의 세관원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그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따르니라(세관원 레위는 동족들이 보기에 떳떳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심정을 지니고 있는 자임. 따라서 그 옛날 엘리사처럼 큰 선지자로 불리고 있는 나사렛 예수의 생도가 되고자 즉시 따라나선 것임, 왕상19:21. 그는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신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훗날 자신의 이름을 마태라고 개명하고 있음, 9:9).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유대교지도자인 그들은 세관원을 동족인 선민을 괴롭히는 매국노이며 종교적으로 엄청난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음)”(5:27-30);

1)    당시의 로마제국은 속국에 대하여 관세는 전부 황제에게 바치고 내국세는 현지에서 사용하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로마의 속국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은 내국세를 거두고 있는 세리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아니하지만 관세를 거두고 있는 유대인 세관원에 대해서는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2)    한 마디로, 유대인 세관원은 동족의 고혈을 빠는 매국노이며 종교적으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유대교인들은 메시아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헤롯왕가와 로마총독부를 내쫓고 유대인 세관원들을 모조리 처벌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갈릴리 가버나움의 세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3)    유대인 세관원 레위를 느닷없이 나사렛 예수가 자신의 제자로 부르고 있으며 그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27-29a). 그 자리에는 레위의 동료인 세관원들이 많이 초대가 되어 있습니다(29b). 징벌의 대상인 매국노 죄인과 식사를 함께하며 그들을 포용하는 나사렛 예수는 더 이상 메시아가 아니며 유대교인들이 존경하는 선지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4)    따라서 서기관과 랍비 그리고 기타 바리새인들이 앞장서서 강력하게 나사렛 예수를 성토하고 있습니다;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30);

꼼짝 없이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매국노 죄인취급을 받게 된 예수님의 항변은 과연 무엇일까요?...

(2)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일체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구원과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임, 7:30, 18:11-14).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세례 요한의 금욕생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1:12-18, 3:29-30)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스스로 여호와 앞에 의인으로 여기고 대속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자들은 빨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을 선택해야 함. 그것이 흉악의 결박과 굴레를 풀어주고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임. 그것이 금식기도의 목적인 것임, 58:6).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천국복음을 듣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서는 자가 대속자 그리스도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임. 그러한 성도에게 여호와의 은혜로 거듭난 삶이 주어지게 되는 것임).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그러나 종교적인 기득권의 유지에만 매달리고 있는 너희 바리새인과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구나!)함이니라”(5:31-39);

1)    예수님은 차제에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선민만의 구원사상과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메시아사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사상과 천국복음의 진리로 설명하기 시작하십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3가지입니다;

2)    첫째, 히브리경전을 사제지간에 오랜 세월 연구하여 그 내용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면서 율법선생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한가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서도 의인이며 건강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하는 그 인위적인 잘못된 자부심이라는 것입니다(18:9-14).

3)    둘째,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종교적으로 존경 받고 있는 율법선생이기에 당연히 여호와 앞에서도 거룩하며 경건한 자라는 잘못된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천국이 가까이 오고 있으므로 회개하고서 물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고 외치고 있는 선지자 세례 요한의 말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7:30).

4)    셋째,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지내고  있는 그 현장에서도 자신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훼방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33절과 30).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죄인인 인간들을 불러서 천국복음에 대하여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31-32);

5)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시는 만민구원의 방법인 천국복음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방해하고 있으니 장차 역사적인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의 진입으로 가나안의 유대인사회가 궤멸되고 유대교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는 예루살렘성전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율법의 규정에 의하여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가축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고 그것으로 자신들이 의인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 율법적 의인생활이 역사적으로 종식되고 마는 것입니다(16:29-34, 7:27-28).  

6)    바리새인의 잘못에 대하여 부연설명을 해봅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이 큰 잘못인 이유는 한마디로, 전능하신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면서 그 종으로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17: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피조물인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입니다(3:9).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며 육신적인 삶에 탐닉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7:23-25).

7)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인간적인 지성으로 히브리경전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그 내용을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치며 율법적인 종교생활을 계속 강요하고 있으니 그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알기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그 앞에 서야만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영의 도움을 받아서 영적인 여호와의 말씀을 해석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4:23-24).

8)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 중심을 꿰뚫고 계시는 여호와께서는 마음 따로 이성 따로 움직이고 있는 그들이 정말 문제거리입니다(4:13, 삼상16:7). 그 결과 바리새인들의 종교생활에 대하여 그것이 겉과 속이 다른 외식적(外飾的, 바깥 모양만 아름답게 치장하는) 신앙생활이라고 질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세관원 레위에 의하여 훗날 그가 작성하고 있는 마태복음 제23에 가득 수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9)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3가지 말씀을 덧붙이고 계십니다; 첫째,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의 천국복음을 전하는 그 자리는 심히 기쁘고 즐거운 자리이므로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자리라는 것입니다(34).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들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처형을 당하게 되면 그때에는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회개하는 금식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35).

10)              둘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천국복음을 그 마음속에 받아들이자면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교인들은 반드시 선민만의 의인사상과 구원사상 그리고 선민의 제국을 이 세상에 건설하기 위하여 오신다고 하는 메시아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새언약이라는 포도주를 그 새부대에 받아들일 수가 있다고 예수님이 친절하게 설명하십니다(36-38).

11)             셋째, 선민은 물론 모든 이방인까지 불러서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들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며 또한 그들로부터 율법을 이기적인 현세주의 구원사상으로 배우고 있는  유대교인들이라는 예수님의 지적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선민만 구원을 받고 이방인들은 여호와의 진노와 저주로 그 옛날 애굽제국에서 발생한 유월절 밤의 심판을 받는 것이 정당하며(12:29-30)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역사섭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14:27-31, 왕하19:35);

12)             그러한 묵은 사상이 더 좋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비극이라는 예수님의 한탄이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그러나 종교적인 기득권의 유지에만 매달리고 있는 너희 바리새인과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구나!)함이니라”(5:39)는 구절에 진하게 배어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성육신하게 하고 3 6개월의 공생애를 살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자신들이 창조주 여호와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천국의 시민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에 가장 큰 방해자가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토록 열심히 히브리경전을 연구하고 이성적인 깨달음을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치고 있는 그들이 어째서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근본적으로 두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는, 영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만 풀이하고자 애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이 죄인이며 무익한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러한 교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여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아무리 지성적으로 히브리경전을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알맹이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와 같은 절름발이 신앙생활을 영위하면서 그것을 완전한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문젯거리인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새언약의 시대 곧 만민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대속의 제물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를 기득권에 사로잡혀 있는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이 배척하고 있습니다.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다윗제국의 재건이 필요하며 그것이 메시아의 역할이라고 그들이 이기적으로 그리고 세속적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한탄이 본문의 말미에서 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본문의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이기적인 종교생활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종의 법도를 지키며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맞이하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