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안식일의 주인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가 얻는 생명의 복과 세상살이”(눅6:1-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7. 27. 07:59

제목; “안식일의 주인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가 얻는 생명의 복과 세상살이”(6:1-26)

설교일; 주후 2024 8 1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 27일 토요일 작성)

 

의사 누가는 그가 작성하고 있는 제3복음서 제6장 첫머리에서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안식일 논쟁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비밀 한가지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5. 또 이르시되, 인자(人子, son of man,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 1:14)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6:1)는 예수님의 증언입니다;

그 구절은 다른 공관복음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12:8),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8). 예수님의 그 선언의 내용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공관복음에 공통적으로 수록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말씀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알곡을 골라서 먹는 일이 유발하고 있는 바리새인과의 안식일 논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먼저 연혁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첫째로, 바리새인들은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는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동족 유대인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유래가 다음과 같습니다; “27.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9.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30.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16:27-30).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여호와께서 이슬처럼 내려준 만나를 새벽에 거두어 일용할 양식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6일날에는 이틀치의 양식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으로 7일날 안식일에는 세상일을 하지 아니하고 처소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율법으로 공부하면서 그것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일만 했습니다.

둘째로, 그후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농업과 목축업을 경영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제7일 안식일에는 예루살렘성전이나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랍비로부터 히브리경전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기타 노동이나 세상적인 일은 하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집에서 예배의 장소까지 왕복하는 걸음거리만 허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교지도자들이 정한 안식일 규례의 대강입니다. 그 규례를 어기게 되면 이웃이나 율법선생인 랍비와 기타 바리새인들로부터 질책을 받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그만 시장기를 느껴서 간단하게 밀서리를 하고 있습니다.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알곡을 만들고 그것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노동 행위입니다. 가뜩이나 예수님 일행이 율법을 어기는지 아닌지 감찰하기에 바쁜 바리새인들의 눈에 그 광경이 들어오자 그들이 일제히 예수님 일행을 비난하고 있습니다(6:2). 그것을 보고서 예수님이 의미심장한 한마디 영적인 비밀을 그 자리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인자(사람으로 태어난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 1:14)안식일의 주인이니라”(6:5). 요한복음 제1장의 기록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의 한 위격이시므로 독생자 그리스도가 안식일을 만든 주역임이 사실입니다(2:3, 1:3).

넷째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논쟁은 이제 출애굽기의 율법규정 이전에 자리잡고 있는 창세기의 기록에 의하여 다시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창세기 제2장 첫머리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천지와 만물이 (6일 동안에, 1:31) 다 이루어지니라(만들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이미 계획)하시던 일(곧 ①세상의 창조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그 ②hardware의 시험운전 및 ③운영 program의 정기적인 점검까지)을 일곱째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hardware)(일단 6일만에, 1:26-31) 그치고 일곱째날에 (software를 재점검하면서)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세상을 점검하고 고치는) 일곱째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피조세계를) 창조하시며 (운영 프로그램을)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청지기와 함께 교제함으로써) 안식하셨음이니라”(2:1-3). 창세기 제1장에 기록되어 있는 6일 동안의 천지창조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제2장의 말씀은 이미 창조된 세상의 운행과 그 경영에 관한 내용입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가 되어 있는 여호와의 청지기 사람들이 이 세상을 경영하고 있지만(1:26-27) 때로는 여호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언제 어떻게 고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한 고침과 치유의 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인 제7일 안식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그러한 측면에서 안식일을 일하지 아니하고 마냥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간단하게 시편 제121편의 구절,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고쳐서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121:1-4). 창조주 여호와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가 되어 있는 청지기 사람을 점검하고 고치는 일 역시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인 성도는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보고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며 매우 복되고 거룩한 날입니다(2:3).

여섯째로, 창세기 제2장에서 여호와는 사람을 만드실 때에 단순하게 흙으로 그 육신을 만드는데 그치지 아니하시고 창조주의 생명의 기운을 그 코에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조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2:7-8). 여호와의 청지기인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여호와와 함께 지내면서 그 생명의 기운을 계속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누리면서 세상만물을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경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말하자면 안식일이란 성도가 주기적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는 거룩한 날입니다(2:3b). 또한 그날은 잘못된 것을 치유 받게 되는 하나님의 복이 전반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2:3a).

일곱째로, 그와 같은 안식일의 취지와 유래를 알지 못하고 단지 율법조항과 장로들이 만든 규례만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질책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안스럽기도 하고 영적으로 무지하게 보입니다(15:3). 어떻게 하면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줄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을 주신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먼저 살피라고 하는 의미에서 차제에 자신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계십니다; “5. 또 이르시되, 인자(人子, son of man,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 1:14)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6:1).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안식일까지 제정하신 여호와의 독생자가 안식일의 본래 취지가 무엇인지를 바리새인들에게 깨달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유대교리와 안식일 규례에 매달리고 있는 바리새인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속적이고도 인위적인 종교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성도들도 이제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본래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노동행위금지, 5:14)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삼상21:6) 5. 또 이르시되, 인자(人子, son of man,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 1:14)안식일의 주인(안식일을 만든 창조주 여호와의 한 위격임을 말함, 1:3)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synagogue, 유대교인들이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 및 히브리경전 강해 그리고 주요사항 의결 등을 행하는 곳임)에 들어가사 (히브리경전을 읽고 그 내용을 천국복음으로)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중풍병자이거나 근육위축증 환자)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그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하심. 특히 그 일을 잘 하도록 자신의 종인 청지기를 교육시키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고 볼 수가 있음, 2:1-8, 12:1-2),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바리새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성도들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 곧 안식일을 만든 그 제정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인 것임, 15:3)”(6:1-11);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노동행위금지, 5:14)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삼상21:6) 5. 또 이르시되, 인자(人子, son of man,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 1:14)안식일의 주인(안식일을 만든 창조주 여호와의 한 위격임을 말함, 1:3)이니라 하시더라”(6:1-5);

1)    고대사회는 참으로 배가 고픈 시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농업과 목축업을 경영하여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생산량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실정은 오늘날 과학문명이 첨단으로 발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세계적으로 여전히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로 남아 있습니다.

2)    더구나 갈릴리의 벽촌 나사렛에서 목수로 일한 경력의 가난한 예수님이 12사도들과 함께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 재정을 확보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의사 누가는 누가복음 제8장 첫머리에서 예수님 일행의 공생애를 재정적으로 도운 여성들의 이름까지 수록하고 있습니다(8:2-3);

3)    재정이 부족한 그들의 전도여행에 후원금을 마련해준 여인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실정을 감안한다고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날 밀밭 사이의 좁을 길을 지나가다가 그만 시장기를 느끼고 평소의 버릇처럼 손으로 밀서리를 하고 있는 광경이 그리 낯설게 보이지 않습니다(1);

4)    그러나 예수님 일행의 천국복음전파를 탐탁하지 아니하게 여기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엄청난 안식일 규례의 위반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모든 노동행위를 비롯한 세상일이 금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집에서 예배의 처소인 성전이나 회당까지 왕복할 수 있는 거리 11km정도만 걷는 것을 그날 허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5)    특히 그날에는 그 옛날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생활을 하고 있을 때처럼 음식을 만드는 요리도 금지가 됩니다(16:23). 하루전에 만들어둔 음식만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선지자인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밀서리까지 하고 있으니 그 잘못을 질책하는 것은 율법선생을 위시한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실로 당연한 것입니다(2).

6)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의 2가지 반론이 바리새인들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장군의 행적 가운데 특이한 내용입니다(3). 그것은 살아있는 권력자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급히 피신하느라고 청년장군 다윗과 그의 부관들이 그만 제대로 양식을 챙기지 못하여 기아에 허덕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7)    다윗은 마침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놉 땅을 지나고 있는지라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부디 먹을 것을 달라고 간청합니다(삼상21:1-3).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아니면 먹을 수가 없는 진설병상에서 물린 떡을 5덩어리나 주고 있는 것입니다(삼상21:3-6);

그것이 과연 율법위반행위로서 지탄의 대상이 될까요?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그 배고픔을 돌보고자 하는 여호와의 뜻의 실천인 것일까요?

8)    또 하나는, 예수 자신의 신분이 안식일을 제정한 창조주 여호와의 독생자임을 발설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제4복음서 제1장 첫머리의 말씀을 참조하면 금방 이해가 가능합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3, 14).

9)    당시 히브리경전을 읽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 가운데 메시아의 신분과 그 영광에 대한 다음 기록을 참조하면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어렵지 아니하게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태어) 났고 (여호와께서 자신의)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그 신격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소위 정치적인 메시아(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만의 제국을 건설하는 그러한 선민만을 위하는 메시아)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조금도 보이지 아니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결코 구원주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싶지가 아니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천국복음의 전파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의 시비는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2)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synagogue, 유대교인들이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 및 히브리경전 강해 그리고 주요사항 의결 등을 행하는 곳임)에 들어가사 (히브리경전을 읽고 그 내용을 천국복음으로)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중풍병자이거나 근육위축증 환자)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그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하심. 특히 그 일을 잘 하도록 자신의 종인 청지기를 교육시키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고 볼 수가 있음, 2:1-8, 12:1-2),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바리새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성도들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 곧 안식일을 만든 그 제정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인 것임, 15:3)”(6:6-11);

1)    안식일날 야외에서 길을 가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서리를 하는 광경을 보고서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1-2).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나 또다른 안식일에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의 홈 그라운드인 회당에서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자 잔뜩 벼르고 있습니다(6-7).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차원 높은 강력한 반론에 부딪히자 그만 할 말을 잊어버리고 한발 물러서고 맙니다(8-9). 그 자초지종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예수님이 안식일에 유대교인들이 모여 있는 갈릴리의 회당을 찾아가서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 히브리경전의 말씀을 읽고 그 뜻을 아버지 하나님의 천국복음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취지로 풀이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6a). 그런데 잠시 눈을 들어보니 오른손이 마비되어 몹시 불편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6b). 고대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장애자를 모임장소에서 뒤쪽에 배치합니다. 그런데 단상에서 잘 보이는 앞줄에 배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모종의 음모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3)    둘째,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 주위에서 예수님의 다음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눈이 번쩍이고 있습니다(7). 그들의 의도는 과연 메시아로 알려지고 있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안식일날 또다시 병자를 고치는지 아니하는지를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벌써 그들의 고약한 의중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손 마른 병자를 단상 앞 중앙통로로 불러내면서(8) 동시에 바리새인들에게 한가지를 질문하십니다;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6:9).

4)    셋째, 안식일 규례에 따르면 거룩한 그날에는 의료행위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율법의 기본취지라고 볼 수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에 비추어보면 매우 지엽적이고 형식적인 것입니다. 창조주는 자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그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생명살림의 정신을 천명하고 계십니다(20:12-17, 10:27, 37). 그런데 안식일 규례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그 기본취지마저 훼손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위법규가 감히 모법인 상위법률을 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예리한 예수님의 지적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유구무언일 따름입니다.

5)    넷째, 그들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의 얼른 그 손 마른 병자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십니다(10);

그것이 중풍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근육퇴화의 결과인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에 상관이 없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모든 육신이 고침을 받아 힘차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그들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물러간 다음에도 여전히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기어코 자신들의 유대교리를 보호하고 종교지도자로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생각에 반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간교한 꾀로 해치우고자 중의를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11).

둘째로,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예수님은 수많은 제자들을 조직하여 효율적으로 천국복음을 많은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병자와 장애자를 일손을 나누어서 고치고자 한 것으로 보임. 그 방안을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제자들을 나누어 맡을 조장을 선택하고자 그 계획을 기도를 통하여 확정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마치 그 옛날 모세가 자신을 보좌할 관료조직을 만든 것과 같음, 18:24-26), 13. (밤이 지나고 태양이 떠올라 날이)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12을 택하여 사도(使徒, 헬라어로는 아포스톨로스 πόστολος이고, 영어로는 apostle)라 칭하셨으니, 14.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요한복음에 따르면 안드레가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아온 제자임, 1:40.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시몬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를 동시에 Calling Out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음, 5:10-11) 야고보 (그의 동생) 요한 (안드레의 동무) 빌립 (빌립의 동무로서 나다나엘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1:45) 바돌로매, 15. (갈릴리의 세관원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의미로 바꾼 이름인) 마태 (쌍둥이라는 뜻의)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당시 외세를 물리치고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무장투쟁노선의 열심당)이라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유대지방 벽촌인) 가룟(출신의유다. 17. 예수께서 그들(12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예수님) 제자의 많은 무리(예수님의 제자의 수는 12사도가 나누어 조장을 맡아도 될 정도로 많은 수임, 누가복음 제10장에서는 전도팀원만 하더라도 70명임, 10:1)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이방지역인)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수로보니게 족속을 말함, 7:26)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예수님의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逐邪의 이적으로) 고침을 받은 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혈루병 걸린 여인의 경우, 8:44-46)”(6:12-19);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예수님은 수많은 제자들을 조직하여 효율적으로 천국복음을 많은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병자와 장애자를 일손을 나누어서 고치고자 한 것으로 보임. 그 방안을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제자들을 나누어 맡을 조장을 선택하고자 그 계획을 기도를 통하여 확정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마치 그 옛날 모세가 자신을 보좌할 관료조직을 만든 것과 같음, 18:24-26), 13. (밤이 지나고 태양이 떠올라 날이)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12을 택하여 사도(使徒, 헬라어로는 아포스톨로스 πόστολος이고, 영어로는 apostle)라 칭하셨으니, 14.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요한복음에 따르면 안드레가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아온 제자임, 1:40.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시몬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를 동시에 Calling Out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음, 5:10-11) 야고보 (그의 동생) 요한 (안드레의 동무) 빌립 (빌립의 동무로서 나다나엘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1:45) 바돌로매, 15. (갈릴리의 세관원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의미로 바꾼 이름인) 마태 (쌍둥이라는 뜻의)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당시 외세를 물리치고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무장투쟁노선의 열심당)이라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유대지방 벽촌인) 가룟(출신의유다”(6:12-16);

1)    출애굽기 제18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광야생활을 하면서 홀로 백성들의 재판을 도맡아 판결하고 있습니다(18:1). 그것을 보고서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가 관료조직을 만들어 그들의 보좌를 받도록 하라고 사위인 모세에게 충고합니다(18:17-22). 구체적으로, 관료들을 선발하여 모세가 그들에게 재판에 필요한 율법을 가르치고 잘 훈련시켜서 백성들의 재판을 담당하게 하고 모세는 그들 재판관들을 감독하면서 큰 소송만 감당하면 된다는 내용인데 모세가 그대로 실시하고 있습니다(18:21-26).

2)    본문에서 예수님이 산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을 보좌할 사도들을 선발하여 세우고자 하는 것이 그와 비슷합니다(12). 밤새 많은 제자들을 일일이 생각하면서 과연 누구를 그 팀장인 사도로 세우면 좋을지 그리고 몇 명을 세우면 좋을지를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12명의 사도를 세우기로 작심하고 그 인선을 나름대로 마치고 있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면이 밝아지고 있으므로 예수님이 하산하여 제자들을 불러모으십니다(13a).

3)    그 자리에서 일일이 호명하여 12명을 사도로 임명하십니다(13b). 그 인선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14-16); 첫째, 누가복음 제5장에서 가장 먼저 게네사렛에서 제자로 부르신 4명 곧 ①시몬 베드로와 그 동생 ②안드레 그리고 세배대의 아들인 ③야고보와 그 동생 ④요한입니다(5:5-11, 4:18-22). 둘째, 가버나움 세관원 출신인 ⑤레위입니다(5:27-28, 그후 레위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마태로 개명하고 있음, 9:9). 셋째, 요한복음 제1장에 따르면 안드레와 동향인 ⑥빌립과 빌립의 동무인 ⑦나다나엘입니다(1:43-49, 나다나엘의 다른 이름이 본문에서는 바돌로매임, 6:14). 넷째, 사도 요한이 동무로 여기고 있는 ⑧디두모 도마인데 그 역시 갈릴리 출신입니다(20:24, 21:1-2).

4)    그러므로 이상 12사도 가운데 갈릴리 출신이 3분의 2 8명입니다. 다섯째, 갈릴리가 아닌 유대지역 출신이 4명인데 그 가운데 가문이 좋아서 부친의 이름자를 붙이고 있는 두 사람 곧 ⑨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⑩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있으며 ⑪열심당원 출신인 시몬이 있고 마지막으로 ⑫벽촌 가룟 출신으로서 출세욕이 남달리 강한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그들 12명이 모두 남자이므로 예수님의 공생애 3 6개월 동안 스승과 함께 먹고 마시며 끝까지 복음사역에 동행하게 됩니다(1:22).

5)    그리고 평소에는 12사도가 스승이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많은 제자들을 나누어서 통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호위 겸 수행제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명령으로 각각 전도팀을 이끌고 지역선교에 나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현대의 조직이론에서 한사람의 보스가 지휘할 수 있는 최대 부하의 수를 12명으로 보고 있는데 그 원형이 12사도인 것만 같습니다. 그들 12명 가운데 한사람 가룟 유다가 스승을 배신하여 그 이름이 빠지는 대신에 주님의 승천 후에 맛디아가 제비로 뽑히어 12사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들이 모두 초대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1:17, 21:14).

(2)  17. 예수께서 그들(12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예수님) 제자의 많은 무리(예수님의 제자의 수는 12사도가 나누어 조장을 맡아도 될 정도로 많은 수임, 누가복음 제10장에서는 전도팀원만 하더라도 70명임, 10:1)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이방지역인)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수로보니게 족속을 말함, 7:26)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예수님의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逐邪의 이적으로) 고침을 받은 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혈루병 걸린 여인의 경우, 8:44-46)”(6:17-19);

1)    12사도와 함께 예수님이 복음사역을 실시하게 되자 갈릴리지역 평지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병자와 장애자를 더 많이 치유하게 됩니다(17a).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12사도들이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지휘하여 몰려들고 있는 무리들을 질서 있게 자리에 앉게 합니다. 오와 열을 맞추어 앉게 하였으므로 예수님이 그 앞에서 말씀을 전하기에 수월하신 것입니다.

2)    둘째, 병자와 장애자를 한사람 씩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차례대로 질서 있게 많은 사람을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더러운 귀신이 들린 자를 예수님이 신위적인 능력으로 고쳐주자 그 소문이 갈릴리 주변의 이방지역으로 널리 퍼져 나갑니다. 특히 우상을 섬기며 세상풍속을 쫓아 무속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지역에서 귀신들이 성행하고 있습니다(8:30).

3)    따라서 이방인들이 귀신 들려 있는 친지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 이방인까지 일일이 치유하여 주시는 고마우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의 복음사역을 예수님이 언제나 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므로 의사 누가는 그 남부인 유대지역과 예루살렘에서 병자와 장애자들이 북상하여 몰려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7b).

4)    또한 북녘의 페니키아 곧 두로와 시돈 지역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도 갈릴리 복음사역의 현장을 찾아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7c). 그와 같이 한꺼번에 많은 무리가 몰려들자 12사도와 제자들이 질서를 유지하기에 참으로 힘이 들고 있습니다. 특히 군중들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게 된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기에 서로 그 주위로 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19a).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예수님을 통하여 그들에게 신유의 은사로 전이가 되고 있습니다(19b, 8:44-46).

셋째로,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이른바 산상수훈의 시작임, 5:1-12), 너희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31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됨으로써, 14:16-20) 하나님의 나라너희(에게 임할) 것임이요, 21. 지금 (영육 간에)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복을 받아 영육 간에)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11:9, 1:3),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65:17-19, 살전5:16),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고난에 대한 천국에서의 상급이 너무나 크다, 22:28-30).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그 옛날 선지자들이 받은 상급보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받을 하나님의 상급과 선물이 더 크다고 하겠음. 그 이유는 주님의 제자는 남은 인생을 31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는 놀라운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임, 그 영적인 도움심으로 이 세상의 고난을 이기고 넉넉하게 천국에서 큰 상급을 얻게 되는 것임, 28:18-20,  1:8, 8:1-2, 38-39, 22:28-30).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이상은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 말씀과 같은 것임, 16:19-26).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칭찬은 위험한 것임. 그것이 아니라 성도는 매사 여호와 앞에서 주님안에서 종의 법도를 지키며 끝까지 살아가야 하는 것임, 17:10)”(6:20-26);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이른바 산상수훈의 시작임, 5:1-12), 너희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31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됨으로써, 14:16-20) 하나님의 나라너희(에게 임할) 것임이요, 21. 지금 (영육 간에)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복을 받아 영육 간에)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11:9, 1:3),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65:17-19, 살전5:16)”(6:20-21);

1)    이제부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에서 영적인 교훈을 주시는 이른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가르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20a). 그 첫 단락이 현세적인 축복이 아니라 내세적인 영원한 축복을 추구하라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에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여호와의 복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에게 다음 3가지 종류의 인생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2)    첫째가, 세상의 복락에 취하여 그만 영적으로 부유한 자로 착각하고서 살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20b 반대해석). 현세적인 축복에 매몰이 되어 버리면 영생의 하나님나라가 그런 사람에게는 임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20c 반대해석).

3)    둘째가, 세상의 것으로 배를 채우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라고 하십니다(21a). 그 대신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만족함을 얻으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21b). 그와 같은 취지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2-13).

4)    셋째가, 생노병사(生老病死)에 시달리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 울며 영생의 천국복음에 소망을 두도록 하라는 것입니다(21c). 예수님은 베다니의 친구 나사로가 죽은 후에 그 집을 방문합니다. 그때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나사로)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마리아)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조문객)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죽은 나사로)를 어디 두었느냐? (마리아가)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11:32-35).

5)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되살려 내실 것입니다(11:41-44). 그러나 당장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 안타까운 현실을 보시고 예수님이 친히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다가오는 부활과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서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과 함께 울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고난에 대한 천국에서의 상급이 너무나 크다, 22:28-30).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그 옛날 선지자들이 받은 상급보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받을 하나님의 상급과 선물이 더 크다고 하겠음. 그 이유는 주님의 제자는 남은 인생을 31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는 놀라운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임, 그 영적인 도움심으로 이 세상의 고난을 이기고 넉넉하게 천국에서 큰 상급을 얻게 되는 것임, 28:18-20,  1:8, 8:1-2, 38-39, 22:28-30)”(6:22-23);

1)    본문말씀은 누가복음 제22장 제28-30절 말씀과 직결이 되고 있습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2)    예수님에 대한 시험은 동족 유대인들이 그를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가 아니라고 단정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배척하고 핍박하며 종래는 유대교의 종교재판을 통하여 죄인으로 정죄하고 비겁하게도 외세의 힘을 빌려서 십자가에 처형한 그것입니다. 그와 같은 시험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고 나면 그때에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22).

3)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은 온세상으로 전파가 되고 여호와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천국에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과 같이 사도와 제자들도 그곳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아 놀랍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23a).

4)    그 옛날 여호와신앙인 선지자들이 꿈꾸고 있던 그 상급을 동일하게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누리게 되었으니 그것을 기뻐하면서 이 세상의 시험을 과감하게 물리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23b). 그와 같은 미래의 일을 벌써 내다보시고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에게 주시는 귀한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3)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이상은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 말씀과 같은 것임, 16:19-26).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칭찬은 위험한 것임. 그것이 아니라 성도는 매사 여호와 앞에서 주님안에서 종의 법도를 지키며 끝까지 살아가야 하는 것임, 17:10)”(6:24-26);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세상적인 부귀영화를 추구하면서 끝까지 살아가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하여 다음 3가지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1)    첫째, 세상적인 부귀영화에 만족하여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외면하게 되면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16:19-31) 그대로 부자는 지옥불의 고통에 들어가고 맙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상급과 위로를 다 받고 말았기에 천국에서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아니한 것입니다(24);

2)    둘째,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변화가 무쌍하며 그 소유주가 자주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방탕하고 방종하여 가난뱅이가 되기도 하며, 권력자가 교만하여 그 권력을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되어 울부짖게도 되는 것입니다(25).

3)    셋째,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람들의 칭찬은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26). 사람들의 칭찬과 인기가 영원한 것인 줄 착각하게 되면 엄청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에 자기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칭찬은 세상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영생과 관련이 되어 있는 영원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참고로, 흔히 신세를 망치게 되는 3가지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①일찍 출세하여 세상 무서움을 모르고 지내는 소년 등과 ②백년해로하지 못하고 일찍 배우자를 사별한 경우 ③친지를 멀리한 자의 노년기 등입니다. 그러한 교만과 상실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주님을 섬기며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평안을 넘어서는 영원한 안식을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얻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규례를 잘 지켰다고 마치 의인이 된 것처럼 종교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것은 외식적인 신앙생활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져 있는 성도들이 신실한 청지기로서 잘 경영하여야 합니다.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안식의 복을 얻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생을 살아갈 때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은 온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도와 제자로 남은 인생을 힘있게 살아가라고 본문에서 주님이 산상수훈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뒤를 이어 살아간 12사도가 훗날 새 예루살렘성 12대문의 주춧돌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사도들의 뒤를 이어 우리 모두 천국에서의 영원한 상급을 누리는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