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예수님의 출사표에 담겨 있는 믿음생활의 비결과 그 실천”(눅4:1-4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7. 18. 07:04

제목; “예수님의 출사표에 담겨 있는 믿음생활의 비결과 그 실천”(4:1-44)

설교일; 주후 2024 8 4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 18일 목요일 작성)

 

마태복음 제4장과 누가복음 제4장에는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3가지 시험을 받으신 일을 똑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4:1-11, 4:1-13). 그런데 그 서술에 있어서 한가지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3번째 시험이 누가복음에 있어서는 2번째 시험으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구절풀이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1)  첫째,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누가복음도 제3장 후반부에서 나사렛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강림하고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3:17) 또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는 것입니다;

1)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에게서 물세례를 받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가리키면서 여호와께서는 그를 자신의 아들이며 창조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자라는 사실을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그와 달리 누가복음에서는 여호와께서 개인적으로 나사렛 예수에게 너는 내 아들이며 네가 행할 복음사역을 내가 기뻐한다는 말씀을 그에게 주고 있는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자가 여러 사람에게 선포하는 말씀이라고 하면 후자는 나사렛 예수에게 내밀하게 주고 있는 영적인 확신의 말씀인 것입니다.

(2)  둘째,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강력한 영적인 확신까지 받았으므로 이제 나사렛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여호와의 뜻으로 전파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며 힘있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되는 것입니다(5:24, 28:18-20). 그렇지만 유대교인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와 맺은 재래의 언약과 예수님이 전파하고자 하시는 새언약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차이의 특징이 과연 무엇일까요?

1)   옛날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록을 참조하면 그리스도가 전해주는 새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그 성격이 보다 내밀한 것이며 성도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함께 동행하는 놀라운 거듭난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3.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8: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

2)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로마서 제8장 제2절 말씀을 참조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자면, 새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31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의 성령충만한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마태복음 제4장 제1절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누가복음 제4장 제1절에서는 더욱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4:1-2a).

(3)  셋째, 그런데 진실로 흥미로운 사실은 성도가 한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여 그때부터 무조건 이 세상에서 만사 형통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본문에서 이른바 마귀의 3가지 시험의 내용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우선 3가지 시험문제의 내용이 누가복음 본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가,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장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4:2-4).

2)   둘째가, 과연 악한 세력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그 세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마귀와 적절하게 타협하지 아니하고 성도가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여 끝까지 창조주 여호와만 경배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4:5-8).

3)   셋째가, 여호와를 자신의 종처럼 부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자신의 주인으로 한결같이 섬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4:9-13).

그러한 취지를 지니고 있는 3가지 시험의 깊은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어떠한 각오로 임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그 점을 이제부터 예수님의 출사표에 담겨 있는 믿음생활의 비결과 그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본문을 음미하면서 그 핵심내용을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성령충만을 입고 있는 성도라고 하더라도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의 뜻인지를 모르고 헷갈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탐심이 기회를 보아 욕심을 충동하게 되면 영적인 분별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맙니다. 그 틈을 타고서 거짓선지자의 말과 세상의 유혹이 물밀듯이 밀려들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40일간 금식 기도한 결과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예수님에게 마귀의 유혹이 아주 달콤하게 그리고 합리적인 설득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4:3).

1)   그것은 한마디로 예나 지금이나 진리와 비()진리를 교묘하게 배합하여 배고픈 성도의 약점을 파고드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창세기 제3장에서는 마귀의 화신인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에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지혜를 얻게 되고 결코 죽지 아니하게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사실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따먹고 놀라운 지혜를 얻고 있으므로 그것은 진리입니다(3:22).

2)   그러나 죽지 아니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진리와 거짓이 함께 들어있는 유혹인데 그 시험문제의 허실을 온전히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하와가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속에서 엄청난 탐욕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3:6). 마찬가지입니다. 40일간 금식함으로 인하여 극도로 배가 고픈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떡을 만들어서 먹고 우선 허기를 달래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유혹이며 동시에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자 하는 술책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날 금식한 자는 반드시 그 기간만큼 보호식을 하면서 위장을 잘 달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하여 급히 떡과 같은 단단한 음식을 삼키게 되면 죽을 운명에 처하고 마는 것입니다.

3)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 그러한 저의를 숨기고서 마귀가 교묘하게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진리와 비진리가 다시 합쳐져서 마귀의 입을 통하여 성령충만한 예수님 앞에 커다란 유혹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통하여 마귀의 엄청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믿음생활의 비결이 명쾌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8:3) 하였느니라”(4:4).

4)   그런데 마태복음 제4장에서는 더 친절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8:3) 하였느니라 하시니”(4:4). 이왕 선지자 모세의 글을 원용할 것 같으면 마태복음의 내용이 더 완전하고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8:3)”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빠짐없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렇습니다. 비록 성령충만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무엇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정확한 진리의 말씀인지를 언제나 파악해야 합니다. 그 점에 소홀하여 거짓선지자의 말이나 세상의 이치만을 내세우고 있는 주장을 따르게 되면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출사표 가운데 믿음의 비결 제1조를 오직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진리의 말씀만을 따르고 실천한다는 것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제2조는 무엇일까요?...

(2)  둘째로, 성령충만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피조물인 사람에 불과하므로 세상살이에 있어서 크게 성공하고 또한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귀가 교묘하게 성도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그 유혹은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1)   그 이유는 마귀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무서운 유혹의 말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6. (마귀가 예수님에게)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창조주 여호와가) 내게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4:6-7). 예수님은 그와 같은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계십니다;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6:13) 하였느니라”(4:8).

2)   그 말씀의 이면에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세상적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다음과 같은 이유 두가지가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여호와의 형상과 모습을 닮아 있는 남자와 여자에게 여호와의 뜻을 따라 이 세상을 제대로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을 뿐 결코 마귀에게 세상경영의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습니다(1:26-31). 오히려 히브리의 전승에 따르면, 창조주의 보좌를 탐한 천사장 루시엘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천국에서 땅으로 추방하여 사탄인 루시퍼가 되게 하신 여호와의 처벌만이 있을 따름입니다(14:12-15, 1:6).  

3)   더구나 여호와와 동거하면서 생명의 기운을 언제나 얻고 있는 사랑하는 아담부부에 대해서도(2:7-25) 그들이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에 충동을 받아 여호와의 지시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서 창조주 하나님을 피하고 외면하였을 때에 그들을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쫓아 버리십니다(3:8-24). 물론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후손들을 먼 훗날에 완전한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기로 계획하시고(3:15) 에덴동산의 바깥으로 내쫓아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죄 가운데 영생하는 길을 막아 버리신 것입니다(3:22-24).

4)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시기에 단번에 본문 제6-7절에 기록되어 있는 마귀의 말은 근본적으로 원인무효라는 사실을 파악하십니다. 또 하나는, 마귀가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그 유혹을 쉽게 물리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시험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 믿음의 비결이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6:13) 하였느니라”(4:8)는 말씀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5)   쉽게 풀이를 해보자면 그 말씀의 뜻은 오직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과 상급만 사모하고 그것을 받아서 누리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선물과 상급은 사상누각(沙上樓閣, 모래위에 지은 높은 집)에 불과합니다(7:26-27). 왜냐하면, 그 제안은 근본적으로 원인 무효이며 나아가서 성도들을 죄와 사망의 법 아래로 끌고가고자 하는 마귀의 사탕발림이기 때문입니다(8:2).

6)   그와 반대로 피조물인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만민과 만물을 살려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계획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66:20-22, 14:1-3, 16-20, 22:28-30, 21:27). 비록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도들이 변함없이 오직 여호와께서 주시는 영적인 선물과 영생의 상급만을 바라고 믿음생활을 영위하는 경우에는 주님께서 성령충만을 통하여 이 세상을 넉넉하게 이길 힘을 공급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8:31-39). 실제로 그러한 일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4:31-44).

(3)  셋째로, 마태복음 제4장에서는 마귀의 두번째 유혹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본문 누가복음 제4장에서는 세번째의 유혹으로 기록되어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9. (마귀가 예수님을)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91:11)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91:12) 하였느니라”(4:9-11). 현실적으로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지 모릅니다;

1)   예루살렘성전에는 언제나 선민과 이방인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성막의 뜰에는 선민이 기도하는 공간과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막의 뜰에서 높은 성전의 꼭대기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독생자의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높은 꼭대기에서 성막의 뜰로 뛰어내리고 그 몸을 여호와의 천사들이 안전하게 받아서 착지를 시켜주는 해프닝을 연출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행한 선지자들이 역사적으로 없었기에 백성들은 단숨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그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는 무서운 흉계입니다.

3)   왜냐하면, 그 속에는 그리스도가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의 종처럼 부리고 있다는 절대권력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나 피조물인 인간을 엄청 사랑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리스도나 성령충만을 받은 성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마치 자신의 종처럼 부리고자 하는 교만이 철철 흘러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그러한 요구에 대해서는 결코 긍정적으로 응답하지 아니하십니다. 주종관계가 문란하게 되면 창조의 질서가 깨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종의 법도를 지키면서 거듭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만용은 금물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마치 여호와를 자신의 종처럼 부리고 있는 그러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기도 몇 마디로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부리고 싶다고 하면 그것은 여호와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성공과 형통함을 위하여 자신의 종으로 부리고 있는 교만의 극치라고 하겠습니다.

5)   그러므로 그러한 잔꾀를 부리고 있는 마귀를 물리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매우 강력합니다;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6:16) 하였느니라”. 요컨대 성령충만을 받은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비결은 ①나는 주님의 종이며 절대로 여호와는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자신의 종처럼 부릴 수 있는 그러한 우상이 아니고 진실로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다 라고 하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하는 그것인 것입니다.

6)   그와 같은 입장에서 여호와의 능력으로 나사렛 고향사람들에게 큰 특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대하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여호와의 종임을 분명히 하면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만을 전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4:16-27). 크게 섭섭함과 배신감을 느낀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습니다(4:28-30).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주인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따라야 하기에 고향사람들에게 특혜를 줄 수가 없음을 끝까지 분명히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빠른 속도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3:21-22, 인자인 예수가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임재하고, 아버지 하나님이 음성으로 함께하시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이 성령충만을 말하고 있는 것임)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1:80, 3:2-3, 그 옛날 세례 요한이 그러하였듯이 예수님이 스스로 복음사역을 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그 준비에 철저를 기하고 있는 것임),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15:25-26, 마귀가 등장하는 강도 높은 시험은 마치 마지막 종합시험과 같은 것임. 그 유혹을 이기는 믿음생활의 비결을 찾아내야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모범을 보여주고 또한 가르쳐줄 수가 있는 것임. 요컨대, 여호와의 말씀을 올바로 지키게 되면 엘림의 낙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임, 15:27)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굶주린 예수의 실상을 알고서 그 약점을 공략하여)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네 자신의 문제와 세상살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메시아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라는 실로 무서운 시험임. 그것은 선민우월사상과 현세 축복사상에 몰두하고 있는 유대교인들이 바라고 있는 정치적 메시아의 역할과 같은 것이므로 그들의 소원을 따라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해보아야 결국에는 집단 이기적인 지배 족속의 교체에 불과함. 끝까지 여호와를 주인으로 섬기는 근본적인 신앙생활의 변화가 아닌 것임).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8:3,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4:4)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그것은 거짓말임. 성경에는 전혀 그러한 구절이 없음. 그러므로 원인무효임)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거짓말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좌지우지하며 사람을 옭아매고 있는 마귀임, 8:44, 8:1-2).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6:13,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여호와의 명령 곧 신6:3절이 선도하고 있는 신명기 제6장의 결론적인 말씀임. 그것은 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율법의 기본 취지인 십계명과 참된 제사 규정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임. 그것이 중요하므로 의사 누가는 사도 마태가 세번째 시험으로 수록하고 있는 것을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두번째 시험으로 앞당기고 있다고 하겠음).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무모하게 네 멋대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그리할지라도 너를 무조건 사랑하고 계시는 너의 아버지)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여호와의 사자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그것은 마26:51-54절 말씀을 되돌아보게 함. 왜냐하면,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거나 천군을 동원하여 자기보호만 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성령충만한 성도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임.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는 여호와의 목적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것임. 그와 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성도들은 주님의 모범을 따라 이제는 그 제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임).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6:16, 아버지 하나님이 자기 멋대로 행하고 있는 나를 무조건 뒷받침해 주시는지 시험해서는 안되는 것임. 왜냐하면, 복음사역에 있어서 성도는 여호와의 종에 불과하며 결코 그 주인이 아니기 때문임. 예컨대, 모든 결정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소관임, 1:7-8. 그러므로 성도들의 믿음생활의 비결은 오로지 종의 본분에 충실하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종의 법도를 철저하게 지키는 그것임, 17:10).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유대교지도자나 고향사람 또는 성도와 가까운 인물들을 동원하여 다시 시험할 것임, 4:22-30, 16:22-23). 14. 예수께서 (마귀의 무서운 3가지 시험을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과 종의 법도로 물리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성령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일체의 믿음생활의 비결을 가지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자신에게 익숙한 갈릴리 지방에서 먼저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니) (천국복음의 전파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행하신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우선순위는 역시 천국복음의 전파가 먼저임) 뭇 사람에게 칭송을(긍정적인 평판을) 받으시더라”(4:1-1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3:21-22, 인자인 예수가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임재하고, 아버지 하나님이 음성으로 함께하시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이 성령충만을 말하고 있는 것임)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1:80, 3:2-3, 그 옛날 세례 요한이 그러하였듯이 예수님이 스스로 복음사역을 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그 준비에 철저를 기하고 있는 것임),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15:25-26, 마귀가 등장하는 강도 높은 시험은 마치 마지막 종합시험과 같은 것임. 그 유혹을 이기는 믿음생활의 비결을 찾아내야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모범을 보여주고 또한 가르쳐줄 수가 있는 것임. 요컨대, 여호와의 말씀을 올바로 지키게 되면 엘림의 낙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임, 15:27)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굶주린 예수의 실상을 알고서 그 약점을 공략하여)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네 자신의 문제와 세상살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메시아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라는 실로 무서운 시험임. 그것은 선민우월사상과 현세 축복사상에 몰두하고 있는 유대교인들이 바라고 있는 정치적 메시아의 역할과 같은 것이므로 그들의 소원을 따라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해보아야 결국에는 집단 이기적인 지배 족속의 교체에 불과함. 끝까지 여호와를 주인으로 섬기는 근본적인 신앙생활의 변화가 아닌 것임).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8:3,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4:4)하였느니라”(4:1-4);

1)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을 받았는데 어째서 성도가 세상살이에 있어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복음사역에 있어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오늘의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2)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세례 요한에게서 물세례를 받으실 때에 벌써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막상 복음사역이라는 공생애에 나서기 직전에 광야에서 견고한 믿음생활의 비결 3가지를 얻어서 그것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무장하고 계시는 것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그 비결은 그냥 얻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충만하신 예수님이라고 하더라도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서 마귀로부터 3가지 엄중한 시험을 받았으며 그것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비로소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우선 여기서는 첫번째의 비결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오로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을 의지하여 믿음생활을 영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자신에게 유리한 세상의 전통과 합리적인 논리와 경험적인 이치를 성경말씀에 비추어보지 아니하고 그냥 받아들여서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커다란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2)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그것은 거짓말임. 성경에는 전혀 그러한 구절이 없음. 그러므로 원인무효임)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거짓말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좌지우지하며 사람을 옭아매고 있는 마귀임, 8:44, 8:1-2).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6:13,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여호와의 명령 곧 신6:3절이 선도하고 있는 신명기 제6장의 결론적인 말씀임. 그것은 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율법의 기본 취지인 십계명과 참된 제사 규정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임. 그것이 중요하므로 의사 누가는 사도 마태가 세번째 시험으로 수록하고 있는 것을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두번째 시험으로 앞당기고 있다고 하겠음).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무모하게 네 멋대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그리할지라도 너를 무조건 사랑하고 계시는 너의 아버지)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여호와의 사자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그것은 마26:51-54절 말씀을 되돌아보게 함. 왜냐하면,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거나 천군을 동원하여 자기보호만 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성령충만한 성도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임.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는 여호와의 목적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것임. 그와 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성도들은 주님의 모범을 따라 이제는 그 제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임).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6:16, 아버지 하나님이 자기 멋대로 행하고 있는 나를 무조건 뒷받침해 주시는지 시험해서는 안되는 것임. 왜냐하면, 복음사역에 있어서 성도는 여호와의 종에 불과하며 결코 그 주인이 아니기 때문임. 예컨대, 모든 결정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소관임, 1:7-8. 그러므로 성도들의 믿음생활의 비결은 오로지 종의 본분에 충실하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종의 법도를 철저하게 지키는 그것임, 17:10)”(4:5-12);

1)    마태복음 제4장과 누가복음 제4장에서 똑같이 광야에서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받은 3가지 시험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지만 그 두번째와 세번째의 것이 서로 뒤바뀌어 있음을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제4장에서 두번째의 시험이 누가복음 본문에서는 세번째의 시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 세번째의 시험이 여기 누가복음에서는 두번째의 시험으로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2)    어째서 그러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마태와 의사 누가의 시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먼저 의사 누가는 사도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 그의 서방선교에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사도 바울에게서 중점적으로 배운 사실은 바울서신의 첫머리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는 글귀와 같은 것입니다.

3)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1:1a),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1:1a),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1:1a) 등입니다. 후속사도인 바울이 그러하듯이 의사 누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종의 법도를 여호와와 그리스도 앞에서 지키지 못한다고 하면 자신이 행한 모든 복음사역은 즉시 그 열매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4)    따라서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 제17장에서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17:10)고 하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사 누가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마귀의 3가지 시험을 이기는 마지막 예수님의 믿음생활의 비결은 끝까지 종의 법도를 창조주 여호와 앞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성전 꼭대기에서 무모하게 제마음대로 뛰어내리면서 주인이신 여호와께 무조건 천사를 보내어 나를 안전하게 착지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종의 법도를 어기면서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종처럼 그리고 우상처럼 부리고자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9-12);

그것을 의사 누가는 마지막 시험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6)    그리고 의사 누가는 성도가 복음사역의 과정에서 세상이 주는 성공과 선물을 탐하지 말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상급을 사모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가 두번째의 시험으로 수록하고 있는 소위 마귀가 유혹하고 있는 달콤한 성공과 선물을 단번에 물리치시는 예수님의 경우라고 하겠습니다(5-8). 그와 달리 본토 유대인 출신인 사도 마태는 동족 유대인들이 하루 빨리 메시아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7)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살아간 12사도들도 동족 유대인의 소망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승이신 예수님은 그 모든 유대인들의 소망을 이기적인 현세주의적 메시아사상이라고 단숨에 물리치시고 마십니다. 그 대신에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끝까지 전파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을 보고서 사도 마태는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유혹하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만을 추구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마지막 3번째 시험의 답안으로 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4:8-11);

(3)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유대교지도자나 고향사람 또는 성도와 가까운 인물들을 동원하여 다시 시험할 것임, 4:22-30, 16:22-23). 14. 예수께서 (마귀의 무서운 3가지 시험을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과 종의 법도로 물리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성령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일체의 믿음생활의 비결을 가지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자신에게 익숙한 갈릴리 지방에서 먼저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니) (천국복음의 전파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행하신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우선순위는 역시 천국복음의 전파가 먼저임) 뭇 사람에게 칭송을(긍정적인 평판을) 받으시더라”(4:13-15);

1)    마귀의 집중적인 시험이 광야에서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단호한 믿음의 선포가 그 시험을 무난히 통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마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지 아니하고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을 따를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둘째, 마귀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상급만을 얻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셋째,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종처럼 부리는 광경을 결코 연출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2)    요컨대, 종의 법도를 철저하게 지키고 계시는 성령충만한 예수님 앞에 마귀는 패배를 당하여 멀리 물러가고 있습니다(13). 하지만 그는 전략적 후퇴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귀는 전술을 달리하여 예수님의 가까운 친지를 이용하여 재차 공격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한 시도가 예수님의 3 6개월 간의 공생애에 점철이 되어 있습니다.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당장은 마귀의 3가지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의 확고한 믿음생활의 비결이 성령충만한 놀라운 역사를 갈릴리지역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3)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통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고 하는 사실이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줄기차게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15). 그리고 성령충만하신 예수님이 종의 법도를 지키자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백성들의 장애와 질병을 고치는 신위적(神威的, 신의 위력을 가지는 것)인 치유사역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4a). 그것이 갈릴리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14b). 이제 예수님은 어떠한 마귀의 교묘한 술수를 직면하게 되는 것일까요?...

둘째로,16. 예수께서 그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지만)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고향의 회당에서 토요일 안식일마다 성경을 읽고 강론하였다고 하는 말은 랍비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미임, 2:46-47), 17. (히브리정경을 강론하는 랍비를 회당에서 보좌하는 바리새인이 여러 경전 꾸러미 가운데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집어서)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성령충만을 받았으니) 이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성령충만을 주어 나를 선지자로 삼은 목적은 무엇보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하는 것임.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영적인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임) 나를 보내사 (이기주의와 현세적인 구복사상에) 포로 된 자에게 (여호와의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깨닫게 하여 영적인) 자유,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하나님의 복음에 비추어 경전의 말씀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함)을 전파하며 (이 세상에서의 권력과 부가 영원한 것인 줄 잘못 알고서 그 힘에)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희년의 해방을 맞이하듯이 영생의 천국이 다가오고 있음)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이상은 사61:1-2절임)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4:44, 이사야 선지자의 글이 의미하고 있는 메시아의 시대가 이제 열렸다) 하시니(4:17),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동네사람인 예수를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하여 서로 수군거리기를 시작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하나님의 복음)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선지자가 아니라 우리의 고향사람인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멸시하는 말투임) 23. (그러한 분위기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동향인이 대도시에서 의사로 인정을 받고 있다면 겸손하게 고향을 방문하여 이웃에게 먼저 의사로서 선심을 베푸는 것이 옳다고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말하고들 있다는 것).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참된 선지자는 공의의 정신에 따라 고향사람들에게만 특혜를 줄 수가 없음. 그 때문에 오히려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36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왕상17:1-7, 18:1, 5:17)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선지자)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왕상17:8-16, 엘리야가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있는 조국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벗어나 이방 땅 시돈에서 지낸 사실이 있다),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왕하5:1, 9-14). 28. 회당에 있는 자(고향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만민구원의 하나님복음보다는 선민구원이라는 집단이기적 현세 축복사상에 젖어 있는 것임),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를)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아예 없애 버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여호와의 사자의 도우심을 받아)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4:16-30);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6. 예수께서 그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지만)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고향의 회당에서 토요일 안식일마다 성경을 읽고 강론하였다고 하는 말은 랍비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미임, 2:46-47), 17. (히브리정경을 강론하는 랍비를 회당에서 보좌하는 바리새인이 여러 경전 꾸러미 가운데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집어서)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성령충만을 받았으니) 이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성령충만을 주어 나를 선지자로 삼은 목적은 무엇보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하는 것임.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영적인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임) 나를 보내사 (이기주의와 현세적인 구복사상에) 포로 된 자에게 (여호와의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깨닫게 하여 영적인) 자유,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하나님의 복음에 비추어 경전의 말씀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함)을 전파하며 (이 세상에서의 권력과 부가 영원한 것인 줄 잘못 알고서 그 힘에)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희년의 해방을 맞이하듯이 영생의 천국이 다가오고 있음)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이상은 사61:1-2절임)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4:44, 이사야 선지자의 글이 의미하고 있는 메시아의 시대가 이제 열렸다) 하시니(4:17)”(4:16-21);

1)    성령충만을 받으시고 믿음생활의 일체의 비결을 얻으신 예수님은 이제 복음사역의 공생애에 있어서 거침이 없습니다. 먼저 자신이 자란 갈릴리지역을 방문하여 한마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고 마치 세례 요한처럼 외치기를 시작하십니다.

2)    특히 토요일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 동네에 건립되어 있는 회당(synagogue)에 들어가서 히브리경전 두루마리를 읽고서 그 뜻을 풀이하여 여호와의 말씀의 본뜻을 밝히 가르쳐주고자 열심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예수님의 발걸음이 안식일날 나사렛을 방문하고 그곳 회당으로 향하고 있습니다(16a).

3)    그는 그 전에 그러하였듯이 회당에서 히브리경전 꾸러미를 읽고 그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주려고 단상에 섰습니다(16b). 그런데 마침 젊은 바리새인이 여러 경전꾸러미 가운데 이사야의 대선지서를 집어줍니다(17). 그것을 받아서 예수님이 공교롭게도 메시아의 사역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61:1-2을 읽고서 그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기 시작합니다(18-21);

4)    첫째,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충만을 받고 메시아로 세움을 받았으므로 이제부터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가난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8).

5)    둘째, 하나님의 복음이란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이곳에 임하고 있다는 선포입니다(19).

6)    셋째, 그러므로 현세적인 소원을 이루어 주는 메시아를 이기적으로 기대하지 말고 부디 모두들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영생의 은혜를 사모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21). 고향사람들이 평소와 다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20)

(2)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동네사람인 예수를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하여 서로 수군거리기를 시작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하나님의 복음)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선지자가 아니라 우리의 고향사람인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멸시하는 말투임) 23. (그러한 분위기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동향인이 대도시에서 의사로 인정을 받고 있다면 겸손하게 고향을 방문하여 이웃에게 먼저 의사로서 선심을 베푸는 것이 옳다고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말하고들 있다는 것).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참된 선지자는 공의의 정신에 따라 고향사람들에게만 특혜를 줄 수가 없음. 그 때문에 오히려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36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왕상17:1-7, 18:1, 5:17)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선지자)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왕상17:8-16, 엘리야가 우상을 심하게 섬기고 있는 조국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벗어나 이방 땅 시돈에서 지낸 사실이 있다),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왕하5:1, 9-14). 28. 회당에 있는 자(고향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만민구원의 하나님복음보다는 선민구원이라는 집단이기적 현세 축복사상에 젖어 있는 것임),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를)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아예 없애 버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여호와의 사자의 도우심을 받아)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4:22-30);

1)    당시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현세적인 구원과 축복사상에 깊이 매몰되어 있는 유대교인들의 사고방식이 창조주 하나님의 진정한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에 대해서는 눈뜬 소경이며 귀머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경이롭기는 하지만 평소 목수 요셉의 아들에 불과한 자의 희한한 해석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만 치부하고 맙니다(22).

2)    그 대신에 그들이 나사렛 예수에게서 진짜 원하고 있는 것은 그가 갈릴리 일원에서 벌써 대단한 신위적인 치유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니 고향의 병자와 장애자들을 모조리 고쳐주는 것이 좋겠다는 희망 사항입니다. 그 점을 영안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번연히 알고 계십니다(23).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이 과연 무엇일까요?

3)    한마디로 예수님의 대답은 선민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그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천국복음으로 전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24). 따라서 그는 회개하고 천국을 영접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고 장차 믿음으로 남은 인생을 올바른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고침을 베풀 뿐이라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의외의 대답에 고향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친절하게도 그 옛날의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알 신을 섬기기에 바빠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선지자인 그들을 어떻게 배척하였으며 그 결과 여호와의 이적과 치유의 은혜를 이방사람들이 얻게 된 사례를 참조하여 깊이 생각해보라고 권면하십니다(25-27).

5)    그와 같이 고향사람들도 몰라보고 마치 객지사람처럼 대하고자 하는 예수의 사고방식과 태도에 대하여 회당에서는 커다란 적개심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28). 그것은 그들의 심령속에 벌써 마귀가 역사하여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방해하고자 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회당에서 끌어낼 뿐만 아니라 동네 청년들이 그를 동구 바깥에 있는 낭떠러지로 밀어버립니다(29).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이 그 위기를 무사히 벗어나고 있습니다(30).

6)    성도가 성령 충만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복음사역을 아가페 사랑과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의거하여 올바로 실천하고자 하면 가까운 친지로부터 먼저 외면과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고 그저 신위적인 치유와 현세적인 축복이나 한번 누려보고자 하는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심이 팽배한 것이 세상사람들의 변함없는 태도인 것입니다.

셋째로,31. 갈릴리의 (가장 큰 성읍)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현지의 큰 회당에서) 가르치시매(히브리경전의 말씀을 하나님의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가르치신 것임),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7:16, 큰 선지자의 말씀처럼)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회당(synagogue)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귀신처럼 안다고 하는 말처럼 영적인 비밀을 엿보고 있는 귀신이 자기방어를 위하여 무리를 자기편으로 만들고자 먼저 선수를 쳐서 떠들고 있는 것임).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예수님은 결코 악한 영으로부터 증거를 받지 아니하심, 그 이유는 악한 영은 생명을 살리는 자가 아니라 종국에는 그 생명을 해치고 죽여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이기 때문임, 8:2),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절대권위를 지니고 있는 여호와의 독생자의 명령을 귀신이 복종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임)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동시에 환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고 계시는 것임).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천국복음에 흥미를 느끼는 것보다는 대중은 당장의 축사, 逐邪의 기적을 더 원하고 있는 것임. 그것 역시 그들의 관심사가 매우 현세적인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임).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1:44, 이웃 성읍 가난한 어부들의 마을 벳새다로 이동하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예수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제자들)(시몬의 장모)를 위하여 예수께 (치유하여 달라고)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예수님의 신위적인 능력에 의하여 즉시) 병이 떠나고(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시몬의 장모가 병 낫기를 원했는데 그 이유는 나이든 그녀가 평소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많은 친절을 베푼 것으로 보임. 따라서 그녀는 병이 낫자마자 그들을 대접하고자 서두르고 있는 것임)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율법에 따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안식일이므로 해가 지고 새날이 되자 즉시)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가난한 어촌마을의 백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모두 고쳐 주신 것임),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하류에 속하는 귀신의 아부와 증언을 일체 받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축사의 기적을 베푸신 것임).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벳새다 마을에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쉬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지역이기주의에 의거하여 집단적으로)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만민구원의 복음임),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해야 하는 것임, 28:18-20, 1:8)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유대교의 지체가 되고 있는 회당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천국복음 곧 새언약이 선포되고 있는 것임)”(4:31-44);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31. 갈릴리의 (가장 큰 성읍)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현지의 큰 회당에서) 가르치시매(히브리경전의 말씀을 하나님의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가르치신 것임),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7:16, 큰 선지자의 말씀처럼)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회당(synagogue)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귀신처럼 안다고 하는 말처럼 영적인 비밀을 엿보고 있는 귀신이 자기방어를 위하여 무리를 자기편으로 만들고자 먼저 선수를 쳐서 떠들고 있는 것임).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예수님은 결코 악한 영으로부터 증거를 받지 아니하심, 그 이유는 악한 영은 생명을 살리는 자가 아니라 종국에는 그 생명을 해치고 죽여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이기 때문임, 8:2),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절대권위를 지니고 있는 여호와의 독생자의 명령을 귀신이 복종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임)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동시에 환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고 계시는 것임).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천국복음에 흥미를 느끼는 것보다는 대중은 당장의 축사, 逐邪의 기적을 더 원하고 있는 것임. 그것 역시 그들의 관심사가 매우 현세적인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임)”(4:31-37);

1)    갈릴리 호수 서편 산지의 벽촌 나사렛에서 호수 북안(北岸)의 큰 성읍 가버나움까지는 거리가 80리나 됩니다.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봉변을 당할 뻔한 예수님은 천천히 동북쪽으로 이동하여 대도시 가버나움으로 들어오십니다. 산지에 비하면 호숫가의 성읍들의 고도는 상당히 낮습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가 여기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31. (산중마을 나사렛에서부터) 갈릴리의 (호수 북쪽 호안, 湖岸의 가장 큰 성읍)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31a).

2)    가버나움까지 오시는 도중에 예수님은 여러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제5장을 참조하면, 갈릴리 호수의 서북쪽 호안(湖岸) 마을 게네사렛에서 시몬 형제와 야고보 형제를 불러 이미 제자로 삼으신 것으로 보입니다(5:1-11). 다시 안식일을 맞이하게 되자 이번에는 대 도시 가버나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당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십니다(31b).

3)    예수님께서 히브리경전을 읽고 그 의미를 여호와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진리로 풀이하여 주자 그곳의 주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32). 그러한 좋은 분위기를 보고서 예수님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고자 하십니다. 사람의 몸을 숙주로 삼고 있는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예수님이 다가오자 몸서리를 치고 있습니다.

4)    자신을 숙주에게서 쫓아내고자 예수님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른 눈치채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보호의 본능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33). 그 내용의 핵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줄 벌써 알고 있으니 귀신을 괴롭히지 말고 그냥 떠나달라는 것입니다(34). 보통사람 같으면 큰 선지자라고 하는 대단한 증거를 귀신에게서 받았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 자리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5)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은 그것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을 대신 임하게 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입니다(11:20). 그러므로 예수님의 명령이 단호합니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35a). 숙주에게서 내쫓기면서 귀신이 본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강력하게 숙주인 사람을 넘어뜨리면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입니다(35b). 그러나 그 점을 미리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은밀하게 그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35c);

6)    회당의 회중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세밀한 배려까지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귀신을 명령 한마디로 쫓아내고 계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그들의 주요 관심사일 따름입니다(36). 귀신을 쫓아낼 수 있으면 고대사회에서 엔간한 질병과 장애는 모조리 고칠 수가 있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삽시간에 대도시 가버나움에 큰 선지자가 등장하였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37).

(2)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1:44, 이웃 성읍 가난한 어부들의 마을 벳새다로 이동하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예수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제자들)(시몬의 장모)를 위하여 예수께 (치유하여 달라고)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예수님의 신위적인 능력에 의하여 즉시) 병이 떠나고(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시몬의 장모가 병 낫기를 원했는데 그 이유는 나이든 그녀가 평소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많은 친절을 베푼 것으로 보임. 따라서 그녀는 병이 낫자마자 그들을 대접하고자 서두르고 있는 것임)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율법에 따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안식일이므로 해가 지고 새날이 되자 즉시)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가난한 어촌마을의 백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모두 고쳐 주신 것임),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하류에 속하는 귀신의 아부와 증언을 일체 받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축사의 기적을 베푸신 것임)”(4:38-41);

1)    가버나움 회당에서 축사의 능력을 선보이신 예수님에게 급한 전갈이 당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버나움에서 25리 정도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어부의 마을 벳새다에 살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위독하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접한 여러 제자들이 한 목소리로 스승이신 예수님에게 사정하고 있습니다; “즉시 벳새다에 가셔서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여 주십시오”(38c). 평소 베드로의 장모가 손님 대접하기에 앞장을 선 인품의 소유자임을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2)    예수님이 그 사실을 벌써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즉시 벳새다로 행차하십니다(38a).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서 확인하니 역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위중합니다(38b). 예수님이 즉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녀를 완전히 쾌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39a);

제자들의 증거가 확실합니다. 그녀는 병이 낫게 되자 즉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을 대접하기에 바쁜 것입니다(39b).

3)    벳새다에 살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장모가 큰 선지자 예수님에 의하여 단숨에 큰 병이 나았다고 하는 소문이 인근 주민들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그날 안식일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가 져서 새날이 되자 그들은 집안의 병자와 장애자 그리고 귀신들린 자를 전부 데리고 베드로의 집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40a). 예수님은 가난한 어부들의 마을 벳새다의 사정을 진작부터 익히 알고 계십니다.

4)    따라서 그 밤이 새도록 안수하시고 모든 병자와 장애자를 고치십니다(40b).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들도 수없이 고쳐주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여 숙주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척하면서 아부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41a). 그렇지만 예수님에게는 그들의 아부가 일체 통하지 않습니다(41b).

5)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완전히 쫓아내야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1:20, 12:43-45).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계십니다(41c, 2:49, 3:22). 그리고 그 사실을 악한 영의 입이 아니라 제자들의 입을 통하여 여호와의 은혜로 고백이 되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6:16).

(3)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벳새다 마을에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쉬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지역이기주의에 의거하여 집단적으로)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만민구원의 복음임),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해야 하는 것임, 28:18-20, 1:8)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유대교의 지체가 되고 있는 회당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천국복음 곧 새언약이 선포되고 있는 것임)”(4:42-44);

1)    마귀의 계책이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가난한 어부들의 마을 벳새다의 주민들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동네에 예수님을 잡아두고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든 자, 장애자, 귀신 들린 자를 언제나 고쳐주면 참으로 좋겠다고 하는 지역적인 이기주의에 사로잡히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밤새 병자들과 장애자 그리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느라고 기진맥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벽에 잠시 그 자리를 피하여 한적한 곳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42a). 그러자 지역주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서 예수님의 행적을 찾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마을에 예수님을 계속 머물게 하면서 이웃에 살고 있는 친지들에게 연락하여 모든 병자와 장애자를 데리고 오고 싶기 때문입니다(42b).

3)    그러나 예수님은 한마디로 거절하십니다. 왜냐하면, 병든 몸의 치유보다 더 시급한 일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여 모든 사람의 영적인 잘못을 치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올바르게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뜻을 정확하게 깨달아 실천하지 못하게 되면 이기주의와 현세 축복사상에 사로잡혀서 영적으로 병들고 세속적인 우상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력을 회복하는 대로 이웃마을을 방문하고 나아가서 선민과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모든 지역을 찾아가고자 하십니다. 만민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영생의 구원을 믿도록 만드는데 있어서 시간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어느 한마을에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 점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4:43);

 

결론적으로, 오늘의 본문은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4:44)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충만을 받으시고 그 다음에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3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믿음생활의 비결 3가지를 얻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 발걸음이 고향이 있는 갈릴리지역에서 나사렛, 게네사렛, 가버나움, 그리고 벳새다 등을 향하신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다가 크게 실패한 마귀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훼방하기 위하여 이제는 가는 곳마다 친지들을 동원하여 방해공작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고향 나사렛에서는 고향사람을 몰라보고 있는 괘씸한 자라는 누명을 씌워서 배척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부들의 가난한 마을 벳새다에서는 밤새 주민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 장애자들, 귀신들린 자를 모조리 고쳐주고 있지만 끝내는 그 마을을 떠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맙니다.

한마디로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고달픈 일정입니다. 그 이유는 마귀가 백성들을 충동하여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훼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백성들이 여호와를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에 빠진 백성들이 현세적인 구원과 축복을 여호와로부터 얻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선민만 구원을 받고 세속적인 복을 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유대교인들에게 예수님이 선포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은 배척의 대상일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러 열심히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이 참석하고 있는 그 회당에서 예수님은 유대교적인 경전의 해석을 벗어나고 있기에 결국에는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배척을 당하고 종국에는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가 벌써 엿보이고 있는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도 바울의 말 그대로 성도들이 남은 인생 가운데 만나고 있는 고난은 장차 영생의 천국에서 얻게 되는 영광과 상급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성령충만과 더불어 예수님이 얻으신 그 3가지 믿음생활의 비결을 명심하고서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다시 일어나 힘차게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하게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