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을 강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바리새인에 대하여 경고하시다”(눅11:29-5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8. 29. 12:52

제목;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을 강조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바리새인에 대하여 경고하시다”(11:29-54)

설교일; 주후 2024 10 2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29일 목요일 작성)

 

유대인들의 선민구원사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사상은 대립적인 개념인데 그것은 특히 모세오경인 출애굽기 제19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사명과 역할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는 예수님의 복음적인 시각이고 또 하나는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선민구원의 시각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원하고 있는 선민만을 위한 현실적인 다윗제국의 재건이 아니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소위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두가지 사항을 다음과 같이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출애굽기 제19장 제4-6절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4. (여호와)애굽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9가지 재앙을 내리지만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이 여전히 완악함. 그에 따라 유월절 밤 10번째 재앙이 임하는데 그것은 애굽인의 장자를 한꺼번에 죽여버리는 것임. 마침내 바로와 신하들이 여호와 앞에 굴복함.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출애굽해방이 주어진 것임)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시내산까지 인도하였는데 도중에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켜버린 것임) 너희가 보았느니라(체험하였느니라). 5. (창조된) 세계가 다 내게(창조주 여호와에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창조주 여호와의) 을 잘 듣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여호와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여호와의 보호하심을 받는 그의 민족이 됨), 6. 너희가 내게 대하여(여호와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행할 사명은) 제사장나라가 되며(마치 회개한 욥처럼 이스라엘 자손이면 누구나 이방민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42:10),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본을 받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것임.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7차례나 중보기도를 드렸으며 종국에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께 모든 것을 바침으로써 드디어 여호와 경외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임, 18:22-32, 21:33, 22:12). (모세)(선민의 사명과 의무를 정하고 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이 들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말씀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임. 일종의 법률의 효력을 발생하는 도달주의와 같은 것임)”(19:4-6). 아주 간략하게 핵심사항만 풀이하자면 두가지 내용입니다;

1)   첫째, 먼저 모세를 보내어 바로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게 하고 완강하게 거절하는 바로와 신하들을 굴복시키고자 여호와께서는 애굽인에게 10가지 재앙을 차례로 내리시는데  그 마지막은 장자의 죽음입니다. 드디어 바로와 신하들이 여호와의 능력 앞에 항복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출애굽 해방을 맞이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하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여 시내 산 앞으로 데리고 온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 그 목적이 바로 그들에게 다음 두가지 사명을 부과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는, 이방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장나라의 구성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 소돔성의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7차례나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간 것처럼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족속도 그렇게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은 그 대목을 그와 같이 복음적인 시각에서 풀이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선민의 세상적인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애굽제국의 통치자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백 년 이상 고센 땅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현장에 총동원하여 마치 노예처럼 부려먹었기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벌하시고 자신의 거룩한 백성에게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2:23-25, 12:29-42).

2)   둘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다시 애굽으로 잡아가려고 출동한 바로의 군대는 여호와의 지팡이를 가진 모세가 대언하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홍해에 수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14:26-30). 그러한 역사는 히스기야 왕 시대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앗수르 군대 18 5천명을 하룻밤 사이에 척살하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왕하19:34-35).

3)   셋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시내 산 앞으로 인도하여 자신의 소유인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 특히 다윗왕조의 유대인들을 압제하고 있는 제국들은 하나같이 메시아가 나타나게 되면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에 의하여 반드시 재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셋째로, 그와 같은 취지에서 누가복음 제11장에서는 유대 땅의 바리새인과 그들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에게 한가지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메시아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11:16). 그들에게 주고 있는 예수님의 답변이 오늘의 본문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11:29-32). 그 내용이 다음 2가지입니다;

1)   하나는, 북조 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 때의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입니다(왕하14:25). 그에게 여호와께서는 멀리 이방도시 니느웨로 가서 이방인들에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후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외치라고 했습니다(1:1-2, 3:4). 처음에는 그 명령에 불순종했지만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요나가 회개를 하자 니느웨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1:3, 17, 2:1, 10).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그 성에서 하룻동안 외치자 놀랍게도 왕부터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고 끝내는 멸망이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발생합니다(3:4-10). 예수님의 말씀은 그와 같이 이방인에게 나아가서 요나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11:29-30, 19:6);

2)   또 하나는, 요나처럼 행동하지 아니하고 선민만의 현세적인 구원을 희구하게 되면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린 자로 정죄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32). 그 결과는 하나님의 천국복음을 영접한 이방인들이 먼저 영생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31-32, 8:11) 선민들은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외면하고 배척하였기에 그 악행에 대한 여호와의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29a, 32, 8:12).

그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유대 땅에서 의미심장한 두가지 말씀을 추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말씀으로서 특히 마음의 빛과 이 세상을 밝히는 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11:33-36). 또 하나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그들의 외식적인 신앙태도를 질타하시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책망의 말씀입니다(11:37-54). 그 자세한 내용은 구절풀이를 하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이기적으로 메시아의) 표적을 구하되, (주전 8세기에 여호와의 명령으로 이방도시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1:1-2, 왕하14:25)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창조주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을 전달한 사자가) 됨과 같이 인자(人子, son of man, 여호와의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그리스도로 살아가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지칭하고 있는 용어임, 1:14, 18, 3:13-18)이 세대(구원주 그리스도가 활동하고 있는 시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아라비아반도의) 남방(스바의, 왕상10:1-2)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지혜의 말씀을 사모하여) (아라비아반도 남부의)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여호와의 독생자가 성육신하여 그리스도가 되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하고자) 여기(선민들이 살고 있는 유대 땅에)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선지자 요나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계시하여 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온전하게 전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 선민 유대인들은 스스로 의인사상에 빠져서 이제는 구원주 그리스도 앞에서도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다는 것임, 10:22, 11:27).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그리스도의 천국복음 곧 생명구원의)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마치 어두운 바다를 비추고 있는 등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을 거룩하신 여호와 앞으로 인도하는 빛이 되고 있다는 것임).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여호와의 구원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인지 아니면 창조주의 뜻을 찾는 영성이 사라져버린 캄캄한 심령인지를 먼저 확인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임, 스바 여왕처럼 지혜의 말씀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함, 31).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이 되어 있으면, 8:15)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따르게 될 것임, 10:27-28, 36-37. 특히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이 그러하였음, 32)”(11:29-36);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이기적으로 메시아의) 표적을 구하되, (주전 8세기에 여호와의 명령으로 이방도시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1:1-2, 왕하14:25)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창조주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을 전달한 사자가) 됨과 같이 인자(人子, son of man, 여호와의 독생자의 영광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그리스도로 살아가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지칭하고 있는 용어임, 1:14, 18, 3:13-18)이 세대(구원주 그리스도가 활동하고 있는 시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아라비아반도의) 남방(스바의, 왕상10:1-2)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지혜의 말씀을 사모하여) (아라비아반도 남부의)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여호와의 독생자가 성육신하여 그리스도가 되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하고자) 여기(선민들이 살고 있는 유대 땅에)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선지자 요나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계시하여 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온전하게 전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 선민 유대인들은 스스로 의인사상에 빠져서 이제는 구원주 그리스도 앞에서도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다는 것임, 10:22, 11:27)”(11:29-32);

1)    이스라엘 자손을 430년만에 고센 땅에서 애굽제국의 동쪽 국경 바깥으로 이끌고 나와서 시나이반도 남쪽 꼭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시내 산 앞으로 데리고 간 지도자가 모세입니다(12:37-42, 19:1-11). 그는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신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가르침 받게 됩니다. 모세는 그 말씀을 율법으로 삼아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성립을 시내 산 앞에서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여호와를 섬기는 선민의 나라가 필요한 이유 그것이 모세가 기록한 오경 가운데 출애굽기 제19장 제6절에 두가지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가 제사장나라가 된다는 것이며 또 하나가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전부 이방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1:1-2, 3:1-10) 마치 족장시대 하나님의 제사장 욥처럼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려주는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42:10).

3)    또한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도시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께 열심히 중보 기도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18:22-32). 그런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된 이스라엘 12지파의 후손들이 하나같이 선민의 의무를 저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3가지 이유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주변의 이방 족속들이 기회만 있으면 선민 이스라엘 12지파의 땅을 침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둘째, 창조주 여호와를 주신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있는 이방 족속들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서 선민 이스라엘보다 더 잘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잘살고 있는 그들에게 구태여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 영생구원을 받으라고 권유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셋째, 주변의 이방인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들을 도입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섬겨보니 참으로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5)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는 율법규정은 어렵고 복잡하며 또한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율법은 선민의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비해서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그와 반대로 편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에게 재물을 조금 바치고 성의표시를 하면 무당들이 알아서 제주(祭主)의 소원성취를 일방적으로 우상에게 복 빌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농사의 신 바알을 주신으로 섬기게 되면 산당에 제사를 드린 다음에 다산(多産)의식을 거행하는데 그것이 선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25:1-3).

6)    2부순서는 젊은 여자들을 여사제로 삼아 사내들이 마음껏 씨를 뿌리는 문란한 혼음 행사입니다. 종교적으로 그와 같이 성적인 타락을 정당화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더구나 성적인 타락의 문화가 바알을 섬기는 산에서만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버젓이 성읍에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음란문화가 선민의 사회에서도 성행하고 맙니다. 그와 같이 선민들의 유대교가 역사적으로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7)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10지파가 참여하고 있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에서는 초대왕 여로보암1세때부터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남부의 국경도시 벧엘과 북부의 국경도시 단에 두고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여호와로 여기고 제사를 드리도록 제도화했습니다(왕상12:28-30). 그 결과 주전 722년에 앗수르군대의 침입으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왕국에서는 간헐적으로 종교개혁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 열매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8)    끝내는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들이 백성들과 더불어 여호와를 섬기는 흉내를 내면서 속으로는 여호와를 우상처럼 섬기는 종교적인 타락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우상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보고서 주전 8세기 여로보암2세 때에 여호와께서는 변방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여호와의 예언을 전달하라고 명령하십니다(1:1-2). 그런데 선민의 선지자가 이방 땅으로 가서 이방인에게 직접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 적이 없습니다.

9)    따라서 요나가 그 명령에 불복종하여 도망을 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니느웨로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게 됩니다(3:1-5). 그로 말미암아 요나는 이방 땅으로 나아가서 이방인에게 직접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 역사상 유일한 선민의 선지자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부디 선지자 요나처럼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에게 선포하며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선민의 본분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29-30).

10)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라고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몰아내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선민들에게 현세적인 이익을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29a). 그것은 한마디로,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선민만의 구원사상은 물론 현세적인 구복사상과 이기적인 우상문화에 깊숙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외치고 있는 예수님은 그 신세가 외롭고 처량합니다. 유대교인들이 그 반대로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에 진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회개하고자 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옛날 여호와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던 솔로몬대왕을 만나고자 아라비아 남단에서 많은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던 스바 여왕보다 못하고 요나가 선포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왔던 니느웨 사람들보다 못한 자들이 바로 선민 유대인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31-32);

 

(2)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그리스도의 천국복음 곧 생명구원의)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마치 어두운 바다를 비추고 있는 등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을 거룩하신 여호와 앞으로 인도하는 빛이 되고 있다는 것임).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여호와의 구원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인지 아니면 창조주의 뜻을 찾는 영성이 사라져버린 캄캄한 심령인지를 먼저 확인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임, 스바 여왕처럼 지혜의 말씀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함, 31).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이 되어 있으면, 8:15)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따르게 될 것임, 10:27-28, 36-37. 특히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이 그러하였음, 32)”(11:33-36);

1)    여호와를 모시는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성물로 언약궤와 그 뚜껑인 속죄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여호와의 음성이 울려 나오고 있습니다(25:21-22).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고 있는 휘장의 중앙 앞에는 분향단이 있으며 성소의 북쪽에는 진설병상이 그리고 그 맞은 편 남쪽에는 등잔대가 놓여 있습니다(26:35, 40:3-5). 물론 성소 바깥에는 성소의 뜰이 있으며 그 중앙에 번제단이 있고 성소와의 사이에 물두멍이 놓여 있습니다(40:6-7).

2)    그런데 본문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성소에 있는 성물인 분향단과 등잔대입니다. 먼저 분향단에서는 가루향이 타면서 그 향기를 휘장너머 지성소로 들여보내고 있습니다(30:6-10). 언약궤에 말씀으로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께서는 그 향내를 흠향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시편과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의 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41:2, 5:8). 향기로운 성도의 기도가 여호와께 올라가듯이(8:3-4) 성도들은 심령속에 임재하고 계시는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과 대화하면서 그 마음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먼저 밝혀야 합니다.

3)    그 영적인 빛이 밝아지면 마치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전달하고 그 영혼을 구원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성소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는 진설병 상이 있으며 그 맞은 편에는 등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예수님은 본문에서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계십니다; 첫째, 심령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그 영적인 생명력으로 먼저 너 자신을 살려서 빛의 자녀가 되도록 하라(36);

4)    둘째, 천국복음을 생활화하면서 마치 등대처럼 복음의 빛을 많은 사람들에게 비추도록 하라(33b). 셋째, 상한 심령들이 복음의 빛으로 치유가 되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34). 넷째,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적인 말씀을 받아들여서 자신을 살린 성도들을 등대로 사용하여서 그 복음의 빛을 온세상에 비추어 심령이 가난한 자를 살리고자 하십니다(33a). 다섯째, 안타깝게도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인들이 여호와의 천국복음을 그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으니 자신도 영적으로 어둡고 다른 사람의 심령도 치유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34-35).    

둘째로,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어느) 바리새인이(집주인이며 지방유지임)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예수일행에게 호의적인 것으로 일단 보임)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손 씻을 물을 요청하지 아니함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손 씻을 물을 진작에 가져다 주었으면 청결하게 했을 것임.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임). 39. 주께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바리새인들의 속마음을 이미 아시고서 책망하여)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겉만 깨끗하고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바로 외식적, 外飾的인 것임).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창조주 여호와가 사람의 안과 밖을 모두 만드셨으며 그 안팎을 동시에 통찰하고 계심)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마음속 영성이 중요함. 살리는 것은 영이니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께서 그 영을 먼저 살리시고 그 다음에 육신의 병을 고치시는 것임, 5:20, 24, 8:11).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mint)운향(작은 관목이며 소독제와 향신료로 사용됨. 일년생은 영어로 dill이고 다년생은 fennel인데 그 모양과 맛이 조금 다름)모든 채소의 십일조(모세오경 27:30-32에 따르면 채소류는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지만 바리새인들은 미쉬나 탈무드에서 채소류의 십일조를 추가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지켰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임)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의 생명을 전부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강조하고 계심.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그 뜻을 따르고 있는 것임, 6:9, 10:27, 37)은 버리는도다(바리새인의 형식주의를 책망하신 것임).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세상적인 명예욕이 강한 바리새인을 책망함).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봉분은 없지만 무덤이므로 잔디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으나 무덤속은 아름다운 것이 아님. 그것이 위선임, 39. 또한 무덤자리인지 모르고 사람들이 밟게 되면 부정을 타게 됨. 그러므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임, 6:39)”(11:37-44); 역시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어느) 바리새인이(집주인이며 지방유지임)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예수일행에게 호의적인 것으로 일단 보임)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손 씻을 물을 요청하지 아니함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손 씻을 물을 진작에 가져다 주었으면 청결하게 했을 것임.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임). 39. 주께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바리새인들의 속마음을 이미 아시고서 책망하여)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겉만 깨끗하고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바로 외식적, 外飾的인 것임).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창조주 여호와가 사람의 안과 밖을 모두 만드셨으며 그 안팎을 동시에 통찰하고 계심)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마음속 영성이 중요함. 살리는 것은 영이니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께서 그 영을 먼저 살리시고 그 다음에 육신의 병을 고치시는 것임, 5:20, 24, 8:11)”(11:37-41);

1)    의사 누가는 예수님 일행을 집으로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하고 있는 바리새인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7:36-47에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은 씻긴 여인의 행동과 집주인 바리새인의 행동을 비교하여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씻기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7:44b).

2)    그런데 비슷한 경우가 본문에서 다시 전개되고 있습니다(11:37-38). 다만 한가지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자의 경우에는 집주인 바리새인이 아예 오찬자리에 손님으로 초청된 예수님에게 발 씻을 물을 가져다 주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7:44).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식사자리에 손님을 초청하게 되면 먼저 손발 씻을 물을 집주인이 종을 시켜서 가져다 주는 것이 흙먼지가 많은 지역에 살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손님 대접의 예절이기 때문입니다.

3)    후자의 경우에는 예수님이 손발을 씻을 물을 달라고 요청하여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지 아니한 것을 바리새인 집주인이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38). 만약 집주인이 종에게 지시하여 손님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손발 씻을 물을 가져다 주도록 조치했다고 하면 예수님이 고맙게 생각하고 자신의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었을 것입니다;

4)    그런데 그 집주인은 그러한 사전 조치를 조금도 취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 집주인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물을 달라고 요청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손으로 식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여 이제는 예수님을 비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괘씸한 집주인 바리새인의 행태입니다. 그 점을 충분히 인식하시고 예수님이 다음 두가지를 말씀하십니다;

5)    첫째, 사람의 안과 바깥을 전부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은 겉과 속이 진리로 하나가 되고 있는지를 통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40). 그 점을 모르고 너희 바리새인은 창조주 여호와께서 보고 계시는 마음의 중심에는 더러운 욕심과 악독이 가득한데(삼상16:7) 겉만 깨끗하게 하여 율법선생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자 애를 쓰고 있으니 그것이 신앙적으로 참으로 문제라는 지적입니다(29).

6)    둘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을 구제하고 싶으면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여 신실한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가는 행동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41a). 그리하면 스승의 마음과 행동이 하나됨을 보고서 제자인 백성들의 마음속에서도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모두 온전히 변화시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41b);

     

(2)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mint)운향(작은 관목이며 소독제와 향신료로 사용됨. 일년생은 영어로 dill이고 다년생은 fennel인데 그 모양과 맛이 조금 다름)모든 채소의 십일조(모세오경 27:30-32에 따르면 채소류는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지만 바리새인들은 미쉬나 탈무드에서 채소류의 십일조를 추가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지켰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임)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의 생명을 전부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강조하고 계심.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그 뜻을 따르고 있는 것임, 6:9, 10:27, 37)은 버리는도다(바리새인의 형식주의를 책망하신 것임).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세상적인 명예욕이 강한 바리새인을 책망함).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봉분은 없지만 무덤이므로 잔디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으나 무덤속은 아름다운 것이 아님. 그것이 위선임, 39. 또한 무덤자리인지 모르고 사람들이 밟게 되면 부정을 타게 됨. 그러므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임, 6:39)”(11:42-44);

1)    여호와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바라고 계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서 그 말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에 담겨 있다고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또한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풀이하여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2)    그 점을 의사 누가는 자신의 제3복음서에서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창조주 여호와가 만든 피조물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여기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 생명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0:27, 37). 그것이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하나로 통일이 되는 진리입니다.

3)    또 하나는, 주변의 이방 족속을 미워하고 동족만 사랑하여 구제하고자 하는 선민 유대인들의 선민구원사상은 여호와의 만민구원사상과 어긋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여 주는 메시아를 현세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소원은 선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데리고 가려는 그리스도의 영생구원사상과는 반대입니다(11:29-30).

4)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은 창조주 여호와의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모두 내다버리고 제멋대로 선민만의 구원의 축복과 현세적인 선민의 나라의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는 이기주의자이며 현세 구복주의자에 불과합니다(42b). 요컨대, 그것은 여호와신앙이 아니라 우상문화의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책망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잘못이 다음 3가지입니다;

5)    첫째, 모세오경에서는 땅의 소출인 곡식과 과일의 십일조 그리고 목축업자가 얻은 가축의 십일조만 성전에 바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27:30-32) 바리새인들은 말로써 전해지고 있는 기타 히브리경전을 탈무드로 편집하여 십일조의 세부규정을 정하면서 박하와 운향 그리고 채소의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바리새인들은 그 세부규정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로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42a);

6)    그것은 여호와께서 진정 원하고 있는 아가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벗어나서 지엽적인 것으로 의인임을 자랑하고 있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는 예수님의 지적입니다(42c). 둘째, 백성들의 율법선생인 랍비를 비롯한 바리새인들은 세상적인 명예욕이 너무 심합니다. 구체적으로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탐하고 있으며 저자거리에서 백성들의 존경과 문안을 받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예수님의 지적입니다(43).

7)    셋째, 선민 유대인들의 주택과 그들의 공동묘지는 동일한 특징을 하나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집의 옥상과 무덤이 모두 평평하다는 것입니다. 옥상이 평평하므로 그곳을 마당으로 삼아 곡식을 말리기도 하고 태양신을 섬기기도 합니다. 또한 부자들의 비싼 바위굴 묘택은 그러하지 아니하지만(23:15-20, 23:53) 평민들의 값싼 공동묘지는 평평한 평토장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 평토장에는 2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묘지를 아름답게 꾸민다고 하여도 땅속에는 더러운 벌레들이 가득합니다(44a);

8)    또 하나는, 평평한 무덤을 땅과 구별하기가 힘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평토장을 밟으며 통행하고 있습니다.  엄연히 무덤과 접촉하면 율법적으로 부정을 탄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통행인을 신앙적으로 오염시키고 있는 행위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44b). 그 두가지 경우가 모두 바리새인의 위선적이고도 외식적인 신앙생활과 같다는 예수님의 예리한 질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45. (어느) 율법교사(랍비)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율법선생 랍비들은 백성으로부터 의인으로 여김을 받고 있으므로 그들을 책망하는 예수에게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음).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랍비),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율법규정을 너무 많이 만들어 백성들에게 전부 지키라고 강제하고 있으면서 랍비들은 백성들이 보는 데서만 잘 지키는 척하고 실상은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있지 않으니 그것이 외식이고 위선이라는 예수님의 예리한 지적임).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성령의 감동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달한)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바리새인 랍비들은 사람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이성으로 히브리경전을 풀이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음. 그렇게 인위적으로 선지자를 대신하고 있으니 선지자가 없는 어두운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임). 그들(선지자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선지자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외면하고 선지자마저 죽인 옛날 선민들의 잘못을 바리새인들이 이어받고 있다는 것임, 2:29-30). 48. 이와 같이 그들(너희 조상들) (선지자를) 죽이고 너희는(바리새인 랍비들은) (선지자의) 무덤을 만드니(선지자가 없어도 종교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 도다(그 죄악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임).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구약상의) 선지자 (신약상의)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초대교회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을 박해하고 죽인 자들은 세상의 임금과 유대주의자들임. 여기서는 이방인성도들에게 율법준수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교회내의 유대주의자들을 바리새인의 후예로 보고 있는 것임).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유대인들이 선민사상과 자칭 의인사상을 조금도 버리지 아니하고 있으니 선지자들이 흘린 피의 값에서 여전히 자유스럽지가 못함), 51. (카인이 죽인) 아벨의 피로부터(4:8-11)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유다 왕 요아스는 후견자인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고 나자 친정을 하면서 여호와 앞에 방자해짐. 그 잘못을 지적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처형하고 있음, 대하24:20-22)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선지자들을 죽인 그 모든 죄값을 바리새인과 유대교인들이 감당하게 될 것임. 게다가 멀지 아니하여 여호와의 독생자가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처형하게 되는 그 죄값까지 지게 될 것임).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바리새인 랍비들이 무엄하게도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지식으로만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니 그 결과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마저 사라지고 있음. 그것이 바리새인 랍비들의 또 하나의 잘못인 것임).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율법학자인) 서기관 (랍비와 생도인)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예수에게) 달려들어 여러가지 일을 따져 묻고(다수의 힘으로 예수에게 강하게 항변하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예수의 말꼬리를 잡고자 혈안이 되어 있더라)”(11:45-54);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5. (어느) 율법교사(랍비)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율법선생 랍비들은 백성으로부터 의인으로 여김을 받고 있으므로 그들을 책망하는 예수에게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음).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랍비),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율법규정을 너무 많이 만들어 백성들에게 전부 지키라고 강제하고 있으면서 랍비들은 백성들이 보는 데서만 잘 지키는 척하고 실상은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있지 않으니 그것이 외식이고 위선이라는 예수님의 예리한 지적임).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성령의 감동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달한)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바리새인 랍비들은 사람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이성으로 히브리경전을 풀이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음. 그렇게 인위적으로 선지자를 대신하고 있으니 선지자가 없는 어두운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임). 그들(선지자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선지자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외면하고 선지자마저 죽인 옛날 선민들의 잘못을 바리새인들이 이어받고 있다는 것임, 2:29-30). 48. 이와 같이 그들(너희 조상들) (선지자를) 죽이고 너희는(바리새인 랍비들은) (선지자의) 무덤을 만드니(선지자가 없어도 종교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 도다(그 죄악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임)”(11:45-48);

1)    그날 그 집주인 바리새인이 율법선생인 랍비 한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식사자리에 초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바리새인에 대한 엄청난 책망을 듣고 있던 그 랍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랍비를 위시한 바리새인에 대한 지나친 모독이라는 것입니다(45). 그 말에 대하여 예수님이 현실적인 문제 하나와 역사적인 문제 하나를 거론하면서 바리새인의 잘못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있습니다(46-48);

2)    첫째, 현실적으로 바리새인들이 말로 전해지고 있는 기타 히브리경전을 글로 적고 편집하여 탈무드를 만들어놓고 있는데 그 내용이 율법규정을 엄격하게 세분화하고 있어 사람들이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수준이라는 예수님의 지적입니다(46a). 그것을 백성들에게 철저하게 준행하라고 강요하면서 정작 율법선생인 자신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준수하는 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지킬 수 있는 정도의 율법규정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러한 노력이 전혀 없는 자들이 바로 외식적인 신앙인 랍비들이라고 예수님이 날카롭게 책망하고 계십니다(46b).

3)    둘째,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창조주 여호와가 선민사회에 보낸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그들을 배척하면서 심지어는 살해하기도 했습니다(47b). 그것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주전 410년경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하여 더 이상 유대사회에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하십니다;

 그러자 주전 140년경부터 바리새인이 나타나서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히브리경전을 연구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치게 됩니다. 글로 기록되어서 전해지고 있는 미크라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오랜 세월 말로 전해지고 있는 기타 히브리경전인 미쉬나까지 연구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미쉬나를 글로 적고 편집하여 세세한 생활율법과 기도문을 수록하고 있는 탈무드를 만들어 냅니다.

4)    그리고 미크라와 미쉬나 경전에서 두루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풀이하면서 주석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미드라시입니다. 3가지를 전부 공부한 랍비가 선민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한편 제자를 길러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여 100여년의 세월이 흐르자 이제는 여호와께서 보내는 선지자가 없어도 충분히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성전의 제례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5)    그러한 잘못된 자부심을 예수님이 여기서 바리새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가 됩니다(47a). 그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죽이는 잘못을 범했습니다(47b). 그에 그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 당시에는 랍비를 위시한 바리새인들이 선지자가 없어도 자신들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여호와를 섬기는 유대교를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가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6)    그러므로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인 조상들의 잘못을 예수님 당시에 합리화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는 자칭 종교적인 의인들 곧 바리새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조상들의 잘못을 이어 받아 이제는 바리새인들이 아예 선지자가 필요 없는 영적으로 무덤과 같은 유대교를 만들어 놓고 있으니 그것은 여호와신앙을 버린 조상들의 모든 죄악을 그대로 상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다(48).   

(2)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구약상의) 선지자 (신약상의)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초대교회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도들을 박해하고 죽인 자들은 세상의 임금과 유대주의자들임. 여기서는 이방인성도들에게 율법준수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교회내의 유대주의자들을 바리새인의 후예로 보고 있는 것임).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유대인들이 선민사상과 자칭 의인사상을 조금도 버리지 아니하고 있으니 선지자들이 흘린 피의 값에서 여전히 자유스럽지가 못함), 51. (카인이 죽인) 아벨의 피로부터(4:8-11)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유다 왕 요아스는 후견자인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고 나자 친정을 하면서 여호와 앞에 방자해짐. 그 잘못을 지적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처형하고 있음, 대하24:20-22)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선지자들을 죽인 그 모든 죄값을 바리새인과 유대교인들이 감당하게 될 것임. 게다가 멀지 아니하여 여호와의 독생자가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처형하게 되는 그 죄값까지 지게 될 것임)”(11:49-51);

1)    예수님은 자신의 복음사역을 지금 방해하고 있는 바리새인이 자신이 부활 승천하고 나면 초대교회를 건설하는 12사도들을 또한 박해할 것이라고 미래를 바라보고서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49). 그러한 행동을 계속하게 되면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인들은 어떠한 여호와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예수님이 여기서 두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    하나는, 이 세대의 바리새인과 유대교인들에게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역사이래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한 그 모든 죄값을 물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50). 구체적으로, 창세기 제4장에서는 카인이 여호와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획책하고 있습니다(51a, 4:7-12).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는 다윗왕조의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인 선지자 스가랴를 성막의 뜰에서 처형하는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51b, 대하24:20-22);

그 모든 죄악에 대한 심판이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선민의 사회에서 발생하게 된다고 하는 진실로 두려운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51c).

3)    또 하나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신 이후 영생의 몸으로 3일만에 부활하여 40일후에 감람산에서 승천하게 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기도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하고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기를 시작하십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서부터 초대교회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앞장서서 12사도와 그리스도의 성도들을 탄압하게 됩니다(49).

4)    그들 가운데 일부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지만 여전히 유대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율법생활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들이 이름하여 유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더 이상 역사적인 심판을 미루지 아니하십니다. 자신의 세대에 있어서 여호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모르고 사도들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지상명령을 방해하고 핍박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인생 가운데 그들 세대에 반드시 창조주 여호와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51c 의역).    

(3)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바리새인 랍비들이 무엄하게도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지식으로만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니 그 결과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마저 사라지고 있음. 그것이 바리새인 랍비들의 또 하나의 잘못인 것임).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율법학자인) 서기관 (랍비와 생도인)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예수에게) 달려들어 여러가지 일을 따져 묻고(다수의 힘으로 예수에게 강하게 항변하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예수의 말꼬리를 잡고자 혈안이 되어 있더라)”(11:52-54);

1)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또한 강해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두가지 자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나가, 지성과 이성적인 노력입니다. 또 하나가, 영적인 기도와 간구입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일까요? 그 정답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2)    역사적으로 여호와를 만나고 말씀을 위탁 받아 백성들에게 그대로 선포한 자들이 선지자들입니다. 그와 달리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이 나타나지 아니한 신구약 중간기에 있어서 여호와를 만나 말씀을 위탁 받은 경험이 없어도 단지 사람의 지성과 이성으로 히브리경전을 연구하여 그들의 깨달음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보완한 생활율법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을 준수하면 여호와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도 다 지키지 못하는 율법생활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함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잘못이라는 지적입니다. 그와 달리 예수님은 자신을 방문한 공회원이며 랍비인 니고데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4)    또한 수가성의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여 주십니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4). 요컨대,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말씀의 진리를 올바로 깨닫지도 못하고 온전히 실천하지도 못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와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가 다릅니다. 그 수준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5)    따라서 피조물인 사람의 지혜나 지식의 열쇠를 사용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가 숨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함부로 풀이하거나 백성들에게 가르칠 일이 아닙니다(52a). 그렇게 잘못 가르치게 되면, 그리스도가 전한 천국복음을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깨달아 그 내용을 온세상에 전파하며 영생구원의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성도들의 앞길을 방해하는 자로 낙인이 찍히고 마는 것입니다(52b).

6)    그와 같이 도도한 예수님의 설명과 질책에 대하여 율법학자인 서기관들마저 나서서 여러 바리새인과 더불어 예수님에게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53). 그들은 예수님이 말실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깨닫고 실천하는데 있어서는 마치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절름발이와 같지만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거나 지성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데 있어서는 능수능란한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54).   

결론적으로, 누가복음 제20장에는 다른 공관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 비유가 수록되어 있습니다(20:9-18, 21:33-46, 12:1-12).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오래 외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가 제때 들어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종을 보내어 세를 달라고 하자 농부들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종을 때려서 죽이고 맙니다. 그 일이 오래 반복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이 상속자를 보냅니다. 그 포도원의 차기주인이 될 아들이므로 농부들이 새 주인을 맞이하여 제대로 전세계약을 다시 맺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차기주인이 될 아들만 해치우게 되면 자연히 그 포도원은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농부들이 합심하여 그만 새언약을 맺지 아니하고 상속자를 죽여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두가지 조치가 포도원주인에 의하여 취해지고 맙니다; 하나는, 반란을 일으킨 농부들을 진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세를 주고 맙니다(20:16-18). 또 하나는, 상속자인 아들을 살려서 이 세상의 모든 포도원을 소유하고 경영할 수 있는 새 주인으로 삼고 있습니다(28:18). 그러므로 이제는 새언약에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는 자들은 징계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11:49, 51).  

그와 같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내용을 음미해보면 어렵지 아니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의 것을 여호와에게 주지 아니하기 위하여(20:25) 여호와의 종들인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이 바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는 것입니다.

(2)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이 여호와의 뜻임을 부인하고 지성의 열쇠로 자신들이 사제지간에 체계화한 율법규정들을 백성들이 배우고 준수함으로써 선민의 구원과 영광을 이 세상에서 얻을 수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이 앞장 서서 포도원의 상속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처단하고 마는 것입니다.

(3)  셋째, 바리새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훗날 초대교회시대에 유대주의자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사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들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여호와의 심판과 역사섭리가 앞으로는 즉시 이루어질 것입니다(12:31-32).

  이상과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본문의 말씀을 음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깨닫음을 얻어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