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다가오는 시대 종말의 시작과 종의 자세”(눅12:35-5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9. 7. 05:05

제목; “다가오는 시대 종말의 시작과 종의 자세”(12:35-59)

설교일; 주후 2024 11 1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97일 토요일 작성)

 

누가복음 제12장 첫머리 제1절에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가까운 유대 땅에서 모여든 무리 수만명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수행제자인 12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인 수백명의 생도들과 힘을 합쳐서(6:17, 10:1) 무려 만명이 넘는 그 많은 무리를 정리하고 정돈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6:18-19, 12:1).

우선 복음사역의 현장에 몰려드는 많은 군중들이 수년 전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그러했던 것처럼(9:14-15) 질서를 지키고 오와 열을 맞추어 들판에 앉아야 언덕배기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편하게 청취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이 끝난 다음에는 그날의 치유사역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차례를 지켜야 합니다.

만약 서로 먼저 예수님 가까이 접근하여 치유를 받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면 그날의 집회는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중들은 예수님의 사도와 제자들이 지시하는 말을 잘 듣고 엄격하게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시간이 끝나면 이제 사도들의 지시에 따라 한사람씩 질서 있게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질병이 떠나가고 장애가 나으며 귀신이 쫓겨나는 은혜를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대적자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선민구원에 그치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이 미워하고 있는 주변의 이방인까지 전부 구원의 대상이라고 선포하면서 소위 만민구원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선포하는 내용을 참으로 싫어하고 있습니다(5:43-48);

더구나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못 고치는 질병과 장애가 없으며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공개적으로 대중들에게 대대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는 것이 더욱 우려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대단한 능력으로 예수가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6:20, 7:9-10).

당시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선생인 랍비를 위시한 모든 바리새인과 기타 유대교지도자들의 주장과 꿈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선민만 여호와의 구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다윗대왕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제국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가 등장하여 그 두가지는 전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예수가 변방 갈릴리 지역에서 주로 복음사역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남하하여 예루살렘 가까운 유대 땅에서 제마음대로 대규모 군중집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예수일행을 체포하고 유대교인들의 집회참석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전통적인 유대교가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의 절실함과 대적자들의 움직임을 여호와의 독생자의 성육신이신 예수님이 진작에 감지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적자들의 음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이 바로 자신들만의 이기적인 구원과 현세적인 구복사상에 열심히 매달리고 있는 일종의 자기 중심적인 종교집단의 지도자들이며 또한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대 땅에서의 복음사역이 끝나면 유월절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며칠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그곳에서 자신이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외친 그대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 36)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면 그의 제자들과 세상사람들이 생전에 성자 하나님을 육신적으로 만나게 되는 시간이 모두 끝나고 맙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여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새로운 시간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이 누가복음 제12장 제10절에서 벌써 말씀하고 계십니다;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 성육신한 여호와의 독생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아직 인생 가운데 회개할 기회가 남아 있으나), 성령(14:16, 또다른 보혜사인 진리의 성령님)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4:16-20, 고전6:19-20, 영적으로 성도들의 마음속에 임재하여 내주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판정의 결과가 최종적인 것임)”(12:10). 요컨대, 엄중한 종말의 시간이 멀지 아니하여 시작되고 마는 것입니다.

대속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고 나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한 시대적인 변화에 발맞추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마지막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  첫째로,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스승을 버리고 뿔뿔이 제살길을 찾아서 흩어진 사도들과 제자들을(14:50) 다시 찾아오십니다(24:15, 36-43). 그 목적은 그들에게 히브리경전에서 예언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구원주로 믿는 자들에게 이제는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24:44-48). 그리고 남은 인생 천국복음과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를 기다리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24:49, 1:8). 

(2)  둘째로, 40일후에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자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님이 합심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강림하여 내주 역사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고 있습니다(2:1-4). 성도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여호와가 시작하시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증거하기를 시작합니다.

1)   그 옛날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언약의 시대가 드디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31:33). 그리스도의 사도와 제자들이 전하고 있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사도들의 물세례와 여호와의 성령세례가 주어지고 초대교회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됩니다(3:16-17, 2:1-47). 그것은 요엘 선지자가 진작에 예언한 마지막 때가 이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든 자에게 차별 없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내주 역사하게 됨으로써 드디어 각자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28-32).

2)   그에 따라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면 성도들이 다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됩니다(12:10). 스승 예수님의 체포를 보고서 결국 그 현장에서 도망치고 제 목숨을 살리겠다고 끝내 스승을 부인한 사도 베드로의 잘못을 본받아서도 안됩니다(22:57-62).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님께 부디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심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 역사하심이 함께하고 있기에 성도들은 끝까지 이 세상을 이기는 생애를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8:11-18, 37-39).

(3)  셋째로, 그와 같은 새언약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본문에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12:35-59). 그것이 바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의 종의 자세입니다. 대체로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분설(分說)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열 처녀 비유 및 세족식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나타나고 있습니다(35-37). 둘째, 그리스도의 재림이 알지 못하는 시간에 도적같이 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38-40). 셋째, 끝까지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간 성도들에 대한 여호와의 논공행상에 관한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41-48);

2)   넷째, 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 승천하고 나면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자와 영생의 천국복음을 외면하고 그리스도의 대적자로 살아가는 자 사이에 분쟁이 심각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50-53). 그 결과 종말의 불심판이 이 세상에 임하고 만다는 것입니다(49).

3)   다섯째, 이 세상에 임의로 바람이 불듯이 영적인 바람도 시대별로 불어오고 있습니다(54-55).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시간, 성령님의 역사의 시간, 그 다음에 찾아오는 세상의 종말과 심판에 관한 시간이 차례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56-58). 그런데 주어진 인생의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들어가는 그 두려운 심판만은 피하기를 바란다는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이 본문의 말미에 듬뿍 담기어 있다고 하겠습니다(5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35. 허리에 띠를 띠고(12:11, 출애굽의 그날 여호와의 역사를 기다리는 그 심정으로) 등불을 켜고(11:33-36,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보혜사 성령님을 모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25:10,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13:4-5, 예수님의 세족식 대상이 되는 큰 복임. 그것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천국의 복을 의미함, 22:28-30).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한밤중을 말함. 구체적으로,  이경과 삼경이 조선에서는 밤 11-1시와 1-3시이고, 로마에서는 밤 9-12시와 12-3시이며, 헬라식을 따르고 있는 유대에서는 밤 10-2시와 2-6시임)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25:10, 3:29, 신랑인 주인과 함께 잔치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1:7, 2:1-4, 고전15:6,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도 지나기 전에 느닷없이 오순절 성령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발생하고 있음. 만약 그 일자가 진작에 알려졌다고 하면 500명의 성도들 모두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성령세례를 함께 받았을 것임).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25:13). 41. (사도)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예수님 일행인 사도와 제자들)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만민에게 곧 누구에게나) 하심이니이까?(1:26-28절을 참조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남자와 여자 곧 여호와의 청지기인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임)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여호와의 선한 청지기는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 자임, 3:4)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25:40, 46, 부활하여 최종심판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는 복임, 5:24-29).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22:28-30, 주님과 한상에서 먹고 마시며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는 것임)”(12:35-44);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35. 허리에 띠를 띠고(12:11, 출애굽의 그날 여호와의 역사를 기다리는 그 심정으로) 등불을 켜고(11:33-36,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보혜사 성령님을 모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25:10,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13:4-5, 예수님의 세족식 대상이 되는 큰 복임. 그것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천국의 복을 의미함, 22:28-30).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한밤중을 말함. 구체적으로,  이경과 삼경이 조선에서는 밤 11-1시와 1-3시이고, 로마에서는 밤 9-12시와 12-3시이며, 헬라식을 따르고 있는 유대에서는 밤 10-2시와 2-6시임)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25:10, 3:29, 신랑인 주인과 함께 잔치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복이 있으리로다”(12:35-38);

1)    본문은 3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익한 종의 비유”(17:10)를 명심하라는 것입니다(35-38). 둘째, 주님의 재림이 언제 있을지 짐작할 수 없을 지라도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38). 셋째, 신실하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들고 주님의 재림을 마중하는 자세로 살아가면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길 것이며 천국에 입성하여 주님의 환대를 넘치도록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35-37).

2)    특히 세번째의 말씀에는 다음 2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10처녀 비유’(25:1)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10처녀가 모두 그 옛날 유월절 밤에 출애굽을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과 같습니다(35a).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서 그 고기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면서 길 떠날 준비를 철저하게 갖추고 있습니다(12:6-11). 그리고 선지자 모세가 전해주는 여호와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려고 등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35b).

3)    그와 같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는 천국복음의 일꾼은 영과 진리로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4:23-24) 주님이 전해준 복음의 말씀 안에서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길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28:18-20, 1:8). 또 하나는,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세족식을 원용하고 있는 말씀입니다(37, 13:4-10).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밤을 예루살렘에서 맞이하십니다(22:7-16).

4)    언제나 낮에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시지만 저녁시간에는 값이 싼 교외지역 베다니의 민박집으로 이동하셨는데 그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12사도와 함께 나누시는 날은 그러하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단 하룻밤의 호사로 보입니다.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날이 이르기 전에 온전히 사도들과 동일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마지막 날을 그렇게 보내고 싶어하신 것입니다(22:15-16).

5)    예수님이 그 밤에 유언과 같은 말씀을 사도들에게 전해주지만 사도 요한은 특별히 제4복음서에서 스승이 세족식을 거행하여 스스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종이 되어 사도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3:3-10). 그것은 스스로 종이 되어 남을 섬기는 자세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나면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일은 그때부터 사도와 제자들의 몫이 됩니다.

6)    오순절에 성령세례가 제자들에게 임하게 되면(2:1-4) 승천하신 주님이 영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강림하여 성령님과 함께 성도들의 심령속에서 내주 역사하실 것입니다(14:16-20). 그러한 동행의 역사로 말미암아 드디어 성도들이 이 세상을 이기며 복음의 용사로 끝까지 살아가고 자신의 성화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8:31-39). 결국은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고 천국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주님을 만나는 잔치자리에 참석할 것이며 그 자리에서 주님의 세족식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7)    그와 같은 감격스러운 장면을 의사 누가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수록하면서 부디 성도들이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여 달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3:14-16, 34-35). 그것이 종말의 시기에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의 기본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생활과 전도활동을 하면서 그 옛날 바리새인처럼 백성들로부터 대접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외식이며 세속적인 탐욕이라고 하겠습니다(4:11-13). 오로지 사도 바울처럼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3:7-16). 그 점을 그리스도의 종들은 가장 명심해야 합니다.

(2)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1:7, 2:1-4, 고전15:6,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도 지나기 전에 느닷없이 오순절 성령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발생하고 있음. 만약 그 일자가 진작에 알려졌다고 하면 500명의 성도들 모두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성령세례를 함께 받았을 것임).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25:13). 41. (사도)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예수님 일행인 사도와 제자들)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만민에게 곧 누구에게나) 하심이니이까?(1:26-28절을 참조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남자와 여자 곧 여호와의 청지기인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임)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여호와의 선한 청지기는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 자임, 3:4)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25:40, 46, 부활하여 최종심판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는 복임, 5:24-29).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22:28-30, 주님과 한상에서 먹고 마시며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는 것임)”(12:39-44);

1)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역사서인 사도행전 제1장의 내용을 예수님이 벌써 여기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승천하시는 그리스도가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회복하는 시점이 언제인지 성도들이 끝까지 궁금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1:6);

그러나 그 시기와 때는 오로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전권에 속하는 극비 사항입니다(1:7).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오로지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면 그때부터 권능을 받고 온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천국복음과 영생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꾼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39-40, 24:44-49, 1:8).  

2)    또 하나는, 주님이 생각보다 더디 오신다고 생각이 될지라도 성도들은 누구나 끝까지 초심을 잃지 말고 신실한 주님의 청지기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41-42, 1:8). 그리하면 세상의 종말이 오거나 아니면 자신의 향년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살전4:16-17). 그때에는 천국복음이라는 영적인 양식을 온세상에 자신의 헌신 및 희생과 함께 아낌없이 나누어 준 신실한 종은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되고 천국에 입성하여 면류관을 얻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42-44).

둘째로, “45. 만일 그 종(여기서는 주인인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있는 불충한 종들의 대표성을 지닌 자임)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세속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크로노스의 시간 곧 춘하추동 자연의 흐름만 보이고 불시에 그 자연의 흐름을 끊고 임하는 여호와의 카이로스의 시간 곧 대변혁의 시간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임, 1:7. 그러므로 기득권자는 항상 자기들에게 유리한 현상태 Status Quo가 계속되기만을 바라고 있음)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6:11-13, 기득권자들이 권력과 부를 세습하여 양반계급이 되고 일반백성을 상놈인 종으로 삼아 제마음대로 부리는 계급사회를 만들어 놓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여호와의 전권에 속하는 카이로스의) 시각그 종(모든 피조물인 인간)주인(창조주 여호와)이 이르러 (횡포를 일삼는 불충한 종들을)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므나의 비유 참조할 것, 19:24-27),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고의성을 지닌 불충한 종은 가중처벌이 됨).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의성이 없고 단지 과실의 경우에는 정상참작이 됨).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25:20-23, 이것은 달란트의 비유를 참조해야 함. 능력에 따른 달란트의 차이가 있지만 2배의 이익창출이라는 점은 동일함).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19:24-25,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 등의 성읍에 대한 국지적인 불심판이 아니라 세상종말의 전면심판을 의미하고 있음),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아직 세상 종말의 이전 시대이며, 특히 제자들에게는 남은 인생이 있기에 그 전에 회개하고 복음의 증인 된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것임)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대속의 십자가 처형의 고통과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십자가 고난을 통과하여 비로소 얻게 되는 영생의 부활)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장차 새언약의 시대에 천국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되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와 그러하지 아니하는 자 사이에 불화가 크게 발생할 것임).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가족구성원 사이에 32 또는 23으로 갈리어 불화함),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결국 한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사람은 버림을 받게 됨, 24:40-42) 하시니라”(12:45-53);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5. 만일 그 종(여기서는 주인인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있는 불충한 종들의 대표성을 지닌 자임)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세속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크로노스의 시간 곧 춘하추동 자연의 흐름만 보이고 불시에 그 자연의 흐름을 끊고 임하는 여호와의 카이로스의 시간 곧 대변혁의 시간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임, 1:7. 그러므로 기득권자는 항상 자기들에게 유리한 현상태 Status Quo가 계속되기만을 바라고 있음)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6:11-13, 기득권자들이 권력과 부를 세습하여 양반계급이 되고 일반백성을 상놈인 종으로 삼아 제마음대로 부리는 계급사회를 만들어 놓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여호와의 전권에 속하는 카이로스의) 시각그 종(모든 피조물인 인간)주인(창조주 여호와)이 이르러 (횡포를 일삼는 불충한 종들을)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므나의 비유 참조할 것, 19:24-27),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고의성을 지닌 불충한 종은 가중처벌이 됨).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의성이 없고 단지 과실의 경우에는 정상참작이 됨).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25:20-23, 이것은 달란트의 비유를 참조해야 함. 능력에 따른 달란트의 차이가 있지만 2배의 이익창출이라는 점은 동일함)”(12:45-48);

1)    사회변동이론(the theory of Social Change)이라는 사회학의 한 과목이 있습니다. 그 과목에서는 사회적으로 현상태를 유지하려는 계층과 현상태를 타파하려는 계층사이의 갈등과 다툼이 어떠한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여기고 있는 계층은 물론 기득권층입니다.

2)    반면에 현상태를 변화시키지 아니하게 되면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계층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계층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정부는 소득의 재분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극단적인 투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현대의 사회변동이론을 가지고 본문을 해석해보면 어렵지 아니하게 다음과 같은 핵심내용을 파악하게 됩니다;

3)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많이 부여 받은 청지기가 주권자의 뜻을 무시하고 백성들을 탄압하고 학대하면서 자신의 배만 불리게 되면(45) 불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46). 그러므로 기득권자들이 아무리 현상태를 유지하려고 할지라도 백성에 대한 탄압과 학대가 인내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사회변동은 반드시 발생하고 마는 것입니다(15:16).

4)    둘째, 사회변혁이 발생하게 되면 심판의 기준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고의적으로 백성을 탄압한 자는 크게 가중처벌을 받게 됩니다(47). 반면에 과실의 경우에는 정상참작이 됩니다(48a). 또 하나는, 권세를 청지기에게 위임한 여호와는 달란트라는 능력의 차이를 떠나서 동일한 비율의 소득창출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48b). 달란트의 비유를 참조하면, 5달란트 위임을 받은 자는 5달란트의 이익을 바쳐야 하고 2달란트 위임 받은 종은 2달란트의 이문을 남기면 되는 것입니다;

(2)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19:24-25,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 등의 성읍에 대한 국지적인 불심판이 아니라 세상종말의 전면심판을 의미하고 있음),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아직 세상 종말의 이전 시대이며, 특히 제자들에게는 남은 인생이 있기에 그 전에 회개하고 복음의 증인 된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것임)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대속의 십자가 처형의 고통과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십자가 고난을 통과하여 비로소 얻게 되는 영생의 부활)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장차 새언약의 시대에 천국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되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와 그러하지 아니하는 자 사이에 불화가 크게 발생할 것임).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가족구성원 사이에 32 또는 23으로 갈리어 불화함),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결국 한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사람은 버림을 받게 됨, 24:40-42) 하시니라”(12:49-53);

1)    본문은 창세기 제19장에 기록되어 있는 소돔과 고모라 성 등에 대한 역사적인 불심판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두 천사가 소돔성에 대한 불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아브라함의 장조카인 롯의 가족을 성밖으로 이끌어내어 불심판을 받지 아니하게 만들고자 참으로 열심입니다.

2)    여전히 대도시 소돔에서의 재산과 향락에 대한 미련을 온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롯과 그의 아내입니다(19:16a). 두 천사는 그들의 손을 억지로 끌고서 성밖으로 탈출하고 있습니다(19:16b). 그렇지만 롯의 아내는 여전히 소돔성에 남긴 재산과 미련때문에 그곳을 되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으로 변하고 맙니다(19:26).

3)    그와 같은 기록에 비추어보면 본문이 주고 있는 메시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유대 땅에서 수만명의 군중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내용은 아직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발생하게 될 비극이 도래하기 전이므로 그 옛날 요나 시대의 니느웨 백성들처럼 부디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49).

4)    둘째, 예수님이 몇 달 후에 유월절 양이 되어 십자가 처형을 받고 나면 더 이상 대면하여 동족들에게 회개를 종용할 수 있는 그와 같은 기회가 사라지고 맙니다(50a). 그러므로 부디 자신의 말을 새겨듣고 선민만의 이기적인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는 제사장나라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19:6).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천국복음을 전달하여 함께 구원받아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실로 안타까운 마지막 호소라고 하겠습니다(50b, 66:20-21).

5)    셋째, 여자의 몸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여호와의 독생자의 성육신과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가 이름하여 이 세상에 구원의 천국복음을 주시는 구원주 그리스도의 초림’(the First Coming of Christ)입니다. 그런데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후에 부활 승천하여 다시 이 세상에 영광의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의 재림’(the Second Coming of the Lord)이 또한 예정되어 있습니다(1:11). 요컨대, 구원과 심판이 성자 하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그에 따라 대속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잘못된 삶을 회개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이기적인 탐욕과 세속적인 소원성취에만 사로잡혀서 살다가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외면하고 배척함으로써 종말심판을 당하고 마는가? 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일 것입니다.

7)    그렇지만 그 사이에서 발생하게 되는 기독교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갈등과 분쟁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지금도 진행형인 인류의 종교 전쟁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호소가 역설적으로 본문 51-53에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대해인 지중해 방향)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서쪽산맥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고 빗방울이 세찬 비가 되어)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따뜻한)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평평한 광야를 지나오므로)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자여(생활율법만 만들어 지키라고 하면서 정작 율법을 주신 창조주 여호와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여호와의 중요한 역사섭리가 임하고 있는 새언약의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 또 어찌하여 (여호와말씀의 진정한 뜻인) 옳은 것을 스스로 (여호와께 기도하고 진리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영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최종심판을 행하는 여호와의 법정의) 법관에게 갈 때(도중)에서 (주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화해하기를 힘쓰라. (만약 끝까지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최종심판을 받아) 옥졸이 옥에 가둘까(영벌에 처해지는 것을)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23-35, 일만 달란트에 달하는 그 무거운 빚은 영벌의 형으로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12:54-59); 역시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대해인 지중해 방향)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서쪽산맥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고 빗방울이 세찬 비가 되어)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따뜻한)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평평한 광야를 지나오므로)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자여(생활율법만 만들어 지키라고 하면서 정작 율법을 주신 창조주 여호와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여호와의 중요한 역사섭리가 임하고 있는 새언약의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 또 어찌하여 (여호와말씀의 진정한 뜻인) 옳은 것을 스스로 (여호와께 기도하고 진리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영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12:54-57);

1)    핵공학의 상식을 약간 빌리자면, 핵발전소의 에너지는 원자로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쇄적인 핵폭발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물속에 들어 있는 핵연료에 가속된 (, thermal) 중성자가 부딪치게 되면 안정적인 핵의 일부가 그 단단한 핵의 결합력’(Nuclear Binding Energy)을 깨고 나오면서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그 에너지의 양은 그 옛날 아인슈타인 박사가 수식으로 보여준 E=m(c의 2승)  (에너지는 사라지는 질량에 광속도의 제곱을 곱한 크기임)이므로 실로 엄청난 폭발력입니다. 그대로 버려두면 곧바로 핵폭탄이 되고 말 것입니다.

2)    따라서 그것을 막고 연쇄반응’(Chain Reaction)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탄소봉을 핵연료봉 옆에 두어서 가속된 (thermal)중성자 일부를 잡아 먹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안정적으로 일정한 에너지를 계속 원자로 안에서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에너지로 수증기가 생성되어 터빈으로 들어갑니다. 증기력으로 일단 터빈이 반()바퀴 회전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폐쇄회로를 타고서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차가운 민물이 터빈을 밀어낸 수중기를 일시에 응축시킵니다. 그러면 터빈의 반대쪽에서 만들어진 진공이 터빈을 잡아당겨서 완전히 일회전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1차 계통’(the Primary System)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핵물질이 들어 있는 수증기관과 접촉한 민물이 폐쇄회로를 형성하고 있어 일체 바깥으로 누수현상이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조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지하게 뜨거운 수증기관과 접촉하였기에 민물의 관은 너무 고열입니다. 그것을 식혀서 다시 터빈을 돌리는 수증기관을 응축시키자면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일시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에 따라 핵발전을 위해서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면서 민물의 관을 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핵물질을 거의 포함하지 아니하고 있기에 그대로 바다로 다시 방출이 됩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2차 계통’(Secondary System)이라고 부릅니다;

4)    그런데 원자력발전소의 설계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내부나 자연계의 내부도 그렇게 1차 계통과 2차 계통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Open System2차 계통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열심히 관찰하면 사람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Closed System1차 계통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사람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2차 계통과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심장과 폐 등의 1차 계통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5)    그리고 자연계는 바람이 불어오고 구름이 몰려오는 소위 눈에 보이는 현상이 있고 그 속에는 또한 영안으로만 보이는 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일찍이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바람이라고 공회원 니고데모에게 가르쳐 주십니다(3:5-8). 그와 같은 이치를 여기서는 예수님이 대해인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구름 그리고 따뜻한 남풍의 예를 가지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풍은 높은 산맥을 넘어서 저지대인 가나안의 내륙으로 내달리고 있기에 그 힘이 세고 구름을 동반하여 소나기를 뿌립니다(54).

6)    그와 달리 남동부 아라비아 사막에서 발생하여 가나안의 유대 광야로 불어오고 있는 열풍은 그 열기로 인하여 심히 더운 날씨를 초래합니다(55a). 그와 같은 기상의 변화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라고 하면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55b).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영의 바람이 어떤 곳에서 어떤 목적으로 불어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유대교인들이 무척이나 무지합니다(57, 3:5-6);

7)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지성과 이성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한번 이해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서 그들이 히브리경전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예수님이 여기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56). 특히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라고 밝히고 있는 여호와의 독생자의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유대교지도자들의 무지함은 상상 이상입니다.

8)    그들은 그 옛날 선지자 예레미야와 요엘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구원주 그리스도를 이세상에 먼저 보내어 주시고 그 뒤를 이어 하나님의 영을 보내어 주신다고 말씀하여 주셨는데 그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31:33, 2:23, 28-29, 롬8:1-2). 그에 따라 예수님이 이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게 되면 곧이어 믿는 자의 심령속에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종말로 만민을 영생 구원하는  새언약의 시대가 영적으로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흐름을 전혀 짐작조차 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것이 너무나 딱하다는 예수님의 지적입니다(56-57, 2:30-32).  

(2)  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최종심판을 행하는 여호와의 법정의) 법관에게 갈 때(도중)에서 (주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화해하기를 힘쓰라. (만약 끝까지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최종심판을 받아) 옥졸이 옥에 가둘까(영벌에 처해지는 것을)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23-35, 일만 달란트에 달하는 그 무거운 빚은 영벌의 형으로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12:58-59);

1)    창조주 여호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외면하고 배척할 뿐만 아니라 끝내 예수님을 처형해버리고자 하는 대적들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시며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듬뿍 담기어 있는 본문입니다.

2)    돌이켜보면, 그와 같은 마음은 벌써 제10장의 다음 구절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2:10). 예를 들면, 스승을 3번이나 부인하고 제 목숨을 살리고자 한 사도 베드로를(22:57-62) 예수님이 부활하여 다시 찾아오시고 그를 용서하여 주십니다(24:36-43);

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한 잣대로 자신을 배척하고 처형한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지도자들과 기타 동족인 유대교인들에게 회심의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58). 그러나 오래 그 시간을 유예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이 크게 역사하시는 시간이 되면 그 마지막 용서의 기회마저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59).

4)    역사적으로 최종심판에 이르기 전에 약속의 땅에 대한 상징적인 심판의 때가 먼저 찾아오고 있습니다. 선민의 자부심이 대단한 유대인들이 수년간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결과 마침내 주후 70년에 젊은 디두스 장군이 이끄는 대대적인 로마군단이 내침하여 강력한 진압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짧고 투박하여 몽둥이와 비슷한 로마병정의 검이지만 양면에 날카로운 칼날을 가지고 있기에 전장에서 많은 사람을 쉽게 살해합니다.

5)    그에 따라 로마의 검에 의하여 무려 11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고 남은 자들이 전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게 됩니다(19:41-44);

그와 같은 대참사가 임하기 전에 부디 그 옛날 선지자 요나의 시대에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새겨듣고서 이방도시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이 일제히 회심한 역사가(3:4-10) 선민 유대인의 땅에서 다시 한번 전개가 되기를 지극히 바라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1:32). 그 마음이 본문에 진하게 담겨 있는 것입니다(58-59).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를 6개월도 남겨놓지 아니한 시점에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남하하십니다. 사마리아를 지나 유대 땅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주로 갈릴리지방에서 3년간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자와 장애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신 큰 선지자 예수님의 인기는 유대 땅에서 더욱 높습니다. 그에 따라 예루살렘 입성 수개월을 앞둔 시점에는 수만명의 군중이 운집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성공이 바로 자신들의 유대교의 위기라고 하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따라서 기회를 보아 예수님을 체포하고 그 일행을 처벌하고자 벼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마치 먹이를 노리고 있는 하이에나처럼 그들의 눈이 번쩍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이후 사도와 제자들 그리고 회심하는 백성들 곧 성도들이 장차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지를 미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신실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의 말씀을 다시 음미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은혜로 귀한 깨달음을 얻어서 끝까지 실천하시며 복음안에서 승리하시는 주님의 청지기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