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창세기 제19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5. 27. 14:11

창세기 제19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1.    두 천사의 현신을 알아보고서 그들을 대접하는 롯의 신앙수준은 어느 정도의 것인가?(19:1-3)

 

두 천사가 방문을 하고 있는 소돔 성의 주민들의 정신상태는 비정상적입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그 성에 들어서고 있는 2천사를 보고서 정욕적인 생각만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가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現身, epiphany)을 하고 있는데 그 영적인 정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천사들이 변신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두 방문자의 스타일과 용모가 이국적이며 묘한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습니다. 그 중성적인 이미지와 색다른 아름다움에 이끌려서 그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돔 성의 성적인 타락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고자 천사들이 쳐 놓은 덫과 같은 것입니다.

그 함정에 소돔 성의 주민들이 대책이 없이 빠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본능적으로 정욕에 사로잡혀서 그날 밤에 두 천사가 머물고 있는 롯의 집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19:4-5). 그런데 두 천사의 외적인 용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인 정체성을 알아보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소돔 성에 있습니다.

그가 바로 롯입니다(19:1-2). 롯이 비록 소돔과 고모라 성의 도시문명을 그리워하고 대도시에서 재산을 불려야 하겠다는 욕심으로 백부인 아브라함을 떠나오기는 했지만(13:10-13) 여전히 상당한 영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천사의 현신에게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19:1-3).

 

2.    소돔 주민들의 죄악상(19:4-5)

 

저녁식사를 마치고 천사들이 잠자리에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돔 성의 주민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19:4). 그들은 롯의 손님들을 이끌어 내어서 욕을 보이겠다는 것입니다(19:5ab). 여기서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19:5c)는 말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겠다는 탐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 각지에서 몰려와서 행패를 부리며 단체로 행하겠다고 하는 것이 심히 부끄러운 성적인 타락의 자행입니다. 그것은 짐승보다도 못한 몹쓸 행위입니다. 한 마디로, 소돔 성의 주민들이 자행하고 있는 행동은 불 심판을 받아도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드디어 소돔 성에 심판의 그 밤이 임하고 있습니다(19:9-13).

 

3.    두 천사 대신에 자신의 2딸을 폭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던져주려고 하는 롯의 문제점(19:6-8)

 

고대 족장사회는 왕국과 비슷합니다. 왕은 나라의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왕의 종입니다. 마찬가지로 족장은 모든 가족과 가문의 왕이며 주인입니다. 아내와 자식도 재물과 마찬가지로 족장의 소유물입니다. 주인이 종과 재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듯이 족장은 가족의 생사여탈권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문에서 롯이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유숙하고 있는 두 천사의 현신을 살리겠다고 그들 대신에 자신의 두 딸을 군중들에게 내어주고자 폭도들에게 제안합니다(19:7-8). 마음대로 성욕의 대상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아직 처녀인 두 딸입니다. 아버지인 롯이 어떻게 자신의 두 딸을 그렇게 대접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사정이 급하고 천사들을 잘 보호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자신의 두 딸을 희생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신본주의 입장에서는 감동스러울지 몰라도 인본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처사입니다.

그리고 당시 고대사회의 관행이 아무리 그러하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의 인권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긴답시고 롯처럼 행동하는 것은 한 마디로, 인신제사를 용인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우상문화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알고자 하지 아니하는 것이 롯의 문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점을 창세기 제22장에서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 즉, 한 숫양이 위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22:10-14).

하나님은 결코 인신제사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아브라함에게 밝히고 있는 대목입니다. 인신제사 대신에 하나님은 스스로 어린 숫양을 제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이 제물을 스스로 준비하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에게 깨닫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롯의 시대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은 동일합니다. 두 딸을 정욕에 눈이 뒤집힌 소돔의 백성들에게 성적인 제물로 내어주는 롯의 처사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을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십니다.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에 불 심판을 내리시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딸을 함부로 그들에게 내어준 롯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아무리 시대적인 상황과 통념이 그러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변명거리가 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롯은 비록 그의 영안(靈眼, 영적인 눈)으로 천사를 알아보고 극진하게 대접하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지만(19:1-8)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지 못하고 역사에서 잊혀지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드디어 믿음의 조상 후보에서 그 이름이 탈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적어도 아브라함과 같은 하나님 신앙을 가진 자는 그와 같은 깨달음 위에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참고로, 장차 그러한 시대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제물이 이 땅에 온다는 것이 아브라함이 깨닫고 있는 여호와 이레의 뜻입니다.

그 숫양이 역사 가운데 AD 1 세기에 유대 땅에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이제는 더더구나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희생시키는 역사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그 인생을 함부로 좌지우지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4.    이주민 롯에게 밀어 닥치는 새로운 위험과 두 천사의 대응(19:9-11)

 

소돔 성의 주민들은 롯의 제안을 일축합니다(19:9a).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는 롯을 해치려고 합니다;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 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19:9b).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한 롯을 응징하는 이유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거류민인 주제에 감히 원주민인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해와서 살고 있는 소위 히브리인들이 당하고 있는 차별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2)  둘째로, 이주민이 자신들의 땅에서 재판관처럼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를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토박이의 텃세입니다. 소돔에서는 어디까지나 소돔 본토박이만이 재판관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엿보게 합니다.

그렇게 고대사회일수록 텃세가 더 심합니다. 이주민이나 소수민족은 아예 재판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정복민이 아닌 이상 이주민들은 항상 약한 위치에 서있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롯이 소돔을 선택한 것은 도시에 대한 향수와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가 그곳에 있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13:10-13). 그 결과 그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원주민에게서 배운 잘못된 사상에 물들고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자식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19:8).

(2)  둘째, 본토박이들의 텃세와 억지 때문에 자신의 것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것입니다(19:7, 9).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롯이 현재 맞이하고 있는 위기인 것입니다.

그 국면을 롯이 타개하지를 못합니다. 두 천사가 이제는 나서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소돔 성의 영적인 타락과 성적인 타락을 조사할 필요도 없게 생겼습니다. 당장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돔 성 주민들의 행패만 보더라도 심판을 시행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롯을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있습니다(19:10). 곧 이어서 주민들이 문을 밀거나 부술 수가 없도록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습니다(19:11). 그것은 임기응변이며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롯의 가족들을 성 밖으로 피난을 시켜야만 합니다(19:12, 16-17, 22). 그리고 염해지역 도시와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천재이변이 곧 발생을 할 것입니다(19:24-25).

 

5.    소돔 성의 멸망이 임박하였다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는 두 사위(19:12-14)

 

사위가 아니라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사위감입니다(19:12). 그 이유는 롯의 2딸이 아직 남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19:8). 그렇지만 고대사회에서는 정혼만 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사돈간이 됩니다.

혼인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는 상식이 통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위감이라는 호칭보다는 그냥 사위라고 편하게 부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혼관계가 쉽게 깨어지고 약혼관계는 더 쉽게 깨어지는 현대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잘 지키고 신용을 중시하는 고대사회이지만 현대사회와 똑 같은 모습 하나가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9:14).

장인 롯의 말도, 그가 인용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도 모두 소돔의 토박이인 그들에게는 영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 신앙이 없는 그들 원주민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예언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천사들의 말은 정확한 현실 진단입니다;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19:13).

아울러, 장인 롯이 그들에게 대하여 별로 큰 영향력이 없다는 사실까지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주민인 롯의 위치가 소돔 성에서 너무나도 허약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문명과 그 화려함을 동경했던 롯이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그 땅에 남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도가 신앙인의 나그네 길을 외면하였을 때 무엇이 찾아오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멸망의 예언까지 무시하고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자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소돔에서나 이곳에서나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수 많은 인류가 롯의 사위감과 같은 모습으로 살다가 대책 없이 심판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6.    롯의 가족이 얻게 되는 부끄러운 구원의 모습(19:15-17)과 그들 덕분에 구원을 얻게 되는 작은 성 소알(19:18-22)

 

아브람이 롯과 헤어진 것이 출애굽 직후입니다(12:20-13:13). 그때 아브람의 나이가 여전히 75세로 보입니다(12:4). 그런데 지금 두 천사가 소돔 성에서 롯을 만난 때는 아브람의 나이가 99세 때입니다(17:1, 21, 18:10, 22).

그렇다면, 무려 롯의 가족은 24년 가까운 세월을 소돔 성에서 지내오고 있습니다(13:13, 19:1).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하는 세월 가운데 롯의 가족의 사고방식이 다음과 같이 세속에 젖어서 많이 변해 있습니다;

첫째로, 욥은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도 아니하고서 가나안 이방인들의 풍습을 쫓아서 자신의 두 딸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천사를 살리고자 주저함이 없이 두 딸을 정욕에 불타는 소돔 백성들에게 던져주려고 합니다(19:8).

그것은 인신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정도로 롯은 이방종교와 퇴폐문화에 물들어 있습니다. 두 천사에게 잘 보여서 무슨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고 롯이 그렇게 인권을 무시하는 신본주의 신앙을 고집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둘째로, 그는 재물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돔 성을 빨리 탈출하라고 두 천사가 재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지체하고 있습니다(19:15-16a). 급기야는 천사들이 그들의 손을 이끌어서 강제로 탈출을 시켜주고 있습니다(19:16b). 참으로 부끄러운 탈출의 장면입니다.

셋째로, 너무 몸이 비대하고 잘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잘하지 못하여 먼산으로 피신하지 못하고 그만 도중에 지치고 맙니다(19:17-18). 그래서 작은 소알 성에 들어가서 불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두 천사에게 통사정하고 있습니다(19:19-20).

몸이 무거운 롯 덕택에 소알 성이 불 심판을 피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19:21-22). 참으로 자비스러운 하나님이십니다. 결과적으로, 염해지역에 존재하는 다섯 도시국가 가운데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등 4개의 성읍만 불 심판을 받게 됩니다(14:2, 8).

참고로, 염해지역 5왕국의 연합군대가 메소포타미아 다국적군대와 전투를 벌인 곳이 싯딤 골짜기입니다(14:8). 그곳이 바로 오늘 날의 염해입니다. 당시에는 호수가 아니었고 골짜기였으며 역청구덩이가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4:10).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불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 지진과 용암의 분출을 동반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19:24).

그 결과 역청구덩이가 땅속으로 들어가고 분출된 용암이 골짜기를 뒤덮게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추정하고 있는 이유는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는 역청 곧 석유의 찌꺼기가 오늘 날에는 염해지역에서 별로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땅속지진으로 말미암아 매몰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위에 용암이 식어서 쌓여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암염(巖鹽, 바위의 소금)들이 강물에 녹아서 그 골짜기에 녹아 들어간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19:26). 그것이 역청 골짜기가 사라지고 갑자기 일반 바다보다 염분의 농도가 7배나 진한 일명 죽음의 바다염해가 생긴 과정이라고 일부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7.    하늘에서 비같이 내리는 유황과 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19:23-25)

 

롯이 소알 성에 들어간 것이 해가 뜨기 직전입니다(19:23). 소돔 성에서 천사가 동틀 때가 가까워오자 급히 롯에게 가족을 이끌고 성 밖으로 탈출을 하라고 재촉을 하고 있습니다(19:15). 그들이 무사히 성을 빠져나가고 먼산으로 도착을 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불 심판을 시행할 예정입니다(19:13, 17).

그런데 롯의 가족은 20년 이상 소돔 성에서 너무 편한 도시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만 제대로 달리기를 할 수가 없게 되자 그들은 작은 성 소알로 우선 피신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소알에서 불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천사들에게 간청합니다(19:19-20).

그 요구가 받아들여집니다(19:21-22). 그들이 무사히 소알 성으로 피신을 하고 나자 이제는 더 지체하지 아니하고 불 심판이 하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 등 4개의 성읍에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19:23-24).

그런데 본문에서 불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 예사롭지가 아니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19:24-25).

적어도 다음 3가지를 생각해볼 만한 사실을 예시해주고 있는 문장입니다;

(1)  첫째로,여호와께서 불 심판을 행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는 물로써 심판을 하셨으나 이제는 불로써 심판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지개 언약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시는 홍수로써 심판을 행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을 하셨기에 물이 아니라 불로써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7:10-12, 9:11-13).

(2)  둘째로,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유황과 불이 비 같이 땅으로 쏟아졌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비 같이 땅으로 떨어져 내린 것만 말하고 있는 문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호와께로부터라고 그 심판의 출처를 새삼 밝혀주고 있습니다.

1)    그 의미는 창조주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동원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서 땅으로 다시 비 같이 떨어질 수 있는 것 가운데 특히 하나님께서 동원하실 수 있는 것으로서 지진의 발생과 화산의 폭발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용암이 분출되어 일종의 가이저’(geyser)가 되어 하늘로 치솟아 다시 땅으로 비처럼 쏟아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일찍이 노아의 홍수심판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행하셨습니다. 깊음의 샘들이 터져 나왔습니다(7:11-12, 24, 8:2). 지진이 발생을 하고 지하수가 분출된 것을 말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있었던 그와 같은 지진이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 때에도 발생했다고 하겠습니다(19:24).

3)    그 근거로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역청구덩이가 많았던 싯딤 골짜기가 지진의 발생으로 말미암아 소금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는 가설’(假說, hypothesis)입니다. 그 역청 구덩이인 싯딤 골짜기에서 이상하게도 석유가 사라집니다(14:3, 8-10). 그 대신에 용암이 지나간 자리에 점토와 석회석이 퇴적하면서 골짜기 바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4)    그리고 그 위에 강물이 모여들고 소금기둥이 녹아 들고 있습니다. 소금이 또 하나의 퇴적층을 이룸으로써 마침내 소금의 바다인 염해’(鹽海, salt sea)가 생깁니다. 오늘날 소위 사해’(死海, dead sea)라고 불리고 있는 호수의 탄생입니다.

5)    그러므로 추론의 결과는 하나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비 같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 유황과 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떨어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땅 속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용암이 하늘 높이 분출이 되어서 다시 지상으로 비 같이 쏟아져 내린 것입니다.

(3)  셋째로,유황과 불이소돔과 고모라 등 염해지역 도시국가에 내리게 된 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불 심판에 해당합니다(19:24-25). 그것은 먼 옛날 주전 21세기에 발생한 사건으로서 영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문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1)   그런데 그후의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후 79년에 고대 로마 나폴리 인근의 폼페이 도시가 화산의 폭발로 일시에 용암으로 뒤덮이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재해에 속합니다.

2)   그러나 인재(人災, 사람이 만든 재앙)에 속하는 사건도 있습니다. 현대에 발생한 가장 끔찍한 두 가지 사건이 모두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가 원자탄 투하 사건입니다. 둘째가 원자로 폭발사건입니다. 전자는 20세기 중반인 1945 8월에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만든 원자탄이 일본의 두 도시에 투하가 된 것을 말합니다.

3)   미국은 끝까지 대항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는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기 위하여 원자폭탄을 사용합니다. 일본의 후방 군수품 생산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선택하여 비행기로 원자폭탄을 투하합니다.  그 결과 핵이 폭발을 하자 버섯구름을 일으키고 엄청난 열기와 빛이 두 도시를 초토화시켜버리고 맙니다. 당장의 방사능피해가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더구나 그 유전적인 피해가 자손대대로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주후 21세기가 되자 20114월에 일본의 북쪽 후쿠시마’(福島) 지방에서 강력한 핵의 폭발이 다시 발생을 했습니다. 내진(耐震, 지진에 견디는) 설계의 한도를 가볍게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고 바닷물이 쓰나미가 되어서 일시에 주변도시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 영향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어 있던 여러 원자력발전소의 노심이 일시에 녹아 내리고 말았습니다.

5)   원자로가 건설되어 있는 땅이 크게 흔들리고 갈라지자 (, thermal)중성자를 잡아 먹도록 장치되어 있는 제어막대기(control rod)가 그만 제 위치를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증식된 열중성자가 그 수를 줄이지 아니한 채 한꺼번에 핵연료봉(nuclear fuel rod)과 반응을 하게 되자 대규모의 핵폭발이 발생한 것입니다. 다행히 원자로 속에서 일어난 폭발인지라 단숨에 바깥으로 터져 나온 것은 아닙니다.

6)   그러나 이미 생성된 대량의 방사성물질은 땅속으로 그리고 공중으로 계속 퍼지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20세기의 핵폭탄보다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는 엄청난 규모의 핵연료가 21세기에 역시 일본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구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국가의 권력행위나 백성들의 애국심만으로 수습이 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와 같이 상세하게 고찰을 한 이유는 아브라함 시대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이 가나안 남부의 주변지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입니다. 뜨거운 열기와 동풍을 타고서 날려오는 엄청난 재는 오랜 세월 가나안 남부지역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19:27-28).

계속되는 가뭄과 흉년으로 마침내 사람과 가축이 살 수 없게 됩니다. 아브라함 가족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옥한 땅을 찾아서 블레셋 족속의 그랄 땅으로 떠나게 됩니다(20:1-2).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나안 남부의 텅 빈 땅으로 북방의 세력이 남하하게 됩니다. 가나안 원주민 아모리 족속과 아브라함의 성채가 있던 헤브론 땅까지 너무나 쉽게 북방의 헷 족속이 차지하게 되는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13:18, 14:13, 23:2-7).  

 

8.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의미(19:26)

 

롯의 가족이 소알 성으로 피신을 하고 나자 해가 돋았습니다(19:23). 그때부터 소돔과 고모라에 불 심판이 임하고 있습니다(19:24). 그런데 소알 성으로 피신을 하지 못한 롯의 가족이 한사람 있습니다. 바로 롯의 아내입니다(19:25).

그녀는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9:17)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였기에 그만 도중에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19:26).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자가 뒤를 돌아다보지 말아야만 하듯이 그렇게 앞만 보고 똑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보고 자신에게 먼저 적용시키며 올바로 전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에 자신의 인생을 똑바르게 믿음의 성숙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이나 시간낭비를 줄여 주시는 구체적인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2)  둘째로, 들에 머물지를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훗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오래 동안 풀이 무성한 들판에 머물면서 목축을 통하여 계속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야곱입니다. 기껏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숙적 에서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크게 은혜를 베풀어주었더니 야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있습니다(28:20-22, 33:16-17). 그는 하나님에게 서원한 장소 벧엘로 곧장 가지 아니하고 얍복 시냇가 풀이 무성한 숙곳들판에 오래 머물면서 가축을 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나중에 세겜 사건을 통하여 크게 혼이 나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서 벧엘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34:25-35:3).

(3)  셋째로, 산으로 도망을 해야만 합니다. 피신을 할 수 있는 곳으로서 유대인들은 시온 산에 세워져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온 산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들을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혜의 요새지역에 살고 있으므로 그렇게 지리적인 강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정확하게 깨달은 자들은 성전이나 산성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1:1-2). 한마디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그 산성과 성전이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이 바로 심판을 면하는 장소라고 하겠습니다.

2)   궁극적으로는, 장소가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이 있다고 하는 그것이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는 비결입니다(33:14-19). 그러한 깨달음을 모세가 신명기에서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30:20).

이제는 왜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를 하필이면 소금기둥으로 변하게 하셨는지 그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또한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5:13-16). 그것이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그와 같은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에 동참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지만 그녀는 소돔 성을 탈출하는 도중에 그만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소돔 성에 두고 나온 재산이 너무나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13:22)라는 경우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롯의 아내를 소금기둥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그 의미는 죽어서라도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역청 구덩이가 많았던 싯딤 골짜기가 불 심판 후에 그 지형이 바뀌고 있는 것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심판의 과정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용암이 분출하면서 역청의 덩어리들이 모두 땅속에 매몰이 되고 있습니다. 그 골짜기의 바닥에 용암이 식으면서 단단한 지층이 형성됩니다. 그 위에 요단 강에서 실려온 토사가 퇴적이 됩니다. 지진으로 말미암아 더욱 깊어진 골짜기가 호수로 바뀌면서 주변의 소금기둥들을 침식하고 있습니다.

본래 암염이 있었기에 그 주변에 부유한 도시국가가 형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한 것을 보면, 용암이 분출이 되면서 깊은 땅속의 소금이 더 많이 지상으로 터져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죽음의 땅 싯딤 골짜기와 염해 지역 도시국가들이 다시 더 좋은 소금 밭을 가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심판으로 모든 것을 끝장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삶의 환경을 창조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다음에 부활의 영광이 찾아오듯이 심판을 받아 버려진 그 땅에 빛과 소금의 역사가 다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역사관을 새삼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3-36).

 

9.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치솟고 있는 검은 연기를 보게 되었다는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19:27-28)

 

헤브론에서 소돔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60km이상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150리 정도의 먼 거리입니다. 장정의 걸음으로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걸린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성이 아침 무렵에 불 심판을 받게 되는 광경을 그 멀리 떨어진 헤브론 땅에서 아브라함이 관측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먼 거리에서 자세히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대량의 유황과 불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 등의 도시에 마치 화약이 터지는 것과 같은 큰 폭발음과 강한 빛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탄이 터지게 되면 발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시커먼 구름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정확하게 모세가 다음과 같이 아브라함의 눈을 빌려서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19:27-28).

오늘날 핵폭발이 발생하면 방사성물질이 바람을 타고서 공중으로 퍼지고, 동시에 강물이나 바닷물 또는 지하수 등에 실려서 온 땅으로 확산이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의 현장에서 발생한 뜨거운 열기와 강력한 빛의 에너지 그리고 폭발의 잔재 등이 모두 가나안 남부를 뒤덮기 시작합니다.

그 영향으로 흉년과 가뭄이 계속 찾아 들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헤브론과 브엘세바 지역은 반 사막성 기후에 시달리는 네게브 지역이며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있는 일명 (zin) 광야가 그 남단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도저히 목축을 더 이상 경영할 수가 없어서 가나안 남부의 주민들이 애굽이나 해안가 블레셋의 그랄 땅으로 피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그랄 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족이 일찍이 애굽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출애굽을 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12:15-20). 그러므로 아브라함 가족은 도리가 없이 이번에는 블레셋의 땅으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 불 심판의 영향이라고 하겠습니다.

 

10.  롯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이유 2가지(12:4, 19:29)

 

첫째는 아브라함이 중보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18:23-32).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방문하셔서 소돔과 고모라 등지에 죄악이 넘치므로 한번 더 실태파악을 한 후에 심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소한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가족만이라도 구원해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일부러 아브라함을 방문하시고 그 말씀을 꺼내신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불 심판의 현장에서 미리 탈출을 시키신 것이라고 모세가 적고 있습니다(19:29). 그와 비슷한 표현이 훗날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의 군대로부터 예루살렘 성을 구원하실 때에도 다음과 같이 등장합니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37:35).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그 자손 히스기야 왕 때에도 예루살렘을 구원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롯을 구원해주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장조카 롯과 함께 아비 데라가 머물고 있는 하란 땅을 떠나올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언약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1-2). 아브라함과 맺은 그 언약은 함께 하란을 떠나서 믿음의 대열에 참여한 바 있는 롯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언약의 이름이 일행의 대표자였던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19:29)라는 말은 달리 표현을 하자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그 언약이 이번에 롯에게 적용이 되고 있으므로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같은 믿음의 길을 떠나왔던 롯에게도 적용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롯의 가족이 소돔에서의 세속적인 삶을 청산하고 믿음의 길로 다시 들어설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움직여서 미리 중보기도를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18:20-32). 요컨대, 심판보다는 구원을 베풀어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계시는 참으로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3:16-17, 10:18).

 

11.  소돔 성의 불 심판 후에 소알 성에 계속 거주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롯(19:30a)

 

세상의 종말 그 후에 살아 남은 인류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흔히 그날 이후라는 제목으로 일부 영화나 가상 다큐멘터리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지금 소알 성에 대피해서 생활하고 있는 롯의 가족에게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롯이 소알 성에 계속 거주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19:30a). 소알 성의 민심이 흉흉해지고 사람들이 더욱 악독해지고 있습니다. 본래 작은 소알 성도 하나님의 불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19:21). 염해 지역 다섯 도시국가 곧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그리고 소알 성 모두가 죄악이 왕성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운이 좋아서 소알 성이 심판에서 제외가 되었습니다. 롯의 가족이 체력이 약해서 도저히 먼산까지 도망할 수가 없어서 임시대피의 장소로 소알 성을 선택했기에 그 성이 살아남은 것입니다(19:22).

그러나 그 성 주민들의 죄악된 삶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이웃 성들이 모두 불 심판을 당하고 나자 그 영향으로 소알 성의 주민들은 살기가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불 심판의 여파가 몰려온 것입니다. 뜨거운 열기와 타고 남은 재가 하늘을 덮고 있습니다. 농작물이 타버렸습니다. 기근과 가뭄이 찾아 왔습니다.

롯과 같은 피난민이 발을 붙이고 살 수가 없습니다. 잘못되면 그들은 사냥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진 성에서 사람을 잡아 먹는 일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입니다(왕하6:24-29).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롯이 얼른 두 딸을 데리고 먼산으로 야반도주를 하고 있습니다(19:30b).

 

12.  인적이 없는 산의 굴에서 살게 되는 롯과 2딸의 폐쇄적인 사고방식(19:30b-31)

 

사람들이 동떨어진 곳, 이른 바 굴 속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가 보면 그 생각과 사고방식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19:30b). 생각은 폐쇄적이 되고 사고방식은 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독단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그 현상이 롯의 2딸에게서 여지없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19:31).

두 딸은 소알 성의 악한 주민들과 비교하여 자기 집안 사람들만이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19:20-22, 30a). 아버지와 두 딸만이 마지막 의인으로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것으로 지레짐작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자인 두 딸이 남은 삶을 바쳐서 실천해야만 하는 거룩한 사명이 그녀들에게 있다고 독단적으로 사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인의 자손을 이 땅 위에 번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의인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그녀들의 아버지만이 살아 남아 계시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일찍이 집안의 족장인 아버지 롯이 그의 백부가 되는 아브람과 함께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 다음과 같음을 두 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의인이신 아버지 롯의 자손을 이 땅 위에 번성하게 해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제 그 약속을 성취하는 일이 의인 집안에서 마지막으로 살아 남아 있는 두 딸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그녀들이 독단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폐쇄적인 생각이며 독단적인 의인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선민사상의 뿌리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이 두 딸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을 때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패륜적인 계획과 행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19:31-32).

그런데 여기서 두 딸은 인성이 완전히 말살이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들이 술을 도구로 사용하여 아버지의 인성을 마비시키자고 계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아버지가 제 정신인 상태에서는 아버지와 몸을 섞는 그 행위가 패륜적인 것이며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거룩한 목적을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성을 얻지 못합니다. 하물며 두 딸은 그 방법 뿐만 아니라 목적에 대한 판단 부터가 너무나 독단적이고 폐쇄적입니다. 따라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있습니다”.

 

13.  그들에게 닥치고 있는 불행(19:32-38)

 

롯과 두 딸은 소알 성의 주민들을 피하여 깊은 산 좁은 굴속에서 오래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두 딸이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모두 임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9:35-36). 배가 불러올 때까지 여러 달 동안 그 굴속에 함께 머물렀다고 하겠습니다.

그 동안 그들은 생계에 꼭 필요한 물품은 소알 성에서 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롯에게 계속 먹이고 있는 술도 소알 성에서 사왔을 것입니다(19:33). 그렇다면 그들은 집이 있는 소돔 성에서 피신을 할 때에 완전히 맨몸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엄청난 금은패물을 지니고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염해 지역의 큰 도시들이 모두 멸망을 당했으며 그 불 심판의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당장 생필품 값이 급등했습니다. 생산이 불가능한 가뭄지역에서 금은패물이 많이 없었다면 롯의 가족도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롯은 굴속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이상한 현상을 맞고 있습니다. 두 딸이 생필품을 사려고 금은패물을 가지고 소알 성을 다녀오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두 딸이 모두 배가 불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롯은 과년한 딸들인지라 소알 성에서 정분이 난 것 정도로 혼자서 짐작을 했을 뿐입니다.

설마 두 딸이 그와 같은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자신을 통해서 후손을 얻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롯이 눈치를 챘다고 한다면 두 딸과 함께 계속 굴속에서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19:35-36).

어쨌든 소알 성의 어떤 남자들이 그 아이들의 아버지인지 두 딸은 롯에게 밝히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롯도 두 딸에게 누가 아이들의 아버지인지 꼬치꼬치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족장인 롯이 그렇게 물을 수가 없었을까요?

롯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의지할 데라고는 아내가 객사를 하고 나자 이제 2딸 밖에 없습니다(19:26). 자신의 모든 기반이 사라진 마당에 나이가 든 남자 롯이 혼자서 산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두 딸의 신세를 지고 그 눈치를 보아야만 할 형편입니다. 그러므로 롯은 왜 두 딸이 배가 불러오고 있는지 그 자초지종을 꼬치꼬치 물을 수 없었던 것으로는 보입니다”.

롯의 두 딸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멀리 염해 동쪽으로 떠나가버렸습니다. 훗날 큰 딸은 사해 동쪽 모압 땅에서 자손을 번성시킵니다(19:37). 작은 딸은 더 북상하여 요단 강 동쪽 암몬 땅에 자리를 잡고서 자손을 번성시키게 됩니다(19:38). 그리고 그 때부터 의인 롯의 행적은 성경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잘못된 의인사상을 딸들에게 물려준 롯, 더구나 자신의 몸이 패륜의 도구로 사용이 되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영성이 어두워진 롯의 남은 생애에 대하여 모세는 구태여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19:33-36).

그렇지만 롯과 두 딸의 사건만은 자세하게 남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보입니다;

(1)  첫째, 선민사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만이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에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를 버젓이 행할 수가 있다는 사실, 그 위험성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롯이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서 부끄럽게 사라지듯이 영적으로 계속 깨어 있지 아니하면 누구나 부끄러운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준엄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8:19-20).

(3)  셋째, 모압과 암몬 족속의 탄생의 기원을 말하고 있습니다(19:37-38). 그들이 모두 롯의 후손들이므로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의 땅을 침범하지 아니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자손인 에돔 족속의 땅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동생의 아들 롯의 후손인 모압과 암몬 족속의 땅까지 건드리지 말라고 모세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2:4-6, 9, 19).

 

(참고자료) 창세기 강의 골자 21(19:1-3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 1 14()

 

1.      소돔 성에 나타난 천사를 영접하고 있는 롯에게서 엿볼 있는 그의 영적인 지식의 수준(19:1-2)

(1)   롯의 영적인 지식; 롯은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아름답고도 준수한 용모의 사람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음(19:1).

1)      롯은 그들이 보통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과 일행이시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있음. 따라서 주여’(19:2a)라고 부르면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것임(19:1b).

2)      사실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천사 둘이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한 것인데 롯은 하나님과 천사를 구별할 있는 영적인 분별력이 미흡한 수준이라고 하겠음. 그것은 잘못하면 천사숭배사상으로 연결이 있는 위험한 것임.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 둘이 롯의 집으로 이유

1)      부디 급히 가던 길을 돌이켜 자신의 집에 들어가서 일박을 하고 아침 일찍 길을 가시라고 롯이 간청하고 있음(19:2a, 3a).

2)      천사 둘이 롯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말한 것은 자신들의 임무 소돔 성을 상세하게 정탐하고자 하는 일을 충실히 하고자 것으로 보임(19:2b).

3)      그러나 날이 어두웠고 자신들의 영적인 정체를 롯이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지라 회피하지를 못하고 롯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음(19:3b).

4)      그리고 어차피 아브라함의 연고로(19:29) 롯의 가족도 구해내어야만 하는 소임도 있는 것임(19:12).

(3)   백부 아브라함과의 비교;

1)      아브라함은 천사를 대동하고 현신하신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있음(18:1-3). 그러나 롯은 천사를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임.

2)      비록 아브라함은 밝은 정오 무렵에 그들을 만나고 롯은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에 그들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적인 안목에 있어서 차이가 나고 있는 것임.

 

2.      롯이 천사를 접대하고 있는 수준(19:3-4a)

(1)   롯은 무엇으로 천사를 대접하고 있는가? 무교병을 구워서 식사를 대접하고 침실을 제공하고 있음(19:3-4a).

(2)   백부 아브라함과의 비교

1)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최상급의 식사와 극진한 손님대접임; ①발 씻을 물을 먼저 제공하고, ②고운 가루로 떡을 충분하게 만들고, ③맛있는 송아지고기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④자신이 식사시중까지 들고 있는 것임(18:4-8).

2)      이에 비해서 롯은 무교병 식사와 침실만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말만 요란하였지 사실은 보통 손님의 접대수준임.

 

3.      그날 저녁 늦은 시간에 롯의 집에 소돔의 백성들이 몰려오고 있는 이유(19:4-5)

(1)   외지에서 미남자를 이끌어내어 성적노리개로 삼고자 하는 것임(19:5).

(2)   그것은 소돔 성의 남자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원근에서 모여’) 남색에 미쳐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임(19:4).

 

4.      소돔백성들의 죄와 롯의 허물에 대하여(19:6-8)

(1)   소돔 백성들의 죄와 롯의 허물은 무엇인가?(19:6-8)

1)      소돔 백성들의 ; 심각한 성적인 타락임(1:27, 남색). 그리고 나그네를 대접하지 아니하고 향락의 노리개로 삼고 있는 것임(1:29, 악의가 가득한 자들임).

2)      롯의 허물;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딸들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음(19:8). 그것은 외식적인 신앙생활과 같은 것임(7:11-12,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것이 고르반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2)   어떻게 하면 사함과 허물의 가리움을 받을 수가 있는가?(44:22)

1)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임(12:20-31).

2)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할 알아야만 하는 것임(7:11-12, 자식사랑과 인간으로 대접하기, 25:35-40, 주린 , 목마른 , 옥에 갇힌 , 나그네 자를 돌보라는 말씀).

 

5.      소돔백성들이 롯을 해치려고 하는 이유에서 엿볼 있는 그들의 패역함(19:9).

(1)   롯이 그들을 가로막자 아예 롯을 해치고자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음(19:9ac).

(2)   떠돌이 거류민 주제에 자신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법관행세를 하고 있으니 차제에 징계를 하고자 하는 것임(19:9b).

(3)   말은 마디로, 그들의 집단행동이 바로 법이며 주인의 위세라는 것임.

1)      그들의 집단행동 앞에는 아무 것도 막아 수가 없다는 것임.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주인이나 재판관이 되지를 못하고 있음(1:28-29,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2)      오로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여 밀어 부치는 그것이 의로움과 정당성인 것임(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3)      그것은 무서운 전체주의사회’(a totalitarian society) 모습이며 폐쇄된 고립사회’(a closed society) 관행인 것임.

 

6.      하나님의 사자로 쓰임을 받고 있는 천사들의 능력(19:10-11).

(1)   순식간에 문을 닫고 모인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버리고 있음(19:10-11).

(2)   능력은 훗날 선지자 엘리사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자 발휘가 되고 있음. 도단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아람병정의 눈을 멀게 해버리시는 것임(왕하6:18).

 

7.      롯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있는 자들은 누구 누구인가?(19:12-14)

(1)   롯에게 속하고 있는 자들임(19:12-14).

1)      롯의 아내와 (19:16).

2)      그리고 딸과 정혼한 사윗감임(19:8,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 19:12, ‘ 사위’, 19:14, “ 딸과 결혼할 사위들”).

3)      기타 중에서 롯에게 속한 자들(19:12). 아브라함의 할례의 경우를 참조하면, ‘이방인 종과 일꾼’(17:12)들임. 다만 그들이 사윗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기에 함께 구원을 얻지 못한 것임(19:14).

(2)   노아의 경우와(6:8-9, 18) 출애굽 유월절의 경우(12:23)

1)      노아로 말미암아 그의 아내와 아들 부부가 모두 방주구원을 얻게 (6:8-9).

2)      출애굽의 경우에는 유월절 양의 피가 문인방과 문설주에 뿌려져 있으면 집안에 있는 자는 선민 이방인 구분이 없이 모두가 죽임을 면하게 되는 것임(12:23).

3)      그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특징임(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8.      사위들이 장인이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이유는 무엇인가?(19:14)

(1)   가지 이유가 있으며 그것은 사윗감뿐만 아니라 롯의 이방인 종이나 일꾼들도 마찬가지임.

1)      선례가 없으며 상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임(19:14).

2)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심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임(19:14)

(2)   하나님신앙이 없는 이방인을 사위로 삼고자 하는 롯의 입장은 무엇인가?(13:10-13, 19:31, 26:34-35)

1)      하나님신앙을 자신 견고하게 파수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반증임.  따라서 롯은 이방인 문화에 상당히 물들고 적당히 젖어서 살고 있는 자임.

2)      롯의 경우는 마치 에서가 가나안 원주민 가운데 지배자 헷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제멋대로 맞이하여 자신의 안전보장을 도모하고 있는 경우와 통하고 있는 것임(26:34-35).

3)      마디로, 롯이 정략적으로 소돔 유력가문과 사돈을 맺고자 것으로 보임(19:14a). 결과 떠돌이 부자양반 롯의 말을 사윗감들이 마치 농담처럼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임(19:14b).

4)      자신 하나님신앙을 소돔에 전파하거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 그러므로 아브라함과는 달리(20:7) 결코 하나님의 선지자 불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임.

 

9.      롯은 천사의 재촉을 받으면서도 주저주저하고 있는가?(19:15-16)

(1)   두고 급히 떠나야만 하는 많은 재산이 무지하게 아까운 것임.

(2)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며 서두르고 있지만(19:15) 롯은 어떻게 하면 재산을 귀중품 정도라도 몸에 지니고 움직일 있을까를 계속 궁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3)   그래서 너무 지체가 되고 있는 것임(19:16a). 마침내 동이 트고 있음(19:15a).

 

10.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있는 롯의 모습과 안이한 일상이 빚어놓은 롯의 모습(19:16-20)

(1)   드디어 동이 트자 기다리지를 못한 천사들이 롯의 가족을 강제로 성밖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임(19:16).

1)      그것은 자발적인 탈출이 아니라 억지로 이루어지는 반강제적인 부끄러운 구원의 모습임.

2)      구태여 좋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19:16) 것임.

(2)   롯은 급히 천사에게 끌려 나오느라고 패물조차 지니지 못한 것으로 보임.

1)      그렇지만 롯은 달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몸이 무거워져 있음. 그것은 동안 소돔 성에서 안이하게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 증거임.

2)      그래서 천사가 요구하고 있는 산까지의 피신이 어렵게 (19:17-19).

3)      부디 작은 소알에서 피신할 있도록 해달라고 천사에게 간청하고 있음(19:20).

4)      일이 하나님께 보고가 되고 덕분에 소알 성이 심판을 면하게 (19:21).

 

11.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는 작은 소알 성의 문제점(19:21-22, 30)

(1)   때문에 심판을 면했지만 소알 주민들의 행태는 소돔 성의 주민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음(19:31, “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사람이 땅에는 없으니”). 때문에 롯과 딸이 신변상의 위험을 느끼게 (19:30a).

(2)   마침내 롯은 겁탈 당할 위험이 소알 성을 탈출하여 딸과 함께 산에 들어가 굴에서 피난살이를 하기에 이르게 (19:30b).

 

12.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 등에 대한 심판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가?(19:23-24, 29:23)

(1)   롯의 가족을 천사들이 성밖으로 이끌어 내고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소알 성에 피신을 시킨 직후부터 심판이 시작되고 있음(19:24).

1)      그것은 의인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심판까지 늦추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

2)      노아 시대 홍수심판의 경우에도 노아 600 1월쯤 그의 조부 므두셀라가 소천한 것으로 보임.

3)      따라서 노아가 조부의 장례를 치른 2 17일부터 하나님의 홍수심판이 시작이 되고 있는 것으로 있음(5:25-29, 7:11).

(2)   롯이 소알 성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으므로 애초의 동틀 무렵이 아니라(19:15) 늦게 동이 다음에 심판이 시작이 것임(19:23).

(3)   참고로, 창세기 19장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이지만(19:24) 모세는 신명기 29장에서 아드마와 스보임을 추가하고 있음(29:23).

 

13.   그들 성에 대한 심판의 내용과 롯의 아내에 대한 심판의 내용(19:24-26)

(1)   하늘에서 여호와가 내리시는 유황불의 심판임(19:24). 성안은 물론 들판에 있는 모든 사람과 생물까지 모두 멸절시키는 무서운 심판임(19:25).

(2)   심판의 두려운 점은 광경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자까지 모두 죽게 된다는 것임.

1)      천사의 사전당부가 다음과 같음; “돌아보거나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9:17).

2)      그러나 두고 재물이 불타는 것을 미련 때문에 되돌아본 롯의 아내는 그만 참변을 당하고 있음. 소금기둥이 되고 것임(19:26). 그것은 지역에 암염이 많다는 사실을 엿볼 있는 대목이기도 .

 

14.   그날 아침 아브라함은 동남방 소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가?(19:27-29)

(1)   강한 동풍을 타고서 60km 멀리 떨어져 있는 소돔 성에서부터 검은 연기와 함께 재가 몰려오고 있기 때문임(19:27-28).

(2)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있는 아브라함임(18:32). 그때부터 롯이 살고 있는 동남방 소돔 성을 향하여 멀리 쳐다보고서 기도한 아브라함으로 있음.

(3)   그런데 다음날 일출이 있고 나자 그곳에서부터 검은 하늘이 생겨나고 있는 것임. “연기가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 보았더라”(19:28) 표현은 마치 1945 8 일본 히로시마 원폭투하의 현장과 비슷하다고 하겠음.

 

15.   롯의 딸에게서 발견할 있는 삐뚤어진 선민의식(19:30-35)

(1)   염해 지역 하나님의 심판의 와중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성이 소알임. 하지만 성읍의 주민들은 여전히 패역하고 성적 타락이 심함.

(2)   따라서 롯의 딸은 그들 이방인들은 여전히 멸망의 대상이고 오로지 아버지 롯만이 의인이며 구원의 대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음.

1)      의인의 후손을 땅에 전파하는 것이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라고 판단함(19:31,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사람이 땅에는 없으니”, 19:32,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2)      하나님신앙을 가진 의인을 정상적으로 찾을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혈통에 의한 선민우월사상을 가진 것임.

3)      결과 술을 먹이고 차례대로 아비와 동침하여 씨앗을 얻게 되는 엄청난 비극이 탄생하고 있음(19:32-36).

(3)   이를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19:33, 35) 술만 마시고 잘못을 저지르게 롯의 이야기는 이상 기술할 필요가 없게 . 따라서 성경상에서 이제는 사라지는 인생이 되고만 것임.

 

16.   남편의 아들이 아니고 아비의 아들을 얻게 딸과 아들의 미래(19:36-38)

(1)   모압과 암몬 족속의 탄생(19:36-38).

(2)   모압과 암몬의 후손까지 보호하시는 넓으신 하나님의 은혜(2: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