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창세기 제17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5. 25. 17:36

창세기 제17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1.    아브람 나이 99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이유(17:1)

 

99세가 된 아브람 앞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십니다(17:1a). 그리고 아브람에게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인생을 살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매사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서 그 뜻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는 창조주께서 자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여 주실 것입니다”(17:1b말씀의 뜻).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아브람이 86세에 서장자 이스마엘을 얻은 후(16:16) 지난 13년 동안 헤브론에서 그 아들을 키우면서 지내온 세월이 하나님 보시기에 별로 마음에 들지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하란에서 불러내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 함족에게 셈족의 여호와신앙을 제대로 전파하라는 것입니다(9:25-26, 7:2-4). 아버지 데라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하는 권리를 아브람이 포기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그 뜻을 따르게 되면 더 큰 복을 주시겠다는 언약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12:1-4).

그런데 아브람은 헤브론 자신의 아성에서 후계체제를 튼튼히 하면서 그만 세상살이에 안주하고자 합니다(15:1-6, 16:16-17:1). 차제에 그 동안의 경과를 다시 한번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고대 족장사회에서 아브람은 나름대로 자수성가(自手成家)했으며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그대로, 아브람은 75세에 아버지 데라의 막대한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포기하고 여호와의 언약을 받아들여서 모험에 찬 인생길을 선택했습니다(12:4-5).

1)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미지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지역의 가뭄을 피하여 물이 풍성한 애굽제국에까지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입니다(12:10-20). 그는 본래 고향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인 갈대아인의 우르입니다. 그곳에서 부유한 족장인 아버지 덕택에 장자인 아브람은 최고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11:26).

2)   그는 그의 학문과 고향의 선진문물을 변방인 가나안의 원주민들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유프라테스 강에서 함족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해온 소위 히브리 사람아브람의 첫번째 사명입니다(14:13).

(2) 둘째로, 셈의 셋째아들인 아르박삿의 후손 가운데 아브람의 집안은 유일신 여호와신앙을 가장 확실하게 파수하고 있는 가문으로 유명합니다(11:10-26). 그 집안의 사람을 특별히 차출하여 서쪽 변방인 가나안 땅으로 파송하신 여호와의 의도는 여호와신앙을 함족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대시대 가장 뛰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미개한 땅 가나안에 전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미션입니다.

(3) 셋째로, 여호와께서는 그 명령에 순종을 한 아브람 가족에게 한가지 보너스를 더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제국을 다녀올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당시 중근동지역에서 제2의 문명권이 애굽제국입니다. 그곳에서 아브람은 현인신 바로와 마주쳤으며 또다른 세상의 문명과 사상을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12:18).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 사래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그 땅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12:17-20, 7:4-5).

(4) 넷째로, 소위 하나님의 방백으로 애굽 땅에 알려진 아브람이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헤브론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13:18).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에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14:13-16). 그의 기반은 아모리 족속들이 지배하고 있는 헤브론 땅에서 공고하게 됩니다.

1)   헤브론의 아성에서 아브람은 자신의 이름을 창대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만족스럽게 여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방 땅에서 ①강력하게 지켜 주심, ②이름을 창대하게 만들어 주심, ③자손을 많이 주심이라는 3가지 복 가운데 자손 번성의 복을 제외하고 모두 이루어진 것으로 아브람이 생각한 것입니다.

2)   그래서 아브람은 가신(家臣) 가운데 가장 충성스럽고 유능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고서 헤브론의 아성에서 노년을 편히 지내고자 생각합니다(15:2-3).

(5) 다섯째, 가나안으로 들어온 지 10년이 지난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아들이 태어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엄청난 땅을 주겠다고 예언을 하십니다(15:4-6). 그 말씀을 아브람이 믿었습니다.

1)   그 결과 그는 86세에 서장자 이스마엘을 얻게 됩니다(16:16). 그리고 너무나 만족을 하면서 99세가 될 때까지 헤브론에서 이스마엘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17:1).

2)   그와 같이 안일하게 노년을 보내고자 하는 아브람 부부를 지켜 보신 여호와께서는 그들 부부에게 약속의 아들을 기적처럼 주실 것이며 이방인의 땅에서 더욱 적극적인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가도록 그의 인생길을 다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2.    완전한 인생을 살겠다고 아브람이 다시금 결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언약을 주겠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가?(17:1-8) 그리고 그 언약에 참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17:9-10)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번성의 언약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브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할 것입니다(17:4). 둘째,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그 뜻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17:5). 셋째, 후손 가운데 여러 왕들이 탄생할 것입니다(17:6).

이상의 내용은 심히 번성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의 번성은 가나안에 국한되고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하나님 신앙을 지키는 후손으로 제한이 되고 있는 개념도 아닙니다. 결국 아브람의 후손 가운데 이방지역에 이방인으로 살게 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브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대대로 승계하는 민족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게 됩니다(17:7). 첫째, 그들이 얻을 땅은 가나안 전체입니다(17:8).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17:7-8). 둘째, 그들 민족은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맹세를 합니다(17:9). 그리고 그 맹세의 증거로서 할례를 행할 것입니다(17:10).

영원히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언약 안에 머무는 것’(Staying in the Covenant)이며 그 육체적인 맹세의 수단이 할례입니다. 그런데 과연 육체적인 맹세만으로 언약의 준수가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오히려 그것은 마치 무지개 언약을 떠올리게 되는 구름 속의 무지개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사실은 무지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무지개를 보고서 노아와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9:14-16).

그렇다면, 사람에게 있어서도 육체적인 표징인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야만 되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되는 그 마음과 결단이 더 소중하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그의 율법서에서 마음에 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10:16).

그와 같이 해석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둘 있습니다;

(1)  첫째로, 아브람에게 주신 엄청난 번성의 복으로 말미암아 많은 민족들이 탄생했으며 그들 대부분이 이방 땅으로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람의 서장자인 이스마엘의 자손들(21:14-21, 25:12-18), 후처 그두라에게서 난 6아들들과 그들의 자손들(25:1-6), 아브람의 손자인 에서와 그 자손들(36:6-8, 10-43), 그들 모두가 다시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맺은 언약 안으로 들어와야만 할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님 신앙을 회복하는 아브람 자손들의 이야기를 욥기가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  둘째로, 아브람의 자손이 아니더라도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살아가고자 하는 민족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방인에게는 육체적인 할례가 아니더라도 아브람의 언약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의 모색이 만민구원을 부르짖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그 방법의 시도는 구약시대에도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시도하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할례의 진정한 의미와 참여 대상자(17:10-14)

 

아브람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17:1a). 그리고 이제부터는 부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감으로써 완전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당부하십니다(17:1b).

그 말씀은 구체적으로 ①첫째, 모든 의사결정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②둘째, 매사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동을 한다면 ③셋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인생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언약을 적용하는 대상의 폭과 길이 그리고 언약의 표징에 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언약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해석에 따라서 유대교의 선민사상에 머무느냐? 아니면 기독교의 만민구원사상으로 발전하느냐?의 판가름이 나기도 합니다.

먼저 그 언약을 적용하는 폭 및 길이와 관련하여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변경합니다. 그 이유는 장차 많은 민족과 왕들이 아브람으로부터 탄생할 것이기에 그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부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과의 언약은 순식간에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보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1)  첫째, 그의 허리에서 많은 민족들이 나타납니다(17:6a). 그들은 가나안 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방세계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여러 왕들이 나타납니다(17:6b).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들만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들, 특히 그 가운데 족장과 왕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자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25:2-4, 16, 36:15-19, 2:1-2).

(3)  셋째, 아브라함의 영권을 계승하는 적통에게는 가나안 땅을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17:8).

(4)  넷째,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헤브론에서의 언약을 적용시키겠다는 선언입니다(17:7, 9, 14).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승계와 관련하여 그 표징으로서 할례제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17:9-14). 그런데 그 할례의 해석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적용의 폭과 길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1)  첫째, 가장 속이 좁게 해석하게 되면, 유대교의 선민사상에 국한이 되고 맙니다(17:8).

(2)  둘째, 포용력이 있게 해석을 하게 되면, 유대인들과 함께 살려고 하는 이방인들을 포함하게 됩니다(17:12-14).

(3)  셋째, 모세의 미래 예언과 관련하여 마음에 할례가 등장합니다(10:16, 30:6).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의 자손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기름진 삶에 취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8:11-20, 29:22-29). 그러므로 제사장의 나라가 망하고 인위적 선민사상과 육체적 선민의 표징인 할례가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마음속으로 깊이 받아들이고 아브라함처럼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소위 마음에 할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모세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30:1-6, 9:26). 그것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모시고 그의 믿음을 승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기독교인의 탄생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2:28-29, 4:16-24).

그 점을 한마디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4-45).

아브라함의 직계와 방계 그리고 이방인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모두 함께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임을 모세가 예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할례와 아브라함의 언약에 대한 가장 장구하면서도 폭이 넓은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할례에 대한 여호와의 직접 언급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는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17:9-12).

다음 3가지 사항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그 적용의 길이가 후손 대대로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적용의 폭은 선민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난지 8일 만에 남자의 가장 중요한 생식기의 포피를 베는 것이 할례입니다. 오늘 날 소위 포경수술이라고 불리는 그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처음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을 하였으므로 마지막 세 번째 사항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필이면 왜 남자의 생식기의 포피를 벰으로써 언약을 명심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일생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아브람과 언약을 99세에 맺으시면서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17:1-5). 그에게는 지금 서장자인 13살짜리 이스마엘이 상속자로 마치 들나귀처럼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16:12, 17:25).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장차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는 자손을 염두에 두고서 할례제도를 긴급하게 신설하시고 계십니다(17:12). 그 뜻은 아무래도 내년 이맘 때에 신앙의 어머니 사라의 몸에서 태어나게 될 적장자 이삭을 염두에 두시고서 새로이 세우시는 언약으로 생각이 됩니다(17:14-19, 18:14).

이삭은 그야말로 태어난 지 정식으로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는 약속의 아들이 됩니다(21:4). 아브라함은 99세에, 이스마엘은 13세에 할례를 받게 되니 그것은 늦은 나이에 겨우 할례제도에 참여하게 되는 모양새인 것입니다(17:24-25).

그렇다면, 이삭과 아브라함과의 관계에서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훗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영생의 하나님을 발견하고서(21:33) 이 땅에서의 삶보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삶을 희구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깨달음을 얻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한가지 시험을 하십니다; “장차 솔로몬 시대가 되면 예루살렘 성전이 자리잡게 되는 모리아 산으로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22:1-2)”.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순종을 합니다(22:3). 과연 무슨 마음으로 아브라함은 영원한 언약을 정식으로 승계하게 되는 유일한 아들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을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마치 아벨처럼 죽더라도 셋처럼 도로 받을 수 있는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11:17-19, 4:25-26, 15:32).

그렇지만 더 깊은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아브라함은 이삭이 자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예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99세의 할아버지가 89세의 할머니와 합방을 하여서 귀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은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특히 아내 사라는 평생을 불임여성으로 지내왔으며 갱년기를 지난 지도 오래된 여인입니다(18:11-12). 그런데 어떻게 노인부부가 회춘을 했으며 평생의 불임이 치료가 된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며 선물입니다.

불가능한 아들을 약속의 아들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삭이 자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주신 아들을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하시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십니다(22:10-12).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을 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제물을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복이 세상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22:13-14).

그 모리아 산의 숫양이 훗날 요단 강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새로운 역사의 무대에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1:29). 그렇다고 하면, 이제 여호와 이레의 개념과 관련하여 할례제도의 깊은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생식의 기관을 사용하여 자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고 있습니다(11:36). 쉽게 설명을 하자면, 사람은 동물이 태어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자신의 형상을 인간에게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이 자식을 낳을 때에 이미 그 속에 하나님께서 하나의 생명을 형상으로 불어넣고 있으므로 그 아들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1:26, 2:7). 결론적으로, 그 사실을 할례의식을 통하여 반드시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따라서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곡하게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육체적인 할례의 해석과 선민사상에 빠져들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0:16, 30:6).

 

4.    아브람과 똑같은 복을 사래에게 주시는 뜻은 무엇인가?(1:27-28, 17:5, 15-16) 그리고 약속의 아들 이삭을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17:17-2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십니다(1:26).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단수가 아닙니다. 복수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남자와 여자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1:27). 그리고 하나님의 복도 인류를 대표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베풀어주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7-28).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도록 만드셨지마는 인간에게는 무엇인가 부족합니다. 그 모습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아담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2:8, 18).

그는 영적인 하나님의 생기를 동산에서 충분히 코를 통하여 호흡하고 있습니다(2:7, 15-17). 그리고 많은 동물을 동무로 사귀고 있습니다(2:19-20). 그러나 완전한 영적인 삶이나 완전한 육체적인 삶으로 채울 수 없는 허전함과 쓸쓸함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조치하면 될까요?

그 해답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2:20-25).

여기서 3가지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첫째, 아담이 정확하게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아내가 필요합니다. 서로 사랑으로 한 몸이 될 수 있는 아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 아내는 갈비뼈 하나가 빠져 있는 아담의 허전함을 완전히 채워줄 수 있는 여자입니다. 셋째, 두 사람이 영육간에 합일을 이루자 드디어 만족스럽게 자립적인 가정생활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부부생활의 모범으로서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2:20-25, 4:1, 25-26),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12:11-20, 17:5-7, 15-16, 18:9-15, 21:6-7),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생활(24:67, 25:21-23)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정에는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또한 동행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이 그들의 가정생활과 자녀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대물림을 생각한다면, 아담과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 등의 족장들은 소위 열국의 아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17:5-7). 또한 하와와 사라 그리고 리브가 등의 아내들은 모두 남편과 대등하게 열국의 어미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7:15-16).

그런데 아브람과 하갈의 합방과 아들 이스마엘의 생산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전혀 없습니다(16:2-3). 그리고 세상에 흘러 넘쳐야만 하는 하나님 신앙의 흐름이라고 하는 복이 처음부터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주인과 씨받이의 결합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임신한 종이 임신하지 못하는 여주인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학대와 도망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굴종만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단지 아브람과 하갈의 결합은 세상적인 복을 얻기 위한 아들의 생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16:4, 6, 9, 16).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적자(嫡子, 본부인의 아들)가 없는 아브라함은 서자(庶子, 첩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아무 탈이 없이 잘 장성하자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합니다(17:18-2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현실적인 생각을 반대하십니다(17:19a).

그 이유는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장차 12두령을 생산하는 등 엄청난 세상적인 성공과 번성의 복을 줄 수는 있지만 그를 영적인 장자로 세울 수는 도저히 없기 때문입니다(17:20-21).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결코 인간의 세상적인 번영이 먼저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하는 자에게 그 일을 부족함이 없이 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세상적인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6:33). 하나님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청지기로 올바로 서는 신앙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입니다(28:18-20).

그와 같은 측면에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서있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부부생활을 통해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날 것입니다(17:19b).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반드시 그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17:17-19, 18:11-14).

그에 따라 기적의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상의 한계를 초월하여 이 세상에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세상사람들에게 기쁨의 웃음을 줄 수 있는 이삭의 탄생입니다(17:19). 바야흐로 늙은 사라의 몸에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21:1-7).

 

5.    하나님의 현신과 올라가심(17:1, 22)

 

창세기 제17장은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17:1). 그 대목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현신과 계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현신을 경험하게 되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를 만난 자는 그 생각이 영적인 것으로 바뀌고 그 인생이 거룩한 삶의 목적을 수행하는 것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계시로서 얻게 된 자는 선지자가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 받게 된 자는 ()과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되기 때문입니다(82:6, 10:34-38).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영이 임재를 하십니다(11:2, 14:16-17, 2:1-4).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에 국한되지만 성령님의 임재와 동행이 있게 됩니다. 그러한 현상을 일컬어서 알기 쉽게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왕상19:16).

 율법국가인 이스라엘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왕이나 제사장의 직분을 얻게 되는 경우에 그 직분을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수 있도록 위탁을 한다는 관념에서 똑같이 기름 부으심을 받는다고 표현하며 실제로 그렇게 행하기도 합니다(28:41, 삼상10:1).

그렇지만 그들이 모두 성령님의 임재와 감동을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 400여년 동안 유대 땅에 선지자가 없었지만 그 사이에도 기름 부음을 받게 되는 의식을 가졌던 하스모니안 왕가의 왕들과 제사장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종의 대관식과 비슷한 것을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과 실제로 하나님의 현신을 만나서 사명을 얻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보면, 여기 본문에서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현신을 만나고 있는 장면은 굉장히 귀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신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17:22).

참고로,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의 쪼임 가운데서 하나님의 현신을 만나게 되는 사람이 사울입니다(9:2-3). 그는 위대한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모시고서 10년 이상 히브리의 사상과 율법을 공부한 뛰어난 랍비입니다. 요컨대, 사울은 히브리 바이블인 구약에 정통한 학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보았을 때에 금방 여호와께서 현신하신 것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질문을 합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9:5a).

만약에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니라는 답변만 흘러나온다면 사울은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사울 앞에 현신하신 분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9:4). 그래서 그 답변이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9:5b)입니다.

이제 사울은 어찌하면 좋습니까?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지극정성으로 섬긴다고 하는 유대교리에 철저하여 그만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시고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있는 자가 바로 자신이 아닙니까?

사울은 자신의 모든 신념체계가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가 그토록 신봉했던 유대교의 교리와 사상에 큰 하자가 있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는 잠시 아라비아 호렙 산에 다녀온 이후 곧 바로 그의 고향 다소에서 칩거생활에 들어갑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서 히브리 바이블을 다시 공부합니다. 그 결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만민구원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하는 하나님으로 축소하고 왜곡해온 유대교리의 잘못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서 유대교가 절대시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과 모세의 율법 그리고 선민의 할례보다는 온 세상을 구원하고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유대교인 사울이 기독교인 바울로 거듭나게 되는 완전한 변화가 오게 됩니다. 마침내 바울은 이방인 사도가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서의 한평생을 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현신을 제대로 만난다고 하는 것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또한 랍비 사울이 사도 바울로 거듭나게 되는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6.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자마자 시행한 제일 첫 번째 사역은 무엇인가?(17:5-6, 23-27)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 아브라함의 의미입니다(17:5). 이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손들이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지금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자신의 후손들이 머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는 그 방법이 바로 할례를 받는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17:14). 따라서 가장 먼저 행한 일이 할례의 실시입니다(17:23-27).

그런데 아브라함의 할례의 시행과 관련하여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뿐만이 아니고 그의 집에서 출생을 한 자 또는 이방사람에게서 돈으로 사온 종까지 모든 남자는 할례에 참여를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7:12-14).

따라서 아브라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뜻 그대로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17:23). 그 사실이 중요하므로 재차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17:27).

이방인 가운데 아브라함이 돈으로 사온 자가 모두 할례를 받고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하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 원칙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성도는 그리스도가 값을 치르고 산 목숨이기에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아브라함이 돈을 주고 산 이방인 종이 아브라함과 함께 할례를 받듯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신 값을 치르고 산 그리스도의 종도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 참여하고 또한 부활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한가지 더 말씀을 드리자면, 할례는 아브라함의 혈통에 한정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집으로 한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뿌린 집과 동일한 법칙입니다(12:13). 그 집안에 누가 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그 집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마치 도피성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고의성만 없다면 누구나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그 도피성에서 목숨을 구원 받을 수가 있습니다(19:4-10).

누구나 도피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선민들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훗날 그 개념을 예수님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에게 피신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1:28-30, 6:37, 8:10-11).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려고 오신 예수님이시기에 누구나 그리스도에게로 피신을 할 수가 있습니다(9:13). 그것이 새로운 도피성의 은혜입니다. 그 점을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진작에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36:6).

그러므로 그와 같은 복음적인 은혜가 사실은 애초 할례와 도피성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창세기 강의 골자 19(17:1-2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5 12 17()

 

1.      99세가 때까지 아브람이 헤브론에서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17:1a)

(1)   헤브론의 호족으로서 318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던 아브람은(14:14) 메소포타미아와의 전쟁에서 일약 구국의 영웅이 되어 가나안에서 존경을 받는 성주로서 세상적인 성공 없이 누리고 있음.

(2)   더구나 13 전에 서장자 이스마엘까지 얻게 되어 이제는 혈통적으로 후계체제가 튼튼해져서 24 동안의 가나안 생활이 인간적으로 만족함으로 느껴지고 있음(17:18,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2.      전능한 하나님이 전적으로 도와줄 있는 완전한 의사결정과 행동은 무엇인가?(17:1b)

(1)   하나님 앞에서 의사결정 하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임(17:1)

(2)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현신하셔서 아브람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임(17:1). 하나님의 말씀이(15:1) 환상 중에 현신한 것과 다른 의미이며 강력한 말씀인 것임.

(3)   말씀(“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사결정을 하여 완전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라”) 비추어보면, 사래가 자신의 몸종 애굽 여인 하갈을 남편에게 씨받이 첩으로 주어 아들을 생산한 것은 그들 부부가 인간적인 방법에 사로잡힌 것이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결론은 아닌 있음(16:1-3).

(4)   그와 같은 인간적인 방법론을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여 하나님 뜻을 정확하게 이루어나가는 완전한 인생,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임. 좋은 예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심(26:39, 42, 52).

 

3.      완전한 의사결정과 하나님의 언약이 서로 직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17:2)

(1)   완전한 의사결정은 하나님과 기도로써 상의하여 결정한 것임. 그것은 쌍방합의의 결과 탄생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있는 언약으로 있음.

(2)   하나님은 자신이 합의한 언약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심. 그것이 언약에 신실하신 헤세드하나님의 특징임.

(3)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써 하나님과 상의하여 뜻을 따라 합의된 사항을 그대로 준수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열매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임.

1)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한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므로 언약의 발효가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확실한 것임.

2)      다만 문제는 언약의 상대방인 사람이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것임.

 

4.       12:2’ 절과 17:4’ 절의 가장 차이점은 무엇인가?

(1)   처음 약속은 하나의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것임(12:2).

(2)   나중의 언약은 여러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것임(17:4). 그래서 아브람의 이름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시고 있음(17:5).

(3)   그것은 축복인 것임. 따라서 축복을 받아서 누리자면 결심과 희생을 무릅써야만 하는 것임.

(4)   구체적으로, 아브람이 20 이상 쌓은 헤브론에서의 성공과 성취를 뒤로 하고 늙은 나이에 다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처 없는 선교의 길을 떠나야만 하는 것임.

 

5.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이름 아브라함 주신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인가?(17:4-7, 16)

(1)   여러 민족의 조상이 있도록 아브라함의 슬하에서 여러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임(17:5-6).

(2)   당장 안방마님 사래로부터 적장자 이삭이 태어날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음(17:16).

(3)   나중에는 후처 그두라로부터 6아들을 얻어서 아브라함이 죽기 전에 동쪽 땅으로 분가를 시켜주게 (25:1-6).

 

6.      영원한 언약 영원한 기업 언급할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17:7-9)

(1)   첫째, 영생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언약과 기업이 주어지고 있다는 뜻임.

1)      결코 사람 안에서 사람에 의해서 언약과 기업이 마련되거나 제공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임. , ‘by the Lord, of the Lord, for the Lord이어야 영원한 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임.

2)      언약의 상대방인 사람은 그저 주인이신 하나님의 언약을 실현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할 있었다는 것만으로 생의 보람을 느끼며 엄청나게 기뻐할 있어야만 하는 것임(3:29, 만민구원의 들러리가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친다고 하는 세례 요한 증언).

(2)   둘째, 유한한 수명을 지니고 있는 인간의 입장을 감안하여, 하나님께서 대대로 언약의 아들을 생산하게 하여 언약의 상대방으로 삼아주신다는 뜻임.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고 있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임.

 

7.      하나님과의 언약서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가?(17:8-11)

(1)   언약서(covenant) 도장을 찍은 행위가 소위 할례’(割禮)(shall be circumcised, 17:11).

(2)   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음;

1)      첫째, 아브라함의 후손을 언약의 상대방으로 삼아 대대로 언약을 이어가게 하겠다는 것임(17:7a).

2)      후손에게도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임(17:7b, 8b).

3)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것임(17:8a).

 

8.       이방사람을 할례에 참여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17:12-14)

(1)   아브라함은 고향이 메소포타미아 우르 지역이며 그의 친척은 유프라테스 유역에 살고 있음(11:31, 7:2-3).

(2)   아브라함은 신분이 히브리인임(14:13). 메소포타미아에서 나고 자랐으나 애굽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이방인 함족의 가나안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떠돌이임.

(3)   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방세계에 들어와서 창조주 하나님신앙과 메소포타미아의 선진문물을 전하고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임(12:1-4, 20:7).

1)      그러므로 선지자 아브라함이 가는 길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복이 넘치게 되어 있음(12:1-4).

2)      복이 여기서는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안에서 수가 있다”(staying in the Lord’s covenant) 것임.

3)      언약의 내용은 ①자손의 번성, ②삶의 터전의 제공, ③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심, ④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언약의 이행”(17:6-10) 등임.

4)      창조주가 베푸시는 은덕이므로 모든 피조물에게 공평하게 적용이 되는 것임.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the righteousness of God) 개념임.

5)      여기서는 당연히 아브라함과 깊은 인연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집안의 이방인 종까지 포함이 되고 있는 것임. 예컨대, 318명의 가병과 대장인 다메섹 엘리에셀 등이 해당됨(14:14, 15:2).

(4)   동일한 예가 출애굽기에서도 나타나고 있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애굽인들이(9:20a) 창조주의 예언의 말씀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재앙이 내린다고 하는 경고가 있는 경우에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똑같이 행동을 하거나(9:20b) 히브리인의 집으로 피신을 하고 있는 것임(12:23, 38).

2)      그것이 그들의 가축을 살리며 나아가서 자신들도 생명살림의 은혜 유월절의 은혜를 함께 얻는 유일한 방법임.

 

9.      믿는 자의 집에서 태어난 또는 돈으로 (17:12, 13, 23)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   믿는 자의 집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복을 나면서부터 받고 있는 자임. 왜냐하면, 믿음의 조상을 가지고서 태어나고 있기 때문임.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하나님신앙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축복인 것임.

(2)   돈으로 훗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고 삯으로 생명인 것임.

(3)   그러므로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므로 남은 평생을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임(28:18-20, 1:8).

 

10.   어째서 남자에게만 할례의 의무가 부과되고 있는가?(17:10, 12, 14)

(1)   가부장 족장사회임. 모든 집안의 일에 대해서는 가장이나 족장인 남자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음.

(2)   에덴동산에서부터 엿볼 있는 하나님의 질서임.

1)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타나고 있음(2:21-22). 아담의 갈비뼈이지 결코 하와의 갈비뼈 하나로 아담을 만든 것이 아님.

2)      따라서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3:16) 판결이 나타나고 있는 것임.

3)      하와 다음에 아담의 순서로 타락을 하였으나 하나님은 결코 하와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계심(3:17, “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리라”).

(3)   혈통과 가문을 이어가는 씨는 남자에게서 비롯되고 있으며 약속의 아들로 계승이 되고 있는 것임.

1)      예를 들면, ①아브람의 몸에서 (15:4), ②씨받이 하갈(16:2), ③아브라함이 상속자로 생각하는 서장자 이스마엘(17:18), ④새로운 상속자로서 언약의 상대방이며 약속의 아들인 적장자 이삭의 탄생(17:19) 등이 언급되고 있음.

2)      그러므로 씨가 나타나는 근원인 뿌리 가장 민감한 부위의 표피를 일부 베어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써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임.

3)      만약 신실하게 지키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멸문지화(滅門之禍) 당해도 좋다고 하는 두려운 표시인 것임(19:7-9, 24:3-8,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두려운 피의 언약식인 것임).

 

11.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게 이유는 무엇인가?(17:12, 34:25)

(1)   할례는 오늘날의 포경수술과 같은 것이므로 고통이 일주일간 지속이 . 고통의 절정은 삼일 째임(34:25)

(2)   따라서 훗날 고통을 기억할 없도록 갓난아기일 시술하는 것임(17:12).

(3)   성경상 처음으로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자가 약속의 아들인 이삭임(21:4).

 

12.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사래를 열국의 어머니 사라 삼는다는 말씀을 아브라함 앞에서 선언하고 계시는가?(17:15-16)

(1)   에덴동산에서부터 엿볼 있는 가부장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는 변함이 없음.

(2)   언약의 상대방으로 여자가 아니라 믿음의 장자 약속의 아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여 세우신다는 법칙에도 변함이 없음.

(3)   그러나 축복에 있어서는 남편과 아내가 동등함.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남자와 여자에게 공평하게 주고 계시기 때문임(1:27). 따라서 사래를 열국의 어머니 사라 아브라함과 똑같이 세워주시는 것임(17:15-16).

 

13.   100 남자와 90 여자가 아들을 생산할 것이라는 예언은 어째서 믿기 힘든 것인가?(17:17)

(1)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이 110세에 애굽에서 향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때에(50:22) 고대사회에 있어서도 남자나이 100, 여자나이 90세는 완전 노인인 것임. 그러므로 자녀생산이 불가능한 연령임.

(2)   특히 사라는 평생 자녀를 생산해본 적이 없는 불임여성이며(11:30) 이미 폐경이 된지도 오래인 할머니인 것임(18:11).

(3)   그와 같은 인간사회의 상식과 생물학적인 지식에 기초하여 아브라함 부부가 믿지를 못하고 있는 것임.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있는 처사임.

1)      자녀의 생산이 오로지 사람들의 정력에 들어 있다고 하는 교만임.

2)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고 자녀생산이 가능하도록 역사를 해주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불신앙인 것임.

3)      결론은 자녀란 사람의 자녀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있는 경외인 것임(22:12, 약속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고 있는 아브라함의 신앙, 13:12, 태에서 것이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

 

14.   서장자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내년에 태어날 이삭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계시는 하나님과의 입장의 차이는 무엇인가?(17:18-19, 21)

(1)   서장자 이스마엘이 자신의 혈통임을 강조하고 있는 아브라함임(17:18).

(2)   그러나 믿음의 환경과 뿌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심. 애굽 여인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이방인 여인 하갈처럼 마음 중심에 현세적인 성공과 번영을 소원하고 있는 자임.

1)      가출한 하갈이 그러한 성격의 세상적인 복을 많이 주겠다고 하는 하나님 사자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려 주인 사라에게 돌아가서 복종한 것임(16:9-13).

2)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혈통인 이스마엘에게 세상적인 형통과 번성의 복을 많이 주겠다고 하는 약속만을 예언으로 주시고 있음(17:20).

3)      그것은 약속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는 영적인 축복이 아닌 것임.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스마엘은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음.

(3)   하나님은 혈통과 인간적인 후사의 결정이 아니고 부모의 신앙과 당사자의 신앙의 중심을 먼저 보시고서 약속의 아들을 정하시겠다고 선언하심(17:19).

1)      사상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으로 요한복음에 기록이 되고 있음(1:12-13).

2)      그리고 사도 바울이 사라의 아들과 하갈의 아들의 차이로 다음을 설명하고 있음; “영생의 하나님을 바라는 그리스도의 신앙이냐? 아니면, 현세적인 축복을 소원하는 율법중심의 신앙이냐?”(4:22-31).

 

15.   이스마엘에게 축복이 임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는 어째서 영적인 장자가 되지를 못하고 있는가?(17:19-20)

(1)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태어난 번째 아들임이 분명함(16:16).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쳐진 장자임(13:12).

1)      그러나 어머니가 이방여인 하갈이기 때문에 약속의 아들이 되지를 못하고 있음(17:19).

2)      대신에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장자이므로 세상적인 축복을 충분히 받게 .

(2)   이스마엘이 영적인 장자가 되지 못하는 깊은 이유

1)    모친인 애굽 여인 하갈이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현세적인 복에 만족하고 있음(16:9-15).

2)    어머니 하갈의 신앙을 이스마엘이 여과 없이 그대로 물려받고 있기 때문임(21:13, 20-21, 25:16-17).

(3)   부모의 신앙을 모두 보시고 당사자의 선택까지를 전부 보시고 영적인 장자를 결정하시는 신중하신 하나님.

1)      하나님은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 열국의 어머니 사라 믿음의 조상으로 동일하게 보고 계심(17:5, 15-16).

2)      하나님신앙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로부터 전수를 받게 되는 것임.

3)      특히 유년기에는 어머니의 신앙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

4)      예를 들면, ①아들 이삭을 낳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라(21:6-7), 4 유다를 낳고서 드디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레아(29:35), ③모세를 낳고서 그의 유모가 되어 하나님신앙을 세워주는 요게벳(2:1, 6:20, 11:23-26), ④아들을 낳고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들 사무엘의 일생을 하나님께 바치는 한나(삼상1:28), ⑤나사렛 예수를 잉태하고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리아(1:46-55) 등의 모습을 성경에서 두드러지게 있는 것임.

 

16.   다음 세대 언약의 상대방으로 이삭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하나님은 어디로 가시고 계시는가?(17:21-22)

(1)   올라가셨더라”(17:22) 표현하고 있음.

(2)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잠시 내려오셨기 때문에 보좌가 있는 그곳으로 다시 올라가시는 것임(3:13, 14:1-3).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현신(epiphany of God)임을 은연중에 말해주고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음.

(3)   참고로, ‘하나님 말씀의 현신’(the epiphany of the Word of God)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음(15:1). 훗날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4).

 

17.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99세의 아브라함과 13세의 이스마엘이 이방인들과 더불어 처음으로 할례를 받은 사실을 모세가 어째서 대서특필하고 있는가?(17:23-27)

(1)   할례 받은 나이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새로 태어난 때만큼 의미가 크기 때문임. 일종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남 같은 의미임(19:5-9, 24:3-8).

(2)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며 언약 속에 머물겠다고 하는 약속을 일종의 언약식으로 가졌다는 표시인 것임.

(3)   따라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떠나게 되면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를 해야만 하는 것임.

(4)   특히 아브라함은 99세의 노인의 나이에, 그리고 이스마엘은 13 어른의 나이에 할례를 받고 그러한 언약을 것이므로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임. , 언약을 떠나게 되면 나이가 어리다고 변명조차 못하고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