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창세기 제15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5. 24. 13:40

창세기 제15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15:1a)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 첫머리에서 하나님의 말씀’(Logos)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로고스는 창조주의 영광에 해당하는(1:1-4) ‘독생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1:14). 그리고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신 분이 이 땅에 구세주로 오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3:16).

요컨대, 그것이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이라는 설명입니다(1:14, 3:16-17). 그런데 하나님 말씀의 주관자로서의 독생자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기 이전에도 이미 이 세상에 여러 번 왔습니다; “그가 현신하여 환상 가운데 또는 생시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서 전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성경에 여러 차례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10:16-21, 12:7-13, 11:27, 10:22, 1:4-5, 9-11).

그 구체적인 사례가 본문 창세기 제15장에서 다음과 같이 2차례나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After thi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15:1a),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15:4).

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방입니다(15:3-4). 더구나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며 인칭대명사를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모세가 본문 창세기 제15장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He took him outside and said, ‘Look up at the heavens and count the stars, if you deed you can count them’. Then he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15:5). 요컨대, 본문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실체를 새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2.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b)

 

아버지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의 주관자이신 독생자가 반드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을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1:26-27).

좀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본체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이 세상에 현신하실 때의 모습 그대로 창조가 되었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람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18:1-5). 하나님을 보좌하고 있는 천사들도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람이 대접하고 있는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18:6-8).

참고로, 독생자의 현신에 대해서는 인자(人子, son of man)와 같은 이라고 다니엘이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10:16). 같은 맥락에서, 성육신하신 독생자께서도 스스로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51, 3:13-14).

비록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이 갈무리가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를 대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의 생사여탈권을 뛰어 넘어서 영원한 생명과 죽음까지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감히 함부로 입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떨리고 두려울 뿐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15:1b) 는 말씀이 가장 앞서고 있습니다.

같은 뜻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38:3),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등이 그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방패가 되시고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는 사실이 말씀의 계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5:1c). 그 말씀은 진작에 주신 언약을 그대로 성취시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기존의 언약을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방패 해당하는 것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는 약속입니다(12:3a).

(2)  둘째, 지극히 큰 상급에 해당하는 것은 자손의 번성과 아브람의 이름의 창대해짐 그리고 가는 곳마다 이방인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것 등입니다(12:2, 3b).

그렇다면, 왜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람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이 일부 실현된 지금의 상황에 아브람이 만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의 아버지 데라처럼 현실에 만족하고서 헤브론에서 안주를 하고 있습니다(11:31-32).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한 것은(12:1) 하란 뿐만 아니라 데라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아브람이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에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크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해보라는 요청입니다.

결론적으로, 피조물에 불과한 아브람, 특히 하나님의 종인 아브람이 그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도 아니하고서 함부로 하나님의 예언과 언약에 대해서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고서 실현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얼마 동안이나 헤브론 땅에 안주를 하고서 신앙적으로 지체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브람이 독자적인 믿음의 행보에 나서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출발할 때에 이미 하나님의 복이 예언으로 주어졌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 가운데 일부가 실현이 되어서 지금 아브람은 가나안 남부지역 헤브론 땅에서 호족의 하나로 자신의 아성을 구축하고서 잘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위의 말씀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임하고 나자 사래가 자신의 몸종 하갈을 씨받이로 아브람에게 줍니다.

그 때가 구체적으로,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10년후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16:3). 그러므로 헤브론 자신의 성에서 아브람이 10년 가까이 안주하여 잘 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10년 이상 한자리에 머물러서 안주하고 있는 것을 좌시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언약을 성취할 수 있도록 계속 전진하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신앙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삼으시고 천국에서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21:7).

 

3.    가신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고서 헤브론의 아성에 안주하려는 아브람의 문제점 2가지(15:2-3)

 

아브람의 첫 번째 문제점은 데라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라는 북부 시리아에서 좋은 땅을 발견하고서 그 땅을 개발하는데 여생을 바칩니다(11:31-32). 남하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야만 하는데 도중에서 하차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후보에서 탈락을 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아브람이 이제 동일한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계속 가야만 하는데(12:1) 헤브론에서 그만 머물고 있습니다. 가나안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었더니(12:2) 그는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하고자 하시는데 아브람은 그러하지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애초에 아브람에게 준 언약과 장차 그에게 줄 복의 내용에 대하여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12:2-3, 13:14-17, 15:4-7, 18-21).

아브람의 두 번째 문제점은 현실적인 장애를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크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15:3, 17:17). 그래서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고 매어 달리는 것보다는 세상적으로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손의 번성과 큰 민족을 이루는 복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아브람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신(家臣) 중에 가장 충실하고 젊은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양자로 맞아들이고자 합니다. 장차 그에게 자신의 성채를 상속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하게 하고자 합니다(15:2-3).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에 절대적으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의 능력으로 그것을 극복하십니다(18:14).

그 점을 사람들이 정확하게 깨닫고서 창조주 하나님과의 언약을 믿고 실천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신실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쉽게 말하자면,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주인의 뜻을 끝까지 따라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종의 법도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아브람의 인생을 끝까지 인도하여 그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모두 이루는 것입니다(15:13-21). 참고로, 그 언약은 이 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세적인 것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유대교의 관념인데 그것이 심각한 해석의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 언약은 부활과 영생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새로운 언약의 해석의 방법을 히브리서의 저자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3-16),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11:25-26).

(2)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믿음의 인생의 결말에 대하여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2-4),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니,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6-7).

 

4.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미 주신 3가지 언약은 무엇이며 여기서 왜 그 첫 번째 예언을 구체화시키고 있는가?(12:1-4, 15:4-5)

 

아브람은 아비 데라와 함께 하란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11:31). 애초에 아버지 데라가 족장으로서 장자인 자신과 장손인 롯의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갈대아 인의 우르 땅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족장 데라는 그만 북부 시리아에서 개척하기에 좋은 땅을 발견하고서 그곳에 멈춘 것입니다.

이재에 밝은 데라가 그 지역을 원주민으로부터 싼 값에 사들여서 성읍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도시의 이름을 고향에서 자기보다 일찍 죽은 막내 아들 하란의 이름으로 명명하고서 계속 그 땅의 부가가치를 높여가기에 정신이 없습니다(11:28).    

여호와께서 데라에게 초심을 회복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가 요지부동입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하란에 머물고 마는 부친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엄청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아브람이 아비 데라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계속 인생길을 가게 되면첫째, 나이 75세에 아직 자식이 없는 아브람에게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 이방인들의 땅에서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하게 만들어 주고 앞으로 강력하게 보호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가 가는 곳마다 여러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넘쳐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12:1-3).

요컨대, 첫째는 자손 번성의 복입니다. 둘째는 창대함과 강력한 보호하심의 약속입니다. 셋째는 하나님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④나중에 한가지 복을 더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그가 보는 땅을 모두 자손들에게 주고 그가 밟는 땅을 모두 그 자신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13:14-17).

아브람은 가나안의 남부 헤브론 땅에서 ()호족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13:18, 14:13). 메소포타미아의 침략군을 격퇴시킨 구국의 영웅이 된 것입니다(14:14-15). 그리고 그들에게 약탈을 당했던 사람과 재물을 모두 되찾아 왔습니다(14:16).

그 때부터 아브람은 가나안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창대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복이 가나안 땅에 흘러 넘친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을 주지 아니하셨지만 아브람은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실현이 가능한 예언은 모두 성취가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충성심이 강하고 젊은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서 장래에 헤브론의 기업을 물려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15:2-3). 아브람의 처지와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합리적이고 온당한 판단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달랐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람의 생각과 이해의 한계를 엄청나게 초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 축복의 내용을 구체화시키고 계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축복의 폭과 길이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아브라함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17:5).

그러므로 양아들에게 헤브론의 아성 정도를 상속시키는데 머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의 허리에서 수많은 자손과 왕들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이 아닌 많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대속의 어린 양을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고대사회 전체에 전해야만 하는 자가 아브람입니다(21:33, 22:14). 그러한 맥락에서 말하자면, ‘아브람이라는 이름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그는 아직 하나님 예언의 문턱에도 제대로 들어서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성취에 이미 만족을 하고 있는 아브람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75세의 아브람을 하란에서 불러내시듯이 이제 85세의 그를 헤브론에서 불러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16:3). 아브람은 장차 아브라함의 인생을 175세 향년을 맞이할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충실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25:7).

지금 헤브론에서 아브람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 언약의 첫 번째 내용이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신 가운데 엘리에셀을 양아들로 삼고서 기업을 상속시킬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엄청난 예언의 말씀부터 선포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4-5).

 

5.    그 예언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람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15:6)

 

엘리야 선지자는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큰 비가 내릴 것을 알고서 아합 왕에게 빨리 피하라고 미리 말하고 있습니다(왕상18:44). 엘리야의 예언 그대로 무려 3년반이나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큰 비가 내립니다(왕상17:1, 7, 18:1, 45, 5:17).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아니했기에 큰 능력을 얻어서 말보다도 더 빨리 달려나가고 있습니다(왕상18:46). 그와 같은 사실을 장로 야고보는 엘리야에게 임한 기도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16-18).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기도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5:6). 그것이 아브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본문을 좀더 조심스럽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가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라고 하는 특이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풀이를 해보자면, 아브람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파생되어 이 세상에 전해져 오고 있는 말씀이나 예언 등 계시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계시의 원천이신 창조주 하나님 자체를 믿고 있습니다.

그 점을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무덤에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에게 부탁하고서 운명을 했습니다(23:46).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만민구원의 새 시대를 창조하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복음도 모두 믿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그 말씀과 복음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 계신다고 한다면 성도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휴지조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여호와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30:2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과 지금도 역사하고 있는 그 분의 창조의 능력 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계속 아브람 자신의 인생을 언약 그대로 리모델링하시겠다고 말씀하시기에 아브람은 의심이 없이 그저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믿음이며 행위였다는 것입니다(15:6).

 

6.    보이는 땅과 보이지 아니하고 있는 땅에 대한 개념

 

인간은 보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영으로서 존재하고 계십니다(1:2, 4:24). 인간이 인식하면서 살고 있는 소위 보이는 세상’(visible world)은 항상 지금 여기’(now here)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시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간의 차원이나 공간의 차원이 달라져버리면 모든 것들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시공간이란 것은 그 인식의 주체가 되고 있는 사람이 발걸음을 옮김에 따라서 자꾸만 기억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그 모든 기억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invisible world)로 이동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이는 현재의 공간을 떠나서 보이지 아니하는 차원으로 이동해오고 있는 모든 과거의 자료와 사람들의 기억을 차곡차곡 모으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아직 보이는 세상에 도래하지도 아니하고 있는 미래의 사건도 관장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과거와 미래, 그것도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를 한꺼번에 통찰하고 계신 분이 바로 창조주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에서 나와 그리고 우리들과 마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마주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아브람이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그 땅이 장차 누구의 것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사람이 보고 있는 땅보다는 아직 보이지 아니하고 있는 미래의 땅이 누구의 소유가 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7.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미 주신 네 번째의 언약은 무엇이며 그것을 여기서 왜 다시 상기시키고 있는가?(12:7, 15:7) 그리고 구체적으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는 말씀과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15:7)는 말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창세기 제12장 제7절은 가나안 땅의 중심인 세겜 성에 들어온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마주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하나님은 지금 아브람이 보고 있는 가나안 땅을 미래에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이미 언약하고 있습니다(12:7a).

그 약속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당장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12:7b). 그 언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창조주 하나님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벧엘의 동쪽 산에서 무사히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얼른 그 언약에 찬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12:8). 이제 가나안 땅 전체는 미래에 아브람 자손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15장 제7절에 오게 되면 그 언약에 변화가 생깁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15:7).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당장 아브람 자신의 소유로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명백하게 미래의 자손들 소유가 아닙니다. 당장 아브람의 소유로 확정하고자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땅을 아브람의 소유지로 먼저 결정을 해놓고서 때가 되면 그의 후손에게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뜻을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그와 같은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미래의 소유권을 결정하는 사건이 지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십 년 동안 아브람이 보여주고 있는 헤브론에서의 현실안주가 만약 계속이 된다면 미래의 가나안 땅의 차지는 물 건너가버릴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브람이 현실안주를 청산하고 떨치고 일어나서 믿음의 행진을 계속한다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장 아브람의 소유로 확정을 지을 것이며 그 언약은 다시는 변개함이 없을 것이라는 확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15:7절에 대한 의미적 해석).

 

8.    그 차이점을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아브람의 노력은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가?(15:8-11)

 

가나안 땅의 소유권이 아브람 당대에 확정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약속의 말씀이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15:7)는 표현 속에 숨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아브람이 알아듣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언약 내용의 변경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시행세칙에 이르기까지 조기에 확정을 짓고자 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15:8).

그 방법이 여기서는 특별한 제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5:9-11). 그 제사는 효력을 발휘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잠 속에서 현신을 하셔서 아주 구체적인 예언을 언약의 내용으로 확정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15:12-21).

먼저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제사의 방법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5가지 종류의 제물을 한꺼번에 바치고 있습니다. 3년된 암소와 암염소 그리고 숫양입니다. 다음에는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입니다. 비싼 제물부터 값이 싼 제물의 순서로 열거가 되고 있습니다(15:9).

1)   특히 3년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때가 가축의 나이로는 성년이 되며 한창 값이 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비싼 암컷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다만 양의 경우에는 수컷입니다. 그것은 모리아 산에서의 여호와 이레숫양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22:13).

2)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는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라는 값이 싼 제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거부(巨富, 거물급인 부자)인지라 하나씩 바쳐도 되는 제물을 아예 한꺼번에 모두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로, 가축인 제물은 그 중간을 쪼개고 있습니다. 작은 새는 쪼개지 아니하지만 큰 가축은 전부 쪼개고 있습니다(15:10). 사람만한 크기의 양이나 염소입니다. 그보다 덩치가 더 큰 소입니다. 그것들이 중간이 쪼개어져서 제단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본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마치 자신이 쪼개어져서 그 제단 위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끔찍합니다.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 제물처럼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는 제사입니다. 이제부터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평생동안 언약이 이루어지는 그 때까지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는 맹세가 끔찍한 제사로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15:8-10).

2)   그것은 언약에 충실하겠다는 피의 맹세입니다. 제물이 그 사명을 다하듯이 아브람이 하나님의 제단에 자신의 인생의 전부를 바친다는 뜻입니다.

제물을 노리고 있는 솔개를 쫓다가 아브람이 지쳐서 잠이 듭니다(15:11-12a). 그 때 큰 흑암과 두려움이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그의 꿈 속에서 들려옵니다(15:12b-13). 그 음성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이 들어 있습니다(15:13-16). 말씀이 끝나자 하나님의 불꽃이 제물을 태우면서 지나갑니다(15:17). 제물을 태움으로써 계약이 성립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9.    약속의 땅은 언제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인가?(15:12-16)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을 지내다가 그곳을 탈출하게 되면 그 때가서야 약속의 땅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15:13-16).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15:8)라는 아브람의 질문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풀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가나안의 땅이 지금 아브람의 소유로 확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땅을 아브람이 당장 차지하고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땅에 대한 지상권과 점유권은 현실적으로 엄연하게 가나안 원주민들이 행사하고 있습니다.

(2)  둘째로,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체결이 되는 가나안 땅의 소유권이전(所有權移轉)에 관한 계약은 언제 어떻게 발효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조상인 아브람의 소유권에 의거하여 그의 자손들이 그 땅을 정식으로 차지하게 되는 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1)   구체적으로 원주민, 특히 가나안 땅의 지배 족속인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관용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그때입니다(15:16). 죄악이 가득 차게 되면 하나님께서 원주민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시게 됩니다(9:4).

2)   그리고 그 땅을 강대국의 노예상태에서 4대만에 벗어나게 된 아브람의 후손들에게 인계하게 되는 것입니다(9:5, 6:20-21). 그러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무력이 막강하여서 가나안의 원주민을 치고 그 땅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원주민들의 우상문화를 쳐부수고 그들을 쫓아내시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편승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이방 강대국의 지배를 받으며 400년 동안이나 살게 되는 아브람의 자손들은 어떻게 그 오랜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하나님의 강력한 징계의 역사가 그 땅에 임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서 노예해방이 있게 될 것임을 아브람에게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4). 그 예언이 실제로 역사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이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의 내용입니다.

(4)  넷째로, 아브람은 가나안 땅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을 영적인 눈으로 보는 데에 만족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로 하나님께서 등기해주신 그 땅이 훗날 그의 자손들에게 확실하게 상속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한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아니하고 평생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향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15:6, 15, 25:7-8).

1)   구체적으로, 그가 헷 족속에게서 은 400세겔을 주고 산 바로 그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가 됩니다(23:16-20). 그가 이미 장사를 지낸 아내 사라의 시신 옆에 그 자신도 안장이 될 것입니다(25:9-10).

2)   그곳에서 그는 모세처럼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메시아를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11:25-26). 그와 같은 사실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3)   그 점을 예수님이 더 정확하게 유대인들과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5)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땅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부활과 천성에서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시민권을 주시고 있습니다(5:29, 14:3, 3:20).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는 날 아브람은 막벨라 굴에서 부활하여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19:25-27). 그것이 가장 큰 소망이며 즐거움이라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8:56).

 

10.  여기서 약속의 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무엇인가?(15:17-21) 그것은 이미 주신 대략적인 언급과(13:14-15) 어떻게 관련이 되고 있는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화로에서 횃불이 나타납니다(15:17, 6:6-7). 그것이 아브람의 제물을 제단에서 살라 버림으로써 제사가 열납이 됩니다. 이제 가나안 땅은 아브람의 소유로 확정이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15:18).

다만, 언제 그 소유권에 의거하여 그의 후손들에게 점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느냐?의 문제만이 남게 됩니다(15:16). 그런데 계약서에는 반드시 물권의 대상이 되는 땅의 표시가 기입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점을 15:18-21절에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법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의 사이에 있는 중동의 땅 전부입니다.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5:18)라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지역과 나일 강의 동쪽지역 모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1)    그와 같은 지리적인 개념이 먼저 대략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은 창세기 제13장입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명령하십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 사방을 두루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보이는 땅 전부를 아브람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13:14-15).

2)    여기서 첫째로, 아브람의 육신의 눈의 능력으로 미루어 본다면, 그 지역은 사울 왕이 차지하게 되는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 북쪽 에서부터 남쪽 가데스에 이르는 요단 강 서편 땅입니다.

3)    그러나 둘째로, 아브람이 직접 목격하고 그의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는 땅의 크기는 그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아브람이 고향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애굽에 이르기까지 그가 견문한 땅의 크기는 중근동 전부입니다(11:31-12:10). 그 가운데, 두 패권국의 직접 통치지역을 제외하더라도 유프라테스 강과 나일 강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광대한 땅입니다.

4)    그러므로 이왕이면 좁은 땅 개념인 전자보다는 광대한 땅 후자를 얻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창세기 특히 제15장 제18절에서 후자의 개념을 구체화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훗날의 역사 가운데 그 넓은 땅을 전부 차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십니다; “다윗 왕을 통해서 그 땅 모두를 차지하게 하고서 중동지역의 패권국가 이스라엘 제국을 성립시키시는 것입니다”(사무엘하 제8장과 제10).

(2)  둘째로, 가나안 땅의 원주민 10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전부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15:19-21).

1)   여기서 겐 족속은 가나안 남부지역에 살던 족속입니다(1:16). 그니스 족속은 헤브론 근처에 살던 족속으로 보입니다(1:13). 헷 족속은 소아시아에서 발흥하여 가나안 남부까지 지배를 했던 족속입니다(23:2-3).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은 세겜 지역과 벧엘 지역 사이에서 목축을 했습니다(13:7, 34:30).

2)   르바 족속은 갈릴리 동북 지역에서 살았습니다(14:5). 아모리 족속은 한 때 헤브론을 중심으로 하여 가나안 전체와 넓은 아람 지역에서 엄청난 패권을 행사했습니다(14:13). 당시 아브람이 헤브론에서 아모리 호족들과 친선을 맺고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   그렇지만, 아브람이 가나안 남부지역의 흉년을 피하여 수년 동안 블레셋 땅에서 기거하고 있는 사이에 소아시아의 헷 족속이 남하하여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전부 차지한 것으로 보입니다(23:2-3). 이른 바 패권의 이동입니다.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의 원주민입니다(1:21, 삼하5:6).

4)   이상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의 땅이라고 표기하여도 충분한 것을 구태여 기타 족속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세밀하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야기될 수 있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등기서류를 꾸미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땅에 대한 소유욕이 대단한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창세기 강의 골자 17(15:1-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5 12 3()

 

1.      14장의 내용에 의하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어떤 약속의 성취를 먼저 누리고 있는가?(12:2-3, 14:13, 16)

(1)   아브람에게 주신 4 언약(12:2-3)

1)      자손의 번성

2)      아브람의 창대함

3)      확실한 보호하심

4)      만민에게 복의 통로가

(2)   헤브론에서 성취가 되고 있는 2언약

1)      아브람의 창대함헤브론의 호족이며 사병을 318명이나 거느리고 있음(14:13-14)

2)      확실한 보호하심엄청난 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인 승전과 전리품의 획득으로 나타남. 일종의 구국의 영웅이 되고 있는 것임(14:15-18).

 

2.      남은 가지의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아브람이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12:2-3, 15:1-2)

(1)   자손의 번성창조주 하나님께 약속의 아들을 달라고 기도해야 (25:21).

(2)   만민에게 복의 통로가 가나안 일대를 두루 다니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24:48). 그리고 선지자적인 삶으로써 하나님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20:7, 23:6).

 

3.      현실에 만족하며 안주하려고 하는 아브람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15:2-3)

(1)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이며 지극히 상급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15:1).

(2)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고 있음(15:1a, “The Word of God came to Abram in a vision”). 그리고 지극히 상급에 대하여 말씀하심(15:1b).

(3)   그러나 아브람은 상급을 고사하고 있음. 이유는 다음과 같음;

1)      신실하고 능력이 많은 젊은 청지기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 자신의 성을 물려주고자 (15:2-3).

2)      아브람 부부는 헤브론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는 것에 만족하고 있음.

3)      청지기를 양아들로 삼아 그의 효도를 받으며 후계체제를 튼튼히 하고자 하는 것임.

4)      마디로, 아브람 부부는 인간적으로 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자 원하고 있는 것임.

 

4.      하늘을 우러러 별을 세어보고 또한 별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우러러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15:4-5)

(1)   육신적인 삶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임;

1)      영혼을 소멸할 있는 창조주를 두려워하라(10:28)

2)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18:8).

3)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15:17-18).

4)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간다( 16:22).

5)      주님이 제자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신다(14:1-3).

(2)   믿음은 종착역인 천성을 소망하는 것임(11:16). 그러므로 그곳에 때까지 별을 세어보고 하나님의 전을 그리워하고 동경해야만 하는 것임(15:5).

1)      동경심이 없으면 나태하고 안일한 현실안주의 믿음인 것임.

2)      여기서는 별을 없는 것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15:4-5)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나고 있음.

3)      그리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두텁게 보호하시는 모험에 인생, 또한 끝까지 기억해주시는 놀라운 인생이 것임을 깨닫고 아브람의 가슴이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청년처럼 다시 뛰고 있는 것임.

 

5.      아브람은 어떠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15:5-6)

(1)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헤세드하나님을 믿고 있음.

(2)   약속이란 특징이 미래적인 것임(15:5, 장차 자손이 많다는 것임).

1)      그러므로 막상 현실을 바라보게 되면 암담하고 답답할 때가 많음(현재는 자식이 하나도 없음. 그리고 아브람 부부는 자식생산이 어려운 노인들임).

2)      그러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성취가 되는 것을 보게 .

(3)   아브람은 약속의 찬란함보다 사실은 언약을 주시는 당사자 창조주 하나님을 믿은 것임(15:6). 그것이 아브람 믿음의 특징임.

 

6.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람에게 소유로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15:7)

(1)   하나님을 모르는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하나님신앙을 전해야만 하는 선지자가 바로 아브람이기 때문임.

(2)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땅이 선지자 아브람의 이름으로 등기가 되고 있는 것임(15:7).

(3)   땅에 하나님의 복을 전하기 위하여 아브람이 복의 통로가 되어야만 하는 것임.

 

7.      하나님이 장차 주시는 자녀와 기업의 상속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는 것이 어째서 의로움의 근간이 되는가?(15:5-7)

(1)   의와 불의의 기준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임.

(2)   그러므로 하나님이 틀렸다고 믿는 자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가 못함.

(3)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옳다고 믿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것임.

 

8.      미래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받을 것을 확인할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15:8-21)

(1)   첫째, 제물을 준비하여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임(15:9-10). 그것은 언약대로 실현한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행위와 같은 것임.

(2)   둘째, 도장을 찍기 위하여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것임(15:12).

(3)   셋째, 미래지사에 대하여 예언의 말씀을 미리 주시는 것임(15:13-16).

(4)   넷째, 언약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다시 나타나는 것임(15:18-21).

 

9.      3년된 암소, 암염소, 숫양, 그리고 비둘기와 비둘기 새끼까지 제물이 상세하게 나열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15:9)

(1)   비싼 제물부터 값이 제물까지 5가지가 나열되고 있음(15:9). 이유는 주머니 사정에 알맞게 골라서 제물을 준비할 수가 있다는 것임.

(2)   그렇지만 부자인 아브람의 경우에는 5가지 모두 준비하여 희생제사를 드린 것임.

(3)   특히 가축의 경우 3년된 암컷이 가장 비쌈.

 

10.   제물의 중간을 쪼개고 다만 새는 쪼개지 아니한 이유는 무엇인가?(15:10)

(1)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제물의 중간을 쪼개고 있음.

(2)   그것은 일종의 언약식임. 따라서 맹세를 어길 경우에는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것임(24:6-8, 율법을 지키겠다는 언약식).

(3)   작은 비둘기는 작은 정성의 표현이므로 구태여 쪼개지 아니해도 되는 것으로 보임.

 

11.   아브람이 잠을 자면서도 어두움 가운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15:12)

(1)   창조주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고 있기 때문임(15:12, 19:16).

(2)   피조물은 잠을 자면서도 영혼이 창조주의 임재를 알아보고서 본능적으로 두려워서 떠는 것임(5:8, 당장 죄인임을 고백하는 베드로).

 

12.   4대만의 출애굽의 의미(15:16a)

(1)   대물림이 보통 세대가 30 정도이므로 4대이면 120년에 불과함.

(2)   하지만 출애굽은 400년이 지나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이 되고 있음(15:13-14).

(3)   그렇다면 실제로 기준이 되고 있는 4 400년의 가문이 있는가?

1)      출애굽기를 보면 지도자 모세의 가문이 그러함.

2)      레위à고핫à아므람à모세임(6:16, 18, 20)

 

13.   아모리 족속의 죄악의 관영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15:16b)

(1)   하나님께서는 무죄한 자의 피가 어느 정도 땅에 흘러내리고 있는가를 측정하시고 계심(4:10, 아벨의 ).

1)      측혈기(測血器, measuring blood instrument) 일정한 눈금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땅에서 내어 쫓기게 (9:4).

2)      그것은 이방인인 가나안 원주민이거나 선민이거나 상관이 없음(15:16, 왕하21:11, 므낫세 왕의 시대).

(2)   여기서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지배족속임.

 

14.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15:17)

(1)   성막의 모형으로 가게 되면, 성소의 분향단과 등대가 . 그리고 번제단의 불을 의미하게 .

(2)   하나님의 보좌로 가게 되면, 이사야의 경우 화로가 나타나고 있음(6:6-7).

 

15.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는 최대 영토의 크기(15:18)

(1)   중근동 지역의 고대 문명지역인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의 사이에 있는 모든 땅임(15:18).

(2)   실제로 땅을 모두 차지한 시대는 이스라엘 제국시대임. 다윗 대왕이 연전연승하여 땅을 차지하고(삼하8:1-14) 그의 아들인 솔로몬이 외교에 능하여 굳건하게 지켜내었음(왕상10:1-13, 11:1-3).

(3)   그것은 마치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만주를 전부 장악하고 그의 아들 장수태왕이 외교술로 굳건히 지켜낸 것과 닮아 있는 것임.

 

16.   가나안 일대 원주민 10부족의 이름과 대략적인 거주지(15:19-21)

(1)   족속……출애굽 후에 모세의 장인집안이 족속에 편입이 되고 있음(1:16). 가나안 남부지역에 살고 있다고 있음.

(2)   그니스 족속……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그의 아우 옷니엘의 친척들로 보임(1:13).

(3)   갓몬 족속……헬몬 부근에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4)   족속……힛타이트 족속이며 한때 아모리 족속을 물리치고 헤브론의 정복자가 (23:3, 10).

(5)   브리스 족속……작은 족속에 속함. 가나안 족속과 함께 중부와 남부에 살고 있음(13:7, 34:30).

(6)   르바 족속……요단 동편 북쪽에 살고 있는 거인 족속임(14:5).

(7)   아모리 족속……아브람 당시 지배족속임. 헤브론과 가나안 일대에 흩어져서 살고 있음(14:13, 15:16).

(8)   가나안 족속……가나안 땅에 가장 먼저 살고 있었던 함족임. 흩어져서 살고 있음(13:7, 34:30).

(9)   기르가스 족속……브리스 족속처럼 작은 족속임(3:10). 정확한 거주지는 불명임.

(10)           여부스 족속……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원주민임(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