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창세기 제21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5. 28. 09:00

창세기 제21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제목; “창세기 제21장에서 볼 수 있는 아브라함 믿음의 특징”(21:1-34)

설교일; 주후 2023102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024일 화요일 작성)

 

사도 바울은 그의 교리서신 로마서 제4장에서 아브라함을 모든 성도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6).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행적과 그의 믿음의 특징을 가지고 사도 바울의 설명을 나름대로 풀이해보자면 그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아브람과 사래 부부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땅 하란에서 오래 머물고자 하는 부친 족장 데라를 떠나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11:31-12:4a). 그것이 아브람의 나이 75세 때의 일입니다(12:4b). 그때 여호와께서는 아브람 부부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만약 부자인 아버지 데라의 재산 상속권을 포기하고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되면 네가지 축복을 아브람 부부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자손의 번성, 이름의 창대함, 철저한 보호하심,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 등이다”(12:1-3 의역).

(2)  둘째, 당시 아브람은 일편단심으로 조강지처 사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불임여성이기에 슬하에 자녀가 없습니다(11:30). 그러므로 아브람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가운데 가장 첫번째의 것이 마음에 듭니다.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고 계시므로 그것을 얻고자 부자인 아버지 데라의 막대한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포기하고 남하를 한 것입니다.

(3)  셋째, 그런데 아브람은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나일강물이 풍성한 애굽제국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도중에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어서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12:16-20). 아브람 부부에게 여호와께서 주신 축복의 언약 가운데 자손의 번성보다 이방 땅에서 재물을 얻는 복이 먼저 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데라의 재산상속을 포기하고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그 보상으로 애굽에서 큰 부를 얻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4)  넷째, 이제는 첫번째의 축복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아브람 부부가 여호와신앙인으로 10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 전에 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침입한 다국적군대를 쳐부수고 가나안 땅에서 일약 구국의 영웅이 됩니다(14:14-17). 따라서 아브람은 헤브론의 원주민 호족 아모리 족속 마므레에게서 산 땅에 자신의 아성을 마련하고 이제는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 여생을 편히 지내고자 합니다(13:18, 14:13, 21-24). 하지만 여전히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 부부는 가신(家臣) 가운데 젊고 유능한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그의 효도를 받으며 살다가 자신들의 ()을 상속해주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15:2).

(5)  다섯째,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의 계획에 반대하십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아브람 부부와 맺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상속자가 필요한데 이방지역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은 여호와신앙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대를 이어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라고 했더니 그만 아브람 부부가 헤브론의 호족으로 편하게 살아가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들을 주지 아니하시더라도 유능한 가신을 양자로 삼아 상속권을 주면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다고 쉽게 세상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15:3-4a). 그것은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그 사명을 등한시하고 있는 잘못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의 몸에서 태어나는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15:4b).

(6)  여섯째, 안방마님 사래는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자 결심합니다(16:1-2). 그것은 당시의 관습을 따라 씨받이 첩을 남편 아브람에게 제공함으로써 아들을 얻어서 상속자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마침 사래 자신에게 애굽 출신 젊은 몸종 하갈이 있기에 그녀를 남편에게 제공합니다. 그 결과 일년 후에 하갈의 몸에서 서장자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됩니다(16:15). 그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입니다(16:16). 그로부터 13년의 세월이 지나자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고자 여호와께 간구합니다(17:18).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반대를 하십니다(17:19a).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7)  일곱째, 훗날 사도 바울의 지적에 따르면 이방여인 하갈은 여호와신앙이 없기에 아들 이스마엘에게 믿음을 상속하여 주지 못하고 있음을 여호와께서 알고 계십니다(4:23).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17:5, 15-16) 태어나는 약속의 아들 이삭(17:19) 아브람의 사명 곧 이방 땅에서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선지자로 대를 이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17:21). 그런데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아브라함과 사라는 전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 부부는 이미 몸이 늙었고 더구나 사라는 평생 불임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17:17, 18:11-12).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단호하십니다;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4).

(8)  여덟째, 창세기 제15장 제6절에서 벌써 85세의 아브람이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고서 자신의 세상적인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실 자손의 번성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이신칭의’(以信稱義,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의롭게 된다)이론의 원형입니다(4:20-22). 그런데 99세의 아브람이 어째서 전능하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속으로 웃고 있는 것일까요?(17:17). 그 이유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99세의 남편과 89세의 불임여성 아내가 합방하여 아들을 생산한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9)  아홉째, 그러나 그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20세기 초엽의 정치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 1892 6 21 ~ 1971 6 1) 의 전문용어를 빌린다고 하면 일종의 impossible possibility’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발생한 것입니다(21:1-7). 그러므로 겉으로 보면,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합방하여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브라함 부부가 회춘하여 얻은 약속의 아들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기적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아브라함 부부는 자신들의 믿음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약속과 그 예언의 성취만을 확신하면서 살아가고자 결심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믿음의 성숙이며 성화의 결실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곧 창세기 제21장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아브라함 믿음의 주요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10)    열째, 창세기 제21장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언약이 자신의 당대에 모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께서는 서장자 이스마엘을 돌보시고 세상적인 복을 주어 큰 나라를 이루게 할 것이라고 벌써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바가 있습니다(17:20). 그 말씀에 의지하여 아브라함이 하갈 모자를 광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란광야에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21:17-21).

2)   약속의 아들 이삭을 세상적인 관념을 뛰어넘어 여호와의 창조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십니다(21:5-7). 그것을 보고서 아브라함은 자손의 번성이 확실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12:2a). 요컨대, 첫번째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성취가 된 것과 진배가 없습니다.

3)   그리고 블레셋 5도시국가의 연맹왕인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 있습니다(21:31). 그것을 보고서 아브라함은 두번째 축복의 언약이 성취가 됨을 느끼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연맹왕과 당당하게 일대일로 조약을 체결하고 있으니 아브라함의 이름의 창대함이 대단한 것입니다(12:2b).

4)   평화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그랄 평야에서 우물을 여러 번 팠으나 그 우물을 전부 원주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21:15-26). 그는 우물물을 원주민들과 나누어 가졌지만 블레셋 족속들의 탐욕이 지나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이 그 땅에 흘러 넘친다고 하는 네번째의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12:3b).

5)   그랄 땅에서 아브라함은 자신과 아내 사라를 두텁게 보호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벌써 실감하고 있습니다(20:7, 17-18). 그것은 여호와의 세번째 축복의 언약이 강력하게 임한 결과입니다(12:3a). 그와 같이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 4가지가 전부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21:33).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6)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모두 달성이 되었지만 이방 땅에서 여호와신앙인으로 그리고 여호와의 선지자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아브라함은 한가지 남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고향인 영생하시는 여호와께 돌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4:26, 셋과 에노스의 경우, 5:24, 휴거한 에녹의 경우, 21:33, 영생을 소원하는 아브라함의 경우).

7)   요컨대,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죄인의 몸을 벗고 영생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을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성숙을 이룬 아브라함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알기 쉽게 언급하고 있으며(8:56, 5:27-29, 3:13-17) 또한 히브리서저자가 그의 믿음의 장()히브리서 제11장 제16에서 재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성숙을 이룬 아브라함의 마지막 기도가 언제 성취가 되는 것일까요? 그 점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이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구속자 그리스도)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시고 육신적인 생을 마감하십니다. 그 은혜를 알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의인으로 간주가 된 성도에게는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그 심령속에서 내주 역사하십니다.

그와 같은 은혜를 입고서 남은 인생을 여호와신앙인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28:18-20, 1:8) 천국에 입성하는 영생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22:28-30).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5:27-29).

그때 성도들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으로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살전4:16). 그와 같은 의미를 벌써 지니고 있는 본문 제21장 제33절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이 세상의 평안을 넘어서는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생을 확실하게 소망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그 다음 장인 창세기 제22장에서 모리아산의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22:1-2).

이상과 같은 다채로운 의미를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간략하게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을 아울러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visited Sarah, KJV),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did unto Sarah, KJV),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미 주신 여호와의 작명을 따라, 17:19)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지 8일만에 그가(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17:12, 정상적인 최초의)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세.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18:12,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대하여 내심 믿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던 사라가 이제는 기쁨의 웃음을 얻고 있는 것임. 그것이 웃음이라는 이삭의 이름의 의미임).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30:23-24, 불임여성 라헬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임 여성이 되어 아들 요셉을 얻자 또 하나의 아들을 더 달라고 간구하고 있음. 그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 사라에게서도 엿보이고 있는 것임)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21:1-7);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visited Sarah, KJV),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did unto Sarah, KJV),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미 주신 여호와의 작명을 따라, 17:19)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지 8일만에 그가(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17:12, 정상적인 최초의)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세”(21:1-5);

1)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과 더불어 몸이 젊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블레셋의 그랄 평야에 들어갔을 때에는 연맹왕 아비멜렉이 그녀의 심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서 후궁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20:2).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라는 불임이 치료되어 가임 여성의 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사라를 돌보셨다고 하는 의미입니다(1a). 그 점을 킹 제임스 영어번역본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녀를 방문하여 그와 같이 조치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을 젊게 만들어준 결과 그들 부부가 합방하여 아들을 얻고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진 것을 제1절 후반부에서는 여호와의 행하심(did unto Sarah, KJV)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1b).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성취하신 것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3)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 일이 발생하기 일년전에 미리 아브라함과 사라를 방문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17:16, 18:10). 그렇게 예언대로 실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점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제1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는 두차례의 기록입니다. 그와 같이 예언의 말씀을 먼저 주신 이유는 때가 되어 예언이 실현되었을 때에 그것이 바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새 역사의 창조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더욱 확실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라는 뜻이라고 선지자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48:5-7).

4)    기적의 아들 적장자가 사라의 몸에서 태어나자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부릅니다(3). 그리고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난지 8일만에 정식으로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4).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이고 사라의 나이가 90세입니다(5). 사라의 경우에는 기네스북에 올라가는 대기록입니다. 90세의 불임여성이 회춘하여 아들을 생산하는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믿는 것이 제21장 첫머리에서 선을 보이고 있는 아브라함 믿음의 특징입니다.  

(2)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18:12,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대하여 내심 믿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던 사라가 이제는 기쁨의 웃음을 얻고 있는 것임. 그것이 웃음이라는 이삭의 이름의 의미임).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30:23-24, 불임여성 라헬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임 여성이 되어 아들 요셉을 얻자 또 하나의 아들을 더 달라고 간구하고 있음. 그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 사라에게서도 엿보이고 있는 것임)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21:6-7); 다음 두가지의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내년 이맘 때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이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에 그들 부부는 내심 믿지 못하고 차례로 쓴웃음을 짓고 있습니다(17:17, 18:12). 창조주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선지자 부부의 비웃음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약속의 아들의 이름을 웃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삭으로 미리 작명하십니다. 이듬해에 이삭을 생산한 사라는 젖을 먹이면서 기쁨의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6). 남편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이 비웃음이 마침내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이며 놀라운 은혜입니다.

2)    둘째, 기적의 아들 이삭을 얻어 젖을 물리면서 사라가 한가지 소원을 더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삭에 이어서 또다른 자녀를 얻어서 젖을 먹이고 싶다는 것입니다(7). 그러한 사라의 소원이 내포되어 있는 복수의 용어가 자식들을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훗날 사라의 손자 며느리인 라헬7년만에 불임이 여호와의 은혜로 치료되어 아들 요셉을 얻게 되자 똑같이 다음과 같이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30:24).

둘째로,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보통 2-4살임. 여기서는 2살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이스마엘이 아직 17세가 되지 아니하여 짐을 모친 하갈이 지고 있기 때문임, 14, 22:6, 상대적으로 모리아산행의 이삭은 17세 이상으로 보임)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여인 하갈의 아들(16세의 이복형 서장자 이스마엘)(2살짜리 이복동생 적장자)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서장자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근심이 있는 자는 여호와께 기도하여야 함. 특히 예언의 말씀이 이미 있었으므로 그 이행을 요구해야 함, 17:20), 12. (아브라함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내가 약속대로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혈통적인 의미로 단순하게 해석하면 선민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음. 그러나 이삭의 아들 가운데 야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쌍둥이 형 에서도 있으므로 선민과 이방인 모두 이삭의 믿음을 상속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임).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17:20 예언의 확인임).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이스마엘이 아직 17세가 아니라는 의미임)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21:31,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지역)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16:7절에서는 멀리 도망한 하갈임.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마엘을 데리고 멀리 가지 못한 것임),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반사막성 네게브 지역이기에 큰 나무가 아니라 관목덤불이 있는 것임)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100미터 이내로 보임)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하갈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신 이유는 창16:11절임.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여호와께서 그 아이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임)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10:9, 니므롯과 같은 영걸을 말함), 21. 그가 바란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21:8-21);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보통 2-4살임. 여기서는 2살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이스마엘이 아직 17세가 되지 아니하여 짐을 모친 하갈이 지고 있기 때문임, 14, 22:6, 상대적으로 모리아산행의 이삭은 17세 이상으로 보임)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여인 하갈의 아들(16세의 이복형 서장자 이스마엘)(2살짜리 이복동생 적장자)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서장자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근심이 있는 자는 여호와께 기도하여야 함. 특히 예언의 말씀이 이미 있었으므로 그 이행을 요구해야 함, 17:20), 12. (아브라함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내가 약속대로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혈통적인 의미로 단순하게 해석하면 선민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음. 그러나 이삭의 아들 가운데 야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쌍둥이 형 에서도 있으므로 선민과 이방인 모두 이삭의 믿음을 상속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임).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17:20 예언의 확인임) ”(21:8-13);

1)    100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사라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어서 마냥 기뻐하고 있습니다(21:5-7). 그런데 2년이 지나자 일찍 젖을 뗀 이삭을 정식으로 상속자로 삼는 잔치가 열리고 있습니다(8). 그것을 보고서 16세의 서장자 이스마엘은 심통이 나고 있습니다. 이복동생 이삭이 적자로 태어나자 서자인 자신은 이제 상속자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을 참지 못한 이스마엘이 남의 눈을 피하여 2살짜리 이삭을 쥐어박고 있습니다. 그것을 안방마님 사라가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2)    사라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남편 아브라함에게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이제 쓸모가 없어진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쫓으라는 것입니다;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21:10). 그 말을 듣자 아브라함은 크게 고민합니다(11).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곧바로 아들 이스마엘에게 주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의지하여 약속의 이행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17:20). 그 결과 안심하고 아내 사라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라는 응답을 받고 있습니다(12). 여호와께서는 이스마엘에게 약속한 세상적인 축복을 확실하게 이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13).

(2)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이스마엘이 아직 17세가 아니라는 의미임)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21:31,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지역)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16:7절에서는 멀리 도망한 하갈임.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마엘을 데리고 멀리 가지 못한 것임),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반사막성 네게브 지역이기에 큰 나무가 아니라 관목덤불이 있는 것임)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100미터 이내로 보임)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하갈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신 이유는 창16:11절임.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여호와께서 그 아이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임)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10:9, 니므롯과 같은 영걸을 말함), 21. 그가 바란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21:14-21);

1)    16세로 보이는 이스마엘의 어깨가 아니라 아브라함은 떡이 든 보자기와 물이 든 가죽부대를 어미인 하갈의 어깨에 매워주고 있습니다(14a). 그로 미루어 보아 이스마엘은 건장한 체격이 아니라 몸이 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갈은 그 옛날 이스마엘을 임신하고 있었을 때에 혼자서 멀리 도망한 적이 있지만(16:7) 이번에는 브엘세바 집에서 멀리 가지를 못하고 인근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14b).

2)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광야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여 물을 많이 마시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물이 떨어진 모자는 절망에 빠져서 샘물을 찾다가 그만 100미터 가까운 거리에 서로 떨어져서 마주보면서 울부짖고 있습니다(15-16). 그러나 주위에는 그 울음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인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광야는 인적이 드물어 두렵고 무서운 곳입니다.

3)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마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17). 그 이유는 그의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겠다고 하는 의미에서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미리 지어준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16:11). 사람이 살아가기에 참으로 어려운 환경이 광야입니다. 여호와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습니다.

4)    그러나 하갈과 이스마엘은 여호와의 돌보심과 번성함이라는 세상적인 축복의 예언을 얻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생활에서 돌보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당장 하갈의 눈을 밝게 하여 쉽게 샘물을 찾아내게 합니다(19). ②이스마엘의 신체를 튼튼하게 만들고 활을 잘 쏘는 무인으로 성장하게 만듭니다(20). ③바란광야에서 애굽인 아내를 얻고(21) 그 자손이 번성하며 큰 민족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18).

셋째로, “22. 그때(아브라함 가족이 그랄 땅 원주민들의 텃세에 밀려서 멀리 변방 브엘세바에 살고 있는 때)아비멜렉(26:26, 왕의 이름이 아니라 곡창지대 그랄평야를 소유하고 있는 블레셋 연맹왕의 칭호임)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것도 군대장관의 칭호임)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알아채고 있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20:7, 18, 피해를 입히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20:14-16, 사라를 돌려보내고 보상금을 넉넉하게 주고 또한 거주권을 준 것임)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후대)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평화조약을 맺는다는 것임)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그랄 땅의 블레셋 족속)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26:14-18, 그랄 땅에서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원주민들이 연고권을 내세우고 힘을 행사하여 빼앗은 사실이 80년후 그의 아들 이삭에게 있어서도 재현이 되고 있는 것임)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블레셋의 연맹왕을 책망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해진 것임, 12:2),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그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농후함. 그 이유는 지금 그랄 평야 변경에 머무르고 있는 아브라함이 만약 동진하여 가나안 지경으로 들어가는 경우 그는 그랄 땅에서 입은 원주민으로부터의 피해로 인하여 여호와께 블레셋 족속을 저주할 가능성이 있음. 그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아비멜렉이 은밀하게 방문하여 평화조약을 맺기 원하고 있음. 따라서 그는 그 모든 일을 벌써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정치적인 인물인 것임).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이것은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이다). 28. 아브라함이 7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7암양 새끼를(가장 작은 완전수 7을 선택한 것임. 10마리나 12마리보다는 작은 수의 새끼가 경제적임) 따로 놓음은 어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7을 받아 내가 이(브엘세바의)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아브라함의 피해의식이 대단함), 31. 두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26:31-33, 아들 이삭과 아비멜렉의 경우, 31:51-55, 손자 야곱이 장인 라반과 맹세한 경우) 그곳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그후 여호와를 개인적으로 섬긴 기록이 없음),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Tamarisk tree)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4:26, 영생하시는, 한글개역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브엘세바)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22:19, 23:1-2, 사라 127세가 되기 수년전에 아브라함 가족은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임)”(21:22-34); 다음과 같이 4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2. 그때(아브라함 가족이 그랄 땅 원주민들의 텃세에 밀려서 멀리 변방 브엘세바에 살고 있는 때)아비멜렉(26:26, 왕의 이름이 아니라 곡창지대 그랄평야를 소유하고 있는 블레셋 연맹왕의 칭호임)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것도 군대장관의 칭호임)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알아채고 있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20:7, 18, 피해를 입히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20:14-16, 사라를 돌려보내고 보상금을 넉넉하게 주고 또한 거주권을 준 것임)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후대)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평화조약을 맺는다는 것임) 하고”(21:22-24);

1)    여기서 그때는 블레셋 5도시국가의 연맹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개인적으로 아브라함을 만나고자 그랄 평야의 동쪽 변방에 있는 브엘세바로 찾아온 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2). 참고로 훗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랄 평야에서 살다가 동쪽으로 쫓겨나면서 브엘세바에 살고 있을 때에도 아비멜렉과 비골이 은밀하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26:26). 두 시점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가 있습니다;

2)    첫째, 아브라함의 그때와 이삭의 그때 사이에는 약 8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계산의 방법은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아내 사라가 약속의 아들 이삭을 임신하고 있을 때로 보이고 이삭의 경우에는 60세에 쌍둥이 아들을 얻고 그들의 나이가 20세 약관으로 보이는 시점 곧 이삭의 나이 80세 정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연맹왕의 이름이 여전히 아비멜렉이고 군대장관의 이름이 비골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칭호이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두 경우 모두 그들이 히브리인인 아브라함 또는 이삭과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1:22b, 26:28). 그 사실을 아브라함 또는 이삭의 아내를 탐했던 아비멜렉이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20:7, 18, 26:10-11). 다만 하나의 차이점은 아브라함의 시절에는 브엘세바가 블레셋의 영토 안에 있고 이삭의 경우에는 가나안에 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후대)할 것이니라”(23b)는 대목에서 여실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의 그랄 땅에 여전히 브엘세바가 속하고 있기에 그 점을 본문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와 달리 80년의 세월이 흘러 이삭의 경우에는 그러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헤브론과 네게브 지역에 새로운 지배자 헷족속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주민 아모리 족속의 땅을 빼앗고(23:3-4) 블레셋 족속의 땅 브엘세바도 당시에 점령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26:29, “네가 평안히 (블레셋의 지경을 벗어나서 가나안의 브엘세바로) 가게 하였음이니라”).

5)    셋째,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여전히 블레셋 5도시국가의 연맹왕 아비멜렉이 지배하고 있는 평야 그랄의 변방 브엘세바에서 생활하고 있는 처지인지라 통치자인 그가 제시하고 있는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평화조약을 맺는다는 것임) 하고”(21:24)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서운한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점을 아브라함이 차제에 말하고 아비멜렉왕의 확실한 보장을 받아내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25-31).

(2)  25. 아비멜렉의 종(그랄 땅의 블레셋 족속)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26:14-18, 그랄 땅에서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원주민들이 연고권을 내세우고 힘을 행사하여 빼앗은 사실이 80년후 그의 아들 이삭에게 있어서도 재현이 되고 있는 것임)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블레셋의 연맹왕을 책망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해진 것임, 12:2),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그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농후함. 그 이유는 지금 그랄 평야 변경에 머무르고 있는 아브라함이 만약 동진하여 가나안 지경으로 들어가는 경우 그는 그랄 땅에서 입은 원주민으로부터의 피해로 인하여 여호와께 블레셋 족속을 저주할 가능성이 있음. 그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아비멜렉이 은밀하게 방문하여 평화조약을 맺기 원하고 있음. 따라서 그는 그 모든 일을 벌써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정치적인 인물인 것임).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이것은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이다) ”(21:25-27);

1)    아브라함이 감히 블레셋의 연맹왕인 아비멜렉에게 책망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25). 그것도 여전히 그랄 땅에 속하는 변방 브엘세바에 거주하면서 그곳의 지배자인 아비멜렉에게 그 잘못을 탓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아브라함이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신을 매우 두텁게 보호하여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이 부디 평화조약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저주를 받지 아니하겠다고 먼 길을 달려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본인은 일개 떠돌이 호족이므로 별로 힘이 없지만 그를 보호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블레셋 족속이 어찌할 수가 없는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그 점을 알게 되었기에 아브라함이 그랄 평야에서 자신의 종들이 판 우물물을 원주민들과 나누어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12:3) 그들이 탐욕이 생겨서 힘으로 마구 빼앗아 간 사실을 심히 섭섭하다고 아비멜렉에게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5).

3)    그 말을 듣자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은 임기응변으로 책임을 모면하기에 바쁜 모습입니다(26). 그러한 사실을 아비멜렉이 이미 알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랄 땅의 원주민에게서 그와 같은 불이익을 당한 아브라함이 이제 브엘세바를 떠나 가나안 지경으로 완전히 들어가버리는 경우에는 그의 호소에 의하여 여호와의 저주가 그랄 땅에 임하는 것을 아비멜렉이 심히 두려워하여 허겁지겁 브엘세바로 달려와서 아브라함과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4)    한마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입니다. 그 정도로 아비멜렉을 질책한 다음에야 아브라함이 흔쾌하게 그와 일대일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27). 그 이유는 그들 블레셋 족속의 땅에 거주하면서 여호와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창조주로 믿고서 구원을 얻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선지자 아브라함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저주와 멸망이 아니라 그들도 여호와의 뜻을 알고서 회개하고 구원으로 나아오게 하는 것이 선지자의 책무인 것입니다(3:4-10, 12:39-40). 그러므로 여호와의 살롬에 속하는 평화조약을 회피할 이유가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  

(3)  28. 아브라함이 7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7암양 새끼를(가장 작은 완전수 7을 선택한 것임. 10마리나 12마리보다는 작은 수의 새끼가 경제적임) 따로 놓음은 어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7을 받아 내가 이(브엘세바의)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아브라함의 피해의식이 대단함), 31. 두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26:31-33, 아들 이삭과 아비멜렉의 경우, 31:51-55, 손자 야곱이 장인 라반과 맹세한 경우) 그곳을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라 이름하였더라”(21:28-31);

1)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차제에 한가지 아비멜렉의 보장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그랄 땅의 변방 브엘세바에서 그가 우물물을 또 하나 얻고 있는데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아비멜렉이 확인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암양 새끼 7마리를 아비멜렉에게 주고서 그의 확약을 받아내는 것인데 그 절차가 본문에서 자세하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2)    참고로 그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은 경제적으로 제물을 아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양이 아니라 암양 새끼이며 최초의 완전수 7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의 완전수인 10이나 12가 아닌 것은 더 많은 재물을 구태여 사용할 필요가 없음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맹세로 말미암아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는 자신의 우물이 여호와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의미에서 그 지역의 이름을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브엘세바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31). 그 지역의 이름이 훗날 아브라함이 그 지역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똑 같은 일이 80년 후에 그의 아들 이삭의 시대에 다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때 브엘세바라고 하는 지명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26:33).

(4)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그후 여호와를 개인적으로 섬긴 기록이 없음),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Tamarisk tree)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4:26, 영생하시는, 한글개역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브엘세바)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22:19, 23:1-2, 사라 127세가 되기 수년전에 아브라함 가족은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임)”(21:32-34);

1)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아비멜렉과 비골은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아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왕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32).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결코 여호와를 창조주로 모심으로 인하여 구원의 축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잘 보여서 상호불가침 평화조약만 맺으면 그만이지 여호와를 창조주로 섬김으로 말미암아 행동의 구속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것이 무당을 이용하여 신의 노여움만 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며 행동양식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그들과 전혀 다릅니다. 그는 아비멜렉과 비골이 떠나고 나자 브엘세바의 우물가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가지 소원을 기도하고 있습니다(33). 그의 기도는 창세기 제4장 말미에 기록되어 있는 아담의 아들 셋의 간구와 흡사한 것입니다(4:26).

3)    세상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에셀나무는 가나안 땅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바늘잎을 가진 사철수입니다. 그러므로 소중하게 관상수나 기념식수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에셀나무(Tamarisk tree)는 한가지 보이지 아니하는 큰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지상의 높이가 10미터라고 한다면 그 뿌리는 그 3배에 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그렇게 30미터까지 뻗어서 생수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수를 찾고 있는 영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4:10). 천국을 얻고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재산과 재능을 사용하여 보화가 묻혀 있는 넓은 밭을 전부 사고서 그 다음에는 그 보화를 찾아내고자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의 삶의 모습을(13:44)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나무가 바로 에셀나무라고 하겠습니다.

5)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브엘세바에 심고서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한가지 마지막 소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몸을 벗고서 영생의 몸을 입고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창조주께서는 구원주를 이 세상에 보내어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훗날 예수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구속자 그리스도)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결론적으로, 훗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의 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그 뜻을 풀이하여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의 말씀이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희구하고 있는 영생의 주제와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7-29).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방 땅에서 평생을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며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의 체험적인 깨달음과 마지막 기도의 제목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의 체험과 깨달음은 창세기 제12장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는 4가지의 축복의 언약이 그랄 땅과 브엘세바에서 모두 성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첫째가 약속의 아들 이삭이 창조주 여호와의 돌보심과 역사로 그들 부부에게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이 자손의 번성을 확신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둘째가,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은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과 대등하게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의 창대함이 그 정도로 대단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블레셋 족속이 살고 있는 그랄 땅에서 여호와께서는 철저하게 아브라함 부부를 보호하여 주셨기에 그러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이 세번째 언약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그랄 땅에서 우물을 파게 되면 여호와의 은혜로 물이 솟아나고 그 물을 원주민들과 나누어서 사용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네번째 언약의 축복입니다.

그와 같은 4가지 축복의 언약이 자신의 남은 평생에 달성이 되는 것을 체험하고 난 아브라함이 감히 마지막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몸을 가진 자신이 향년을 마치게 되면 무덤속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며 영원히 살 수 있도록 구원주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성자의 영광을 보유하신 아들을 이 세상에 성육신하게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 이 세상에 영생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의 영광이 성도들에게도 주어지는 복음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28:18-20, 1:8, 22:28-30).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의 복음 가운데 그 옛날 여호와의 선지자 아브라함의 기도의 응답이 들어 있음을 알게 해주는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을 자주 읽고 묵상하시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어 저와 여러분이 모두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참고자료)

창세기 강의 골자 제23(21:1-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128()

 

1.    89세의 할머니 사라를 잉태시키고 이듬해에 아들을 낳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취하시고 있는 조치는 무엇인가?(21:1-2)

(1)  사라를 돌보심(the Lord visited Sarah as he had said, KJV, 21:1a)

1)    하나님께서 사라를 방문하여 생명의 기운을 크게 불어넣어주신 것으로 풀이가 됨(2:7, 37:10).

2)    강력한 생기는 사라의 세포를 활성화시켜 젊은 몸으로 회복을 시켜주고 가임(可姙)여성으로 회춘을 시켜준 것으로 보임.

3)    그 결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89세의 할머니(17:17) 사라의 미모에 반하여 후궁으로 데리고 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임(20:2)

(2)  사라에게 행하심(the Lord did unto Sarah as he had spoken, KJV, 21:1b)

1)    아브라함의 몸도 회춘시켜서 사라와 합방을 함으로써 아기가 생산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임.

2)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아기가 10달간 모태에서 잘 자라게 하고 사라 90세에 순산이 되도록 한 것임(21:2).

3)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여인의 태를 닫기도 하고 여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이 이미 그랄 땅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임(20:17-18).

 

2.    사라가 아들을 낳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고 있는가?(21:3-4)

(1)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함(21:3)……”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17:19)

(2)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함(21:4)……”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17:12).

 

3.    아들 이삭의 탄생으로 아브라함 부부는 어떠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는가?(21:5-7)

(1)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기억하게 됨.

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2)    여호와께 능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4)

(2)  반드시 언약대로 신실하게 행하시는 헤세드하나님으로 기억하게 됨.

1)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17:19).

2)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0).

(3)  인간의 비웃음을 믿음의 웃음으로 그것도 행복한 웃음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으로 기억하게 됨(21:5-7);

1)    아브라함 나이 100세에 적장자가 태어나다(21:5).

2)    불임여성 사라가 나이 90세에 아들을 낳고 모유까지 먹이게 되다(21:7).

3)    하나님의 예언을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여 비웃던 자들이(17:17, 18:11-12) 이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창조의 능력을 보고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다.

4)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가져다 주다(21:6).

 

4.    적장자 이삭과 서장자 이스마엘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표출이 되고 있는가?(21:8-9)

(1)  청소년 이스마엘이 겨우 젖을 뗀 이복아우 이삭을 놀리는 사건이 발생함(21:8-9).

1)    종의 아들이 안방마님의 아들을 놀리는 것은 불경에 해당함.

2)    특히 나이차이가 14살이나 되므로 이스마엘이 완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이삭이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음.

(2)  고대 가부장족장사회에서는 적서의 구별이 엄격함.

1)    따라서 적자인 이삭이 차기 족장이 되며 모든 재산을 상속하게 됨.

2)    이에 서장자인 이스마엘의 불만이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임.

 

5.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는 사라의 요구와 아브라함의 고민(21:10-11)

(1)  사라의 요구

1)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쫓으라(21:10a).

2)    이스마엘에게 돌아갈 상속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라(21:10b).

(2)  아브라함의 고민(21:11)

1)    자신의 핏줄을 집에서 내어쫓는 일이 사람으로서는 할 일이 못됨.

2)    그렇다고 같이 데리고 있자니 이삭에게 위해가 미칠 것만 같아서 보통 고민이 아닌 것임.

3)    그러므로 해결책은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방법뿐임.

 

6.    아브라함은 두 아들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무엇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는가?(21:12-13)

(1)  아브라함은 86세에 첩 하갈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은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함(16:16).

(2)  나이 100세에 사라에게서 적자 이삭을 얻은 것은 더 큰 기적임(21:5).

(3)  기적의 두 아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라고 생각함.

1)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들이므로 여호와께서 책임을 지시고(11:18-19) 그들 사이의 갈등의 문제를 처리하시고 모두를 살려달라고 매어 달린 것으로 보임(21:11-13).

2)    아들들뿐만 아니라 민족들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여호와가 그 구원의 책임을 지실 것이라는 뜻이 이사야 제19장에서 선포가 되고 있음;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3-25).

 

7.    하나님의 처결의 내용이 무엇이며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고 하갈 모자(母子, 어머니와 아들)를 광야로 내보내고 있는가?(21:12-14)

(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무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라고 말씀하신 것임(21:12a). 사라의 요구는 이스마엘에게 기업을 주지 않고 하갈과 함께 집에서 내어쫓는 것을 말하고 있음(21:10).

(2)  그것은 야속하기 그지 없는 처사임. 도대체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무정한 결정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1)    기본적으로, 기업은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임……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애굽에서(12:16, 13:2), 이삭의 경우에는 블레셋 그랄 땅에서(26:12-14), 야곱의 경우에는 하란 땅에서(30:43-31:1), 요셉의 경우에는 애굽에서(41:39-47) 각각 자수성가를 하고 기업을 얻도록 섭리하시고 있음.

2)    장차 이삭의 집에 대한 영적인 축복(21:12b) 그리고 이스마엘의 집에 대한 세상적인 축복을(21:13) 일찍부터 분리하고 있는 것임.

3)    뒷감당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보장임. 따라서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걱정을 접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있는 것임(21:14).

(3)  하나님께서 어떻게 뒷감당을 하시는지를 앞으로 성경이 기록으로 보여줄 것임(21:17-21, 바란광야에서 주몽과 같은 존재로 이스마엘을 양육해주시는 하나님, 참고로 바란광야는 가나안 남부 국경의 오아시스 성읍 가데스바네아에서 시나이반도에 이르는 광야임, 25:12-18, 훗날 아라비아에서 열두 족속으로 번창하게 되는 이스마엘의 후손들).

 

8.    브엘세바 광야에서 마실 물이 떨어져 절망 가운데 울고 있는 하갈 모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21:15-17)

(1)  당시 아브라함 가족이 살고 있는 장소는 브엘세바임.

1)    아브라함은 99세에 소돔과 고모라 성의 불 심판으로 말미암아 헤브론 일대에 발생하고 있는(19:27-28) 가뭄을 피하여 그랄 땅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임.

2)    그랄 땅 중심에서 아내 사라를 그랄 왕 아비멜렉의 후궁으로 빼앗길 뻔했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되찾게 됨(20:2-3, 14).

3)    아브라함은 가나안 남부지역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본거지 헤브론으로 되돌아가지를 못한 채 브엘세바에서 살게 됨. 당시 브엘세바는 블레셋의 동쪽 국경지역이며 북동쪽으로 55km 올라가면 헤브론에 이르게 됨.

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15년 이상 오래 살게 됨.  왜냐하면, 그곳에서 이삭을 낳고(21:5)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보내고(21:14) 또한 청소년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모리아산(22:2, 대하3:1, 훗날 예루살렘 성전의 터)까지 올라가는 일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임.

(2)  달랑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 가지고 브엘세바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불쌍한 인생 하갈과 이스마엘이 의미하고 있는 것(21:14);

1)    인간이 이 세상에서 안전하고 강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 깊이 있게 따지고 보면 하갈 모자와 별로 다를 바가 없음.

2)    그 이유는 불치의 병과 장애, 그리고 각종 사고의 위험, 통제할 수 없는 전쟁과 천재지변의 위험 가운데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기 때문임.

3)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존의 위기라는 절망의 자리에서 부르짖고 있는 마치 하갈 모자와 같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고서 관심을 가지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기에 아직도 인류가 지상에서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임(21:15-18).

(3)  요컨대, 1960년대 말에 미소 양 진영이 개발하여 보유하게 된 원자탄 등 핵분열 폭탄과 수소폭탄 등 핵융합 폭탄의 수를 모두 합하면 지구를 7번 이상 불태워버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핵 단추를 누르는 손을 지금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어하고 계시기에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임.

 

9.    하갈과 이스마엘의 생명을 살리시고 축복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21:18-21)

(1)  이스마엘의 우는 소리를 먼저 들으시는 하나님(21:17);

1)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어미 하갈이 큰 목소리로 통곡을 하고 있음(21:15-16).

2)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하갈보다는 이스마엘의 통곡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시는 것임.

3)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이스마엘의 장래에 대한 언약 때문임;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아브라함의)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21:13).

4)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의 예언을 얻지 못한 자가 가장 서글프고 살아가기가 막막한 인생이라고 하겠음.

(2)  예언의 말씀대로 광야에서 이스마엘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21:18-21);

1)    가장 먼저 이스마엘에게 주신 약속의 예언을 하갈에게 상기시켜주고 계심(21:18,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 21:3, 역시 아브라함의 씨이므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 16:10, 이스마엘의 후손을 크게 번성하게 해주겠다).

2)    하갈의 눈을 밝혀주어 샘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줌(21:19). 광야에서 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심(17:6, 반석에서 물이 나오다, 왕상19:3, 6, 역시 브엘세바 광야에서 엘리야에게 물을 주시는 하나님).

3)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에게 함께 계셔서 그를 마치 고구려의 창건자 주몽처럼 바란광야의 지배자로 키우심(21:20-21).

4)    참고로, 바란광야는 브엘세바에서 남서남쪽으로 80km 떨어져 있는 오아시스 국경도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시작하여 시나이 반도 쪽으로 펼쳐져 있는 광야임(13:26).

5)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바란광야에서 발흥하여 훗날 동쪽 아라비아 반도로 진출함(25:18).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삭의 후손들과 대항하면서 사라센과 회교의 이름으로 역사적으로 긴 세월을 살아오고 있는 것임(16:12, 21:12).

 

10.  그랄 왕 아비멜렉이 왜 군대장관 비골만을 데리고 변경지역 브엘세바까지 아브라함을 찾아오고 있는가?(21:22-23)

(1)  블레셋 연맹의 왕중왕인 그랄 왕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임;

1)    아비멜렉은 비밀리에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솔직하게 실토를 하고 있음……”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1:22).

2)    하나님의 선지자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을 채 국경지대 브엘세바를 떠나서 가뭄이 끝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나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그랄 땅에 임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

(2)  장차 예상이 되고 있는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사전에 아브라함과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자 함;

1)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21:23).

2)    일찍이 하란 땅을 떠나올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음(12:2). 그 약속이 여기서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임.

3)    일개 떠돌이 히브리인 족장인 아브라함이 전체 블레셋의 왕중왕인 아비멜렉과 일대일로 평화조약을 맺고 있기 때문임.

 

11.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기 전에 아브라함이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사항은 무엇인가?(21:24-27)

(1)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하여 감히 아비멜렉을 책망하고 있음(21:25);

1)    그랄 땅 들판에서 아브라함이 종들을 시켜 새로 우물을 파기만 하면 마치 먼 훗날 그의 아들 이삭의 때처럼 풍부한 샘물이 터져 나오고 있음(26:15, 18).

2)    그러나 아비멜렉의 신하들과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연고권을 내세워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빼앗아 간 것임(21:25).

3)    우물을 빼앗긴 아브라함은 가축을 몰고서 계속 동쪽 국경지대 브엘세바까지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임(21:31). 그와 같은 현상은 그의 아들 이삭의 때에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임(26:14-23).

(2)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 들판을 떠나고 나면 그의 우물물이 모두 말라버리고 있는 것임.

1)    그래서 화가 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들을 흙으로 메어버렸다고 훗날의 기록이 증거해주고 있음(26:15, 18).

2)    사실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를 통하여 이방족속에게 흘러 넘치고 있는 것임. 그런데 선지자를 박해하고 그 지경에서 쫓아내게 되면 그 복이 말라버리는 것임을 알게 해주고 있는 대목임(12:3,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 10:14-15, 영접하지 아니하는 곳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는 말씀).

3)    그와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현명한 왕중왕 아비멜렉이 시치미를 떼면서 아브라함과의 평화조약 체결을 서두르고 있음(21:26-27).

 

12.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암양 새끼 7마리를 주고 브엘세바에서 판 우물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21:28-30)

(1)  브엘세바가 당시 블레셋의 국경 안에 속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아브라함;

1)    그래서 아브라함은 차제에 블레셋의 황제에 해당하는 아비멜렉으로부터 브엘세바에서 그가 파고 있는 우물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음(21:30).

2)    브엘세바는 그랄 땅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지역이므로 아비멜렉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의 요구대로 동의를 해주고 있음(21:31).

3)    그 결과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사이에 대등한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이 체결이 된 것임. 그 모든 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동행하고 계셨기에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사건임(21:22).

4)    한 마디로, 그날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준 날임(12:2).

(2)  브엘세바 조약의 효과

1)    장차 여호와 하나님의 예상되는 진노와 재앙을 피하게 된 아비멜렉(왕중왕의 칭호)과 비골(군대장관의 칭호)은 행복하게 그들의 왕도로 되돌아감(21:32).

2)    그때부터 그곳 광야의 정식지명이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로 불리게 됨(21:31, 26:33, 80년후 이삭 때에 그 지명이 되살아나게 됨).

3)    아브라함은 3살짜리 아들 이삭이 청소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블레셋의 세력권 안에 있는 국경지역 브엘세바에서 안전하게 목축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됨(21:34).

4)    아브라함이 인류최초로 영생하시는 하나님’(the name of the Lord, the eternal God)을 발견하고 자신의 영생을 소망하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 장소가 바로 브엘세바로 기록이 되고 있음(21:33).

 

13.  아브라함이 맹세의 우물이 있는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그 장소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21:31-33)

(1)  에셀나무(a tamarisk tree)의 특징

1)    (, semi-) 사막(沙漠, desert)성 기후에 속하고 있는 가나안 남부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사철수가 에셀나무임.

2)    비록 침엽수이지만 사철 푸른 빛을 띠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뿌리에 있음.

3)    크게 9m까지 자랄 수 있는 에셀나무(tamarisk tree)는 그 뿌리가 나무 높이의 3배나 됨. 그래서 매우 깊이 땅을 파고들어가서 생명의 물을 빨아올려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는 것임.

4)    따라서 일반적으로 네게브 지역에서 유일한 기념수로 사용이 되고 있음.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그 나무를 심고서 아비멜렉과의 조약을 기념하며 동시에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음.

(2)  에셀나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하나님의 은혜

1)    에셀나무가 뿌리를 깊이 뻗어서 생수를 빨아 올리듯이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영생의 생명수를 구하고 있는 자에게 그 생명수가 주어지고 있는 것임.

2)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속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8:1-15).

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6:54);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은 말씀의 육신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처럼 생활화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부활과 영생이 주어진다는 약속입니다.

4)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6-7); 거듭난 성도는 남은 인생을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 성도에게 영생의 샘물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는 권세가 주어지게 됩니다.

(3)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처럼 성도들이 말씀충만과 성령충만으로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신앙의 뿌리를 에셀나무처럼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대속의 삶에 깊이 박아서 영적인 생명수를 빨아올려야만 합니다. 그 생명수로 지체를 움직여나가야만 합니다(1:22-24, 4:12-13).

2)    그것이 죽은 다음이 아니라 당장 이 땅에서도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살면서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방법론입니다(1:19-21).

 

14.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머물고 있는데 모세는 왜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는가?(21:33-34, 26:22-25)

(1)  당시 가나안 땅의 지배족속인 아모리 족속은 그 힘이 약하여 서쪽 국경지역 브엘세바 광야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으로 보임. 따라서 아브라함이 블레셋의 영토에 속하고 있는 브엘세바에서 여러 해를 지내게 된 것임(21:34).

(2)  그러나 10여년 후에 선진무기체계를 자랑하고 있는 힛타이트 족속의 한 갈래인 헷 족속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자 사정이 달라지게 됨;

1)    헷 족속이 가나안의 지배족속인 아모리 족속을 쳐부수고 헤브론을 차지하게 됨(23:2, 헤브론이 기럇 아르바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고 있음. 그것은 헷 족속의 영웅인 거인 아르바가 새로 차지한 땅이라는 의미임).

2)    이에 따라 아브라함이 과거 아모리 족속 마므레에게서(13:18, 14:13, 24) 산 땅을 다시 헷 족속 에브론에게서 막대한 돈을 주고 사서 아내 사라의 묘지로 삼고 있음(23:4, 16-20).

3)    헷 족속은 계속 남하를 하여 무력으로 블레셋을 밀어냄으로써 국경지역 브엘세바를 차지한 것으로 보임.

4)    그 결과 80년 후 이삭의 때에는 브엘세바가 가나안 지경에 속하고 있어 블레셋의 그랄 왕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아주 조심스럽게 이삭에게 다녀가고 있음을 볼 수 있음(26:31, 이삭이 그들을 새벽에 안전하게 경호하여 보내주매 그들이 평안히 돌아가고 있는 것임).